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이야기 - 과학고전시리즈 3
마이클 패러데이 / 서해문집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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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소 물질이 어떻게 공급되는가, 어떻게 하여 연소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 운반되는가, 연소가 일어나는 곳에는 공기가 어떻게 규칙적으로 공급되는가,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천연의 양초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이 작은 나뭇조각으로부터 어떻게 하여 열과 빛이 생성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15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의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대중강연집이다. 제목처럼 패러데이는 당시 흔하게 볼 수 있는 양초로부터 연소, 화합물, 원소, 수소와 산소, 고체, 액체 등의 상태 등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탄소가 연소하면 일정한 물질이 생긴다는 것, 숯이나 그을음은 그 일부라는 것을 생각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숯을 다시 더 연소시키면 다른 물질로 되는데, 이제 이 물질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싶을 것입니다. 연소될 때는 어떤 물질이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이미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물질이 공기 중으로 날아갔는지를 조사해야겠습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60

책은 양초를 통해 18세기까지 알려진 화학 내용을 설명하기에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초적이며 당연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화학에 대한 깊은 지식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무가치한 책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물은 두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미 양초의 경우에서 보았고, 또 다른 하나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면 물은 얼음으로 존재하다가, 온도가 높아지면 다시금 물이 됩니다. 그러다 다시 충분히 가열하면 증기로 변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물은 밀도가 가장 큰 상태에 있습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69

본문의 진행은 강연자인 패러데이가 직접 청소년들의 눈 앞에서 실험을 하면서 진행한다. 단순히 결과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주기에 실험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사고도 발생한다. 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패러데이는 직접 실험을 수행하며 아이들에게 위험한 실험은 현장에서만 확인하라고 당부하며 보다 생생한 실험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두 장의 백금판(白金板)이 전지의 두 극입니다. 이것을 양 극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아까 종이 위에서 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그 산의 용액에 접촉시킵니다. 전지의 두 극을 접촉시키기만 하면 용액이 종이 위에 있든 병 속에 있든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p92)... 전지의 힘을 작용시켜 용액 속에 넣으면 순식간에 구리처럼 변화합니다. 이에 반하여 이쪽의 백금판은 완전히 깨끗합니다. 구리로 변한 백금판과 깨끗한 것을 장소를 바꿔 보면 구리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합니다. 즉 이동함에 따라 구리로 되어 있던 표면이 깨끗해지고 깨끗했던 표면이 이번에는 구리로 뒤덮여 있습니다. 즉 앞에서 용액 속에 있던 구리가 이렇게 하여 전지의 작용에 의해 여기에 나타난 것입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93

이와 함께 패러데이는 자신의 강의를 단순히 실험에만 한정짓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기가 여러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끈다. 또한, 독자들은 과학적 지식에서 삶의 지혜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들 육체의 내부에서도 살아 있는 생물의 연소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양초의 연소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확실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생명을 양초에 비유하는 것은 결코 시적(詩的)인 의미에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148

이와 같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는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패러데이의 다음 세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된다. 마침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宮? 駿, 1941~ )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개봉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든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단 1회의 호흡으로 공기는 이와 같이 변질되어 버렸으므로 한 번 더 호흡할 필요도 없습니다. 따라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곳이나 특히 빈민가 같은 곳은 주거지로서 부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충분한 환기법(換氣法)이 실시되지 않고 있으므로 신선한 공기가 조금도 공급되지 않고, 따라서 한 번 사용한 공기를 다시 몇 번이고 호습하게 되는 것입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151

모든 생물, 즉 동물과 식물은 서로 도움이 되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생장하고 있는 모든 초목은 우리가 공기 속으로 뿜어 내보낸 탄산가스를 잎으로 빨아들여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깨끗한 공기를 식물에게 주어 보십시오. 시들어 버립니다. 탄산가스를 주어 보십시오. 그러면 잘 자랄 것입니다. 이 나뭇조각이 탄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은 모든 식물과 마찬가지로 대기의 덕분입니다. 즉 우리들에게는 유해한 탄산가스를 대기가 이것이 필요한 다른 장소로 운반해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용의 원인은 모든 화학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힘, 즉 화학 결합력입니다. 우리가 호흡할 때 우리들의 내부에서도 화학 결합력이 작용합니다. 이것은 양초의 연소 때 불꽃 속에서 작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_ 마이클 패러데이,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 이야기>,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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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체제’의 기본은 안전보장과 경제협력, 간단히 말하자면 ‘안보 경제’였다. 원래, 한일교섭은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던 식민지배 기간에 한일 간에 이전된 경제적 가치의 원상 복귀를 꾀하는 방법으로 청산을 시도한 것이었다. 또 그것에 경제협력이라는 명목을 입혀, 그것을 수단으로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하여 한일의 안보를 확보하려 한 것이다. 이렇듯, 안보와 경제를 우선함으로써 역사 청산은 미흡하게 매듭지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반면 경제협력을 축적하여 안보를 확실하게 함으로써 역사를 둘러싼 대립을 해결한다는 낙관적인 기대도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경제 원조가 필요했다. 따라서 원재료의 수입처는 주로 미국이었으며, 1차 생산품의 수출처는 주로 일본이었다. 그러한 무역구조는 국교 정상화 이후 크게 변화했다. 일본에서 원재료를 수입하여 그것을 가공한 뒤 주로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미국 등에 수출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일본에서 원재료를 수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교 정상화에 따른 청구권 자금의 공여 때문이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일본에서 원재료나 기계, 부품 등의 수입이 늘어났으나, 일본에 대한 공업제품의 수출이 수입과 비례하여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일 무역 적자는 날로 증대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대일 무역 적자의 증대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경제적 가치가 일방적으로 이전되는 것으로 이해하였고,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이의 시정을 요구했다.

일본은 진정으로 한반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 한국 사회의 등신대를 세워놓고, 일본의 좌우 대립을 그대로 한반도에 투영한 셈이었다. 사회당이나 공산당 등의 좌파 세력은 한국이 아닌 북한 쪽에 조금 더 친근감을 표했다. 정부 자민당 등의 우파 세력은 반대로 한국 쪽에 정통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 중간의 정치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의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 등 과거의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의식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는 점은 좌우 모두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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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로서의 인류학자 - 레비스트로스, 에번스프리처드, 말리노프스키, 베네딕트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7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김병화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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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저자'와 '작가'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저자는 기능을 수행하고 작가는 활동을 한다. 저자는 사제 역할을 하고 작가는 서기 역할을 수행한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자동사이다. "그는 세계의 왜를 어떻게 쓰는가 안에 철저히 흡수하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는 타동사이다. 그는 무엇인가를 쓴다. "그가 어떤 목표를 설정할 때 언어는 그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에게 언어는 실천을 떠받칠 뿐 실천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의사소통 수단의 본질, '사유' 수단의 본질로 복원된다."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30

클리퍼드 기어츠 (Clifford Geertz, 1926~2006)의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Works and Lives: The Anthropologist as Author>에서 롤랑 바르트(Roland Gerard Barthes, 1915~1980)의 표현을 빌려 '문학으로서의 인류학, 사제로서의 인류학자'를 말한다. 저자와 작가. 이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다시 말하지만 내가 방금 사용한 어휘에도 불구하고, 핵심은 '그곳'에서 겪은 것을 '이곳'에서 말하는 것으로 옮겨오는 경로의 문제가 심리학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문학적인 문제다. 아 문제는 '목격하는 나' 접근법을 취해 문화를 해석하는 모두에게 발생한다... 사회적 기호나 분석의 힘이 아닌 감수성을 민족지의 중심부에 두는 것은, 스스로에게 텍스트 구축에 대한 독특한 성격의 문제를 내는 것이다. 즉 문제는 당신 개인을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설명에 신뢰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101

그것은 주체와 타자의 문제이며, 언어의 문제다. 인류학자들은 학문의 성격상 연구자와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관찰한다. 소통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진다면 객관성이 흐릿해질 것이며, 그들과 떨어져 관찰만 진행한다면 진정한 의미를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인류학자들은 '과연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인가?' 에 대한 문제와 부딪히게 된다. 이와 함께 연구자들은 언어의 문제와도 직면한다.

인류학은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만남을 포함한다... 많은 경우 거리두기는 타자를 원시적이고 기괴하며 이국적인 존재로만 주목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친숙한 '우리'와 이국적인 '그들'의 간극은 타자를 의미 있게 이해하는 데 굉장한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면 타자의 세계에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민족지적 거리 유지는 ... 죽음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의 편협화 parochialization 혹은 민속화 folklorization라는 결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만약 인류학자와 타자의 거리를 줄일 수 있다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류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26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객관적 사실, 대상과 관련을 맺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인류학자의 사고를 향하고 있는가. 언어가 대상을 지향하여 귀납적인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법칙을 도출했을 때 인류학은 사회과학으로서 기능하는 반면, 언어는 인류학자의 '답정너' 식 결론의 도구로 작동할 것이며, 이때의 인류학은 문학이 될 것이다.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에서 저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여러 인류학자들 - 레비트로스(Claude Levi-Strauss, 1908~2009),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i, 1884~1942),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1948) 등 - 의 저작 안에서 이러한 문학적인 면을 지적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의 과제는, 리비도적인 그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또한 "작가에서 개인으로 전환시키는 일종의 회전고리를 통해 매혹하고...... '나는 내가 쓰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존재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자발적'인 글쓰기 형태를 선택함으로써 나 자신이 삼류 배우 중에서도 제일 어설픈 배우임을 알게 되었으니.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114

문학으로서의 인류학과 과학으로서의 인류학. 감성과 이성, 어느 편이 더 인간을 이해하는 인류학(anthropology)의 목적을 충족시키는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저자로서의 인류학자와 작가로서의 인류학자에 대한 비교는 이와는 다르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이 인류학자의 의견인가 아니면 다른 이들의 삶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은 비교적 쉽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저자로서의 인류학자>는 이러한 면을 잘 깊어준 책이라 생각된다...

이국적인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한 것처럼 만남의 즉각성에서 물러나 사고의 균형을 찾음으로써, 혹은 E-P가 한 것처럼 그들을 아프리카 항아리에 그려진 형상으로 변형시킴으로써가 아니라, 그런 즉각성 속에서 자신을 잃고, 어쩌면 영혼까지 잃어야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99

너무나 방대하고 포착하기 어려운 실체인 서구적 상상력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그것은 이런저런 부류의 타자들과 실제로 접촉을 하면서 타자의 타자성이 표상하는 바를 원래와는 좀 다르게 구축하는 경향이 있다. _ 클리퍼드 기어츠, <저자로서의 인류학자>,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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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과 속성 개념을 인용하면서 베랑제는 본질이 사라지면 본질에 내재하는 속성도 함께 사라진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성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사라진다면 맛이나 색깔 같은 속성 역시 함께 사라지며 이는 감각에 의해 즉각적으로 포착될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성찬이 거행되는 도중에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는 변하지 않고 계속 존속해야 한다고 보았다.

믿음에서 유래하는 진실이 우선한다는 원칙을 토대로 란프랑코는 인간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없으며 신의 전지전능함이라는 불가사의한 원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만큼 성찬의 경우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것과 정반대의 현상, 즉 속성은 불변하는 반면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변화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안셀무스는 『모놀로기온』의 첫 부분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세 가지 논제를 제시한다. 이 논제들은 모두 창조된 현실세계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혹은 후세대가 명명했던 것처럼 경험적 관찰을 토대로 구축되며 형이상학적이고 또렷하게 신플라톤주의적인 성격의 두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다. 즉 사물들은 완벽하게 똑같을 수 없으며 아울러 동일한 완벽성을 지닌 모든 사물들은 무언가 동일한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성격의 완벽함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안셀무스의 담론은 전체적으로 삼위일체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모놀로기온』은 인간이 감지하거나 인식하지 못할 뿐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정보들을 제공한다. 반면에 『프로슬로기온』은 믿음에 근거한 신의 정의와 논리학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지적 탐구의 순간이었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필연성이라는 개념은 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감히 신의 권능을 제한하지 못한다. 신에게 적용되었을 때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결과적인 필연성’, 즉 무언가가 존재할 때 그것이 동시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유래하는 필연성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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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요제프 알로이스 슘페터 지음, 이종인 옮김 / 북길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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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체제든 기타 체제든 분명 붕괴한다. 혹은 경제적, 사회적 진화 과정이 그것을 탈피한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불사조가 그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혼란이 있을 수도 있고, 만약 사회주의를 가리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비非혼란적 대안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93


 요제프 알로이스 슘페터 (Joseph Alois Schumpeter, 1883~1950)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에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한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그의 주장은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렇지만, 슘페터 자신은 마르크스와 다르다고 본문에서 강변한다. 슘페터가 바라보는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자가 아닌 '역사의 진화를 믿는 예언자'이며, 역사는 진보(進步)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한다'는 교리(敎理)를 만든 종교인이다.


 마르크스가 볼 때 진화는 사회주의의 부모였다. 그는 사회적 구도의 내재적 논리를 너무나 확신했기 때문에 혁명이 진화 과정의 어떤 부분을 대체하리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혁명(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도입되었고, 완전히 다른 전제 조건들 아래에서 발행했다. 따라서 마르크스 혁명은 그 성격이나 기능에 있어서 부르주아 과격파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음모꾼의 혁명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시간의 충만함 속에서 벌어지는 혁명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95

 

 슘페터는 본문을 통해 자본주의 경제의 동태성과 역동성을 강조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붕괴가 그 이전까지 자본주의의 모순 - 잉여가치와 착취라는 -이 점차 쌓이면서 드러나는 역사의 법칙에 따른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반면, 슘페터는 필연적 법칙을 거부한다. 대신,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에 의한 창조적 파괴로 인한 동태적 변화를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동태적 변화의 우연한 결과물이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는 정태적이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 경제는 꾸준한 방식으로 내내 확대되어 나가지도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기업에 의해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변혁을 이루어나간다. 즉 그 어느 때든 새로운 상품, 새로운 생산 방법, 새로운 상업적 기회가 기존 산업 구조로 흘러드는 것이다. 기존 구조와 사업 수행 조건들은 언제나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다. 어떤 상황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뒤집힌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 발전은 곧 동요를 의미한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59


 마치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주제로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적 진화론과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진화론이 다른 내용을 담고 있듯, 이들의 자본주의의 붕괴는 그 원인이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모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슘페터는 오히려 자본주의가 너무도 성공적으로 작동해서 붕괴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파악해야 할 핵심 사항은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를 다룬다는 것은 곧 진화적 과정을 다루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 성질상 경제적 변화의 형태 혹은 방법이 결코 정태적이었던 적이 없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자본주의 엔진을 작동시키고 유지하는 근본적 충동은 새로운 소비자 물품, 새로운 생산이나 수송 방법, 새로운 시장, 기업이 창조하는 새로운 형태의 산업 조직 등에서 나온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125


 이 과정은 내부로부터 경제 구조를 혁명적으로 꾸준히 변화시키면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이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사항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고, 모든 자본주의적 회사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126

 

자본주의의 실패와 성공이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가져온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도래. 이러한 결과가 도출되는 중심에는 자본주의의 "독점(獨占, monopoly)"이 자리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체제가 최대한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return to scale)'가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독점시장이 완전경쟁시장보다 자본주의 이상에 부합하는 시장이라고 해석한다.


 내가 정립하고자 하는 이론은 이런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실제 업적 혹은 장래 업적은 아주 훌륭하여 그 경제적 실패의 무게 때문에 붕괴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체제의 성공 때문에 그 체제를 보호해주는 사회 제도가 훼손되고, "불가피하게" 그 체제가 망해버리는 조건들이 생겨나면서 결과적으로 사회주의를 그 체제의 후계자로 지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100


 대규모 단위의 시대에서 자본주의 생산 엔진의 실제적 효율성은 그 전 시대인 중소기업 시대의 효율성보다 훨씬 더 크다. 이것은 통계적 기록으로 증명되는 사실이다. 통제단위(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그와 함께 기업 전략이 대규모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었고, 상당 정도까지 그 통계 기록에 반영된 성과의 사전 조건들이었다. 그 회사들이 완전 경쟁에 노출되었더라면 새로운 기술적/조직적 가능성을 취하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그와 유사한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269


 창조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만들어진 독점기업의 거대한 힘은 시장을 통합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그 힘은 자신을 독점기업으로 만든 사회적 기반마저 파괴시키며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기득권마저 무너뜨리고, 창조적 기업가 정신마저 절멸시키면서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공산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만약 자본주의 진화(발전)가 중지되거나 완전 자동화된다면, 산업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기반은 현행 관리자에게 지불되는 임금 수준으로 격하될 것이다. 자본주의 기업 정신은 그 성취로 인해 발전을 자동화시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기업 정신은 그 자신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 자체의 성공이 가져오는 압력으로 인해 스스로 산산 조각나버린다. 완전 관료화된 거대 산업 재벌은 중소기업들을 몰아내고 그 소유주들을 "수탈"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기업가들을 추방하고 부르주아지 계급을 수탈한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193


 농업 부문을 제외하고 비즈니스는 소수의 관료화한 대기업에 의해 통제될 것이다. 발전은 느려질 것이고 점점 기계화되고 계획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자율은 제로를 향해 수렴할 것인데, 그것은 정부 정책의 압력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투자 기회의 소멸 때문에 항구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산업 재산권과 관리는 탈脫개성화할 것이다. 소유권은 주식이나 채권의 보유권으로 변질될 것이고, 경영자는 공무원 비슷한 심리 상태를 갖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적 동기와 기준들은 모두 시들해질 것이다. 시기가 성숙하여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는 이런 추론은 너무나 명백하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312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슘페터의 전망은 '그렇다'. 집단지성(集團知性 collective intelligence)이라는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은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부분에 있어서 데모스(demos)들은 모나드(monad)가 되면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버리고 만다. 이러한 문제점은 대의제(代議制)에 명분을 주게되면서, 이와 함께 관료제(官僚制, bureaucracy)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된다. 


 내가 볼 때 문제의 핵심은 개인적 관심사와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는 전국적/국제적 영역의 문제들에서는 현실감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대한 정치 문제들은 일반 시민의 머릿속에서 한가한 시간의 실없는 화제이거나 무책임한 잡담의 화제일 뿐이다. 그런 정치적 문제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감소된 현실 감각은 감소된 책임 의식을 의미할 뿐 아니라 효과적인 의지의 부재를 의미한다.... 감소된 책임 의식과 효과적 의지의 부재는 차례로 보통 시민의 국내외 정책에 대한 무지와 판단력 결핍을 설명해준다. 이처럼 보통 시민이 정치 분야에 발을 디디면 지적 수준의 가장 낮은 단계로 떨어져버린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370


 선거에 따라 바뀌는 집권세력을 보완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전문가 집단에 의한 체제 유지는 대의민주주의에 있어 필수적인 것인데, 이는 중앙집권적 통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경제적으로 기업 독점 상태는 국가 독점 상태로, 정치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중앙권력에 의한 지배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들의 최종 목적지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될 것이라는 것이 슘페터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펼친 미래 전망이다.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대 산업 국가들의 민주정부는 공공 행위의 모든 영역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공공 행위는 잘 훈련된 관료제의 서비스를 포함한다. 이 관료제는 좋은 전통과 명성을 갖고 있고, 투철한 사명감과 그에 못지 않은 단체정신 esprit de corps을 갖고 있어야 한다(p409)... 관료제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 국가가 어떤 정치적 방법을 사용하든 그것은 어디에서나 자라난다. 관료제의 확대는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가장 확실하게 예언할 수 있는 현상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411


 이처럼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의 도래를 예견하지만, 이러한 전망만으로 그를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닌 완벽한 승리로 인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본문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슘페터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나친 팽창을 경고한 수정자본주의자라고 해야할 것이다. 마르크스의 방법론보다 다소 온건적인 페이비언 주의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이는 다음 문장을 통해 우리는 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붕괴가 아닌 개혁에 의한 자본주의 존속을 바라는 슘페터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계급 투쟁이든 혁명이든 페이비언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정반대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페이비언이 마르크스보다 더 나은 마르크스주의자이다. 현실 정치 내에 있는 문제들만 집중하고, 사회적 여건들의 진화에 발맞추어 움직이고, 그렇게 하여 궁극적 목표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근본 교리에 더 일치하는 것이다. _ 요제프 슘페터,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p458

역사적 해석이라는 마르크스의 도식 속에서 발생하는 많은 다른 난점들은 생산의 영역과 사회생활의 다른 영역들 사이에 어느 정도 상호작용을 인정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을 둘러싼 근본적 진리의 빛은, 그 이론이 주장하는 단호하면서도 단순한 일방적 관계에서 나온다. - P34

진정한 비극은 실업 그 자체가 per se 아니다. 실업이 발생했는데도 추가 경제 발전의 조건들을 훼손하지 않는 상태에서 실업자들에게 적절한 지원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비극이다. - P110

지금까지 해온 이론적 문제의 해결안을 살펴보면 독자는 중앙청 제도가 충분히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납득할 것이다... 현대의 조건 아래에서, 사회주의 경제는 거대한 관료제의 존재나 그 경제의 탄생, 혹은 작동에 우호적인 사회적 조건들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P264

생산 문제의 확정적 해결은 주어진 데이터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이거나 최적의 것이다. 확정적 해결로 가는 길을 단축시켜주거나 부드럽게 해주거나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것은 뭐든지 인간의 에너지와 물질 자원을 절약해주고, 또 소정의 결과에 도달하는 비용을 줄여준다. 이렇게 하여 절약된 자원이 완전히 낭비되지 않는 한, 우리가 말하는 (사회주의식) 효율성은 필연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 P276

역사적으로 볼 때, 현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일어났고 그 사상과 인과적 관계를 맺고 있다. 민주적 실천에 대해서도 이와 똑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경쟁적 리더십을 획득하기 위한 민주주의는 정치적, 제도적 변화를 추구했고, 그 덕분에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의 출세를 도와준 사회적, 정치적 구조를 재편했으며, 또 그들의 관점에서 그런 구조를 합리화했다. 민주적 방법은 그런 재편을 돕는 정치적 도구였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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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0-26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종인 번역이네요...개인적으로 이종인 번역 별로인데...슘페트의 난삽한 문장을 번역한 걸 보니 좀 거시기 합니다. ‘중앙청 제도‘라니...ㅎㅎ 그가 전공자가 아니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경제전공자에게 검수라도 받을 것이지...하~

그나마 인용해 주신 번역은 그런대로 읽을만하게 번역했네요. 처음 삼성출판사에서 이상구 번역으로 최초 한국어판이 됐죠. 그거 읽다가 열받아서 원서를 봤는데....이게 진짜 문장들이 헬이더라구요~ 한 문장이 두 페이지를 채우지를 않나...여튼 문장이 매우 깁니다. 평균 4-5줄인데, 문장이 난삽하고 어려워서 이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의 고뇌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렇더라도 삼성출판사본은 읽을 수 없습니다. 한길사 본도 여전히 독해를 방해하는 문장들이 널려 있었는데, 북길드판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인용된 문장들만 보면 번역은 그나마 가장 나은 듯합니다~

어쨌건 호랑이님 때문에 북길드판도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책이 읽을만하면 이 책을 소장하고 나머지판본들은 모두 처분해야 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26 18:36   좋아요 0 | URL
저는 한길사 판과 북길드 판만 읽었는데, yamoo님께서는 원서를 비롯해서 이미 여러 판본으로 읽으셨군요. 덕분에 저 또한 슘페터의 원문의 난해함과 다른 출판사 번역본에 대한 비교를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