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도널드 서순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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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 그람시 -


 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 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오래된 강둑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 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1/177


 도널드 서순 (Donald Sassoon, 1946 ~ )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위기에 빠진 21세기 세계의 해부 Morbid Symptoms: Anatomy of a World in Crisis>은 21세기 들어 쇠퇴하는 유럽의 보편적 가치 - 사회주의, 민주주의 - 대신 미국, 영국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극우포퓰리즘의 대두를 지적한 책이다. 인용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의 글로부터 우리는 전체적인 책의 논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소멸한 '낡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은 1945년 이후 30년간 서구를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 Soziale Marktwirtschaft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합쳐놓은 체제를 가리키는 독일어 표현이다. 탄탄한 경제 성장과 나란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확대와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가 이루어진 복지자본주의 caring capitalism를 말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44/177


 추운 겨울에 세균과 해충의 번식이 억제되는 것처럼 냉전(冷戰)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일방의 독주 속에 전통적인 가치들은  그 의미를 상실했고, 새로운 가치들이 냉전 이후 사회의 보편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와 함께 사회의 중심이슈가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되었다.


 가치는 변화를 겪는다. 유럽적 가치는 일정한 가치를 장려하고 다른 가치들은 '비유럽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성물이다. '유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일된 일련의 원리와 가치라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령으로서 지식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통일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1/177


 과거 카르타고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이후 로마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만들었듯 공산주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돛을 달고 급속도로 팽창해나갔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비용절감과 이윤극대화를  위한 무한경쟁 시대에 맞춰 유효수요창출보다 효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개입이 강조(Laissez-faire)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뀌게 되었고, 비효율적인(?) 복지비용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여전히 소득과 부와 교육 수준에서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체제의 삶보다 선진 자본주의의 삶을 더 낫게 만들 만큼 충분히 응집력이 있는 민족공동체를 창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처럼 거의 일반화된 통합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20년간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약화시킴으로써 전후戰後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의 위기가 정치의 위기로 바뀌고 있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8/177


 이처럼 서순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적 요소'로 변화하고, 이같은 기준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 또한 변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우선주의 사상이 사회보편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정치부문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세금을 억누르면서 복지 지출을 높게 유지하는게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과거 우파의 특권이었던 영역을 점유해야 했다. '현대화', 즉 신자유주의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유화의 시대, 경제를 기업가 계급에게 맡겨두기보다는 직접 운영하려 한 '온정적 가부장' 국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시장이 거침없이 활개치게 놔두고 거기서 생겨나는 돈으로 저소득층을 돕는 게 필요했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5/177


 국가주도의 부의 재분배가 아닌 시장 주도의 자율적인 부의 순환이 강조되면서 조세정책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시장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념과 상관없이 모든 정당의 위치가 우경화(右傾化)되었다. 중도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중도확장을 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당들은 자신들만의 고유색깔을 잃어갔다.


 정치인들은 투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챙기면서 어쨌든 마음 내기큰 대로 해석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표를 던지는 순간, 자기가 가진 권한과 목표, 바람을 자신이 믿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투표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행위다.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에게 집중된다. 문제는 이 소수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분명한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당원보다 유권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글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주된 통로는 여론조사다. 정치인들이 접촉하는 유권자들은 보통 불만이나 망상,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는 실패로 치닫는 중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47/177 


  대신해서 뚜렷해진 것은 보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극우(極右)움직임이다. 저자는 유럽의 경우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적대적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우경화 현상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짙어가는 병색임을 지적한다.


 민족과 민족주의 둘 다 유럽 프로젝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더욱 응집력 있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면 언제나 파편화와 혼란, 충돌을 피해야 하고, 응집과 연대, 보완과 협력을 달성하고 회원국들에서 현존하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 유럽을 민족국가들의 민족국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8/177


 서순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해 복지의 쇠퇴와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라는 병적 징후에 더해 이를 치료할 정치수단마저 상실한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보다 개방적인 가치관과 폐쇄적인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보편가치가 퇴색하는 현상 속에서 깊어가는 우리시대의 병색. 이러한 위기감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55/177


 저자인 서순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병적 징후는 완연하지만 차도는 없는 상황에서 깊은 답답함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자유, 평등, 우애(Liberte, Egalite, Fraternite).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표어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호 충돌할 수 있는 가치가 '우애'를 통해 조화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우리 시대의 질병은 우리의 판도라 상자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우애에서 놓지 않을때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_ p60/177



사실상 모든 보주주의자와 심지어 일부 좌파도 표명하면서 승리를 거둔 사고는, 유럽에서 경제진보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과도한 사회복지이며,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기회를 확대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유럽 주요 정당들의 경제 담론에서 굳건하게 중심을 차지했다. 이 시각은 진정한 자유는 시장에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전 지구적 서삭 되었다.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워싱턴과 런던에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이르기까지 세계 금융 시스템의 패권적 행위자들이 장려했기 때문이다. _ p134/177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_ p155/177

우파는 승승장구했지만 ‘극‘좌파는 그만큼 선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날 ‘극좌파‘라는 표현 자체가 1945년 이후 30년간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일부였던 입장까지 아우를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극좌파는 마치 새로운 세력처럼 행동하지만 이 신좌파가 구사하는 언어는 대부분 낡았다. 압도적 다수, 즉 야비한 1퍼센트에 맞서 99퍼센트를 대변한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펴는데, 마치 99퍼센트 자체가 계급과 젠더, 정치, 종교, 교육, 지역, 연령에 따라 나뉘지 않은 듯 행세한다. _ p9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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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0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냉전의 핵심이 체제경쟁이었으니 특히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 체제와의 대결에서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가지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던 면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박정희가 의료보험체계를 유럽식으로 가져온것도 순전히 북한과의 체제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었으니까요. 대결하던 한 체제가 무너지고 난 이후 자본주의의 극단인 신자유주의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네요. 어쩌면 그람시의 저 말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직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언제가 될지 고민이 많아지기도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08-10 22:18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체제간 대립이 격심하던 시기에 약자들에 대한 복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복지제도가 반드시 예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과연 갈등과 대립이 모든 이에게 나쁜 것이며, 평화가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던지게 되네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냉전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바람돌리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0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었습니다.
좋다고 하시니 장바구니로!

겨울호랑이 2022-08-10 22:51   좋아요 3 | URL
우리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통찰력있게 짚어 준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보편 문명이라는 발상은 다른 문명에서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서구가 보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비서구는 서구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서구가 미디어의 세계적 확산을 지구의 부드러운 통합이라고 선전할 때 비서구인은 거기서 사악한 서구 제국주의를 본다. 설령 비서구인이 세계를 하나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위기감이 스며 있다.

사회적 다원주의는 정치 집단을 낳았고 귀족, 성직자, 상인 등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 같은 기구를 낳았다. 이 기구들이 제시한 대의 형태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 민주주의 제도로 발전했다.

비서구 사회가 서구 문화의 실질적 요소를 흡수하며 근대화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구화의 속도는 하락하고 고유문화가 소생한다.

결국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서구의 가치·제도·관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왔다. 서구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구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 요소에 비하면, 근대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요소는 극히 작은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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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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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생각할 때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대초원의 서부 고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태껏 남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화당 후보를 찍을 수 있지?˝라고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은 오늘날 미국인의 정치적 삶이 어떤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_ 토마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p5/294

최근 여권의 지지자들에 ‘저소득 저학력‘ 층이 많다는 유력 정치인의 발언으로 조금 시끄럽다. 다른 한 편에서는 ‘빈자 혐오‘라고 비난하고 프레임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의 보수주의 정당 지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두 가지 가정 때문이다. 1) 모든 게임의 참가자들에게 정보는 완전하게 주어지고 2)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관련기사] ‘월소득 200만원 미만‘ 10명 중 6명, 尹 뽑았다
https://m.mk.co.kr/news/politics/view/2022/03/269908/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 1965 ~ )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는 이러한 설명하기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미국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정보는 불완전하게 주어지며, 특히 미국 중부의 기독교 사상에 철저한 이들은 정치적인 ‘정의‘를 위해 자신들의 경제적인 ‘정의‘를 기꺼이 감내해 내는 모습을 보인다. 일련의 ‘반지성주의‘적인 이들의 모습 속에서 진보적 가치들은 토론의 대상이 아닌 선악(善惡)의 구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보수주의 정치가들은 이들의 신념을 교묘하게 선동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보수 반동 이론가들은 부유하고, 권력이 있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자유주의 계열의 미디어와 무신론 과학자, 밉상 맞은 동부의 엘리트들이 꼭두각시를 앞장 세워 무수한 음모들을 꾸며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보수 반동이라는 술책만큼 지금까지 미국 중산층의 이익을 완전히 거덜낸 정치적 음모는 없었다. 보수 반동 세력이 비난하는 가장 교활한 배후조정자들도 그런 정도의 음모는 생각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들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기존 체제‘에 저항한다. 그들이 지금 여기서 기존의 권력구조를 비난하는 것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자는 운동이다. 그들은 노동조합과 민주당의 작업장 안전 법안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다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또 미국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공고육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_ 토마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p11/294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의 배경은 미국이다. 그렇지만, 분단체제가 만들어 내는 특수한 보수주의 의제들과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종교적인 우리 민족성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현실 모두를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많은 부분을 짚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리뷰는 시간이 될 때 올리는 것으로 하고, 간략한 책소개로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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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08-04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혁을 따라가려면 끊임없는 논리구조의 이해가 필요할거에요. 정치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만의 득을 위함임을 가릴, 쉬운 어조의 감안이설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해대고. 그 너머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지성이 뒷받침 되야 하고, 지성은 그냥 꽁으로 쌓이는 게 아니지요.
이유들을 생각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8-04 08:29   좋아요 1 | URL
갱지님 말씀처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역설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갖지 위해서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한데 그 배경이 이미 하나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다른 한 편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모든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태를 이해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자연이나 자신의 삶에서 터득할 수 있는 이치를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는 것은 말씀하신 역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요전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증오가 빵보다 중요한 곳」이라는 논설을 게재했다. 그곳은 술수에 능한 지배계급이 수십 년 동안 가난한 민중을 착취했지만 동시에 민중들의 분노를 세계시민주의자들에게 향하게 하는 공허한 피해의식 문화를 그들 마음속에 불러일으켰다. 이 비극의 땅에서는 불가사의하게도 확실하게 눈앞에 드러난 물질적 불만보다 어떻게 해도 달랠 길 없는 문화적 불만이 더 기세등등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경제적 이기심은 잘못된 국가 정체성과 정의라는 매력적인 신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 보수 우파들은 농촌과 소도시들의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가 악화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경제와 사정이 좀 다르다. 정치는 미국을 망치는 불경스러운 예술과 무소불위 법정변호사의 정신 나간 소송, 그리고 말 잘하는 건방진 팝스타들과 관련된 것이다. 정치는 소도시 사람들이 언제 월마트와 콘아그라에 관심을 보이고, 또 언제 진화론에 맞서 성전에 참여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 반동은 상업문화가 더 확대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모방한다. 보수주의는 추종자들에게 정체성, 저항, 희생양의 고결성, 심지어 개별성에 이르기까지 주류와 똑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짜 정신들로 구성된 하나의 획일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수 반동과 주류의 상업문화가 가장 비슷한 점은 둘 다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언제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공화당보다 약간 더 나으면 된다고 믿는다. 게다가 성공을 지극히 숭배하는 나라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단 말인가? 거기 어디서 돈이 나온단 말인가?

이것은 1970년대 초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선언한 이래로 불규칙하게 민주당의 사고를 지배했던 극도로 소심하고 어리석은 전략이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 이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좌파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보수 반동은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작동한다. 두 적수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공생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롱하면 조롱을 받은 다른 하나는 더 강력해진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점점 더 거세게 공격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그렇게 공격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아직 검증된 바 없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하는 역할이 바로 이런 공생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문화가 타락할수록 문화를 타락시킨 사람들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가 점점 더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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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라는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이 ‘야만’의 개념과 반대되는 뜻으로 발전시켰다. 문명사회는 정착 생활을 하며 도시와 문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원시사회와 다르다.

문명은 유한하긴 하지만 아주 오래간다.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그것은 극단적인 ‘장기 지속’의 현실이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이며 사실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문명이다

‘서구’라는 말은 이제 예전의 서구 그리스도교 국가권을 일컫는 말로 보편화되었다. 이렇게 볼 때 서구는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 지역의 이름이 아니라 나침반의 방위로만 확인되는 유일한 문명이다.* 서구는 자신의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울타리를 넘어섰다. 역사적으로 서구 문명은 유럽 문명이다. 근대 이후의 서구 문명은 유러아메리카 문명 혹은 북대서양 문명이다.

가장 중요한 측면은 유럽 제국주의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이식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전역에 강한 부족의식이 여전히 지배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점차 아프리카인으로서의 동질감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종교는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이다. 도슨이 말했듯이 거대 종교는 거대 문명이 의지하는 토대다.19 베버가 말한 세계 5대 종교 중에서 넷은(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유교) 거대 문명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문명들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한 시기에 존재하던 문명의 수도 몇 안 되었을뿐더러, 벤자민 슈워츠Benjamin Schwartz와 아이젠슈타트가 강조했듯이 ‘축 시대aial Age, 軸時代’ 문명과 ‘전축 시대pe-Axial Age, 前軸時代’ 문명 사이에는 초월적 질서와 세속적 질서의 구분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

과거 문명의 보편국가는 제국이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정치형태는 민주주의이므로 지금 태동하는 서구 문명의 보편국가는 제국이 아니라 연방, 연맹, 국제제도 및 국제기구의 혼합체다.

인류 역사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가치와 제도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인간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상수常數는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인간 행동의 변화로 이루어지는 역사는 제대로 분석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지난 역사를 보면 세계의 언어 분포는 세계의 권력 분포 현실을 반영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 곧 영어·북경어·스페인어·프랑스어·아랍어·러시아어는 자기 언어를 다른 민족들에게 적극적으로 보급한 제국 국가들의 말이었다. 권력 분포의 변동은 언어 사용의 변모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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