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곧 올 것 같구나.
날이 포근하다.  

오늘은 군사 독재에 저항했던 시인 김수영.
'풀'로써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의 희망을 주었던 시인 김수영.
그의 시 중, 읽기 어려운 시가 있다면 단연 '공자의 생활난'이란 시다.
읽기 어려운 시는 상상력을 충분히 넣어 말랑말랑하게 무르도록 만들 필요가 있단다.
그렇지만 이 시에는 의미가 쉽사리 통하지 않는 한자어들이 제법 등장하여 좀 어렵기도 해.
우선 시를 한번 읽어 보렴.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

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 ㅡ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의 반란성(叛亂性)일까. 

동무여, 이제 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는 죽을 것이다. <김수영, 공자의 생활난>

스물아홉 김수영 시인의 데뷔작이라고 알려진 이 시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금세 전달되지가 않아서, '난해시'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단다.
그렇지만, 김수영이 <거칠게 지었고 넘치게 표현했다, 조제남조 粗製濫造>고 스스로 말하기도 했지만,
김수영은 무슨 이야긴가를 담고자했을 것이다.
부드러운 입에 씹기 단단해 보이는 것도 오래 머금고 있으면 물러지듯, 이 시를 골똘히 들여다보면 물러질 거야.  

이 시는 1945년에 발표된 시라고 하니, 일제 강점기의 고난을 염두에 두고 썼을 수도 있겠어. 

제목이 '공자의 생활난'이니 공자와도 관련이 있겠고 말이지.
'공자'는 누구나 아는 사람이잖아.
공자는 옳게 사는 길을 제시하려 노력한 정치철학자인데,
그에게 '생활난'을 '먹고 살기 어렵다'고 들이미는 것은 조금 우스워보인단다. 

4연에서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라고 했고, 마지막 연에서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란 표현을 했지.
이런 것들과 연관지어 본다면, 
논어에 실린 유명한 말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란 구절이 떠오른다.
아침에 진리(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의미지. 

1~3연은 해석이 구구하고 복잡해.
사람들 누구도 이 구절을 확실하게 해석한 사람은 없단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렇지만 마지막 두 연은 의미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난단다. 

3연까지의 이야기는 <세상의 사물을 바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로 보면 될 거야.
유학에서 <격물치지 格物致知>란 참 중요한 말이거든.
<사물, 대상>을 연구하여 <앎>에 이른다는 말이야.
<앎>은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란 거지.
그 <앎>은 무언가를 통해서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일 수도 있고,
자연의 변화일 수도 있고,
인간의 역사일 수도 있어.
그런 것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관조>의 경지도 격물치지의 한 부분일 수 있겠다.

<이제 나는 바로 보겠다>는 화자의 강한 의지,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같은 말의 연속은,
공자가 세상 이치를 <격물치지>의 원리로 바로 보고자 하고,
바로 보는 도를 깨닫는다면 죽어도 좋다는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불러오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뭘 바로 보냐면 말이지.
사물!
봐, 격물치지하고 관련되는 거야.
사물의 생리! 
사물이 어떤 원리가 그렇게 되었는지.
소설을 읽으면, 인간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알게 되고,
역사를 읽으면, 인간들은 왜 그렇게 싸우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야.
종교, 철학서들을 읽으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도 따지게 되는 것처럼...
삶과 사물의 원리를 따질 필요가 있다고 본 거지. 

사물의 수량과 한도!
수량의 많고 적음, 한도의 길고 짧음.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낫기만 한 것도 아니고,
한도가 긴 것이 짧은 것보다 좋기만 한 것도 아님을... 바로 보고 싶대.
세상은 그런 원리로 이뤄진다는 것을 말이야.
일제 강점기에 돈이 많았던 넘들, 해방되고 벌벌 떨었잖아.
인간이 오래 살고 싶지만, 더러운 꼴을 보면서 오래 사는 건 더 힘든 일이잖아.
수량과 한도, 그것들은 많고 긴 것이 좋기만 하진 않음을 바로 보고자 한단 거지. 

사물의 우매함과 명석성!
인간이 명석하다고 난리를 치지만 말이야.
옛날처럼 낮은 집을 짓고 원시인처럼 살던 시절엔 지진이 나도 건물에 깔려 죽진 않았을지 몰라.
어제 강도 8이 넘는 엄청난 지진이 일본을 휩쓸었단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되어 방사능 유출도 있었다지 뭐냐.
원자력 같은 거, 인간의 <명석함>이 발견한 문명의 이기 利器지만,
지진나니깐 그 명석함때문에 피해를 입는 <우매함>의 결과를 낳게도 되는 거야.
핵폭탄이든, 교통사고든, 인간의 명석함이 우매함의 결과를 빚는 거지. 

공자님도 살기(생활) 어렵던 시대지만,
화자도 살기(생활) 어렵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올바로 보기 힘든 시대였을 거야.
친일부역자가 잘 살고, 독립군 가족은 핍박받던 시대였지.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 리>가 생각나는구나. 

캡틴 이인국, 캡틴을 러시어말로 꺼삐딴이라 부른대.
이인국은 일제 강점기 의사가 되어 해방된 뒤에도 소련치하에서도 미군 치하에서도 잘 사는
카멜레온 같은 인간이지.
과연 그처럼 명석한 두뇌를 가진 인간이 잘 적응하며 살아가는 이런 세상.
화자는 고민했을 거야.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하고 말이지. 

그러다 이런 시를 썼겠지.

   
  <나는 바로 보마>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ㅡ 공자처럼...   
   

이제 앞부분의 단단한 내용을 곱씹어 보자.
거기서 화자인 <나>와 청자인 <너>를 나눠볼 수 있어.
<나>는 세상 이치를 바로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랬잖아.
<너>는 세상 이치따위엔 관심도 없이, 그저 권세와 돈에 빌붙는 그런 존재,
꺼삐딴 리의 <이인국>같은 카멜레온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제 1연.
꽃이 열매의 상부(上部)에 피었을 때 
이 구절은 모순을 표현한 것 같아.
꽃은 나무의 생식기관이잖아.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무가 온 에너지를 꽃가루의 가루받이가 이뤄지도록 돕기 위해
곤충을 부르려고 아름다운 색과 빛깔, 향기까지를 퍼뜨리는 거란다.
그 꽃이 가루받이가 되면 꽃은 시들고,
곧 수분된 씨앗이 자라서 열매가 되는 거야.
꽃이 열매의 위에 피었을 때, 이런 시대는 <말도 안 되는 시대>란 표현이 아닐까?
일제 강점기처럼 모순의 시대 말이지.

그런 시대에 <너>는 장난만 치고 있대.
고민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깨달으려 공부하지 않고 장난만 치는 <너>. 
화자가 <부정적으로 느끼는 상대>란다.
친일파, 친러파, 친미파... 이런 놈들 내지는 스파이, 끄나풀... 

옛날에 이런 노래(참요)가 있었대. 

국놈 믿지 말고,
련놈에 지 말자.
본놈 어난다.
선 사람 심하자.

비슷한 발음을 이용한 언어 유희지.
바로 살려고 고민하지 않고,
오늘 죽어도 올바로 살 길을 찾지 않고,
격물 치지의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
<장난 삼아> 사는 자들을 상대로 쓴 글이겠지. 

2연에서 <나>는 진실을 구하려 노력하고 있어.
그렇지만, 그것은 또 구하기 어려운 거야. 

3연에서 <나>는 <반란성>을 가진 존재일까? 의문부호를 붙이고 있단다. 

장난처럼 세상은 오로지 <무력>으로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부조리한 자들이 득세하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국가가 우리에게 해 준게 뭐가 있냐!
이렇게 <술 푸게 하는 세상>이었을 거잖아. 일제 강점기.
그렇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세상에서도 평화롭고 즐겁게 살고 있었어.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이 쓴 수필의 일부분을 읽어 보면,
도무지 <술 푸게 하는 일제 강점기>에 쓴 것이라곤 믿을 수 없는 구절도 있단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낱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 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도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이효석, 낙엽을 태우면서, 부분>

1907년~1942년, 이 극심한 일제 강점기에 이런 수필을 적은 사람도 있음을 신기해할 필요도 없다.
삶은 늘 그런 모순의 양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황순원의 불후의 명작 <소나기>는 한국 전쟁이 치열하던 1951년에 창작된 작품이기도 하고. 

국수ㅡ 이 한국적인 발음을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로 바꿔가며 이국 음식을 먹기도 하는 이도 그 당시엔 있었겠다.
1930년대 이후 서양풍의 모더니즘이 들어오면서 서양식 의복, 서양식 음식 들을
쉽사리 익숙하게 먹게도 되었으리라. 

화자도 마카로니라는 이국 음식을 <먹기 쉬운> 계층이었을 수도 있다.
원래 지식인 계층 옆에서는 <진리의 가시 면류관>와 <부정하고 기름진 돈>이
<옳음을 따라야 하는 마음>과 <권력의 달콤함>이
<감옥>과 <권좌>의 갈림길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니 말이야.  

김수영이 어떤 것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고,
어떤 것들을 <바로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겼는지 이 시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아. 

하지만, 화자는 <발산(發散)한 형상(形象)을 구하였>다고 했어.
그것은 무슨 <
작전(作戰)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고도 했고.
발산한 형상이란 말은 조금 어색한 한국어라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자유롭게 확산되는 삶을 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작전 펼치듯 힘들게 해야 하는 것이라면 발산하기도 쉽지 않지. 

김수영이 나중에 <폭포>를 쓰거든.
<폭포>는 <곧은 소리>잖아.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이런 정신이 <발산의 정신>이라 볼 수도 있겠지. 

이 시에서 <너>는 올바로 사는 것보다는 장난을 즐기고 마카로니를 즐기는 이로 보인다.
반면 <나>는 그런 현실에, 너와 함께 마카로니를 먹기 쉬운 상황에서
바로 보려는 노력을 하는 이같이 느껴지거든. 

화자는 <반란성>을 느끼고 있어.
뭔가 자기 본성에 반대되는 짓을 하고 있는 존재처럼 스스로 느껴졌나봐.
편하게 살고, 부유하게 살고, 우아하게 살고, 번지르르하게 사는 사람들.
일제 강점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부럽게 마련이지.
친일파니 뭐니를 떠나서,
배고프고 가난하고 병들고 누추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없게 마련이란다. 

그러나, 그런 동물적 본성을 벗어나, <반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아빠는 본다.
그래서 <이제 나는 바로 보겠다>는 발언을 하는 거로 말이야. 

부르기 쉽고 먹기 쉬운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보는 전도된(뒤집힌)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하여 <다르게 보고, 뒤집어 보기>의 다른 말. 반란. 

김수영이 이 시를 쓴 바탕에는 <삶의 가난>이 깔려있는 것 같아.
그리고 공자의 <죽어도 좋으니 도를 듣고 싶다>는 치열한 정신을 떠올리면서,
자기는 공자처럼 훌륭하지 못한 사람임을 부끄러워했을 것 같기도 하구나.
가난하면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기 쉽거든.
비루하고 추한 일, 더럽고 비겁한 일도 하게 되기 쉽거든.
그래서 화자는 마지막에서 먹고 사는 데 얽매이진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를 쓴 것 같구나.


또 이야기를 하나 지어 볼까? 

김수영은 가난한 시인이었다.
늘 배고프고 수중엔 십 전짜리 한 푼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이었어.
집에는 까슬하게 여윈 아내와,
난 지 두어 달 남짓 되었지만 아직도 발육 상태가 나쁜,
정말 고것이, 그 핏덩이가 백일까지 살 지 걱정되는 아기가 기다리겠지. 

김수영은 골방에서 곰방대에 넣을 담배마저 떨어진 참에 거리로 나섰어.
길거리엔 온통 가난한 냄새 뿐이었단다.
때는 양력 5월, 곧 보리가 누르익으면 춘궁기는 넘기련만,
어느 집 하나 불 때서 죽이라도 넉넉히 끓이는 집이 없었지. 

길을 나선 김수영이 읍내로 들어선 것은 점심 나절이었어.
읍내 국민학교 앞 복덕방 모퉁이에서 동네 영감들이 힘없이 장기를 두고 있어
하릴없이 그 구경이나 하고 있었나봐. 

뒤에서 옆구리를 쿡 찌르는 기척에 돌아보니
머리엔 구찌 기름을 반지르 하게 바른 춘삼이가 웃고 있었어.
춘삼이는 면사무소에서 서기를 하고 있는 녀석이야.
어려서부터 공부엔 소질이 영 없어서 교실에서 구박받던 녀석인데,
어찌 줄을 섰는지 면서기가 돼서 제법 네꾸따이도 매고 다니니 세상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나봐. 

춘삼이가 점심을 사겠다며 김수영을 데리고 갔어.
김수영은 배고픈 김에 국밥이나 한 그릇 얻어 걸릴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춘삼이는 읍내 제법 번지르르한 식당이자 술집인 명옥헌으로 들어섰대.
실내는 제법 널찍하게 차려졌는데,
종업원보고 하는 소리가 <마카로니>를 두 그릇 달래는 거야. 

"야, 마카로니가 뭐냐?" 묻는 김수영과,
"어, 그거 서양 국수야, 양국수, ㅋㅋ , 어이, 여기 막걸리 한 주전자 줘 봐~"
막 대놓고 반말 지꺼리인 춘삼이. 

잠시 후 막걸리 한 사발 기울이고 있는데,
종업원이 내온 것은 칼국수 치고는 너무 두툼하고,
그렇다고 가래떡보다는 얇은 양국수가 불그데데한 양념에 비벼져 있었겠지.
"야, 이거 한 번 먹어봐. 양국수라는데 맛이 그냥저냥 먹을만 해."
김수영은 영 그 양념 색이 못마땅해서 막걸리만 내쳐 두 잔을 마셨어.
속이 좀 든든해 졌지만, 그래도 음식을 남길 수는 없어서 그 양국수란 걸 집어 먹어봤대.
근데, 양국수가 굵어 보이지만, 속이 비어있으면서 씹히는 맛도 쫄깃거리고
입에도 착착 달라붙는 것이 희한한 거였어. 

"야, 춘삼아, 이게 이름이 마... 마차... 뭐랬냐?"
"아, 그거 마카로니에요. 마,카,로,니..."
보리차 나르던 사환 애 녀석이 아는 체를 한다.
"야, 수영아, 근데 일본 사람들 세상이 끝내 준단다. ㅎㅎ
내가 일본 세상 아니었음 어떻게 면서기를 다 하겠니.
또 면서기 아니었음 어떻게 마카로니도 다 먹어봤을 거구. 허허허" 

계산을 치르는 춘삼이를 무추름하게 보고 있던 수영은 그 값이 비싼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어찌어찌 춘삼이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엔 수영의 주머니에 춘삼이 사서 찔러준 '럭키' 담배가 한 갑 들어있었다.
럭키 담배, 돌돌 잘 말린 궐련 한 개비를 피워물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수영.
왠지 사는 게 거꾸로인 거 같았다. 

일본 세상이 더 좋은 사람, 춘삼이.
물구나무 선 세상인가?
물구나무 선 춘삼이는 물구나무 선 세상이 더 자유로운지도 모르겠다.
꽃이 핀 석류 나무를 보면서,
이거 원, 세상이 <열매 윗부분에 꽃이 핀> 것처럼 부조리한 거나 아닌가 생각한다.
물구나무 선 세상에서 즐겁게 <줄넘기 장난>을 하는 춘삼이가 정상인 건가? 

수영은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을 드러낸 시'를 쓰고자 했지만,
그러기에 세상은 전쟁터처럼 혼란스러워,
무슨 '작전이라도 펼쳐야 할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국수 ㅡ 이태리어(語)로는 마카로니라고
그런 낯선 것도 잘도 넘어가던 자신을 생각한다.
나의 안에 담겨있는 <반란성>은 어디로 간 걸까? 

공자를 떠올린다.
조문도 석사가의라...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을 정도로 진리를 찾던 사람.
오늘 아침에만 해도 공자처럼 <죽어도 옳은 길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생각했거늘,
배고픔과 <생활난> 앞에서 그 마음은 언제 사라졌던 것일까. 

끝까지 타버린 럭키 담배 꽁초를 버리면서, 수영은 생각한다.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을까?
배고픔을 뛰어넘는 진리를 위하여 명석하게 살 수 있을까?
그래, 마카로니의 달착지근한 부드러움에 금세 비굴해진 내 혀를 부끄러워하자.
세상을 바로 보고 바로 살자.
배고픔에 져버리면 나는 더이상 공자의 후예가 아니다.  

춘삼이가 주머니에 억지로 넣어준 십 전짜리 지쩐으로
보리쌀과 옥수수를 두어 되 사서 아내에게 안기고 수영은 골방으로 들어가 부리나케 펜을 들었다.
럭키에 불을 붙일 여유도 없이,
불붙지 않은 담배만 한 개비 물고 시를 쓴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事物)과 사물의 생리(生理)와
사물의 수량(數量)과 한도(限度)와
사물의 우매(愚昧)와 사물의 명석성(明晳性)을,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누운 수영은
스스로가 몹시 부끄럽다.
모순된 세상만큼 모순된 자신의 모습이...
깜깜한 방이 점점 작아지고,
자신의 육신도 점점 작아지고...
깜깜한 방의 담뱃불만 바알갛게 반짝거리고...

난해시로 유명한 시를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나보다.
그렇지만, 딱딱한 무기질같은 시도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읽어내는 일은
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것이 무엇진지
생각해 보게도 해 준단다. 

삶에서 수학처럼 공식이 달린 일만 일어나진 않거든.
배배꼬인 일이 우리 인생에 달려들 때는,
딱딱한 시를 입에 물고 한참 불리는 때를 기억해 보려무나. 

아까 국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다음 시를 한번 보렴.
'여승'의 시인 '백 석'의 시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은 무엇일까?'
스무고개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재미있는 시야.
토속적인 삶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참 아름다운 그런 시.
한번 읽어 봐.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 밭에서
하룻밤 뽀오얀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던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텀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느 하룻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러났다는 먼 옛적 큰 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버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순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의젓한 사람들과 살뜰하니 친한 것은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 김치가재미:북쪽 지역에서 겨울철에 김치를 넣어 두는 움막, 헛간
♣ 양지귀 : 햇살 바른 가장자리
♣ 은댕기 : 가장자리
♣ 예대가리밭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 산멍에 : 이무기의 평안도 말
♣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 말
♣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굴로 만든 자리
♣ 자채기 : 재채기
♣ 희수무레하고 : 희끄무레하고
♣ 삿방 : 삿(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을 깐 방
♣ 아르궅 : 아랫목
♣ 고담(枯淡):(글, 그림, 인품 따위가) 속되지 아니하고 아취가 있음

평안도 사투리가 구수한 이 시에서 하나의 답을 요구하며 밀어붙이는 이것은?
바로 제목인 <국수>란다.
구수한 국수의 내음새를 통하여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
백석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잃어버리고 있는 <민족 공동체의 삶>을 시로나마 남기려고 노력한 시인이야.
이 시에선 그저 <국수>를 떠올리는 게 아니라,
국수를 삶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구수함,
그 공간과 시간 속의 모든 것들을 눈감고 상상하는 화자의 마음을 잘 쓰고 있는 것 같아. 

백석의 이 시에서 음식물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는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특수한 시적 기능,  
즉 민족과 민족성 그 자체를 의미해.
음식이란 민족마다 문화의 독특한 영역을 차지하면서 그 음식물을 먹는 사람들의 체질이나 성격을 결정짓기도 하고,
백석이 전 국토를 유랑하면서 음식물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어.
국수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 국수와 얽힌 추억들을 통해 우리의 본래적인 삶을 상기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습성이 바로 우리의 민족성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시로 볼 수 있지. 

어쩌면 백석이 이렇게 국수 한 그릇을 마시다가
굵은 눈물이라도 한 방울 주륵, 흘렸을지 모르겠다.
백석에게 춘삼이같은 친구가 다가와서 마카로니를 먹였다가는
절교를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야. 

요즘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가 몰려와서 난리도 아니더구나.
아빤 평소에 일본 놈들을 지긋지긋하게 저주하는 사람이야.
일본 때문에 아무 죄도 없던 한국이 반토막으로 잘렸고,
그래서 지금도 쓸데없는 국방비에 수십 조를 퍼부어야 하고,
미국놈 앞잡이처럼 살아야 하는 거니깐 말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역사가 미운 거지,
일본인들이 수천 명이 죽고, 고통을 당하고 아이들이 우는 걸 보니 마음이 아프더라.
무엇이든 김수영의 <공자의 생활난>처럼 <바로 보기>는 어려운 모양이야.
마음 속에 콩깍지가 되어 가려졌던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일본에 대한 진심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암튼 우리 사는 땅은 지진이 거의 없어서 다행은 다행이다.
주말 잘 보내고, 새로운 한 주를 준비하자.
밤이 늦었다.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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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3-13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무지 해독이 안 되던 <공자의 생활난>이 이 글을 읽으니 말씀처럼 조금 말랑해 지는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글샘 2011-03-14 08:38   좋아요 0 | URL
조금 말랑해 졌나요? ㅎㅎ
스스로도 거칠고 넘친다고 한 시니깐...
한때 해석이 안 되는 시가 미덕이던 때도 있었겠죠.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1-03-16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시도 좋지만 해석이 넘 좋아요.^^
근데 궁금한게요, 요즘 고딩들은 문과 이과 상관없이 저렇게 두루두루 섭렵해야 하나요?
이 '글샘의 문학수업'을 읽다보면, 수업을 듣다보면...저 고딩 때는 모르던 것들이 태반이어서 말이죠~

글샘 2011-03-16 08:55   좋아요 0 | URL
요즘엔 언어영역에 별 것이 다 나오니
많이 들어두면 도움이 되죠. ^^
사실은 저도 모르던 것들입니다. ㅎㅎ

몽유 2012-01-0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박대박대박!!
예비고3인데요 이 시를 발견해서 으아아얼강겨미;나름댜ㅣ;검ㅇ,ㅡ러 으엉강ㄱ거ㅏㄱ어걱ㅇㄱ 이건무어야!!!!;ㅣㅏ더ㅑㅐ;ㅁㅇ 이러고있었는데 오호,,? 오옷!! 우와아아아!!!! 감동해서 댓글올리려 했는데 아이디 없어서 알라딘 회원가입했어요ㅎㅎ 도움많이많이 됬어요ㅎ,, 저 나름 말랑하다고 생각했었는데ㅠ 아 쨉도안되ㅠ,, 여튼! 감사합니다~~^-^//

글샘 2012-01-12 11:24   좋아요 0 | URL
이 시는 난해시예요. 난해한 시...
난해하니깐, 제대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ㅎㅎ
제 나름대로 풀어본 거니깐,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지난 시간에 이어 정철의 속미인곡을 읽어 보자.
이 시도 마찬가지의 ‘충신연군(주)지사’에 속하는 노래야.

사미인곡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선녀가 땅에 내려오게 된 형식을 띠고 있지.
유배로 땅에 내려온 선녀는 ‘謫降, 귀양갈 적, 내릴 강’이라고 한단다.
적강 설화가 들어간 가사라고 볼 수 있지.
가사는 읽기 좋은 4,4조의 노래로 길어진 시조라고 보면 된단다.

시조는 왜 노래라고 했잖아.
시조창(時調唱).
그래서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는(서정) 즉흥 노래로는 어울리지만,
가슴에 담아둔 긴 이야기를 담기엔 조금 부족했나봐.
조선의 사대부들에게 긴 이야기(서사)를 담아낼 ‘가사’도 필요했겠지.

이 노래는 두 선녀의 ‘대화’로 이뤄진단다.
‘꽃보다 남자’에 비유하자면,
구준표하고 싸워서 이별한 상태에 있는 금잔디가
친구랑 우연히 만나서 수다를 떨면서 하소연하는 형식이야.
그걸 구준표는 우연히 듣게 된 것 같은 이야기

맨 앞부분은 친구가 금잔디를 발견해서 말거는 부분이란다.
잘 읽어봐~ 

가) 뎨 가는 뎌 각시 본 듯도 한뎌이고.
天텬上샹 白백玉옥京경을 엇디하야 離니別별하고,
해 다 져믄 날의 눌을 보라 가시는고.

������ 저 가는 저 각시 본 듯도 한 것 같네.
������ 천상 백옥경(옥황상제가 산다는 곳)을 어찌하여 이별하고
������ 해 다 저문 날에 누를 보러 가시는고?

   금잔디 친구가 잔디를 발견했어.
“어, 너... 너... 잔디 아니니?
너 맨날 준표랑 놀더니, 준표는 어쩌고
이 어두운 데 누구 만나러 가는 거야?” 이런 거지.


그지? 쉽지?
아빠의 강의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문학 강의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맘편하게 읽어 보기 바래.



나) 어와 네여이고, 내 사셜 드러 보오.

������ 아이고 너구나, 내 이야기 들어 보시오.

   안 그래도 누가 손으로 콕 찌르기만 해도 눈물이 주르륵 흐를 심정인 잔디는
아이고, 너구나~ 이러면서 말문이 열리기 시작해.
‘내 이야기’의 내용은 뻔하지? ㅋ

뭐, 잔디의 준표 사랑 아니겠어?

한문으로 쓰면 충신이 연군하는 노래. 충신연주지사.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난 
엇딘디 날 보시고 네로다 녀기실새, 
나도 님을 미더 군뜨디 전혀 업서,
이래야 교태야 어자러이 구돗던디,
반기시난 낫비치 녜와 엇디 다라신고.


������ 내 얼굴과 내 행동이 임의 사랑을 받음직 한가마는
������ 어쩐지 날 보시고 너로다 여겨 사랑하시기에
������ 나도 임을 믿어 다른 뜻이 전혀 없이
������ 아양이며 교태며 어지러이 굴었던지
������ 반가워하는 얼굴빛이 이전과 어찌 다르신지.

  “내가 첨에 준표랑 사귈 때 말야~
내 처지가 준표랑은 너무 안 어울리잖아. 그거 너도 알잖아.
근데 내 얼굴이나 행동도 남자들이 좋아할 것도 아닌데,
어쩐지 준표는 날 보고 ‘내가 찾던 여자가 너 같은 애야!’하고 인정해 줬거든.
그래서 나도 준표가 넘넘 좋아져서 다른 생각은 전혀 없이
알랑거리고 까불고 너무 어지럽게 굴었는지
어느 날 준표가 날 반기는 얼굴빛이 전과 완전 달라졌더라고. ㅠ&ㅜ" 

누어 생각하고 니러 안자 혜여 하니,
하날히라 원망하며 사람이라 허믈하랴.
내 몸의 지은 죄 뫼가티 싸혀시니
셜워 플텨 혜니 造조物믈의 타시로다.


������ 누워 생각하고 일어나 앉아 헤아리니,
������ 내 몸에 지은 죄 산같이 쌓였으니
������ 하늘을 원망할까 남들을 죄지었다 할까.
������ 서러워 풀어 헤아리니 조물주(운명)의 탓이구나.

   금잔디의 하소연은 계속 이어져.
“누워도 준표 생각, 일어나 앉아 헤어라도 그 생각 뿐이야.
하늘을 원망하지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도 않아.
내가 지은 잘못이 산처럼 쌓였으니
서러워 풀어 생각해 본들 다 내 운명을 이렇게 정해 놓은 조물주 탓이라고나 할까.
난 이제 완죤 포기했어. ㅠ.ㅠ” 

다) 글란 생각 마오.

������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말아요.

   금잔디, 완전 불쌍하잖아.
차도남, 까도남 구준표한테 상처받고 넘 슬퍼하니깐,
의리 빼면 시체인 친구가 위로를 한단다.
“잔디야, 너무 그렇게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지 마~, 응?” 


라) 매친 일이 이셔이다.

님을 뫼셔 이셔 님의 일을 내 알거니,
믈 가탄 얼굴이 편하실 적 몃 날일고.

������ 맺힌 일이 있습니다.
������ 임을 모시고 있어 임의 일을 내가 아는데,
������ 물 같은(연약한) 얼굴이 편하실 적 몇 날일까.

   그치만 잔디는 계속 맘속 깊은 이야기를 다 털어 놔.
친구는 들을 수밖에 없지.
“있잖아. 난 준표 하나도 원망 안해.
다만 내 맘에 맺힌 게 하나 있어.
준표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너도 알잖아.
준표랑 오래 사귀지 않았어도 난 준푤 잘 아는데,
아~, 그 연약한 얼굴이 편한 날이나 있을지…, 걱정이야.
준표 엄마랑, 준표네 집, 장난 아니거든.”  

春춘寒한 苦고熱열은 엇디하야 디내시며,
秋츄日일 冬동天텬은 뉘라셔 뫼셧는고.
粥쥭早조飯반 朝죠夕셕 뫼 녜와 갓티 셰시는가.
기나긴 밤의 잠은 엇디 자시는고.

������ 봄의 추위, 여름의 더위는 어찌하여 지내시며,
������ 가을 해 겨울 날을 누가 모셨을까.
������ 죽과 아침 저녁 식사는 옛날 같이 드시는가.
������ 기나긴 밤에 잠은 어찌 주무실고.

   여기 ‘춘하추동’의 리듬에서 여름은 일부러 ‘괴로울 고, 뜨거울 열’을 썼단다.
이렇게 리듬을 슬쩍 비트는 것이 한국적 멋의 특징이야.
“꽃샘추위는 잘 버티는지, 더위도 잘 타는데 어찌 지내는지,
가을날 겨울날은 누가 챙겨 주는지.
아침 저녁은 내가 챙겨주는 것처럼 잘 먹고 다니는지,
긴긴 밤에 잠은 제대로 자는지…
난 준표 걱정 하나로 요즘 잠도 못자.”
이렇게 선녀는 자기는 맺힌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임 걱정 뿐이라는구나. 

   님다히 消쇼息식을 아므려나 아쟈 하니,
늘도 거의로다. 내일이나 사람 올가.
내 마음 둘 대 업다. 어드러로 가쟛 말고.

������ 님 쪽의 소식을 어떻게든 알자 하니,
������ 오늘도 거의 지났다. 내일은 사람이 올까?
������ 내 마음 둘 데 없다. 어디로 가잔 말인가.

“그래서 준표 쪽 소식을 어떻게든 알아보려고도 했는데,
오늘은 거의 지났으니, 내일이나 연락이 올까?
아, 난 요즘 마음 둘 데가 없어. 어디로 돌아다녀 볼까?
명동을 쏘다니면 마음이 좀 풀릴까? 혹시 준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멀리서나마 준표 뒷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잡거니 밀거니 놉픈 뫼해 올라가니,
구롬은카니와 안개는 므사일고.
山산川쳔이 어둡거니 日일月월을 엇디 보며,
咫지尺쳑을 모르거든 千쳔里리를 바라보랴.

������ (나뭇가지를) 잡고 (바윗돌을) 밀고 높은 산에 올라가니,
������ 구름은 커녕 안개는 무슨 일인가.
������ 산천이 어두우니 해와달을 어찌 보며,
������ 가까운 곳도 모르겠으니 천리 밖을 어찌 바라보랴.

 “높은 산에라도 올라가 준표네 집을 볼까 해서 말이야.
비탈길을 나뭇가질 잡고 바윗돌을 밀어 가면서 올라가 보기도 했는데,
어제는 구름은 물론 안개까지 무슨 일로 잔뜩 껴서 준표네 쪽 보이지도 않지 뭐야.
세상이 이렇게 어두우니 준표를, 준표네 집을 볼 수 있겠어?
가까운 코앞도 안 보이니 저 먼 준표네를 어쩌면 볼 수 있을까?" 

   찰하리 물가의 가 배길히나 보쟈 하니,
람이야 믈결리야 어둥졍 된뎌이고.
샤공은 어대 가고 븬 배만 걸렷나니.
江강川텬의 혼쟈 셔셔 디는 해를 구버보니,
님 다히 消쇼息식이 더옥 아득한뎌이고.

������ 차라리 강가에 가 뱃길이나 보고자 하니,
������ 바람이야 물결이야 엉망이 되었구나.
������ 뱃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걸렸는가.
������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굽어 보니,
������ 님 쪽의 소식이 더욱 아득하구나.

“산에선 안 보여서, 차라리 한강에 나가서 배나 탈 수 있을까 나갔더니,
바람도 불고 물결도 높아서 엉망진창이 되었더라고.
뱃사공은 어디 가고 없고 빈 배만 흔들거리고 있었어.
그래 강가에 혼자 서서 지는 해를 보고 있자니,
준표 생각, 준표 소식이 간절한데 우리 사이는 더 아득해지기만 했어.”

   茅모詹쳠 찬 자리의 밤듕만 도라오니,
半반壁벽靑쳥燈등은 눌 위하야 발갓는고.
오르며 나리며 헤뜨며 바니니,
져근덧 力역盡진하야 픗잠을 잠간 드니
精졍誠셩이 지극하야 꿈의 님을 보니,
玉옥 가튼 얼굴이 半반이나마 늘거셰라.

������ 초가집 차가운 자리에 밤이 돌아오니,
������ 벽 가운데 푸른 등(청사초롱)은 누굴 위해 밝혔는가.
������ 오르며 내리며 헤매며 방황하니,
������ 잠깐 사이 힘이 다하여 풋잠을 잠시 드니,
������ 정성이 지극하여 꿈에 임을 보았는데,
������ 옥 같은 얼굴이 반이 넘게 늙으셨구나.

“아~ 맨날 준표랑 비싼 거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사주고 그랬는데,
준표 침대는 정말 푹신하고 이불도 부드러웠는데,
혼자서 옥탑방 차가운 자리에 누웠으니 죽을 맛이더라.
벽에 걸어둔 스탠드는 신혼방에 어울리는 건데
준표랑 있을 땐 정말 분위기 아늑하던 건데, 혼자 있자니 하나도 안 멋있더라.
하루종일 산에 오르락내리락 헤매고 다니다가 방황하니
잠시잠깐 힘이 빠져서 풋잠이 들었나봐.
내가 하도 준표를 그리워해선지 꿈에 준표를 봤던 거 같은데,
그 해맑던 얼굴이 글쎄 며칠 새 반도 더 늙은 거 같아 보이더라.”  

   마암의 머근 말삼 슬카장 삷쟈 하니,
눈믈이 바라 나니 말인들 어이하며,
情졍을 못다하야 목이조차 몌여하니
오뎐된 鷄계聲셩의 잠은 엇디 깨돗던고.

������ 마음에 먹은 말을 실컷 사뢰자 하니,
������ 눈물이 연달아 나니 말을 어이 하며,
������ 사정을 다 말하지 못하여 목까지 메어오니
������ 방정맞은 닭소리에 잠은 어찌 깨었던지. 

   “꿈에서나마 준표한테 맘 속에 먹은 말 실컷 말하려 입을 여는데, 
눈물이 줄줄 연달아 나서 말이 나오질 않더라.
내 맘 속 이야기랑 있었던 일의 사정이랑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꿈속에서도 목이 막 메이고 그러면서 계속 눈물이 나는데,
어디서 방정맞은 닭소리가 울려서 잠을 깨우고 말았어.”

바) 어와, 虛허事사로다. 이 님이 어대 간고.
결의 니러 안자, 窓창을 열고 바라보니
어엿븐 그림재 날 조츨 뿐이로다.
찰하리 싀여디여 落낙月월이나 되야이셔
님 겨신 窓창 안해 번드시 비최리라.

������ 아아, 헛된 일이다. 이 임이 어딜 갔나.
������ 꿈결에 일어나 앉아, 창을 열고 바라보니
������ 가엾은 그림자 날 좇을 뿐이구나.
������ 차라리 스러져서 지는 달이 되어서,
������ 임 계신 창 안에 번듯하게 비추고 싶어.

   “아아~ 준표 얼굴 한번이라도 보고, 준표 소식 한번이라도 들으려고,
산에 오르고 강에 나가고 꿈까지 꿨건만, 다 허사더라. 준표는 어디도 없었어.
꿈결에 일어나 앉아 멍한 정신으로 창밖을 열고 내다봤는데,
준표 없는 자리를 돌아보니까는 거기 가엾게도,
불쌍한 그림자만 외로이 내 곁에 있더라고. 
그냥, 차라리 내가 죽어서 지는 달이 되고 싶어.
그래서 준표 창문으로 찾아가서 준표를 환하게 비추면서 준표랑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 각시님 달이야카니와 구즌 비나 되쇼셔.

������ 각시님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십시오.

 주인공 금잔디는 임을 위해서 달이 되겠다고 했어.
근데 금잔디의 친구는 바보같은 금잔디를 보고 화를 낸단다. 
"야, 이년아! 니가 지금 그넘을 위해서 기도하게 생겼냐? 달은 커녕 궂은 비나 되지~.”
이렇게 말하는 거야. 

금잔디는 임을 위해
거리가 있더라도 환하게 임을 밝혀주는 달이 되고 싶다고 했어.
그런데 환하게 비치는 달빛은 잔디의 슬픔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
그러니 친구는 ‘궂은 비’나 되라고 이야기한 거야.
궂은 비는 일단 임의 옷을 적시더라도 임에게 가까이 갈 수 있잖아.
그리고 화자의 슬픔이나 눈물과도 관계가 있어 보이고 말이야.

잔디의 사랑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작가는
이런 대화체를 개발했다고 봐야겠지.

지난 시간에 배운 사미인곡은
부유한 화자가 스토커처럼 임을 따라다니겠다는 노래였다면,
오늘 배운 속미인곡은
기둥 뒤에서 지나가던 구준표가
우연히 금잔디가 친구와 나누는 대화를 듣는 것처럼 처리했단다.

곧, 사미인곡은 화자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는 ‘독백체’를 썼고,
속미인곡은 화자의 대화를 통해 진심이 전달되는 ‘대화체’를 쓴 거지.

연속극이라면, 뭐, 어떤 드라마가 더 인기있을지, 추측이 되지?
게다가 사미인곡에선 부유한 여성의 언어로,
어려운 한자어나 중국의 고사성어, 한시 등이 많이 인용된 반면,
속미인곡에선 순수한 우리말이 소박한 여성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어서,
훨씬 솔직한 이야기로 들린다는 특징이 있단다.

정철이 사미인곡(전미인곡)을 쓰고,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속미인곡(후미인곡)을 썼대.
자기가 봐도 스토킹은 좀 아니었다 생각된 모양이지.

가사는 시조(서정시)를 한정없이 늘인 형식이라고 했잖아.
4.4조의 노래고 말이야. 4음보가 되겠지. 시조도 그러니깐.
근데, 시조에서 출발한 형식이라서,
긴 가사의 마지막 부분은 거의 시조랑 같단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으니 돌인들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정철, 훈민가)

이 노래는 늙은이를 공경하자는 성리학적 윤리를 나타낸 시야.
윗사람 말은 무조건 잘 들어야 되지.
그래야 ‘왕조국가’인 조선이 안 흔들리지.

이 시조의 마지막 행(종장)은 글자 수가 <3,5,4,3>이잖아.
가사 몇 편의 마지막 행을 보자꾸나.

아모타/ 백년 행락이/ 이만한들/ 어찌하리. (정극인, 상춘곡)

명월이/ 천산만락에/ 아니 비쵠/ 대 없다. (정철, 관동별곡)

님이야/ 날일줄 모르셔도/ 내 님 좇으려/ 하노라. (정철, 사미인곡)

각시님/ 달이야 카니와/ 구즌 비나/ 되소서. (정철, 속미인곡)

아마도/ 이 님의 지위로/ 살동말동/ 하여라. (허난설헌, 규원가)

이렇게 가사의 마지막 구절을 ‘낙구, 떨어질 락 落, 글귀 구 句’라고 하는데,
낙구는 상당히 시조의 종장을 닮았어.
이렇게 시조의 종장을 닮은 낙구를 가진 가사를 <정격 가사>라고도 부른단다.
뭔가 맞추려 노력한 거겠지.
이 경우에도 낙구의 첫 글자 석 자는 고정불변의 세 글자란다.

자, 속미인곡의 대화 주체를 늘어 놓으면 이렇게 된단다.


갑녀(보조 화자) : 선녀님 아니세요? 어디가세요?

을녀(주 화자) : 나 임이랑 헤어졌어. 다 내 잘못이야.

갑녀 : 그리 생각 마세요.

을녀 : 임 걱정돼 죽겠어. 산에도 가보고, 강에도 가보고, 꿈에도 봤지만.

       난 임을 비추는 달이 되고 싶어

갑녀 : 님 쫌 짱나는 듯, 달은 무슨 달, 궂은 비나 되시지.

어때, 아빠의 설명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문학 수업 같지 않니?
고전도 어렵거나 멀기만 한 건 아니란다.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누구에게나 빈번하게 반복되어 일어나기 때문이야.
그 일이 희극으로 결말지어지기도 하고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힘들 땐,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비극으로 일어난 거구나.”
그렇지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도 너무 자만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겠지. 이렇게.
“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 나에겐 희극으로 일어난 거네.”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했어.
나쁜 일도 전화위복이 되고, 좋은 일에도 호사다마인 법이지.

자, 허각의 <하늘을 달리다>란 노래 가사를 보면
어떤 순정이 나오는지 가사를 한번 음미해 보며 오늘의 ‘가장 쉬운 고전 수업’을 마치자.

두근거렸지 누군가 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검은 절벽 끝 더 이상 발 디딜 곳 하나 없었지
자꾸 목이 메어 간절히 네 이름을 되뇌었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구원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내가 미웠지 난 결국 이것밖에 안 돼 보였고
오랜 꿈들이 공허한 어린 날의 착각 같았지
울먹임을 참고 남몰래 네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귓가에 울리는 그대의
뜨거운 목소리 그게 나의 희망이었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허약한 내 영혼에 힘을
날개를 달수 있다면

마른 하늘을 달려
나 그대에게 안길 수만 있으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설혹 너무 태양 가까이 날아
두 다리 모두 녹아 내린다고 해도
내맘 그대 마음속으로
영원토록 달려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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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현대시를 주로 살펴봤는데,
오늘은 고전 운문의 하나인 '가사'를 한편 보자.
그 대표작인 정철의 '사미인곡'이다. 

정철은 '사대부'야.
시골에선 선비지만, 입신양명하면 '왕'을 보필하는 '대부'가 되는 것이지.
왕조 국가의 중심 인물은 무조건 <왕>이란다.
'대부'는 몽땅, 왕의 생각을 펼치는 도구로 쓰이는 사람들이라 보면 돼.
이 시에서 '미인'을 생각하는 것도 결국  귀양간 처지에서 임금을 생각하는 노래라 볼 수 있지. 

충신연주지사. 또는 충신연군지사.
우선 한번 읽어 보자. 

(가)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천생 緣연分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
나 하나 졈어잇고 님 하나 날 괴시니,
이 마음 이 사랑 견졸 대 노여 업다.

������ 이 몸을 만드실 때에 님을 따라 만드시니,
������ 한평생 함께 살아 갈 인연이며, 하늘이 모를 일이던가?
������ 나는 오직 젊어 있고 님은 오로지 나만을 사랑하시니,
������ 이 마음과 이 사랑을 비교할 곳이 다시 없다. 

이 가사는 마치 하늘에서 귀양 내려온 선녀가
헤어진 임을 그리워하는 형식의 특성을 가지고 있단다.
실제로 일어난 일(개별적 사건)은
정철이 귀양온 것인데,
문학적으로 일반화하여 표현한 것은
마치 여인이 임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  

지금 이 부분은 서론부분인데,
나는 임을 따라 생겼으니 우린 천생연분이랍니다.
젊은 나를 임이 사랑하시니 우리 사랑은 최고였지요~ 이런 얘기야.  

평생애 願원하요대 한뎨 녜쟈 하얏더니,
늙거야 므사 일로 외오 두고 글이는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광寒한殿뎐의 올낫더니
그 더대 엇디하야 下하界계예 나려오니

������ 평생에 원하되 님과 함께 살아가려고 하였더니
������ 늙어서야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고?
������ 엊그제는 님을 모시고 광한전(궁궐)에 올라 있었더니,
  * 광한전 : 달 속에 있다는궁전. 여기서는 임금(선조)이 계시는 대궐
������ 그 동안에 어찌하여 속세(창평)에 내려 왔느냐.

평생 소원은 <한뎨 녜>는 거였지. 임과 함께 살기.
임금님 아래서 사대부로서 최선을 다해 일하기.
근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대.
늙어서 무슨 일로 <외따로 두고 그리워>하는 현실이지.
얼마 전까지도 임과 궁궐에 있었는데,
어느새 하계에 내려와버린 선녀인 나의 신세가 안타깝구나. 

광한전과 하계는 옥황상제와 선녀의 이야기처럼
임금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변주한 것이란다.
화자는 여성처럼 묘사되고 있어.
아래 보면 헝클어진 머리와 화장도 나온단다.

올 저긔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삼年년이라.
撚연脂지粉분 잇네마는 눌 위하야 고이할고.
마음의 매친 실음 疊텹疊텹이 싸혀 이셔,
짓나니 한숨이오, 디나니 눈믈이라.


������ 내려올 때에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지 3년일세.
������ 연지와 분이 있네마는 누구를 위하여 곱게 단장할꼬? 
������ 마음에 맺힌 근심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 짓는 것이 한숨이요,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 

하늘에서 선녀가 땅으로 귀양 내려올 때 빗은 머리가 헝클어진 채
빗지 않은 게 3년째래.
여성에게 머리카락은 엄청 중요하단다.
세수는 안 해도 머리는 빗어야 하거든. ㅋ
근데, 3년동안 아무 것도 안 했대. 귀양온 화자의 처지와 같지.
신이 안 나는 거야.
연지와 분이 있는데, 임과 이별해 있으니 단장할 수 없지. 

마음엔 근심만 쌓여 있어서
한숨만 나오고 눈물만 흐른대.   

人인生생은 有유限한한데 시름도 그지업다.
無무心심한 歲셰月월은 믈 흐르듯 하난고야.
炎염凉냥이 때를 아라 가는 듯 고텨 오니.
듣거니 보거니 늣길 일도 하도 할샤.

������ 인생은 한정이 있는데, 근심은 한이 없다.
������ 무심한 세월은 물 흐르듯 흘러 가는구나.
������ 더웠다 서늘해졌다 하는 계절의 바뀜이 때를 알아 지나갔다가는 이내 다시 돌아오니,
������ 듣거니 보거니 하는 가운데 느낄 일이 많기도 많구나.  

삶은 유한한데 걱정은 무한대다.

요거 좀 재밌는 표현이잖냐?

이런 걸 대구법이라 그래. 

임과 이별했는데 세월도 빨리 가서 벌써 3년 됐지.

계절도 잘 가고,

듣고 보는 일도 많은데

<느껴진 일>도 많아.

앞으로 화자의 느꼈던 일들을 적게 될 거야.  

이별한 여성이 절절하게 그리움을 토로하는 노래.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소녀시대 <훗>을 보면,

여성의 콧대가 얼마나 높은지... ^^ 

너 때문에 내 마음은 갑옷 입고 이젠 내가 맞서줄게
네 화살은 Trouble! Trouble! Trouble! 나를 노렸어
너는 Shoot! Shoot! Shoot! 나는 훗! 훗! 훗!


독이 배인 네 말에 나 상처 입고도 다시 준 두 번째 Chance
넌 역시 Trouble! Trouble! Trouble! 때를 노렸어
너는 Shoot! Shoot! Shoot! 나는 훗! 훗! 훗!

이제 이별한 상황은 알았으니깐,
본격적인 사랑 고백을 시작한다.

계절별로 나오니 잘 읽어보렴. 


(나) (春怨) 봄의 원망

東동風풍이 건듯 부러 積젹雪셜을 헤텨내니,
窓창 밧긔 심근 梅매花화 두세 가지 픠여셰라.
갓득 冷 淡담한대 暗암香향은 므사일고.  
黃황昏혼의 달이 조차 벼마테 빗최니,
늣기는 듯 반기는 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 봄바람이 문득 불어 쌓인 눈을 헤쳐 내니, 
������ 창 밖에 심은 매화가 두세 가지 피었구나.
������ 가뜩이나 쌀쌀하고 담담한데, 그윽히 풍겨오는 향기는 무슨 일인고?
������ 황혼에 달이 따라와 베갯머리에 비치니,
������ 느껴 우는 듯, 반가워 하는 듯 하니, (이달이 바로) 님이신가, 아니신가?


뎌 梅매花화 것거내여  님 겨신 대 보내오져.
님이 너를 보고 엇더타 너기실고.

������ 저 매화를 꺾어 내어 님 계신 곳에 보내고 싶다. 
������ 그러면 님이 너를 보고 어떻다 생각하실꼬?

'동풍'이 부는 봄이 왔어.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위세를 부리니 '북서풍'이 강하지만,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하는 봄이 되면 '동풍' 곧, 샛바람이 불어온단다.
그 샛바람이 '동고서저'의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푄'현상을 일으키고,
그게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이 불어오는 원리란 건 중학교때 배웠지?

솔솔 부는 봄바람, 쌓인 눈 녹이고~ 많이 듣던 동요 아니야? ㅋ
우리학교 정문 앞에도 매화가 가득 피었더구나.
'암향'은 은은한 매화 향기란다.
달빛이 베갯머리에 비치는데, 달이 임처럼 보인대. 

그래서 큰 용기를 내게 된단다.
저 매화를 꺾어서 임 계신 서울로 보내고 싶대.
매화를 보고 임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3년이나 잊고 계셨던 화자를 떠올리실까? 

 


(다) (夏怨) 여름의 원망
곧 디고 새 닙 나니 綠녹陰음이 깔렷난듯,
羅나褘위 寂젹寞막하고 繡슈幕막이 뷔여 잇다.
芙부蓉용을 거더 노코 孔공雀쟉을 둘러 두니,
갓득 시름 한대 날은 엇디 기돗던고.

������ 꽃잎이 지고 새 잎이 나니 녹음이 우거져 나무 그늘이 깔렸는데,
������ (님이 없어) 비단 포장은 쓸쓸히 걸렸고 수놓은 장막만이 드리워져 텅 비어 있다.
������ 부용꽃 무늬가 있는 房帳을 걷어 놓고, 공작을 수놓은 병풍을 둘러 두니,
������ 가뜩이나 근심 걱정이 많은데, 날은 어찌 (그리도 지루하게) 길던고?

봄엔 임생각에 매화를 보냈지.

이제 여름에도 뭔가 보낸단다. 볼까? 

봄의 녹색은 '신록'이라 하지만, 여름은 '녹음'이라 그래. 

비단 휘장과 수놓은 장막과 꽃무늬 망사장에 공작 병풍까지,(이 여자 은근 공주병이다. ㅋ)
아름답고 화려한 방에서 임과 꿈같은 밤을 보내고 싶지만...
이별한 상황에서 근심 걱정뿐인데, 날은 얼마나 긴지...    

시간은 원래 상대적이잖아.
즐거운 시간은 금세 가고, 괴로우면 천천히 가는...
임이 없으니 시간이 더디 가고 날이 길겠지.
그래서 의욕을 내어 옷을 만든단다.

鴛원鴦앙錦금 버혀 노코 五오色색線션 플텨내여,
금자에 견화이셔 님의 옷 지어내니,
手슈品품은 카니와 制졔度도도 가잘시고. 

������ 원앙새 무늬가 든 비단을 베어 놓고 오색 실을 풀어 내어
������ 금자로 재어서 님의 옷을 만들어 내니,
������ 솜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격식도 갖추었구나. 

원앙새 수놓인 비단 베어, 오색실 풀고
금빛 자로 겨누어서 임의 옷을 만든대.(엄청 부유한 가정의 여성이군 흠...)
보통 부잣집 딸이 임에게 추근거리면 꽝!인 것이 연속극의 정석인데 말이지. ㅎㅎ
다음 시간에 '속미인곡'을 하면서 더 비교해 보고... 
 

솜씨는 물론, 격식도 갖추었다고 '자기 그림을 자기가 칭찬(자화자찬)'하는구나.
좀 심한 공주병인듯...   

珊산瑚호樹슈 지게 우에 白백玉옥涵함의 다마 두고,
님의게 보내오려 님 겨신대 바라보니,
山산인가 구롬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千쳔里리 萬만里리 길흘 뉘라셔 차자갈고.
니거든 여러 두고  날인가 반기실가.  

������ 산호수로 만든 지게 위에 백옥으로 만든 함에 (그 옷을) 담아 얹어 두고
������ 님에게 보내려고 님계신 곳을 바라보니,
������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구나.
������ 천만리나 되는 먼 길을 누가 찾아 갈꼬?
������ 가거든 (이 함을) 열어 두고 나를 보신 듯이 반가워하실까?

그렇게 만든 옷을 임에게 보내야겠지.

근데, 택배 상자도 대충 고름 안 될 거잖아.

이 아가씨, 대단한 부유층인데 말이지. ㅋ 

그래서 산호수 지게, 백옥함을 쓴단다. 음, 역시 부유층의 포스가... 

그래 담아 두고 임쪽을 바라 보니,
아, 산인지 구름인지~ 험하기도 험하대.
임을 가리고 있는 산과 구름은 <장애물>이고
정치 현실로 보자면 <간신>이라 볼 수 있겠다.
자신과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

머나먼 길을 누가 갈 것이며,
간다고 해도 과연 반가워 하시기나 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이야.


 

(라) (秋怨) 가을의 원망

하라 밤 서리김의 기러기 우러 녤 제,
危위樓루에 혼자 올나 水슈晶졍簾념 거든말이,
東동山산의 달이 나고 北북極극의 별이 뵈니,
님이신가 반기니 눈믈이 절로 난다.

������ 하룻밤 사이 서리내릴 무렵에 기러기가 울며 날아갈 때,
������ 높은 누각에 혼자 올라서 수정 발을 걷으니,
������ 동산에 달이 떠오르고 북극성이 보이므로,
������ 님이신가 하여 반가워하니 눈물이 절로 난다. 

이제 가을이 되었단다.
하룻밤 새 서리가 내릴 때 기러기는 울며 가고(캬~ 가을 분위기 물씬 나지?)
누각에 올라 수정 구슬로 엮은 <주렴>을 걷으니,
히~이야, 동산에 달이 돋고 북극성이 보이니
세상을 환히 밝히는 달님, 별님,
임금님이신가 하여 반가우면서도
못만나 괴로운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淸쳥光광을 쥐여내여 鳳봉凰황樓누의 븟티고져.
樓누 우에 거러 두고 八팔荒황의 다 비최여,
深심山산 窮궁谷곡 졈낫가티 맹그쇼셔.   

������ 저 맑은 달빛을 일으켜 내어 님이 계신 궁궐에 부쳐 보내고 싶다.
������ (그러면 님께서는 그것을) 누각 위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다 비추어
������ 깊은 산골짜기도 대낮같이 환하게 만드소서.

달빛을 잡아내서 옥황상제 계신 곳에 보내고 싶은 선녀의 마음.
달빛을 보내면 누각에 걸어 두고
온 세상에 밝은 빛을 보내서
산골짜기도 대낮같이 만들어 달라는 선녀의 부탁.
여기서 화자가 단순한 선녀가 아니라
'대부'로서 정치에 참여했던 사람임이 드러나는구나. 

올바른 정치(선정, 善政)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는 신하의 마음이 보이지. 


(마) (冬怨) 겨울의 원망

乾건坤곤이 閉폐塞색하야 白백雪셜이 한 빗친 제,
사람은 카니와 날새도 긋쳐 잇다.
瀟쇼湘샹南남畔반도 치오미 이러커든,
玉옥樓누高고處쳐야 더옥 닐너 므삼하리.

������ 천지가 겨울 추위에 얼어 생기가 막혀, 흰 눈이 일색으로 덮여 있을 때
������ 사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날짐승도 날아다니지 않는다. 
  * 유종원, 강설 - 千山鳥飛絶 萬徑人蹤滅(천산조비절 만경인종멸)  
          
산이란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마다 사람 자취 끊어졌다
������ (따뜻한 곳이라 하는) 소상강 남쪽 둔덕(전남 창평)도 추위가 이와 같거늘,
������ 하물며 북쪽 임 계신 곳이야 더욱 말해 무엇하랴.

겨울이 되었어.  세상은 눈으로 가득찼대.
사람은 물론 나는 새도 못 다닌다는 유종원의 한시를 인용했지.
화자가 있는 남쪽을 중국 소상강의 남쪽으로 빗대었구나.
이 남쪽, 전라도 창평(광주 옆)도 이렇게 추운데,
임금님 계신 대궐(한양, 북쪽)은 얼마나 추울지 말해 뭐하겠냐.

陽양春츈을 부쳐내여 님 겨신 대 쏘이고져.
茅모簽쳠 비쵠 해를 玉옥縷누의 올리고져.
紅홍裳샹을 니믜차고 翠취袖슈를 半반만 거더, 
日일暮모 修슈竹듁의 혬가림도 하도 할샤.

������ 따뜻한 봄기운을 (부채로) 부쳐내어 님계신 곳에 쐬게 하고 싶다.
������ 초가집 처마에 비친 따뜻한 햇볕을 님 계신 궁궐에 올리고 싶다.
������ 붉은 치마를 여미어 입고 푸른 소매를 반쯤 걷어올려,
������ 해는 저물었는데 밋밋하고 길게 자란 대나무에 기대어서 이것저것 생각함이 많기도 많구나.

그래서 따스한 햇살을 부쳐서 임에게 쏘여드리고 싶대.

한겨울에도 양지녘에서 따스한 햇살을 쬐면 참 좋거든.

치마를 입고 소매를 걷고, 영락없는 여성의 동작이지.

해저문 저녁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대. 
 

 

댜란 해 수이 디여 긴 밤을 고초 안자,
靑쳥燈등 거른 겻에 鈿뎐空공侯후 노하두고,
꿈의나 님을 보려 택 밧고 비겨시니,
鴦앙禽금도 차도찰샤 이 밤은 언제 샐고.

������ 짧은 겨울 해가 이내 넘어가고, 긴 밤을 꼿꼿이 앉아, 
������ 청사초롱을 걸어 둔 옆에 자개로 수놓은 공후를 놓아두고
������ 꿈에나 님을 보려고 턱을 받치고 기대어 있으니,
������ 원앙새를 수놓은 이불이 차기도 차구나. (아, 이렇게 홀로 외로이 지내는)이 밤은 언제나 샐꼬? 

짧은 해가 금세 지고 긴 밤 내내 혼자서 꼿꼿이 앉아있는 여인.

독수공방이 얼마나 외로워 보이니?

푸른 등(청사초롱은 붉고 푸른 베로 만든 등이야)은 걸어뒀지만

임이 없으니 낙이 없지.

전공후(멋진 기타같은 현악기)도 임이 없으니 연주할 일도 없으니 곁에 놔 둘 뿐. 

하릴없이(어쩔 수 없이) 꿈에나 임을 보려고 턱을 받쳐 기대었대.

아, 꿈 속에 임은 안 보이고

짝지어 행복하게 해로(함께 늙어감)한다는 원앙 금침은 차기도 차갑대.

임은 없으니 말이야.

잠도 안 오는데 밤은 길고 길구나. 시간의 상대성. ㅠㅜ 

여기까지가 <본사, 곧 본론>이야.
서론에서 '이별한 사연'을
본론에서 '임에 대한 사랑'을 '보내고 싶은 것들(매화, 옷, 청광, 양춘)'을
보내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분이지.

이제 결사, 결론에선 임에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간절히 드러낸단다.
계속 읽어 보렴.

(바)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셜흔날,
져근덧 생각 마라 이 시름 닛쟈하니,
골수의 매쳐 이셔 骨골髓슈의 께텨시니, 
篇편鵲쟉이 열히 오나 이 병을 엇디하리.  

������ 하루도 열두 때, 한달도 서른 날,
������ 잠시라도 님 생각을 말아서 이 시름을 잊으려 해도
������ 마음속에 맺혀 있어 뼈 속까지 사무쳤으니,
������ 편작과 같은 명의가 열 명이 오더라도 이 병을 어떻게 하랴. 

자 이제 결말 부분이야.

하루 12시간(예전엔 하루를 12등분했단다. 그 이름은,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라고 불렀지.)

한 달은 서른 날이고.
잠깐이라도 생각을 않으려고 하지만,
뼛속까지 맺힌 임의 생각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전설의 명의, 편작도 못 고칠 지경이래.

어와, 내 병이야 이 님의 타시로다.
찰하리 싀여디여 범나븨 되오리라.
곳나모 가지마다 간대 죡죡 안니다가,
향 므든 날애로 님의 오새 올므리라.

������ 아, 내 병이야 님의 탓이로다.
������ 차라리 죽어서 범나비가 되리라.
������ 꽃나무 가지마다 간 데 족족 앉고 다니다가
������ 향기 묻은 날개로 님의 옷에 옮으리라. 

아이고, 내 병은 임 생각 탓이야.
차라리 스러져서(죽어서) 호랑나비가 되고 싶대.
나비가 되어 꽃가지에 가는 데마다 앉았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앉을 거래. 

 

님이야 날인 줄 모르셔도 내 님 조차려 하노라. 

������ 님께서야(그 범나비가)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님을 따르려 하노라.

이거 분위기가 좀 스토커 같지 않니? ㅋ

꽃향기 묻힌 나비가 되어 임을 쫓아 다니겠대.

근데, 임은 난줄 모르겠지만,

나는 임을 좇으려 하노라~

아이고, 좀 징그럽네. ㅎㅎ 

이상, 사미인곡이었어.

사미인곡의 화자는 <선녀>인 여성으로 상정되었단다.

다음에 배울 <속미인곡>의 화자도 마찬가지야. 

근데, 차이가 좀 난단다.

사미인곡의 화자는 부유하고, 스토커처럼 쫓아 다니잖아.

반면 속미인곡의 화자는 소박하면서도,

임의 변심에 마음아파하고만 있는 화자야.

다음 시간에 계속 보자.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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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1-03-09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읽다보니 수능 치러 가야할 것 같아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불끈불끈~

글샘 2011-03-10 12:29   좋아요 0 | URL
그런 걸 근자감이라 그래요. ㅋ
근거없는 자신감... 그것만으론 절대 시험 잘 못보죠. ㅎㅎㅎ
그래도 이런 학생들이 얼마나 이쁜데요. ^^
이런 학생들은 성적이 잘 오른답니다. 모범학생 요정님.
 

학기초라 몹시 피곤하구나.
민우도 마찬가지겠지?
아빠가 3학년을 여러 번 하다 보니까,
올해 3학년에도 친한 선생님들이 많아서,
부담스럽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아는 체 하는 선생님이 많을수록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 바란다.
오늘은 인간들이 서로 모여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노래를 몇 편 골라 볼게.
우선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을 읽어 보자.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鬱鬱蒼蒼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안도현, 간격>



한자로 나무가 모이면 ‘수풀 림 林’이 되고,
나무가 더 모이면 ‘빽빽한 삼 森’이 되지.
이 한자들이 모이면 ‘삼림 森林’이 되는 거란다.

그런데, 우리는 머~얼리서, 피상적으로 관찰할 때는 몰랐어.
그저 나무가 여럿 빽빽하게 모여 있으면 그게 숲이 되는 줄 알았지.
나무들은 숲에서 딱 달라 붙어있는 것인 줄 알았지.

그런데,
산불이 휩쓸고간 숲엘 들어가 보고서야,
나무와 나무 사이엔
넓든 좁든 간격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나무들이 꼭 붙어 있으면
서로 햇빛도 가리고
서로 영양분도 나눠먹지 못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리감, 곧 간격이 필요했던 거지.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고,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 사이의 간격.
그 간격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대.

산불이 난 숲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었으니 ‘관조’라고 보면 되겠지?
그런데 화자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관조란 자연을 보면서 ‘인간사’를 깨닫는 거잖아.
간격이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깨달음인데,
과연 인간간의 간격이란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보자.

공동체의 인간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나 애정은 맹목적으로 붙어있는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 것이겠지.
거 왜, 남녀 관계에서도 둘이 짝 달라붙었다가 평생 이별한 애들도 있었잖아.
견우와 직녀라고. ㅋ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맨날 짝 달라 붙어 사는 건 어찌 보면 ‘히키코모리’나 ‘오타쿠’같지 않니?
적당히 어른이 되면 떨어져 살아도 봐야겠지.
대학생이 되면 기숙사에서도 살아 보고,
결혼하면 부부가 둘이서 고생도 하며 살아 보고,
그러다 애기 낳으면 방학에 놀러도 오고, 그렇게 말이야.

다음엔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번쯤
겨울 들녘에 가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오세영, 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은 ‘그릇’에서 ‘인간은 죽는 존재’임을,
 ‘등산’에서 ‘인생은 조금씩 밀고 나가는 것’임을,
그리고 이 시 ‘겨울 들녘에 서서’에서 ‘위안’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의 각 연은 간단하게 이런 구조로 되어 있어.

~~로 아픈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봐라~
거기엔 ~~가 있다.
~~를 보면 알 수 있는.

이런 똑 같이 생긴 문장 구조.

문제에선 이런 것들을 ‘같은 통사 구조가 반복’된다고 한단다.
잘 알아 두렴. ‘같은 통사 구조의 반복’!

1연에선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겨울 들녘’에 가 보라고,
2연에선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에게 거기 가 보라고 하고,
3연에선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에게 가 보라고 한다.
모두 마음 속에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겨울 들녘’은 ‘텅 비어 보이는 공간’이잖아.
괴롭고, 슬프고, 아픈 사람에게 왜 ‘텅 빈 공간’엘 가라고 했을까?
거기서 무엇을 ‘보고 깨달으라고?’

1연에선 ‘빈 공간의 충만’을 배우래.
역설이지? 빈 공간이 가득차 있음을 배우라니.
비록 ‘텅 빈 들판’이지만,
그는 이미 아낌없이 주어버린 자의 자부심으로 거기 있대.
가을걷이(추수)가 끝난 들판에
낟알 몇 개만 남은 겨울 들녘.

그렇지만 잃어버린 곡식을 아쉬워하지 않는 겨울 들녘.
이런 걸 발견하고 나면,
네가 가진 괴로움, 슬픔, 아픔이 좀 치유될 거라는 말이야.



2연도 마찬가지지.
이별에 슬픈 사람.
땅에서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있대.
현실에서의 이별은 사랑의 끝으로 느껴지지만,
이별은 하늘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안식일 수도 있다는구나.

왜 그런 말 있거든.
이쁜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 옆에 두시려고 일찍 데려 간다는 말.
둠벙은 ‘웅덩이’ 같은 거야. 방언이지.
둠벙에 비친 별빛을 보노라면,
먼 하늘에 욕심없이 비치는 별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사랑하는 이의 안식을 배울 수 있다는구나.

3연에서 ‘그리움’은 ‘임과 함께 하지 못함’에서 비롯된 마음이잖아.
‘너를 지킴’은 ‘나를 지킴’이래.
‘네가 있으면 나는 없고, 내가 있으면 너는 없’는 관계가 아니라,
‘너도 지키고, 나도 지켜야 하는 관계’란다.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은
역시 역설적 표현이지.
‘홀로’ 있음을 통해서
‘함께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
안도현의 ‘간격’과도 상통하는 의미인지도 모르겠구나.
논둑의 허수아비를 보면,
허수아비는 혼자 쓸쓸히 서 있지만,
그는 외롭기보다는
가을 들녘에서 황금물결 넘실거리는 볏단을 수확하게 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를 일이야.
마치 결혼식장에서 시집가는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가
아쉬움과 자랑스러움에 흘리는 눈물같은 쓸쓸함과도 유사할지 모르겠다.

역설적 진리를 통해 삶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시.
그리고 사랑과 이별로 괴로워하는 이에게 ‘관조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시.
이런 것이 오세영 시를 읽는 멋이란다.

다음엔 섬의 시인 정현종의 시를 읽어 보자.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다도해가 생각나지 않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대.
그런 걸로 보면, 사람도 섬처럼 느껴지는구나.
그런데, 화자는 그 섬에 가고 싶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섬에.

이 시는 극도로 짧은 시지?
사람들의 ‘사이’, 곧 ‘단절된 인간 관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시 같다.
그 ‘사이’에 ‘섬’이 있고,
그 섬에 가고 싶다는 표현은 그 ‘단절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겠지

그 단절감 사이에서
인간과 인간을 이어줄 수 있는,
의사 소통이 가능한 영역을 ‘섬’으로 표현했단다.
‘섬’에서는 피상적이고 기계적인 현대인의 대인관계가 조금 무너지고,
비교적 자유로운 의사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하는 영역 같기도 해.



어떤 책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어부가 잡아 둔 그물 안에 물고기가 가득했대.
그 물고기들은 숨쉬기도 힘들어 헐떡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는구나.
그런데, 어찌 그 물고기들이 죽지도 않고 살아있는지 신기해 들여다 보니,
물고기 사이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비집고 다니더래.
미끄럽다고 미꾸라진데,
마치 인간관계의 윤활유처럼 매끄러운 역할로 물고기들을 살려주었다는구나.

인간의 삶에는 이렇게 ‘~과 ~의 사이’가 꼭 필요해.
그 사이엔 ‘섬’도 필요하고 ‘미꾸라지’도 필요하겠지.
민우와 아빠 사이가 그닥 멀지도 않지만,
이 강의도 하나의 ‘섬’이고 ‘미꾸라지’가 될 수 있겠구나.

오늘은 연탄재의 시인 안도현의 <간격>,
그릇의 시인 오세영의 <겨울 들녘>, 그리고
섬의 시인 정현종의 <섬>을 통해서,
현대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의 거리감과 간격, 친밀감에 대한
인간의 목마름에 대하여 좀 읽어봤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설명을 읽고 나면 시를 다시 한두 번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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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탄재 시인 안도현, 화성시를 찾다-문인특강 안도현 시인
    from 화성시 공식블로그 화사함 2011-03-18 11:51 
    뜨거운 연탄재 시인, 안도현 화성시를 찾다.감성을 잔잔하게 노래하는 시인, 낮은것을 뜨겁게 사랑하는 시인, 안도현님이 화성시 노작홍사용문학관을 찾습니다. 홍사용문학관에서는 매년 유명 문인을 초청해 작가와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는데요. 오는 19일 열릴 유명문인 특강엔 안도현시인을 초청하였습니다. 3월 중순임에도 꽃샘추위가 기승이지만 안도현님의 아름다운 시들로 인해 봄이 성큼 다가 올것같은 설렘이 느껴지네요. 모든 시인들이 봄을 노래 하였지만 특히나...
 
 
낮에나온반달 2011-03-0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글샘님의 타자속도가 궁금해집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듯.

글샘 2011-03-09 12:36   좋아요 0 | URL
손가락은 보여요. ㅋㅋ
군대에서 행정병한 덕으로 타자는 좀 칩니다.
물론 그때는 4벌식 타자기라고 들어나 보셨을래나...
 

감나무에 감꽃이 지고 나더니
아프게도 그 자리에 열매가 맺네
열매는 한창 쑥쑥 자라고
그것이 처음에는 눈이 부신
반짝이는 광택 속
선연한 푸른 빛에서
조금씩 변하더니 어느새
붉은 홍시로까지 오게 되었더니라.

가만히 보면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불과 일 년이지만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추는 것을 보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생각해 보니
허무라는 심연밖에 없더니라.
아, 가을! <박재삼, 홍시(紅柿)를 보며>

이 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행은 마지막 행이다.
‘아, 가을!’이라는 마지막 행에는 화자의 정서가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는데,
홍시와 대비되어 성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지 못한 화자의 심정을 잘 전해주고 있다.

감나무엔 봄이면 감꽃이 피었다 진다.

그 꽃진 자리에서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가 자라고 자라 붉은 홍시까지 된다.

2연의 <가만히 보면>을 어려운 말로 하면,
‘관조’가 되겠지?
사물을 가만히 보면서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살포시 떠오르는 경지.
이제 이런 것은 많이 들었잖아.  



감나무가 ‘한자리에 매달린 채 자기 모습만을
일 년 동안 하늘 속에 열심히 비춰보는 것’을 보았어.
그러면서 화자는 반성하는 거야.

‘에고에고, 글쎄, 말 못하는 식물이 저런데
똑똑한 체 잘도 떠들면서 도대체 우리는 어디다가
자기 모습을 남기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는 거야.
그래서 생각해 보니 허무하더라는 이야기지.
심연은 ‘깊은 연못 속 같은 알 수 없는 세계’란다.

산다는 일은,
홍시만도 못한 화자가 자신을 반성하는 삶은
허무만이 깊은 그런 것임을 깨달았대.
홍시를 보고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 화자의 마음이 잘 드러났지.

무엇을 보고 생각했다고?
그래. 제목. 홍시를 보고.
왜 이런 생각을 했다고?
<아, 가을!>
이니깐.


열매가 열릴 때 ‘아프게도’가 들어간 것은 성장통(성숙을 위한 고통)으로 볼 수 있겠지.
‘푸른 빛’의 열매가 ‘홍시’의 붉음으로 변하기까지 익어가는 과정은,
단지 식물이 익는 것만이 아니라, 화자의 성숙까지 이야기하는 것 같구나.

‘말 못하는 식물’도 저런데,
말로는 뭣이든 이루려는 인간의 자기 반성, 자아 성찰이 잘 드러나있는 시야.

다음엔 또 ‘도시락 뚜껑’을 보고 ‘관조적 태도’를 보이는 화자를 만나 보렴.

오늘 내가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눈물을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
올해로 그분의 나이 아흔 살
오늘은 그분의 아흔한 번째 생신날
마른 북어 몇 마리
연시 몇 개
그분이 좋아하시던 식혜 한 대접
상을 차리고
남한 여자와 북한 사내가
두루뭉수리로 된 아들딸 데리고
꿇어 엎드려
천번 만번 빌고 빌었습니다.

신의주에서 안동까지
열차를 타고 소풍 갔던 그날처럼
임진강 녹슨 철로를 닦고 닦아
붕붕 신나는 을 울리며
당신 품에 이 손주들 한 번만이라도
안아보시라고
천만 번 빌고 빌었습니다.

당신의 생신날 아침,
아내가 싸준 찰밥덩이
무심코 도시락 뚜껑 열다가
눈물 흘린 것
아무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송수권,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화자는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울었대.
2연에서는 <그분>이 아흔 살이며,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의 생신이 오늘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어.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삽니까’란 표현에서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드러내고 있지.
화자는 남한으로 피란와서 남한 여자와 살고 있어.
그러면서 간절히 어머니를 만나기를 빌고 빈단다.
그렇지만, 꼭 만날 것으로 여기진 않아.

인간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
요즘에도 90살긴 힘든데 말이야.

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야.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열다가,
어머니 생신임을 떠올리며 목이 메이는 화자의 마음이 읽히는구나.

요런 시험문제가 났다면, 틀린 말을 한 사람은 누굴까?

☆선생님: 화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 동현: '나'입니다. 아마 북한에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친척을 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선생님: 화자는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요?

 - 선준: 오랫동안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도시락을 열다가 북한에 계신 그분 생각과 옛 추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화자가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바가 무엇이겠어요?

 - 병록: 이산 가족을 둔 한 가정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확장하면 분단으로 인한 민족의 슬픔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의 시상 전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습니까?

 - 창욱: '~ 모릅니다', '~ 빌었습니다'를 기본 구조로 하여 그 문장의 앞 내용을 조금씩 변화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 작품에서 화자는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형상화했습니까?

 - 현웅: 화자의 일상 체험에서 문제 의식을 찾아 이를 풍자하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당근, 현웅이가 바보지. ㅋ
이 시에서 ‘문제의식과 풍자, 비판’은 나오지 않으니 말이야.

이 시는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분단된 조국의 안타까움과 슬픔을 노래한 작품이야.
화자는 생사조차 분명하지 않은 이북의 혈육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생일날 생일상을 차려 놓고 빨리 만나 뵐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만날 수도 없고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지.
한 가족이 겪는 슬픔과 고통의 <특수한 경험>을 통해
민족의 아픔까지 되새겨 볼 수 있게 <일반화한 시>라고 볼 수 있어. 



이 시에서 화자와 ‘그분’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무엇이었지?
그래. 바로 ‘도시락’이었단다.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찰밥을 보는 순간,
예전 어머니께서 생일날이면 차리던 찰밥이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이야.
자, 이번에도 ‘매개물’이 되는 시어를 하나 찾아 보자.

다음 박재삼의 시 ‘매미 소리에’란 시에서,
그리움의 대상을 떠올리게 하는 시어는 무엇일까, 한번 찾아 보렴.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한낮은 뒤숲에서 매미가 우네.

그 소리도 가지가지의 매미 울음.

머언 어린 날은 구름을 보아 마음대로 꽃이 되기도 하고 잎이 되기도 하고 친한 이웃 아이 얼굴이 되기도 하던 것을.

오늘은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뻐 그려 낼 수 있는
명명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매미 울음에>

찾았어?
그리운 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바로 ‘매미 울음’이지.

'매미 울음'은 그리워하는 대상의 행위까지도 떠오르게 하는 매개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무심코 들었던 매미 소리가
임의 모습과 행위를 연상하게 하여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어지게 하고 있는 거야.

마지막에 ‘명명한’이란 시어는 중의적으로 쓰이고 있어.
매미의 ‘맴맴’ 소리를 흉내낸 의성어로 볼 수도 있고,
‘밝을 명’자로 보면 또렷한 매미 소리로 볼 수도 있겠다.

오늘은 박재삼의 <홍시를 보며>에서
인간인 화자보다 나아 보이는 홍시의 자아 성찰을 화제로
가을을 맞아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는 시를 만났고,

또 박재삼의 <매미 울음에>에서는
매미 소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임의 모습, 임의 행동을 그려 보게 되었고,

송수권의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는
남북 분단으로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한 남자의 슬픔을
어머니 생신날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찰밥을 보며
그 도시락 뚜껑을 열며 오열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단다.

이런 시들을 읽으면,
오늘 우리가 행복하게 함께 살고 있음에,
우리가 누리는 이 아무 것도 아닌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깨닫는 일이 중요함에까지 생각이 번진다.
사랑해, 아들~.
우리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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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3-07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의적' 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아요. 국어 시간에 참 잘 나왔던 말인데 ^^
어느 새 70회가 되었네요?
오늘 올려주신 시는,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군요. 잘 잠재워야겠어요.

글샘 2011-03-08 21:50   좋아요 2 | URL
시는 사람을 울렁이게 해요.
울렁일 수 있는 눈,
울렁일 수 있는 마음...
좋지 않나요?
울렁임도, 시도...

주인공 2011-10-12 1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명한 명명한 을 중의적이라고 쓸 수 있나요?
다른 곳에는 그렇다고 안 되어있어서..;;

글샘 2011-10-12 16:02   좋아요 1 | URL
매미 소리가 '귀를 띄우는' 의미가 있는데, 맴맴 우는 소리를 흉내낸 것이기도 하니 중의적으로 볼 수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