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경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라는 게시물을 보았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프랑스 꼴마르,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스위스 루체른...대부분 유럽 지역에 몰려있는데 동양쪽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의 시라카와고가 들어있었다. 대단히 주관적인 목록이지만 그것보다도 시라코와고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급호기심이 당겼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같은, 전통 가옥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시골 마을로 숙박도 할 수 있단다. 대충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마침 올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항공 마일리지가 있음을 갑작스럽게 발견했다. 보너스 항공권이라고 공짜는 아니어서 '세금 및 유류할증료' 라는 명목으로 102,800원을 지불했다. 도착지는 나고야.


막상 현지에 가보면 호텔 숙박이나 버스표 끊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데 여행 전 국내에서 예약이나 예매를 앞두고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행자수표를 발행하고, 필름 카메라 목에 걸고, 손에는 지도를 펼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어설프게 물어가며 길을 찾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스마트폰 없이는 비행기 탑승도 어려운 시대. 그러나 AI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그러면 여행이 너무 쉬워지잖아. 나고야 출발 시라카와고행 직행 고속버스 예매와 시라카와고 민박 예약을 해냈다. 어떤 일이든 해놓고보면, 알고보면 별 것 아닌 법. 두 번째는 쉽게 하련만 ...여행 준비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음에 틀림없다.


재미도 없는, 자랑거리 같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를 내내 생각해본다. 나에겐 추억이고 기록이지만 이런 게 세상살이에 무슨 보탬이 될까도 생각해본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나 혼자 알고있기에는 좀 아까워서가 아닐까. 내 인생에서 며칠을 뚝 떼어낸 사건인데...그리고 시라카와고가 꿈결에 본 동화같은 세계 같아서. 야스나리의 <설국>에 열광하듯이 어떤 한 마을에도 열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고야에서 시라카와고까지는 고속버스로 2시간 40여 분이 걸린다. 그 길지 않은 거리를 주파하는데 크고 작은 터널 50여 개를 통과한다. 무엇보다도 시라카와고에 가까와질수록 쌓인 눈의 두께가 달라진다. 터널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탄성도 조금씩 커진다. 드디어 마지막 터널을 지나면 <설국>의 첫 문장을 자연스럽게 읊조리게 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따로 있지만 뭐 어떠랴. 눈의 고장은 마찬가지.



갓쇼즈쿠리 집락촌.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일명 합장촌.

에 불을 밝히는 라이트업 행사가 연중 행사로 있는데 거의 로또 수준의 행운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집




하룻밤 머문 민박집.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하룻밤이었다.




저녁밥과 아침밥을 주는데 이건 저녁밥. 전통 방식으로 꼬치에 끼워 화로에 구운 생선이 인상적인데 짭쪼름한 게 맛있어서 꼬리까지 먹어치웠다.




시라카와고 버스 터미널 게시판에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 무언가를 지켜내는 장중한 아름다움. 80년 만에 지붕을 교체할 때는 텔레비전 방송까지 했다고 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봤으니 저 장면까지 보고 싶다면 욕심 되시겠다.




내가 찍고 내가 감탄한 사진. 우리 나라의 산과는 다른 일본 맛이 나는 풍경.


















<설국> 표지에 쓰인 사진이 바로 시라카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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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 에 선정될 만합니다. 초가 지붕 위에 앉은 새떼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군요.

nama 2025-12-14 19:26   좋아요 0 | URL
옛 것을 지키며 사는 게 쉬워 보이진 않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참으로 볼 만합니다. 하룻밤 머물며 보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도 장관이고요.
 

친구에게 오이지를 담가달라고 해서 몇 개 얻어 먹고 있다. 늘 부글거리는 속도 편해진 듯 싶다. 내년부터는 좀 정신차리고 오이지를 담가 먹어야겠다고 다짐은 해본다. 마음이 늘 바깥에 있으니 집안 살림은 마지막 차례가 된다. 식구들에게 밥을 해먹이는 일이 평생 과제 중의 과제이다.


도쿄에 다녀온 지 닷새가 되었다. 8박 9일 동안 아사쿠사의 좁아터진 호텔을 베이스캠프 삼아 도쿄 시내를 우왕좌왕하다가 왔다.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아니 아무도 내가 어디를 가는지 관심도 없는데 참으로 열심히 다녔다. 집안 살림은 어설퍼도 여행만큼은 야무지게라고나 할까. 다만 야무지지 못한 위장 때문에 내내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여행의 신도 내 꼴을 봐주지 않으려나 보다.


여행 전에 읽은 책 중 단연 압권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책.















2007년에 나온 책을 그때 구입하고 앞부분만 조금 읽고 밀쳐놨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나 재밌다. 맛집이나 핫플레이스와는 관계가 멀지만 일본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다녀오고나서 눈에 들어온 책은
















궁금해서 일단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첫장부터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새로 책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반쯤 읽고 여행 중에 읽으려고 했으나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온 책으로는
















p.124

'후수로 일린다'는 무도 용어인데, 시간적인 지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난제에 재빠르게 대응한다 해도 '선수를 잡았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 때 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대응하는 행위는 모두 '후수로 밀린다'가 된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후수로 밀리는' 훈련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고, 거기에 어떤 대답을 해서 정답을 맞히면 칭찬받고 틀리면 벌을 받는다는 학교 교육의 형식이 애당초 '후수로 밀리는' 연습이다. 취직을 해도 '후수로 밀리는' 훈련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주어진 과제를 적절히 해낸다'와 같은 식이다. 과제가 우선적으로 주어지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는 틀에 익숙한 사람은 모두 '후수로 밀리는' 사람이다.

  왜 우리는 '후수로 밀리는 ' 훈련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강요당하는 것일까. 별로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질문을 하거나 과제를 내는 쪽은 '보스'이고 대답하거나 평가받는 쪽은 '부하'이기 때문이다. '무비판적으로 상급자를 따르는 마인드'를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후수로 밀리는' 기술만을 선택적으로 체득한다. 

                                         '선수를 잡거나 후수로 밀리거나' 중에서


무엇이 '선수'이고 무엇이 '후수'인가. 누가 '선수'이고 누가 '후수'인가. 나는 '선수'인가 '후수'인가. 이어지는 이런 물음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p.145

<사기> 등에 나오는 공자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공자는 아마도 이름 없는 무당의 아들로서 일찍 고아가 되어 미천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처음으로 깊이 응시한 이 위대한 철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은 부분으로 나머지도 빨리 읽고 싶다.)



이제 본론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이다. 구글 지도로 못가는 데가 어디 있나, 싶었는데 이 곳이 그러했다. 지나가는 행인,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 등 8명에게 물어 겨우겨우 찾아갔다. 길 찾기에 일가견이 있는 남편도 힘들어 한 곳이다. 


고인이 된 분의 서재를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저 까만 빌딩에 손을 댄 순간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권의 책을 써도 결국은 누구나 죽는구나,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주인을 잃은 저 검은 빌딩은 고인의 무덤이자 비석 같은 것. 그는 '선수'일까 '후수'일까. 뭐 그런 생각도 무심히 하게 되는 곳.



현관문 앞에서 하릴없이 서성이다가 돌아왔다.
















이 책을 쓴 사람, 다치바나 다카시. 참 행복하고 뿌듯하게 읽었던 책이다. 
















몇년 전 친구가 읽고나서 나에게 넘긴 책. 이제는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이어서 찾아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와세다대학교에 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시작으로 참 꾸준히도 책을 쓰고 있다. 사진 속의 칸칸이 모두 그가 써내려간 책이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작가. 쓰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못 읽겠다고 징징대는 이 누구.



이제 결론이다.


츠바야 서점에도 갔었다. 



엄청 커다란 책에 가격도 엄청 나다. 




감히 만져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한바탕의 꿈 같은 여행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데이비드 베일리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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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다녀왔다. 몇년 전 혼자 양구에 다녀왔던 남편이 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단다. 여행은 주로 내가 옆구리 찔러서 다녀오는데 이번만은 남편이 친절하게도 내 옆구리를 찔러주었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그간 열심히 찌른 보람이 있었다. 

  양구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남편이 주로 보는 텔레비전 당구 경기가 양구에서 많이 열린다는 정도쯤. 친구 남편의 고향이 양구라고도 했다. 내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동네가 양구였다. 인터넷 검색이 있지만 미리 알고 가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알고 가는 것보다 모르고 가야 더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펀치볼. 

남편 말에 따르면 거인이 땅바닥에 주먹으로 펀치를 해서 움푹 파인 모양으로 둥그런 분지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과연 그랬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한 바퀴 걸어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놀랐다고나 할까. 




을지전망대 가는 방법은 약간 복잡하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전망대는 없고 매표소 건물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방 지역이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음..자세한 설명은 안 하고 싶다. 모르고 가야 재밌으니까. 다만, 인터넷 신청을 할 수도 있고 현장 접수도 할 수 있는데 성수기 때는 미리 알아봐야 할 듯하다. 

  두어 시간 기다림 끝에 선두 차량을 따라 출발했다. 탑승 인원 확인, 휴대폰 촬영 금지 스티커 부착, 경광등 부착, 네비게이션 가리개 장착, 출발 차량 번호 부착 등 삼엄한 준비 과정이 낯설지만 신선하다. 분단의 지난한 슬픔 앞에서 한낱 관광으로 전락한 이 상황을 신선하다고 느끼는 모순. 안보관광.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에서 펀치볼을 피라미드 모드로 찍고 있는데 새하얀 얼굴의 앳된 병사가 다가와서 사진을 보여 달란다. 자, 봐요. 절대 함부로 찍지 않아요. 피라미드로 찍는 폼이 눈에 띄었나보다.

  펀치볼. 알고보니 펀치볼은 화채그릇을 의미한단다. 인도 치토르가르를 치약가루, 바라나시를 비아그라로 명명해버리는 남편의 상상력과 엉뚱함이 참 사랑스럽다. 어쨌거나 주먹질도 펀치니까. 사전에서는 '산간 또는 산허리의 우묵한 곳'이라고도 나와 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사과는 특히 일품이라고 한다. 


박수근.

동네가 온통 박수근이다. 영국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 셰익스피어로 먹고 살듯 이곳 양구도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먹고 사는 것보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고 할까. 박수근 미술관 가는 길에 박수근 동상과 아파트 벽화를 한 컷으로 담을 수 있는 교차로가 있는데 사진에 담지 못해 내내 아쉽다.




박수근 미술관.

군립으로 운영하는 박수근 미술관은 내 상상보다 훨씬 훌륭하다. 미술관 부지와 건물에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래도 소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박수근 화백상.

박수근의 특징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소박'. 생김새도 참 소박하게 생기셨다. 미술관에 있는 그의 말을 옮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전시물을 보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다음 사진을 먼저 보시라.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박수근. 그가 감명깊게 보았던 밀레의 화집이 이런 것이었을까? 흑백사진으로 만든 스크랩북조차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소박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먹먹해짐.




그의 이력서.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미술공부(독학). '독학'이란 한자에 유독 눈이 간다. 15세 때의 일이다. '소박함'으로 한 세계를 일군 분. 책으로는 봤으나 건성건성 읽었음이 틀림없는, 그의 진면목을 미술관에 와서야 확실하게 깨닫는다. 


양구 9경

1경 양구수목원

2경 한반도섬

3경 두타연

4경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5경 양구백자박물관

6경 펀치볼

7경 양구봉화산

8경 상무룡출렁다리

9경 광치계곡


3경 두타연에도 갔는데.

을지전망대보다는 덜 까다롭지만 역시 안보관광지로 자차 없이는 접근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앳된 군인들의 차량 점검, 인원 파악 등도 비슷하다. 문화해설사의 너스레가 유쾌하고 명확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주의할 점은...




곳곳이 지뢰밭이란다. (근데 사진 올리기가 참으로 난해하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잡아먹는구나.)



양구백자박물관.



예술은 때로 장난...


15~16세기 양구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요지였다고 한다. 새로 알게 된 사실.


양구 9경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지만 내게는 새로운 구경거리였던 것은?


순환자원 회수로봇으로 캔이나 페트를 넣으면 한 개에 10포인트(10원)를 받는다고 한다. 디지털 폐지수집으로 불리는 앱테크보다 실용적이고 건강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했던 내 어리석음. 1박 2일 동안 다섯 군데를 보았으니 네 곳은 다음으로 남겨둔다. 양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제에 자리한 서점 <책방나무야>를 들렀다. 인제 버스터미널에서 아주 가깝다. 이 동네에 자주 왔었지만 서점은 처음이다. 인터넷 검색이 필요한 순간.



주인분하고 몇마디 나누었는데 동네에 이런 책방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하면 안되니까 책 두 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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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5-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구라는 곳을 들어만 봤지 가보진 못했어요. 양구 펀치볼 시레기, 사촌동생 군복무지, 그 정도가 전부네요. 강원도가 제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가본 곳이 별로 없는데, 이번 여름엔 강릉엘 다녀오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양구에도 관심이 가는데요.
방문하는 지역의 작은 책방 들르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잘 팔리면 좋겠는데.

nama 2025-05-26 08:38   좋아요 0 | URL
양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매우 활기차고 재밌는 곳이에요. 쇠락의 분위기를 풍기는 남도지방과는 달라요. 한달살이도 해보고 싶은 곳이지요.
지역의 독립서점 방문은 제 나름의 프로젝트 같은 것으로,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생존이 가능한 세계이구요. 무엇보다 주제가 있는 여행을 만들어주기도 해요.
 

1. 지난 1월 하순쯤 뉴욕에서 남편 후배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내겐 평생에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30여 년 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한 그분들은 국내 상황을 적잖이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여의도에서 야광봉 흔들고 왔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훌륭하니까 이겨낼거예요."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놀란 듯해서 "박근혜 때도 갔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피곤하구나. 역시 이민을 잘 왔어. 라고 생각했을까?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쓴다. 대통령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일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니... 내 삶에는 대통령도 많았어라. 이승만부터.


2. 청산도, 로케이션 헌팅

영화 <서편제>가 나왔을 때 혼자서 영화관에 갔었다. 동네마다 있는 <중앙극장>이었다. 극장 중간쯤 되는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뭐야?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더 앞자리로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더 따라오지는 않겠지 했는데 웬걸 또 따라와서 옆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았으면 소리라도 꽥 지르는 건데...할 수 없이 이번엔 나가는 척하며 맨 뒷자리 컴컴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서야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뒤엉킨 기분으로 본 영화가 <서편제>였는데 그래도 평생 잊지못할 장면 하나는 건졌다. 그리고 그 촬영지가 내내 궁금했었다. 특히 꽃 피는 봄이 되면 더욱 더.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 내용상(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너른 들판을 상상했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흥에 겨워 진도아리랑 한판 걸판지게 부르며 놀았던 곳은 너른 들판 한가운데쯤으로 상상했었다. 그래서 가기도 쉽지 않은 섬, 청산도에 가면 그 너른 들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전부였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영화라는 게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참...당연한 건데. 로케이션 헌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그런 일 하는 것도 재밌겠다..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청산도는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좀 작아서 그렇지. 섬이니까.



3. 쌍산재, 어렵겠지만.

오늘은 뭘 볼까 검색하다가 얼떨결에 가게 된 곳이다. 티비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곳이나....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서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무리. 딱 하나를 골라봤다. 하얀 천에 덧댄 달항아리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내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하지?




주인장의 향기를 읽었다. '어렵겠지만 .....' 


이 아름다운 곳에 눕고 싶은데 눕지 않으려니 참 어렵겠지요.

손님이 누워버리면 저는 참 어렵답니다.

서로 어려우니까 제발 눕는 일은 삼가세요.


이런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한 단어. 어렵겠지만...


4. 들녘의 마음, 독립서점



곡성의 들판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폐교와 폐교에 차린 서점, 들녘의마음.

이곳엔 소설가 김탁환이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에 익숙한 나는 그를 아는 사람이 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래서 들렀던 곳.




로케이션 헌팅하는 심정으로 고른 두 권의 책. 내가 영화를 찍을 일이야 없겠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영화는 존재하니까. 한때 세상을 주름 잡던, 주름 잡을 것 같았던, 그 누군가처럼. 개떡보다 못했지만. 개떡이란 이름도 아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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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에 틈틈이 포스팅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일정 따라 움직이다보면 새벽 4시에 출발하기도 하고 밤 늦게 체크인을 하기도 한다. 밥 챙겨 먹는 것도 큰 일이다. 쌓이는 여독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데, 전기포트에 달걀을 삶다가 그냥 잠들어버리는바람에 삶은 달걀이 구운 달걀이 되기도 했다. 새로 장만한 건데 다시 새것을 사야할 판이다. 일정 중간에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에 사진 한두 장과 문장 몇 개를 완성하여 포스팅하곤 했는데 이게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싱거웠던 모양이다. 예전의 여행기에 비하여 글이 짧아졌다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 내 친구들. 하기야 메모 수준의 짧은 글에 덜렁 사진 한두 장이 전부였으니.. 게다가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에 있는 앱에 쓰는 글이니 생각이나 표현력이 조그마할 수밖에. 세상이라는 넓은 화폭에 조그만 손가락으로 점을 찍는 행위라고나 할까. 그런 보잘것없는 메모 수준의 글을 왜 쓰려고 했을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여행의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불만족스러운 단체여행에 대한 화풀이? 현장감의 기록이라 여겼는데 지나고보니 자랑질?

  이래저래 피곤한 여행이 끝난지 열흘이 넘어간다. 여독의 결과는 감기, 감기의 결과는 축농증이 되었다. 달갑잖은 축농증으로 냄새를 못맡고 집중력도 흐려지는 가운데 겨우 정신차리고 몇자 써보고 있다. 평생 앓은 감기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도 피해가는, 여간해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번엔 된통으로 걸렸다. 아무래도 평소 복용하는 면역억제제가 확실하게 제 역할을 했나보다. 여행도 예상보다 힘들었다. 특히 뉴욕이 그랬다. 30일간의 남미여행 끝에 별책부록 같은 3박 4일의 뉴욕여행. 춥고 음산하고 눈과 비가 오는 겨울의 뉴욕을 감당하기에 내 몸은 늙었는가.


1. 내가 서있는 곳이 맨해튼일까, 브루클린일까?

 

브루클린브리지를 보고 걷기 위해서 맨해튼 5번가쯤에서 지하철F선을 타고 York Street역까지 갔다. 역사를 나오면 눈 앞으로 짠하고 나타주면 좋으련만 브루클린브리지는 그렇게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 행인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친절한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 중 더 적극적인 행인은 더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사진 찍는 장소에 가려고 하느냐, 다리를 걷기 위해서 가느냐고 물었다. 걷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데...? 사진이 잘 잡히는 곳은 브루클린쪽인데 맨해튼에도 사진 찍는 곳이 그새 개발되었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브루클린브리지가 왼쪽에, 맨해튼브리지가 오른쪽에 있지?          

맨해튼 동쪽에서 강 너머의 브루클린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맨해튼브리지가 그 옆 오른쪽으로는 브루클린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반대로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면 왼쪽에 브루클린브리지가 그 옆으로는 맨해튼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 여기는 브루클린인데 이건 뭐지?

 같은 장소를 두어 바퀴 헤맨 끝에 드디어 브루클린브리지에 올라섰다. 궂은 날씨면 어떠랴.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오긴 왔는데...어라, 눈 앞에 펼쳐진 빌딩 숲을 바라보자니 브루클린이 그새 맨해튼으로 변했네. 근데 왜 맨해튼은 우중충하고 낡은 동네가 되어버렸나....

 더 이상 길을 헤매면 날이 어두워질까 두려워서 다리 끝에서 처음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눈보라는 계속 몰아치지만 언제 또 여기를 오겠는가. 지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왕복하는 기분도 좋았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다리쯤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다리 끝에서 동네로 접어들며 거리의 환경미화원분들께 지하철역을 물었다. High Street역에서 A선을 타면 된단다. 찾아갔다. 구글맵으로 확인해보았다. ? High Street역은 브루클린에 있었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여긴 분명 맨해튼인데 왜 브루클린이 나오냐며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이젠 구글맵도 이상하군....그러다가 순간 처음에 내렸던 York Street역이 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어느 구석이라고 생각했던 York Street역이 브루클린에 떡하니 점을 찍고 있었다. , 이 깨달음! 여기는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걸 확증편향이라고 하는 건가. 맨해튼에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정황을 거기에 맞추고 다른 사실들을 왜곡하고 회피했다. 부끄러움과 참담함. 이게 늙어가는 모습일까.


2. 갑부의 서재

J.P. 모건의 서재에 갔다.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끝날것 같다.





마침 전시회도 있었다. 모건의 서재와 미술품 등을 관리했던 사서, 벨 다 코스타 그린(Belle Da Costa Greene)에 대한 전시와 유명 인사들의 자필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카프카, Keats 의 필적을 살필 수 있었고 심지어 영국의 헨리8세의 왕비였던 앤 볼린이 사인한 편지도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관람객처럼 코트도 맡기고 하나하나 천천히 살려보련만... 짧은 감동과 여운만 안고 발길을 돌렸다.















모건 박물관에 관한 정보는 이 책에서 얻었다. 뉴욕에서 살아본 사람의 글이다.


3.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쯤 되겠다. 우선 사진 먼저.



승강장 숫자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라고 한다. 개업일이 1913년 2월 2일이라고 하니 백 년이 넘은 대단한 건축물이다. 지하세계로 통할 것 같은 승강장 입구만 일별해도 호흡이 멈추는 곳이다. 그러나.... 지친 몸을 잠시 기댈 곳은 아니다. 도대체 의자 하나 찾을 수 없다. 물론 식당이야 있지만 그곳은 철저히 자본주의화된 장소일 뿐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식당 의자에 앉아서 편히 밥을 먹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은 의자 없는 탁자에 기대 서서 밥을 먹고, 돈이 없는 홈리스는 밖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행인의 동정에 기대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 모든 것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뉴욕 맨해튼이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녀보지만 뉴욕은 가장 기가 빨리는 곳인 것 같다. 2019년에도 뉴욕 여행 후 병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이번 2025년 3박 4일 여행도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 입국 시, 현금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묻질 않나, 호텔 예약증까지 꼼꼼하게 살피지 않나, 미지의 불법체류자를 감별하기 위한 그네들의 불친절하고 도도한 태도에도 기가 질린다. 이런 땅을 돈 싸들고 굳이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뉴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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