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인도네시아 여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책을 뒤적이고 있다. 우선 가이드북으로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싶었으나 그 흔한 프렌즈시리즈에도 인도네시아편은 없는 듯하다. 인도네시아 하면 발리인지 발리 관련 안내서는 꽤 있지만 이번 여행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미 다녀오기도 했고. 하는 수 없이 영문판 론리 플래닛을 주문했으나 배송까지는 보름 넘게 걸려서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폼 잡느라고 뒤적였던 론리 플래닛, 폼도 설렘도 그닥 남아있지 않은 지금은 그저 국산 가이드북이 입에 맞는 한식처럼 편한데 국내산 인도네시아 가이드북이 없다니.. 내가 아직 찾지 못한건가. 그많은 여행작가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시는지...

 

가이드북을 찾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인도네시아 관련 책은 여행보다 인도네시아어회화 책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누가 인도네시아회화를 필요로 할까, 의문이 들 정도이다. 진짜 궁금해지네. 

그래서 한 권 사봤다.














하루에 한 꼭지씩 꾸준하게 했다면 지금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련만. 명사부터 시작하는 성문종합영어를 끝까지 공부한 것은 대학 졸업 후지 아마. 명사편이 도돌이표라도 되는듯 매번 명사편으로 되돌아 갔었다. 자칫 "슬라맛 빠기(Good morning!)"가 도돌이표가 되려나. 외국어 공부는 좀 독기가 있어야 하나보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한 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에 비견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대충 건너뛰며 읽어도 재미와 정보를 취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존재를 알게 된 책, 알게 된 저자.































순서가 바뀌었다. 책 내용을 먼저 말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손을 앞질렀다.


  그리고 1942년 일본의 상황은 한국 등지에서 30년 이상 식민통치를 경험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서 시행한 강제노역, 정신대 등의 악랄하고 비인간적인 제도를 인도네시아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350년 동안의 네덜란드 식민통치보다 3년 반의 일본 식민통치가 더 가혹했다고 이야기한다.                          - p.82



일제강점기 시절을 살았던 내 부모님은 당신들이 겪은 식민통치의 가혹함을 종종 말씀해주시곤 했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자랐다면 일본을 절대로 편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없다. 일본에 너그럽다면 특히 내 또래가 그렇다면 그는 부모님의 원한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부모가 일제의 가혹함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런 일본 얘기가 나오면 내 얘기를 보태면서 흥분하며 치를 떠는 것, 이게 정상 아닌감?


오늘은 자꾸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구나.



  결과적으로 인도네시아어와 말레이어는 한국어와 북한어, 혹은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된다. 원래 같은 언어였지만 국가가 다르다보니 사용하는 어휘, 발음이 다소 다를 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외국인들이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말레이시아에서는 외국인들이 대개 영어로 소통한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이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 p.108



왜 가이드북보다 인니회화책이 많은지 조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살고있는 교민에게는 인니회화책이 더 필요할테니까. 그리고 '여행'하면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을 선호하니까. 그런면에서 인도네시아는 가이드북 여행작가에게는 미개척지가 되는 건가?


  역설적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네덜란드 식민통치 정부가 인도네시아를 통치하면서 네덜란드어 사용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네덜란드어와 같은 고급 언어를 피 식민통치국의 토착인들이 사용하는 것을 꺼렸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호프만 등 여러 학자들의 견해이다. 당시 신분체계가 유럽인-혼혈인-토착인이라는 구별이 있었고 제도적으로 차별이 있었다. 그 다음 이유는 토착인이 네덜란드어를 구사함으로써 자신들이 취하던 경제적 이익을 토착인들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중남미에서 식민통치를 하면서 취한 언어정책과 구별되는 대목이다. 만약 그 당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어의 사용을 강요했다면 인도네시아는 지금 네덜란드어를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 p.107



요점은 인도네시아가 350년 동안 네덜란드 식민지였지만 인도네시아어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이 인도네시아어를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가이드북을 찾을 수 없었지만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인도네시아어에 대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글맵만 있으면 대충 다닐 수야 있지만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인도네시아 여행기도 드물기는 마찬가지. 급하게 구해서 읽었지만 별 도움은 안될 것 같은 책도 있다.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책. 시의 깊은 맛은 인도네시아에 다녀오면 느낄 수 있으려나.

















2007년에 구입했는데 소재 파악 불가한 책. '내 언제 인도네시아에 가리...' 하면서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도 인도네시아에 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가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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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나무순을 먹으면 두릅을 잊고, 머위순을 먹으면 엄나무순을 잊는다. 다시 엄나무순을 먹으면 머위순을 잊는다. 며칠째 밥상에 오른 엄나무순과 머위순을 먹고 있으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오고가는 기분에 젖는다. 엄나무순의 세계와 머위순의 세계. 두 세계가 있어 봄은 더욱 찬란해진다. 짧은 봄, 나물에 젖어 세상을 잊는다. 책도 저발름으로 밀어놓는다.





머위의 특성

1. 버릴 게 없다. 잎은 나물과 쌈으로, 줄기는 볶음과 장아찌로, 뿌리는 약으로, 꽃은 튀김으로 먹는다. 

2. 머위 밭에는 뱀이 없다. 특유의 향기 때문이라고 한다.

3. 생명력이 왕성하다. 한번 뿌리를 내리면 자손을 왕성하게 퍼뜨린다.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란다.

4. 약성이 뛰어나다.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


머위처럼 살고 싶다면...이건 인간의 오만이겠다.



곰취를 노래한 소설가 윤후명이 오늘도 떠오른다. 곰취의 세계는 또 어떨까. 이제야 조금 알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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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엄나무순이 최고





엄나무









윤후명의 소설에 엄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혹시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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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4-17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으로 보면 두릅과 별로 비슷해보이지 않는데 왜 엄나무순을 개두릅이라고도 부를까요.
어떻게 해서 드셨을지 궁금하네요.

nama 2023-04-18 06:24   좋아요 0 | URL
개두릅이란 말이 저도 늘 궁금했는데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어떤 야생화 이름은 미나리냉이인데 그 야생화 입장에선 억울할 것 같아요. 미나리도 아니고 냉이도 아닌데 이름마저 대충이니까요.
엄나무순은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 넣고 나물로 무치거나, 기름에 볶거나 하는데 모두 맛있어요. 본연의 맛은 아무래도 고추장 찍어 먹는게 아닐까요.
 


메모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어제는 수다스러운 지인을 만났다. 그가 정의한 수다의 의미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 그의 수다를 떠올리면 아직도 피로가 몰려온다. 그의 수다는 자신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수다를 되새기는 사람이다. 수다에 서투른 사람이다. 타인의 수다를 듣는 능력에 한계치가 얇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을 터이다. 나는 왜 수다에 약한가? 


각설하고.


심보선. 사회학자로서의 글보다 시인으로서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시를 쓸 때, 나는 '타자'가 됨으로써,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쓴다. 혹은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씀으로써 타자가 된다. 김수영이 '딴사람'이라고 부른 타자 말이다. 이때 타자는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약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때 타자는 소수자라고도 불릴 수 있는데, 이 소수자는 상식의 세계에서, 우리가 소위 '위대함'이나 '정당성'이라는 관념과 감각으로 구축한 말과 행위의 질서에서 목소리와 이미지를 박탈당한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요컨대 시는 "침묵하고 있던 돌이 드디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발견하고 발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쓰기의 '타자 되기'는 일종의 모험이며, 해방이다. 단언컨대, '타자 되기'는 우연하게,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그것은 주의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에게 할당되고 강요되는 정체성과 이력을 거슬러서, 기쁨과 슬픔 사이의 동요를 견디며, 쓰기와 살기를 수행해야 한다.                           - p.134



  나는 시라는 말 만들기 놀이를 통해 주어진 삶 말고 또다른 삶을 제작해왔다. 시 때문에 나는 두 개의 삶을 살게 됐다. 첫번째 삶은 정체가 뚜렷하지만 나를 구속하는 삶, 두번째 삶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삶. 어쩌면 시 때문에 나는 첫번째 삶을 더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 p.169



---시는 "침묵하고 있던 돌이 드디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발견하고 발명한다. 

---시 때문에 나는 첫번째 삶을 더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단 두 문장으로도 심장을 떨리게 하는 시인, 심보선.



  좌파이건 우파이건, 보수 아버지건 진보 자식이건, 전쟁에 관해서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모두 전쟁이라는 비극의 생존자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니 자식도 가까스로 태어난 셈이다.        -p. 57



---아버지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니 자식도 가까스로 태어난 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의 부모가 만나서 짝이 될 확률이 전무하기에 나는 절대로 태어나지 못했을 터. 나는 이 사실에 늘 전율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기막힌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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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4-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았어요.

nama 2023-04-17 20:18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정보 없이 지은이만 보고 샀는데 역시 잘한 선택이었어요.
 


양양의 진전사는 도의국사라는 분이 창건한 신라시대의 사찰로 조선시대에 명맥이 끊어졌다가 근래 복원되었고 아직도 복원 중이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이 이 절과 인연이 있었던 듯, 이곳에서 출가했다는 설도 있고, 이 절에서 득도했다는 설도 있다. 전망 좋고 볕바른 고적한 곳에서 선현들을 떠올리며 한가롭게 걷기에 딱 좋은 절이다.




도열한 주춧돌이 이곳이 한때 사찰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당 한 구석에 자리잡은 도견당(길을 보는 곳)? 도현당(길이 나타나는 곳)? 

*견(見): 볼 견, 나타날 현

개는 집을 지키는 게 일이니 도견당이 맞을 듯하다.



'행복'이라는 댕댕이가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인이 없다. 주인 없는 집은 사람집이나 개집이나 쓸쓸하다. 절집에 어울리는 개집이지 싶다.




처마에 달린 풍경. 손으로 흔들어보니 소리 또한 낭랑하다. 



화사한 봄볕에 나른하고 적막한 개집에서 묘한 상실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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