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백가흠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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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책.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읽으니 마치 스스로 발굴한 느낌이 들었다. 백가흠...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던가. 


책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느네 아버지'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로 아버지를 두었다는 부분에선 부러움과 한숨,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버지....



아버지는 쓰고 싶었으나 쓰지 못했다. 아버지의 문학적 비애가 조금 위안받은 순간은 내가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바로 그때였을 것이다. 내가 소설 쓸 줄 몰랐으니까, 등단할 줄 몰랐으니 조금 기뻤을까. 아버지는 실제로 내게 기쁨을 직접 표현한 적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면서 정말 기뻤던 적은 당선 통보를 받았던 날밖에는 없는 것 같다. 그날, 오후에 통화하던 일이 생각이 난다. 학교로 전화를 걸어 소식을 알렸는데, 금방 다시 전화를 하니 이미 학교에 없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야, 느네 아버지, 학교 조퇴하고 와서, 방에서 운다." - P44

어렸을 적 잊지 못할 소꿉친구 하나는 있기 마련이건만, 우리 삼형제는 그런 친구 기억이 없다.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는 아버지였다. 세상에서 아버지가 가장 재미있었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하고 놀았다. 아버지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게 가장 웃겼고, 읽어주는 동화책이 가장 흥미진진했다. 나란히 턱을 괴고 엎드려 흑백 TV와 주말 영화를 보던 일이 가장 신나는 일이었다. - P46

옛날, 푸세식 화장실이 마당에 있을 때, 아버지는 볼일 보러 가서, 웬만해선 나오지 않았다. <옛날의 금잔디>나 <옛동산에 올라>같은 가곡에서 헨델이나 바흐, 독일 가곡, 찬송가까지 화장실에서 흘러나왔다. 우리 형제는 화장실 앞에 쭈그려 앉아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신청곡을 부탁하곤 했다. 얼기설기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아버지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 형제가 클래식광이 된 연유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간 것인지, 노래를 부르러 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던 시절이 있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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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2023-08-3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렸을 적 가장 좋은 친구는 엄마였지요

nama 2023-09-01 09:32   좋아요 0 | URL
고마운 말씀이지요.
 
우리말의 발견
박영수 지음 / 사람in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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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짐'은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기 위해 다져 놓은 봉숭아 꽃잎을 이르는 말이다. 예전에는 여름이 되면 손톱 가장자리에 밀가루 반죽을 붙이고, 손톱 위에 꽃다짐을 올려서 봉숭아물을 들이곤 했다. 봉숭아물을 진하게 들이고 싶을 때는 꽃보다 잎을 더 많이 넣어서 꽃다짐을 만들었다.'



꽃다짐이라는 단어도, 

밀가루 반죽을 붙이는 것도, 

잎을 넣어야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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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32년을 주기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다. 처음 32년은 부모님 밑에서 살았다. 몸은 날마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늘 어딘가로 떠나있었던 시절이다. 다음 32년은 일인4역을 하며 살았다. 직장인, 아내, 엄마, 며느리의 삶이었다. 이제 세 번째, 자식의 뒤를 봐주는 은퇴의 삶을 위해 이사를 단행하려고 한다. 마지막 거주지의 삶이 32년이 되면 여러 사람을 고생시키겠지, 아마.


시간이 수제비 뜨 듯 뭉텅이로 뜯겨나가는 기분이 든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집어들었는데 알고보니 8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8년이라는 시간이 맴돌다 다시 머무는 느낌이다. 지지부진. 한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렀나보다.


나를 아연케 한 책은 바로 이 책.
















책보다 경험이 진짜라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는데 그 근원이 이 책에 있었나..내 생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책에서 읽은 것? 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이라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기어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책상물림의 비애.


경험에 촛점을 맞추다보니 보이는 책마다 저자의 경험 여부와 경중을 따지게 되는데...
















p.136....'나에게 실패란 아픔이 아니다. 실패를 하면 할수록 다만 내 사전의 어휘가 늘어날 뿐이다. '큰 일이다', '끝이다'라고 생각되는 일에 부딪혀도 마음을 다잡고 죽을 요량으로 해보면 어떻게든 된다. 당시에는 '아아,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이제 어쩌지'하고 난감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실패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경험이다, 전부.

 수시로 상처받고 추락하고 구르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동안에 딱지는 점점 딱딱하게 굳어간다. 딱지가 두꺼워지면 피부도 두꺼워지고 더욱 단단해진다. 기특한 딱지. 만들 수 있을 만큼 만들어보자. 그렇게 딱딱해지 딱지는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떨어져 버린다.

 '아아, 그동안 나는 잘난 척만 하며 살았구나.'


p. 137...'박피가 한 장 한 장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쓸데없는 것들이 벗겨지면 그제야 '아아, 어떤 것이든 실패도 좋은 경험이었구나'하고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려면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돼. 괜찮아, 분명히 길이 보일 거야."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인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당시에는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이 모여서 선이 되는 것처럼 '아아,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내 안에서 딱지가 떨어지는 날이 온다. 그때까지는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딱지가 덕지덕지 앉아서 두꺼워지도록 내 안의 어휘를 늘려가면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쩌다가 임신을 하게 되어 미혼모가 될 상황인데, 아이의 아빠가 잘 생겨서 아이도 인물이 좋을거라 생각하며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는 부분이다. 이 무대책의 솔직함이라니....이 책의 저자 미야자키 마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속초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 (지방의 책방 나들이도 재밌지만 각 지역마다 있는 도서관에 가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이다.'

'어릴 때부터 기린을 좋아해서 기린 연구를 하고 있어요.'


아.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를 생각하게 한 책이다. 딱딱하게 굳은 머리를 쥐어박히는 느낌.


인상적인 부분.


'...어머니는 약간 특이하신 분입니다. 마음이 안 통한다며 유치원을 중퇴했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비가 내릴 것 같으니까 집에 간다며 조퇴해 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말이죠. 딸인 제가 봐도 평범한 분은 아닙닌다. 미야자와 겐지(...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가출한다거나 빈곤에 허덕이는 농민을 돕기 위해 직접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는 등 비범한 삶을 살았다)를 약간 닮았다고 할까요? ' (인용 페이지 못찾음)


미야자키 마리, 군지 메구...두 분 모두 어머니가 영혼이 살아있는 분? 같다.

















도서관 서가를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책. 1950년대 후반, 소련 휘하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며 쓴, 마르케스의 기행문. 현재의 동유럽이 아닌 과거의 동유럽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으스스한 분위기도 좋고.


p. 106 (폴란드 부분)..'상점은 동독과 마찬가지로 형편없다. 그러나 서점은 예외다. 그곳은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화려하며 깨끗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다. 바르샤바는 책으로 가득하고, 가격은 놀라울 정도로 싸다. 가장 인기있는 작가는 잭 런던이다.
















김 빠진 맥주 같은 맛.
















경험이 학구열을 불러일으킨 것인지, 학구열을 못따라가서 읽다만 책.

















책 속 한마디.


'내자응지 거자망지'  來者應之 去者忘之

'오는 자는 응해주고, 가는 자는 잊어준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올린....하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도서관에 아이들 데리고 오는 부모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위의 책 모두를 압도하는 김진해 교수의 글을 음미해보시길...(출처: 한겨레21)


'글 쓰는 목적을 '순수하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랑과 연민, 이 두 가지 감정을 분출하는 걸 글 쓰는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내 진실에 다가가기. 내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쓰기. 글을 쓰는 것은 글을 써서 내가 다른 뭔가가 되려는 게 아니라,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려고 쓰면 됩니다.'


'글은 보편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의 삶과 경험이 갖는 유일성 때문입니다. 유일성을 옹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윤리는 우리 경험의 유일성을 마치 거기서 거기인 걸로 만들어버립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선 모릅니다. 제 어머니 '이의기의 사랑'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것만 쓰면 됩니다.'



다시 미야자키 마리와 군지 메구. 자기 어머니의 이야기였지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좋은 글은 이렇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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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진 2023-08-3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난 32년간 모두를 도왔으니, 남은 32년+a에는 도움을 받아야지요

nama 2023-09-01 09:33   좋아요 0 | URL
도왔다기보다는 함께 살았던거지요.

라로 2023-09-04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양으로 완전히 이사가시는 건가요? 아니면 다른 곳? 이래저래 정신이 없으시겠어요… 그래도 화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2023-09-04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로그짓도 피곤해서 잠자코 있고 싶은데, 답답해서 또 끄적거리게 된다.




경찰과 학교는 비겁하다. 학부모와의 갈등은 휴대폰 감식만으로도 정황이 들어날 텐데, 그것도 아주 아주 아주 쉬운 방법으로. 조사하지 못하거나 조사하고 싶지 않거나 겠지. 


선생을 진즉에 그만둬서 다행이다(1). 


딸내미 재수시켜 교대에 들어가게 했는데 중간에 자퇴해서 진로를 바꿨다. 나보다 딸이 현명해서 다행이다(2).



옆의 기사....한겨레, MBC만 '현장 취재' 막은 도쿄전력..... 한겨레, MBC만 정직하다는 얘기를 이렇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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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건너에 초등학생이 두 명 살고 있다. 기존의 분교는 폐교 상태라서 읍내 가까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대중교통 없는 오지라서 스쿨버스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이 아이들을 데려가고 데려다준다. 아침마다 8시를 5분 남겨놓고 노란 봉고차가 동네에 들어서는데 오늘은 8시가 지났는데도 기척이 없다. 마침 우리 내외는 11 km 떨어진 계곡 초입에 있는 슈퍼로 택배를 가지러 가는 중이었는데 혹여 좁은 1차선 산길에서 이 스쿨버스를 마주칠까봐 남편은 천천히 차를 몰아야 했다. 절반쯤 지났을까. 노란색 스쿨버스가 비상등을 켠 채 도로(2차선) 가장자리에 서있는 게 보였다. 고장? 사고? 애들이 학교에 가야하는데... 걱정하며 옆을 지나가는데.... 기사 아저씨는 산딸기를 따고 있었다. 그러잖아도 우리도 산딸기가 있을 만한 곳을 살피면서 눈에 불을 켜고 있었는데 한발 늦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깨달음이 찾아왔다. 내년을 기약하자.





오늘 집 주변에서 채취한 산딸기. 가시에 찔려가며, 뱀 눈치를 살펴가며, 모기에 물려가며 채취하는 산딸기. 귀하고 귀하신 몸이다. 오로지 산딸기잼을 향한 집념의 산물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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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7-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과일가게에 많이 나와서 지나가면서 몇번 봤어요. 더운 날 힘드셨겠어요. 색감이 참 예쁩니다. nama님 더운 날씨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nama 2023-07-12 21: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잼을 좋아하시면 한번 만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싶어요. 기분전환도 되고요.
즐거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