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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2-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므ㅑ핸 미 ㅔ갸ㅜ챠ㅔㅑㅐ 내ㅣㅐ ㅣㄷㄴ ㅔㅣㅁ샤볃 ㅡ두ㅐㄴ ㅇㄷ ㅣㅁ ㅡㅑㅅㅁㅇ ㅇㄷ ㅡㅑ ㅗㅑㄴ새걈 ㅔㄷ개 ㅔ개ㅜ새 ㅣㄷㄴ ㅔㅣㅁ샻ㅁㄱㄷ ㅡㅁㄴ ㄷㄴㅅㅁ ㅠㅑ두 _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루스왕묘,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거대상과 이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들어간다. 이 등대가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꼽히는 것은 고층의 건물을 세우는 기술은 금세기 들어서였다는 것, 즉 16층 정도의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나 가능했다는 통념 때문이다. 과연 당시의 사람들이 이러한 건물을 지을 정도로 문명을 구가했던가? 아니면 과장섞인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어 신비화되었던 것인가?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고대인들에게는 가능한 건축술이 그 후손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묘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고대인들이 우수한 과학 기술 문명을 보여주고 있는 예는 상당히 많다. 예컨데 이집트나 마야의 피라미드가 그러한 경우이다. 이것은 고대의 문명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 밝혀야할 역사가 상당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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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2-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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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ㅏㅓㅇ리ㅏㄴ어;ㄹ 2012-07-2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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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7-2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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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巨像).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제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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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 2004-07-1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거상이 그 로도스의 콜로소스군요.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을 방어한 기념으로 세웠던...

꼬마요정 2004-07-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미지가 안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
세계 미스테리 중 하나라서 올려봤어요... 가 보지도 흔적조차 볼 수 없을지라도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보고픈 심정..ㅡ.ㅜ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을 방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건...처음 알았는데요~~^^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 m, 높이 50 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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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신상>

제우스 상이 있는 올림피아는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 북쪽 앨리스 지방에 있는 제우스의 신역으로서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 경기로 예부터 잘 알려져 있다.

<제우스에게 아킬레스의 복수를 탄원하는 테티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최고의 신 제우스를 믿었다. 제우스는 고대 로마의 최고의 신 '주피터'와 같이 고대 그리스 신 가운데 최고의 신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만드는 신이며, 그의 주 무기는 벼락이었다. 제우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신이며, 인간 세계를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도시마다 제우스 신을 모신 신전을 짓고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테네, 스파르타, 앨리스 등의 도시 국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처음에는 땅의 신 크로노스와 여신 헤라를 숭배했지만 뒤에 제우스 신을 숭배하게 되어서 B.C457년에 제우스 신전을 만들었고 그 안에 '피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상을 안치하였다.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피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피디아스는 8년여의 작업 끝에 제우스 상을 완성했는데, 그는 제우스의 신성함 위엄과 함께 너그러움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걸작 중의 걸작 제우스 상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남아 있지 않다. 대지 위에 우뚝 세워진 신전에는 양옆에 열세 개씩, 양끝에 여섯 개씩 장엄하고 무거운 도리아식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완만하게 기울어진 지붕이 덮여 있다. 이 신전의 한가운데 있는 제우스 상은 높이가 90㎝, 폭이 6.6m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높이가 12m 정도 되는 상은 거의 천장을 닿고 있다. 제우스 상은 나무로 만들어져 그 위에 보석과 흑단, 상아를 박아 장식한 금으로 만든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금으로 된 발 디딤대에 올려져 있는 양다리는 거의 예배자의 눈높이와 일치하였다. 오른손에는 금과 상아로 만든 승리의 여신(Nike)상을 떠받치고 있으며 왼손에는 황금을 박아 장식한 지팡이(왕홀)를 쥐고 있다. 지팡이 위에는 매가 앉아 있다. 상아로 만들어진 어깨에는 꽃과 동물이 새겨진 황금의 아름다운 망토가 걸쳐져 있다.

제우스 신전의 발굴 움직임이 18세기 경부터 일어났고 처음으로 발굴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1829년 프랑스인이 제우스 신전이 있던 자리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메도프, 기둥, 지붕 등의 파편을 발견하였다. 1875년경에 독일 정부의 본격적인 발굴 작업에 의해 올림피아의 전체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고, 제우스상이 있던 신전도 거의 드러나게 되었다. 1950년대 제우스 신전 터에서 피디아스의 작업장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제우스 상이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히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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