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에서 강조하는 사항은 모집단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정확한 표본 추출 방법을 사용한 표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응답자의 수를 기준으로 대표성 여부를 따지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random sampling 이라는 전제 하에서 비로소 조사의 신뢰구간이 충족된다고 했을 때, 과연 여론 조사 회사들이 보유한 패널들이 전체 모집단을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 응답한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마음 깊이 숨겨둔 다수의 생각을 대신할 수 있을까?

표본 숫자가 아닌 표본 추출 과정에 전반에 대한 과정이 공시될 때, 비로소 여론 조사는 프로파간다의 수단이 아닌 신뢰성과 타당성을 획득한 진정한 사회과학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무작위로 선정한 표본의 크기를 1,000개에서 2,000개로 두 배 늘린다고 하면, 표본추출을 위한 비용과 시간도 궁극적으로 두 배로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표본의 오차 한계는 최소치까지만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시행하는 대부분의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표본 크기를1,000개에서 1,500개 사이로 설정하는 이유이다. 이 정도 표본 크기가 정확도 대비 소요 시간과 비용에 대한 효율성을 충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타협점이기 때문이다. 표본 추출의 핵심은 조사 대상인 모집단 전체의 모든 요소들이 표본으로 선정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표본을 선정하였을 때, 추출된 표본은 경험적인 오차 한계내에서 모집단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 P226

여론조사의 기본 원칙은 ‘무작위‘ 이며, 이 원칙이 바로 여론조사 전문가가 성공적인 표본을 추출할 수 있는 해답이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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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3-25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씁쓸하지만 예전에 포커스 스터디
공부를 해보니, 여론조사는 설계자가
어떻게 질문 등을 설계하냐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는 그런 맹점이 있다고 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21-03-25 17:53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실 여론조사 뿐이겠습니까. 회계 이익도 그렇고, 과학에서 말하는 ‘가정‘도 연구자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숫자로 만들어진 데이터로 설득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혁명‘은 결국 새 시대를 특징있는 개념이 되었다.  처음에 ‘혁명‘은 교체, 봉기, 지배자 몰락 혹은  헌법  변동이라는 전통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그 후 헌법 변동은 전통적인, 예컨대 폴리비아누스적인 신적인 의미에서 헌법 순환므로 해석될 수 있었고,  18세기에 역사철학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것은  변동 자제를 의미했지만 모든 생활 영역들을 함께  진보적으로 보다 나은 미래로 미끌 변동을 의미했다. 혁명은 역사적 필면성의 후광을 얻게 되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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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라인하르트 코젤렉.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 엮음,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획, 한운석 옮 / 푸른역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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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은 결국 새 시대를 특징짓는 개념이 되었다. 처음에 '혁명'은 교체, 봉기, 지배자 몰락 혹은 헌법 변동이라는 전통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그 후 헌법 변동은 전통적인, 예컨대 폴리비아누스적인 의미에서 헌법 순환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18세기에 역사철학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것은 변동 자체를 의미했지만 모든 생활 영역들을 함께 진보적으로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 변동을 의미했다. '혁명'은 역사적 필연성의 후광을 얻게 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2번째 주제는 혁명(Revolution)이다. 고대로부터 '과거보다 더 나은 상태로의 변화'를 가르켰던 '혁명 革命'은 의미를 확장하면서 보다 널리 사용되었고, 운동의 방향성이 다른 경우에도 적용되면서 '반(反)혁명'까지도 자신의 의미 안으로 가져가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과거에 종교적으로 중재된 구원에 대한 기대는, 그것이 현세적인 행복과 지배로부터의 자유를 약속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근대적인 혁명 개념을 각인했다. 그 개념들이 그렇게 다양하게 서로 다른 시기에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적 및 공산주의적 혁명 개념 모두에 적용된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16


 일반적으로, 우리는 혁명을 '진보적'이며,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혁명은 방향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었다. 시간적으로 직전 상태에 대한 반동의 의미로 사용되었을 경우(특히, 혁명 직후의 불안정한 상태로부터 안정화로)의 혁명은 보수적인 개념이었고, 국가 주도의 개혁의 의미로 사용된 혁명은 전체주의적인 '위로부터의 혁명'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 이후 이전 체제로 복귀하려는 빈 체제(Vienna system)이 대표적인 전자의 경우라면, 상대적으로 뒤처진 프로이센의 개혁을 이끈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Furst von Bismarck-Schonhausen, 1815 ~ 1898)의 개혁은 후자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프랑스혁명이 더 위험하다는 것이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에 근대의 가속화 경험의 원칙을 통해 한층 풍부해진 비스마르크는 프랑스혁명에 정치적으로 맞설 수 있기 위하여 프랑스혁명과 그의 영향을 역사적으로 상대화하는 혁명 이전의 거의 모든 주장들을 수집했다. 동시에 그가 프랑스혁명이 마련한 토대 위에서 자신의 정치를 추진했다는 것은 "혁명이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당하기보다는 그것을 만들고자 한다"는 그의 격언이 증명해준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169


 결과적으로, 혁명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진보 세력과 현실을 인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하는 보수 세력 모두에게 사용되면서, 코젤렉이 본문에서 지적했듯이 지나치게 개념이 소모되기에 이른다. 어쩌면 이는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1770~1831)의 지적처럼 혁명 안에 내재된 반동(反動)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헤겔은 "세계사가 영원한 이성의 산물이고 이성이 그의 대혁명들을 규정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그는 프랑스혁명을 세계사적인 사건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프랑스혁명을 로마 가톨릭 세계의 특별한 산물로 상대화했다. 바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자유주의 추상화야말로 그것에서 지배하는 "종교적 예속"에 대한 반동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172


 코젤렉은 본문에서 혁명의 특질로 '가속화'를 제시한다. 마치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눈덩어리(snow ball)가 구르면서 더 커지고 단단해지는 것처럼, 혁명 또한 가속화를 통해 추진력을 얻고 공고해진다. 이와 함께, 혁명 이후 혁명 세력이 보수화 되면서 '기득권'으로 바뀌기에 혁명은 상대적이라고 코젤렉은 말한다. 이는 우리 역사 속에서 혁명을 이끌었던 세력들인 신라 말 6두품 호족(豪族), 훈구파(勳舊派), 사림(士林)들의 변화를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혁명에 대한 일상적 경험의 공통점은 가속화에 있었다. 그로써 미래와 관련해서 유일무이한 역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려진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다음 세기에 점점 더 강하게 관철되었고 이후의 혁명들에 수반되었던 시각이었다. 혁명 전의 과거와 관련해서 보면, 혁명은 가속화 덕분에 자신의 유일한 성격을 유지하기는 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혁명은 동시에 개념화되었던 '역사 일반'의 현상적 형태에 불과하기도 했다. '혁명'은 그 이후로 체계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상대화될 수 있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162


 헌법적 합법성은 혁명적 정당성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는데, 그런 합법성에 힘입어서 혁명을 추진하거나 후퇴시기려는 좌우익의 시도들이 모두 소추될 수 있었다... 의미론적으로 이러한 갈등들은 더 나아가서 전통적인 개념 형성의 차원으로 옮겨져 해석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2 : 혁명>, p234


 이러한 정치 개념으로서 혁명 뿐아니라 소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형태의 '혁명'을 접한다. '4차 산업 혁명' , '수소 혁명', '혁명적 사고' 등 우리 주변에 쏟아지는 '혁명'이라는 단어 속에서 이제는 혁명이 아닌 것을 오히려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코젤렉의 지적처럼 '혁명'이라는 단어에 대한 개념 정리가 이제는 필요한 때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혁명‘은 결국 새 시대를 특징짓는 개념이 되었다. 처음에 ‘혁명‘은 교체, 봉기, 지배자 몰락 혹은 헌법 변동이라는 전통적인 현상을 표현했다. 그 후 헌법 변동은 전통적인, 예컨대 폴리비아누스적인 의미에서 헌법 순환으로 해석될 수 있었고, 18세기에 역사철학적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그것은 변동 자체를 의미했지만 모든 생활 영역들을 함께 진보적으로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 변동을 의미했다. ‘혁명‘은 역사적 필연성의 후광을 얻게 되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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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우리는 도시에 훌륭한 하수도 시설이 있기를 바라고, 매춘부들의 수가 줄어들기를 바란다. 그러나 위생처리된 도시는 전기 불꽃이 일어나지 않는 도시다. 한 도시의 모순과 대립적 요소와 상스러움은 그 도시에 강렬한 자극과 맥동하는 에너지를 선사한다. 도시에는 위생처리가 필요한 만큼 오물도 필요하다. 도덕적 기준이 낮은 곳, 저열한 퇴폐업소가 있는 곳, 매력과 재력을 갖춘 곳.
이것은 대도시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대도시의 상반되고 불온한 성격이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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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2021-03-24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재밌는 부분을 발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3-24 19: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토마스님. <메트로폴리스>는 도시의 역사를 통해 여러 가지 면을 보여주는 재밌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즐거운 독서 되세요!^^:)
 

 그러나, ‘문화정치‘  역시  기만술책이었다면,  더 큰  성과는 따로 있었다. 독립운동 진영의 인식과 사고와 태세를 크게 바꿔놓으면서 크나큰 자신감을 갖게 하고 정대한 노선으로 나아가게 한 것. 그 이상으로 조선 민중 속의 수많은 3·1의 자아들이 새로운 자각과 결기를 통해 의열투쟁의 주체로, 폭력의 담지자로 기꺼이 나서게끔 한 것. 그것이 3·1운동의 실질적 성과이자 숨겨진 성공이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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