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Zone of Interest>를 인덕원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감상했다. 상영관이 드물다보니 난생 처음 인덕원까지 가게 되었다. 50석 중 관객이 7명 쯤이었나. 영화의 포인트는 사운드(배경음악)라는 걸 미리 찾아서 알고 갔기에 망정이지 멋모르고 갔더라면 영화 후반부에서나 겨우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불유쾌하면서 뭔가 불안하게 하는 사운드는 역시 영화의 압권이었다.

'끔찍한 장면 없이 끔찍한 영화'. 그 끔찍함은 영화도 영화지만 내 안의 끔찍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셨던 엄마는 어느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집에서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너밖에 없다." 누군가는 평생 병에 걸려서 눈물겹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애달프고, 누군가는 식솔을 책임지느라 어깨가 무거워서 안타깝고, 생각해보면 모두 제각각 '불쌍'한데 나만 유일하게 그런 걱정없이 살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엄마는 참...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모르시나...씁쓰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내내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그렇게나 이기적이었나. 내 몫을 살아내느라 내 삶도 만만치 않았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그래도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 수월하게 사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너만 안 불쌍하다."라는 말씀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안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질타하는 듯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데..하는 서글픔과 함께.


영화 제목인 Zone of Interest를 나는 이렇게 번역해본다. '혼자만 잘 사는 놈(이 있는 곳)'이라고.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 먹은 놈에겐 보이는 게 없다. 그저 저 살 궁리만 하면 되니까. 나라꼴이야 어떻든 제 맘대로 하고야 마는 저 못난 인간들이 죽치고 있는 곳...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뿌리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뻗어가게 하는 이 영화. 책 한 권보다, 며칠 간의 여행보다 더 진하고 매력있다. 쉽사리 뽑히지 않는 뿌리를 심어놓는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에 폰툰다리가 끊어졌다. 완전 고립은 아니지만 어쨌건 외부세계와 격리되었다. Zone of Isolation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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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 내셔널 갤러리 특별판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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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읽었는데,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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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Women Artists (Hardcover)
Phaidon Editors / Phaidon Inc Ltd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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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Kimsooja 를 알게 된 것으로 흡족.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 가 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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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 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별 꾸밈 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가수, 최백호. 그의 글도 최백호스럽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사람이나 노래나 글이 한결같다. 그래서 좋다. 


가수는 음색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가수들은 가창력은 물론이고, 정말 노래를 잘한다.

과거에 비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서 레벨 업이 됐다.

그런데 너무 잘해서 매력이 없다.

정미조, 나훈아, 조용필, 송창식 등의 목소리는

들으면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노래하는 젊은이들한테

가창은 학교에서 배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그 교수가 가르친 것밖에 하지 못한다.

호흡도 똑같아진다.                        

 -p.124


트로트의 홍수 속에서 그간 내가 느낀 것도 저것이었다. '너무 잘해서 매력이 없다'는 것. 언젠가 세종시에 갔었는데 우연히 야외무대에서 노래하는 연구생(?)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옆에는 지도교수쯤되는 사람도 있었다. 희한한 구경을 다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요즘엔 이렇게들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는구나 싶었다. 이들 중에 몇이나 살아남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글도 그렇다. 너무나 매끄러운 글은 매력이 없다. 제 목소리를 제 양식에 담아내지 않으면 일껏 모방에 머물다가 스러지고만다.



잃어버린 것.... 스스로 터득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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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0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모방에서 창조가 탄생하는 법 아닐가요?

nama 2023-07-08 10:22   좋아요 0 | URL
모방으로 시작해서 자기만의 색깔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물감 2023-07-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수는 음색이 중요하다.
매끄러운 글은 매력이 없다.
공감하고 갑니다!

nama 2023-07-08 10:24   좋아요 1 | URL
voice color 니까 결국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지 싶어요.

hnine 2023-07-08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 심야 라디오 방송 진행도 하시는거 아시죠?
저 한때 거의 매일 들으며 잠들곤 했었답니다.
자기만의 음색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저도 공감해요.

nama 2023-07-08 19:12   좋아요 0 | URL
네. 한두 번 방송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라디오나 티비를 가까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자주 듣지는 않아요.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하면 재미없듯 똑같은 건 생명력이 없어보여요.
 


여행 갈 때 미리 정보를 세세히 알고 가는 게 좋을까, 대강만 알고 가는 게 더 설렐까?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는 게 신날까, 제목만 듣고 그냥 직접 보는 게 더 흥미로울까? 그림 전시회를 갈 때 화가에 대한 이력을 살펴보고 가는 게 유익할까,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왜 유명한지 따지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게 더 집중력이 생길까? '더'라는 말을 첨가한 것으로 보아 나는 후자를 따르는 편이다. 미리 아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면 게으른 습성일지도 모른다.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반항 같은 것이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회에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양반은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그림쟁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다. 193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치면 90세인 로즈 와일리에 급관심이 생겼다.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모지스와 같은 분이 또 있구나, 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원래 그림을 공부했는데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40대 중반에야 다시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시작, 70대 중반에 신진작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참 다행이지 싶다.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 Rose Wylie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 Rose Wylie




강릉아트센터



다음은 로즈 와일리의 작품









<인디언을 고문하는 스페인사람들>




<Korean Children Singing> 

노래하는 북한 여학생들. 정치적인 의미는 생각하지 말고 감상하시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천진난만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계산된 의도로 보느냐, 의도 자체를 떠난 무아의 경지로 보느냐...이 둘 사이의 어딘가가 아닐까. 당연한 말인가?




다음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그림











love 와 장갑(glove)이 무슨 상관? love가 쓰인 점이 공통점. 그림으로 나타낸 언어유희가 되겠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가 갈 때까지 간 느낌이랄까. 그림에서 감흥을 찾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일까? 현대미술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



마이클 크레이그는 누구? 설명을 옮기면,


'초창기 개념미술가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그는 교육자로서도 인정받았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특히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양성/배출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데미안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등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가르침 아래에서 각자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 분의 그림을 해석이나 설명없이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현대미술이 불편한 이유.



"나는 늘 경이로운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작품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익숙한 것을 거대해 보이게 하는 것, 이것만큼 쉽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 Michael Craig Martin





저는 감동받지 못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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