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시를 몇 편 보자.
우선, 이동순의 개밥풀을 한번 읽어 보렴.

아닌 밤중에 일어나
실눈을 뜨고 논귀에 킁킁거리며
맴도는 개밥풀
떠도는 발끝을 물밑에 닿으려 하나
미풍에도 저희끼리 밀고 밀리며
논귀에서 맴도는 개밥풀
방게 물 장군들이 지나가도
결코 스크럼을 푸는 일없이
오히려 그들의 등을 타고 앉아
휘파람 불며 불며 저어가노나
볏짚 사이로 빠지는 열기
음력 사월 무논의 개밥풀의 함성
논의 수확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함부로 버리며
우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더니
어느날 큰비는 우리를 뿔뿔이 흩어 놓았다
개밥풀은 이리저리 전복되어
도처에서 그의 잎파랑이를 햇살에 널리우고
더러는 장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어디서나 휘몰 리고 부딪치며 부서지는
개밥풀 개밥풀 장마 끝에 개밥풀
자욱한 볏짚에 가려 하늘은 보이지 않고
논바닥을 파헤쳐도 우리에겐 그림자가 없다
추풍이 우는 달밤이면
우리는 숨죽이고 있다
옷깃으로 눈물을 찍어내며
귀뚜라미 방울새의 비비는 바람
그 속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있다
씨앗이 굵어도 개밥풀은 개밥풀
너희들 봄의 번성을 위하여
우리는 겨울 논바닥에 말라붙는다 <이동순, 개밥풀>

개밥풀은 '부평초. 개구리밥'을 일컫는 말이란다. 민중을 상징하는 말이라 보면 되겠지. 

화자는 개밥풀을 보고 있어.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밥풀.
개밥풀은 뿌리도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 
수면에 뜬채로 되는대로 떠다니다가 스러지는 볼품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 개밥풀을 관찰하노라니 화자의 머리를 찌릿하게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지. 

밤중에 일어나 논귀퉁이에 맴도는 개밥풀을 보고 있어.
가벼운 바람에도 밀리는 개밥풀은 방게 물장군같이 작은 생물들이 지나갈 때,
결코 굳게 겯은 어깨(스크럼)를 푸는 일 없이 적군을 타고 앉아 여유있게 휘파람도 부는 것처럼 보인대.
방게(민물게)나 물장군은 억압자겠지.
민중은 억압자가 짓밟으면 움츠러들고 꼼짝 못하지만,
개밥풀은 느긋한 걸 보고 <관조>의 마음을 찾는 거지. 

미약한 개밥풀은 강한 연대의식으로 어깨를 꽉 잡고 산단다.

음력 사월이면 양력으로 오월인데,
개밥풀은 몸을 <버리>고 <자유>를 소중히 여긴대.
민중의 희생 정신과 <자유>를 향한 의지가 드러나는 것 같구나. 

그러다 어느 날 큰비가 내린대. 이제 시간은 여름으로 흐른다.
이 시에서는 봄부터 계절이 변화하는 것이 보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보렴.
큰비와 장강은 험난한 세상살이를 뜻하겠지.
장마 끝에 개밥풀은 그림자도 없는 미약한 존재감으로 시련을 이겨낸단다.

가을이 되면 다시 추풍이란 시련이 닥치지.
숨죽이고 우는 개밥풀. 

결국 겨울 논바닥에 말라 붙는 개밥풀.
그러나,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는 절망을 외치지는 않아.
오히려, <봄의 번성을 위하여>라는 구절 하나로,
개밥풀의 미약함과 시련의 고난함을 모두 감싸안아 준단다. 

억압당하는 삶은 늘 피곤하고 <상처받은 갈대>같은 존재가 되지.
그렇지만, 개밥풀, 곧 부평초처럼 가벼운 인생살이라도,
<봄의 번성>을 꿈꾸며 말라감을 슬퍼하지 말자는 주제를 담고 있는 시란다. 

이 시의 시점은 두 가지야.
앞부분에선 화자가 관찰하지만,
중간 부분부턴 개밥풀이 <우리>라는 말로 자신을 표현하지. 

그들은 단지 헌신과 희생의 속성만 연결되는 게 아니라
자잘한 생태적 순환들까지도  살펴보는 화자를 통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삶이라는 주제를 밀어내고 있는 거야.

관조란 이처럼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인생의 이치를 배우는 행위를 의미하는 거란다.
다음엔 또 나무를 관조하는 시를 한편 보자.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신경림, 나목(裸木)>

나목은 발가벗은 나무, 겨울 나무를 뜻하는 말이야.
하늘을 향해 발가벗은 나무가 팔을 뻗고 서있어.
마치 밤에 별빛을 그 나뭇가지(나무의 손끝)로 받아서,
몸통과 뿌리까지 씻어내려는 듯이 말이야. 

때론 살갗이 터지는 시련도 겪게 돼.
나무 허리가 뒤틀리는 고달프고 구질구질한 삶이기도 하지만,
나무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대.
한밤에 눈이 몸을 덮으면 시원스레 털어내곤 한대.
감추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지. 

마지막 부분이 화자가 찾아낸 삶의 이치야.
나무들이 때로 <깊은 울음>을 터뜨리며 오열할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삶은 근원적으로 슬픈 것이지.
누구나 슬픈 법이야.
그런데, 사람은 자신이 슬플 때,
세상의 슬픔은 자기 혼자 다 짊어진 것처럼 착각하곤 하거든.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거야.
세상의 슬픔은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음을 인식할 때, 위로받을 수도 있을 거란다. 

벌거숭이 나무를 보고,
외로운 사람과
또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을 상상한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보렴.
삶은 근원적으로 다 외롭다는 마음이 바탕에 깔린 것 같단다.
다음엔 박목월의 '나무'를 보자.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 날은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져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뒷길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늘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워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 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의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박목월, 나무>

화자는 유성에서 출발해, 조치원, 공주, 온양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여행길에서 계속 나무를 만난다.
한 그루 늙은 나무를 통해 묵중한 수도승을,
떼를 지어 선 나무들을 통해 어설픈 과객을,
멀리선 나무들을 통해 외로운 파수병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나무들은 멀리있는 타인이었다. 

그러나, 그 묵중하고 어설프며 외로운 나무들은
서울로 <회귀>한 화자의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본질적으로 인간의 외로움을 감출 수 없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단다.
실존은 여기 살아있는 <나>를 뜻하고, 본질은 인간은 일반적으로 이러이러하다는 뜻이란다.
인간은 원래 이런 저런 존재다...하는 설명보다,
여기의 <나>의 삶이 어떤지가 중요하단 것이지.
인간은 원래 고독한 건지, 어울려 살면서 즐거운 건지,
인간은 이러이러하다는 일반론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란다.
<나>의 현실을 살피는 일이 중요한 거지.  

다음엔 최두석의 <성에꽃>을 통해 독재시대의 민중과 저항 정신을 생각해 보자.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깁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최두석, 성에꽃>

이 시는 앞부분에서 민중들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어.
버스 차창에 성에가 끼어있는 모습을 <꽃>이라고 미화하여 표현하였지. 

엄동혹한일수록 성에꽃은 더 선명하게 핀다고 해서,
시련을 겪을수록 꿋꿋한 존재도 있음을 드러내고 있어. 

화자는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삶을 생각하면서,
자리를 옮겨다니며 성에꽃을 감상한단다. 

민중이 피워낸 아름다운 예술을 말이지.
버스는 민중의 발이잖아. 
<차가운 아름다움>은 역설적인 표현이겠다.
차가운 것, 엄동혹한에 피어난 시련의 꽃이면서
그 민중의 숨결이 피워낸 삶이 아름답다는 역설적 표현.

성에꽃은 <한숨>과 <열정>의 숨이 얼어붙은 것임을 생각하다가,
문득 유리창 너머로 한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 

동지였던,
그러나 감옥에 가서 이젠 면회조차 금지된 친구.
독재 시대의 감옥행은 일상적인 일이었어.
대학생은 툭하면 감옥엘 가곤 했지. 

이 시는 암울하고 막막한 시대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각자의 일터나 집으로 가는
이름 없는 서민들의 숨결이
버스 유리창에 ‘성에꽃’으로 피어났다는 발상에서 씌어진 시란다.

그러나 그 성에꽃 핀 창 속에서 문득 발견하게 된
‘푸석한 얼굴’이 군사 독재 세력에 저항하다 옥에 갇힌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감성의 울림만이 아니라 지성의 울림까지 느끼게 해.

시대의 아픔은 1980년대의 광주에 이은 독재시대뿐 아니었단다.
조선 시대의 아픔도 한번 읽어 보렴.

말에 내려 인가를 찾아가 보니
아낙네 문간에 나와 맞이하네.
띠집 처마 아래 손을 앉게 하고
나를 위해 밥과 반찬 내어 오네.
남편은 어디에 나가 있냐 하니
아침에 따비를 메고 산에 올라
산밭을 일구느라 고생을 하며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한다네.
사방을 둘러봐도 이웃은 없고
개와 닭도 산기슭에 의지해 사네.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아
나물도 마음대로 못 뜯는다네.
슬프다 외딴 살이 어찌 좋으리
험하고 험한 산골짝에서…….
평지에 살면 더없이 좋으련만
가고 싶어도 벼슬아치 두렵다네.
<김창협, 산민>

이 시에서의 ‘산민’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평지에서 살고 싶지만
벼슬아치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쩔 수 없이 험한 산골짝에서 살게 된 사람이야.
이런 점에서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한자성어가 생각나지. 

예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이 정치를 잘못했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백성들에게 돌아가곤 한단다. 

산골 사람들은 나물을 뜯어 연명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못해 가난함을 면하기도 어려워.
그래서 그들은 늘 외로움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면서
손님을 위한 대접도 쉽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 

이 작품에서 ‘산’은 관리들의 횡포를 피할 수 있는 도피처로 그려져 있어.
시의 내용으로 보아
이웃도 없고 사나운 호랑이가 많은 산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지.  

당시 백성들의 힘든 삶이 가슴아프게 울려 온다.
이처럼 당시 관리들의 횡포가 산 속에까지 이를 정도로 가혹했음을 잘 보여주는 시야. 

내가 표시한 것처럼,
한시는 넉줄씩 읽어 나가면 뜻을 쉽게 풀 수 있단다. 

오늘은 민중의 삶을 이런저런 면에서 관조적으로 살펴본 시들을 다뤘다. 

요즘 나무들은 파릇파릇한 신록을 가득 피워내고 있어.
공부하러 다니면서도 나무의 새싹들을 한번씩 바라보렴.
그럼, 마음도 훨씬 시원해질 거야.
답답한 마음도 올해 지나면 사라질 거라 믿고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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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4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림 님의 나목에 대해 말씀해주시는 부분에서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혼자라서 고립된 존재지만, 다들 혼자이기에 그 슬픔을 알고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을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 한 부분입니다. 그저 실존이란,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는 것이지 라고 생각했지요.

뒤늦게 글샘님의 시 강의에 빠져있네요. 오늘도 감사합니다.

글샘 2011-04-24 22:55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갈대'의 실존이 '나목'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이유...
슬퍼 봐야 보이는 거죠. 타인의 슬픔이 말입니다. ^^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 했지만, 같은 이유로 '타인은 천국'일 수도 있는 셈이죠.
나와 다른 타인은 지옥이지만, 나와 같은 타인은 반대인 것처럼 말입니다.
동병상련이란 한자 성어를 만든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비가 촉촉하게 내린다.
분위기 있는 봄빈데, 요즘엔 방사능이 어쩌고 황사가 어쩌고 해서 좀 찜찜하지.
사람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시간은 흐른다.  

오늘도 엊그제 읽었던 이해인 수녀님 시를 한편 볼게.
한번 읽어 보렴.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이해인, 꽃멀미) 

멀미는 보통 배를 탔을 때, 배가 앞뒤 방향으로 일렁거리고 흔들리면 속이 역겨워지는 현상을 말하지.
그런데 육지멀미라는 말도 있단다.
배타는 사람은 몸이 배의 일렁거림에 적응해 있기 때문에,
육지에 올라서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여겨진대. 

꽃멀미는... 꽃을 보면서 어떤 감각을 신체적으로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겠지. 

처음에 사람멀미를 이야기했어.
사람멀미.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나면 피곤하고 정신이 없대.
사람은 제각기 기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게 마련인데,
또 자기 고집을 부리곤 하니까 사람멀미도 날 만 하지.  

2연에서 꽃처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라도
너무 흔하면 멀미가 난다는구나.
그렇겠지.
아무리 맛있는 진수성찬이 산처럼 쌓여있는 부페엘 가도,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나면 음식이 당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사람과 꽃에서 느낀 '멀미'란 의미를 이제 3연에서 확장시킨단다.
살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처럼 좋은 일도 없고,
이쁜 꽃을 만나는 것처럼 좋은 일도 없어.
그런데, 그 일은 가끔 사람을 지치고 힘들게 한단다.  

불교에서 '인생은 고통'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수녀님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이라고 표현했어. 

사노라면, 아픈 일을 당하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못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좋아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지어 가지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런 불경 구절도 있지. 

그렇다고 수녀님의 시에선 '혼자서 가라', '혼자서 도를 닦아라'처럼 표현하지 않아.
꽃은 아무리 많아도 싫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을 사랑하겠다는 긍정적 자세를 가지려 한단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멀미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경우도 있는 법임을,
사람을 만나면서 배워나가는 것이겠지. 

세상엔 자기 취향에 적합한 사람도 있지만,
정말 에너지가 상반되어서 툭하면 부딪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야.
그렇다고 사람을 미워하는 일에 마음을 쏟기 보다는,
사람의 향기를 찾는 일로,
마음의 긍정적 에너지를 쓰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를 맺는는구나. 

수녀님들끼리 생활한다고 갈등이 없겠니?
그렇지만, 인간을 밉다밉다하고 바라보면 정이 안 드는 법이니,
꽃의 향기에 취하듯, 인간의 향기에 취하는 일도 마음 먹기 달린 거라 생각하자는 이야기겠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에 관심을 갖고 읽어 봤어.
사람이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고 했듯이,
꼭 필요한 말을 가려서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이렇게 4월도 가고있구나.
이 봄비가 그치면,
가로수들도 더 파랗게 싹에 힘이 돋아날거야.
민우도 힘차게 따뜻한 봄을 즐기는 마음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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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3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저는 정말 멀었나봐요.
마지막 구절인 사람에게서도 꽃처럼 향기가 난다는 부분에서,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생각부터 했거든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글샘 2011-04-24 21:53   좋아요 0 | URL
수녀님도 첨엔 사람멀미가 난다고 했잖아요. ㅋ
이 시처럼 꽃을 보면서, 자연을 통해서 사람 멀미를 꽃향기로 바꿔나가는 마음가짐.
그런 게 바로 수도자의 마음일지도 몰라요.
우리같은 일반인은 모르고 살아가는...
 

오늘은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두어 편 읽어 보자. 

수녀...
수도자의 길에도 몇 종류가 있지만,
가톨릭에서 여성은 신부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야.
이름이야 신부든 목사든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느님이 이 땅에 뿌리신 선한 마음의 씨앗을 싹틔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곳이 곳 수도원이겠지. 

우리와 가까운 광안리에서 매일을 하느님께 바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시를 써오신 수녀님의 시를 읽어 보자.
아빠가 고딩때 좋아하던 시야. 살아 있는 날은...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 있는 연필
어둠 속에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이해인, 살아 있는 날은>

제목부터 딱 보면, 긍정적이지.
살아 있는 날은... 엉망으로 살자... 이런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엔 향기롭게 맑고 투명하게
정말 인간답게 살자.  

사랑하며 살고, 나쁜 짓 하는 사람 꾸짖으며 살자는 이야기가 등장하겠지.
물론 수녀님의 삶은 모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겸손까지 가미해서 말이야. 

마른 향내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화자는 경건하고 반성적인 삶을 떠올리게 된단다.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이게 화자가 추구하는 인간상이야.
이 시에서 당신은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그분.
운명이랄까. 하느님이랄까.
암튼 우리 삶을 건방지게 살지 말고,
겸손하게,
그리고 유연하게 살자는 태도가 아주 역력하단다. 

오늘이 4.19 기념일이야.
이승만의 독재에 저항해 싸우던 51년 전의 이야기.
삶은 늘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많은 것을 가지면,
더 넉넉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소유하는 것과 행복하게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지? 

꼿꼿하게 살겠다는 다짐.
한번쯤 깊이 생각하며 읽어볼 만한 시란다.
다음엔 기~인 산문시를 한편 마음을 비우고 읽어 보렴.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대며

                                         이해인

1

하늘은 구름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나는 세월을 안고 움직이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날엔 항상 하늘이 열려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늘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2

그 푸른 빛이 너무 좋아 창가에서 올려다본 나의 하늘은 어제는 바다가 되고 오늘은 숲이 되고 내일은 또 무엇이 될까. 몹시 갑갑하고 울고 싶을 때 문득 쳐다본 나의 하늘이 지금은 집이 되고 호수가 되고 들판이 된다. 그 들판에서 꿈을 꾸는 내 마음. 파랗게 파랗게 부서지지 않는 빛깔.


3

아아 하늘, 하늘에다 나를 맡기고 싶다. 구름처럼 안기고 싶다. 서러울 때는 하늘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순하게 흑흑 느껴 울고 싶다.

4

하늘에 노을이 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온통 피로 물들이듯 타오르는 노을. 나의 아픈 그리움도 일제히 일어서서 가슴 속에 노을로 타고 있다.

5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다. 타다가 타다가 검붉은 재로 남은 나의 그리움이 숨어서 숨어서 노을로 지고 있다.

6

‘하늘’이란 말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하늘빛 향기. 하늘의 향기에 나는 늘 취하고 싶어 ‘하늘’, ‘하늘’ 하고 수없이 뇌어 보다가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또 하늘을 생각했다.

7

하늘을 생각하다 잠이 들면 나는 하늘을 나는 한 마리 새, 연두색 부리로 꿈을 쪼으며 하늘을 집으로 삼은 따뜻하고 즐거운 새.

8

하늘은 환희의 바다. 날마다 구름으로 닻을 올리고 당신과 함께 내가 떠나는 무한의 바다. 하늘은 이별의 강. 울어도 젖지 않고, 흐르지 않는 늘 푸른, 말이 없는 강.

9

하늘은 속일 수 없는 당신과 나의 거울. 당신이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나의 얼굴. 내가 하늘을 볼 때 보이는 당신 얼굴. 하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도 흔들림이 없다. 깨어지지 않는다. 자주 들여다보기가 갈수록 두려워지는 너무 크고 투명한 나의 거울.

10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11

하늘이 내려 준 하늘의 진리―

하늘은 단순한 자에게 열린다는 것.

하늘은 날마다 노래를 들려 준다. 티없는 목소리로 그가 부르는 노래. 나 같은 음치도 따라할 수 있는 맑고 푸른 노래. 온몸으로 그가 노래를 하면 나는 그의 노래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싶다.

12

오늘도 하늘을 안고 잠을 잔다. 내일도 하늘을 안고 깨어나리라. 나의 모든 것, 유일한 기쁨인 사랑. 사랑엔 말이 소용없음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살아 있는 동안은 오직 사랑하는 일뿐임을 하늘이 알려 주도다.

13

오늘, 당신은 몹시 울고 있군요. 나의 모든 이를 위해서 통곡하고 있군요. 그래요, 실컷 쏟아 버리세요. 눈물 비를 쏟아 버리세요. 세차게, 아주 세차게.

당신이 울고 있는 날은 나도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마음으로 함께 울고 있어요.

14

하늘의 파도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오늘의 내 슬픔 위에 빛으로 떨어지는 당신의 푸른 소리. 당신의 파도 소리.

15

나는 늘 구름이 되어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 “나의 집이 하늘인 것도 다 당신을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높이 떠도는 외로움도 어느 날 비 되어 당신께 가기 위해서임을 잊지 말아요. 멀리 멀리 있어도 부르면 가까운 구름인 것을.”

16

꼭 말하고 싶었어요. 지나가는 세상 것에 너무 마음 붙이지 말고 좀더 자유로워지라고. 날마다 자라는 욕심의 키를 아주 조금씩 줄여 가며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 배우라고―

구름처럼 쉬임 없이 흘러가며 쉬임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구름이라면.

17

하늘은 희망이 고인 푸른 호수. 나는 날마다 희망을 긷고 싶어 땅에서 긴 두레박을 하늘에 댄다. 내가 물을 많이 퍼 가도 늘 말이 없는 하늘.

18

내가 소리로 말을 걸면 침묵으로 대답하는 당신. 당신을 부르도록 나를 지으셨으며 나의 첫 그리움인 동시에 마지막 그리움이기도 한 당신. 당신은 산보다도 더 높은 내 욕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세상에서 치닫는 나의 허영의 불길을 단숨에 꺼 버리셨습니다.

인간에 대한 일체의 그리움도 당신이 거두어 가신 뒤에 나는 세상에서의 자유를 잃었으나 당신 안에서의 자유를 찾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에서 희망을 날리는 노란 새가 되었습니다.

19

하늘색 연필을 깎아 하늘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아침. 행복은 이런 것일까. 향나무 연필 한 자루에도 온 세상을 얻은 듯 가득 찬 마음. 내 하얀 종이 위에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빛 바다. 나에겐 왜 이리 하늘도 많고, 바다도 많을까. 어쩌다 기도도 할 수 없는 우울한 날은 색연필을 깎아서 그림을 그렸지. 그러노라면 봉숭아 꽃물 들여 주시던 엄마의 얼굴이 보이고, 소꿉친구의 웃음소리도 들렸지. 오늘도 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을 생각한다. 하늘을 기다린다. 하늘에 안겨 꿈을 꾸는 동시인(童詩人)이 된다. 끝없이 탄생하는 내 푸른 생명의 시를 하늘 위에 그대로 펼쳐두는 시인이 된다.

이 시는 풀이를 하지 않을래.
어떤 연이 가장 맘에 드니?  

아빠는 10번 연이 가장 맘에 든다. 맘이 뜨끔하지. ㅋ

지구 위에 살다가 사라져 간 이들의 숱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하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또한 기억하는 하늘. 하늘은 그래서 죽음과 삶을 지켜보는 역사의 증인.

그래서 하루를 살더라고 거짓되지 않게,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며 산단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평가받게 되거든. 



화자는 연약하고, 그리움에 애태우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절대자 앞에선 왜소한,
그러면서도 절대자를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화자.
절대자는, 하느님은 화자가 아무리 두레박으로 우물물 긷듯 욕심을 내도
모든 것을 허락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구나.  

절대자 안에서 마음의 안식과 평강을 얻는 이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
모든 것을 그이 앞에다 내려놓고,
그야말로 진인사 대천명의 마음으로,
자신이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하느님의 운명이 내려온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말이야.
교회를 다닌다고 되는 건 아니고,
이런 건,
스스로를 믿으며 삶의 철학을 가다듬는 일이 더 중요하겠지.
이런 시를 읽으면서, 겸허하게 삶을 돌아보는 일도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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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0 0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0 08:42   좋아요 0 | URL
어제도 읽었는데... 새벽 4시 40분에 깨어있는 인간이... 기자군요. ㅎㅎ
 

오늘 엄마랑 경주엘 갔다 왔어.
지난 주엔 하동 쌍계사 벚꽃길을 보고 왔는데,
경주 보문단지엔 벚꽃이 다 졌더라.
참 금세 지지.
사람도 금세 늙는단다.
믿을 수 없겠지만. 

엄마랑 돌아오는 길에 카이스트 학생들 이야기가 나왔어.
영어로 수업한다는 이야기 끝에,
과연 영어로 수업을 해야 실력이 느는 건지...
외국인 교수라면 당연히 영어로 수업을 하겠지만, 특히 카이스트야 특별한 아이들이 모여있으니 말이지.
한국인 교수라도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건, 글쎄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일이겠지. 

오늘은 엄마의 사랑을 가득 담은 시를 한 편 읽어 볼게.
나희덕의 '허공 한 줌'이야. 우선 한번 읽어 보렴. 

이런 얘기를 들었어.

엄마가 깜박 잠이 든 사이 아기는 어떻게 올라갔는지 난간 위에서 놀고 있었대.
난간 밖은 허공이었지. 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난간의 아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이름을 부르려 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아가,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숨을 죽이며 아기에게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모아 아기를 끌어안았어.
그런데 아기를 향해 내뻗은 두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줌뿐이었지.
순간 엄마는 숨이 그만 멎어버렸어. 다행히도 아기는 난간 이쪽으로 굴러 떨어졌지.
아기가 울자 죽은 엄마는 꿈에서 깬 듯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어.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비어 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어.
텅 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 있곤 했지.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그날밤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었어.
허공 한줌까지도 허공에 돌려주려는 듯 말야. <나희덕, 허공 한 줌> 

보통 액자 소설이란 말을 많이 쓴다. 소설의 서술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나 꺼내는 경우를 말하지.
이 시에선 액자 시처럼 시가 전개돼. 

처음엔 '이런 얘기를 들었어~'로 시작하지.
그리고 마지막엔 '이건 그냥 만들어낸 얘기가 아닐지 몰라.'하고 말이야. 

그러면서, 화자는 이 시 속의 이야기를 곰곰 생각하면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비어있는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어.
화자는 손아귀에 아무 것도 없을 때조차도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던 모양이지.
텅비어 있을 때에도 그것은 꽉 차있곤 했다는 걸 보면 그렇게 보여. 

화자는 버스 안에서,
수없이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자신이 참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려 욕심을 부렸구나.
어리석게도 집착에 눈이 멀었구나... 반성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걸 놓아주려 노력했나봐. 

'허공 한 줌' 까지도 자기 소유로 가지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면서,
그 허공 쯤이야 허공 속으로 돌려주려고 했던 거겠지. 

허공 한 줌.
소유할 수도 없고, 소유할 필요도 그다지 없는 것을 뜻하는 말이겠구나.
그렇지만, 화자는 그걸 소유하려고 했던 일을 돌아보고 헛됨을 느끼는 거야.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시 속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 보자.  

이야기 속엔 우선 <엄마>가 등장해.
엄마가 깜박 잠든 사이 아기가 난간 위에 올라갔지.
난간 밖은 허공이었고,
잠깬 엄마는 깜놀했고, 이름도 못 부르고... 안타까이 아가를 바라보았단다. 

엄마가 아기에게 다가가 끌어안았어.
그런데 엄마는 아기를 잡지 못했단다.
엄마는 그 뒤에 나오지만, 이미 죽은 엄마였기 때문이야. 
엄마가 아기를 받으려 내민 손에 잡힌 것은 <허공 한 줌> 뿐이었지. 

그래서 엄마는 그만 <숨이 멎어> 버렸단다.
이미 죽은 엄마지만 숨이 멎을 정도로 긴장했단다.
다행히 아기는 난간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이쪽으로 떨어졌대.  

 

아기가 놀라서 울자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병원으로 달렸대.
아까는 죽은 엄마 손에 아기가 받아지지 않았지만,
얼마나 간절했는지,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달린단다.
오로지 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 만 가득했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었어.
죽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 아랫목에 뉘었어.
아기를 토닥거리면서 곁에 누운 엄마는 그후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지.
죽은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놓고 죽을 수 있었던 거야.  

결국 이 이야기는,
이미 죽은 엄마지만 아기의 안위를 걱정하려 차마 죽지 못하고 눈감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지.
아기가 안전하게 자라는 것을 믿게 되어서야 죽은 엄마는 마음놓고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겠지. 

엄마는 죽어서도 아기만을 위해서 자신을 잊고 애쓰는데,
화자는 얼마나 부질없는 것들을 위해서 애쓰고 살았던지를 되돌아 보았단다.
그러자 자그마한 손아귀 안에 참으로 많은 것을, 많은 지위와 많은 재물과 많은 상들을 얻으려 애썼겠지.
허공 한 줌처럼 손에 잡을 수 없는 것들을 말이야. 

그래서 그것을 깨닫고 허공 한 줌까지도 놓아준다는 화자의 목소리가 쟁쟁 울린다.  

 

국어교과서의 '어느 날 심장이 말했다'가 생각나는구나.
여친을 위해서 해도달도 다 따다주던 머저리가 여친의 꾐에 빠져 '니 애비의 심장'도 빼오란 말을 듣고 실행하지.
여친을 위해 달려가던 머저리는 그만 엎어져서 심장을 땅에 떨구었는데,
그 땅의 심장이 말했다잖아. "얘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하고. 

민우를 바라보며 기르던 엄마의 심장이 그런 심장이었을 거야.
하마나 엎어질까, 깨질까 조심조심 기르던 엄마 말이야.
민우가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도 언젠가는... 민우 곁을 떠나가겠지. 

그때 후회하지 말고,
지금 즐겁게 잘 지내자. ^^
엄마 아빠는 네 옆에 있지 않더라도, 저 시 속의 죽은 엄마처럼 민우의 행복을 위해 힘쓰고 있을 거야.
멀리 떨어져 살든,
오랜 뒤에 세상을 떠나서든,
우리 아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온 마음으로 저렇게 너를 안아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래.
그러면, 삶이 조금 팍팍해도,
폭신한 구석이 있음을 느끼게 될 거야. 

폭신한 주말 밤이다. 
일 주일간 고생 많았어.
푹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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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저녁으로 날이 차서 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데도,
한낮엔 여름이다. 

요즘 뉴스거리는 인터넷 도박 자금 백억 원을 마늘밭에 숨겼다가 빼앗긴 형제에 대한 것이다.

처남이 인터넷 도박으로 번 돈 백억원 이상을 마늘밭에 숨겨 주었고,
또 그걸 빼서 쓰려다 적발되고 하는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재물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는 뉴스였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생각들을 낳는다.
황금 만능주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돈을 많이 준다면 어떤 일이라도 벌이겠다는 사람들도 나서는 판국이다.
이야기하자면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인간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시>와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우선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 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첫 행이 인상적이다.
노래는 심장에 가 닿고, 이야기는 머리로 이해된다는 것.
얼마 전 '나는 가수다'란 프로그램이 있었든데,
명가수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노래 경연은 정말 볼만했다.
피디가 좀 편집만 잘했더라도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일곱 명이 정말 쟁쟁한 가수들이니,
하나를 떨어뜨리더라도 일주일에 하나씩 떨구는 건 좀 심하니깐,
3주의 점수를 합친다든지... 뭐, 그랬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훌륭한 가수들의 노래를 듣노라면,
가슴 속이 쓰라려 오기도 하고 간질간질 하기도 하다.
요즘 아이유란 가수가 인긴데, 그 아이의 '레몬 트리' 같은 노래는 참 새침떼기같은 느낌과
뽀송뽀송한 청춘의 멋이 잘 담겨 있더구나. 

왜 인간은 시를 짓고 노래를 했던 것일까?
시의 언어가 <독백>으로 개인의 역사를 펼쳐낸 것이니만큼,
개인의 역사 와중에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던 것일게다. 

처용가라는 노래가 향가중에 있단다.
처용은 밤늦도록 노닐다가 돌아와보니,
아내와 역신이 동침하고 있었다는구나.
설화 속 이야기인 만큼, 이것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겠지.
역신이란 질병의 신이기도 하니깐,
질병을 퇴치하는 한 방편으로 무당의 굿과 같은 노래를 불러 퇴치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큰 작용을 하던 노래라도,
음률과 성악을 떼어내고나면 가사만 남는데, 아무 힘이 없다는구나.
처용의 이야기는 오래 남는데 말이지.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는 것은 시간이 흘러 현대로 오면서 시절이 바뀐다는 거야.
정간보는 조선 세종때의 악보로,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칸을 나눠 율명(律名)을 기입하였다고 그래.  

예전의 정간보에 노래가 기록되던 때에는,
시 속에 살아 움직이는 <심장의 펄떡거림>이 담겼었는데,
요즘의 오선지에는
단순한 노래일 뿐, <심장>에 감동을 주는 노래는 없다는 거겠지. 

그래서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박동>을 골라 넣어야 한대.
그러려면, <격정으로 상처난 노래>에 <이야기>란 처방으로 다스리는 수 밖에 없다고 그러는구나. 

왜 그는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는지>
마지막에 밝혀 놓았어.
그것이 <뇌수>의 합리적 사고를 끌어내는 이야기가
<심장>의 펄떡거리는 감성과 어우러진 <이야기시>를 쓰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지.
사실 최두석의 이야기 속에는 뭔가 이야기가 하나씩 담겨있곤 하단다.

그의 '고재국'이란 시를 읽어 보렴.

유난히 뚝심 세었던 동갑내기 고종사촌 고재국은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 상경해 쟉크 염색 기술을 배웠다. 지독한 염료 냄새에 콧구멍은 진즉 마비되고 늘 골머리까지 띵하더니 상경한 지 삼 년 만에 한 모금 피를 토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굼벵이로 술을 담거 먹었다. 초겨울 마람 엮어 지붕 갈 때 썩은새 속에 굼실거리는 살진 굼벵이로. 매미의 유충이 굼벵이라던가. 농사일 뒷전에서 거들며 지내기 일 년 만에 매미 소리처럼 가슴이 시원해진 그는 다시 상경하였고 굼벵이술을 계속 먹으며 십여 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쟉크 염색 공장을 차렸다. 비록 동업이지만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고 내 선생 월급을 묻고는 미소짓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 그는 요즘 미칠 지경이란다. 아니 미쳐서 돌아다닌단다. 예비군 훈련간 사이 공장 들어먹고 잠적한 동업자를 찾으러. (최두석, 고재국) 

이 시 속에는 고모의 아들 고재국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는 지적이지도 않고,
인간성이 뛰어나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좀 멍청한 인간 같단다.
그렇지만, 그는 <바야흐로 찌든 얼굴 펴지>는 정도로 돈도 벌었고,
그리고 나더니 <내 선생 월급>을 묻고 미소짓는 좀 속물이지.
그러던 그가 미쳐서 돌아다닌대.
자기 재산을 동업자가 들어먹고 날랐다지 뭐야. 

산다는 건 이런 거라는 이야기지.
시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삶이 다 그런 것임을 넌지시 보여주는 것이야. 

뭐, 세상에 잘난 사람도 없고,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그런 거.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그런 거.  

그렇지만 또 세상은 한 세상 살만 하다는 거. 

다음엔 강은교 시인의 '시'를 한편 읽고 오늘은 마치자.

십이월 햇빛 내리는 소리보다도 작게 

낮달 뜨는 소리보다도 작게
노을 지는 소리보다도 작게 

그렇게 그렇게 

바람 소리보다는 크게
바다 우는 소리보다는 크게

벼락 소리보다는 크게
눈물 출렁이는 소리보다는 크게 

공기의 소리이게
떠돌 곳도 없이 가득 떠도는
별의 소리이게
눈뜨지 않고도 하늘 한가운데 눈뜨는.

소리없는 소리이게
그렇게 그렇게 

나를 엎드리게 해다오
구름 밑 흙 속속
시여
캄캄한 밝음이여. (강은교, 시) 

강은교 시인에게 '시'란
작고 작은 소리도 크게 듣는 장치란다.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시지만,
때로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힘을 가진 것이기도 하지. 

그렇게 시는 화자를 꼼짝 못하게 엎드리게 한단다.
마치 하나님을 믿는 신도처럼 그 권위와 권능의 힘에 경건하게 무릎꿇지. 

시는 <캄캄한 밝음>이라고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예찬하는 어조를 내지른다. 

캄캄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것이 바로 <시>이고,
구름 밑의 어두운 세상, 흙 속의 답답한 세상을,
그 캄캄한 세상을 환히 밝힐 수 있는 권능을 가진 것이 바로 시라는 것이지. 

어제도 고정희의 <상한 영혼>을 이야기하면서 시의 힘을 이야기했지? 

시는 그렇게 독자 스스로 상채기를 치유할 수 있는 베타-엔돌핀을 내뿜을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주는 역할도 하는 도구이기도 하단다.
어쩌면 이 시의 화자에게는 시가 삶의 목적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적어도, 인간은 돈을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하는 존재로 살아서는 안되겠단 생각을 많이 하는 봄이다.
일교차가 크다. 건강 조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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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4-15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라는 시는 글샘님을 통해 처음 접합니다.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는 첫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군요. 좋은 시 소개 감사드립니다.

글샘 2011-04-17 23:32   좋아요 0 | URL
이야기 시를 쓰는 이유를 시로 적은 시론이라 볼 수 있죠.
멋진 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