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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 옛이야기를 통해서 본 여성성의 재발견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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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전래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집에는 우리네 전래동화책과 외국 전래동화책이 다 있었고, 나는 늘 즐겨 읽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물론 워낙 유명한 이야기들이라 누구나 다 알고 있겠지만)이 무척이나 친숙하게 와 닿았다. 다만,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는 데 감동 받았지만.

언제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하나씩 있었다. 특히 바보 이반 이야기 같은 것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돼지를 떠올리곤 그래서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심청이 이야기에선 '착한' 청이가 왕비가 되고, '불쌍한' 심봉사가 눈을 뜨니 행복하구나..라고 생각했고, 콩쥐팥쥐 이야기에서는 계모가 내 준 과제를 콩쥐가 제대로 한 건 하나도 없네..라고 어이없어 했다. 얼마나 무지했던가. 나야말로 그리스 법정에 간다면 유죄판결을 받겠네..

나는 ~답다, ~다워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답다는 말 중 제일 좋아하는 게 사람답다는 거.. 나의 이상형을 대변한다고 해야할까.. 사람답게 사는 게 당연하고,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만들어놓은 하나의 틀일 뿐이라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장녀니까 장녀답게, 학생이니까 학생답게, 누나니까 누나답게.. 에고.. 사람답기 정말 힘들구나..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은 너무나 추상적이었고, 엄격했다. '그저 사람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도 이런 말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 내가 누누이 하던 말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주위 배려는 필수적이긴 하지만,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법인데.. 나는 지나치게 고집스러웠던 것 같다. 특히 여성성에 대해서.

강인한 여자를 꿈꿨다. 핍박받고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여자이지만, 잘 할 거라고 다짐했다. 여성은 사회에서 약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여성성을 비하하고 있었다.

사람답다.. 그래, 여성성과 남성성의 올바른 조화.. 그게 곧 사람이구나..

질투나 시기, 증오 역시 사람다운 감정 중 하나였다. 그 '죽음처럼 차가운' 감정을 제대로 알아보고 밝음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참다운 내면의 힘이 아닐까.

이분법적 사고와 지나친 이성주의를 싫어했지만, 어느 새 거기에 물들어 있던 내게 통합과 재창조는 짜릿한 흥분으로 다가왔다. 이 책 초반에 나오는 펭귄에게 영혼을 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멋졌다. 테레사 성녀의 그런 멋지고 환상적인 결론이라니..

나도 내 안에 억압되어 있는 여성성을 찾는 여행을 떠나야겠다. 내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들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조화시켜 내면의 울림을 듣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면으로의 여행..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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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3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좋습니다. 꼬마요정님.
도리스 레싱씨의 남자,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관점이 좋던데요..


꼬마요정 2007-11-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좋다고 칭찬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데요~~
도리스 레싱이라.. 찾아봐야겠어요~~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푸른숲 비오스(Prun Soop Bios) 1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푸른숲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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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과연 리뷰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종교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말 하는 게 부처님 말씀과 맞는 걸까.. 이런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책을 읽고 리뷰를 쓰듯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면 되는데 말이다. 어쩐지 꺼려져서 다 읽고 감명받고 혼자 소중하게 간직한 채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종교를 내 의지로 선택했다. 엄마가 절에 다녀서 불교를 선택한 게 아니다. 우리집은 그저 니가 선택해라.. 이런 주의기에 아빠랑 막내는 아예 무교다. 사춘기 시절엔 교회도 다니고 성경공부도 하고 그랬다. 다만 내가 불교를 선택한 건 내 의문에 답을 주는 게 불교였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빠져들어갔다.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기에 누가 옆에서 뭐라한들 상관하지 않았다. 거리에 나서면 개신교를 비롯하여 몰몬교, 증산도, 여호와의 증인... 알 수 없는 종교인들까지 다 나한테 말을 걸며 전도해도 나는 그들에게 그저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말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상을 천주교를 가진 외국인 종교학자가 쓰고 개신교 신자인 옮긴이가 번역한 이 책을 읽으며 기묘한 낯섦을 느꼈다. 내가 아는 것이지만 뭔가 다른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새롭게 붓다를 접한다는 느낌이랄까...

붓다의 생애야 워낙 많이 듣고 읽어서 알고 있다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과연 나는 붓다가 말씀하신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걸까.

내가 애초에 이 종교를 선택한 건 마음의 평화가 이유였다.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왜 '저'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걸까...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싶은데 왜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걸까.. 착하게 살던 친구인데 왜 저런 고통을 겪는걸까... 이런 의문들과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내 마음과 남의 고통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다 결국 붓다의 가르침 안에서 평화를 찾았다. (개인적인 선택입니다. 다른 종교가 나쁘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저에게 맞는 종교를 찾은 거죠)

좀 편해지고 나니, 다시 이기적으로 변하는 건가.. 아님 나이가 들어 사회에 적응하면서 담담해진건가.. 어느새 나는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새기고 있었다. 실천이 빠진 믿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이 책은 붓다의 생애와 말씀을 담았다. 종교적인 모습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덕분에 나는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왠지 살아숨쉬는 붓다의 모습이 그려질 것만 같다.

모두가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인간이지만 스스로 깨어나신 분이 된 붓다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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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18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상천하유아독존'..
젊은 시절 상기 석가모니의 말씀을 한동안 마음속의 화두로 삼았었지요.


꼬마요정 2007-08-18 21:00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한 때는 불교가 세상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삶을 더 치열하게 살 수 있는 말씀들이 가득하더라구요.. 삶 속에 진리가 있고 내 옆에 깨달음이 있다고 하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낙천주의자 캉디드
볼테르 지음, 최복현 옮김 / 아테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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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를 풍자한 철학소설. 어려울 듯 해도 사실 하나도 어렵지 않다. 철학이나 역사를 잘 모른다 해도 캉디드가 겪어가는 사건들만 읽어내도 재미가 솔솔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알고 소설에 투영된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볼 수 있다면 재미는 한층 더해진다. 변혁과 혁명, 계몽의 시대라는 18세기에 만연했던 종교의 행패, 계급의 횡포, 거짓과 매춘 등을 순진무구한 캉디드의 시선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캉디드의 이상은 퀴네공드와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은 팡글로스 선생의 낙천주의와 마르탱의 염세주의이며, 이 책의 끝은 낙천주의의 손도, 염세주의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는 계몽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캉디드가 남작의 딸 퀴네공드와 입맞춤하다 들켜서 성에서 쫒겨난 뒤 다시 그녀와 재회하고 다시 그녀와 헤어지고 다시 그녀와 만나기까지 긴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무엇보다도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은 엘도라도였다. 이상향인 그곳은 도둑도 없고 거지도 없고 실업도 없다. 공동생활과 공동작업 등으로 모두가 행복하다. 그러나 캉디드는 그 곳을 지상낙원이라고 하면서도 이성의 낙원을 찾아 떠난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것, 퀴네공드의 사랑을 찾아 떠난다.

 

 캉디드는 자신의 스승인 팡글로스가 주장하는 대로 이 세상은 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지만, 정작 그가 세상을 경험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사실들은 모두 최악이었다. 마르탱은 옆에서 계속 그 사실을 알려준다. 이야기에 전면적으로 등장하여 흐름을 만들지는 않지만 마르탱은 그의 염세주의를 책의 후반부 면면에 드러내고 있다. 캉디드는 책의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낙천주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만, 결국 못생겨진 퀴네공드와 교황의 딸이었지만 한 쪽 엉덩이가 잘려나가는 등 불행을 겪은 노파, 캉디드의 시종 카캉보, 염세주의자 마르탱, 낙천주의자 팡글로스, 팡글로스의 애인이었던 파케트, 타락한 신부와 공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의 지위는 동일하다. 나오는 여성들 - 퀴네공드, 노파, 파케트 -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에 의해 짓밟힌 인생을 살아왔다. 18세기, 계몽주의가 퍼져가고 있던 이 시대에도 여성의 지위란 하찮은 것이었다. 단순히 가정을 돌보고, 아이의 엄마로써, 한 남자의 아내로써,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존재. 이 책의 후반부에도 공동생활을 할 때 밭을 갈고 장사를 하는 것은 남성이고 여자들은 모두 세탁일이나 부엌일 등을 맡아서 한다. 당연한 듯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18세기의 어두운 일면을 다 보고 난 느낌일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보다는 어두운 현실을 풍자한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는 읽어볼 만한 책이었고, 추천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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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5 -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
에인 랜드 지음, 정명진.신예리.조은묵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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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이 책을 극찬하는 것을 보고 읽게 되었다. 사실 난 미국이 너무나 싫어서 이 책 읽는 것을 기꺼워했다. 적을 알아야 이긴다고 했던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 미국인들이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는 책.. 그래서 그네들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책.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였다.

꽤 두꺼웠다. 한 권당 500페이지 정도이니 읽는데도 이틀 밤을 새워야만 했다. 소설 형식을 빌어 기업가 정신을 표현했는데, 내용은 재밌었다. 미국에서는 이 책이 지적 스릴러로 분류된다는데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대학의 강의실에서, 더러운 술수가 난무하는 정치가들의 연회에서 그리고 침대에서까지 철학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은 단 하나! '인간의 이성은 위대하고 절대적이다.' 이 명제를 위하여 온갖 상황이 다 발생한다.

이 책은 미래의 뉴욕에서 출발한다. 얼치기 도덕주의자들, 인류애를 주장하는 위선자들의 집권으로 진정한 기업가들은 모두 파업을 선언하고 그들만의 아틀란티스로 숨어버린다. 그러자 그들에게 빌붙어 살아가던 다수의 어리석은 대중 및 집권자들은 멸망하고 기업가들은 세상으로 돌아와 세상을 재건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한창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미국 정부의 제재에 못 견더 캐나다로 이전한다고 소동을 피웠을 때 이 책의 기업가 정신이 언급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정부의 제재는 자유로운 경쟁을 막고 시장경제의 침체를 가져온다. 그리고 너무나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기업가들의 이윤을 떨어트리고 판단할 줄 모르는 대중들은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그들을 옥죄어간다고 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캐나다 이전 소동이 이 책의 상황과 비슷하거나 혹은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어이가 없었다.

이 세상의 기업가들 중 이 책에 나오는 프란시스코나 대그니, 리어든처럼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만을 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모든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노리는 무뇌충같다 하더라도 대중들은 생각할 줄 안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의 활동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즉 이 책에 나오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또한 사회는 진보하는 법인데 이 책에 따르면 사회는 퇴보한다는 것인가.

옛부터 동양에서는 상업을 천시하였고, 덕분에 상인들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 책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할만한 구실을 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산업혁명기에 빨리빨리 어서어서 발전하자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미국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는지, 왜 세계의 경찰 행세를 하며 온갖 나라에 간섭을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의 나라 안의 치안에는 부실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그들에게 A는 A이다. 영원히 말이다. 그들은 그들이 한 번 강대국으로서 세계를 호령했다면 영원히 그 상태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진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제임스나 오런 보일과 같이 남을 등쳐먹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자신은 공공의 선을 위해 일한다면서 마음 속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착취한다. 대그니와 같은 도덕률로 무장한 이성적인 인간은 그들의 이상향이다. 남의 눈을 가리기위한. 이상향으로 가는 행세를 하면서 마음껏 남의 피를 빨아먹는다.

나는 이 책에서 그것을 보았다. 이 책이 50년도에 출판되어 아직까지 읽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로맨스에 집중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사랑마저도 이성의 영역에서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 모성애라는 감정마저도 이성에 포함시킨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하는 자들의 사회가 현재의 미국과 같은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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