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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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는 나라는 축구를 잘하는 정도,

아이들이 예쁘게 생긴 나라, 이슬람 국가... 뭐 아는 바가 없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국도 그런 나라가 아닐까?

해외여행도 금지되었던 90년대 초반까지의 대한민국은,

자국 내에서 고문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평생 감옥에 넣어서 빼지 않는...

27년 감옥생활한 만델라가 와서 보고는 깜놀한 장기수가 많은 나라였다.

 

조국 찬가를 부르짖고, 아, 대한민국을 부르지만, 가장 폐쇄적인 나라였던 곳.

숨어서 철학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보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기형도의 책이나 이런 책이 낯설지만은 않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타인들은 결코 그런 고통을 믿지 못하고

정신 나간 이야기로 치부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 그 고통에 대해서 묘사하거나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들의 내도를 따라서

혹은 신경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아직 인간은 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술을 마시고 망각해버리는 것.

그러나 이런 방법은 오래가지 못한다.

고통은 잦아드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 더욱 격렬한 형태로 되돌아오고 만다.(7-8)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기형도, 빈 집)

 

보잘것 없는 나라의 보잘것 없는 언어로 쓴

보잘것 없는 시인의 시는 암울하다.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은 현실과는 관련이 없는

착각과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10)

 

마치 꿈속의 몽상을 따라가는 듯한 이야기들은 뜬금없이 시작되고 연결된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뒤집어쓴 채 살고있는 것이 확실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면은 당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기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인간은 계속해서 그것을 쓰고 다닌다.

그들은 낭비가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어느 일정 나이에 이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깨닫는다.

최후의 마스크가 소멸하고 남은 자리에 드러나는 것이 그들의 진정한 얼굴이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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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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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쓴 글,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볼 때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273)

 

'마음'은 '보이지 않는 거'다.

마음의 실체는 없지만, 기실 마음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코기토 에르고 숨>, 생각해야 존재한다는 것도 마음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어제 젊은이들 부고를 둘이나 들었다.

서른 넘은 개그우먼 최서인의 난소암 소식과,

스물 일곱 샤이니 종현이란 가수의 자살 소식을...

정치권엔 죽일 놈들이 천지건만 그들은 멀쩡하고...

 

<유서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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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살으라고 했다.

왜 그래야하는지 수백번 물어봐도, 날위해서는 아니다. 널위해서다.

날 위하고 싶었다.

제발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아요.

왜 힘든지를 찾으라니. 몇번이나 얘기해 줬잖아. 왜 내가 힘든지. 그걸로는 이만큼 힘들면 안돼는거야? 더 구체적인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거야? 좀 더 사연이 있었으면 하는 거야?

이미 이야기했잖아. 혹시 흘려들은 거 아니야? 이겨낼 수있는건 흉터로 남지 않아.

세상과 부딪히는 건 내 몫이 아니었나봐.

세상에 알려지는 건 내 삶이 아니었나봐.

다 그래서 힘든 거더라. 부딪혀서, 알려져서 힘들더라. 왜 그걸 택했을까. 웃긴 일이다.

지금껏 버티고 있었던게 용하지.

무슨 말을 더해. 그냥 수고했다고 해줘.

이만하면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해줘.

웃지는 못하더라도 탓하며 보내진 말아줘.

수고했어.

정말 고생했어.

 

펼친 부분 접기 ▲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글에서도 예술감각이 살아있다.

그래. 정말 수고했던 마음이 느껴진다.

마음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자살' 이야기로 흐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죽는 사람도 있지.

부자연스러운 폭력으로 말이야.

자살하는 사람은 다들 부자연스러운 폭력을 쓰는 거겠지.(74)

 

철학에서 고민해볼 만한 문제가 '자살'이라고 했던 카뮈도 생각난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 삶은 너무 힘들다.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지만, 감기는 나약한 마음을 피폐하게 한다.

 

선생님은 왜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거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겠지.(75)

 

그래, 책은 남들의 이야기다.

남들의 이야기는 참고할 만한 항목이고, 각주일 따름이지,

결코 본문은 될 수 없다.

본문의 큰 글자는 자신만이 새길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 남의 마음을 엿볼 수는 있지만, 자신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늘 역겹다.

 

선생님의 친구 K는 조금 강박적인 성향이었다.

 

어설프게 옛 고승이나 성자의 전기를 읽은 그는

툭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려는 버릇이 있었지.

육체를 단련하면 영혼의 빛이 더해진다고 느끼는 일조차 있었을지 모르네.(200)

 

다시 읽는 책을 <고전>이라고 강유원 강의에서 들었다.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부분을 읽을 수 있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사람은 바보라네.(239)

 

이 한마디가 대화를 단절시키고, 흔들리던 자를 격발시켰다.

좋은 상담사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겠지만,

거꾸로 자신이 힘내서 잘 살때 상담사는 좋은 사람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

자신이 힘들 때는 어떤 상담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말 힘을 내라고 다독거린 말인데도,

비수가 되어 날아들 수도 있는 일이다.

이것이 마음이 하는 일이다.

 

난 책략으로는 이겼어도 인간으로서는 졌다.(254)

 

질투가 사랑의 다른 일면이 아닐는지.

나는 결혼하고 나서 그 감정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자각했네.

그 대신 애정도 결코 처음처럼 맹렬하진 않았지.(223)

 

젊은이의 죽음 소식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있는 자신들은 돌아보아야 한다.

정말 신이 나서 살고 있는 것이냐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힘겹다.

그렇지만 그 마음에 애써 힘을 주어야 한다.

그게 삶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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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쓰시 작품집
나카지마 아쓰시 지음, 조성미.김현희 옮김 / 이숲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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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독한 악의에 대한 겸허한 경외'라는 말이 <우인>에 등장한다.

천재작가는 서른 셋의 나이에 요절한다.

인생이란 험난한 역사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은

동양 이야기에 익숙한 사람들이나 변주할 수 있는 깊이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월기'는 거푸 읽어도 감동적이다.

시를 읊는 일에 대한 애증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아쓰시의 젊은 시절

박물 교사 이야기가 새로웠다.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특이하달 것은 없지만,

그의 세계관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낯선 카멜레온이야기나,

문자화처럼 인간의 문자 활동에 대한 객관적 고증,

그리고 우주의 멸망 같은 것들...

 

낭질,이란

맹자에 나오는 용어로

손가락 하나를 아낀 까닭에

어깨와 등까지도 잃어버리고

그것조차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낭질에 비유한 것은,

작은 것에 얽매이는 인간에 대한 탄식이 아니었을는지...

그처럼 30년을 사나 지금의 백세 시대가 되나,

인간은 작고도 작은 존재인데,

호랑이가 되는 시인에 대한 비유는

삶과 문학활동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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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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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는 표의문자여서 같은 '음'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에는 '인연 因', '은밀 隱', '음란 淫', '그늘 陰'이 모두 일본어로 '인'이란다.

게다가 영어 <IN>은 그녀의 대표작 <OUT>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이 아닌가.

인사이더를 원하는 존재들의 발버둥이 간절하다.

 

여자는 관계를 원하고 남자는 소유를 원한다.(18)

 

<무구한 사람>이라는 소설 속에는 사실 애증에 얽힌 불륜과 다툼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나설 수 없는 처지이니 장례식에도 갈 수 없네.(362)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은 사실이니 그 흔적은 지울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이 일어나면 그리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더라도

몸에 흔적이 남지 않습니까?

대체 연애의 흔적은 어디에 남는다는 거죠?(364)

 

당신이 쓴 무구비토가 연애의 흔적 그 자체겠죠.

우스꽝스러우리만치 허둥대는 우리 자체가 바로 연애의 모습인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더욱 커다란 고통이 탄생할 테고요.

무구비토는 바로 죽어가는 사람입니다.(374)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란 연애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다마키는 생각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한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76)

 

은밀한 음행의 <인>

그렇지만 이 소설은 또 그녀의 소설론이기도 하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설에 쓰는 바로 그 시점에 그건 픽션이 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작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착각할 픽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은 모두 픽션입니다. (313)

  

소설이란 사람들의 무의식을 그러모아

이야기라는 시간 축과 리얼리티를 부여해

무의식을 다시 재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74)

 

<아웃>이 살아있는 인물들의 행동이 빚어내는 생동하는 스토리였다면,

<인>은 좀 작위적인 챕터 구성과

소설론에 대한 목소리를 더하려 했던 것이 재미를 덜하게 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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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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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소세키를 즐겨 읽었다.

<그 후> 같은 책은 아직 못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 후>도 읽고 싶어졌다.

 

소세키를 3장으로 설명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비롯된 소세키의 문명 비판,

군중과 자의식의 시대, 죽음의 그림자는 소세키의 작품 전반을 흐르는 배경이 된다.

 

2장에서는 <산시로, 그후, 문>의 3작품을 전기 3부작으로 부른다.

교양 소설 내지는 입사 소설인 것들인데,

아무래도 젊은이의 그것이어서

육체와 사랑의 문제, 실존적 불안과 시대상을 살핀다.

 

3장의 <마음>이 가장 깊숙하다.

<마음>을 다시 읽어야겠다.

 

지방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제도가 견고히 존재하였고

그러한 질곡으로부터 해방을 부르짖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소세키는 이미 그 아득한 앞날을,

자유와 독립을 얻은 후의 인간이 맞이할 고독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127)

 

소세키의 생각이 가장 잘 무르익은 소설이 <마음>인 듯 싶다.

한 십년 전쯤,

스토리 중심으로 그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스토리는 별게 없었다.

왜 소세키를 연호하는지 몰랐다.

 

이제 근대에서 소세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지점인지를 생각해 보니,

그의 '마음'은 계속 읽어야 할 고전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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