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박 14일로 다녀온 인도네시아. 여행 감흥이 희미해지기 전에 부지런히 기록을 남겨야겠다. 


1. 책장




자카르타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책장이다. 1747년에 주문제작하여 완성하기까지 약 일 년이 걸렸다고 한다. 장식과 도금 등 공을 들이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왼쪽 상단엔 정의의 여신상이, 오른쪽엔 진리의 여신상이 올라가 있다. 압도적인 크기와 당당한 자태가 놀랍지만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의 유물일 뿐이다. 자랑스럽지만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것. 477* 478 cm


2. 결혼식


솔로(Solo) 라는 도시로 인도네시아의 옛모습을 보러 갔으나 목적은 잊은 채 우연찮게 결혼식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꾸역꾸역 들어가는 것이 보였고, 무슨 일인가싶어 가만히 지켜봤더니 호텔이었고, 저만치 Happy Wedding 이라는 글씨가 보였다. 뒤에서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 주뼛거리며 가까이 갔더니 착석을 권한다. 잠시 앉아있으니 차례대로 서빙하는 음식을 어서 먹으라며 뒤에 앉은 현지 여성이 적극 권한다. 아, 이런 횡재가 있나.







인도네시아 전통 결혼 음식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달짝지근하지만 배고픈 이방인에게는 황송한 음식이었다. 밥 한 톨 남기지 않는 미덕만이 그들의 환대에 보답하는 것이겠거니....외국인이라고 특히 한국인이라고 대접을 다 받는구나.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련만 손님 이상의 환대에 이래저래 배부른 하루였다. 배부른 돼지가 되어 나머지 일정을 접고 다시 족자카르타로 돌아왔다. 마침 이날은 예수승천일로 인도네시아 공식 공휴일이어서 많은 인파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서둘러 전철을 타고 돌아와야 했다. 뒤에 앉은 친절한 여성의 충고였다. 돌아오면서 깨달았다. 신랑 신부 얼굴도 못봤다는 것을.


3. 디엥 고원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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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이웃' 덕에 드디어 올봄에도 곰취를 먹는다. 어제 뜯었다며 한 봉지 주신다. 나는 아직 땅에 뿌리를 내린 곰취를 직접 채취해본 적이 없다. 곰취는 좀 만나기 어려운 상대라고나 할까.




저 숟가락은 밥숟가락이 아닌 티스푼, 엄청 큰 곰취가 되겠다. 근데 아깝다. 아무리 실하고 싱싱해도 나는 아직 곰취와 친하지 않다. 곰취 맛을 잘 모른다. 마치 술 중에서 소주 맛을 싫어하듯 봄나물 중 유독 곰취 맛을 즐기지 못한다. 고수의 독특한 향과 고들빼기의 쓴맛에는 환장해도 곰취의 쓴맛에는 마음과 손이 가지 않는다. 소주를 싫어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듯 곰취와 친하지 않은데도 뭐 특별한 이유같은 것은 없다. 그저 쓰다는 이유 하나. 내 인생의 쓴 부분 때문일까. 쓰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만. 그리고 언제까지나 쓴맛을 되새기며 살 수는 없는 노릇. 잠깐,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소주는 알코올 도수 25도를 가리킨다. 처음부터 달달한 소주를 마셨더라면 삶이 덜 썼을라나. 가뜩이나 사는 게 쓰디쓸 때 소주의 쓴 맛까지 더하면 괴롭기까지 했다. 곰취 얘기하다가 소주 얘기로 흘렀다. 곰취 맛을 즐기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이럴지도 모른다. 누구는 '곰취처럼 살고 싶다'는데 곰취 맛을 모르니 그 감정을 영 알 수 없는 것이다. 고들빼기와 고수를 사랑하는만큼 곰취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인생 맛이 더 써야 그 맛을 알려나. 그렇다면 알고 싶지 않은 맛이다. 에이, 곰취 맛 몰라도 좋다. 곰취가 생기면 곰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면 되니까. 세상엔 곰취 맛을 아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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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5-0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도 어제 곰취 한 상자가 생겼어요. 강원도에서 재배한 거라고 하는데, 맛있었으면 좋겠네요.
nama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nama 2023-05-09 23:55   좋아요 1 | URL
입에 맞으면 좋아하실 거예요.
한결같은 관심 감사드려요.^^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 바람구두 여행문고 1
박용민 지음 / 바람구두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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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에 읽었으나 가치를 몰라봤던 책. 인도네시아 얘기가 알차게 실려있다. 다행인 건 그래도 책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 책을 읽었다고 읽은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 겸손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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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과 엄나무순, 머위순 철이 지나고 취나물 철이 되었다. 씨 뿌리고 가꾸지도 않은 자연산 나물 뜯는 재미가 쏠쏠하다. 친절한 이웃은 나물 이름과 쓰임새를 알려주고 심지어 자신이 알고 있는 자생지도 선뜻 가르쳐준다. 고마운 마음을 간직해야 한다.




참취. 마트에서 파는 취나물보다 향이 강한데 향기로 확인하면 된다.




미역취. 이파리가 길쭉하고 향은 밋밋하다. 된장국으로 끓여보니 시금치보다 맛나다. 아마도 미역을 구하기 힘든 시골에서 미역 대신 먹어서 미역취라는 이름이 붙었나보다. 




수리취. 일명 떡취. 떡해먹는 나물이다. 위의 취보다 잎이 훨씬 크고 잎뒷면이 하얗다. 참취 데칠 때 잎 두어 장을 함께 데쳐 나물로 무쳤는데 잎이 질겨서 껌처럼 씹히고 잘 삼켜지지 않는다. 떡으로 해먹는 이유를 알겠다. 쑥떡보다 맛있다고 하니 한번 기대해볼 만하다.


이밖에 곰취도 있고 병풍취도 있는데 내 손으로 채취할 수 없어서 생략한다. 취의 대왕은 단연 병풍취인데 대왕이 빠진 취나물의 세계가 좀 허전하다. 대신 다른 걸로.




척보면 알 수 있는 이름, 우산나물.




가파른 산에 올라야 만날 수 있는데 무리지어 있고 이파리가 실해서 수확량이 많다. 향이 약하지만 맛이 참신하다. 향보다 맛이 뛰어나다. 말로는 설명이 부족한, 먹어봐야 알 수 있는 맛.



산나물의 세계가 참으로 즐거운데 이젠 서서히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팔팔할 땐 이런 나물의 세계를 몰랐고 이제 좀 알만하니 내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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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5-0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곰취 곰취...하는 건 들어봤는데, 수리취 미역취 참취.
nama님 감사드려요. 사진만 봐도 좋네요. 이렇게 친절하게 가르쳐주시는 분이 계셔서^^

nama 2023-05-07 09:58   좋아요 0 | URL
벌개미취도 있어요. 이건 제가 먹어보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어요.
감사합니다.^^
 


여행 갈 때 미리 정보를 세세히 알고 가는 게 좋을까, 대강만 알고 가는 게 더 설렐까? 영화를 볼 때 줄거리를 미리 알고 보는 게 신날까, 제목만 듣고 그냥 직접 보는 게 더 흥미로울까? 그림 전시회를 갈 때 화가에 대한 이력을 살펴보고 가는 게 유익할까, 유명하다는 말만 듣고 왜 유명한지 따지러 가는 심정으로 가는 게 더 집중력이 생길까? '더'라는 말을 첨가한 것으로 보아 나는 후자를 따르는 편이다. 미리 아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더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르다면 게으른 습성일지도 모른다. 모험이 사라진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반항 같은 것이다.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로즈 와일리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회에 다녀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두 양반은 영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그림쟁이라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는 사실이다. 193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치면 90세인 로즈 와일리에 급관심이 생겼다.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렸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의 세계를 창조한 모지스와 같은 분이 또 있구나, 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다. 원래 그림을 공부했는데 일찍 결혼하는 바람에 40대 중반에야 다시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시작, 70대 중반에 신진작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참 다행이지 싶다.


"나는 나이보다 내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습니다."

"I want to be known for my paintings - not because I'm old."    - Rose Wylie


"그림은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림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림은 그냥 그림이죠."         - Rose Wylie




강릉아트센터



다음은 로즈 와일리의 작품









<인디언을 고문하는 스페인사람들>




<Korean Children Singing> 

노래하는 북한 여학생들. 정치적인 의미는 생각하지 말고 감상하시길.


로즈 와일리의 그림은 천진난만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철저히 계산된 의도로 보느냐, 의도 자체를 떠난 무아의 경지로 보느냐...이 둘 사이의 어딘가가 아닐까. 당연한 말인가?




다음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그림











love 와 장갑(glove)이 무슨 상관? love가 쓰인 점이 공통점. 그림으로 나타낸 언어유희가 되겠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가 갈 때까지 간 느낌이랄까. 그림에서 감흥을 찾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일까? 현대미술을 모르는 무식한 소리?



마이클 크레이그는 누구? 설명을 옮기면,


'초창기 개념미술가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그는 교육자로서도 인정받았다.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국의 젊은 예술가들, 특히 YBA(Young British Artists)를 양성/배출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데미안 허스트, 줄리언 오피, 트레이시 에민 등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가르침 아래에서 각자의 작품세계를 발전시켜 세계적 명성을 쌓은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 분의 그림을 해석이나 설명없이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현대미술이 불편한 이유.



"나는 늘 경이로운 경험을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점이 작품을 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죠. 익숙한 것을 거대해 보이게 하는 것, 이것만큼 쉽게 사람을 감동시키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 Michael Craig Martin





저는 감동받지 못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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