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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 - 정의에 이르는 길 ㅣ EBS 오늘 읽는 클래식
김주일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EBS BOOKS / 2022년 12월
평점 :
플라톤의 《국가》는 국가의 정의(justice)는 무엇이며, 국가에서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정의로운 국가는 어떻게 세울 수 있는지, 정의가 무너지면 국가와 국가의 시민은 어떻게 되는지를 논의한 책이다. _ 《플라톤의 국가》, 김주일, p18/112
김주일의 《플라톤의 국가》는 플라톤의 《국가》 전체 10권의 입구인 1권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통해 독자 스스로 정의, 국가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관계를 생각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몇몇 생각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소크라테스는 '쓸 만한(chrestos)' -> '좋은(agathos)' -> '정의로운(dikaios)'으로 용어를 바꿔가며 논의를 진행했다. 이 세 가지 말은 유사한 뜻을 가진 말이기는 하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편향성을 가진 의미에서 보편적인 의미로 확장되는 흐름이라서 소크라테스가 지금 향하고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준다. _ 《플라톤의 국가》, 김주일, p46/112
소크라테스는 대화, 변증술을 통해 상대에게 의문을 제기하고 모순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결국 상대가 자신의 논리가 모순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를 끌어간다. 상대의 논리가 맞지 않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논리가 타당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A가 틀렸다고 해서 B가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방식의 대화가 내린 결론에 우리가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판단(doxa)'은 플라톤 철학에서 주로 '의견'으로 번역된다. 이 의견과 대비되는 것이 '앎(episteme)'이다.(p55)... 의견(doxa)의 대상이 되는 '감각적인 것'이 생성, 소멸, 운동, 변화하는 데 비해서 앎의 대상인 형상들은 있는 그대로 변함없고, 생겨난 것도 생길 것도 아니며 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_ 《플라톤의 국가》, 김주일, p86/112
그런데 이데아를 향해 가는 도구가 중의적 언어라면, 그 언어가 가리키는 이데아는 이미 언어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 전에 개인 사이의 관계가 불완전한 언어로 연계된 사회라면 이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전체와 부분으로 설정할 수조차 없지 않을까. 입문서인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 《국가》에 대한 내용 이해가 아닌 방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이 또한 독서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고전은 답을 쉽게 내어주기 때문에 고전이 아니라, 원전을 읽기 전부터 오래 붙들어야 할 질문을 남기기 때문에 고전인지도 모른다. 이 의심을 원서를 읽으며 챙겨야 할 숙제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