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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분화 직후에는 여름 별장에 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으나
6월이 되자 완전히 진정된 것 같았다.(23)
산이 분화하고 얼마 안 된 일요일 오후.(403)
이 책의 제목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아련한 추억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이들은 '여름'과 '여름 별장'을 기억한다.
뜻밖의 이 책 원제는 '카잔노 후모토데'이다.
'화산' 산기슭에서...인데,
화산 분화 주변에서 사는 삶은...
글쎄다. 매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거 아닐까?
짧고, 위기를 대비할 수 없는,
소박한 삶.
일곱 개나 늘어선 유리병에는
작아져서 못 쓰게 된 연필이 가득 담겨 있었다.(411)
이런 것이 우리의 삶이다.
화산 기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누군가 기억하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몽당연필이 되어 유리병에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참 서정적이다.
묘사도 아름답고, 가끔 생각할 문장도 만난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180)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 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 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181)
이런 구절을 만나는 일은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다.
아,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그런 의지처였을수도 있다~ 이런 느낌적인 느낌.
몸을 감싼 모든 공간에서 벌레 소리가 울려온다.
귀에서 흘러 넘칠 만큼의 소리.
"오래된 집은 정말 좋아.
나무의 기름기가 완전히 빠져서 가벼워진 느낌이 나거든."(244)
남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돼 오는 것을 좋아해.
빙빙 돌리거나 복잡한 것은 싫거든.
새들도 세력 범위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심플한 것을 노래하니가 순진하고 예쁜 소리를 내는 게 아닐까?(98)
이런 대화들을 듣는 소심한 주인공은
내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그 계절은 여름이었고,
장소는 '카잔노 후모토'였다.
앞날을 볼 수는 없지만... 여름이던 시절에 대한
짠한 추억.
이런 작가를 가진 독자들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