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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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에는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안다.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일은 극히 미미한 것.

그리고 대부분의 사건은 큰 강물에 휩쓸려 흘러내려가면서

내 뜻과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커다란 손바닥안에서 좌우된다.(186)

 

좀 작위적인 소설이다.

제목도 그렇다.

 

초조해 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다.

음식을 만들 때는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해.(176)

 

난 운전할 때 항상 되뇐다.

나는 지금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앞차에서 충분히 떨어져야 하고,

정면을 응시해야 한다.

 

삶은 달팽이처럼 살 수 없다.

세상은 얼마나 치열한지,

날마다 뉴스가 넘쳐난다.

그렇지만,

어느날 목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세상은 달팽이처럼 살아도 상관없는 곳이 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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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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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다.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처럼 악인은 아니지만,

예수를 부정한 경력을 가진 나약한 인간.

 

이 소설에서는 결혼 생활에 고개를 돌리는 스기무라가 나온다.

예수를 정말 사랑했던 베드로지만,

그는 고난의 행렬에서 달아나려고 했다.

 

내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멀리 달려가고 싶다고 바랐던 것을.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때만이 아니었다.

 

한국판 제목의 '십자가와 반지'는

결혼의 굴레와 애정 정도가 되려나...

이 소설의 십자가는 결혼 외에도 직장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고,

사건에서 얽힌 사람들과 찾아가는 문제의 사회와도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실패가 아니었어.

성장해서 지금까지의 틀이 좁아졌기 때문에,

자네들은 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걸세.

 

장례 행렬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 속은 제각각이다.

현대 사회의 <피라미드 판매>야말로,

달콤한 말로 친구를 꼬드겨 장례 행렬로 이끌고 마는

베드로의 장례 행렬로 비유되는 행태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것은 인연이다.

살아있고 피가 통하는 인연이 어떤 이유로 약해지고 가늘어지고

결국 죽어 버리면

그 인연에 더이상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소설에서 장인 어른의 포스는 멋지다.

현실에서 듣게 되는 대기업 회장의 갑질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

그런 어른 한 명쯤, 소설에서라도 만나는 일은 행복하다.

 

너무 길어서 책이 무겁다.

그렇지만 삶 자체가 너무 길고 무거울 때도 있단 걸 생각해 보면,

좀 지루했던 책이라도, 마칠 무렵이 되면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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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독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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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오염은 없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

사람이 사는 한, 거기에는 반드시 독이 스며든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이 바로 독이기 때문에.(539)

 

집이 앓고, 땅이 앓고, 사람이 앓는다는 건

바로 나라가 앓는다는 이야기다.(384)

 

굶주려 있는 걸세.

그토록 심하게.

깊이 굶주려 있는 거지.

그 굶주림이 자기 혼을 먹어 치우지 않도록 먹이를 줘야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먹이로 삼는 거야.(313)

 

독극물 살인 사건과

자격지심에 가득찬 겐다 이즈미...

 

굶주린 인간들은 독을 내뿜는다.

이름도 없는 독한 것을...

 

나는 고양이나 관엽 식물인 척하기로 했다.

장인은 고양이나 관엽 식물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대답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으리라.(309)

 

귀엽다. 스기무라.

 

요즘 이런 케이스에는 아무래도 여성들 이야기가 먹힘니다.

아무리 결백하다고 주장해도

어지간해선 의심을 떨치지 않아요.

결국 유죄라고 보는 거죠.(83)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독을 내뿜는 사람 주변에서 폭탄을 맞지 않는 일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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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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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어떠한 결과에 다다르게하는 원인'이다.

이유라는 말은 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고,

무언가로 말미암아 새로운 일이 비롯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발자크를 들먹이지만,

미미여사의 글들에서는 사회파 소설의 관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사람은 누군가에게서 말미암아 태어난 것이고,

그런 이치로, 뒷세대로 물려지는 유전자 같은 것이 있다.

 

유전자 gene 에서 세대 generation 도 나오고,

발전 generater도 되는 법인 모양이다.

 

요즘 이웃이란

의지가 되는 존재가 아니라

경계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서로 못본 체하고 사는 것이 딱 좋다고 봅니다.(126)

 

고층 호화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난다.

그러나 서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건은 답보에 빠진다.

 

매체가 발달한 현대는,

보통 사람이 평범하게 평생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보다 수십 배 많은 양의 ㅈ어보를

텔레비전앞에 30분만 있어도 얻는다.

문제는

현실 혹은 사실이란 과연 무엇인가이다.(154)

 

뭔가 복잡해 보이는 그곳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떠들어대는 드루킹이나 셀프 후원처럼

종일 떠다는 그것에는 실체가 없다.

그저 서로 비난하고 싶은 대상에 포커스를 맞출 뿐.

 

경매 물건을 둘러싸고, 버티기꾼이라는 존재들이 나오고,

결국은 그 버티기꾼의 '가족'처럼 보이던 구성원들이 서로 남남이었다는 결론도 등장한다.

사건은 오리무중인 셈.

 

가족과 사는 것보다

남과 사는 것을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것?(415)

 

현대 일본 사회의 가족 붕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부동산에 관련된 복잡한 문제는 오히려 근본이 아니다.

서로 관계맺어져야 하는 부모와 자식간도

삐뚤어지고 멀어지게 된다.

삶의 이유는 점점 희미해진다.

 

전쟁 이후

사망한 남편 대신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아야 했던 도메라는 할머니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본 사회 역시 굉장한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한국 사회가 겪은 파란만장에 맞먹는 경우였겠으나,

현대 한국의 다이내믹함에 비하면 일본이 지닌 정체성은 좀 지루하다.

 

미아베미유키의 '이유'는 그의 '화차'만큼이나 강하다.

화차가 한 인물의 정체 추적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 몰입이 플롯의 주요소라면,

이유는 이런 저런 숱한 인물들의 겹눈(복안)을 통해 우리 대뇌에 조립되는 어떤 형상을 어른거리게 하는 것이 플롯 요소이다.

서로 다르지만 재미있다.

 

우연히 미미 여사 3종 세트를 '이름없는 독, 이유, 모방범'의 5권으로 판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엔 '이름없는 독'이다.

 

'잇키 부동산'의 '잇키가 한자로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선비 정신 비슷한 逸氣에는 '세속을 초월한 기풍'이라는 고아한 의미가 담겨있다.

부동산 이름치고는 좀 고아한 멋이 담긴 것 같아 맘에 든다.

하는 짓거리야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저속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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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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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스기무라는 탐정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을 캐내는 인물이니 '탐정'이 아닌 것도 아니다.

 

어린아이는 모든 어둠에서 괴물의 모습을 찾아낸다.(207)

 

아버지가 사고로 죽어 두 딸이 범인을 찾으려 책을 쓰려 한다.

스기무라의 돈많은 장인은 사위에게 일을 맡기는데...

 

나는 사토미와 마찬가지로 소심하다.

늘 뒤를 돌아보며, 뭔가 쫓아오지나 않는지 겁을 내고 있다.

사토미는 과거가 두렵고

나는 지금의 행복이 두렵기 때문(238)

 

이 책의 결말은 좀 생뚱맞다.

지속되던 갈증이 엉뚱하게 해소된다. 얄궂다.

 

어두워, 어두워, 하며

누군가 창문 밖을 지난다.

 

방 안에는 가스등 켜졌어도

문밖은 아직 환할 텐데

 

어두워, 어두워, 하며

누군가 창문 밖을 지난다.(6)

 

소설 전에 이런 시가 실려있다.

세월호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오르고,

어두운 마음의 절망스런 퀭한 눈동자가 살아난다.

 

인간이란 그렇다.

필요하면 뭐든 한다.

문제는 그걸 짊어지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 뿐이다.(393)

 

이런 장인의 말 속에서

가지타 부부와 노세 유코의 죄의식을,

가지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중학생의 마음을,

나아가 최종 갈등에 이르는 리코와 하마다, 사토미의 마음을

미리 읽어보게 된다.

 

 

16. 오봉 연휴를 '음력 7월 15일 즈음'이라고 주를 달았다. 틀렸다. 일본은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봉은 8월 15일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원래 <음력 7월 15일에 지내는 행사인데, 1873년 1월 1일 양력 도입 이후는 보통 양력 8월 15일을 중심으로 치른다.>고 되어있다. 150년 전부터 바뀌었으니... 양력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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