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후보군이 많아서 몇가지 기준을 적용했는데, 세 권 이상의 저역서가 있고 뭔가 시의성이 있으면서 독자의 흥미를 끄는(이건 주관적이다) 저자. 가시권에 들어온 세 명이 뭔가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대략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다. 정치적 스펙트럼상 진보 좌파로 분류될 앤디 메리필드,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 그리고 이와사부로 코소(사부 코소)가 그들이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책읽는수요일, 2013)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책을 낸 앤디 메리필드는 마르크스주의 도시 이론가로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이후, 2005)로 처음 소개됐었다. 벤야민에 관한 장을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는데(번역은 아쉬웠지만) 그 사이에 <당나귀의 지혜>(멜론, 2009)도 출간됐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따라서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존 버거와 마셜 버먼이 추천사를 쓰고 있다는 점도 저자를 폼나게 하는데, 가령 우리의 버거 선생은 이렇게 썼다(앤디는 존 버거 연구서도 갖고 있다).

앤디 메리필드는 독창적이고 박식하며, 정치적으로 살아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엄격한 말뜻 그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리필드의 책이라면 원서도 구입할 용의가 있다. <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원제는 <변증법적 도시이론>)는 구해서 읽은 기억이 난다(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던가). 당나귀의 지혜라...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데, <마술적 마르크스주의> 서문에서 메리필드는 이렇게 적는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와 불화를 일으키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전복하고, 새롭게 하고, 내부로부터 흔들려고 한다. 이 책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고 근엄한 마르크스주의와 우호적으로 대립시켜, 그럼으로써 부르주아 사회의 범죄를 고발한다.   

참고로 <마술적 마르크스주의>는 작년에 가장 뛰어난 좌파 저작에 주어지는 '빵과 장미 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두번째 저자는 이탈리아의 좌파 이론가 프랑코 베르르디 '비포'다. 주로 '비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한다. 국내엔 지난해에 <노동하는 영혼>(갈무리, 2012)와 <봉기>(갈무리, 2012)가 연이어 번역됐고, 이번에 나온 <미래 이후>(난장, 2013)는 세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원서는 <노동하는 영혼>, <미래 이후>, <봉기> 순으로 출간됐다. 별 차이는 없지만). 역자 역시 이 세 권을 같이 읽기를 권하고 있다.  

 

 

그런데, 왜 '미래 이후'인가? 그것은 저자가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선언'이 나온 지 100주년이 되는 2009년에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은 1909년 2월 5일에 발표됐다. 그 이후 100년의 시간을 더듬어보면서 비포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다.

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미래주의적 상상력이 소멸하고 미래가 없다는 감수성이 출현한 데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처럼 불안정성의 시대에 만연해 있는 우울한 상상력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고, 이런 우울이 어떻게 전개되어갈지 생각해보면서 불안정성이 전 세계의 새로운 세대 사이에 퍼뜨려 놓은 이 질병(우울증)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고 싶었다.

<미래 이후>는 그런 탐색의 여정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리고 사부. 영어 이름은 '사부 코소'이고 일어 이름은 '이와사부로 코소'이다. 아마도 '이와사부로'란 이름이 너무 길어서 '사부'로 줄인 것 같다. '뉴욕, 거리, 지구에 관한 42편의 에세이' <죽음의 도시, 생명의 도시>(갈무리, 2013)가 번역됨으로써 <뉴욕열전>(갈무리, 2010)과 <유체도시를 구축하라!>(갈무리, 2012)에 이어지는 3부작이 완결됐다. 그의 작업이 갖는 의의는 이렇게 간추려진다.

이와사부로 코소는 뉴욕 월가의 점거하라 운동,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탈핵운동 등 굵직굵직한 세계적 사건들에 직접 참여하면서 활발한 이론 활동을 해 왔으며, 현대 일본에서 가장 급진적인 국제적 사상가로 부상하고 있다. 코소는 지금까지 세 차례 한국에 초청되어 위크샵과 포럼 등을 가졌으며 국내의 사회운동, 도시사회학계와 공공예술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번 책에서도 도시, 세계화, 거리, 아래로부터의 사회운동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제목인 <죽음의 도시, 생명의 거리>는 “죽어가는 메트로폴리스, 살아오는 거리”라는 저자의 핵심 주장을 압축한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19세기의 파리, 20세기의 뉴욕 같은 고전적 의미의 메트로폴리스가 해체되고 있다고 말한다. 도시의 고정된 장소성은 관계로서의 도시, 운동으로서의 도시로 대체되었다. 본래 도시에서 도시로, 과거에서 미래로 끊임없이 운동하는 존재인 민중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삶정치적 도시를 창조해 내고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3부작을 쓴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1980년대 초부터 뉴욕에서 거주하고 있다. 사실 저자보다는 역자로 먼저 이름을 익히게 됐는데, 그때 이름이 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과 <은유로서의 건축> 등을 영어로 옮긴 '사부 코소'였다.

 

 

이 사부 코소가 '이와사부로 코소'란 걸 안 건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아마 <유체도시를 구축하라!>를 구입하면서부터인 듯하다. 외모만으로는 가라타니 고진의 명석한 영어 번역자를 연상하기가 좀 어려웠다! 

 

 

암튼 번역자로서뿐만 아니라 저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부 코소의 신작도 21세기의 도시를 새로운 시각에서 사유할 수 있는 무기가 돼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앤디와 비포, 코소, 모두 동일한 문제를 사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때문에 셋을 같이 묶어놓은 것이긴 하지만...

 

13.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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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이주의 저자'를 고르고 있는데, 이번 주에도 눈에 띄는 저자는 모자라지 않다. 불황으로 출판 종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매주 언급할 만한 저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는 되기에. 분량상 그중에서 세 명을 골랐다. 모두 학술서(내지는 학술교양서) 범주에 속하는 책들의 저자다.

 

 

 

 

먼저,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아카넷, 2013)이 말 그대로 '6권' 통째로 나온 장 보댕. 보댕이 16세기 사람인 줄은 이번에 알았는데(막연하게 근대 사상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게 올라가는 줄은 몰랐다) 책세상 문고로 나왔던 <국가론>(책세상, 2005)을 오래 전에 구입하고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탓이다. 이 <국가론>의 원제가 바로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이고 무려 1576년에 나왔다. 책세상판은 그중 주권에 관한 장을 발췌한 것인데, 책의 의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다.

 

 

국가 이론에 있어 서구 정치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철학자 장 보댕은 이 책을 통해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정치의 목적인 공공선과 정의의 구현 그리고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인 주권에 대해 순차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는데, 좀더 명확하게 말하면 그는 "국가란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로 정의한다. 이번에 나온 아카넷판 1권이 '국가, 권력, 주권론'을 다루는데, 내용 요약은 이렇다.

"국가는 가족과 가족들에게 공통된 것들에 관한,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라고 말한 바 있는데, 최고의 권력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최고의 권력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정한 시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줄 수 있지만, 시간이 끝나면 권력을 받은 사람들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백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핏 절대주의 국가론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은데, 정치사상사적으로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에 정립한 근대 국가와 주권론의 이론적 기초'라고 평가된다. 소개를 보니 "정치사상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퀜틴 스키너는 보댕의 ‘국가론’에 대해서 “16세기에 저술된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철학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막간에 한마디 보태자면 마키아벨리 연구로도 유명한 퀜틴 스키너의 주요 저작인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권, 한길사, 2004; 2권, 한국문화사, 2012)로 나와 있다. 그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대한 논쟁을 다룬 <의미와 콘텍스트>(아르케, 1999)까지도 나왔었지만 지금은 절판됐다.

 

여하튼 그런 의의가 있는, 정치사상사의 고전 하나가 번역돼 나온 것인데, 놀라운 것은 이 완역본이 동양에서는 처음이라는 점이다. 곧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완역되지 않은 책이라는 것(그런 점에서 보자면 역자인 나정원 교수는 '이주의 역자'이기도 하다).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영어 완역판도 1606년에 나오고, 20세기에 나온 건 발췌본 2종이다(독어판은 1986년에 나왔다고). 개인 소장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적어도 도서관에서는 한 질씩 비치해놓으면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의 사상사가 거자오광이다. <중국사상사>(일빛, 2013)란 대작이 번역됐는데, 그의 책은 원래 1권 '7세기 이전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와 2권 '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번에 나온 건 각권의 서론과 1권을 묶은 것이다. 1권만 1000쪽이니 조만간 출간된다는 2권까지 합하면 2000쪽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한국어 독자들에게 부친 서문을 보니 "이 책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네 번째 저서다. 이 책 <중국사상사>는 앞서 출간된 <선종과 중국문화>,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경전십종>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많다."라고 돼 있는데, 짐작엔 이 서문이 수년 전에 쓰인 듯하다. <사상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영남대출판부, 2008)과 <이 중국에 거하라>(글항아리, 2012)가 언급되지 않은 걸로 보아 2008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아마도 서론만 따로 나왔던 <중국사상사>(일빛, 2007) 때 미리 받아둔 게 아닌가 싶다. 이때는 저자명이 '갈조광'이었다.

 

먼저 나왔다는 책들은 <선종과 중국문화>(동문선, 1991), <도교와 중국문화>(동문선, 1993), <중국경전의 이해>(중문출판사, 1996) 등이다(모두 절판됐다). <중국경전의 이해>가 <중국경전십종>의 번역본일 것이다('십종'은 '10종'을 말한다). <중국사상사>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신앙'과 '신앙세계'를 사상사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거자오광 사상사의 특징으로 보인다. 물론 좀더 구체적인 건 '도론: 사상사의 서술방법'을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한편 거자오광의 최신 관점은 <이 중국에 거하라>(2010)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사상사>의 2권을 완성한 후 그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이라는 학술대회(2002)에 참석하면서 20세기 중국사상사가 그 이전 시대와 갖는 차이점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중국사상사>의 제3권으로 <1895-1989년 중국의 지식, 사상, 그리고 신앙의 변천>을 쓰려고 했지만, 첫째는 자료가 너무 방대하고 새롭게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그리고 둘째는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일본, 한국 및 대만 학계의 논의에 대한 고려 필요성 때문에 보류한다. 그의 <중국사상사> 완결판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끝으로 프랑스의 언어학자 에밀 벵베니스트. 그의 대표작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1,2>(지만지, 2012/2013)이 출간돼서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지만지, 2012)를 옮긴 김현권 교수의 완역본이다. 저자명이 '벵베니스트'로 표기됐는데, 예전 번역본에서는 '벤베니스트'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들에서는 '방브니스트'로 표기되기도 했다. 아, 예전 번역본은 제목도 <일반언어학의 제문제>였고, 그게 익숙한데 이젠 '여러 문제'로 불러주게 생겼다.

 

예전 번역본이란 건 김현권 교수의 편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한불문화출판, 1989)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991년 복학생 시절에 읽을 듯하다. 몇 개 논문이 '러시아어학 개론'의 참고문헌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언어학 개론 강의도 들었던 때라 아마도 언어학 책은 그때 가장 많이 읽었을 성싶다. 이후에 이 책은 황경자 교수의 완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2>(민음사, 1993)로 출간됐었다. 모두 현재는 절판. 벵베니스트에 관해서라면 이제 겨우 20년 전 상태를 회복한 셈이라고 할까(영어판은 사정이 더 나쁘다. 70년대에 나온 번역본이 절판된 지 오래다).

 

 

벵베니스트의 또 다른 주저로는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연구1,2>(아르케, 1999)가 있는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다. 다행히 언젠가 구입해놓은 책이긴 하지만. 이 또한 도서관에서라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국가에 관한 6권의 책>, <중국사상사>,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모두 많이 팔릴 책들은 아니지만 소수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책이 나오고 오래 유통되는 것이 '출판문화'다. 소수의 관객만 찾는 영화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들이 상영관에서 오랫동안 관객과 만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영화문화인 것처럼...

 

13.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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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매주 골라놓고 있지만 사실 이주의 저자도 몇 명씩은 꼽아볼 수 있다.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저자는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2013)의 한병철이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의 전작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가 작년에 화제를 모은 덕분에(알라딘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일년만에 다시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분량과 문체, 문제의식에서 <피로사회>와 짝을 이룰 만한데, 독어본은 <피로사회>보다 일년 먼저 나왔다. 

 

 

두 책 사이의 관계를 역자 김태환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피로사회>가 근대에서 후근대(포스트모더니티)로의 이행을 바이러스, 적대자, 억압과 착취, 결핍과 같은 부정성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면, <시간의 향기>는 동일한 이행 과정이 시간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다."

 

시간의 위기는 현대인에게 보통 '시간 없음'으로 인지된다. 왜 없는가. 일에 치여서, 곧 일의 시간이 다른 모든 시간이 압도하기에 그렇다. 한병철 교수의 표현으론 그래서 '시간의 향기'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나 '느리게 살기'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와는 달리, 느리게 살기는 오늘날 당면한 시간의 위기, 시간의 질병을 극복할 수 없다. 느리게 살기 운동은 증상일 뿐이다. 증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간,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 혁명이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  

그 시간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서문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한병철의 문장은 정말 짧다. 독어로 글을 쓰는 인문학자 가운데 이 정도로 단문을 구사하는 저자가 또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국내 독자들에게 가깝게 여겨지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 작가 왕멍이다. <장자>에 관한 책 <나는 장자다>(들녘, 2011)이 기억나는데, 손에 들지 않았던 탓에 그가 소설가 왕멍과 동일인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인생론 <나는 학생이다>(들녘, 2004)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들녘, 2013)의 저자 왕멍이 <변신인형>(문학과지성사, 2004)과 <나비>(문학과지성사, 2005)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겸하여 저명한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왕멍의 이번 책은 이렇게 소개된다. 

왕멍은 80여 년의 인생 가운데 60년을 중국 현대사의 풍운 속에 살면서 극단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은 중국 지성계의 살아 있는 전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언급되며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특별 초청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가 들여다보는 <장자>는 기존 책들과는 관점과 해석의 깊이를 달리한다. 왕멍은 인류가 구축해놓은 역사와 철학을 필두로 문화혁명 때 신장자치구에 유배되어 노동자로 전락되었다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복권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중국문화의 특성과 기질을 <장자>에 투영한다. 즉 장자사상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사상의 기저에 깔린 핵심 이념,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특성과 흐름, 장자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뿐 아니라 중국 현대사를 관통한 저자의 인생에서 <장자>의 사상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장자>에 관한 책이 다수 나와 있지만 왕멍의 <장자> 읽기에도 눈길이 간다. <장자의 거침없는 질주>(자음과모음, 2013)까지 연이어 나왔는데, 장자에 관해서라면 정말 거침이 없다! <장자>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권 덧붙이자면 고전연구가 신동준의 새 번역 <장자>(인간사랑, 2012)가 작년에 나왔고, 왕카이의 <소요유, 장자의 미학>(성균관대출판부, 2013)도 '동아시아 예술미학 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 개인적으로는 장자의 철학이 예술철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장자의 미학'은 낯설지 않지만, 중국 학자의 관점이 궁금하다. 신정근 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정진배 교수의 <장자, 순간 속 영원>(문학동네, 2013)도 있다. 인문교양 총서 '위대한 순간'의 한권으로 나온 책으로 장자의 현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저자도 꼽는다면 <유교 탄생의 비밀>(바다출판사, 2013)의 저자 김경일 교수도 손에 꼽을 수 있다. 오래 전 화제작이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1999)의 저자를 다시 의식한 건 작년에 나온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바다출판사, 2012) 때문인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도 바로 구입한 책이다. 최근 동양 고전 읽기 붐에 좀 유보적인 입장인지라 동양사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관심을 끌었다.

 

<유교 탄생의 비밀>은 그 연장선상에 놓일 텐데, 갑골학 전공자인 저자는 유교문화의 기본 글자들을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들여다봄으로써 유교적 조상숭배 의식의 발생과 변환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저자의 결론은 "유교는 어느 한 인물, 지금까지 언급되어 왔던 공자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유교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하나의 이데올로기"(326쪽)라는 것이다. 사유의 계보학적 전복을 위한 문자고고학적 탐구라고 할까.

 

세 권 이상 책을 낸 인문서 저자들 가운데 '이주의 저자'를 골라 몇마디 적어보았다... 

 

13.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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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원 행사가 끝나고 다소 늦게 귀가했다. 택배가 몇 개 와 있었는데, 모두 교보에서 온 것이고 오전에 알라딘에 당일 배송으로 주문한 건 하나도 오지 않았다. 들어와 보니 여전히 '상품준비중'이다. 오늘은 '오프 데이'인가. 주문한 책 가운데 하나는 한겨레 구본준 기자의 건축책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서해문집, 2013)이다. 재작년에 화제가 됐던 공저 <두 남자의 집짓기>(마티, 2011)에 이어지는 책인데, '그 집이 내게 들려준 희로애락 건축 이야기'가 부제다.

 

 

맛깔나는 건축 이야기들을 (블로그) 기사로 읽은 적이 있어서 바로 주문한 것인데, 월요일에나 배송될 모양. 어린이용 책까지 포함하면 저자가 세번째로 낸 건축책이다. 사실 집에 대한 욕심도 없는 편이고 건축은 관심분야가 아니었는데, 1-2년 사이에 건축에 관한 책들을 종종 구입하게 된다(음식과 함께. 의식주 가운데 '식'과 '주'에 좀 관심을 갖게 됐달까. 늙어가는 징조일까, 현명해지고 있다는 증표일까). 그렇다고 이 분야의 책들이라면 모두 관심권에 두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령 임석재 교수의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1,2>(인물과사상사, 2013) 같은 타이틀에도 눈에 가는 건 사실이다.

 

 

작년에 나온 <기계가 된 몸과 현대 건축의 탄생>(인물과사상사, 2012)과 함께 세트로 읽어볼 만한 책. 이 책은 따로 '임석재의 인문건축 시리즈'로 분류돼 있는데, 시리즈인 만큼 올해도 몇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싶다(아니면 1년에 한권씩일까?).

 

 

 

건축책 가운데 또 자주 손길이 가는 쪽은 '철학'이 같이 붙어 있는 경우다. 최근에 나온 걸로는 브랑코 미트로비치의 <건축을 위한 철학>(컬처그라퍼, 2013)이 있다. "인문학적 건축을 위한 서양 철학의 핵심을 한 권에 담았다. 이 책은 건축가, 건축 실무자,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 설계 작업에서 맞닥뜨리는 광범위한 철학적 문제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에 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소개된 책이다. 구입은 진작에 했지만 아직 눈여겨 보지는 못했다. 내달에는 짬을 내 읽어보려고 한다. 이 분야의 책으론 장 보드리야르의 <건축과 철학>(동문선, 2003)도 꼽을 수 있는데, 오래 전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가 중간에 반납해서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국내서로는 건축평론가이기도 한 함성호 시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열림원, 2011)이 소장도서다.

 

 

 

사실 '건축과 철학'은 시공문화사의 시리즈 제목이기도 하다. '들뢰즈와 가타리', '하이데거', '이리가라이'를 다룬 첫 세 권이 지난 2010년 봄에 나왔고, '호미 바바'를 다룬 4권에 이어서, 작년 봄에는 벤야민과 데리다 편이 5, 6권으로 출간됐다. 주섬주섬 다 모아놓긴 했는데(하지만 안 보인다) 좀처럼 읽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기억에 한두 권은 원서까지 구했는데 말이다.

 

암튼, 손에 들지 못하고 마음에만 품고 있는 책들인지라 페이퍼로라도 토해놓는다. 언젠가 건축과 철학이란 주제로도 좀 그럴 듯한 글을 써보고 싶다. 그러자니 또 먼저 읽어야 할 책이 건물 하나쯤을 채울 듯싶지만...

 

13.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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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배송받은 책 가운데 고고학 관련서가 두 권이다. 하나는 현대 고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고든 차일드(1982-1957)의 대표작 <인간은 인간 자신을 만든다(Man makes himself)>의 번역서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주류성, 2013). 고든 차일드란 인물이 생소한 사람도 '신석기혁명'이란 말은 익숙할 텐데, 바로 그 말을 만들어낸 학자가 고든 차일드이다.

 

 

뒷표지에 실린 저자소개를 보면(한국위키백과사전에서 가져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명한 고고학자"로 "선사 시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사관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또한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는 유럽과 범세계적인 선사시대 이론 개발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위대한 고고학자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1936년에 영국에서 초판이 발간됐고 1941년과 1951년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개정판이 나왔다. 한국어판은 <인류사의 전개>(정음사, 1959)라고 아주 일찍 나온 적이 있지만 일어본을 옮긴 중역판이었고 원문을 상당 부분 누락한 것이라 한다. <신석기혁명과 도시혁명>도 완역은 아닌데, 역자에 따르면 '8장 인류지식의 혁명'은 수학과 기하학에 관한 어려운 내용이어서 요약/정리로 대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온 <인류사의 사건들>(한길사, 2011)과 함께 고든 차이들의 기본적인 생각과 입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요긴한 책이라 생각된다.

 

 

 

국내에도 고고학 관련서들이 출간되고 있지만 보통은 학술서나 학술보고서이고 교양서로 읽을 만한 책은 드문 편이다. 이선복 교수가 쓴 <고고학 개론>(이론과실천, 1999), <고고학 이야기>(뿌리와이파리, 2005)가 모두 절판돼 쉬운 입문서는 없는 듯하고, 지금은 한국고고학회에서 엮은 <한국 고고학 강의>(사회평론, 2010)가 입문서 아닌 입문서 역할을 해주는 듯싶다(초급 전공서라고 해야 할까). 고고학의 매력과 모험을 다룬 책으론 C. W. 세람의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스티븐 버트먼의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루비박스, 2008)이 눈에 띄는 정도다.

 

 

한국고고학회에서 펴내는 책은 대부분 학술서이거나 학회발표문 모음집으로 보이는데, 그럼에도 주제에 대한 관심 때문에 몇 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있다. <한국 농경문화의 형성>(학연문화사, 2002), <계층사회와 지배자의 출현>(사회평론, 2007), <국가형성의 고고학>(사회평론, 2008) 등이 거기에 속한다. 고고학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건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도서출판b, 2012) 같은 책을 읽으면서 국가의 탄생 혹은 형성 문제에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류학 관련서는 드문드문 읽었지만 사실 고고학은 나와 무관한 분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 장담할 수 없는 게 세상이며, 하여간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고든 차일드의 책과 함께 배송받은 건 웨난의 <진시황제의 무덤>(크림슨, 2008)이다. 웨난의 책은 꽤 많이 번역됐지만 다수가 절판된 걸로 보아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한 듯싶다(그래도 <손자병법의 탄생>까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진시황제의 무덤>은 제목대로 진시황릉 발굴을 다룬 책인데,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중국 최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고고문학가"이다. 고고학자가 아니라 고고문학가(웨난은 62년생으로 생각보다 아주 젊다). 우리에게 이런 책이 없는 건 고고학자가 드물어서가 아니라 고고문학가가 없어서가 아닐까란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현장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그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짚어주는 저자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싶다.

 

<진시황제의 무덤>의 머리말을 쓴 저우다커란 인물은 고고학이 학문임과 동시에 막대한 경제적 효과 또한 갖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한데, 우선 지역 관광산업을 발달시킨다. 진시황제의 병마용이 발굴되자 이 지역의 관광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고. 그리고 둘째가 출판업과 영상업의 발전이다. 중국에서는 하이난출판사의 <고고중국(考古中國)>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문화 르네상스'로까지 이어졌다고. 우리도 참고해볼 만한 사례다.

 

 

<고고중국>이 중국의 10대 유물 발굴을 다룬 시리즈라고 하는데, 거기에 견줄 만한 책은 패트릭 헌트의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오늘의책, 2011)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들'이 부제. 그 10가지 발견이 각 장의 테마다.

제1장 로제타스톤 - 고대 이집트의 비밀을 풀어준 열쇠 
제2장 트로이 - 호메로스와 그리스 역사의 열쇠 
제3장 아시리아 도서관 -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열쇠 
제4장 투탕카멘의 무덤 - 신격화된 이집트 왕의 비밀을 푸는 열쇠 
제5장 마추픽추 - 잉카 건축의 비밀을 풀다 
제6장 폼페이 - 로마인들의 삶을 보여주다 
제7장 사해문서 - 성서 연구의 핵심 
제8장 티라 - 에개해 청동기 시대의 중심 
제9장 올두바이 협곡 - 인류 진화의 열쇠 
제10장 진시황릉 - 증국 최초의 제국을 세우다

흠, 고고학 입문서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한국 고고학의 10대 발견은 무엇일까...

 

13. 01. 28. 

 

 

 

P.S. 고고학과 함께 고고학사도 일람해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찾아본 바로는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사회평론, 2010)이 교과서격의 책인 듯싶다. 국내학자들이 엮은 <인물로 본 고고학사>(한울, 2007)도 거기에 보탤 수 있다. 한국 고고학사에 대해서는 <일곱 원로에게 듣는 한국 고고학 60년>(사회평론, 2008)이 가장 유력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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