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 후반기에 중국은 소련과 미국을 상대로 ‘중국 카드’를 유효 적절히 활용했다. 탈냉전 세계에서 러시아에게는 ‘러시아 카드’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접근하면 유라시아의 판세는 결정적으로 서구에 불리한 쪽으로 기울 것이며, 1950년대 중소 밀월관계에 대한 우려가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도 높다.

러시아-중국 결속은 유교-이슬람 결속처럼 양국 모두에게 서구의 패권과 보편주의에 맞서는 수단이 된다.
이 결속이 장기적으로도 유지될 것인가는 첫째, 러시아와 서구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상호 만족을 느끼는 수준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가 둘째,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헤게모니 장악이 경제, 인구, 군사 분야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얼마나 위협하는가에 달려 있다.

또 하나의 ‘그네’ 핵심국 인도는 냉전 시대에 소련의 우방이 되어 중국과 한 차례, 파키스탄과 여러 차례 전쟁을 벌인 바 있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서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카슈미르, 핵무기, 이 지역의 전체적 군사 균형 문제를 놓고 여전히 갈등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문명과 그 핵심국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고 양면적이며 자주 변화한다. 한 문명 안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른 문명에 속한 나라들과 관계를 정립할 때 대체로 핵심국의 노선을 따른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같은 문명에 속해 있다고 해서 그 나라들이 다른 문명에 속한 모든 나라들과 동일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제3의 문명에 속한 공동의 적을 겨냥하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상이한 문명에 속한 나라들 사이의 협력을 낳을 수 있다

소련의 패배는 소련의 사회와 정치 체제에 심각한 여파를 미쳤으며 소련 제국의 해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인과 서구인에게 아프간 전쟁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승리, 냉전 시대의 워털루 승전이었다.
그러나 소련과 싸웠던 사람들에게 아프간 전쟁의 성격은 조금 달랐다. 한 서구 학자의 지적대로 그 전쟁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의 원칙에 바탕을 두지 않고 외세를 이겨낸 최초의 사례다.

단층선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국가나 무리 사이의 집단 분쟁이다. 단층선 전쟁은 폭력으로 비화한 분쟁이다. 이 전쟁은 나라들 사이에서, 비정부 집단들 사이에서, 혹은 나라와 비정부 집단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정체성을 민족과 종교라는 해묵은 대용물에서 발견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물론적 명제를 금과 옥조로 받든 국가들의 억압적이지만 평화로웠던 질서는 다양한 신들을 떠받드는 민족들의 폭력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다. 이슬람 사회의 인구 폭발과 15~30세까지 연령대의 남성 실업자군이 다수 몰려 있다는 점은 이슬람 내부의 분쟁과 비이슬람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모두 불안정과 폭력을 낳는 자연스러운 요인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복수적 정체성은 퇴색하고 분쟁과의 관련성이 가장 높은 정체성이 전면에 나선다. 그 정체성은 거의 예외 없이 종교가 정의한다. 종교는 위협으로 다가오는 이교도 세력과의 싸움을 정당화화는 심리적 위안과 자긍심을 제공한다.

단층선 전쟁을 문명 간 충돌로 이해하면 냉전 시대의 도미노 이론도 부활한다. 차이점이라면 국지적 분쟁에서 패배할 경우 일련의 후속 분쟁에서 잇따라 패퇴하여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는 세력은 미국과 소련이 아니라 주요 문명의 핵심국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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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들은 항상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길을 정권창출과 장기집권에서 찾으면서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그것이 그들의 직업이다.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정치꾼들을 꺾기 힘들다. 그래서 정치꾼들은 속으로 낙관했다. 그리고 민의보다는 권력 편에 선 국회의원은 바람이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촛불을 드는 민심은 달라졌다. 시민들은 아무리 추워도 광장에 나갔고, 연말에도 나갔다.

시민들은 어렵게 만든 기회를 헛되이 놓아버리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봐야 한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 자크 루소는 선행의 첫걸음이 악행을 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는데, 자기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자들이 악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쥐가 달걀을 낳기를바라는 일과도 같다. 어렵사리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잇달이 대통령 노릇을 하는 9년 동안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국격이 땅에 떨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루소의 말이 옳다는 사실을 또다시 절감했다. 우리는 투표할 때만 주인이었고, 9년 동안 정치적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진보적인 양심세력은 ‘입안보‘, ‘입애국‘ 세력과 싸워야 한다. 그들은 매사에 인보와 애국을 들먹이면서
"그 말을 독점했지만, 북한의 핵실험에는 겨우 확성기만으로 대응한, 그래서 진정한 ‘입안보‘ 세력일 뿐이되었고, 막대한 국방예산을 쓰고서도 자주국방의 길을 제대로 열지 못한, 그래서 진정한 ‘입애국‘ 세력에 시
" 내지 않는다. 그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닫는 시점까지 진보세력은 사회의 건강한 부분에 대한 비판보했다는 아픈 부분을 고치는 데 전념하기를 바란다. 진보세력끼리 ‘입진보‘라고 비판하면서 선명성을 경쟁하기보다 더욱 절박하게 해결할 일이 있음을 명심하자. 한마디로 대의제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촛불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정치적 모형을 제시하고 정착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프랑스 혁명을 생각할 거리도 많아졌다. 나는 프랑스 혁명이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근대화 역사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합리화, 산업화, 정교분리와 함께 민주화의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근대화라 하겠지만,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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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NATO의 확대를 극력 반대한다. 자유주의와 친서방적 태도를 보이는 러시아 인사들도 NATO의 확대가 러시아 내의 민족주의 세력과 반서구 정치 세력의 입지를 크게 강화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세력권에 들어갔던 나라들로만 NATO의 확대 범위를 제한할 경우, 세르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몰도바, 벨라루스가, 또 분열되지 않을 경우 우크라이나도 NATO의 울타리 바깥에 남아 있으리라는 확신을 러시아도 가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러시아는 자신의 주도 아래 정교의 심장부로서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인 완충 지대를 만들어 이슬람 국가들을 다양한 수준으로 지배하면서 다른 열강들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러시아는 또한 세계가 이러한 체제를 수용하고 승인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옛 소련 공화국들 중에서 가장 인구도 많고 비중이 큰 나라는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독립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모스크바가 통치하는 정치적 실체의 일부로 머물렀다. 그 결정적 전기가 되는 해는 1654년이었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카자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Khmelnytsky는 폴란드와의 항쟁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얻는 대가로 차르에게 충성할 것을 맹세했다. 그 이후 1991년까지, 1917년에서 1920년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정치적으로 모스크바의 지배를 내내 받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2개의 상이한 문화를 가진 단절국이다. 서구 문명과 정교 문명의 단층선이 몇 세기째 우크라이나의 심장부를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선거는 러시아와 점점 가까워지는 우크라이나에서 서부 지역이 떨어져 나올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부 러시아인은 오히려 그것을 환영할지 모른다. 한 러시아 장성은 "우크라이나, 아니 동부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아니면 15년 안에 돌아올 것이다. 서부 우크라이나는 지옥에나 가라지!"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구 지향의 우크라이나 연합동방가톨릭 세력은 강력한 의지와 서구의 효과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독립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신을 한반도, 베트남, 때로는 일본을 포함하는 ‘중화 지대’, 비중국계가 거주하지만 안보상의 이유로 중국이 지배하는 만주, 몽골, 위구르, 튀르크, 티베트로 이루어진 ‘아시아 내곽 지대’, 야만족이기는 하지만 중국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조공을 바칠 것으로 기대되었던 ‘외곽 지대’ 모두를 포함하는 세계로 이해했다.13 현재의 중화 문명 역시 비슷한 양식으로 구조화되고 있다.

새로운 중국의 역할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첫째, 그것은 중국이 국제 문제에서 자신의 역할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둘째, 해외 화교와 중국의 경제적 결속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셋째, 중국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중국적 색채가 강한 세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외교적 관계가 강화되고 있으며, 화교가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중국에 점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대만 정부의 자기 이해는 전체 중국의 정부에서 중국 일부의 정부로, 다시 중국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정부로 단계적으로 발전해왔다. 독립을 사실상 공식화하는 마지막 견해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중국 정부는 대만의 독립을 저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무력을 행사할 뜻이 있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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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이 한 나라의 우방과 적국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냉전 구조에 편입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문화 정체성 없이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지역은 지리와 문화가 일치하는 경우에만 국가들 사이의 협조를 낳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문화적 이질성이 크면 지리적 근접성은 동질성을 낳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군사 동맹과 경제 협력은 회원국 사이의 협조를 요구하는데, 이 협조는 상호 신뢰에 기초하며, 신뢰는 다시 공통의 가치관과 문화로부터 가장 쉽게 얻어진다.

동아시아 다른 나라들과 아무리 무역량을 늘리고 투자를 강화한다 해도 일본은 이들 나라와의 문화적 차이, 특히 이 지역의 경제를 주도하는 화교 경제 엘리트들의 견제로 NAFTA나 EU에 견줄 만한 경제 블록을 일본의 주도로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서구와의 문화적 차이는 일본과 미국, 유럽과의 경제적 관계에서 오해와 적대감을 악화시킨다. 경제 통합이 문화적 동질성에 달려 있다면 문화적으로 고립된 나라 일본의 미래는 경제적으로도 암울하다.

거의 모든 나라는 성격이 판이한 둘 이상의 민족적, 인종적, 종교적 집단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질적이다. 많은 나라들은 이 집단들의 차이점이나 갈등이 그 나라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분열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문명 단층선의 분열 효과가 두드러지는 지역은 냉전 시대에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을 내건 권위주의적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강제로 통합된 단절국이다.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결속과 배척을 낳는 원동력은 이념이 아니라 문화가 되었다.

케말주의가 내건 기본적 원칙, 곧 ‘6개의 화살’은 인민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 세속주의, 국가 사회주의, 개혁주의였다. 케말은 다민족 제국의 이상을 거부하고 동질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을 축출하고 학살했다. 그는 술탄을 폐위하고 서구식 공화정을 정치 체제로 도입했다.

터키가 NATO의 회원국 지위를 고수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을 발판으로 서구와 긴밀한 구조적 연대를 맺을 수 있고 그리스와의 긴장 완화에도 긴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NATO 가입으로 구체화된 터키와 서구의 긴밀한 관계는 냉전의 산물이었다.

터키는 왜 냉대를 받으며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가? 공식적으로는 EU 관리들이 터키의 낙후된 경제발전 수준과 북구 여러 나라에 한참 못 미치는 인권 보장 수준을 거론한다. 그러나 사석에서 유럽인과 터키인은 그리스가 격렬하게 반대하고 더 중요하게는 터키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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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은 아시아와 서구 특히 미국과의 세력균형에 변화를 낳고 있다. 경제발전은 그것을 성취하고 거기서 이득을 보는 주체에게 자신감과 자긍심을 준다. 경제력 또한 무력처럼 도덕적, 문화적 우위의 표현, 미덕의 증거로 간주된다.

강력한 사회는 보편화하며 허약한 사회는 특수화한다. 동아시아의 점증하는 자신감이 서구에 비견할 만한 아시아의 새로운 보편성을 낳았다. "아시아의 가치는 보편의 가치이며 유럽의 가치는 유럽의 가치다"라고 1996년 마하티르 총리는 유럽 정상들에게 선언했다.16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한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아시아를 묘사했던 방식처럼 획일적이며 부정적으로 서구를 묘사하는 아시아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이 나타나고 있다. 동아시아인에게 경제적 번영은 도덕적 우위를 의미한다.

아시아가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가는 반면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정체성·의미·안정·정당성·발전·권력·희망의 근원으로서 이슬람을 향해 한꺼번에 돌아서고 있다. 그들의 희망이 "이슬람이 해답이다"라는 구호에 집약되어 있다.

이슬람 부활은 근대화의 산물이자 근대화를 달성하려는 노력이다. 이슬람 부활의 저변에는 도시화, 사회 활동 인구의 증가, 문맹률의 축소와 교육의 확대, 통신과 매체의 발전, 서구를 비롯한 다른 문명들과의 접촉 강화 같은 비서구 사회의 토착화 조류를 낳은 원인들이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이슬람의 인구 증가가 서구가 주도해온 국제질서에 커다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세계 문제에 대한 발언권과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력은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몫으로 더 많이 돌아갈 것이다.

아시아와 이슬람은 개별적으로, 때로는 힘을 합쳐 서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이러한 도전의 배후에 자리 잡은 원인들은 서로 관련성은 있지만 성격은 판이하다. 아시아의 자기주장은 경제성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의 자기주장은 상당 부분 사회적 동원력과 인구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21세기에도 세계정치에 심각한 불안 요소로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파장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중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의 경제발전은 이들의 정부가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슬람 국가들의 인구 증가, 특히 15세에서 25세 사이 연령층의 폭발적 증가는 원리주의, 테러리즘, 폭동, 노동력 수출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 경제적 발전은 아시아 정부를 강화시키고 있지만 인구 증가는 이슬람 정부와 비이슬람 사회에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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