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NATO의 확대를 극력 반대한다. 자유주의와 친서방적 태도를 보이는 러시아 인사들도 NATO의 확대가 러시아 내의 민족주의 세력과 반서구 정치 세력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세력권에 들어갔던 나라들로만 NATO의 확대 범위를 제한할 경우,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몰도바, 벨라루스가, 또 분열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도 NATO의 울타리 바깥에 남아 있으리라는 확신을 러시아도 가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러시아는 자신의 주도 아래 정교의 심장부로서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인 완충 지대를 만들어 이슬람 국가들을 다양한 수준으로 지배하면서 다른 열강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러시아는 또한 세계가 이러한 체제를 수용하고 승인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옛 소련 공화국들 중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비중이 큰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모스크바가 통치하는 정치적 실체의 일부로 머물렀다. 그 결정적 전기가 되는 해는 1654년이었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카자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Khmelnytsky는 폴란드와의 항쟁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차르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그 이후 1991년까지, 1917년에서 1920년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모스크바의 지배를 내내 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2개의 상이한 문화를 가진 단절국이다. 서구 문명과 정교 문명의 단층선이 몇 세기째 우크라이나의 심장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선거는 러시아와 점점 가까워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서부 지역이 떨어져 나올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부 러시아인은 오히려 그것을 환영할지 모른다. 한 러시아 장성은 "우크라이나, 아니 동부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아니면 15년 안에 돌아올 것이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지옥에나 가라지!"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구 지향의 우크라이나 연합동방가톨릭 세력은 강력한 의지와 서구의 효과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독립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신을 한반도, 베트남, 때로는 일본을 포함하는 ‘중화 지대’, 비중국계가 거주하지만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이 지배하는 만주, 몽골, 위구르, 튀르크, 티베트로 이루어진 ‘아시아 내곽 지대’, 야만족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조공을 바칠 것으로 기대되었던 ‘외곽 지대’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로 이해했다.13 현재의 중화 문명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새로운 중국의 역할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중국이 국제 문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둘째, 해외 화교와 중국의 경제적 결속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셋째, 중국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중국적 색채가 강한 세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관계가 강화되고 있으며, 화교가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중국에 점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대만 정부의 자기 이해는 전체 중국의 정부에서 중국 일부의 정부로, 다시 중국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정부로 단계적으로 발전해왔다. 독립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마지막 견해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중국 정부는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을 행사할 뜻이 있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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