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anda78 > Edward Hopper2

철길 옆의 집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빛나는 이성의 인간 존재에 대한 기대감을 짓밟아 버렸다. 산업혁명의 거대한 꿈은 대공황이라는 환멸 속으로 사라졌다.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인간의 의지를 더욱 무력화시키고, 인간은 그저 텅 빈 공간을 지킬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멍한 시선으로 신의 손길을 기다릴 뿐이다.

호퍼는 이런 시대의 얼굴을 기록했다. 식당·호텔·아파트·주유소 등 우리 일상의 구체적인 풍경을 다룬 그의 그림 속으로 관객들은 일단 친숙함으로 접근하지만, 몰입하면 할수록 그림 속의 대상은 마치 포르노처럼 시각 주체를 사로잡으려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주체를 경직시켜 버린다.

따라서 그의 그림을 바라보던 관객의 욕망은 그 지독한 적막감과 공허함 속에서 노출되고 상처받는다. 그림 속에 가득한 ‘대낮의 정사’ 같은 은밀함과 죄의식의 분위기가 정지된 시간과 진공된 공간으로 우리를 이끌면서 질식시킨다. 호퍼(Hopper)는 호러(horror)인 것이다.

호퍼의 <철길 옆의 집>에는 텅 빈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남아 있는 산업사회 이전 시대의 한 가옥이 등장한다.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망각한 채 존재하는 유령의 집 같다. 그리고 그 집 앞을 가로지르는 철길은 그 집(환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가서려는 관객에게 깊은 단절감(현실)을 안겨 준다. 이렇듯 <철길 옆의 집>은 밝은 햇빛을 받는 옛 시대의 집을 통해 낙관주의 이면에 깃든 짙은 비관주의를 드러낸다. 그것은 허상적인 미국 이미지 그 자체로 남아 있는 것이다.


 


등대1

 


등대 2


Lighthouse Hill

Edward Hopper :  All The Lonely People

'개스(Gas)'를 한번 보자.

 텅 빈 길 위의 그 주유소는 막 문을 닫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오두막에서의 빛은 거의 형광성이고 주유소 펌프는 짙고 어두운 배경에 반해 화려하게 튀는 빨강이다. 나무들은 단단하고 꿰뚦을 수가 없다 - 단지 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것을 건물의 뒤로 너무 빨리 사라지고, 만약 그것이 진정으로 어디론가로 이어져 있다 해도 그것이 이끄는 곳에는 어떤 표식도 없다. 그리고 고독하게, 반쯤 가려진 형체가 있다. 그는 막 펌프를 끄려고하는 걸까, 아니면 숨으려고 하는 걸까? 그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홀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당연히 그는 알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호퍼의 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는 외로움이다.

'호텔 룸'에서 한 여성은 손에 한조각의 종이를 든 채로 홀로 앉아 있다. 그녀를 둘러싼 가구들은 단순하고 실용적이다. 여행가방은 닫혀 있다. 그녀의 구부린 어깨들은 체념과 절망을 보여준다. 그녀는 연인에게 버림받은 걸까? 아니면 그녀는 단지 이제 막 도착해서, 그가 남긴 오지 않겠다는 메모를 발견한 것일까? 그림 안에서 유일한 행동은 그녀의 응시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하게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 


  이것과 똑같은 응시가 거기에, 호퍼의 너무나 많은 작품들 속에 있다. '일요일' 에서는 한 남자가 혼자 판자로 된 산책로에 있다. 그의 뒤로 가게는 닫혀있고 셔터는 내려져 있다. 그는 아마도 집에서 왔거나 단순히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부의 세계는 조금도 위안을 주거나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만 이 사람들, 이 평범하고 특징없는 사람들은, 너무나 명확하게 내면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어 호퍼의 가장  감동적인 작품인 '뉴욕 영화관'에서 이것은 너무나 명백하게 나타난다.


 


  이 그림의 오른쪽에서 우리는 흘낏 영화의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단지 몇 개의 산들이 보인다- 그것은 극장의 안내원이 커튼 옆에 서 있는 동안 볼 수 있을 만큼이다. 스크린으로부터 반쯤 가려져서. 'Gas'에서처럼 계단은 사라지고 몇몇의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층이 있다. 그 극장 안내원은 그녀 자신의 생각에 몰두해 있다. 극장의 스크린을 쳐다 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서서.

  호퍼의 세계는 도시에서의 세계이다.  - 비록 때때로 그 프레임 너머에 언덕이 있지만 자연은 건축되었다. 모서리가 있고, 닫혀 있고 마치 '맨하탄 다리 지구'에서처럼 저장 창고나 공장처럼 육중하다.

그러나 그의 초기 그림들은 Road in Maine 에서처럼 자주 외로운 집들과 풍경과 넓은 언덕들을 묘사하는 풍경의 그림이었다.


Road in Maine


Cape Cod Afternoon

 


corn-hill

1908년의 'Railroad Train'는 속도감과 캔버스의 한 면을 가로지르는 프레임 바로 아래에 펼쳐진 시골들의 풍경을 포함한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 자연은 급격히 사라진다. 비록 그가 ' Cape Cod'의 단정하고 길들여진 해변으로 돌아올지라도 더 이상 인간을 넘어서는 자연 세계를 보여주는 넓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Office At Night"에서처럼 그들이 폐쇄된 공간을 함께 나누고 있을 때에도 서로를 외면하고 있는 두 인물들은 책상 바로 옆의 마루위에  흘낏 보여지는 종이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이런 점들은 몇 개의 비밀을 제시한다. 그들은 감히 서로 무언가 공유할 수 없다. 호퍼의 모델들은 백인들이며 의심할 여지 없이 중간계급 이고 외롭다.  


Office At Night

 



Room in New York

 

  여기에 슬픔이나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인물들은 희생자가 아니다. 그들 모두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 - 창문을 통해서, 그들 자신 안을, 어둠을 응시하며, 그들의 커피 컵 속의 세계를 시험하며.


morning-sun


Room in Brooklyn


 

그리고 "High Noon'에서 문앞에서 그녀의  앞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여성처럼 그들 각각은 꿈을, 동경을, 이 순간이 더 빨리 혹은 더 늦게 지나갈 것이라는 감정- 그리고 어떤 것, 이름 붙여지지 않은 어떤 것, 알 수 없는 어떤 것이지만 그들의 응시를 주장하는 다른 어떤 것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인물들은 내면의 삶을 가지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면서 그러나 둘 모두에 대한 꿈을 포함한.


 High Noon

 


summer time

 

Edward Hopper : All The Lonely People

 

(글) Feature Article by Mike Gonzalez, June 2004 에서 발췌한 것을http://blog.naver.com/nosugaradded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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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Why Ansel Adams?

Ansel Adams, 그 불멸의 신화

 

● 현대 사진을 논하는데 있어서 안셀 아담스를 빼고는 설명이 안될 것이다. 그만큼 안셀 아담스는 현대 사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Bridalveil Fall, Yosemite National Park, California

● 안셀 아담스 이름이 지니고 있는 힘은 상당하다. 많은 사진가들에게 그들의 사진적 근원으로 자리잡은 안셀 아담스는 미국 전통적인 스트레이트 사진의 계보를 이어나간 사람이고, 또 많은 이들에겐 풍경사진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국의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요세미티의 진면목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 또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냄에 있어 작가의 천부적 재능 외에 필수적인 것이 기술적 기초이다. 안셀 아담스의 존 시스템은 좋은 인화(fine print)를 얻기 위한 기술적 기초 이론이다. 양질의 인화는 숙련된 인화법도 필요하지만 그에 앞서 적정한 농도와 콘트라스트를 지닌 네가티브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필름에 얼마만큼 노출을 주고 어느 정도 현상해야 적절한 네가티브를 얻을 수 있는 지, 이러한 제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존 시스템이다.

                     Vernal Falls

사진이 예술 매체의 한 분야로서 입지를 굳히고, 교육체계나 여러 단체와의 유대성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데 안셀 아담스의 공은 지대하다.

● 1937년 뷰먼트 뉴홀을 도와서 뉴욕 근대미술관에 사진 부분을 창설 시킨 것은 단순히 정보를 주는 보도사진에서 예술의 한 장르로 콜렉션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에드워드 웨스턴 등과 F-64그룹을 만들어 카메라를 통해서 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광학적 세계로서 현대사진의 발판을 만들었으며, 많은 사진가들에게 사진에 몰두할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 사진의 발명 이래로 사진기술의 계승은 주로 일대일 전수로 이뤄졌다. 오랜 시간을 사진과 씨름하며 보냈던 그 노하우를 전수 시키는 것은 제자에게 그만큼 또 오랜 시간을 두고 세세히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그만큼 그런 혜택을 받는 수도 적었고, 급속도로 바뀌는 세상을 쫓기엔 너무 부족하였다. 안셀 아담스는 존 시스템을 발표하여 사진촬영에서 현상, 인화까지를 데이터화하여 사진이 파급되고 교육적 체계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 인간은 자연에 둘러싸여 자연의 일부로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자연만큼 경이로운 것이 없지만, 숨 쉴 때마다 감사하기가 힘들 듯이 자연에 늘 감탄하면서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노을이 내리는 바다, 바람이 쓸고 지나는 풀섶- 문득 자연이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나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Orchard, Portola Valley

● 풍경을 사진에 담는 것은 그 아름다운 내 마음의 순간을 붙잡아 두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조화로운 선율을 작곡하듯이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며, 잘 다듬어진 시를 써나가 듯 감정과 사고를 정제하는 일이다. 자연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감성이라면 그것을 사진에 옮기는 것은 이성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풍경사진은 풍경보다 아름답다.

● 질서정연한 풍경 사진의 정제된 아름다움의 최고봉에 안셀 아담스(1902-1984)가 있다. 그의 사진은 역사 속에서 뛰어넘을 수 없는 하나의 완성품이며,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내며 사라지지 않는 전설이다. 평생의 관심사이자 존재의 근원으로 여겼던 대자연에 대해, 그는 사진을 찍고, 책을 쓰고, 강연 을 하였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에 따라 풍경을 풍경사진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그렇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 안셀 아담스의 사진의 핵심에는 자연과 빛이 있다. 그가 주로 다룬 대자연은 인간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미답의 세계이며, 사진가가 인위적으로 어떠한 조작도 가할 수 없는 웅장함 그 자체이다. 어찌할 수 없을 땐 그저 지켜보는 것이 미덕이 아닌가. 거대한 산과 나무, 바위와 풀은 매일 아침 빛을 입고 태어나서 밤이면 어둠으로 돌아간다. 변치 않고 그 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빛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신하는 것이 자연인 것이다. 빛은 자연의 변화무쌍한 의상이며 소품이다. 궁극적으로 사진가는 빛에 주목하며 인내함으로써 자연의 가장 빛나는 절정의 순간을 사진에 남길 수 있게 된다.

                                  Dead Tree Stump,Sierra Nevada, California,

 

● 안셀 아담스가 대상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사진에 담아내는 방법은 충직하고 일관되며 진중하다. 그는 한 장 한 장의 사진에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아온 자연에 대한 그만의 느낌을 담고자 하였으며, 오랜 시간동안 눈에 익혀 왔던 것들을 순간에 압축시켜 넣기 위해서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계조와 디테일을 추구하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빛을 측정하고, 그것에 조응하는 필름과 인화지의 감광성을 이용하여 원하는 밝기와 콘트라스트를 얻어내는 방법을 꾸준히 실험함으로써, 그는 마침내 존 시스템(zone system)을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 20 세기를 통해 존 시스템은 사진을 만드는 방법임과 동시에 세계를 보는 방법이 되었다. 안셀 아담스는 이 방법으로 사진의 위대한 근대정신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의 사진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사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자연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게 해준다. 자연이 신화가 될 수 있는 건, 우리 세계에 안셀 아담스와 같은 거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Barn, Cape Cod, Massachusetts
 

                          Trailside, near Juneau, Alaska

 

Who is Ansel Adams(1902~1984)

 

● 안셀 아담스는 190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였다. 14세때 요세미티 계곡에서 박스 카메라로 최초의 사진을 촬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열렬한 자연 보호론자가 되었다. 18세때 음악가를 지망하여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나, 과도한 연습으로 건강을 헤쳐 사진으로 전향하였다.

● 1927년 그의 예술 후원자인 A. 펜터의 권유로 오리지날 인화의 포트폴리오를 발표했으며, 1929년 뉴멕시코를 방문하여 폴 스트랜드를 만나 커다란 감회를 받았다.

● 1932년 에드워드 웨스턴과 함께 F-64 그룹을 만들었으며, 1933년 뉴욕에서 알프레드 스티글이츠를 알게 되고 3년 후 그의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또 1934년부터 71년까지 샌프란시스코의 자연보호단체인 시에라 클럽 이사직을 맡아 보았다.

● 1940년 뷰먼트 뉴홀을 도와 뉴욕 근대미술관에 사진 부분을 창설시켰으며, 이해 미국 세계박람회의 사진의 페이전트 전을 조직했다. 1946년, 48년 58년에 구겐하임 재단의 장려금으로 미국 국립공원의 전면적인 촬영을 단행하였으며, 1955년부터 해마다 요세미티에서 연주회를 주체하기도 하였다.

● 1963년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기념미술관에서 대 회고전을 열었다. 그동안 1950년부터 폴라로이드사 고문, 1962년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미술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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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돌려준다는 것의 의미

낮에 창원에서 막내 숙부님과 숙모님, 6학년 도련님이 집에 왔다. 작년에 이사를 한 후 여태 못 와 봤다고 미안해 하셨다. 집에서 간단히 다과를 먹고 좀 앉았다가 차로 한 15분 되는 곳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가는 길에 Y는 역시 괜찮은 사람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 말을 희원이에게 하는 것이다. 남편 자랑은 팔불출이었던가. 그래도 해야겠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모르고 엄마 아빠도 다들 많이 배웠고 사회적으로도 소위  괜찮은 자리에 앉아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아이들과 수업 중에 가끔 실망, 아니 충격을 먹는다.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해서 좋은 자리 앉으면 그걸로 인생의 의미는 다 한 것처럼 생각한다.

난 너무 어이가 없어 한번은 6학년 남자아이에게 사회적 환원과 기부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아이는 '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남을 위해 내 놓아야 해요?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 하지 않아서인데요. 나는 나 혼자 돈 벌어 잘 살면 돼요.' 이러는 거다. 또 5학년 남자아이 중 한 명은 '난 그딴 거 안 할 거에요. 필요없어요. 우리 아빠가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러는 거다. 

난 정말 화가 났다. 소위 사회적으로 지도격인 층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녀에게 적어도 기본적인 양심의 소리에 귀막고 살아라고 말하고 있는가.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주어진 달란트가 워낙 모자라는 사람들도 있다.  많이 받고 태어난 사람들은 더 내어놓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출발선이 다르니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많이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 더 엄살을 떤다. 남편이 희원이에게 오늘 차 안에서 들려준 말을 희원이가 살면서 잊지 않으면 좋겠다.

"희원아, 예를 들어 네가 학비를 내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네가 내는 그 돈만으로 네가 공부를 한 건 아니야. 국민들이 내는 교육세 등의 세금이 들어가는 거지. 그러니 너는 온전히 너의 힘으로 공부를 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 힘으로 공부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 네가 커서 뭔가 이루어가면서 해야할 일은, 끊임없이 돌려줘야한다는 거야.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우리 사회가 살 만한 거야. 내가 돈 많이 번다고 과소비로 외제차 타고 다니는 것도 안 돼. 내가 번 돈은 온전히 내 힘으로 번 게 아니기 때문이지. 아빠도 어떨 때 사고 싶은 고가의 카메라 사면서도 그냥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해. 우리가 손쉽게 할 수 있는 돌려주기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에서부터 가까운 이웃 중 어려운 사람 돕기에서,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명을 하는 것까지 아주 많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내는 희원이가 미덥다. 욕심도 많고 이기적인 편인 희원이에게 생각할 수 있는 과제가 되지 않았나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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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시리도록 파란 장미...


 

 

 

 

 

 

 

 

 

 

 

 

 

장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미가 아닌 것 같다.

수분을 먹고 자란 꽃이 아닌 음습한 그늘과 공포와 두려움을 먹고 자랐을 것 같은

파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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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퍼온글] 아메리카 인디언의 달력

1월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 / 아리카라 족
나뭇가지가 눈송이에 뚝뚝 부러지는 달 / 쥬니 족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바람 부는 달 / 체로키 족


2월
물고기가 뛰노는 달 / 위네바고 족
홀로 걷는 달 / 수우 족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 / 오마하 족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3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 체로키 족
암소가 송아지 낳는 달 / 수우 족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 아라파호 족


4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 블랙푸트 족
머리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 / 체로키 족
거위가 알을 낳는 달 / 샤이엔 족
옥수수 심는 달 / 위네바고 족


5월
들꽃이 시드는 달 / 오사지 족
말이 털갈이 하는 달 / 수우 족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 아라파호 족


6월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 / 위네바고 족
더위가 시작되는 달 / 퐁카 족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 체로키 족


7월
사슴이 뿔을 가는 달 / 키오와 족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 유트 족
들소가 울부짖는 달 / 오마하 족


8월
옥수수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달 / 퐁카 족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 쇼니 족
노란 꽃잎의 달 / 오사지 족


9월
사슴이 땅을 파는 달 / 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 / 수우 족
작은 밤나무의 달 / 크리크 족
옥수수를 거두어 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10월
시냇물이 얼어붙는 달 / 샤이엔 족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 키오와 족
큰 바람의 달 / 쥬니 족
잎이 떨어지는 달 / 수우 족


11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 크리크 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 체로키 족
강물이 어는 달 / 히다차 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 / 키오와 족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 아라파호 족


12월
다른 세상의 달 / 체로키 족
침묵하는 달 / 크리크 족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 수우 족
무소유의 달 / 퐁카 족
늑대가 달리는 달 / 샤이엔 족

*********

전에 프레스하우스에서 나온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란
책에(프레스하우스에서 나온 책은 절판되고 지금 나무심는사람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 이 이름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보면 테와 푸에블로 족에서 붙인 이름이 자연 현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시적이다.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1월)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6월)
옥수수를 거두어 들이는 달(9월)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11월).

마치 농가월령가를 듣는 것 같다.
달의 이름에서 각 종족이 어떤 지역에 살았는지,
무엇으로 생업을 삼았을지도 대충 짐작된다.

2월이 물고기가 뛰노는 달이라면 위네바고 족은 계곡을 끼고 살았을 것이다.
겨울에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흘러 물고기가 뛰노는 것이 새로운 봄을 알려 주었을 테니.

4월이 머리밑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이라면 체로키 족은 농사를 지었던 모양이다.
따뜻한 봄날 새벽같이 일어나 씨앗을 뿌리러 나갔을 테니.
(내 맘대로 해석하는 거니까 틀릴지도 모른다. ^^)

7월이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이라면 유트 족이 사는 지방은
우리와 비슷한 기후였을 것 같다.
7월의 더위에는 도저히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을 테니.

모르긴 몰라도 8월이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이라는 쇼니 족의 이름도
더위와 관계 있지 않을까. 우리도 8월 무더위 속에선 아무 생각도 못 하지 않는가?

체로키족은 좀 영적인 종족이 아닌가 한다.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
6월은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11월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12월은 "다른 세상의 달"이란다.

그런데 키오와 족은 10월이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이라고 한다.
11월이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이라는 체로키 족이 사는 지방과는
영 기후가 다른 곳인가 보다.
9월까지 너무 따뜻하다가 10월 되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한겨울보다 도리어 10월에 느끼는 추위가 강한 지역일까?

5월이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풍습인 '만성절'이 연상된다.
아라파호 족은 아마 멕시코 접경 지역에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 족, 11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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