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시조를 연속 읽어보고 있다. 
오늘은 부정적 세상에 물듦을 경계하도록 주의를 주는 시들을 살펴볼까 싶다.
워낙 세상은 다양한 인생들이 교차하는 곳이니,
자기 이익을 위하여 상대방을 해코지하는 일도 많은 곳이니 말이다.

 

가마귀를 뉘라 물드려 검따하며 백노를 뉘라 마전하여 희다더냐
황새다리를 뉘라 이어 기다하며 오리다리를 뉘라 분질러 자르다하랴
아마도 검고 희고 길고 자르고 흑백장단이야 일너 무삼하리오 (무명씨)

(해석)
가마귀를 누가 물들여 검다하며, 백로를 누가 하얗게 바래도록 만들어서 희다더냐.
황새 다리를 누가 이어 길다하며, 오리다리를 누가 분질러 짧다고 하느냐.
아아! 검고 희고 길고 짧고의 흑백(黑白) 장단(長短)을 따져서 무엇하랴?

* 마전하여 : 햇빛에 쬐어 흰빛이 나도록 하여

이 시조는 역시 사설시조지.
재미있는 것은 보통은 까마귀를 싫어하고 백로를 좋아하니깐,
까마귀 나쁘다 생각하는데
발상을 바꾸면 백로가 나쁜 놈일 수도 있다, 이렇게 전개하기 쉽거든. 

이 시조에서는
까마귀는 검고 백로는 희다.
그런데 누군가는 까마귀는 물들여 검고 백로는 마전하여 흰 것이라 우기지.
황새는 다리가 길고 오리는 짧아.
그치만 억지부리기 좋아하는 누군가는
황새 다리도 원래 짧은데 이어서 길어 진 거고, 오리다리는 분질러 짧아진 거라 우긴대. 

세상에!
우길 게 따로 있지. ㅋ
그치만, 사노라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우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단다.
특히 정치가가 그렇지. 

화자는 '흑백장단'을 가려서 뭐하겠느냐!
다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어.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모양이지.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기네 편이 아니라고 상대방을 모해하여 곤경에 빠트리는 경우가 많거든.
그러려면 이런저런 말로 옭아매야 하는데,
그런 세태를 비판한 시로 읽으면 되겠다.  
이 시조와 유사한 시조가 있어.

가마귀 거므나다나(검다고 하거나) 해오리 희나다나
황새다리 기나다나 올해다리 져르나다나
세상에 흑백장단은 나난 몰나 하노라(무명씨)

(해석)
가마귀가 검다고 하거나, 해오라비 희다고 하거나
황새다리가 길다고 하거나,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거나
세상살이의 검고, 희고, 길고, 짧은 것을 나는 몰라 하노라.

흑백장단을 나는 모르겠다.
그걸 가려서 뭐하겠느냐~는 위의 시조와,
나는 모르겠다!는 아래 시조는 쌍둥이처럼 보이는구나.
그만큼 세상이 혼란스러운 곳이었단 이야기겠지. 

세태를 풍자한 시를 하나 더 읽어 보자.  

발가버슨 아해들이 거믜쥴 테를 들고 개쳔으로 왕래하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져리 가면 죽나니라 이리 오면 사나니라 부르나니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 일이 다 이러한가 하노라. (이정신)

(해석)
발가벗은 아이들이 거미줄 채를 들고 개천으로 오고 가며,
발가숭아 발가숭아, 저리 가면 죽고 이리 오면 산다하고 부르는 것이 발가숭이로다.
아마도 세상일이 다 이처럼 속고 속이는 것인가 하노라.

이 시의 재미는 '발가버슨 아이들'을 가리키는 '발가숭이'가
'고추잠자리'를 가리키는 '발가숭이'와 동음이의어가 되어
앞의 발가숭이가 뒤의 발가숭이를 잡으려 한다는 말이 된다는 점에 있어. 

세상사는 이렇게 비슷한 존재끼리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이라는
왠지, 씁쓸하구만~ 이런 어조로 읊은 시가 되겠지.
세태를 풍자한 대표적인 시조로 문제에 잘 등장하는 편이란다.  

가마괴 눈비 마자 희난 듯 검노매라
야광(夜光)명월(明月)이 밤인들 어두오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변할 줄이 이시랴. (박팽년)

(해석)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희어지는 듯하다 다시 검어진다.
밝은 달이 밤이라고 해서 어두울 리가 있는가?
임금(단종)을 향한 한 조각 붉은 마음이야 변할 수 있겠는가?

다시 까마귀 이야기.
시조를 보면 까마귀가 정말 많이 등장해.
박지원의 이야기를 봐도,
까마귀는 검지만은 않다, 는 주장을 하거든.
까마귀를 보면 붉고 푸르며 누런 빛들이 모두 반짝이는데 사람들은 '검다'고 표현한다는 거지. 

세상의 다양성을 살려 읽지 못하고,
제 눈에 비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여 '고정'시키는 사태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 것이겠지. 

이 시에서는
까마귀가 눈을 맞아 희어지는 듯 하지만 다시 검어진대.
까마귀의 본질은 검은데,
눈비를 맞아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단 거지. 
아마도 까마귀는 수양대군을 가리키는 듯 해.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세조 말이야.
원래 음흉한 까마귀인데, 잠시 희어지는 듯 하지만, 본질은 시꺼먼 놈이란 비아냥이 들었지.

야광주는 밤이라도 어두워지지 않는 구슬이지. 
까마귀의 빛이 변치 않고 드러나듯,
야광명월은 아무리 어두워도 변치 않고 빛나는 거야.
그러니 화자의 단종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한 조각 붉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충성의 표현이지. 

초장의 '가마귀'는 '세조를 지지하는 세력'을 가리킬 수도 있고,
중장의 '야광 명월'은 '단종을 잊지 못하는 세력'이고 말이지.

왕조 시대에는,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는 것이 중요했을 거다.
그에 따라서 출세를 하기도 하고, 귀양을 가기도 하고 했으니 말이야. 

이렇게 꼿꼿했으니 세조가 권력을 잡았다고 굽히지 않았지.
그래서 역모를 꾸미고 고문당하다 죽게 되는데, 아버지, 동생, 아들까지 다 죽였대.
그치만 며느리가 손자를 잘 숨겨둬서 후손이 전한다는구나.
왕조 시대는 '왕'의 안존을 위하여 참 비극적인 일도 잘 꾸몄다 싶어. 

가마괴 디디는 곧애 백로야 가디 말아
희고 흰 긷헤 거믄 때 무칠셰라 
딘실로 거믄 때 무티면 씨을 낄히 업사리라 (이시)

해석
가마귀 발 디디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희고 흰 깃털에 검은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가 한번 묻으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이 시조는 어렵지 않지?
까마귀는 전형적인 '악'의 대표,
백로는 '선'의 대표자인 거야. 

청렴결백을 모토로 삼았던 학자에게
검의 때가 묻으면 그것을 씻는 길은 참으로 어렵고 먼 길이라
그런 세상을 경계하며 깨끗한 이는
더럽히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시조야. 

'근묵자흑, 근주자적'이란 한자 성어가 있단다.
먹을 가까이 하면 저절로 검게 되고,
인주를 가까이 하면 저절로 붉어 진다.
주변의 친구나 상황에 따라 사람들은 때가 묻기도 하고 더러워지기도 하는 법이지.

가마귀 검거라 말고 해오리 셸줄 어이
검거니 셰거니 일편도 한져이고
우리도 수리두로미라 검도셰도 아녜라

* 검거라 말고 : 검다고 비웃지 말고

(해석)
까마귀 검다고 하지 말고, 해오라기 희다하지 말 것을
검거나 희거나 너무 치우쳐 외곬수로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검지도 희지도 않기를.... 

까마귀가 검다고 비웃고 욕을 했나봐.
아, 저놈은 엄청 더럽고 치사한 놈이야~ 이러고.
해오라기는 희고희다고 했는데 어이하랴~ 

검고 흰 것이 <일편 :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침>하구나.
우리는 수리두루미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권하고 있어. 

세상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 경우 피해를 입는 경우도 많거든.
그렇지만, 또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아서
그것의 중도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단다.
어렵지만,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시조겠지.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것치 거믄들 속좃차 거믈소냐
것 희고 속 거믄 즘생은 네야 긘가 하노라(이직)

cf) 이본(異本)에서는 종장이 '아마도 것 희고 속 검을슨 너 뿐인가 하노라'로 되어있는 곳도 있다.

(해석)
까마귀가 겉보기에 검다하고, 해오라기야 비웃지 말아라.
비록 겉이 검을지라도 속마음까지 검을쏘냐?
겉이 희면서 속이 검은 짐승은 바로 너인가 하노라.

이 시조가 가마귀 시조의 대표작이지.
겉이 검은 가마귀, 
겉이 흰 백로.
그러나 중장에서 <가마귀는 겉이 검지만 속조차 검겠는가>하며 반전을 기하지.
종장에선 대놓고 백로를 비판해.
<겉 희고 속 검은> 너야말로 비판의 대상이야!
알겠어?
겉만 흰 척 하지마!
우린 다 알고 있다고!!! 이런 말이야.

이 시의 작가 이직은 조선의 개국 공신이야.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될 때,
고려 유신들은 절의를 지킨다면서 <맥수지탄>의 노래를 부르곤 했지.
새 왕조의 개국 공신들에게는 강한 비판을 던지고 말이야. 

개국 공신으로서 <가마귀> 처지가 된 화자.
절의를 지킨다는 <백로>들이야말로,
이적지 고려 왕조에서 부유층으로, 귀족으로 배불리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그야말로 썩어빠진 고려 왕조의 몰락에 기여한 공이 큰 넘들이면서, 
우리를 비웃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이러는 시조란다. 

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우국지사인 체하는 인사들은
시대가 불안할수록 더 많은 법이지.
자기가 살아 남으려고 남들을 욕하는 자들 말이야.

가마귀 싸호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셩낸 가마귀 흰 빗츨 새올세라
청강에 조히 씨슨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정몽주 모친)

해석
까마귀들이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아라.
성이 난 까마귀들이 새하얀 너의 몸빛을 보고 시기하고 미워할세라.
맑은 강에서 깨끗이 씻은 너의 결백한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이 자식을 백로에 비유했어.
까마귀 옆에 가면 흰 빛을 시샘할까 두렵구나.
맑은 강에 깨끗이 씻은 몸이 더러워질까 두렵다고 했는데,
역시 백로 정몽주는
까마귀 이방원의 무리에게 당하고 말지.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긔 엇더하료
우리도 이갓치 얼거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이렇게 '하여가'를 부르며 회유하는 이방원에게
거부의 뜻으로 남긴 '단심가'는 정말 유명하지.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 주거
백골이 진토되야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결국 정몽주는 돌아가는 길에 선죽교에서 제거되고 만단다.
세상 만사가 그런 거야.
필요하면 쓰고,
반대하면 버리고...
비정한 시장통 같은 곳이지.
비장성시라고 하던가.

검으면 희다 하고 희면 검다 하네
검거나 희거나 올타하리 전혀없다
찰하로 귀먹고 눈감아 듣도보도 말니라 (김수장)

(해석)
검으면 희다하고 희면 검다하네.
검거나 희거나 간에 옳다할 사람 전혀 없다.
차라리 귀먹고 눈을 감아 듣지도 보지도 말리라.

세상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야.
검은 걸 희다고 우기지.
흑백간에 옳다고 인정해주는 이가 전혀 없대.
그러니 차라리 귀멀고 눈감아 듣고 보지 않겠대. 

아, 얼마나 세상에 회의적인지...
얼마나 세상에 대하여 염세적인지...  

구룸이 무심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이셔 임의로 다니면서
구태야 광명한 날빗츨 따라가며 덥나니 (이존오)

(해석)
구름이 사심(邪心)이 없다는 말이 아무래도 허무맹랑하다.
하늘에 높이 떠 있어(떠서) 제멋대로 다니면서
하필이면 구태여 밝고 밝은 햇빛을 따라가며 덮는단 말인가? 

고려는
왕조 국가였지만,
지방의 귀족들이 상당한 패권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던 모양이야.
상대적으로 왕권은 약화되었겠지. 

조선에 비하면 왕권이 약하던 고려는,
몽고의 침략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고려 말, 새로운 사상으로 성리학이 들어오게 된다.
성리학은 '자신을 꼿꼿하게 가다듬는 철학'이기도 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의 철학'이기도 했지.
출세하기 전에는 '위기지학'으로서 자신을 가다듬고,
세상에 나간 다음엔 '위인지학'으로서 세상에 올바른 정치를 베푸는 것이야. 

출세하기 전의 '사'와 출세한 뒤의 '대부'로서의 <사대부>가 새로운 세력이 되고,
이성계 역시 그런 신진 세력의 의지를 틈타 임금자리를 얻게 된 것이고. 

흔들리던 고려 말,
공민왕 때 개혁가 신돈이란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승려였지만 고려는 불교국가였으니 승려가 주요직책에 오를 수 있었지.
공민왕은 신돈을 꽤 믿었던지 신돈의 개혁 정책에 힘을 실어주었지.
그는
토지개혁 관청을 두어 부호들이 권세로 빼앗은 토지를 각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켰으며,
국가 재정을 잘 관리하여 민심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렇지만 귀족국가 고려의 부호 세력들은
그의 개혁 정책이 달갑지만은 않았겠지.
결국 신돈은 제거되고, 역사 속에는 <나라를 망친 요망한 승려>로 남게 된다. 

역사는 패자에게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단다.
백제 의자왕이 삼천궁녀랑 놀아 나다가 나라를 망쳐 먹었다는 둥,
(실제 의자왕은 성실한 왕이었대.)
신라 경순왕이 맨날 술이나 마시며 포석정에서 놀았다는 둥,
승자 위주의 역사 서술을 하곤 하지. 

이 시조는 고려 말의 '신돈'을 풍자한 시조래.
구름이 '무심'하다고 하지만,
정말 욕심없는지... 아닌 것 같다고 의문을 제기해.
하늘 가운데 멋대로 다니는 구름은, (신돈이 임금의 총애를 받고 활동이 많은 걸 비꼬는 거지.)
구태여 밝은 햇빛을 따라다니면서 덮는 존재라고 하고 있단다. 

역사 서술에 남은 어떤 것이 신돈의 본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빠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개혁에 반대하다가 투옥까지 된 작가가
신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쓴 시가 아닌가 싶어. 

오늘 다룬 시조들은,
혼탁한 세태에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시조들로 엮었다.
흑백을 가리기 어려운 곳이 세상이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제거하려는 곳이 세상이야. 

암튼,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조심조심 건너야 하는 곳이 세상이란다.
이 시조들이 들려주는 함축적 의미를 두고두고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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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가원 모의고사에 엊그제 설명한 '견회요'가 나왔더구나. 
시험은 바로 어제 공부한 것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 늘 관심을 가져 주기 바란다.

조선은 왕조 국가란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굳이 조선이 왕조 국가임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사고의 중심임을 알아야 조선 시대의 시가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랬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양난을 지나면서,
조선은 왕조 중심의 파워가 무너져 간다.
왜란 때는 임금이 백성 보는 데서 도망을 갔고,
호란 때는 임금이 남한산성에 숨어 버티는 통에 백성들은 피해가 컸다.

백성들의 사고 방식과 함께,
조선 후기의 생산 양식도 바뀌면서,
새로운 형식의 시조가 등장한다.
그것이 사설시조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4음보격이 많이 벗어나 거의 자유시에 가깝게 늘어난 시조를 뜻한다.

평시조는 느릿하게 부르는 양반들의 노래로 정해진 격식을 중시하는 노래였다면,
조선 후기의 사설시조는 흑인들의 ‘랩’에 가까운,
그러니깐, 평민들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중얼거림, 흥얼거림에 가까운 노래였단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워졌다는 특징과 함께,
내용적으로도 다양한 삶의 애환이 담긴다.
한번 감상해 보자. 


창(窓) 내고쟈 창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자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새 크나큰 장도리로 똥닥 바가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닫져 볼가 하노라.

(해석) 창을 내고 싶구나, 창을 내고 싶구나. 이내 가슴에 창문을 만들고 싶구나.
      고무래 들창문, 가는 살의 장지문, 들창문, 여는 창문, 암돌쩌귀 수돌쩌귀, 배목걸쇠, 크나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서 이 내 가슴에 창을 내고 싶구나.
      이따금 너무 답답할 때면 열고 닫아 답답함을 풀고자 하노라

이 시조의 초장은 같은 구절이 반복되지.
이런 반복을 AABA 반복이라고 배웠을 터이고.
민요에서 그런 반복이 많이 나온단다.

가시리 가시리 바리고 가시리
살어리 살어리 쳥산애 살어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성님 성님 사촌 성님
이런 것들이지.

가슴에 창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상황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가정한 거지.

중장에선 정말 창문을 만들 것처럼,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새 등을
큰 장도리로 뚝딱 박아서
가끔 정말 답답할 때면 여닫아 보고 싶다는 하소연이지.

가슴 속에 답답한 심정이 가득한 서민의 마음을 잘 표현한 시조로 읽을 수 있겠다.
세상살이의 고달픔, 근심, 답답함이 ‘꽉 막힌 방’같이 느껴질 정도로
엄청 답답해 보이면서도
고모장지, 셰살장지.... 이런 것들을 늘어 놓고 있는 걸 보면,
‘이사람이 정말 답답한 거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를 느끼게도 한단다.

아마도 이 시를 지은 사람은 창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어.
일반인들은 알기 어려운 다양한 전문 용어가 등장하니 말이지.

암튼 생활의 비애, 고통 등을 어둡게만 그리지 않고,
이처럼 웃음을 주는 방식으로 해학적으로 극복하려는 것이
한국 서민 문학의 특징이기도 하단다.

<단아한 멋> <정제된 멋>을 풍기던 정격 평시조에 비하자면,
<질서 변형의 멋> <웃음과 해학의 멋>이 드러난 것이 사설시조가 되겠지.

다만, 사설시조라 하더라도
이 역시 시조창으로 불리던 평시조의 영향을 받아서,
종장의 첫 구절 <석 자>는 고정불변인 경향이 있단다.
이 시의 ‘잇다감’이 해당되겠지.

평시조를 부를 때는 느리고 느긋한 곡조가 이어지는데,
종장의 첫구 석 자를 부를 때는,
변화가 심하고 높낮이가 많이 바뀌어 노래부르기가 어렵다는 특징 때문에,
글자 수를 변화시키지 않고 ‘석 자’로 고정시켰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지.

계속 한편 더 읽어 보자. 

 

  나무도 바히돌도 업슨 뫼헤 매게 쪼친 가토리 안과
  대천바다 한 가온대 일천석 시른 대중강이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돗대도 것고 뇽총도 끈코 키도 빠지고 바람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셧거 자자진 날의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남고 사면이 거머어둑 천지 적막 가치 노을 떠난대 수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엇그졔 님 여흰 안이야 엇다가 가을하리오.

(해석)  나무도 바윗돌도 없는 산에서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줄도 끊어지고 돗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 만리 남았는데 사면이 검어 어둑하고 천지 적막 사나운 파도 치는데 해적 만난 도사공의 마음과
      엊그제 임 여윈 내 마음이야 어디다 견주어 보리요.

'삼한(三恨)', 혹은 '삼안(三內)'이라고 널리 알려진 이 작품은,
'안'이라는 말로 마음을 나타내면서,
세 가지 절박하기 그지없는 마음은 어디다 비할 데도 없다고 하고 있어.

맨 마지막으로 엊그제 임을 여읜 자기 마음을 말하기 위해서
다른 두 가지를 가져와 놓고서,
비할 데가 없다는 것으로 해서 그 둘이 각기 독자적인 의미를 갖도록 개방해 버렸으니
비유를 사용하는 방법치고 이만큼 기발한 예를 다시 찾기 어렵다는 평을 듣고 있지. 

셋이 모두 황당하고 아픈 마음이기도 하고,
그 중에 가장 아픈 마음은 '엊그제 임 여윈 내 마음'이기도 하단다.  

숨을 나무나 바윗돌이 없는 산에 매에게 쫓긴 까투리의 타는 속과,
험한 바다에서 큰 재물을 실었는데 도둑까지 만난 사공의 우두머리의 타는 속과,
엊그제 임 여읜 내 속을 어디다 비교하겠는가.
역시, 종장의 내 속이 가장 까맣게 탔다는 강조가 되겠지. 

전체적으로 곤란한 상황이 심해지는 걸로 봐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란 속담이 떠오르는구나.
그러면서도 어휘는 마치 판소리에서 해학적인 대목을 묘사하듯,
구수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놓치지 않고 있어 사설시조는 멋진 문학 작품이 된단다. 

 


요즘엔 이렇게 손글씨처럼 보이는 멋스런 글씨체가 유행이다.
이런 걸 캘리그래피라고 해.
내용도 멋지고, 글씨도 멋지지.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뛰어 내닫다가 두험 아래 잣바지거고.
모쳐라 날랜 낼싀만졍 에헐질 번 하괘라.

(해석) 두꺼비가 파리한 마리를 물고 두엄 위에 뛰어올라 앉아서,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날랜 흰 송골매 한 마리가 떠 있으므로 가슴이 섬뜩하여지고 철렁 내려앉아 펄적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로 나자빠졌구나.
      다행스럽게도 몸이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동작이 둔한 놈이었다면 다쳐서 몸에 멍이 들 뻔하였다.

이 시조는 마치 '이솝 우화'에라도 나오는 이야기 같지?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거름(두엄 : 주로 풀을 쌓고 분뇨를 덮어 썩게 만든 퇴비)에 올라갔대.
근데 저 멀리 매가 있는 거야.
놀라서 뛰어 내리다가 똥바가지인 두엄 아래 자빠지고 말았단다.
그치만 두꺼비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마침 날쌘 나니 망정이지, 다른 넘들이었다면 피멍들 뻔 했잖아." 이랬다는 이야기.  

우화처럼 이야기를 담은 것을 <우의적(寓意的)>인 시라고 말한단다.
수탈하는 중간 관리들을 강하게 풍자한 시지. 

두꺼비는 송골매는 두려워하는 넘이야.
높은 관리라면 임금을 무서워할 거고,
하급 관리라면 고급 관리를 무서워할 거고,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세상에 대한 풍자.

약자에게는 강한 체 뽐내고, 강자 앞에서는 비굴한 양반 계층을 풍자하는 멋진 시조란다.
두꺼비를 의인화하여 약육강식(弱肉强食)을 풍자한 사설 시조고,
백성을 못살게 굴던 양반들이
한족(漢族)이나 왜인(倭人), 북방 후진 민족 등 강대국의 침략에 직면하면 여지없이 굴복하고 마는 비굴한 태도를 비판한 시조이기도 해. 

명나라에 대한 사대주의,
임진왜란때 임금의 도망,
병자호란때 치욕스런 굴욕,
그렇지만 백성에게는 수탈에만 욕심내는 탐관오리들...
모두 두꺼비같은 풍자의 대상이 되겠지.   

그리고 꼭 두꺼비만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돌아가는 '더러운 세상'을 풍자하는 것이기도 하단다. 

김광규의 '묘비명'은 전에 한번 읽어본 일이 있는 시다.
한번 더 읽어 보자.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碑石)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
불의 뜨거움 꿋꿋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김광규, ‘묘비명’>

반어와 풍자로 가득한 시지.
돈과 권력을 움켜쥔 사람의 '훌륭한 비석'도 반어지.
시인은 도대체 어떤 무덤을 남길 것인지... 생각하게 하는 시. 
세상을 풍자한 시로 잘 등장하는 편이란다. 

세상이 삐뚤다고 매번 이야기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또 냉철한 눈을 유지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세상은 비굴하게 살지 않는 일도 어렵지만,
또한 남을 괴롭히며 살게 되기도 쉬운 노릇이니,
이런 문학 작품을 읽으며 수시로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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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창이란 이야기를 몇 번 했지?
조선의 왕조를 떠받치던 기반은 '사대부'였단다.
사대부는 문화예술을 중시하던 계층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시조를 지어 부르던 전통이었지. 

사대부와 더불어 연회자리에서 예술 창작과 감상에 참여했던 계층으로
기생들이 있었어.
기생들은 단독부임해야하는 공무원의 특성상,
관리들의 생활을 뒷받침해주던 사람들이었다고 보면 될 거야. 

그 중에 황진이라는 기생은 특별한 사람이지.
다양한 남성들과 남긴 이야기도 많지만,
서경덕이란 당대 최고의 학자의 인품에 감동하여 멋진 벗이 되었다고 하더구나. 

황진이의 시조가 6편 남아있는데, 한 수씩 읽어 보자.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는 님의 정이
녹수 흘너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니져 우러예어 가는고

(해석) 늘 푸른 청산은 나의 마음이고 매양 이리저리 흐르는 물은 임의 정과도 같다.
      물이야 비록 흐르는 대로 흘러가더라도 청산이야 변할 수 있으랴.
      그러나 흐르는 물도 청산을 잊지 못해 울며울며 흘러가는 것 같구나.

내 마음은 청산처럼 변치 않고 그대로 있는데, 임의 사랑은 흐르는 물과 같이 변한대.
(나는 임을 그리워 잊지 못한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녹수(임)도 청산(나)를 못 잊어 울며 흘러 가는가, 하는
애절한 사랑노래지.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개성) 3절이라 일컬어지는 황진이.
아름다운 미모,
詩書音律(시서 음률)에 뛰어나고 묵화도 잘 치는,
그래서 문인, 碩儒(석유, 유학자들)와 詩酒(시주)로 교우하며 그들을 매혹시켰고,
지족선사를 파계시켰는가 하면,
도도하기 이를 데 없었던 왕족 벽계수를 '청산리 벽계수야' 라는 시조 한 수로 도취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해.
그러나 존경하는 서경덕에게만은 어쩔 수 없는 여인으로서의 연정을 버릴 수 없었던 것으로,
그의 시조에 나타난 임은 곧 서경덕을 칭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많단다.  

이 시조가 98년 수능에 등장했는데, 문제는 어렵지 않았단다.
한번 풀어봐.

 (나)의 시적 형상화 방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① 굳은 뜻과 변하는 정(情)을 대조시켰다.
② 울음을 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것에 비유했다.
③ 청산(靑山)은 불변한다는 관습화된 상징을 이용했다.
④ 정(情)이 변하는 것을 물이 흘러가는 것으로 구상화했다.
⑤ 이별은 청산(靑山)의 탈속적(脫俗的)인 이미지로 나타냈다.

1)은 청산의 굳은 뜻, 유수의 변하는 정이 대조된 거 맞고,
2)는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소리내어 우는가?'에서 드러나 있고,
3)은 청산의 불변 맞고,
4)는 임의 정이 유수처럼 변하는 거 맞고,
5)는 '청산'이 '속세를 벗어난 이미지'가 아니라, '불변'의 이미지니깐, 정답은, 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ㅣ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一到)창해(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

(해석) 청산 속을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수월하게도 흘러간다고 자랑을 마라.
      한번 넓푸른 바다에 가기만 하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비추고 있는 좋은 밤이니 잠시 쉬어 감이 어떠하냐?

이 시조의 특성은 <중의법>에 있어.
벽계수는 한자를 풀면, <푸른 시냇물>인데, <왕족 이은원의 비유>이기도 해.
명월의 한자 뜻은, <밝은 달>인데, <황진이의 기명(妓名)>이기도 하지. 

푸른 시냇물이 시원하게 콸콸 내려가는데, 빨리 흐른다고 잘난 체 말라고 그랬어.
한번 바다에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인생사이니,
산에 달이 가득한 이 밤, 쉬어가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는 꼬임이지. 

이쁜 명월이가 왕족 벽계수를 놀리는 시조이기도 하지.
인생은 금세 지나가는데, 잘난 체 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 뭐, 이런 거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청산>
순간적으로 변하는 <벽계수>
인생은 헛되이 금세 지나가는 것이니 풍류를 즐기며 놀아 보세~
이런 멋진 시조지. 

애원이나 음탕함으로 꾀었다면 오래 남지 않았겠지만,
멋으로 남성을 유혹해 내고 있는 묘방을 보여 주고 있어서 오래도록 감동을 주는 시조지. 

이 작품의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가 남아 있단다.

이조(李朝) 종실(宗室)에 벽계수(碧溪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황진이를 만나더라도 침혹(沈惑)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늘 큰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달 밝은 가을 밤, 그를 개성 만월대(滿月臺)로 오게 하였다.
그리고 황진이는 곱게 단장한 후, 낭랑한 목소리로 함축성(含蓄性) 있는 표현을 빌어 이 시조를 읊어 그를 유혹하였다.
이 노래를 듣던 벽계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이에 도취되어 그만 타고 온 나귀에서 떨어져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다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情)은 나도 몰라 하노라

(해석) 아! 내가 한 일이여! 이토록이나 그리울 줄을 몰랐더란 말이냐?
      가지말고 있으라 했더라면 떠났으랴만, 제 구태여
      괜시리 보내놓고 이에 와서 그리워하는 속내를 나 자신도 모르겠구나.

이 시조의 화자는 <회한>에 싸여 있단다.
후회하는 한스러움이 <회한>이지. 

'제 구태여'는 '임이 구태여', '내가 구태여'로 다 해석이 가능해서
어떻게 해석하든, 이별은 어쩔 수 없다는 일이며,
그 책임을 굳이 따져서 무엇하겠느냐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어. 

임이 그립지만 어쩔 수 없음을 확인하는 심리의 애틋함이 기막히게 포착되었다는 평을 얻는 시조야.
겉으론 강해보이지만, 속으론 외로움에 떠는 화자의 마음을 읽는 일은
슬픈 상황이지만 절절한 마음이 전해져서 읽는 이를 감동시킨단다.

자존심과 연정(戀情) 사이에서 한 여인이 겪는 오묘한 심리적 갈등이
고운 우리말의 절묘한 구사를 통해서 섬세하고 곡진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시조 문학의 결정체를 잘 보여주지.

이 시는 한국 시의 전통인 <이별의 정한>에 닿아 있어서 다음과 같은 문제와 많이 어울린단다. 

♣ 이 시조의 정서에 접맥된 작품이 아닌 것은?  

 ① 가시리 가시리잇고 / 바리고 가시리잇고.
 ②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③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④ 구름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이별 노래가 아닌 것은 3번이지?

산은 녯 산이로대 믈은 녯 믈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녯 믈이 이실쏘냐
인걸(人傑)도 믈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해석)  산은 옛날의 산 그대로인데 물은 옛날의 물이 아니구나.
      종일토록 흐르니 옛날의 물이 그대로 있겠는가.
      사람도 물과 같아서 가고 아니 오는구나.

산과 물의 대조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짚어 보고 있는 시조야.
산과 물의 대조적 의미가 잘 드러나 있지.  

여기서 '인걸'을 보편적 의미로 보면 이 작품의 성격은 철학적, 관조적이라 볼 수 있지만,
정을 둔 임(서경덕)이라고 보면 돌아오지 않는 임에 대한 슬픈 심사를 표현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단다.

황진이는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松都三絶)이라 부른 건 아까 이야기했고,
황진이는 한때 서경덕을 유혹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일한 존경의 대상으로서 사제(師弟)의 의(誼)를 맺었지.
이 시조는 그의 스승이었던 서경덕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것이래. 
존경하는 사람도 물의 흐름과 같아서 죽게 마련이라
자연에 대한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는, <인생무상>을 확인하는 시조라고 볼 수 있어. 

다음엔 가장 유명한 절창을 하나 들어 보자.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해석) 동짓달 긴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속에 서리서리 넣어 두었다가,
      정든 임이 오신 밤이면 굽이굽이 펼쳐 내리라.

이 시조의 독창성은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한 것이지.
베어낼 수 없는 자연적 개념인
기나긴 동짓달 <밤>을 한허리를 베어 두었다가,
임이 오신 날 밤이면 구비구비 펼쳐 보겠대.
참신한 비유와 우리말을 잘 살려 쓴 묘미가 돋보이지.

홀로 지새우는 동짓달 기나긴 밤
정든 임과 함께 덮는 춘풍 이불 사이의 거리감,
이러한 거리에서 지은이의 그리움과 안타까움은 극대화되고 있는 거지. 

초장의 '한허리'의 '한'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말인지 물을 때가 있어. 

'한'은 여러 가지 뜻이 있거든.
1. 한창이다
2. 가운데, 복판
3. 크다. 위대하다  
4. 같다

한허리는 '가운데, 복판, 중간'의 의미겠지?
'한겨울' 같은 건 한창이란 뜻이고,
'한글'은 위대하단 뜻이고,
'한동네', '한반'은 같다는 뜻이지.

팝송 중에 <Time In A Bottle - 병 속에 추억의 시간을 담아>란 노래가 있어. 

이 시조와 발상이 아주 비슷하단다.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아껴두고 싶대. 

엄마가 맨날 그러잖아.
민우 어릴 때로 시간을 돌려준다면, 정말 그 때로 가고 싶다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그런 거 아닐까 싶다. ^^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만약 시간을 병에 담아 둘 수 있다면 /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Is to save every day / Till eternity passes away / Just to spend them with you
영원토록 당신과 함께 /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 하루하루를 아껴두는거에요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만약 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 만약 말로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I'd save every day / like a treasure and then /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난 보물처럼 모든 날들을 아껴서 / 당신과 다시 함께 보내고 싶어요

But there never seems / to be enough time to do / the things you want to do / Once you find them
하지만 원하는 일을 하기에 / 충분한 시간이 있는건 / 결코 아니지요 / 일단 당신이 시간을 찾고나면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 That you're the one / I want to go through time with
주위를 둘러보고 알게되었지요 / 당신이야 말로 나와 시간을 함께 /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이란걸

If I had a box just for wishes / And dreams that'd never come true
만약 나에게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 소원과 꿈을 담을수 있는 상자가 있다면

The box would be empty / Except for the memory of / how They were answered by you
상자는 비워둘거에요.당신으로 의해 / 어떻게 소원과 꿈이 이루어 지게 / 되었는가에 대한 기억만 제외하고는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月枕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닙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월침삼경 : 달도 잠든 깊은 밤

(해석) 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서 임을 언제 한 번이라도 속였길래,
      달 기운 한밤중이 되도록 나를 찾아올 듯한 기척이 전혀 없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에 (임의 발자국소리 인줄 속게되는) 내 마음인들 어찌하리오.

이 노래에선 나는 임을 속인 일이 없는데,
한 밤중이래도 임이 올 기색이 전혀 없다는 상황을 상정하고 있어.
가을 바람에 잎이 지는 소리를 듣고는 화자는 임이 오는 기척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 

스스로 한탄하면서 환각적인 감정까지 담긴 그리움의 결정판이라 볼 수 있단다.
이 짧은 시 안에서,
내가 언제 임을 속였기에... 하는 '원망'과,
온 뜻이 전혀 없네... 하는 '기다림'과,
추풍에 지는 닙 소리...의 '기대감'과,
어이하리오...의 '안타까움'이 함축되어 녹아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단다.

전설적인 인물 황진이를 추모하여 시조를 지은 이도 있었더.
임제라는 선비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던 길에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 읊은  시인데,
나중에 이 일이 양반의 체통을 떨어뜨렸다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고도 한단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白骨)만 무쳤난이
잔(殘) 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임제>

(해석) 푸른 풀 우거진 골짜기에서 자고 있느냐, 누워 있느냐.
      그 곱고 아름답던 얼굴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혀 있단 말이냐.
      술잔을 잡아 권해 줄 사람이 이제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아름답고 시문에도 능하던 황진이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작자는
술병을 차고 무덤 앞에서 혼자 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허무를 되씹고 있지.
그 아름답고도 황홀한 얼굴의 모습도 간 데 없이
그 무상한 죽음 앞에 입을 다문 만인의 연인 황진이.
불러도 두드려도 대답이 없으니 그녀의 세계를 사랑했던 작자의 애상적 감정은 쏟아져 흘렀던 거겠지. 

양반 신분으로 이런 일을 하면 분명히 세상은 욕을 할 터인데도,
화자는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표현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쯤에서 황진이가 그토록 마음 졸이며 사모했던 도인 서경덕의 시조도 한 수 볼까?

마음이 어린 후(後)ㅣ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늬님 오리마난
지난 닙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해석) 마음이 어리석으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다.
      겹겹이 구름 낀 산중이니 임이 올 리 없건마는
      떨어지는 잎과 부는 바람 소리에도 행여나 임인가 하고 생각한다.  

초장은 어쩌면 도학자로서의 서경덕이 자신을 돌아보는 느낌도 난다. 

스스로를 돌아보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는 것처럼.
그러나, 황진이와 엮어 생각하면,
첩첩산중에 임이 오겠냐마는,
지나는 잎과 부는 바람 소리에 임이 오는 소리인가 한다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 

오늘은 황진이의 시조 여섯 편과,
황진이의 팬클럽 회장 임제의 시조, 그리고 서경덕의 시조까지 묶어 봤단다. 

지난 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시조는 읊는 맛이 졸깃졸깃 최고란다.
짧은 구절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몇 번이고 읽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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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윤선도의 '만흥'을 공부했지?
만흥이 '게으른 사람의 느긋한 흥취가 일어남을 적은 시'였다면,
오늘 읽을 '견회요'는 조금 심각한 시란다. 

遣懷謠는 '견회'의 노래지.
보낼 견, 품을 회,
그래서 <시름을 쫓는 노래>, <회포를 푸는 노래>, <마음을 달래는 노래> 정도로 보면 되겠어.
암튼,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 모양이지? 

[가] 슬프나 즐거오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내 몸의 해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밧긔 여남은 일이야 분별(分別)할 줄 이시랴.

(해석) 슬프나, 즐거우나 (남들이)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거나
         내가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지
         그밖에 다른 일이야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1연은 자기가 할 일을 다 하면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남들이 옳다고 하든 외다(그르다)고 하든,
소신껏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지.
충실한 삶을 산 사람은 그 밖의 결과는 자신이 '분별'할 것이 아니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리라고 믿는 거겠지.
옛날 사람들은 '옳다' '바르다'의 반대로 '외다'는 말을 썼어.
그래서 '왼손잡이'는 '틀린, 나쁜' 뜻으로 보고 고치려고 노력한 거지. 

자, 처음 연에서 자기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나왔는데,
뭐, 삶이 그래서 평안하게 되었다면 굳이 시를 쓸 필요는 없었겠지?
수필을 쓰면 되는 거지. 바른 생활 교과서처럼 말이야. 

그런데, 시의 언어는 뭔가 '푸념', '넋두리'할 것이 있을 때 쓰는 <독백>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 닥칠지, 그걸 예상하고 읽어야 한단다.
계속 읽어 보자.

[나] 내 일 망년된 줄 내라 하여 모랄 손가
     이 마음 어리기도 님 위한 탓이로세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헤여 보소서

(해석) 내 일이 잘못된 줄을 나라고 해서 모르겠는가
         이 마음이 어리석은 것도 모두 임금을 위하기 때문일세
         아무개가 아무리 헐뜯어도 임금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여기 드디어 <임>이 나오는구나. <임금님>.
왕조 시대의 한계지. 모든 권력은 임금에게 있고, 임금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힘. 

윤선도는 봉림대군(뒤에 효종이 된)의 사부로 인정받는 학자였어.
효종이 임금이 되고, 효종의 모친의 죽음과 관련하여 3년간 상복을 입자고 주장했는데,
당시 권력층이었던 노론의 우두머리 송시열과 치열하게 싸웠지. 
송시열은 1년만 입자고 주장했거든.
이런 걸 예송논쟁이라 부른대. 

윤선도는 남인 출신이었는데, 노론의 송시열이 효종을 가짜 임금 취급한다며 격렬한 상소를 올리지.
너무 과격한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역공격을 당하고 만대.
송시열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가,
송시열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반대파가 윤선도를 공격하였고,
사형 주장까지 나왔으나 효종의 사부였던 덕에 유배를 가게 된단다. 

그래서 함경도 추성(秋城)으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이 드러나는 견회요를 짓게 되지.  
3연에선 추성 진호루가 그래서 등장하는 거란다. 

종장에서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헤여 보소서>처럼 자신의 과실을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설시조가 하나 있어.  

개야미 불개야미 잔등 부러진 불개야미
앞발에 정종나고 뒷발에 죵귀 난 불개야미, 광릉 샘재 너머 들어 가람의 허리를 가르 물어 추혀 들고 북해를 건너닷 말이 이셔이다.
님이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쇼서 

초장은 AABA 구조로 된 시구지.
개미 개미 잔등부러진 불개미.
중장이 한정없이 길어져 사설시조라고 한단다.
앞발, 뒷발에 종기난 개미가 잘 걷지도 못하겠지?
그런데 광릉의 샘재란 고개를 넘어 들어가 호랑이의 허리를 가로물고 추켜들어 북해를 건너갔단 말이 있습니다. 

헐~ 과장법도 좀 심하지?
걷지도 못하는 개미더러 산을 넘고 호랑일 물어 바다를 건넜대. ㅋ
임이여, 백 사람이 백가지 말을 하더라도, 임이 짐작하여 판단하소서.
이런 하소연이란다.

[다] 추성 진호루 밧긔 울어 예는 저 시내야
    무음 호리라 주야에 흐르는다
    님 향한 내 뜻을 조차 그칠 뉘를 모르나다

(해석) 추성의 진호루 밖에 울며 흐르는 저 시냇물아!
         무엇을 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느냐?
         (너도) 임을 향한 내 마음처럼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귀양간 진호루 밖에 시냇물이 흐르는데 마치 우는 것 같대.
시냇물한테 뭐하려고 밤낮으로 흐르느냐고 물어.
그러면서 자신과 시냇물의 공통점을 찾아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임향한 내 마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너도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이렇게 임금을 향한 변함 없는 마음이 잘 드러난 시지.
마찬가지 감정 이입이 드러난 시로 왕방연의 시조가 있단다. 

단종을 천만리 영월 땅에  유배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강물을 보니
내 마음처럼 울며 가는구나... 이런 시조야.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시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시조를 한 편 보자.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간데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뎌 촉불 날과 같아여 속타는 줄 모르도다. <이 개>

방안의 촛불이 누구와 이별했길래,
겉으로 눈물흐르고 속타는 줄 모르는가.
저 촛불은 나와 같아서 속타는 줄도 모른다. 

숙부(수양대군)가 조카(단종)를 죽인 사건, 계유정난.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것이야 역사 속에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혈육간의 싸움은 속타는 것이기도 하지.

[라]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해석) 산은 길기도 하고 물은 멀기도 하고
      부모님을 그리는 내 마음은 많기도 한데,
      어디서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가는가.

이 연은 '길고길고', '멀고멀고', '많고많고', '하고하고', '울고울고'처럼 반복법이 특징적인 부분이지.
특히 <많고>와 <하고>는 의미가 같지만 다른 단어로 표현하여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단다.
그만큼 많음을 완~전 울트라 강조하는 거지.
긴 산, 먼 강물이 장애물이 되어 부모님 곁으로 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화자.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이 많고도 많다.
하늘의 외기러기는 울며 날아 가는데, 제 마음을 이입하여 슬피 울고 간다고 했으니 감정 이입이지? 

[마]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도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긔 불효인가 여기노라.

(해석) 어버이가 그리울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을 향한 마음은 하늘이 내신 것이니
      정말로 임금을 잊는다면 그것이 곧 불효가 아닌가 생각하노라.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건 본능이지만,
임금 향한 충성심도 하늘이 만든 것, 하늘의 이치란 것이지.
왕조 시대의 사고 방식은 이런 것이란다.
진실로 임금을 잊는다면, 그것 역시 불효란다. 

삼강오륜이란 말 들어봤지?
삼강의 '강'은 '벼리 강 綱'이란 글자를 쓴단다.
'벼리'는 <그물의 맨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로 이걸 당기면 그물 윗부분이 오므려 지는 거야.
그래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벼리'라고 하지. 

3강은 인간이 지켜야할 유교의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야.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
쉽게 말해,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되고,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된다. 

봉건 질서로 따지면,
임금은 백성을 돌봐줄테니 신하 이하 백성들은 임금에 절대 복종하고, 
아비는 가정을 돌볼테니 자식들은 아비에 절대 복종하고,
남편은 가족을 돌볼테니 아내는 지아비에 절대 복종하라! 이런 거지. 

여기 임금과 아버지는 있는데, 선생님은 없잖아.
그래서 '군사부일체'란 말이 생겼단다.
'임금 군 君'과 '아비 부 父'는 '스승 사 師'와 한몸이란 거지.

어제 만흥에서도 나왔지만,
어떤 시에서든 <충신 연군지사>가 빠져선 안되지. 

그런 것이 조선 초기의 성리학적 질서였어. 
그렇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왕권이 흔들린단다.
선조가 궁궐을 버리고 달아나자, 도성의 난민들이 궁궐에 불을 질러버리지. 

윤선도 역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주도로 가려 했어.
그러던 중 해남 땅끝마을 옆의 <보길도>의 경치에 반해 버리지.
그는 보길도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어.
거기 정자도 세우고 산과 바다를 즐기며 시와 벗이 되어 살았지. 

윤선도의 견회요는 총 5수의 연시조야.
소신껏 행동하는 강직한 삶의 자세가 드러나있어.
그래서 귀양을 가지만,
귀양가서도 충성심과 효성은 변치 않는다는 내용이야.
자신의 결백은 임이 알아줄 것이라 믿으면서... 

윤선도의 '해남 윤씨'는 대단한 가문이었단다.
그의 증손자 윤두서는 유명한 화가지.
그의 자화상은 섬세한 필치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그의 5대 외손자 정약용이야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사람이고. 

 

윤선도가 유배당한 원인이 된 상소문의 일부만 보면 이렇대.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를 아뢰나이다.
신의 아버지는 저의 상소를 금하려 한즉 국가를 저버릴까 두렵고,
받아들이려 한즉 그 아들이 죽음으로 나가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멍하니 앉았고 묵묵하게 말이 없었습니다.
신이 상소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신의 손을 잡고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슬피 목이 메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성스럽고 자비로운 임금님께서는 비록 신을 무거운 법에 놓아 주시되
이 때문에 늙은 아버지에게 화(禍)가 미치게 하지 마시면
영원히 천하 후세에 충신 효자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염려에도 화자는 상소문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가]에서 나는 옳은 일은 하고 그른 일은 안 한다는 성품이 꼿꼿하게 드러나지.

자신은 무거운 법을 감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나]에서 임금을 믿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어 

결국 화자는 귀양을 가지만 충성심은 변하지 않지.
[다]에서 임향한 내 뜻은 그칠 적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어. 

자신을 걱정하던 아버지를 유배지에서도 그리워하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이 [라]에 담겼다 보면 되겠지.

[마]에는 충과 효를 모두 중시하는 화자의 생각이 충과 효를 동일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고 말이야.

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난 적이 있단다. 

이 시조의 독자와 화자의 대화로 어색한 것을 고르시오.

독자 :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화자 :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①

독자 :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화자 : 저도 때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 할 도리는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②

독자 : 자신의 신념이 흔들린 적은 없었습니까?

화자 : 예, 항상 흐르는 물처럼 제 마음은 늘 같았지요. … ③

독자 : 그로 인해 어려움에도 많이 처했을 텐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화자 : 부모님 곁을 떠나 지낼 때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저 때문에 많이 우셨습니다. … ④

독자 : 효심이 지극하신데, 부모님 생각을 해서 자신의 신념을 조금 굽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자 : 아닙니다. 대의를 버리는 것이 오히려 불효라고 생각합니다. … ⑤

답은  ④번이었어.
부모님께서 많이 우셨습니다...는 좀 아니지.

살다보면 스트레스 상황은 올 수밖에 없어.
그 스트레스는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닥친 것일 수도 있지.
스트레스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장기간 받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단다.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겠지.  

조선 시대의 시조는 '창'으로 부르던 것이었기도 하니까,
읽는 맛이 특별하단다.
스트레스 받을 때, 시조를 나즉히 읊조려 보는 맛도 쏠쏠할 거야.
한번 낮은 소리로 읽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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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0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래하고 입으로 부르는 것이라 정말 낮은 소리로 읽으니 더욱 좋군요.

중간에 불개미 사설 시조 말이죠,
맘에 쏙 들어오네요. 독특하면서도 절절한데다 해학까지 느껴져서요.
그러게요, 불개미 허리가 얼마나 가느다란데.

글샘님, 즐거운 날 되셔요.

글샘 2011-06-01 10:38   좋아요 1 | URL
시조는 정말 노래예요.
소리내서 혼자 읊어 보면 정말 좋은데...
옛날엔 시조를 과하게 많이 가르쳤는데,
요즘엔 과하게 덜 가르치죠.
시험엔 많이 나는데 말입니다. ^^

마녀고양이님도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 가시길...

이쁜별 2011-06-29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물흐르듯이 시원시원하게 되네요! 덕분에 잘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1-06-30 15:12   좋아요 1 | URL
공부 잘 하셨다니 제가 고맙네요. ㅎㅎ
 

벌써 올해도 5월이 다 가고 있다.
곧 유월이 오는데 날이 왜 이렇게 추운지 모르겠구나.
하복을 입어야 할 날이 다 됐는데, 감기 조심하렴.
아이들이 두통약 찾으러 교무실에 많이 오더라 

오늘부터는 조선 시대의 대표 장르인 시조를 좀 살펴 보자.
시조는 짧은 속에서 다양한 주제와 표현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시험에도 내기 좋은 분야이니만큼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전에 가사 작품으로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살펴 보았고,
시조로는 이황의 <도산 십이곡>을 읽은 적이 있지. 
오늘은 시조하면 생각나는 시조의 달인, 윤선도의 '만흥'이란 시를 읽어 보자.
'만흥(漫興)'이란 말은 '저절로 일어나는 흥취'란 뜻이란다.
'만'자가 '넘쳐흐를 만'이니 자연을 감상하는 넘쳐흐르는 흥겨운 기분이란 뜻으로 보면 되겠다. 
(게으를 만 慢자가 아닙니다. ^^)

소학 언해 같은 데서도 잘 드러나듯,
조선 양반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보다 <입신 양명>이었단다. 
몸을 상하오지 아니함이 효도의 <비롯함>이요,
입신하고 양명함이 효도의 <마침>이라는 글이 소학에 들어 있지. 

출세하고 이름을 떨쳐 이로써 부모의 이름을 현저하게 함이 효도라고 가르치지만,
그제나 이제나 정치란 것은 권력을 밀고 당기는 일이라,
한번 성하면 한번 쇠하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임금의 사랑을 가득 받을 때도 있으면,
임금에게서 멀어져 모함을 당하는 때도 있는 법. 

임금에게서 가까이 있을 때는 충성을 다하면 되지만,
귀양이라도 갔을 때는 <충신 연주지사>를 부르며 임금에 대한 사랑을 읊어대야 하는 것이었지.
그렇다고 귀양지에서 맨날 서울로 목을 빼고 학수고대하며 임금의 총애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법.
폼을 잡으려면,
<안빈낙도 : 비록 가난해도 즐기는 도>
<안분지족 :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자세>
<강호한정 : 자연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태도>
<자연친화 :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즐기는 모습>
<물아일체 : 자연과 하나가 되는 상태> 
이런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양반의 바람직한 태도라고 여겼단다. 

이런 측면에서 보길도로 귀양갔던 윤선도의 마음이 담긴 시들을 한번 살펴 보자꾸나. 
이 시는 작가가 보길도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나서 해남의 금쇄동에 은거할 때 지은 총 6수의 연시조이다.
이 시 역시 자연에 묻혀 살면서 분수에 맞는 즐거움을 누리는 유유자적한 경지를 노래한 것이지.
우선 한 수 한 수 살펴보자꾸나.

[가]

산슈간 바회아래 띠집을 짓노라하니
그 몰론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햐암의 뜻에는 내 분인가 하노라 

[해석] 자연 속에서 바위 아래 띠집을 짓고자 하니 
          그 뜻을 모르는 남들은 비웃기도 한다마는 
          어리석고 시골뜨기인 내 생각으로는 그것이 바로 나의 분수인가 생각하노라

山水는 자연이지. 그 바위 아래 초가집도 아닌 띠집을 지었어.
초가지붕은 볏짚을 쓰는데, 띠지붕은 강가의 갈대같은 걸 쓰니 더 낮은 품질의 평민 주택이겠다.
양반이 시골 궁벽한 곳에 초가를 짓고 사니 남들은 비웃겠지마는
어리석은 촌놈인 내 뜻에는 내 분수에 맞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야.
한자로 나타내면 '안분지족'이 되겠지. 계속 보자. 

 

[나]

보리밥 풋나믈을 알마초 머근 後에
바횟긋 믈가의 슬카지 노니노라
그나믄 녀나믄일이야 부럴줄이 이시랴

[해석] 보리밥과 풋나물을 알맞게 먹은 후에 
          바위 끝 물가에 가서 실컷 노닌다. 
          그 밖의 다른 일은 부러울 줄이 있으랴.

이제 가난한 생활이 드러난단다. 안빈낙도지.
보리밥에 풋나물일망정 알맞게 먹고,
바위 끝 물가에 나앉아 실컷 노닌다.
그러면 '그 남은 여 남은 일'은 부러워할 것이 더이상 없다는 이야기지.
'그 남은 여 남은 일'은 '그 밖의 다른 일들'을 가리키는 말로 '출세' 같은 속세의 미련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그치만, 정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조차 할 필요 없을 텐데...
쬐끔은 관심이 있어 보이지? 

바위 끝에 앉아서 무얼 할까?
옛날 선비들의 그림 중, '고사관수도'란 그림이 있단다.
'고사', 곧 뛰어난 선비가, '관수'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지.
<노자>라는 책에 <상선약수 上善若水>라는 말이 있지.
'가장 훌륭한 것은 물과 같다'는 말.

물은 높은 곳에 올라가려고 굳이 애쓰지 않고,
낮은 곳에 편편하게 고여있기 좋아하지.
평등하게 있지만, 앞을 가로막는 넘이 있으면 과감하게 뛰어넘고,
그래도 심하게 가로막으면 둑을 확 무너뜨려 버린단다.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는 선비는 그 물의 성정을 배우려 했는지도 몰라. 

아래 그림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란다.
          



[다]

잔들고 혼자안자 먼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오다 반가옴이 이리하랴
말삼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하노라

[해석] 술잔을 채워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워하던 임이 온다 한들 반가움이 이보다 더하랴.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지만, 산을 즐기는 것을 마냥 좋아하노라.  

혼자서 술잔 들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어.
자연 친화지.
근데, 그리워하던 님이 온다고 해도 이렇게 반가울까? 이랬지.
누가 더 좋은 거야?
그렇지. 자연이 더 좋은 거지.
근데, 여기서 <그리던 님>은 결코 <임금>이 아니란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온대도 자연이 더 좋다... 이런 거지, 임금보다 낫다... 헐~
왕조 시대엔 결코 등장할 수 없는 표현이겠지?  

이 시조의 종장에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가 등장한단다.
<말씀도 웃음도 않>기 때문에 못내(어쩔 수 없이) 좋아한다는구나.
인간은 왜 <아부의 말>과 <아부의 표정>을 짓곤 하잖아.
그것은 곳 같은 편인 척 하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적이 되곤 하는 인간사를 비판하는 뜻도 담겼겠다.
자연은 친한 체 하지 않아도, 언제나 변치않고 그곳에 있으니 사랑할 만 하다는 것이지.
상대적으로 인간은 얼마나 얄팍하게 변하는 존재인가... 이런 반성도 들었고.  

 

[라]

누고셔 三公도곤 낫다하더니 萬乘(만승)이 이만하랴
이제로 헤어든 巢父許由(소부허유)ㅣ 냑돗더라
아마도 林泉閑興(임천한흥)을 비길곳이 업세라

[해석] 누가 말하길 전원 생활이 정승 노릇 하는 것보다 낫다 하더니 만승을 지닌 천자인들 이만하랴
         이제 헤아려 보니 소부와 허유가 약았더라. 
         아마도 자연 속에서 노니는 한가로움은 비할 곳이 없어라. 

누군가가 삼정승보다 낫다고 했어.
무엇을?
자연 속에서 안빈낙도 하는 생활이지. 

간혹 <귀거래 歸去來>라는 말도 있는데,
벼슬을 사양하고 시골에 낙향하여 평안한 삶을 사는 태도를 뜻해.
그런 내용을 글로 쓴 것을 <귀거래사>라고 하지.
버드 나무를 다섯 그루 심었다는 오류(五柳) 선생 도연명의 귀거래사가 유명하단다. 

화자는 좀더 뻥쳐서 황제보다 안빈낙도가 좋대.
이제 생각해 보니 중국의 고사 속의 은사(隱士)들로 유명한 인물 '소부, 허유'가 약았던 인물들 같대.
아마도 자연을 즐기는 강호한정보다 나은 것은 세상에 없을 거라네. 

자연을 즐기는 마음이야 참으로 행복했겠지만,
왠지 씁쓸한 맛이 담긴 것 같기도 하구나.
버림받은 자가 스스로 위로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마]

내셩이 게으르더니 하날히 아라실샤
人間萬事(인간만사) 한 일도 아니맛뎌
다만당 다토리업슨 江山을 딕회라 하시도다

[해석] 내 본성이 본래 게으름을 하늘이 아셨던지 
        인간 세상 수많은 일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맡기지 않고 
        다만 서로 차지하려 다투지 않는 강산을 지켜라 하시었구나. 

여기 와서는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복이 떨어졌나, 행복해하는 거지.
나는 게으른데, 하느님이 그걸 아시고, 세상의 아무 일도 맡기지 않으신 거야.
다만 다툴 사람이 없는 자연을 지키라 하셨으니, 화자는 그저 자연을 즐길 뿐이지.
캬, 안빈낙도, 안분지족, 자연친화의 감정이 확 밀려오지? 

그렇지만...
사대부는 100% 안분지족을 꿈꿀 수 없단다.
자연에 묻혀있을 때는 선비(士)지만,
입신 출세하여 임금을 보필하면 대부(大夫)가 되는 것이 '사대부'니 말이지.
언제든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거야, 무조건 무조건이야>할 준비가 되어있단 말을 덧붙여야 안분지족이 완성된단다.

[바]

江山이 됴타한들 내分으로 누얻나냐
님군 恩惠 이제더옥 아노이다
아므리 갑고쟈 하야도 해올일이 업세라.

[해석] 자연을 즐기는 생활이 좋다 하나 보잘 것 없는 나의 분수로 그게 가능하겠느냐? 
          임금의 은혜를 이제야 더욱 알겠도다.  
          아무리 갚고자 하여도 갚을 길이 없구나.

이렇듯 자연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신의 분수로 어찌 얻겠느냐.
임금의 은혜는 이제 더욱 알겠구나.
아무리 갚으려 하여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캬, 이 정도면,
안빈낙도, 자연친화에서 <충신연주지사>까지 쫙 잘도 달렸지?  

이 시의 배경인 금쇄동 일대는 해남 윤씨 고택(古宅)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에 있어 아무도 그 위치를 몰랐대.
그러다가 최근에서야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윤선도가 여기 은거하기 시작한 때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직후였어.
그는 가문의 일마저 아들에게 맡기고 산속에서 십여 년간 혼자 지냈다는구나.
살 집은 물론 정자와 정원까지 조성해 놓고 날마다 거닐며 놀았다고 해. 
자연 속에서 유배 체험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봐야겠지. 
‘다툴 이 없는 강산’ 같은 말은 정쟁이 벌어지는 현실과 대비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자연을 노래한 한시 중 '최치원'의 시가 있는데 한번 읽어 보렴.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키 어려워라. 
늘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최치원, 제가야산독서당>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

'가야산의 독서당을 노래함'이란 한시야.
이 시는 '만흥'과는 분위기가 다르지?
'만흥'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중시된 노래,
곧 자연친화적인 노래라면,
최치원의 '제가야산독서당'은
인간 세상의 시비하는 소리가 싫어서,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려서 세상과 단절을 기하고 있는 노래지.
곧, 자연과 인간은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어 보인단다. 

이렇게 사대부의 삶은,
비록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연 속에 머물고 있지만,
좋은 시절만 만나면,
다시 임금님 곁으로 가서 훌륭한 정치를 펼치려는 야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 봐야겠지. 

힘들 때라고 해서 한숨만 쉬기보다는,
자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즐기는 자세도 바람직한 태도의 하나일 것 같구나.
그런 말이 있잖아.
<과거에 후회하지도 말고,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말고, 현재를 잡아라>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이런 말들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에 나왔던 말들인데,
삶의 힘든 순간에 기억해둘 법한 이야기기도 한 것 같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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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3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방금 퀴즈 하나, 수업 한타임 듣고
헉헉 대다가 이 글을 읽었답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서 쏴아하고 외치네요.
한글로 풀어진 글도 좋지만, 원문이 참 좋군요. 호젓하고 숨을 터주고.

그런데 옛분들의 글귀는 매우 훌륭한데도 여전히 임금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신기해요.
(음, 사회 교육의 효과랄까... 이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제 모습이 또다시 보이네요.)

글샘 2011-05-31 08:26   좋아요 0 | URL
원문을 읽는 맛이 나죠.
평시조는 원래 창으로 부르던 노래였대요. 시조창이라 하죠.
조선 후기로 가면서 연시조가 등장하는데, 이런 것들은 문학적인 가치가 높아요.
노래로 부르던 거라 입으로 읽는 맛이 특별하거든요.

왕조시대의 글을 우리 기준으로 읽으면 안되겠죠? 철저해요. 그 사람들은. ㅋ
우리도 거기 입각해서 읽어야죠.

pjy 2011-05-3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들쑥날쑥한 날씨에 감기조짐이 보여서 찬물말고 따뜻한 녹차 먹고 있습니다^^;
게으를'만'이라니 "만흥" 땡깁니다ㅋ 맘에 쏙드는 제목입니다~
근데 시를 보니 한가롭고 좋고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없는데, 그걸 왜 임금님한테 감사해야하는지는 @ㅅ@; 내쳐줘서 덕분이라는 뜻인가요ㅋㅋ

글샘 2011-05-31 12:12   좋아요 0 | URL
그래요. 따뜻한 녹차로 드세요. ^^
게으를 만... 좋아하면 살쪄요. ㅋㅋ

왕조 시대의 패러다임이죠. 무조건 복종. ㅎㅎ
오늘 쓴 페이퍼 보시면,
임금도 임금이지만, 당파간의 대결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군, 연주...는 필수였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