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에 다녀왔다. 몇년 전 혼자 양구에 다녀왔던 남편이 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단다. 여행은 주로 내가 옆구리 찔러서 다녀오는데 이번만은 남편이 친절하게도 내 옆구리를 찔러주었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그간 열심히 찌른 보람이 있었다. 

  양구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남편이 주로 보는 텔레비전 당구 경기가 양구에서 많이 열린다는 정도쯤. 친구 남편의 고향이 양구라고도 했다. 내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동네가 양구였다. 인터넷 검색이 있지만 미리 알고 가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알고 가는 것보다 모르고 가야 더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펀치볼. 

남편 말에 따르면 거인이 땅바닥에 주먹으로 펀치를 해서 움푹 파인 모양으로 둥그런 분지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과연 그랬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한 바퀴 걸어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놀랐다고나 할까. 




을지전망대 가는 방법은 약간 복잡하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전망대는 없고 매표소 건물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방 지역이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음..자세한 설명은 안 하고 싶다. 모르고 가야 재밌으니까. 다만, 인터넷 신청을 할 수도 있고 현장 접수도 할 수 있는데 성수기 때는 미리 알아봐야 할 듯하다. 

  두어 시간 기다림 끝에 선두 차량을 따라 출발했다. 탑승 인원 확인, 휴대폰 촬영 금지 스티커 부착, 경광등 부착, 네비게이션 가리개 장착, 출발 차량 번호 부착 등 삼엄한 준비 과정이 낯설지만 신선하다. 분단의 지난한 슬픔 앞에서 한낱 관광으로 전락한 이 상황을 신선하다고 느끼는 모순. 안보관광.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에서 펀치볼을 피라미드 모드로 찍고 있는데 새하얀 얼굴의 앳된 병사가 다가와서 사진을 보여 달란다. 자, 봐요. 절대 함부로 찍지 않아요. 피라미드로 찍는 폼이 눈에 띄었나보다.

  펀치볼. 알고보니 펀치볼은 화채그릇을 의미한단다. 인도 치토르가르를 치약가루, 바라나시를 비아그라로 명명해버리는 남편의 상상력과 엉뚱함이 참 사랑스럽다. 어쨌거나 주먹질도 펀치니까. 사전에서는 '산간 또는 산허리의 우묵한 곳'이라고도 나와 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사과는 특히 일품이라고 한다. 


박수근.

동네가 온통 박수근이다. 영국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 셰익스피어로 먹고 살듯 이곳 양구도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먹고 사는 것보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고 할까. 박수근 미술관 가는 길에 박수근 동상과 아파트 벽화를 한 컷으로 담을 수 있는 교차로가 있는데 사진에 담지 못해 내내 아쉽다.




박수근 미술관.

군립으로 운영하는 박수근 미술관은 내 상상보다 훨씬 훌륭하다. 미술관 부지와 건물에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래도 소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박수근 화백상.

박수근의 특징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소박'. 생김새도 참 소박하게 생기셨다. 미술관에 있는 그의 말을 옮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전시물을 보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다음 사진을 먼저 보시라.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박수근. 그가 감명깊게 보았던 밀레의 화집이 이런 것이었을까? 흑백사진으로 만든 스크랩북조차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소박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먹먹해짐.




그의 이력서.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미술공부(독학). '독학'이란 한자에 유독 눈이 간다. 15세 때의 일이다. '소박함'으로 한 세계를 일군 분. 책으로는 봤으나 건성건성 읽었음이 틀림없는, 그의 진면목을 미술관에 와서야 확실하게 깨닫는다. 


양구 9경

1경 양구수목원

2경 한반도섬

3경 두타연

4경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5경 양구백자박물관

6경 펀치볼

7경 양구봉화산

8경 상무룡출렁다리

9경 광치계곡


3경 두타연에도 갔는데.

을지전망대보다는 덜 까다롭지만 역시 안보관광지로 자차 없이는 접근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앳된 군인들의 차량 점검, 인원 파악 등도 비슷하다. 문화해설사의 너스레가 유쾌하고 명확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주의할 점은...




곳곳이 지뢰밭이란다. (근데 사진 올리기가 참으로 난해하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잡아먹는구나.)



양구백자박물관.



예술은 때로 장난...


15~16세기 양구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요지였다고 한다. 새로 알게 된 사실.


양구 9경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지만 내게는 새로운 구경거리였던 것은?


순환자원 회수로봇으로 캔이나 페트를 넣으면 한 개에 10포인트(10원)를 받는다고 한다. 디지털 폐지수집으로 불리는 앱테크보다 실용적이고 건강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했던 내 어리석음. 1박 2일 동안 다섯 군데를 보았으니 네 곳은 다음으로 남겨둔다. 양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제에 자리한 서점 <책방나무야>를 들렀다. 인제 버스터미널에서 아주 가깝다. 이 동네에 자주 왔었지만 서점은 처음이다. 인터넷 검색이 필요한 순간.



주인분하고 몇마디 나누었는데 동네에 이런 책방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하면 안되니까 책 두 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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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5-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구라는 곳을 들어만 봤지 가보진 못했어요. 양구 펀치볼 시레기, 사촌동생 군복무지, 그 정도가 전부네요. 강원도가 제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가본 곳이 별로 없는데, 이번 여름엔 강릉엘 다녀오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양구에도 관심이 가는데요.
방문하는 지역의 작은 책방 들르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잘 팔리면 좋겠는데.

nama 2025-05-26 08:38   좋아요 0 | URL
양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매우 활기차고 재밌는 곳이에요. 쇠락의 분위기를 풍기는 남도지방과는 달라요. 한달살이도 해보고 싶은 곳이지요.
지역의 독립서점 방문은 제 나름의 프로젝트 같은 것으로,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생존이 가능한 세계이구요. 무엇보다 주제가 있는 여행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1. 지난 1월 하순쯤 뉴욕에서 남편 후배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내겐 평생에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30여 년 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한 그분들은 국내 상황을 적잖이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여의도에서 야광봉 흔들고 왔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훌륭하니까 이겨낼거예요."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놀란 듯해서 "박근혜 때도 갔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피곤하구나. 역시 이민을 잘 왔어. 라고 생각했을까?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쓴다. 대통령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일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니... 내 삶에는 대통령도 많았어라. 이승만부터.


2. 청산도, 로케이션 헌팅

영화 <서편제>가 나왔을 때 혼자서 영화관에 갔었다. 동네마다 있는 <중앙극장>이었다. 극장 중간쯤 되는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뭐야?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더 앞자리로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더 따라오지는 않겠지 했는데 웬걸 또 따라와서 옆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았으면 소리라도 꽥 지르는 건데...할 수 없이 이번엔 나가는 척하며 맨 뒷자리 컴컴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서야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뒤엉킨 기분으로 본 영화가 <서편제>였는데 그래도 평생 잊지못할 장면 하나는 건졌다. 그리고 그 촬영지가 내내 궁금했었다. 특히 꽃 피는 봄이 되면 더욱 더.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 내용상(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너른 들판을 상상했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흥에 겨워 진도아리랑 한판 걸판지게 부르며 놀았던 곳은 너른 들판 한가운데쯤으로 상상했었다. 그래서 가기도 쉽지 않은 섬, 청산도에 가면 그 너른 들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전부였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영화라는 게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참...당연한 건데. 로케이션 헌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그런 일 하는 것도 재밌겠다..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청산도는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좀 작아서 그렇지. 섬이니까.



3. 쌍산재, 어렵겠지만.

오늘은 뭘 볼까 검색하다가 얼떨결에 가게 된 곳이다. 티비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곳이나....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서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무리. 딱 하나를 골라봤다. 하얀 천에 덧댄 달항아리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내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하지?




주인장의 향기를 읽었다. '어렵겠지만 .....' 


이 아름다운 곳에 눕고 싶은데 눕지 않으려니 참 어렵겠지요.

손님이 누워버리면 저는 참 어렵답니다.

서로 어려우니까 제발 눕는 일은 삼가세요.


이런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한 단어. 어렵겠지만...


4. 들녘의 마음, 독립서점



곡성의 들판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폐교와 폐교에 차린 서점, 들녘의마음.

이곳엔 소설가 김탁환이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에 익숙한 나는 그를 아는 사람이 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래서 들렀던 곳.




로케이션 헌팅하는 심정으로 고른 두 권의 책. 내가 영화를 찍을 일이야 없겠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영화는 존재하니까. 한때 세상을 주름 잡던, 주름 잡을 것 같았던, 그 누군가처럼. 개떡보다 못했지만. 개떡이란 이름도 아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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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틈틈이 포스팅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일정 따라 움직이다보면 새벽 4시에 출발하기도 하고 밤 늦게 체크인을 하기도 한다. 밥 챙겨 먹는 것도 큰 일이다. 쌓이는 여독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데, 전기포트에 달걀을 삶다가 그냥 잠들어버리는바람에 삶은 달걀이 구운 달걀이 되기도 했다. 새로 장만한 건데 다시 새것을 사야할 판이다. 일정 중간에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에 사진 한두 장과 문장 몇 개를 완성하여 포스팅하곤 했는데 이게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싱거웠던 모양이다. 예전의 여행기에 비하여 글이 짧아졌다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 내 친구들. 하기야 메모 수준의 짧은 글에 덜렁 사진 한두 장이 전부였으니.. 게다가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에 있는 앱에 쓰는 글이니 생각이나 표현력이 조그마할 수밖에. 세상이라는 넓은 화폭에 조그만 손가락으로 점을 찍는 행위라고나 할까. 그런 보잘것없는 메모 수준의 글을 왜 쓰려고 했을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여행의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불만족스러운 단체여행에 대한 화풀이? 현장감의 기록이라 여겼는데 지나고보니 자랑질?

  이래저래 피곤한 여행이 끝난지 열흘이 넘어간다. 여독의 결과는 감기, 감기의 결과는 축농증이 되었다. 달갑잖은 축농증으로 냄새를 못맡고 집중력도 흐려지는 가운데 겨우 정신차리고 몇자 써보고 있다. 평생 앓은 감기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도 피해가는, 여간해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번엔 된통으로 걸렸다. 아무래도 평소 복용하는 면역억제제가 확실하게 제 역할을 했나보다. 여행도 예상보다 힘들었다. 특히 뉴욕이 그랬다. 30일간의 남미여행 끝에 별책부록 같은 3박 4일의 뉴욕여행. 춥고 음산하고 눈과 비가 오는 겨울의 뉴욕을 감당하기에 내 몸은 늙었는가.


1. 내가 서있는 곳이 맨해튼일까, 브루클린일까?

 

브루클린브리지를 보고 걷기 위해서 맨해튼 5번가쯤에서 지하철F선을 타고 York Street역까지 갔다. 역사를 나오면 눈 앞으로 짠하고 나타주면 좋으련만 브루클린브리지는 그렇게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 행인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친절한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 중 더 적극적인 행인은 더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사진 찍는 장소에 가려고 하느냐, 다리를 걷기 위해서 가느냐고 물었다. 걷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데...? 사진이 잘 잡히는 곳은 브루클린쪽인데 맨해튼에도 사진 찍는 곳이 그새 개발되었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브루클린브리지가 왼쪽에, 맨해튼브리지가 오른쪽에 있지?          

맨해튼 동쪽에서 강 너머의 브루클린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맨해튼브리지가 그 옆 오른쪽으로는 브루클린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반대로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면 왼쪽에 브루클린브리지가 그 옆으로는 맨해튼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 여기는 브루클린인데 이건 뭐지?

 같은 장소를 두어 바퀴 헤맨 끝에 드디어 브루클린브리지에 올라섰다. 궂은 날씨면 어떠랴.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오긴 왔는데...어라, 눈 앞에 펼쳐진 빌딩 숲을 바라보자니 브루클린이 그새 맨해튼으로 변했네. 근데 왜 맨해튼은 우중충하고 낡은 동네가 되어버렸나....

 더 이상 길을 헤매면 날이 어두워질까 두려워서 다리 끝에서 처음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눈보라는 계속 몰아치지만 언제 또 여기를 오겠는가. 지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왕복하는 기분도 좋았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다리쯤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다리 끝에서 동네로 접어들며 거리의 환경미화원분들께 지하철역을 물었다. High Street역에서 A선을 타면 된단다. 찾아갔다. 구글맵으로 확인해보았다. ? High Street역은 브루클린에 있었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여긴 분명 맨해튼인데 왜 브루클린이 나오냐며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이젠 구글맵도 이상하군....그러다가 순간 처음에 내렸던 York Street역이 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어느 구석이라고 생각했던 York Street역이 브루클린에 떡하니 점을 찍고 있었다. , 이 깨달음! 여기는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걸 확증편향이라고 하는 건가. 맨해튼에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정황을 거기에 맞추고 다른 사실들을 왜곡하고 회피했다. 부끄러움과 참담함. 이게 늙어가는 모습일까.


2. 갑부의 서재

J.P. 모건의 서재에 갔다.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끝날것 같다.





마침 전시회도 있었다. 모건의 서재와 미술품 등을 관리했던 사서, 벨 다 코스타 그린(Belle Da Costa Greene)에 대한 전시와 유명 인사들의 자필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카프카, Keats 의 필적을 살필 수 있었고 심지어 영국의 헨리8세의 왕비였던 앤 볼린이 사인한 편지도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관람객처럼 코트도 맡기고 하나하나 천천히 살려보련만... 짧은 감동과 여운만 안고 발길을 돌렸다.















모건 박물관에 관한 정보는 이 책에서 얻었다. 뉴욕에서 살아본 사람의 글이다.


3.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쯤 되겠다. 우선 사진 먼저.



승강장 숫자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라고 한다. 개업일이 1913년 2월 2일이라고 하니 백 년이 넘은 대단한 건축물이다. 지하세계로 통할 것 같은 승강장 입구만 일별해도 호흡이 멈추는 곳이다. 그러나.... 지친 몸을 잠시 기댈 곳은 아니다. 도대체 의자 하나 찾을 수 없다. 물론 식당이야 있지만 그곳은 철저히 자본주의화된 장소일 뿐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식당 의자에 앉아서 편히 밥을 먹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은 의자 없는 탁자에 기대 서서 밥을 먹고, 돈이 없는 홈리스는 밖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행인의 동정에 기대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 모든 것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뉴욕 맨해튼이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녀보지만 뉴욕은 가장 기가 빨리는 곳인 것 같다. 2019년에도 뉴욕 여행 후 병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이번 2025년 3박 4일 여행도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 입국 시, 현금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묻질 않나, 호텔 예약증까지 꼼꼼하게 살피지 않나, 미지의 불법체류자를 감별하기 위한 그네들의 불친절하고 도도한 태도에도 기가 질린다. 이런 땅을 돈 싸들고 굳이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뉴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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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여 일 동안 코카서스 3국을 휘젓고 다니다가 돌아온 지도 보름 가량 되어간다. 머릿속으로는 날마다 여행기를 작성했다. 쓸 말이 없지 않으나 기존 여행기나 가이드북에 있는 말을 피해가자니 딱히 꼭 해야 할 말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써야 할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앞서는 건 뭔가. 겸손을 떨다니...이제야 철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있다면, 내 스스로 기획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시간은 넉넉하니까 한 달 정도 계획을 세워 다녀올 수도 있는데 이젠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진다. 한 나라 정도라면 그럭저럭 해보겠지만, 그 강건함을 자랑했던 다리도 삐그덕거리고, 남편 후배 부부와도 동행해야 하고... 열정은 사라지고 핑계는 늘어나니 결국 세미패키지라는 여행 상품을 택했다. 그래도 이십 여 년 간 인연을 이어온 여행사가 있다는 건 믿음직하면서 흐뭇한 일이다. 사업가라기 보다는 여행가에 가까운 사장님, 사업체라기 보다는 동호회 같은 여행사. 이 보다 더 좋은 여행사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부족함을 기꺼이 맡기기로 했다.


이동 경로는 아제르바이젠(IN) - 조지아 - 아르메니아 - 조지아(OUT). 이런 순서가 된 건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까다롭기 때문인데 항공으로만 입국이 가능하고 육로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육로를 이용한 출국은 가능한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불편하고 불친절하기가 신장 위구르 다음이라고나 할까. 가슴팍에 여권을 펴들고 서서 죄인처럼 사진을 찍혀야만 했던 신장 위구르를 앞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터. 이렇게 된 원인은 서로 적대시하는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때문인데 영토 분쟁이라는 심대한 문제가 걸쳐있다.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심적으로 부담되는 주제가 되겠다.


1. 여행 가기 전에 접했던 책 중에서 몇 권을 꼽는다면,















얼마 전까지 달랏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계속 여행 중이신 현경채 님의 책. 코카서스를 갈 때 딱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고 할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가 되겠다.
















진지한 모드의 유재현 님 책. 복습용으로 읽으면 지적 만족감으로 흐뭇해진다.















현장 투입용 가이드북. 소소한 쇼핑 목록이나 와인 소개도 여행자에겐 알찬 정보.

















여행자의 허영심에 약간 부합하는 책. 조지아어 알파벳을 끝내 마스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글자 눈에 들어와서 읽을 수 있었다. 찰진 기분? 찰진 경험? 감히 말하건데 글씨 모양 다듬는 켈리그라피보다 낯선 외국어 알파벳 써보는 게 더 짜릿하지 않을까.


2. 국내에서 못 구한 책을 트빌리시에서 구했다, 조지아어 펜맨십. 





3. 아르메니아 '귬리'


메리라는 아르메니아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아르메니아의 예술가, 작가, 음악가 들은 모두 귬리 출신이라고 한다. 어떤 설명도 곁들이지 않은, 설명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사실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작은 도시에서 하룻밤 묵는다고 이해되지는 않을 터.


메리에게 물었다.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인 William Saroyan 의 < My Name Is Aram>에서 'Aram'의 뜻이 뭐냐고.

















Aram은 아르메니아를 뜻하며 ar- 는 creation(창조)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아람, 그들의 성산 아라랏...모두 ar-로 시작한다고.


1980년대 읽었던 이 책이 요렇게 대화의 주제가 될 수도 있구나.


*아르메니아는 인구가 280만 명쯤 되는데 해외에서 디아스포라로 사는 인구가 일천 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현지 가이드의 말) 보통 책에서는 800만 명으로 적혀 있다. 어쨌건 해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일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타인과 협동을 요구하는 스포츠 같은 것엔 관심이 적고 잘 못한다고 한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하는데... 좀 관심이 간다. 

*ATM, 아이스크림, 칼라 TV, MRI...이런 것들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더욱 궁금해지는 아르메니아.



4. 조지아의 홈리스 견




조지아엔 집 없는, 주인 없는 개들이 거리에 널려 있다. 나름 관리가 되어 있어서 귀에 뭔가 부착되어 있는데 중성화를 했다는 표식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공항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저 멍멍이는 심지어 삶은 달걀을 줘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저 당당함이라니. 개도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야 한다.



조지아 기념품으로 구입한 코렐 접시.



5.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동유럽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성 조지, 용을 무찌르고 있답니다


세 번째 사진의 기둥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중심가에 있는 동상인데 저 노란색은 진짜 금으로 도금한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유재현의 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확실할 터. 저 뒤에 있는 조지아 국기의 붉은 십자가. 이른바 성 조지 깃발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곳을 상징하는 깃발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고. 


성 조지, 검색하면 주루룩 나오네요. 다양성을 잡아 먹는 그놈의 인기.


6. '조지아' 하면 카즈베기



저 먼 산 꼭대기의 만년설. 몇 년 전만 해도 8월에도 만년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6월 현재 아주 쬐금 남아 있다. 이런 기후 위기 시대에 이렇게 비행기 타고 세상 구경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뜨는 비행기, 내가 아니 탄다고 안 뜰 것도 아니라며 내 말을 비웃는 나의 이종사촌 동생들. 그래도 고민은 해야 하지 않겠니?



해 넘어가는 저녁, 아랫 동네에서 바라본 산꼭대기 교회. 호텔 창문으로 밤새 바라봤다는...


7. 포도나무

조지아는 와인 산지 답게 진정 포도나무를 사랑한다. 

우리 나라에는 소나무, 조지아엔 포도나무.

포도 사랑이 깊어 조지아어 알파벳도 포도나무 모양인가?










8. 깍두기



카타르 도하는 경유지, 비행기 창밖에 펼쳐진 세계. 푸른 바다와 황량한 사막 사이에 있는 저 비현실적인 빌딩들. 내 눈으로 본 게 확실한가?


9. 조지아 산골짜기 작은 영화관 "Dede"

우리나라의 평창쯤에 해당될까. 메스티아의 스바네티라는 산골 마을에는 작디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쌍둥이 자매 중 언니는 영화 감독으로 영화 <Dede>를 만들었고, 동생은 그 영화를 7년째 같은 자리에서 상영하고 있다. 오로지 한 편을 위한 영화관이다. 그러니까 영화관 이름도 <Dede>, 영화 이름도 <Dede>. Dede의 뜻은 엄마.



감독 Mariam Khatchvani. 싸인도 받았다.




이 동네에서 더 골짜기로 들어가면 우쉬굴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자매들이 태어난 곳으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특히 여자들을 숨 막히게 하는 곳, 한 여성의 인생 분투기가 전개되는데 '팔자'가 참 모질기도 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쉬굴리 출신의 감독이, 우쉬굴리를 배경으로, 우쉬굴리의 삶을 그렸는데, 우쉬굴리에 다녀온 이방인들이 보고 있자니 영화가 가슴 속으로 쏙쏙 들어오더라는 얘기다. 한여름 더위에 한겨울의 눈 쌓인 장면도 볼 만했다. 겨울에 머물러보고 싶은 동네다.






10. 

여행 경비는 인생 수업료. 수업료 바닥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야겠는데 글쎄 다리가 아파오네요.


11. 여행하는 여자들이 많은 이유

여행지에서 보면 여행자 10명 중에 여자가 7~8명이라면 남자는 고작 2~3명. 















p.341~342

방랑하며 사는 야성적인 "인디언들"만이 천성이 나태하다고 판명된 것은 아니었다. (루즈벨트) 프랭클린이 알기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사로잡혀 그들과 함께 살았던 다수의 정착민들도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했다.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사람들도 이내 정착지를 빠져나와 방랑자들을 다시 찾아 나선다. 이런 특이한 사람도 있었다.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집으로 온 그는 가족의 환영을 받고, 자리를 잡는 데에 필요한 큼지막한 땅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정도로만 땅을 경작하고, 그 땅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생에게 법적으로 양도하고는 총과 겉옷만 챙겨 야생으로 돌아갔다. 프랭클린은 여자들은 더더욱 방랑하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다. 원주민들에게는 남편과 이혼할 자유를 포함해 정착지에는 없는 자유가 있음을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밥 해먹을 걱정이 앞서는 게 여자들 아닌가.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는 슬픈 사실.



12. 다시 코카서스에 가게 된다면?

아르메니아에서 두둑 연주를 질리도록 실컷 보고 오겠어요. 매끄럽게 춤도 추고 싶구요.



13.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가능할까?

스마트폰을 자발적으로 반납하는 카페가 인기라는데, 스마트폰을 지참하지 않는 여행도 가능할까? 요란하게 찍어대는 여행객들을 보면 마치 사진 못 찍은 게 한이 되어 여행 온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사진은 여러 가지로 여행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시야를 가려서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배려 아닌 불필요한 눈치를 보게 한다. 물론 시간도 잡아 먹고. 내가 민폐가 되기도 하고 일행 중 누군가가 민폐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일행과 대화를 나눌 시간을 잡아먹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친절을 거두어들이는 데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일조하기도 한다. 나는 사진 찍기에 매몰된 일행들을 보면 칼로 베인 듯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내가 못 생겨서 그렇다고?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14.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선 할 말이 없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제르바이잔, 처음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하실래요?


15. 인스타그램은 나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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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olike 2024-07-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후기를 읽으니 다시 한번 여행하는 느낌이었네요. 왜 사진 찍는 것을 거부 하셨는지 이해도 했구요. 좋은 생각이신거 같아 저도 한번 실행해볼까 생각중이예요

nama 2024-07-10 14:16   좋아요 0 | URL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메라 없이 여행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눈빛이 더 예리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다 다녀온 라벤더 꽃축제. 평일, 그것도 월요일, 밭에 심은 꽃만큼이나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에서도 한참이나 외진 고성. 가본 사람보다 못(안) 가본 사람들이 많을 터. 짧은 기록을 남긴다.




라벤더 색깔의 도로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온통 라벤더 세상


어디 라벤더 뿐이랴









베일같은 꽃. 그대 이름은? 로열 퍼플 스모크트리(royal purple smoke tree) 

자엽안개나무라네요.




호밀(rye)밭



횃불을 잡은 듯, 마음을 밝혀주는 라벤더 아이스크림.

꽃보다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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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6-13 0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로도 라벤더색이고 아이스크림도 연보라색이네요. 축제 사진 올려주셔서 잘 봤습니다. nama님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요.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nama 2023-06-13 08:32   좋아요 2 | URL
라벤더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사진을 좀 더 많이 올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서니데이님은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이맘때가 참 좋습니다.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3-06-1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새벽에 ˝6월 축제˝검색을 했더니 라벤더 축제가 있더라고요

제가 본 건 ˝고창˝축제 같은데, ˝고성˝을 잘못 보았나도 싶네요.

아름다운 보라빛이네요^^ 6월 초중순, 딱 좋습니다. 화사하고^^

nama 2023-06-13 10:41   좋아요 0 | URL
다른 곳에서도 라벤더 축제가 열릴지 몰라요.

축제는 일부러 찾아가야 축제가 되는 듯 다녀오니 기분전환이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