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유럽 세계경제(European world-economy)라 할 만한 것이 생겨났다. 그것은  제국은 아니었지만 대제국만큼이나 넓었으며 제국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세계에서는 실로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사회체제였으며, 바로 이 점이 근대 세계체제(modern world system)의 뚜렷한  특징이었다. 그것은 제국, 도시국가, 민족국가 등과 달리 경제적 실체이지 정치적 실체가 아니다. 사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그 범위(경계선을 말하기는 어렵다)안에 제국들, 도시국가들 그리고 이제 막 등장하는 "민족국가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 체제이다.  - P33

어째서 제국이 아니라 민족국가(nation-state)인가?  여기서우리는 용어를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아마도 13-14세기의 프랑스를 하나의 민족국가로,  15-16세기의 프랑스를 하나의 제국으로,  17세기의 프랑스를 다시 하나의 민족국가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페르낭 브로델의 생각인것 같다. 어째서 이런 식의 교체가 일어났는가? 브로델의 생각에는 "15-16세기의 경제적 팽창과 더불어 거대한 국가, 심지어 아주 거대한 국가, 이런 ‘비대한 국가들에게 유리한  콩종크튀르가 줄곧 유지되었다..……사실 역사는거대한 정치구조에 대해서 한때 유리하게 진행하는가 하면 다시 불리하게 뒤바뀌며 진행한다. " - P59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근거한 유럽 세계경제가 등장한 것은 16세기의 일이었다. 이 초창기에 나타난 가장 기이한 측면은 자본가들이 전 세계에 그들의 깃발을 휘날리지는 않있다는 사실이다.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자유기업이데올로기가 아니었고, 개인주의나 과학 또는 자연주의나 민족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도 아니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이 세계관으로서 성숙한 것은 모두 18-19세기에 가서의 일이었다. 이 시기를 풍미한 듯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들자면 그것은 국가통재주의(statism) 또는 국가이성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끝없이 퍼져나간 현상인 자본주의는 어째서 강한 국가들의 발달에 의해서 유지되어야만 했는가?  이것은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패러독스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독특한특징은, 경제적 결정은 주로 세계경제 무대를 지향한 반면, 정치적 결정은 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더 작은 구조들 -  세계경제 내의 국가들 (민족국가, 도시국가, 제국)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 P109

우리는 이제까지 근대 세계체제의 두 가지 중대한 구성요소를 개관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범세계적인 노동분업 위에 구축되었는데, 이노동분업에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다양한 영역들(핵심부, 반주변부, 주변부)은 특별한 경제적 역할을 떠맡았고, 상이한 계급구조를 발전시켰으며, 그 결과 상이한 노동통제 방식을 발달시켰고, 그 체제의 작동으로부터 불균등하게이득을 얻었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적 활동은 주로 국가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으며, 국가들은 세계경제 안에서 떠맡은 다양한 역할의 결과로 제각기 상이한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데, 그중 핵심부 국가들이 가장 중앙집권화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제 16세기 전체를 하나의 과정,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각지역들이 주변부, 반주변부, 또는 핵심부가 된 과정이라는 견지에서 살펴볼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었던분석에 살과 피를 불어넣고자 한다. 우리는 또한 그로써 전체 과정의 통일성을 입증하기를 바란다. 그러한 발전들은 우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있을 수있는 편차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 구조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 P249

제조품의 판매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세계경제에서 핵심부의 성공비결은 그들이 그들의 제조품들을 주변부의 원자재와 교환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상황파악은 두 가지 요인, 즉 원자재의 수입가격을 낮출 수 있는 정치경제적 능력(이것은 북부 이탈리아보다.
는 네덜란드의 경우에 보다 가능했다고 우리는 주장했다) 그리고 핵심 국가들의 시장에서 다른 핵심 국가들의 제조품들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에서 빠뜨린다.
- P340

이처럼 아메리카에서는 대개 에스파냐가 주된 역할을 맡았고 포르투갈이한 구석을 맡았던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포르투갈이 주된 역할을 맡았고 에스파냐가 한 구석을 맡게 되었다. 양 지역에서 이베리아 국가들의 정책이 얼마나 비슷했는가는 놀라울 정도이다. 16세기에 양국은 아메리카 대륙에는 식민지들을 설립했던 반면에 아시아에서는 상관(商館)들을 설립한 것이다.
- P514

근대세계의 징표는 그 안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의 상상력과 억압받는 자들의 단호한 반대이다.  착취 그리고 착취를 불가피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대한 거부는 근대의 끊임없는 모순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둘은  20세기에도 그 절정에 도달하기는  까마득한 하나의 변증법 속에 서로 결합되어 있다.
- 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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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유럽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입하고 있을 때 해금 정책을 결정한 중국은 인도양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해양 세계가 완전히 활동을 멈춘 것은 결코 아니며 류큐를 비롯한 거점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발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날의 활력 넘치는 해상 활동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얼마 후 유럽인이 인도양 세계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근대사의 시작 시점에서 세계 최강의 해상력을 가진 세계 최대의 제국이 스스로 무대를 떠나고 그 빈자리에 유럽 세력이 들어왔다. 이들은 국가와 상인 자본이 결합한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세계의 바다로 공격적으로 팽창해나갔다. 중국이 바다 너머 세계를 자신들의 세계 내부로 끌어들이려 한 반면 유럽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외연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근대 세계의 해양 패권은 유럽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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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는 아포이키스모스(apoikismos)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아포이키아(apoikia)에서 온 것으로, ‘집에서 떨어진 집(home away from home)’을 뜻한다.(Antonaccio, 220~223)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 새로 지은 ‘작은집’은 원래의 ‘큰집’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독립 공동체로,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영토 지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이 시기는 ‘모국’ 자체도 형성 중인 때였기 때문에 먼 이역 땅으로 가서 ‘영토’를 확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확산해갈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개인적일 수도 있고 집단적일 수도 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상인, 장인, 용병 등 부류가 실로 다양했다. 어떻든 국가가 주도하여 의도적ㆍ계획적으로 주민들을 내보내 영토를 차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정리하면,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 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Antonaccio, 220~223) 그보다는 올리브기름, 포도주, 직물, 도자기, 철, 은 같은 상품이 이동하고, 건축, 문자, 시가 등 문화 자산들이 전달되는 해상 네트워크들의 중첩으로 그리는 게 타당하다. 지중해 해안 지역은 일종의 세포막(membrane)이다. 선박이 해안까지 오면 강들이 모세혈관 역할을 하여 상품과 문화 자산들을 내륙으로 흡수해간다. 이렇게 해서 물질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음식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까지 전파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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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바다 인류 - 인류의 위대한 여정, 글로벌 해양사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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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오파는 태평양 세계의 주민들은 작은 세상에 갇혀 사는 게 아니라 서로 왕래하고 교역하는 대양 공동체(oceanic community)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세계는 바다 때문에 고립된 게 아니라 바다를 통해 연결되었다... 이 세계는 '광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들(islands in a far sea)'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a sea of islands)'다. 실제 과거에 태평양 주민들은 광대한 바다를 이용하며 살았다. _ 주경철, <바다 인류> , p24/717

주경철(朱京哲, 1960 ~ )의 <바다 인류>는 바다에 대한 문명사다. 수 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부터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걸친 바다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인류는 어떻게 바다를 건넜고, 무엇으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어디까지 연결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서 전개된다. <바다 인류>는 독자들에게 최신 해양고고학의 성과와 함께 최신 이론도 함께 소개하며,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 리뷰에서 보다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바다 인류>는 지식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교양서적이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전환시킨다는 점이 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첫머리에 언급한 '바다에 의해 고립된 섬'이 아닌 '섬들로 연결된 바다'를 말하는 하우오파의 말은 바다 문명사를 읽기 전 관점의 전환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마치 과거 원태연의 시
<손 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과 함께 이분법적인 사고로 바라봤던 뱃사람과 이들이 이룬 문명에 대한 인식을 바꿨을 때에야 비로소 바다의 문명사가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단적으로 말해서 로마 해군 병사와 해적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당대 기록은 마치 해적이 별도로 존재하는 엄청난 집단인 듯 묘사하지만, 실제로 이들 중 다수는 농사짓다가 흉년이 들면 바다로 나가 도적질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역 상인들도 기회가 생기면 해적질에 동참했다. 결국 로마제국이 따로 있고 해적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해안 지역을 압박하고 통제해서 제국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 순치하여 해적의 발호를 억제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_ 주경철, <바다 인류> , p10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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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5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섬˝ ˝지도 위 점 점 점˝ 등, 바다와 관련된 시각적 이미지 때문인지 ˝고립˝을 당연하게 먼저 생각하다가, 올려주신 리뷰를 보니 ˝바다로 인해 연결된 세계˝ 태평양의 섬세계, 관점 전환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오네요^^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시는 책인데, 겨울호랑이님께 한 번 더 추천 받으니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병이 도졌어요^^

겨울호랑이 2022-02-05 13:0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바다 인류>는 분량이 적지 않지만, 내용이 흥미로워 손에 잡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북사랑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

바람돌이 2022-02-05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야 하는데....ㅠㅠ 먼저 시작하신 겨울호랑이님 글보면서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2-05 13:52   좋아요 3 | URL
저도 정리할 책이 밀려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ㅜㅜ 빠른 시간 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

하이드 2022-02-05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는 책에 대항해시대 나와서 엊그제 중고로 대항해 시대 구매했어요. 대항해 시대 읽고 바다 인류 따라가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5 16:0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대항해시대》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바다 인류》는 그보다 대중적인 《문명과 바다》의 확장판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이드님 즐거운 독서되세요!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2-05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항해시대의 확장판에 앞으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 같아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원태연 시 인용 빵 터졌어요 ㅎㅎ 넘 찰떡같이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2-02-05 20:42   좋아요 1 | URL
미니님께서도 <바다 인류>를 읽고 계시군요! 반갑습니다. 바다 문명사는 일반적인 문명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고의 접근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예전에 인상깊었던 원태연시가 떠올랐습니다 ㅋ 미니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토요일 저녁 되세요!
 

흔히 수렵 및 채집으로부터 출발하여 농업을 거쳐 문명으로 나아가는 경로가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내륙 지역의 고고학에 근거한 추론이었다. 새로운 연구는 해안 환경 또한 대규모 정주 공동체를 뒷받침하고 복잡한 문명 활동을 촉진시켰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 세계는 ‘광대한 바다에 둘러싸인 섬들(islands in a far sea)’이 아니라 ‘섬들로 구성된 바다(a sea of islands)’다. 실제 과거에 태평양 주민들은 광대한 바다를 이용하며 살았다.

광대한 대양 세계를 작게 분할한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었다. 이들은 바다에 가상의 선을 그어 식민지 경계로 삼은 후 그야말로 좁은 세상에 사람들을 가두었다. 이제 여권이 없으면 과거처럼 자유롭게 항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현재 태평양 오세아니아 국가들에 부여된 운명처럼 보인다. 현대 문명은 장구한 기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펼쳐지던 해상 공간을 완전히 텅 빈 무의미한 공간으로 변화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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