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저장한 사진을 거의 일이년 주기로 외장하드에 옮겨놓곤 했다. 애써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야멸차게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하면서 저장했지만 지금까지 보건데 그 사진을 필요로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예전엔 500장 정도 들어가는 두툼한 앨범을 장만하여 사진을 저장하곤 했는데, 한 10여 권의 앨범이 모아졌을 무렵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간 것이다. 저장 매체도 cd로 사진을 굽다가 usb 로 넘어갔다. 카메라도 바뀌었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습관이 남아서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 한 호흡 숨을 참는 버릇이 나오곤 한다. 삭제가 쉬어졌으니 예전보다 쉽게 버튼을 눌러 결과물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으나 사진에 대한 애착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인화와 현상을 거친 사진을 만지고 들여다 볼 때의 떨림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 외장매체에 저장하건 클라우드에 저장하건 예전같은 애착과는 거리가 멀다.


며칠 전, 여행을 앞두고 휴대폰에 저장한 사진을 외장하드로 옮기다가 깜짝 놀랐다. 일년치의 사진이 사라져버리고 최근에 찍은 이틀치만 남아 있었다. 이런 적이 있었던가? 처음엔 안타깝고 아쉬웠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찍은 사진, 딸의 벅찬 대학 졸업식 사진, 새로 알게 된 꽃을 담은 사진, 댕댕이를 순간 포착한 사진, 어쩌다가 잘 나온 셀카 사진도 있는데... 남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본 결과, 사진을 따로 저장하지 않아도 달라질 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차피 지금도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사진을 남기고 있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잘 찍은 사진을 적극 활용하고 나머지는 어찌되든 신경 쓰지 말자. 내가 사진을 이렇게나 좋아했었나?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질텐데 사진은 남겨서 뭐하나, 라는 생각에 사진 따위 남기지 않는다는 남편 말에 어느덧 물들어버렸나?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삶을 추구. 그렇다면 이런 블로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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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라도 좋다. 하여튼 타블라를 갖고 싶었다...이렇던 차에 짬짬이 들여다본 당근에 타블라가 떴다. 1만 5천 원. 지난 1월 초였다.


옛날식 밥상에서 밥 먹고, 쪼그리고 앉아 나물 캐고, 소파에서 책 읽고, 방바닥에 신문 펼치고 읽고...그랬더니 다리 근육에 문제가 생겼다. 이제라도 식탁을 사용하자, 했더니 남편이 당근에서 식탁을 발견했다. 그것도 나눔(무료)이었다. 엇그제.


식탁은 있는데 당장 의자가 시원찮다. 견물생심이 아니라 생심현물(?), 마음을 먹으니 물건이 나타나네. 당근에 플라스틱 의자가 떴다. 3개에 일만 원.



딸아이는 동묘를 다니면서 옷을 구입한지 꽤 되었다. 딸아이에게 맞지 않는 작은 옷가지는 종종 내 차지가 된다. 요즘도 그렇게 구입한 2천 원짜리 바지를 즐겨 입는다.


남편은 당근 매니아. 당근으로 구입한 물건이 적잖다. 기타, 각종 공구, 함지박, 책상, 의자, 탁자, 식탁, 가전제품(이건 실패할 확률이 높음), 퇴비, 청자켓, 안전모, 겨울 작업복, 등산화, 앵글 선반...... 그중 태그를 떼지 않은 새제품인 겨울 작업복은 딸아이 첫 출근복으로 요긴하게 입었다.


우리 댕댕이.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지 5년 차. 12살. '우리 멍멍이도 중고네' 한다면 딸은 뭐라고 할까? 분명 한소리 들을 터.



당근 덕택에 여러 동네에 가본다.

초고층 오피스텔 꼭대기층, 전망이 인상적이었다. 

송도의 새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흡사 지하도시 같다고나 할까.

시흥의 거북섬, 안개 낀 밤에 당근하러 갔더니 그 앞에 인공 서핑장이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시흥 산업단지 옆 빌라촌, 외국인 근로자와도 당근 거래 가능하네.

옆동네 아파트, 몇년 전 퇴근 길에 오다가다 만나 안면을 튼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여전히 아파트 청소를 하신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데 아직 건강하시다고. 

학교앞 동네, 당근하러 나온 청년이 아무래도 제자 같다고 자기 대신 거래하라고 등 떠민 남편, 체면도 생각해야지.



당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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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취업한 딸이 그간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겠다면서 제안을 했다.1) 선물 2) 딸과 함께 하는 체험. 우리 내외는 2번을 골랐다. 딸은 체험 내용을 2주 동안 철저한 비밀에 부치고 다만 '화성시'가 힌트라고 했다. 낚시? No. 딸기따기 체험? No. 그러면 요트체험이겠네. 으음...맞아! 드디어 디데이. 딸은 교묘하게 행선지를 '경기도 화성시 부근'이라고 네비에 찍었다. 네비에 나타난 전체 지도를 언뜻 보니 바닷가가 아니었다. 길은 점점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00요양원으로 가는 화살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마 우리를 요양원에 맡기러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요양원 체험? 요양원 봉사활동? 다행히 요양원을 지나쳐 갔다. 길은 더 오솔길로 접어들더니 100 미터 앞쯤 경비행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엉? 비행기네! 딸을 낳으면 부모를 비행기 태워준다더니..이렇게나 빨리 타게 될 줄이야. 




탑승 인원은 두 명. 조종사와 승객.




이런 경비행기도 있고.




운동화 신은 나의 두 발. 




한반도 모양의 공원도 있고




나비 모양의 야구장도 있다.




접니다.^^


오늘도 틈만 나면 입에서 나오는 노래.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딸, 고마워. 엄마, 아버지에게 하는 선물은 이것으로 완성이다. 비행기까지 탔으니 뭘 더 바라겠니. 감격한 이 마음, 늘 기억할게.



경비행기 타기 전 딸이 내 손에 쥐어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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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5-02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요.
대단합니다.
정말 감격하셨겠다....


nama 2023-05-02 08:38   좋아요 0 | URL
그간 진로 때문에 딸아이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더 감격이었어요.

얄라알라 2023-05-02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성시가 힌트....
저 역시 포도나 딸기 체험을 생각했는데

어나더 레벨이네요^^

정말 깜짝 선물, 감동입니다
행복하시겠어요

nama 2023-05-02 08:41   좋아요 0 | URL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라로 2023-09-0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져요!! 비행기 타기 전 손에 쥐여준 선물도 넘 귀엽구요,, 저도 경비행기 타봤는데 엄청 무서웠던 생각이 나네요.^^;; 화성시에 그런 곳이 있다니,, 제가 사는 동네에도 경비행기장이 있어요. 경비행기 하니까 돌아가신 시아버님 생각도 나고,,, 왜 이 좋은 페이퍼에 제가 싱숭생숭인지... 어쨌든 나마님의 행복한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nama 2023-09-04 15:15   좋아요 0 | URL
저는 경비행기가 전혀 무섭지 않아요. 오히려 차분하고 침착해지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희열을 느껴요. 비행기 조종이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 안타깝네요.

황동이 2023-11-16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경비행기 체험에 관심이 있어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들러서 보고 갑니다 : ) 착한 따님을 두셨네요. 왠지.. 같은 비행장인거 같은데, 바닐라스카이에어 라는 업체에서 지금 최저가 행사하고 있더라구요. 전 다음주에 타러 갑니다. 재밌길 바래봅니다 : )

nama 2023-11-18 14:15   좋아요 0 | URL
짜릿한 경비행기 체험이 되시길(되셨길) 바랍니다.^^
 

드디어 인도네시아 가이드북을 중고로 구입하는데 성공했다. 2013/2014년판이다. 10년 전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는 심정은 암모나이트 화석을 대하는 심정과 비슷하다. 아련하지만 반갑고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자카르타와 족자가 10년 간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기는 하겠다. 
























눈길을 사로잡는 글.




'일본은 짧은 강제점령에 대한 배상으로 인도네시아에 4억 달러, 필리핀에는 5억 4000만 달러를 지급했다. 그러나 어떤 나라는 36년 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3억 달러를 받았다...'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강제점령한 기간은 3년 반 정도라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땅의 소위 지도자들은 마음이 꽤나 너그러운 듯. 알아서 봐주는 것도 비슷하다. 얇디얇은(70쪽) 가이드북에 이런 문구나마 실어야 했던 저자의 마음이 짠하게 전해져온다. 왜 분노와 한탄은 죄없는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2021년 생이다. 역시 가이드북은 론리 플래닛임을 확인한다. 까짓 영어~. 삼십 년 전 배낭여행할 때는 두꺼운 영한사전을 들고 갔지만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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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통증을 달고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고 있다. 남 얘기가 내 얘기가 되는 것, 그게 늙는 건가보다. 여기저기 아파오니까 이 병원 저 병원 탐색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건강 관련 서적에 저절로 손이 간다. 그래서 뒤적이게 된 책들.

















딱히 건강 관련 서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아닌 것도 아닌 책. 더구나 재밌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가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그 경험을 재미있게 쓴다'는 모토 아래 세계 곳곳을 누빈다는 다카노 히데유키. 그의 책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키득거리면서 읽은 적이 있다. 그냥 키득 수준이 아니라 마음의 구름이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 책이었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덜 유쾌하지만 통증 얘기를 이렇게 재밌게 풀어쓰기도 쉽지 않을 터, 키득거리다보면 내 아픈 것도 잊게 된다. 게다가 집요한 병원 순례 이야기는 왠지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치료는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일어나서 움직여 봤다.

"어떠세요?"

"조금 편해진 것 같아요."

 그렇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나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메구로에서도 그랬지만, 치료를 받은 직후에는 끝났다는 안도감 탓인지, 아니면 치료에 대한 긴장으로 흥분된 상태여서 그런지 대개 조금은 편안해진 기분이 들곤 했다.                          - p.103


정형외과나 한의원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물리치료를 받고나면 꼭 저런 기분이 든다. 에휴, 아픈 얘기를 시작하면 끝도 없을 터. 
















장수가 재앙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연금이 더 중요하지.
















뭔가 부담스러운 내용이 많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알아야 할 일, 먹어야 할 일을 많이 제시하고 있으나 그걸 일일이 지키기에는 좀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주말에 티비를 보다보면 온통 건강관련 프로그램 도배에 질려버리는데 나는 또 어느새 이런 책을 손에 들고 있다. 이 책은 죄가 없는데 이런 책을 읽는 내가 좀 지겨워지는구나.





이것 하나만이라도 기억하기로 한다. 제 맛을 내려면 일단 레시피를 따라서 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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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4-2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뽐뿌로 <염증해방>을 읽으신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ㅠㅠ 저도 이책을 고대로 따라하는 건 엄두도 못내지만, 여기 오래 살아서 그럴까요? 더구나 제가 질병의 예방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그런가 이 책이 신선했어요. 어쨌든 괜히 제 200자평에 책임이 느껴져서 마지막 부분을 고쳤어요. ^^;;

nama 2023-04-27 20:57   좋아요 0 | URL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책은 훌륭해요. 오히려 교과서 같은 반듯함에 제가 따라가지 못해서 좀 불평을 하는 거예요. 제 탓이지요. 그리고 이미 건강관련 서적을 많이 접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