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함께 읽으려 자리에 앉았더니, 아이는 금세 알아보고 "엄마, 이거 제인에어 여우 2탄이야?" 라고 묻는다. "아니, 그 책 그림 그린 분이 만든 다른 책들이야." 라고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습니다. (화목한 목요일 오후 광경으로 보정;;;)

 

131/400. 내 동생 버지니아 울프 (코 맥클레어 글, 이사벨 아르스노 그림)

이유 없이 마구 짜증내는 동생 '버지니아'가 '울프/늑대'처럼 느껴지는데, 당황스럽지만 언니야는 그림도 그리면서 동생을 다독거린다는 단순하지만 차분하고 따뜻한 이야기. 이번에도 문학작품이 나오는가 생각했는데, .Woolf 가 아닌 Wolf 라니. 강아지 처럼 귀엽고 작은 아이가 큰 귀와 꼬리를 달고 성질을 부리는 장면은 상상가능하다. 처음엔 어린 여자아이가 나와서 '동생'이 화낸다고 하길래, 아...언니가 생리주간이라 사춘기 짜증이 하늘을 찌르는가보다, 싶었는데 동생이 맞았다. 아이가 짜증낼 때 다독거리는 일은 쉽지않다. 앞뒤 안 맞는 말을, 소리를, 비명과 몸태질을 그저 참고, 버지니아가 원하는 것을 알아 다독거려 주면서 언니야는 버지니아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았다. 아, 언니야, 네가 이 아줌마보다 낫구나. 나는 애보다 더 큰 괴물 늑대가 되어버리는데.

 

 

 

 

132/400. 너는 어디로 가니 (맥신 트로티어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표지의 이 사랑스런 여자아이의 가족은 1920년대에 독일에서 멕시코로 이민을 와서 마을을 이루고 산다. 그들은 매년 봄이면 캐나다의 농장으로 가서 가을 까지 농장일을 하고 겨울이 가까우면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철새 같은 생활을 한다.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일은 못하지만 오빠, 언니들은 부모님과 함께 모두 농장에서 일을 한다. 독일어 사투리로 의사소통을 하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에게 캐나다 사람들의 말은 너무 맵거나, 걸죽하고, 빤히 쳐다보는 눈길은 창피함을 느끼게 만든다. 이 꼬마의 소원은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한 장소에서 지켜보는 것이라는데, 아, 한숨이 나온다. 따스한 어느 봄날, 초등학교 3학년생 꼬마는 "엄마, 이 아이는 좀 불쌍한데요,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 라서 조금은 좋은것도 있겠지요?" 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까, 버려진 집을 치워 살고, 이불 한 장으로 강아지 처럼, 고양이 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자는 아이들의 실제 모습은 그림책 처럼 마냥 귀엽지만은 않을텐데. 그림책을 통해서 내 아이가 지금, 이곳 말고 다른 곳의 다른 삶에 대해서 배우며 커갔으면 좋겠다.

 

 

 

땅 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처럼 되면 어떨까?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듯, 여러 계절이 내 곁을 지나는 것을 지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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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0.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 이사벨 아르세노 그림)

 

막내를 위한 그림책이라고 말하면서 실은 나를 위해서 읽었다. 그림도 내용도, 주인공도 모두 사랑스럽다. 헬레네, 초등 고학년쯤 되었을까. 화장실 낙서로 돼지라고, 백 킬로그램도 넘는다고 놀림을 당하고 친구도 없이 외로운 이 아이는 실은 몸무게가 사십 킬로그램 밖에 안나가는 정상 체격으로 "자라나는 중"인 아이다. 이 아이가 괴로워 하는 장면과 제인 에어 책을 오가며 상상하는 장면은 뭐라 말할 수 없도록 아프고, 아름답다. 이유없이 남에게 상처주는 그 역시 '자라는 중인' 아이들. 다행스럽게 다정한 붉은 여우, 그리고 제랄딘이 헬레네 곁으로 온다. 조금씩 색을 입기 시작한 헬레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여우가 달아나 버리지 않기를,

 

여우가 여기에 영원토록 머물기를.

여우가 우리 텐트를 지켜 주기를.

스핑크스처럼, 보디가드처럼, 한 마리 용처럼.

 

이제 한두 발자국이면 내 손에 닿는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마치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75)

 

 

 

 

 

 

 

 차츰 깨닫는 중이다.

내가 생각을 덜 할수록,

그 말들은 나에게서 멀어진다는 걸.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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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25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뭔가 되게 좋을듯요. 저도 읽어볼래요! >.<

유부만두 2015-03-25 11:40   좋아요 0 | URL
글도 그림도 좋아요. 전 그림작가의 다른 책들을 찾는 중이에요. ^^

다락방 2015-03-26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주문에 유부만두님께 땡투가 두 개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15-03-26 09:08   좋아요 0 | URL
땡투 모아서 책 살래요! ㅎㅎ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고, 첫 페이지에 선언하고 보는 패기.

15년전 책이란 건 작가 사진과 프로필 글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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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3-2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얼굴과는 많이 다른걸요. 어쩐지 `말하다`의 얼굴이 더 젊은 시절의 얼굴 같아 보여서, 웃었습니다. 유부만두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유부만두 2015-03-25 07:4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서니데이님.
저도 이 사진 보고 좀 웃었어요. ^^ 패기어린 소개글과 작가의 젊은 얼굴!
이게 바로 ˝응답하라˝ 잖아요.

수이 2015-03-2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문청 사진인데요 후후후_ 1996년에 대학교 막 들어갈 때였는데_ 김영하 작가님은 마치 동시대 사람 같아요, 아니 동시대가 아니라 동년배_ 말하다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올지 내일 올지 암튼 읽어봐야겠어요.

유부만두 2015-03-25 07:42   좋아요 1 | URL
야나님, 젊으시군요. 전 그때....이미....흠... 말 안할랍니다. ^^
말하다, 별점 주신거 봤는데요, 전 패스해야겠네요.

수이 2015-03-25 08: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니 그니까 음음 그래도 읽을만 ㅋㅋㅋㅋ 객관적으로 보다 평가하고 싶었으나 자꾸 소설가의 일_이랑 겹치니까 저도 모르게 박하게 ㅋㅋㅋ 아 진땀-.-;;;;;

2015-03-25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5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27/400. 혼자살기 9년차 (타카기 나오코)

매일 매일 되풀이 되는 삶도 재미있을 수 있다. 별걸 다 만화책으로 만드는 나라, 일본이라지만 사람사는 게 다 비슷하고 다 비슷하게 쉬운 방법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보다도 아이들에 치이다보니 혼자 사는 삶이 궁금했다. 난 왜 그리 결혼을 빨리 했을까...

 

128/400. 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그 유명한 힐링 만화를 이제야 만났다. 엉성한 그림체 때문에 꽤 망설였는데, 이 묘하게 공감되는 솔직함. 난 아줌마라서 숲, 보다는 다음 책에 더 공감할 거라 생각했는데, 숲은 정말 강하게 위안이 되는 만화였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내 친구들이 생각났다. 고마워~ 그대들!

 

129/400.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마스다 미리)

이렇게 선생님 같은 제목은 아줌마인 내가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 답은 없고, 나의 부끄러운 시샘도 해법이 없지만, 그저 심심하게 또 덤덤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위안이 되었다. 억지 부리지 말것, 하지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걸 잊지말것. 아직 내가 마스다 미리에게 위안을 받을 수 있다니. 내가 내 나이보다 훨씬 젊게 느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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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5-03-23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카기 나오코의 책은 첨 봐요~~ 마스다 미리의 책은 다 읽었지만~~~.
암튼 저도 유부만두님 따라해야 겠어요~~~. 책 읽은 권 수 적는 거 말이죵~~~~ㅋ
어떻게 지내세요??? 어머님은???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15-03-25 0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쌍욕이 난무하는 즐거운 점심시간
우리집 옆 중학교

너네가 전국 상위 몇 프로 더라...
그래서 아줌마도 이사 왔어

얘들아 , 그러지마, 라고 하고 싶지만
변성기 아이들 쉰 목소리의 욕설들은
끊이질 않는다

창문 열어
봄 바람을 맞고 싶었는데

날 찾아오는 건
풋풋한 욕설 뿐

아이들아
욕은 맛있게 먹었니?
건강하게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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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2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왜 고치셨어요. 처음 글이 더 좋았는데요. ㅎㅎㅎㅎㅎ

유부만두 2015-03-20 16:05   좋아요 0 | URL
헙. 보신 건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