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갈 때 미리 정보를 세세히 알고 가는 게 좋을까, 대강만 알고 가는 게 더 설렐까?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는 게 신날까, 제목만 듣고 그냥 직접 보는 게 더 흥미로울까? 그림 전시회를 갈 때 화가에 대한 이력을 살펴보고 가는 게 유익할까,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왜 유명한지 따지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게 더 집중력이 생길까? '더'라는 말을 첨가한 것으로 보아 나는 후자를 따르는 편이다. 미리 아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면 게으른 습성일지도 모른다.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반항 같은 것이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회에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양반은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그림쟁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다. 193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치면 90세인 로즈 와일리에 급관심이 생겼다.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모지스와 같은 분이 또 있구나, 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원래 그림을 공부했는데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40대 중반에야 다시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시작, 70대 중반에 신진작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참 다행이지 싶다.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 Rose Wylie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 Rose Wylie
강릉아트센터
다음은 로즈 와일리의 작품
<인디언을 고문하는 스페인사람들>
<Korean Children Singing>
노래하는 북한 여학생들. 정치적인 의미는 생각하지 말고 감상하시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천진난만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계산된 의도로 보느냐, 의도 자체를 떠난 무아의 경지로 보느냐...이 둘 사이의 어딘가가 아닐까. 당연한 말인가?
다음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그림
love 와 장갑(glove)이 무슨 상관? love가 쓰인 점이 공통점. 그림으로 나타낸 언어유희가 되겠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가 갈 때까지 간 느낌이랄까. 그림에서 감흥을 찾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일까? 현대미술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
마이클 크레이그는 누구? 설명을 옮기면,
'초창기 개념미술가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그는 교육자로서도 인정받았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특히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양성/배출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데미안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등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가르침 아래에서 각자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 분의 그림을 해석이나 설명없이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현대미술이 불편한 이유.
"나는 늘 경이로운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작품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익숙한 것을 거대해 보이게 하는 것, 이것만큼 쉽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 Michael Craig Martin
저는 감동받지 못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