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나희덕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져 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 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 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게 해 준다는 것을

그대. 

아파하지 말게나. 
슬퍼하지도 말게나. 

설혹,
어느 날,
뒷머리가 너무 무겁고 지쳐서
병원을 들렀다손 치더라도,
그래서 몇 시간만 늦었더라면 뇌혈관이 터져서 큰 병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이런 삶에 무거운 경고를 들었다손 치더라도, 

몇 시간 일찍 병원에 들렀던 덕분에,
그리고 삶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이 우리 사는 나날임을 배울 기회를 얻은 것에
우리 고맙게 사세. 

비록
건강에 자신감을 가진다고 오만하진 않았지만,
삶이란 놈은
내가 제어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아직도 젊은 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오던 나날이었음에 부끄러워할 것도 없을 걸세. 

고통의 순간을 겪음으로써,
인간의 한 호흡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루며,
살아있다는 단 하나, 그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의 존재만이 천상천하 최고의 가치임을 배우게 하지 않았던가. 

그대가 배운 교훈은 
비록 날마다 운동을 하는 단조로운 삶을 영위하며
존재하기 위해 힘써야 함이라는 사실일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 하나의 교훈을 모르는 인간들이 만드는 세상사는
또 세상을 아픈 줄도 모르고 아프게 사는 일에 다름없는 일이 아닌가 하네. 

그대,
절망을 만났던 그 곳에서,
비로소 희망이 터질 수 있음을 배웠다고 하는가?  

그렇게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네.
길을 잃어 봐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던가를,
풀포기 그늘진 나무 그늘의 향그런 내음새들이
얼마나 사랑스런 것이었던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군. 

아니,
길을 잃어 보면
모든 아름다움과
향기로움과
세심한 고마움으로 얽힌 것들의 연속이고 지속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향기와 아름다움의 가치가 고마운 것임을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르고 말이야. 

길을 잃었을 때,
자신과 같은 처지였던 사람이,
저 멀리서
멀리서 밝히는 하나의 불빛이
그렇게 의지가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인간은 그렇게 어리석게 살다 가는 존재인 게지. 

길을 읽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막무가내의 어둠 속임을 깨닫게 되는 거지.
그래서 좌절하려는 순간,
비로소,
맞잡을 손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이적지,
지옥이었던 타인이,
타인과의 비교가,
타인으로 인한 부러움과,
타인으로 인한 부끄러움과,
이 모든 것들이 속절없이 가벼운 것들이었음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른다네. 

내가 굳이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얻으려 애썼던
그 가치라고 내세우던 것들 역시,
아무런 가치로움 없는 것임을,
내 몸을 통해 가르치려 하는 운명의 힘을
고맙게 여길 수 있게 된다네.
고맙게도. 

산 속에서  
어둠 속에서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져 살아본 사람만은 알 거야.
산줄기들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두움보다는 두렵지 않음을...
산줄기가 보이는 정도의 어두움은
새까만 어둠의 지경보다는 밝은 것임을...
아무리 작은 지붕 속의 삶이라도,
아무리 팍팍한 삶들의 연속일지라도,
죽음의 그 거리감 앞에서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 동지가 되는지 말일세. 

그대,
만나 보았나?
만나 보기나 했던가? 

그저 쉬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꾸던 그대가
쉼보다 계속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느끼게 되는 그 순간을 만남이,
삶의 본질보다,
실존의 가벼움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순간임을,
그리고,
먼 곳의 불빛이
비로소 나그네 삶의 쉼보다
나그네의 걸음걸이에 더욱 즐거운 노랫가락을 덧붙여 줌을 말이지. 

그대,
거기 살아 줘서 고맙네.
그리고
나도 이제 욕심내지 않기를 빌어 줘서 진정 고맙네. 

삶이란
그대나 나라는 인연의 고리를 벗어나,
한 순간 숨 쉬는 것임을 배우는 일임을,
불빛을 바라보며 걸어갈 때,
마음을 내려 놓고 그저 걸어가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배우는 순간들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는 건지도 모를 일일세. 

먼 곳의 불빛이란,
이름이 불빛일 뿐. 

삶에 불빛도, 팔뚝도
내가 지금 숨쉬는 것에 비한다면,
해골바가지의 한 모금 물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그토록 달디 달았던 물도,
한 순간,
한 호흡 돌이키고 나면,
그토록 역겨운 물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고 그랬던가. 

고마우이.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길을 걸어가고 있음의 고마움을 알게 됨을 가르쳐 준 그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네. 

이슬맞은 나그네라야만,
비로소 추녀 밑의 차가운 자리라도
고마운 베풂임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임도...
비로소 배울 수 있다네. 

산 속에서 만난,
그대와,
그대의 먼길과,
나의 앞길과,
지금 이 순간의 삶. 

그대.
고맙네. 

그리고,
우리 부디 잊지 말고 사세.
지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야말로,
나의 호흡에 가장 방해물이 되는 것임을. 

그리고, 나의 호흡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음을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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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5-0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과의 비교가,
그로인한 부러움이 저를 곧추 세우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는데 말이죠.
절, 좀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ㅠ.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__)

글샘 2011-05-04 12:50   좋아요 0 | URL
비교와 부러워함이
그리고 적절한 스트레스가 삶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하게 되잖겠습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쉬운 사실을
매일 되뇌고 살아야 할 나이입니다.
나도 그대도... ^^

세실 2011-05-07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다이어트가 아닌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루만 걷지 않아도 목이 뻣뻣해요.
요즘 제가 길을 잃은 걸까요? 저는 똑바로 가고 있는거 같은데.....
포용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비 오는 토요일 아침은 참 운치있어요. 오늘처럼요^*^

글샘 2011-05-07 20:49   좋아요 0 | URL
늙었어. 늙었어요... ^^
저는 목은 안 뻣뻣한데,
밤에 잠을 못 잔답니다. ㅠㅜ
너무너무 피곤해서 누웠는데,
두시간 세시간, 꿈지럭거리면서 일거리가 떠올라서요. 이거 나쁜 징조예요.

비 오는 토요일 아침... 지금은 안개낀 토욜 밤인데, 참 운치 있네요.^^
 

바야흐로 온 산이 신록으로 푸르게 물드는 계절이다.
5월은 청소년의 달이니, 어린이 날이니 이런 것들이 있지만,
고3에겐 그저 공부해야할 피곤한 날로 기억될지도 모르지만,
이제 6개월 후면, 
온 세상이 낙엽에 휩싸일 거고,
노랗게 은행나무도 익어갈 거고,
고3도 끝날 거다.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가렴. 

오늘은 그런 의미로 가을을 생각하며 은행나무를 하나 만나 보자.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종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곽재구, 은행나무>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이 수미상관으로 이뤄져 있다.
늘 그렇듯이,
수미상관은 '처음' 구절과 '마지막' 구절의 반복 사이에서,
주제가 형상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란다. 

조지훈의 '승무'의 수미상관에서,
여승의 번뇌가 승무를 통해 종교적으로 승화되듯이 말이지. 

은행나무를 '너'라고 형상화하고 있고,
은행잎이 노랗게 변한 것을 '노오란 우산깃'으로 형상화하고 있지. 

그리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의 주인공 무이쉬킨의 대사에서
선한 인간만이 이 세상을 궁극적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는 말을 했다는 것도 인용하면서 시를 끌고 있구나. 

음... 첫부분에선 은행나무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덮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길거리에 널부러져 말라가고 부서지는 은행잎을 보면서,
화자는 '빛나는 눈썹'과
'아름다운 연서'를 상상한다.
'누군가의 옛 추억'도 떠올리며 금빛 추억을 떠올리는
신비롭고도 참 아름다운 시인의 눈이지.  

은행잎 가득한 거리에선 '절망'을 노래할 수 없대.
그런데,
은행잎 다 떨어진 헐벗은 가지 위에
곡예를 하듯 매달린 도롱이집이 몇 개 매달렸어.

'도롱이집'은 도롱이나방의 집인데, 이 시에선 노오란 우산깃과 상반되는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고 있단다
은행잎이 다 떨어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고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걸고 버티고 있어.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 도롱이집.
왠지 불법으로 정권을 잡은 권력자, 독재자들이 생각나는구나.  

 

이렇게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은행잎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서는
수천만 황인종인 한민족의 희망의 형상으로 기록될 것이라서
힘든 일도 버텨낼 수 있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구나. 

수능에서 이 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물어본 적이 있단다.

① '빛나는 눈썹',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은 은행나무 잎을 비유한 것이다.
② '노래할 수 없다',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화자의 의지를 나타낸다.
③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는 상황에 대한 운명적 수용을 나타낸다.
④ '노오란 우산깃'이라는 표현을 반복 사용하여 대상의 의미를 확장하고 있다.
⑤ '불타는 형상'은 '희망'을 감각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답은 뭘까? 
3번이지? 운명적 수용이 아니라, 시대에 역행하는 행위니까 말이야. 

다음엔 이 시와 함께 엮여서 수능에 나왔던 이용악의 <낡은 집>을 읽어 보자.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
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느니라.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래
외양간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세째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도 불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한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절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한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
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
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
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 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이용악, 낡은 집>  

제목이 <낡은 집>이니, 왜 그 집이 사람이 살지않는 폐가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첫 연에서 낮밤으로 거미가 줄치는 집, 흉가가 등장해.
이 집 사람들은 '은동곳', '산호관자'처럼 조금이라도 값어치있는 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단다. 
동곳은 '상투에 꽂는 막대'고 '관자'는 망건에 다는 거야. 

이성부의 <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죄도 없이 죄 지어서>라는 구절이 나오듯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떤 시련을 겪고 흩어져 유랑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리라 상상해 볼 수 있겠지. 

예전에는 재넘던 당나귀, 항구가던 소도 있었나봐.
근데, 털보네 외양간엔 내음새 남아있지만 종적이 없어졌단다.
무곡은 곡식 무역하는 거고, 콩실이는 콩 싣고 다니던 일이지.

찻길이 놓이기 전.
찻길은 새로 놓은 길이라고 '신작로'라 불렀단다.
일제 강점기에 신작로가 마구 놓였으니, 일제 이전이겠지.
동물도 아이들도 자유롭던 옛날. 

털보 아저씨 셋째는 내 친구였는데,
(싸리빗자루로 말을 타던 죽마고우였지)
이집 안방 반짇고리 옆에서 태어났대. 

근데, 아이가 태어나도 축복받지 못하는 가난한 집이었나부지.
송아지는 팔아라도 먹지만, 인간은 밥만 축낸다는 말에서,
가난이 가득 묻어나지.  

마을아낙들이 무심호 흘린 이야기를 들은 밤,
삼대를 꼬아 피운 '겨릅등' 가에서 털보 아저씨는 울고 있었다지.
소주에 취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거야. 

갓을 쓴 스님에게 자식을 줘버리는 이야기,
무서운 절간 생활 이야기.
그런 가난 속에서 동무는 마음졸이는 어린 시절을 보냈어. 

그렇지만, 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고양이는 발정이라도 난 듯 울어 제키고,
어미는 방앗간에서 분주히 일할 때도,
나의 친구는 그 <낡은 집>에서 작은 꿈을 키웠지. 

친구가 9살 때, 겨울이었는데,
그 집 7식구가 사라져버렸어.
<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는 표현으로
화자의 애잔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어. 

오랑캐의 땅 만주로 갔을까,
러시아(아라사)로 갔을까.
노인들의 이야기 속의 땅은 모두 무서운 곳 뿐. 

이제 다시 <흉집이라고 꺼리는 낡은 집>이 수미상관으로 반복되고 있어.
예전에 털보 아저씨 살던 시절엔
제철이 되면 먹음직한 탐스런 살구 열매 가득하던 살구나무도,
이제 그루터기만 남아서
봄이 와도 귀안에 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 쓸쓸한 풍경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시대 변화로 인한 삶의 팍팍해진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단다.

이 시의 주제라면 <가난과 시대가 준 한 가족의 파탄된 삶>이 되겠지.
꼭 털보네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시대 일제의 압제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유랑하던 비극적 삶을 형상화한 거지.

이 시의 특징은 시 속에 이야기(서사 구조)가 들어있다는 거지. 

이 시에 대한 감상문을 쓰기 위해 <보기> 자료를 수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감상한 내용 중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이런 문제가 수능에 등장했단다. 한번 읽어 봐. 어렵진 않을 거야. 

<보기> 발표 연도 : 1938년

 작가 소개 : 이용악의 고향은 함경북도 경성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소금 장사를 하였는데, 아버지의 객사(客死)로 어머니가 생계를 꾸려야 했다. 어려서부터 궁핍한 생활을 했던 이용악은 일본 유학 시절에도 품팔이로 학비를 조달했다. 그러면서도 방학 때면 으레 귀국하여 동포들이 모여 사는 간도 등지를 돌며 유이민(流移民)의 비극적인 삶을 살펴보기도 했다.

① 1938년에 발표된 것으로 보아, '가난', '겨울'과 같은 시어를 일제 강점기의 시대적 상황과 관련하여 읽을 수도 있겠어.
②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이라는 시구에서 시적 화자의 아버지가 객사했음을 알 수 있어.
③ 이 시에 나타난 궁핍한 생활상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작가의 실제 삶과도 관련된다고 볼 수 있어.  
④ 유이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털보네 가족의 삶으로 형상화된 것으로 보여.
⑤ 함경도에서의 공간 체험이 시에 방언으로 형상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어.

쉽지?
답은 두번째 것이지. 시적 화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으니 말이지.
낡은 집, 곧 털보네 집 이야기임을 알면 쉽게 풀 수 있었던 문제야.
하나 더 볼까?

이 시의 4연 부분을 <보기>와 같이 희곡으로 구성할 때, 시의 맥락에 비추어 자연스럽지 않은 대사는?  

장소 : 털보네 안방
(갓 출산한 털보 처와 산파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산파 : 아들이야. 애아버지를 쏙 빼닮았구먼.
ⓐ 털보 처 : (기운 없는 목소리로) 어쩌다가 이런 집안에 태어났는지……. 

마을 빨래터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주머니 1 : 털보네, 아들 낳았다면서요?
ⓑ 아주머니 2 : 그러게요. 자식새끼만 줄줄이 낳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원…….
ⓒ 아주머니 3 : 송아지라도 낳았으면 팔아나 먹지. 쯧쯧.

털보네 안방
(등불이 가물거리는 어두운 방. 털보와 털보 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털보 처 :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없는 살림에 입만 자꾸 늘고……. 어떡해요, 앞으로…….
ⓔ 털보 : 걱정 말구려. 저 먹을 건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잖소. (아기를 들여다보며) 고놈, 참 잘도 자네. 이놈이 다 자랐을 때면 세상도 달라져 있겠지. 

이런 걸 틀린 사람도 있었을까?
5번이지. ㅋ 
  

이 시는 길어 보이지만,
그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진 않을 거야.

아까 은행나무를 읽다 보니깐,
가을의 샛노란 심상이 떠올라서 김춘수의 시 한 편 덧붙일게.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한번 감상해 보렴.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은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벨로루시란 나라에서 태어난 화가였어.
늘 고향의 환상적인 색감을 사용하곤 하던 화가지.
샤갈의 그림은 언제나 꿈꾸듯 무중력 상태의 세상을 표현했단다. 

이 시의 '샤갈의 마을' 역시 실제 공간이 아닌 환상적인 세계라고 봐야겠지.

바르르 떠는 남자의 정맥,
이런 시어를 통해서 봄이 살포시 오고 있음을 표현하는 시란다.  

눈송이들이 날리는 모습을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단>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신선한 표현도 돋보인다. 

눈, 올리브, 불 등을 상상해 보렴.
이 소재들은 선명한 색채의 대비를 통해 봄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반영된 거지.


맑고 순수한 생명감이 피어나는 <봄>을 그리기 위해,
샤갈의 그림 이미지를 끌고 왔고,
파리한 사나이의 관자놀이의 정맥과
홧홧한 아궁이의 불길이 어울려 풍요로운 마음이 살아있는 시지.  

햇살은 밝은데,
대기는 아직 차다.
건강 조심하고, 중간고사 잘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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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감기가 지독해서 몽롱하게 페이퍼를 읽습니다.
이런 날은 심상이 더욱 가득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은행나무 황금빛이 너무 생생하게 다가와서 놀랐습니다.
도롱이집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부분과 샤갈의 무중력 상태에 대한 부분으로 시를 다시 읽게 되는군요.

항상 저는 시를 토막쳐서 읽는게 싫다고
그냥 다가오는 대로 멋대로 해석하고 싶다고 주장했었답니다. 마이페이스 B형이거든요.
하지만 요즘 글샘님의 시 설명을 읽으며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즐거운 주말되셔요.

글샘 2011-04-30 12:24   좋아요 0 | URL
짧은 시는 통째로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시가 길거나 좀 어려운 구절을 만났을 땐, 토막도 치고 한 구절을 오래 곱씹다 보면,
한 순간에 탁, 하고 오는 기회를 만나기도 하죠.

뭐, 배울 거는 없을 거예요.
맨날 애들에게 하는 수업인데 글로 적으니 뭐가 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
원래 시 속에 배울 게 많은 법이죠.

마녀고양이님도 즐거운 주말 만드시길... 이불은 두 장 덮으세요. ^^

페크pek0501 2011-05-0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읽기로 했었죠? 저,최근 마이클 샌델 저,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 읽었어요. 아주 꼼꼼히 읽었어요. 큰 일 한 것 같아요.ㅋ
저는 한꺼번에 서너 권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이 책, 내일은 저 책을 읽죠. 장르가 다 달라서 내용이 헷갈릴 일은 없어요. 그 중 시집도 한 권 넣어 읽고 있어요.
다른 시 감상하고 싶을 땐 이곳을 들러요. 이곳 왕성한 에너지를 얻어 갑니다.

글샘 2011-05-03 10:44   좋아요 0 | URL
저도 되는대로 여러 권 읽기의 달인이었는데, 요즘엔 바쁘다는 핑계로...
저는 다른 시...랄것은 없구요. 고딩들 문제집에 잘 등장하는 시들을 읽고 있답니다.
왕성한 에너지를 얻어가신다면 제가 영광이죠. ^^
 

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정호승의 시를 한편 읽어 보자.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시다.
왜 수선화에게 위로를 주려 했을지 궁금한데 한번 읽어 보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수선화는 물가에서 흔히 피는 꽃이다.
그래서 물을 내려다보다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가 빠진 자리에서 핀 꽃이란 전설도 전해지지.
왜 청자를 '수선화'라고 불렀을까?
물가에서 고개숙인 수선화가 외로워보였는 모양이다. 

화자는 인생은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느님도 때때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인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이 시의 언어는 비비 꼬이거나 배배틀리지 않고 직설적 어법을 쓰고 있다.
그래서 시를 설명할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고,
그래서 늘 충분히 사랑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갈대같은 존재임을 알 필요가 있기에 읽어보자고 했던 거지.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아이는 대나무에 귀를 대지 않는다

내가 대숲에 흐르는 수천 개의 작은 강물들을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저 지하 깊은 곳에서 하늘 푸른 곳으로 다시
아이의 작은 실핏줄에까지 이어져 흐르는 
세상에 다시없는 가장 길고 맑은 실개천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

그 푸른 물소리에 귀를 씻고 입을 헹구고
푸른 댓가지가 후려치는 회초리도 몇 대 아프게 맞으며 <복효근, 대숲에서 뉘우치다>

 

화자는 대나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하면서 시를 시작한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그러다가 딸아이가 동심에 젖어 한 소리를 사실적인 자연 현상으로 냉정하게 설명해버린 자신을 반성한다.
대나무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상상하는 순수한 딸아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도록 지켜주지 못한 아빠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 

전에 아빠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오래오래 설명하다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했더니 네가 막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지?
동심의 순수함이 그만큼 소중하게 자라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이 시에서 '대숲에서 들어보라'는 구절이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처음의 구절은 호기심을 불러오는 구절이라면,
마지막의 구절은 어른의 반성을 촉구하는 구절이 되겠다. 

어른들은
귀도 씻고,
입도 헹구고,
회초리도 맞아야 할 정도로 순수하지 못한 존재임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이 오히려 순수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떤 걸까?
사람을 믿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임을 알지만,
그래서 서로 기대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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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8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28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3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딸네미가 피리를 귀에 대고 불더군요.
그래도 소리가 들린대요. 대숲이랑 비슷하게.

올려주신 시 두개 모두,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시입니다.
외로움을 견디는 수선화와 물 소리 치유하는 대나무와 함께 감기도 치유해야겠습니다.
너무 좋네요.

글샘 2011-04-30 12:22   좋아요 0 | URL
피리처럼 관이 있은 물건을 귀에 대면 소리가 들리죠.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면 먼 바닷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40이 넘으면 감기가 툭하면 온답니다.
이불 두 개 덮으면 금세 나아요. 이불 두 개 덮고 주무세요. ^^
 

연못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연못가에 앉아 있었다

바위와
바위와
구름과 구름과
바위와

손 씻고
낯 씻고
앉아 있었다

바람에 씻은 불처럼
앉아 있었다

연못은 혼자 
꽃처럼 피었다 지네  

시인이 곧 화자인 모양. 
화자는 연못 가에 앉아 있었다죠.
아무도 없는 연못가에 조용히 앉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 겁니다.
연못 가의 한적함에는,
지난날의 추억도
아스라한 기억과 가물거리는 기억 속에서 꺼져가는 지난 날들도... 
다 있다는 걸... 

연못 가에 앉아서
연못도 보고,
물 위에서 졸고있는 수련도 보고,
바위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시원함도 느끼고... 

자기 자신은 가뿟하게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는 조붓하게 가벼워지고
가슴이 시원해 지는... 

운명이라는 면식범이 저지르는
이런저런 잡사따위는 가볍게 날리고
손가락 사이로 스치는 바람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볼을 스치고 옷을 한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는 거죠. 

낙엽을 태워 보셨나요?
장작을 쌓아 두고 모닥불을 지펴 보셨나요?
바람이 불면 더 세차게 피어오르는 불길을 느껴 보셔야
바람에 씻은 불의 심상을 떠올리실 건데요. 

저는 화단에서 떨어진 낙엽을 까만 봉다리에 담아 두었다가,
알미늄박 도시락 위에 종이를 좀 태우고,
고 위에 낙엽들을 얹어 불장난을 가끔 합니다. 
새 낙엽을 얹고 입으로 호=3=3하고 불어주면 
새빨간 불길의 켜가
파르르 떠는 게 참 이쁘답니다. 

불은 잡다한 것들을 다 살라버리잖아요.
운명이라는 면식범이 저지른 범행들로
마음이 시들해지는 날,
조붓한 알미늄박 도시락에다
낙엽을 태워보세요. 

홧홧한 불길을 맞으면서
마음도 바삭하게 마르는 걸 느낄 수 있답니다.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손으로도
얼굴로도
마음으로도 느끼는 거겠죠. 

바람에 산소가 공급돼서
불길처럼 자신이 살라지는 상상을
잡념과 상념들이 소멸되는 체험을...
눈을 지긋이 감고서 

바람에 씻은 불이 되는 거겠죠.^^ 

그 사이 해가 설핏 지는 저녁이 되고,
연못도 한결 검게 되고,
밤을 맞을 준비를 하는 거죠. 

처음에 연못 가에 앉았을 땐,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고독했지만
연못가에서
멍하니 바보처럼
바람을 맞으면서 

바람에 씻긴 불이 되어보는 저녁 어스름. 

이제 연못과도 이별입니다. ^^


새로 생긴 저녁

보고 싶어도 참는 것
손 내밀고 싶어도
그저 손으로 손가락들을 만지작이고 있는 것
그런게 바위도 되고
바위 밑의 꽃도 되고 도 되고 하는 걸까?
아니면 웅덩이가 되어서
지나는 구름 같은 걸 둘둘 말아
가슴에 넣어두는 걸까? 

빠져나갈 자리 마땅찮은 구름떼 바쁜
새로 생긴 저녁

 

그대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저녁 무렵,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면
세상이 천천히 문을 닫아
이런저런 분별의 지혜도 닫혀버리는 시간이면
어둠이 선뜻 다가서
내 시야가 좁아지는 시간이면
그대가 생각납니다. 

새로 생긴 버릇이에요.
그 시간을 가만 느껴봅니다.  

'부베의 연인'이란 영화가 있어요. 

살인죄로 14년을 복역해야하는 부베를 찾아가는 여인 마라
부베는 마라의 오빠와 같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지요.
오빠가 전사하고 전사통지하러 마라네 집에 온 부베.
처음 본 순간 그들은 이끌리고
부베는 낙하산 천으로 옷이나 만들어 입으라는 썰렁한 농담과 함께 페이드 아웃. 

부베는 계속 편지를 하고,
아버지에게 결혼 승락도 얻지만,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곧 체포됩니다.
재판정에서 마라는 마음을 접으려 했으나 부베의 아직도 사랑한다는 고백에 흔들리죠.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씩,
14년이나 연인을 찾아갑니다.  

마라의 마음이 그랬을까요?
저녁무렵이면 생각나는 부베. 

보고 싶은 마음은 참을 수밖에 없고,
손을 잡고 싶지만,
부베의 손이 닿았던 제 손가락만 매만질 뿐. 

마음은 새록새록 커져만 가고,
바위 밑의 난초처럼 뻗어가고
꽃도 피우고
단단한 바위처럼 굳어버릴 것도 같고,
연못이 되어
구름을 가두고 있지만
영원히 구름에 닿을 수 없는 사랑... 

저녁이 되면 그대가 그렇게 떠오르겠지요. 

그렇지만 일상은 구질구질하게 바쁜 일로 가득해요.
그대를 느끼게 되는 저녁,
그 느낌을 혼자서 가득 채우고 싶은데,
웅덩이에 빠진 구름을 가득 품은 연못처럼,
그대를 가득 품고 싶은데... 

일터에선 빠져나갈 자리가 마땅찮아서
한숨만 곱게 쉴 뿐입니다. 

마음에 한가득 구름을 빠트리고 싶은데
구름처럼 밀려있는 바쁜 일터는 매일 만나는 면식범이죠. 

저녁이면 그대를 떠올리는 습관이 새로 생겼답니다.
부베의 연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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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7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7 13:35   좋아요 0 | URL
위로가 되셨나요? 그럼 다행이고요.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단 거지, 뭐 시의 특징이 감추어진 얼굴이니 말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27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의 매혹적인 면 중 하나는
숨을 쉬게 해주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바쁘게 달려나가다가도 잠시 멈춰서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는 것이, 시 아닐까 하고. 그래서 점점 시가 좋아집니다.

오늘 머리가 많이 무겁습니다. 베란다 화초에 둘러싸여 멍하니 있어야 할 시간이구나 싶습니다.

글샘 2011-04-27 13:3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머리가 무거운 날은,
멍하니 있는 게 최고죠.

오늘 하루는 멍~하니 있어 봅시다. ㅎㅎ

pjy 2011-04-2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시지만 글쌤님의 글이 그대로 다 시입니다~~~

글샘 2011-04-27 18:52   좋아요 0 | URL
아침에 술이 덜 깨서... ㅋㅋ 쪼끔 감상적이었던 모양이에요. ^^

양철나무꾼 2011-04-2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공문서에서 걸어나온 듯한 글은 그닥이고,
꽈배기과의 글은 그럭저럭이고,
이런 술이 덜 깨서 쓰신 감상적인 글은 엄청 좋아요~^^

특별회차까지 만들어 위로하신 이 분 완전 행복하셨겠는걸요.
전 연못을 보면 돌팔매를 하고 싶어지는 삐뚤어진 심성이 있다는~


글샘 2011-04-28 12:15   좋아요 0 | URL
특별회차를 만들어 위로하신...이라 하니 좀 그렇네요. ㅎㅎ
세실님이 시를 적어 두시고,
뭐 어떤 뜻이었을까나...하고 물어보셔서 몇줄 적은 건데요. 뭐.

삐뚤어지셨군요.^^ 그렇다고 돌을 던지실 거 까지야.
님도 좋은 시 하나 뽑아 주세요. 제가 특별회차를 만들어 드립지요.

양철나무꾼 2011-04-30 02:51   좋아요 0 | URL
아웅, 선의와 부러움으로 단 댓글이었는데...삐뚤어짐에 방점이 찍혔네요~ㅠ.ㅠ
전 정중히 사양할래요.
유니크할 때 스페셜하다고 하지, 두번째부턴 스페셜한 거 아니거든요~^^

글샘 2011-04-30 12:20   좋아요 0 | URL
ㅎㅎ 삐뚤어짐에 점을 찍었더니 삐짐 모드가 되실라...
뭐, 이 나이에 새삼 유니크할 거나 스페셜할 게 뭐 있겠습니까?
싶지만,
사실 매일 매일이 스페셜이고,
유니크한 걸로 만나고 살아야 될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

(그리고 방점은 옆에 찍는 점을 뜻해요. 윗점같이 써야하는데, 예전에 세로쓰기 습관에서 방점이란 말을 그저 쓰곤 하죠. ^^)
 

오늘은 달팽이가 주인공인 시를 두 편 보자.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김광규, 달팽이의 사랑>

 

이 시의 주인공은 달팽이와 화자 자신이란다.
달팽이는 천천히 천천히 사랑을 완성해가는 존재야.
거기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거지.

장대같은 빗줄기라는 시련을 뚫고 드디어 만난 달팽이 두 마리.
그들이 뛰어왔을 것이라고 표현하지만,
달팽이가 어떻게 뛰어올 수 있겠니.
그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지.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오는 달팽이의 사랑.
느릿느릿 움직이는 속도와는 달리,
그들의 간절한 사랑은 숨가쁘게 느껴진다는 역설적 표현이 재미있다.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화자는,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화자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고,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있는 거지.
집 따위 마련할 필요 없이도 느릿느릿 사랑하는 달팽이만도 못하다는 자아 성찰. 



시적 화자는 어느날 문득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달팽이 두 마리’를 보게 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생각하지.
‘집 한 칸’을 장만하기 위해 바둥거린 십 년
아내나 가족을 사랑한 시간의 너무 적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거지.
시련과 역경을 헤쳐 나와 천천히 사랑의 삶을 완성해 온 ‘달팽이 두 마리’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바득바득 애를 쓴 화자의 삶을 대비시키고
‘달팽이 두 마리’가 환기시키는 ‘느림’의 이미지를
사랑의 깊이로 확장시킴으로써 시의 감동을 만들어 내고 있지.

다음엔 마찬가지 달팽이를 노래한 정현종의 시를 읽어 보렴.
 

등에 지고 다니던 제 집을 벗어버린 달팽이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엎드려 그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서였습니다. <정현종, 어떤 성서>


화자가 오솔길을 걷는데,
집을 벗어버린 민달팽이 한 마리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대.
그걸 바라보는 화자.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단다. 



이 시 구절을 읽는 일만으로도 숨을 살며시 쉬어야 할 것 같구나.
정말 성경을 공손하게 온 마음을 다해 읽듯이,
살아있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극대화한 표현이야.

그걸 ‘오늘의 성서’란 표현으로 마무리했단다.
달팽이 한 마리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성경 속 인간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겠지.

오늘은 달팽이의 노래 두 편을 읽어 봤단다.
달팽이는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참 느릿느릿한 존재지.
인간의 속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속도감이란다.
그렇지만, 달팽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움직임이 건성건성이고 무가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속도감.
삶은 늘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나는 이렇게 잘났는데 저런 모자라는 것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이렇게 뻐기는 녀석들은 달팽이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결코 느낄 수 없겠지.
또 달팽이의 삶이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저 자기 관점만 옳다고 우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쉬운 인간이,
달팽이를 보면서,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인 듯 싶다.
오늘은 느릿느릿 정신을 천천히 움직여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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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6 12:0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컴에서 봐도 잘 보이던데요. ^^

마녀고양이 2011-04-26 14:44   좋아요 0 | URL
이젠 잘 보여여, 알라딘의 이미지 서버가 조금 문제가 있다더니
속도가 느렸나봐여. 거기에 우리집 컴터의 공감대 형성이 너무 잘 된 듯한걸요. ㅎㅎ

달팽이 너무 이뻐요, 저 사진들 못 봤으면 아쉬울뻔 했네요.

글샘 2011-04-26 16:20   좋아요 0 | URL
ㅎㅎ 달팽이가 느리게 갔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