엄마, 보고 있나요? 라고 아가처럼 말하진 않지만 셰릴은 자기가 이렇게 망가져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엄마가,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가, 특별한 모녀 관계이자, 마치 엄마가 자신인 것 처럼 느꼈는데 없어졌으니까. 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사막을, 바위산을, 겨울 눈 산을 걷는다.

 

다락방님 덕분에 알게된 영화를 오늘 봤는데,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다. 스스로에게 고행을 던져주고 견뎌내는 힘을 끌어내는 걸까, 여지껏의 괴로운 인생에서 툭 떨어져 나와 새롭게 시작하려는 시도일까. 무모해 보이는 미국 종단 트래킹 프로젝트. 영화는 아슬아슬 아찔아찔한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꾿꾿하게 걷고 걷는 셰릴을 계속 보여준다. 트래킹의 후반부에 마주치는 '여우'를 보고 제인 에어 그림책의 붉은 여우 생각이 났다. "돌아와~" 라고 눈밭에 엎어지며 셰릴은 소리친다. 엉엉엉. 마지막 장면, 신의 다리에서 저 멀리 강과 산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트래킹의 첫날보다 더더욱 설레 보인다. 이제 다시, 진짜, 시작이다. 그러니 나도 읽고 또 읽겠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책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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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27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히히 :)

유부만두 2015-03-27 18:17   좋아요 0 | URL
따라쟁이 할만한 다락방님!

수이 2015-03-2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한번......

유부만두 2015-03-27 19:49   좋아요 0 | URL
강한 장면이 많으니 준비하고 보셔요. 아이랑 같이 볼 영환 아니고요;;

자유도비 2015-04-04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 로버트 프로스트,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멈춰 서서>

전 이 영화 보고, 셰릴이 인용한 이 시구가 맘에 와 박히더라고요. 그래서 미친듯 서유기와 관련 서적 25권을 읽어댔죠. 배낭을 지고 걷고 있는 셰릴을 보니 <서유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유부만두 2015-04-05 11:59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서유기!! ^^

전 요새 책으로 읽는데 영화가 많이 순화시키고 다듬었더라구요. 전남편 폴은 덜 자상해요. 책이 더 좋아요..^^
 

134/400. 모든 영광은 (황순원)

 

자책과 뒤틀림에서 아주 조금 움트는 희망이 보인다. 현실이 시궁창, 아니 지옥인데 작가는 순하고 선한 인간이 되어 독자들을 위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다.

 

"저, 선생님, 사람을 죽이는 데는 무기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 손가락 하나면 족하죠."

그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그 손 둘째손가락 하나를 곧게 펴 보이며, "이 손가락 하나루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어느 급소를 찔러서가 아닙니다. 먼발치루 그저 뒤통수를 가리키는 것으루 충분합니다. 충분하다마다요." (126)

 

 

모든 영광은 술에게, 그리고 다시 모든 영광은 지금 새로운 생활을 향해 어두운 계단 위에서 저렇듯 자기 신체의 한 부분을 닦달질하고 있는 저 가엾도록 착한 한 사람의 사내에게. (150)

 

 

135/400. 학 (황순원)

그 보호막은 진짜가 아닌줄 알면서도 현실을 잠깐, 동화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동료가 친구가 서로를 '손가락질' 하던 시대에, 이렇게 포승줄을 풀고, 사람 사냥 대신 학 사냥을 할 수 있을까. 실은 그 학도 진짜 사냥꾼이 오기 전에 풀어 날려보낸 순둥이들인데.

 

오랫만에 다시 읽는 작품인데도 첫 장면은 마치 외우고 있던 것처럼 매우 낯익었다. " 삼팔 접경의 이 북쪽 마을은 드높이 갠 가을 하늘 아래 한껏 고즈넉했다." 아,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아름다운 우정과 인간애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부질없이 금세 사라지는 동화였는데. 덕재는 아마 죽었을꺼야. 성삼이 손에 간 게 아니라면 성삼이도 친구 옆에 쓰러졌을 거고. ..... 묵념.

 

"얘, 우리 학 사냥이나 한번 하구 가자."

성삼이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덕재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데,

"내 이걸루 올가미를 만들어놀께 너 학을 몰아오너라."

포승줄을 풀어 쥐더니, 어느새 성삼이는 잡풀 새로 기는 걸음을 쳤다.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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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7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의 탄생을 기념하여 황순원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구글 두들/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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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3-26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이 소나기 였군요!

유부만두 2015-03-27 06:57   좋아요 0 | URL
네~아무래도 황순원 작가는 소나기, 의 작가죠!

몬스터 2015-03-26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소나기를 읽으면 ,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15-03-27 06:57   좋아요 0 | URL
그럴거에요! 아 잔망스런 소녀 ㅠ ㅠ

비로그인 2015-03-2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림 너무 예쁘네요.

유부만두 2015-03-27 10:51   좋아요 0 | URL
그쵸? ^^ 구글에서 저 그림을 보고 뭘까, 했더니 황순원 탄생 100주년 이더라구요.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더 있었다

 

 

 

 

 

 

 

 

 

 

 

 

고갱이야기는 어떻게 표현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품절, 다행이네.

얼마전 외서 한 권을 주문했다가 한 달 넘도록 못 받아서

주문취소 불가라는 걸 겨우 환불 받았는데

실은 정상 출고 되었으나 중도에 분실된 듯하다,는 고객센터의 설명이다. 아, 눼~

 

당일 배송에 익숙해져버리니

일주일은 기본이고 열흘 넘어가는 외서 주문은 기다리기 너무 힘들고

책을 받을 때 즈음엔 뜨거운 마음이 식어버려서 .... 읽을 마음이 들지 않기도 한다;;;

 

아, 올해의 그림작가는 이자벨 언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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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400. 읽어가겠다 (김탁환) 

김탁환의 소설은 한 권도 제대로 읽어내질 못했는데, 이번 그의 독서록 (이라기엔 개인 감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은 쉽게 완독했다. 스포일링이 장난아니었고 책의 클라이맥스와 결말을 다 알려주기 때문에, 뭐에요? 이러시면 안돼욧! 이라고 하면서, 음, 그 책이 그런 내용이었군, 하면서 주섬주섬 책 장바구니에 채워넣기도 했다. 김탁환을 작가, 로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임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계속 생각나는 단어는 <그미>. 하지만 그가 소개하는 방식은 뭐랄까, 너무 깔끔하고 밍밍하고 ... 김탁환 스러웠다. 내가 왜 '노서아가비'를 읽다 말았는지 기억났다.

 

 

 

 

 

 

 

 

 

 

 

 

그미: 주로 소설에서 '그 녀'를 멋스럽게 이르는 말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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