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절판


위 붉은색 책은 요즈음에 나오는 책이고 사진 속 책은 1982년 2월 10일 3판으로 발행된 책이다. 값 700원. 범우사.


고향집에 갔더니 예전에 읽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있었다. 감회가 새롭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책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어 있고 문장도 세로로 되어있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었었나 싶다. 책에 써넣은 유일한 메모를 보니 대학 3학년 말에 구입했다고 적혀있다. 책을 너무 깨끗하게 보았다. 메모가 없는 옛 책은 뭔가 아쉬움을 남긴다.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이제는 안경 없이는 읽기도 힘든 책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뵙는 기분이다.

딸내미 왈, "엄마와 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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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 존재의 안부를 묻는 일곱 가지 방법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내가 절대 못먹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산낙지와 개고기가 그렇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입에 넣어 먹는다는 행위는 도저히 모방조차 못한다. 꿈틀거림 때문에 속이 뒤집힐 정도로 아찔해져오는 것이다. 개고기는, 어릴 때부터 늘 개와 함께 살면서 눈도 맞추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 때문에 감히 먹을 생각조차 못한다.

그런 내게 며칠 전 20년 가까이 된 동료가 낙지 5마리를 주었다. 그 동료가 손수 적어준 요리법대로 고무 장갑을 끼고 소금으로 낙지를 박박 문지르자니 참 난감한 기분마저 들었다. 손 끝은 아니지만 마음이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미안하다, 낙지야. 

그렇게 난생 처음 낙지 볶음을 해보았다. 모처럼 풀밭에서 벗어난 밥상을 준비하며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이날따라 모두들 바쁜 모양이다. 이래저래 먹을 복이 없는 식구들이다. 심심하고 허전한 마음에 마지막 하나 남은 캔맥주를 따서 저녁 삼아 먹는다. 물론 안주는 낙지 볶음이다. 허나 캔맥주 하나에 취기가 오르랴. 그래도 빈 속에 먹어서인지 알딸딸해진 기분에 방금 배송된 박범신의 <산다는 것은>을 집어든다. 

'꽃에 취해 못 마시는 술 한 병을 그만 다 비우고 만다.' 는 구절이 눈에 들어오자 취기가 확 오르기 시작한다. 책에 취하는 순간이다. '떠나지도 못하고 참되게 머물지도 못하는 반신불수의 어정쩡한 연대에 기어코 봄이 지나가는 걸 올해도 어김없이 견뎌내고 있는 참이다. 눈물이 핑 도는데 초인종이 울리고...마누라가 들어온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핑 돌아서 괜히 훌쩍거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다시 현실이다. 

인상 깊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에 갈피갈피 꽂아놓은 연두색 포스트잇이 마치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뭇잎 같다.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는데도 금방 다 읽어버렸다. 아쉬워 몇 구절 인용해본다. 

(176) 어떤 이는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제 몫의 꽃을 피워보지 못했다고 느낀다. 그런 사람에게 시간은 더 가혹하다. 나이 들수록 분노가 쌓이거나 정한은 늘어 욕망과 집착의 덫에 빠지기 쉽다. 

칠순이 지나고 팔순이 되어도 점점 더 어리석어지고 고집만 부리게되는, 자식들의 걱정거리가 되어가는 노인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억울함을 자식들인들 어쩌랴. 

(189) 외부로 열린 문을 닫으면 내면의 뜰이 넓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딸아이의 성적이 떨어진 원인을 찾아보았다. 결단을 내렸다. 휴대폰의 부가서비스인 인터넷 접속을 차단시켜버리고, 제 방에 있는 카세트 라디오를 빼앗아 버렸다. 시험기간 내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공부를 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불어 텔레비전 시청 금지까지. '내면의 뜰'이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192)..얼마나 수없이 많은 순간 가족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나의 연민으로부터 '이불 속에서 빠져나가듯이 표 안 나게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하고 바랐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193)애들이 품을 떠난 후부터 밖에서 저녁때가 되면 본능처럼 집에 혼자 있을 아내를 생각한다. 내가 들어오지 않고 혼자 있으면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게 최종적으로 남겨진 감옥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말라. 고백하노니, 명백히 그건 틀렸다. 

겉은 범생이 였지만 끊임없이 일탈을 꿈꾸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온통 감옥 투성이였다. 특히 가족이, 학교가 그랬다. 그 모순 투성이의 학교. 이젠 선생의 자격으로 감옥을, 모순을 재생산하고 있다.  

 (242) 나이 들어가며 제일 어려운 것은 사랑의 축적보다 미움의 부피를 줄이는 일이다...그것의 부피가 아주 커지면 미워하는 대상보다 자신이 먼저 망가질 것이므로.

 이 작가는, 미움의 부피를 줄여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글을 쓰는 일이라고 한다. 나도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이 책의 많은 글들을 이미 한겨레신문의 박범신 칼럼에서 읽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점점 더 그의 글이 좋아진다. 박범신은, 결코 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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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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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구입하고는 남편에게 먼저 양보했다. 늘 책을  끼고 있는 나보다 읽는 책은 훨씬 적건만, 늘 여유있고 활기차고 적당한 비전마저 겸비한 남편이 모처럼 호기심을 표한다.(책 읽기를 썩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종종 부럽다.) 중간 점검삼아 몇차례 물어보니 재미있게 읽고 있노라 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읽기 전에 남편에게 물어봤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가 뭐냐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아야한다,는 거란다. 평소 말이 길지 않은 남편다운 대답이다.  

읽고 보니 '재미있게 살아야한다'는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이렇게 책으로 확인하고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니...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뒤적여봐야 적이 안심되듯 책을 통해서 확인을 해야 안심이 되는 이 요상한 습관이라니... 

(266쪽).. 내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로 확인되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존재를 확인하게 되면 내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내 존재를 찾아 헤맬 일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 되었든 상관없다....내가 헤맬 때, '나'와 '내가 아닌 것'이 구분되지 않아 헷갈릴 때, 내 면역시스템을 가동시켜 내 안의 향상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면 그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 존재를 확인하는 비결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자니 곳곳에서 한 인물이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글에서다.  

(139쪽) 사람은 바쁘면 바쁠수록, 정신없으면 정신없을수록, 자기반성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멀쩡하던 사람이 한순간에 형편없이 망가지는 까닭은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메타코그니션('생각에 대한 생각')능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사회적 성취가 크면 클수록, 반성적 거리는 사라진다. 

누구라고 거론하는 것조차 가치없는 일이다. 다만 그것도 권력이라고 폼 재고 다니는 꼴이 꼭 동네 골목대장 같아서 역겨울 뿐이다. 늙어가는 내 눈에는 그런 게 보이는 데, 나보다 더 늙고 더 경력이 많은 그 '골목대장' 눈에는 왜 그런 게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남들보다 높은 직급에 올라갈 일이 평생 없는 내 눈에는 너무나 잘 보이는데 말이다. 음, 그런 양반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데...진짜 폼은 정년 퇴직 후에 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책에 인용된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가 인상적이어서 옮겨본다.(268)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3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지금 95번째 생일에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을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세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세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이 또 하나 있다. 언젠가 딸아이를 성장 클리닉에 데려간 적이 있다. 의사가 묻는다. "마음에 걱정거리가 뭐니?"  "저요? 지구의 환경 오염이 걱정스러워요." 초등학교 졸업 직전이었다. 그래서 키가 작은가 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계절이 바뀌면 남자도 생리를 한다'/'도대체 갈수록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우리는 절대로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이 책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딸내미, 너는 지구를 지킬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네가 보기에는 아직 이르구나.  

청소년용 버전은 어디 없을까요? 애들에게서 '재미'를 뺏은 죄가 너무나 커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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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힘
반칠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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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에서 개발한 늠내길 1코스와 3코스를 2주에 걸쳐 걸었다. 올레길, 둘레길에서 느꼈던 바 이지만 뭇 사람들의 숱한 노력들이 숨어 있었다.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들었다. 더군다나 늠내길은 도시에 자리잡고 있어서 접근하기도 수월했다. 새삼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런 이름없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임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고마운 마음에 머리가 절로 아래로 향했다. 모처럼 겸손한 마음이 들었다. 
시흥 시청 앞에서 시작되는 1코스에는 사람들이 쉴 만한 곳에 간이 쉼터를 몇 군데 꾸며 놓았다. 쉼터 주변에는 앙증맞게도 낙엽 모양의 예쁜 시들이 하얀 종이에 코팅되어 나무잎 처럼 여기 저기에 걸려 있었다. 먹을 것 다 먹고 쉴 만큼 쉬고 나서 다시 길에 나설 즈음, 시 한 수를 들여다 보았다. 느닷없이, 맨 밑에 써 있는 시인의 이름에 반가운 마음이 울컥한다. 반칠환. 분명 내가 아는 시인이다. 잠시 문창과에 적을 두었을 적에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다. 

정호승, 김용택, 안도현 등과 나란히 걸린 그의 시를 읽자니 내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옆에 있는 남편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며 '"혹시 자기 것을 자기가 붙여 놓은 것 아닐까?"한다. 짓궂은 남편이다. 하기야  내 주위의 책 깨나 읽었다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 몇 편을 읽어본다. 


멸치에 대한 예의 

 
큰 생선은 머리 떼고, 비늘 떼고, 내장 발라내고,  
지느러미 떼면서 멸치를 통째로 먹는 건 모독이다 어찌 
체구가 작다고 염을 생략하랴 멸치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  

 
가을 
 
조는 온 힘을 다해 좁쌀로 들어간다 
벼는 온 힘을 다해 볍씨로 들어간다 
참깨는 온 힘을 다해 깨알로 들어간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디로 들어가나  

 
젓국 가게 
 
굴젓, 
갈치젓, 
명란젓, 
오징어젓 
비린내 가득한 그 옆에 쭈그려 
상한 내 마음 한 종지 
헐값에 팔고 싶네  

 
반칠환은 참 소박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마른 몸매 때문인지도 모른다. 왠지 서러워 보이던 인상은.

반가운 마음에 그의 시집을 구입하고 다시 이런저런 시를 읽어보니 늠내길에서 읽었던 감흥이 되살아났다. 첫번째는 대강 읽고, 두번째 다시 읽어보니 참 맛이 조금씩 조금씩 음미가 되는 것 같다. 
 
그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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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산책길
한상경 지음 / 샘터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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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강원도 여행을 떠나며 만나기로 한 장소가 김포공항이었다. 비행기를 타야만 공항인가, 우리는 운전병을 자처한 친구의 편의를 위해 공항을 집합 장소로 택했다. 

마음먹고 나섰더니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하릴없이 서점을 기웃거렸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에 익숙해진 이후 서점에서 서너 시간을 보내던 일은 까마득한 옛 일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시집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선 시집 코너를 둘러보았다. 꿈도 크시지, 웬만한 매장에서도 찾기 힘든 시집을 공항의 작은 서점에서 기대하다니. 현실감이 떨어지는군.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비롯한 두툼한 인문한 서적들이 버젖이 누워있는 인문학 코너에선 다소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전문 서적을 얼떨결에 공항에서 구입한다고? 얼떨결에 혹은 우연하게 혹은 아무렇게나 한 권 집어드는 곳이 이런 공항의 서점일텐데. 

저런 두툼한 책을 집어들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며 겨우 한 권 집어 들었다. 아침고요 수목원을 만든 사람이 쓴 책이다. 물론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사면 할인이 되는데.... 

문장과 문장을 성큼 성큼 건너뛰며 읽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나무만 잘 심으면 됐지 글까지 기대하면 과하겠지 하면서 읽었다. 글 중에, 옻나무와 붉나무 얘기가 나왔다. "그 붉은 빛에 취해 산야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서 이 나무의 존재를 확실히 아는 이들은 드물다."는 붉나무. 내가 알고 있는 많지 않은 나무 중에서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무였다. 정원수로도 어울린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떠벌리기까지 한 나무였다. 잠시 으쓱했다. 

이 책을 또 뒤적일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한 쪽이 나중에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다. 나무를 전정할 때 전정 기준이 되는 모양새에 대한 설명이다. 

"수직으로 곧게 자란 가지(직립지, 도장지), 나무의 안쪽을 향한 가지(내향지), 아래로 향한 가지(하향지), 동일 방향으로 겹쳐지는 가지(평행지), 같은 높이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지(대생지), 그리고 병든 가지...."(180족)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의 글에서 잠시 마음이 머문다. 

"전정을 하면서 생각한다. 때로 정신없이 살다보면 나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피해를 받고 상처를 입게 될 수도 있는 주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은 존재한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남에게 폐를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양를 바라보며 감동할 때 이미 내 뒤에는 그늘이 던져지고 있다. 고목 곁에 뿌리를 내린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이치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사라져야 할 시기까지 예상해야 할 것이다....누군가가 아직 나를 붙잡아줄 때, 나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이들이 있을 때, 그때가 바로 돌아가야 할 시기임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나는 전정을 한다." 

퇴임식이 이어지는 요즈음. 아쉬움과 미련으로 퇴임 후의 친목계를 결성하는 어떤 교장이 떠오른다. 퇴임 교장끼리의 모임이 아닌 수하에 있던 사람들과의 모임이라...깨끗하게 떨어져버리는 동백꽃 같은 모습을 기대한다면 너무 과한가? 

나무를 한 번도 옮겨 심어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언젠가 나무를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를 사람으로서, 다음의 귀절도 인용해둔다. 

"이른 봄에 나무를 옮겨심을 때는 먼저 뿌리를 둥글게 끊어서 조심스레 새끼줄로 감아야 한다. 그리고 본래의 뿌리가 잘려나간 만큼 비례하여 지상부의 나뭇가지를 솎아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며 잘려자간 뿌리에 비하여 가지가 너무 많아 충분한 수분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나무가 말라죽기 십상이다. 더 좋은 곳에서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더 크레 자라기 위해 나무는 뿌리가 잘려진 비율만큼 가지도 잘려지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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