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유라시아 초원은 멀고 소박한 곳, 자원은 부족하고 문명 세계의 증심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청동기 후기에 초원은 대륵가장자리에서 생겨난 그리스, 근동, 이란, 인도 아대륙, 중국 문명을 잇는다리가 되었다. 전차 기술, 말과 기마, 청동 야금술 그리고 전략적 위치가 초원 사회에 그때까지 한 번도 갖지 못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 P646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특히 선사 시대 부족 사회에 살던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고학은 그들 삶의 어떤 부분에는 밝은 빛을 비추지만 대부분을 어둠 속에 남겨둔다. 역사언어학은 이어두운 구석들의 일부를 비출 수 있다. 그러나 선사고고학과 역사언어학의 결합은 고약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다른 증거가 섞일 때, 순진하든 악의적이는 수많은 허구적 환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위험스럽게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방법은 없다. 에릭 홉스봄이 한때 지적했듯 역사학자들은 심각한 편견과 민족주의의 원료를 제공할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홉스봄도 이것이 무서워 역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 P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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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탄생 - 전통과 주제와 서술 방식 케임브리지 세계사 1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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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시대구분은 '힘의 장(force field)'이다. 그 시대만의 내재적 의미(특수성)와 연대기(보편성)라는 양쪽의 기둥에서 동시에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여 끊임없는 긴장 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상태다. 시대구분이라는 개념의 핵심에는 이미 '보편적 시간(universal time)'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대구분 문제는 암묵적으로 세계사 차원의 문제가 된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세계사의 탄생> , p37

<케임브리지 세계사 1 : 세계사의 탄생 Cambridge World History Vol. I>는 케임브리지 세계사 시리즈 전체를 개괄하는 메타 역사(metahistory)에 관한 주제를 다룬다. 분화와 통합, 과학의 서양과 종교의 동양, 유럽중심주의와 탈(脫)유럽주의, 젠더 문제, 미시사와 거시사 등 세계사를 조명하는 여러 주제, 관점들을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개하면서 '세계사'라는 학문의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반적으로 제시한다.

세계사 연구자는 인류 역사 전체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포괄할 수 있는 역사 이해의 틀을 필요로 한다. 또한 세계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심도 있는 역사적 흐름의 유의미한 결과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역사를 두 가지 커다란 역사적 방향으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즉 분화의 방향과 통합의 방향이 그것이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세계사의 탄생> , p199

과거의 세계사가 '어떻게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가?'라는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세계사를 여러 문명권(文明圈)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발전의 차이에 주목한다면, 오늘날의 세계사 관점을 인류(人類)의 관점에서 공통요인을 설명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 큰 틀에서 세계사의 관점 전환이라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부분과 전체를 함께 조망하는 인접학문과의 통섭(統攝,Consilience)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해 역사학자들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근본적인 관점의 변화를 일컫는다. 즉 기존에는 역사학자들이, 랑케(Ranke)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제로 일어난 일"로서의 과거와 관련된 증거를 수집했다. 그러나 이제는 역사학자들이 과거를 설명하기 위해 증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연구하게 되었다. 즉 역사학자의 임무는 직접적으로 과거의 현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학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역사의 이미지를 연구하는 것이 되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세계사의 탄생> , p57

해류(海流)와 조류(潮流)의 원인과 범위가 다르듯,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여러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려는 세계사 연구의 최근 경향에서 '역사적 판관'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실의 복원자'로서 역사학자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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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1-06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계사의 관점 전환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네요. 각 문명권의 발전의 차이를 보는 것에서 인류를 통합하는 관점으로 가고 있다니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에 대한 범주 설정의 부분에서도 과거와 관련되어 수집된 증거가 활용되는 방법도 연구한다니 좀 더 폭넓어지는 것 같군요.

겨울호랑이 2022-01-06 16:23   좋아요 2 | URL
네. 저 또한 거리의화가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유럽을 기준에 놓고 우열을 가리는 단선적인 해석 대신, 여러 지역과 시대,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역사 해석을 시대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역사의 해석으로 한정짓는 이러한 흐름이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정착시키는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둠 : 재앙의 정치학 - 전 지구적 재앙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Philos 시리즈 8
니얼 퍼거슨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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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에서 더 논의하겠지만, 미래에 다가올지 모르는 수많은 재난의 가능성을 알아낸다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소한 회복재생력을 갖춘 구조, 그리고 가능하다면 ‘앤티프래절‘, 즉 위기에 오히려 더 강한 사회적/정치적 구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또 재난에 압도당한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듯 사람들이 자신의 등에 채찍질을 가하는 혼돈으로 빨려드는 사태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와 더불어 ‘불운한 인류와 취약한 세계를 보호하려면 전체주의적 통치와 세계 정부가 필수적‘이라 꼬드기는 유혹의 소리에 어떻게 저항할지를 역사에서 배우는 것뿐이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80/1246

니얼 퍼거슨 (Niall Ferguson, 1964 ~ )이 <둠 : 재앙의 정치학 Doom: The Politics of Catastrophe>에서 내린 결론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기에, 석학의 냉철한 현실 비판이나 코로나 19 이후 달라질 세상에 대한 전망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전공이 역사, 그 중에서도 금융사임을 생각한다면 절제된 저자의 주장에 오히려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니얼 퍼거슨이 <현금의 지배 The Cash Nexus>에서 보여준만큼의 통찰력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지만, 자신의 이전 저서들에 다룬 내용을 세 틀 - 회색 코뿔소, 검은 백조, 드래건 킹 - 로 다시 조명하면서 ‘전염병‘이라는 주제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책의 의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내가 이야기했듯, 예측하기 쉬운 종류의 재난에 해당하는 ‘회색 코뿔소‘였던 것이 실제로 재난이 현실화되면서 사람들을 갑자기 경악으로 몰아넣는 ‘검은 백조‘로 변하는 것은 쉽게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검은 백조‘가 ‘드래건 킹‘, 즉 상상을 뛰어넘는 수의 사망자를 낳는 역사적 재난으로까지 변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30/1246

사실 제1차 세계대전은 충분이 예측 가능한 ‘회색 코뿔소‘였다. 유럽 전체가 전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생각해봤을 때 말이다. 그러나 막상 발발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했다는 점을 보면 그 전쟁은 깜짝 놀랄 ‘검은 백조‘였고, 그것이 낳은 광범위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보자면 진정한 ‘드래건 킹‘이기도 했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418/1246

역사 속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예측된 사건들이 정치가들에 의해 무시되면서 위기가 생겨나고, 복잡계의 연결망으로 인해 큰 재난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이번 코로나 19나 가까운 시기에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1918)만이 아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던져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교훈을 통해 우리가 전염병 변이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재난의 진화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는 온전히 우리의 몫임을 확인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선진국(우리나라를 비롯한)에서 자국의 안전만을 챙기기 위해 부스터샷을 하는 동안 1차 접종도 채 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오미크론(omicron)과 같은 변이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또한, 우리가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와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며,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서로 분리할 수 없을만큼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 이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역사의 교훈이 아닐런지.

세계 인구의 큰 부분이 백신을 맞지 못한 상태가 유지되는 한 새로운 유행과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가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정기적으로 부스터 백신 접종을 받아야 할 수 있고, 그 간격 또한 1년 이하가 될 수 있다. _ 니얼 퍼거슨, <둠 : 재앙의 정치학> , p29/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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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발전을 예전처럼 확신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을 집단적 의지와 실전으로 극복할수 있다고 믿지만 한 번의 사회혁명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인간 이성의 힘을 신뢰하지만 생물학적 본능의 한계로 인해 호모사피엔스가 스스로 절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반항하는 청년이 "초로의 남자‘가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자들 덕분에 인간의 물리적 실제와 생물학적 본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그러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세계사의 위대한 성취인 민주주의와 디지털혁명의 혜택을 한껏 누리며 글을 썼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또 헛된 일이지만 ‘역사의 시간‘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고 믿으면서 불합리한 제도와 관념에 도전했다. 때로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그렇게 부딪치고 싸우면서 짧고 부질없는 인생에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했다.

‘진화의 시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문명이 생긴 뒤로 호모사피엔스가 생물학적 진화를 이뤘다는 증거는 없다. 핵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진 현대 국가의 권력자와 돌도끼를 들고 짐승을 뒤쫓던 석기시대 사냥꾼이 생물학적으로는 똑같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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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
이언 모리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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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에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사실은 내가 '사회발전 social development'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회발전이란 기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의 능력, 자신의 목표에 맞게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지적 환경을 형성해내는 사회의 능력을 말한다.(p38)...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진짜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서양이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발전했는지와 왜 서양이 지난 200년간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서 역사상 최초로 소수의 나라가 전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지, 이 둘을 모두 알 필요가 있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39/719


 이언 모리스(Ian Morris)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Why The West Rules - For Now>에서 '사회발전지수(Social Development Index)'를 통해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발전사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최근 서양의 우위를 설명한다. 생물학, 사회학 그리고 지리학의 관점에서 산정된 사회발전지수를 통해 저자가 도출한 결론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린다. 그동안 우리는 오랜 기간 동양이 서양에 비해 앞서 왔으며, 다만 계몽시대(enlightenment period)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통해 극적인 발전을 이룬 서양이 최근 200년동안 급격한 성장을 통해 동양을 앞섰다는 것으로 인식해왔지만, 저자의 해석은 이와 다르다. 선사시대 이후 오랜 기간 서양의 우위는 지속되어왔으며, BCE 1000년 이후 계몽시대 이전까지의 동양의 우위가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회발전 수준이 상승하면서 핵심부는 때로는 이주를 통해 때로는 핵심부 이웃 지역 사람들의 모방이나 독자적 혁신을 통해 팽창한다. 구 핵심부에서 잘 작동하는 방식들은 새로운 사회와 환경으로 퍼져나갔다... 사회발전 과정에서는 흔히 더 선진적인 핵심부로부터 들여오거나 핵심부를 모방한 방법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큰 진보가 일어난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47/719


 이렇게만 본다면, 저자가 '서양 문명'안의 본질적으로 우수한 요인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본문에서 '후진성의 이점 advantages of backwardness'을 강조하는데, 이는 각 핵심부 안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정(靜)적인 것이 아니라 동(動)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명당(名堂)은 없다는 이러한 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저자 이언 모리스가 결정론적 시각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속적인 사회발전지수 산출을 통해 동서양의 발전사를 비교한 과정은 끊임없이 동서양의 우위가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대로 오랜 기간 서양의 우위는 끊임없는 생물학적, 사회적, 지리학적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져왔는가?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는 그가 산출한 '사회발전지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다른 논문에는 산출 근거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수치화한 지수의 신뢰성 문제로 그가 내린 결론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언 모리스도 이 점에 대해 인정하고, 오차범위를 10~20% 정도 부여하면서 추세(trend)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누락한 변수 등에 다중공선성(多重共線性 Multicollinearity) 문제가 있다면 사회발전지수에 근거해 내린 결론 자체가 부인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앞서 추정과 추측을 거듭 언급했는데 추측과 추정을 하지 않고는 사회발전지수를 만들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맞다'는 단어를 모든 세부 사항 하나하나가 틀림이 없다는 엄밀한 의미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모든 전문가가 동일한 추정을 하리라는 뜻의 약한 의미로 받아들이든 간에 결국 어느 지수도 결코 '맞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계산한 사회발전지수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계산 결과는 물론 틀렸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얼마나 틀렸는가?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641/719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론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더 크다. 이언 모리스는 동양과 서양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써진 글을 보면 언뜻 와닿지 않지만, 해당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면 그가 설정한 지역 구분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인류 4대 문명이라 했을 때, 그 중 2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을 서양이 가져가고, 1곳(인더스 문명)은 중립 지역으로, 황하 문명은 동양에 할당했을 때 서양이 앞선 결과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불공평한 출발에서 시작해 '후진성 이점'으로 서양 문명은 중심부 이동이 잦다. 축구로 따진다면, '운동장을 폭넓게 활용한다'가 될까. 이에 반해, 이언 모리스가 상정한 동양의 중심부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있다 해도 '황허'에서 '양쯔강'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기에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구나, 그가 서양에 포함한 지역이 '오리엔탈(oriental)'지역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야만인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시덴탈(Occidental)' 지역과 이들을 하나로 과감하게 묶는 것은 무리한 지역 설정이 아닐까. 이런 무리한 가정의 결과 이언 모리스의 '서양-동양'의 분석은 '비(非)중국 문명 -중국 문명'의 비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양- 동양'의 비교를 위해서는 분명 동양의 범위는 더 넓어져야 하고, 서양의 범위는 줄어들어야 한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메소포타미아에서 찾는다면, 동양 문명의 주요 원천인 불교(佛敎)의 발상지 인도를 당연하게 동양 문명권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 아닐까. 그리스- 페르시아의 적대적 관계로부터 '헬레니즘'이라는 문명의 통합을 발견했다라면, 파미르 고원을 넘어선 인도로부터의 불교 전래에 근거해 동양을 더 폭넓게 정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모리스의 동서양의 지리적 정의는 제국주의 시대 유럽제국의 본국과 식민지 전체를 서양의 범주에 포함시킨 후 과거로 소급해 분석했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준다.


이런 점에서 '오랜 기간 서양이 앞서왔다'는 이언 모리스의 분석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상정한 가정에 근거해 내린 적절한 결론은 '중국 문명이 항상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수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림] 이언 모리스의 동양과 서양(by 겨울호랑이)


 일반적으로 상식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따라 이 책에서 나는 '서양'이라는 표현을 유라시아 중심부의 이 최서단(그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지역에서 유래한 모든 사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썼다. 서양은 오래전에 서남아시아에 있는 최초의 핵심부에서 팽창하여 지중해 분지와 유럽을 포괄하게 되었고 지난 몇 세기 동안에는 미국과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남태평양 제도 전체를 뜻한다)도 포함하게 되었다.(p45)... 같은 논리를 따라 나는 '동양'을 유라시아 핵심부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그리고 두 번째로 오래된) 핵심부에서 유래한 모든 사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쓴다. 동양도 오래전인 기원전 7500년경 작물 재배가 시작된 중국 황허 강과 양쯔 강 사이에 위치한 최초의 핵심부에서 확장되어 오늘날 북쪽의 일본부터 남쪽의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까지 뻗어있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46/719


 그렇지만,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책 자체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시대 동양과 서양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가를 비교사적으로 분석했다는 점과 함께 문명을 정(靜)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動)적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사건 중심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리뷰를 마치기 전에 저자가 구분한 전통적인 역사 해석의 관점을 소개한다. '결정요인'을 찾으려는 장기고착이론과 이를 부인하는 단기우연 모델 속에서 자연과학, 신학과 마찬가지로 '필연'과 '우연'의 문제를 발견한다.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은 법칙과 자유의지의 틀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은 듯하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하는 최적의 방식은 두 가지 개략적인 사고 진영으로 나누는 것일 텐데, 나는 이 두 진영을 각각 '장기고착 long-term lock-in' 이론파와  '단기우연 short- term accident' 이론파라고 부르겠다.... 장기고착이론 뒤에 놓인 공통적 관념은 태곳적부터 어떤 결정적 요인이 동양과 서양 사이에 대단히 크고 변경 불가능한 차이를 만들어내 산업혁명이 서양에서 일어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28/719


 일부 서양 역사가는 왜 서양이 과거에는 지배했지만 지금은 지배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켰다. 나는 이 이론을 단기우연 모델이라고 부른다. 단기 논의들은 장기 논의들보다 더 복잡한 경향이 있고 이 진영 내부에는 격렬한 이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단기론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장기론자들의 주장이 상당히 많이 틀렸다는 것이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3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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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1-03 16: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이세요. ㅎㅎ
양질 전화의 법칙…^^

겨울호랑이 2021-11-03 17:11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각자의 방향성은 차이가 있었겠지만, 각기 문명이 꽃피우기 전까지 유무형의 변화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