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카를 >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 [환희의 송가]

독일의 위대한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Fridrich Schillers)의 장시 <환희의 노래> 에 의한 합창 붙임

[오! 벗들이여 이 가락이 아니고 더욱 즐거운 가락 그리고 환희에 넘친 가락을 함께 부르자!] 이 가사는 실러의 시에 의한 것이 아니고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다. 바리톤 독창은 이어서 처음에 기악으로 모습을 보였던 레치타티보 가락에 의한 환희의 주제를 노래부른다.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낙원에서 온 아가씨여, 정열에 넘치는 우리들은 그대의 성정에 들어가리. 그대의 매력은 가혹한 세상의 모습에 의해 떨어진 것을 다시 결합시키도다. 그대의 날개에 머물 때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리.]

남성 합창이 코랄풍의 노래를 장중하게 부르기 시작하여 높은 음의 현과 함께 여성이 등장한다.

[포옹하라! 만민들이여! 온 세상에게 이 키스를 주리. 형제들이여! 푸른 하늘 위에는 사랑하는 주가 계시니. 땅에 엎드려 비나니 만물들이여 조물주를 믿는가? 천지 위에서 주를 찾으라. 많은 별 위에 그가 계시니.]

혼성합창으로 포옹하라의 선율과 환희의 주제가 얽힌 장려한 2중 푸가가 전개된다. 2중 푸가가 귀결부로 들어가면서 다시 기도의 대화가 시작된다.

환희의 주제에 의한 변주로 돌아가서 네 명의 독창자와 합창이 [환희의 송가] 첫 구절의 새로운 변주를 주거니 받거니 노래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전곡의 코다가 되어 독창과 합창은 프레스티시모로 열광적인 환희를 노래한다.

[품에 안겨라. 만민들이여! 온 세상에 이 키스를 주리...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낙원에서 온 아가씨들이여, 환희 여, 아름다운 주의 빛.]

마지막에 전 관현악 악기는 합창과 함께 무한한 환희 속에서 화려하게 이 대곡을 끝낸다. 베토벤 자신의 말처럼 [고뇌를 돌파하고 환희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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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퍼온글] 루오 Rouault Georges- Henri 1871~1958 (5)

루오 Rouault Georges- Henri(1871~1958)

신(神)을 찬미한 현대의 단테

 


受難(수난)에서(무게도 부피도 없이 그는 나간다)

  루오의 작품은 섬세한 묘사가 있다. 그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그리기 위함 이리라. 초기에 그는 모로의 교실에서 배웠으며 모로는 물론 렘브란트의 영향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그의 24세 때의 작품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는 성녀들> 등을 보게 되면 무서운 묘사력을 지녔던 루오이다. 루오는 단연 그 묘사에서 벗어나 대담한 필치와 색면(色面) 처리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데 이는 보다 더 차원 높은 경지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受難(수난)에서(풀에 샘물이 속삭이듯)

  조부모도 양친도 모두가 독실한 카톨릭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루오의 그와 같은 가정 화경과 거기에다 예술적인 충동이 섞여, 그가 그리는 그리스도는 그의 인간 내부의 전부가 성화(聖畵)의 내용과 일치되면서 유감없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마리아를 앞에 앉히고 영적대화(靈的對話)가 오가는 것이다. 달이 어김없이 닮은 마리아 상 위(위쪽 상단)에 떠 있으며 좌우의 균형을 이루어 주고 있다. 루오의 작품 앞에서는 그저 머리가 숙여진다.

 


그리스도 안에 모여

INTIMITE CHRETIENNE

1945년 캔버스 유채 46X65Cm

파리 개인 소장

 


쟉 보노무

  쟉 보노무는 농민을 가리키는 속칭(俗稱)이다. 백의와 푸른 하의, 그리고 붉은 띠를 두른 이 사나이는 뒤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상반신을 약간 숙인 채로 달이 떠 있는 밤에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다. 모든 인간들의 보이지 않는 운명적이며 숙명적인 상(像)을 그는 이 그림을 통해서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더욱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고독감이다. 멀리 지평선 위로 외딴 집이 한 채 서 있다. 집의 흰 벽면은 인물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붉은 띠와 지붕이 또한 색채적인 조화를 형성하면서 한층 화면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피난

  루오가 처음부터 시도한 시리즈 <피난>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그림이다. 루오는 그의 '독백록'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피난하는 사람들, 그 모습들은 우리 세대의 모든 사람들의 상(像)이다. 사람들은 병마와 권태와 빈곤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리고, 겨우 벗어나려고 하면 다시 재난이 닥쳐오며 급기야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벗어날 수 없다. 아무 의욕이나 희망을 갖지 않은 피난자들은 얼굴을 숙이고 힘없이 걸어야 한다. 뒤를 돌이켜볼 여유도 없이, 그리고 많은 예언자들이 약속한 행복따위는 잊은 채 거닐고 있다.' 저녁놀은 어느덧 불길한 핏빛으로 물들었으며 희망의 별은 까마득하다.


우리들의 쟌느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나치스 군대가 프랑스로 진주(進駐)했었다. 남달리 프랑스를 사랑하던 루오의 심정은 국민들의 추앙받는 성녀(聖女) 쟌느 다르크를 의식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 것이다. 조국의 영웅이라기 보다 수난받는 인간상으로 그렸다. 배경은 이 시기에 꾸준히 그린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풍경화와 같다. 주인공은 숨김 없이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조국애의 강렬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작가란 때로는 그 시대의 증인이며 대변자가 된다. 그리고 그 시대를 고발하기도 한다. 그 아름다운 조국애는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우리의 것이리라.

 


그리스도교적 夜景

  루오가 그린 수많은 풍경화 중에서 가장 우주적인 작품으로 보여진다. 구도는 아래 부분에서 윗부분으로 장대하게 울려 퍼졌고, 수 개의 원(圓)과 반원(半圓)의 포름이 화면 중심부에 위치해 루오 특유의 안정감을 나타내고 있다. 내면 세계를 표출 시키는 그의 회화 언어가 그러하듯 이 그림에 등장한 배, 바다, 달, 섬, 집, 수목 등은 달빛을 받은 달밤의 자연 현상을 시각 체험대로 재현시킨 것이 아니고, 그 실체를 보는 루오의 내면적인 세계, 즉 심각적(心覺的) 진실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티베리야스 호(湖)에서의 그리스도와 제자(그림 아래 부분)가 모티브인데, 신비스러운 빛과 검은 그림자 및 무한히 크고 넓은 화면이 어떤 영겁의 세계, 영원한 정신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풍경(세 사람이 있는)

  루오는 만년에 이르자 화포에 바른 유채 물감을 나이프로 깎아 내고 다시 바르는 기법을 버린다. 따라서 화면은 울룩불룩하고 터치 자국이 더욱 생생하게 나타난다. 중기 작품의 특색인 문지른 듯한 색의 투명감은 없어지고 '용암(熔岩)과 같은 중후한 색채 덩어리(P. 크르테온)'가 조형의 수단으로 화한다. 색채는 선명하고 밝으며 따라서 건강하다.

  이와 같은 분명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조형 의지는 그의 기나긴 고난 끝에 얻어낸 예술 경지와 독실한 신앙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세 인물을 그림 전면에 배치하고 파뿌리 모양의 성당을 그림 원경 중앙에 앉혀 하늘 나라와 인간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조,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게 했다. 루오는 이 해에 보라르 가(家)와의 소송으로 되찾은 그림 가운데 315점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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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Jeremy Barlow 마지막

Jeremy studied illustration at Northampton School of Art before working in art studios in London and the Midlands. In the early 1970s he became a full-time artist and in 1977 he went to live in Dusseldorf, Germany, to concentrate on painting the landscapes and townscapes of Holland, Belgium, Germany, France and Italy.

His subjects often include small villages and towns 'off the beaten track', where he paints and records the more intimate aspects of native life. He returned to the UK in 1983 and now lives in a small village in Norfolk with his wife and children.

He has exhibited at the Royal Academy, the Royal Institute of Oil Painters, the Royal Institute of Painters in Water Colours, the Royal Society of Marine Artists and the Royal Society of British Artists. He has also had shows in numerous major galleries in London and throughout England and Europe.

Jeremy was elected an Associate Member of the ROI in 1990 and a full member in 1994, serving since then as a Council Member from 1995-99. He won the Stanley Grimm Prize in 1994 and 2000 and the Alan Gourlay Memorial Prize in 1999 at the Annual ROI Exhibition at the Mall Galleries. His paintings are to be found in numerous public, private and corporate collections worldwide.

한글 자료는 못 찾겠네요. 그림이라도 더 보세요.

오늘은 글 안 올리려고 했는데, 뭐라도 해야지 답답해서 가만히 못 있겠어요.. 휴우..

 

Bonardi, Venice

 

 


Cafe Bar, Aix

 

 

St Tropez

 

 


Cafe Bar Chez Nico, Aix

 

 


Cafe Des Arts, Paris

 

 


Le Comptoir Des Secteurs

 

 



Le Hollandais, Bordeaux

 


Renee Fleurs

 

 


Terrace Orange

 

 


Balcony with P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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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김선일씨의 죽음_진중권

김선일씨의 죽음
원고 쓰고 막 자려다 김선일씨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착잡함에 오늘도 다시 밤을 새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희망적 관측이 흘러나와 기대를 걸었으나, 그 희망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가장 우려 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비디오를 생각해 보십시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처절한 몸짓으로 절규하며 국가에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호소에 귀를 막고 국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추가파병에 변함 없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의 '안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보낸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외려 그 반대지요. 군대를 보내서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습니다. 이것을 저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안보'라고 부릅니다.

김선일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17일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납치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파병 준비에 바빴던 노무현 정권이 자국민이 피납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미국도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통보를 해줬는데 우리 정부가 추가파병을 발표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안보'입니다.  

정권은 김선일씨를 납치한 사람들의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속대로 김선일씨를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권에서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아주 신속하게(!) 파병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라크의 서희, 제마 부대가 얼마나 cool하게 활동하는지 홍보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미국에 협조하는 한국군이 이라크 사람들 돕는 것을 고운 눈으로 보겠습니까?

2.

김선일씨가 납치당했는데도 어제 광화문에 모인 사람은 고작 2천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발언하다 탄핵 당한 노무현을 구하자고 수만이 모여든 반면, 국가의 부당한 파병으로 생명에 위험에 처한 김선일씨를 구하는 자리에는 고작 2천이 모였습니다.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아마 거리는 파병반대의 물결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이게 정치의식입니까?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도대체 이런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을 결정한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소위 노빠들의 극성 때문에 파병반대 얘기하는 것도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파병에는 반대해도, 그 결정을 내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파병 결정해놓고, 비난도 받기 싫다는 겁니까? 파병을 하되 비난은 받기 싫으면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길 일입니다. 그럼 우리의 비판은 한나라당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 역시 원칙적인 평화주의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의 경우 9.11로 3천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고, 그 범죄를 저지른 빈 라덴이 아프간에 있었고, 아프간 정부는 그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그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포함해 다국적군이 참전을 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이해를 해 줄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다릅니다. 후세인과 알카에다는 아무 연관이 없고,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고, 그래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 했고, 누가 봐도 명백한 침략전쟁입니다. 게다가 무차별한 미군의 사격과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희생당했고, 포로로 잡힌 이라크의 군인들은 감옥에서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왜 이런 범죄적인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제게 납득할 만한 이유 좀 대 주세요.

3.

김선일씨를 죽인 자들은 해방투사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입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에서 부시와 똑같은 전쟁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규탄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파병할 경우 그들이 파병국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병을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임무를 져버리는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책임한 일을 청와대에 앉은 분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져질렀습니다.

파병을 할 경우, 이와 유사한 일은 앞으로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적어도 파병 때문에 이라크와 그 주변 아랍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 거기서 활동을 하는 우리 상사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게 현 정권의 '안보' 정책입니다. 그렇게 제 나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려놓고,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요? 김선일씨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 삶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분들 계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김선일씨가 당한 비극은 언제라도 '나'의 불행, 내 가족의 불행, 내 친구의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선일씨의 부모도 파병에 찬성했다지 않습니까? 설마 자기 자식이 거기에 희생당할 것이라 꿈앤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마다 다 그건 남의 일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불행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희생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김선일입니다.

"한 사람 잡혀간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 있냐?" 이게 정부여당의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한나라당 애들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치고, '개혁'을 외치는 정부여당까지도 이런 무서운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이런 나라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놓을 수 있습니까? 파쇼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전체주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납치된 상황에서 버젓이 저런 발언할 수 있는 저 대담함, 저런 끔찍한 발언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무감함, 그게 전체주의입니다.

4.

미국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는 NL류의 극단적인 반미 전민항쟁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 강변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입니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하지만 '동맹'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간까지 빼주는 게 과연 '동맹'일까요?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요? 아니지요. 국군통수권은 국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권한을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권한은 부시가 갖고 있습니다. 부시는 대한민국 국군을 아무 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왜? 노무현 정권이 부시에게 국군통수권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기의 기본적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조차 부시 정권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해쳤다"는 비난이 나오는 판에, 제 나라 국익을 져버리고 진정한 동맹관계를 해치는 부시의 깽판에 장단 맞춰 춤이나 추는 게 과연 '동맹'입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무능함과 나태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제 나라 국민이 이국땅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태를 보고도 여전히 부시 눈치나 봐야 합니까? 이 나라에 도대체 외교전략이 있는 겁니까? 안보전략이 있는 겁니까?

파병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한국에서 파병을 거부할 경우, 부시 정권은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한미동맹' 좋다, 하지만 그 방식은 너희들 멋대로 정하게 놔둘 수 없다. 우리도 너희를 날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시는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5.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울부짖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우리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소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공범입니다. 파병을 결정한 이들은 주범이고, 파병을 묵인한 이들은 종법이고, 파병을 반대하되 힘있게 밀어내지 못한 모든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공범입니다.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파병반대, 한국군철수를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정치가 사람들의 의식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라, 외려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촛불도 켜지지 않습니다. 이게 그 잘난 인터넷 민주주의의 수준입니다. 어제 모인 2천 명, 그게 이 나라 평화주의 역량의 전부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막을 수 없는 것이지요.

박노자가 그랬던가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끔찍할 뻔 했다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식인이라는 분의 정치의식이 이렇게 나이브합니다. 차라리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국인 특유의 정치의식이 발동하여 아마 지금쯤 거리가 파병반대의 물결로 차고 넘피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정치에 환장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시민들이 저토록 완벽하게 현실의 정당세력에 포섭될 수가 있을까요? 이럴 때는 정말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성급하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절망의 끝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열정'에 빠지는 사람은 아직 현실의 냉혹함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열정에 들떠 어떤 일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것은 창조력이 고갈된 가수가 대마초를 피고, 한계에 도달한 운동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진정한 가수는 대마초 없이도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선수는 약물 없이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진정한 저항은 섣부른 희망이나 뜨거운 열정 없이, 현실의 냉정함을 보고 존재의 밑바닥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파병반대, 국군철수. 여당과 야당이 동조하고,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 김선일씨의 운명을 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무감함의 덩어리들에 맞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엄두가 안 나지요. 어제 MBC 저녁뉴스에 파병반대 움직임은 테러범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더군요. 그것을 들으며 얼마나 끔찍했던지.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의 전선은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도 아니고, MBC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한겨례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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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uperfrog > [퍼온글] [펌] "조선.동아, 건수 잡은듯 선동말라"

 "조선.동아, 건수 잡은듯 선동말라" 
  <기자의 눈> '전투병 파병론' 부추키는 대신 반성부터 해야
 
"이제 남은 일은 범인을 색출해 처벌하는 것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른 비열한 자들은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23일자 동아일보 사설 중)
 
한국시간으로 23일 새벽,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34)가 끝내 피살됐다는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납치범들의 유일한 요구 '파병 철회'
 
김씨의 피랍사실이 전해진 21일 이후 정부는 반기문 장관의 알자지라 방송 출현, 이라크에서 영향력이 큰 수니파 종교 조직인 이슬람 울라마기구의 석방 요구 성명,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석방 협조 약속 등 다각도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모두 소용 없었다. 특히 최근 있었던 18건의 외국인 납치 사건에서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 인질이 참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김씨 피살이 주는 충격은 더욱 크다.
 
정부의 다각도 외교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것은 애당초 납치범들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데 있다. 이들은 20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요구한 "한국군의 철군 및 추가 파병 철회'가 유일한 요구 조건이었다. 김씨를 납치한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는 정치 조직으로 인질 석방에 대한 대가인 '돈'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한국대사관 직원 김모씨의 부탁으로 한국정부를 대신해 무장세력과 협상을 벌여온 모하메드 알오베이디도 김씨 참수 직전인 22일(현지시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23일 오전 방송)에서 '무장단체가 돈을 요구하느냐' 질문에 대해 "No, No, No"라고 단호히 거부하며 "그들은 단한번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들은 협상기간중이라도 한국정부가 파병을 멈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해, 한국측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돈 거래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요컨대 납치범들은 22일 진행된 석방교섭에서도 '파병 철회'와 관련된 요구 조건을 내걸었으며, 이 조건이 수용되지 않자 김씨를 처형한 것이다. 요컨대 김씨를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카드는 추가 파병과 관련해 정부가 한발이라도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는 지적이다.
 
조선 "베트남에서처럼 확실하게 보여주자"는 등 '응징' 목소리 강조
 
우리 정부가 3천명 규모의 추가 파병을 실시할 경우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허 세번째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는 국가가 되며, 이런 사실이 김씨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파병을 둘러싼 논란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번 사건이 무고한 민간인을 처참히 살해했다는 점에서 공분해야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곧 아랍권 전체에 대한 분노로 연결시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는 23일자 3면에 김씨 피살과 관련된 네티즌들 반응을 소개하면서 유독 "전군을 다 파병하라"는 응징의 목소리가 쇄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자사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오른 네티즌 의견을 소개하면서 "이라크 저항 단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렀다. 대한민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다시 지원해서 이라크 파병 가겠습니다" "전투병 위주로만 파병해 베트남에서 우리 군인을 보고 덜덜 떨었던 것처럼 확실하게 보여주자. 우리 국민이 온순하지만 화나면 무섭다는 것을 만방에 알리자"는 등 상당히 감정적이며 선동적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또 네이버 게시판에 실린 의견이라며 "의료 부대 복귀시키고 전부 전투부대로 파병해야 한다" "처형..무슨 죄졌냐고!!아...쓸어버리고 싶다"며 반(反)아랍정서를 표출한 의견만 부각시켰다.
 
동아 "반드시 응징받는다는 것 행동으로 보여줘야"
 
동아일보도 이날 '김선일씨 살해 만행을 규탄한다'는 사설에서 "이제 남은 일은 범인을 색출해 처벌하는 것"이라며 무장세력에 대한 응징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른 비열한 자들은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정부는 이라크 과도정부와 현지 미군, 그리고 인근 중동국가와 공조해 범인 체포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용서할 수 없는 김선일씨 살해 만행'이란 사설에서 "이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김씨의 처절한 호소는 그의 가족은 물론 한국민 모두에게 깊고 아픈 상처로 남게 됐다"면서 "이 상처가 잔인한 납치 살해 행위에 대한 분노라는 것을 테러리스트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이번 사건이 충격적이고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파병 결정과 원칙마저 흔들려서는 안된다"며 "이번 일로 파병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의 의도를 그대로 충족시켜주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두 신문의 주장대로 무장세력의 저지른 일은 반인륜적인 만행이 분명하지만, 전쟁 상태나 별반 다름 없는 이라크 치한 상황에서 '테러범 색출' 요구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여진다.
 
교민 안전 등 고려할 때 '응징' 강조하는 건 도움 안 돼
 
특히 이처럼 이번 사건에 대한 '분노'만을 강조하는 것은 현재 이라크에 머무르고 있는 교민 및 한국군들의 안전을 고려할 때 부적절한 태도로 보여진다. 김씨를 살해한 무장세력도 "우리는 한국군의 철군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 한국인의 목을 당신들에게 보낼 것이며 당신네 다른 한국군의 목도 뒤따를 것"이라며 추가 범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라크에 있는 한 교민은 23일 "한국군의 추가 파병이 이뤄질때 까지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 같다"고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이 교민은 "이라크 현지인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 '저항세력들이 원하는 것은 한국군이 파병되지 않는 거였는데, 한국 정부는 파병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해서 죽인 거다. 이라크인들은 외국군이 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라크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아랍 및 동남아 등 해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한 추가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응징'과 '복수'의 논리는 비극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결과만 가져온다는 건 미국과 아랍권과의 관계를 통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이라크 반전평화팀에서 활동을 했던 소설가 오수연씨는 추가 파병 결정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파병을 하고 또 그것을 막지 못한 이상 한국도 '전쟁국가'"라고 주장했었다. 김씨 피살 사건은 "한국이 '전쟁국가'"임을 직접 보여줬다.
 
'전쟁' 상태에서 힘의 논리는 끝없는 비극을 낳을 뿐이며 '전쟁국' 국민들에게 처참한 희생과 아픔, 가슴속 상처만 가져다줄 뿐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파병 원칙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파병요구가 있을 때부터 '무조건 파병론'을 주창함으로써 이번 김씨 피살사태의 근원을 제공했던 조선-동아 등 보수언론은 책임지지도 못할 선동을 하려는 의도를 거둬야할 것이다. 
   
  
전홍기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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