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골라보았다. 주중에 따로 다룬 로맹 가리와 강신주, 언급의 의미가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빼니 선택의 폭이 좁다. 주로 인문 저자들에 익숙한지라(눈에 띄는 교양과학서가 지난주에는 없었다) 자연스레 고르게 된 이름이 랑시에르와 에드거 스노(알라딘 표기는 '에드가 스노우'), 그리고 글쓰기 책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나탈리 골드버그다.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13)는 2008년에 나온 초역의 전면 개정판이다. 역시나 개역판이 나온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인간사랑, 2011)와 다른 점은 역자가 같다는 점. 오늘자 한겨레 기사를 보니 “초역 당시에 미흡했던 부분을 다시 꼼꼼하게 손질해 한층 정확한 번역본이 완성됐다”는 게 출판사쪽 설명이다.

 

 

개인적으로도 초역본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에 개정판을 다시 구입하긴 했다(초역판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기도 하고). 랑시에르의 주저인 <불화>도 근간예정인 것으로 아는데(랑시에르가 재차 방한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한번 더 주목받는 이름이 될지 모르겠다. 그 전에 개정판을 읽어둬야겠다.

 

 

찾아보니 영어본으로는 랑시에르의 근간이 <아이스테시스>(2013), <알튀세르의 교훈>(2011), <말라르메>(2011) 등이다. 이 중 <알튀세르의 교훈>은 랑시에르의 첫 책이지만 영역본은 2011년에야 나왔다. <아이스테시스>와 함께 국내에도 번역됨직하다.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두레, 2013)도 재출간된 책이다. 상/하 분권으로 나온 책 1995년이니까 18년만에 나온 셈이고, 오랫동안 절판돼 있었기에 반가운 책이다. 국내에는 그의 자서전도  번역돼 있다(<모택동 자전>이란 책은 <중국의 붉은 별>의 부분역이다). 이 책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중국의 붉은 별>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와 더불어 세계 3대 르포 문학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은 중국 혁명에 대한 아주 잘 알려진 역사적 고전일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의 한계를 뛰어넘어 빛나는 역사적 작품이 되었다.

 

한국어 초판이 나왔을 무렵에 중국 현대사는 관심사가 아니었다(대학원에 다닐 무렵이었으니 관심분야가 좁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서 책은 바로 주문했다. 같이 주문한 책이 로스 테릴의 <장칭>(교양인, 2013)인데, 마오와 그의 아내라면 독서의 짝으로도 잘 어울리지 않나 싶다. 그리고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는 중국 현대사에 관한 흥미로운 '뒷담화'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서 같이 읽기에 요긴하다.

 

 

베스트셀러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한문화, 2005)의 저자 나탈리 골드버그의 신간도 출간됐다. <인생을 쓰는 법>(페가수스, 2013). <글쓰며 사는 삶>(페가수스, 2011)까지 포함하면 현재 3종이 나와 있는 셈이다. 글쓰기 관련서로는 어느 정도 인지도와 신뢰를 얻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까(그 인지도 때문에 나도 <뼛속까지>는 구입했더랬다). 이 세 권의 원서는 이렇다.

 

 

 

개인적으로는 '글쓰며 사는 삶'에 한 다리 걸치고 있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한번 읽어볼 참이다. 비록 글쓰기 강의는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언젠가 글쓰기 책은 써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가령 앞으로 서평집을 네댓 권 더 내게 된다면 써평쓰기에 관한 책이라도 의무적으로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13.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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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 않아 하루 미뤄진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리스트는 물론 정해놓은 터였다. 제목에 두 사람은 성만 달았는데, 이름까지 적으면 '스테판 에셀-크리스토퍼 히친스-폴 콜린스'이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의 책은 이번에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으니 단연 '이주의 저자'로 손색이 없다. 1917년생으로 지난 2월 생을 마감한 이 노투사의 마지막 책들인데, <세기와 춤추다>(돌베개, 2013)는 회고록이고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문학동네, 2013)는 자서전이며 <포기하지 마라>(문학세계사, 2013)는 마지막 메시지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가 한국어판 서문 제목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현 프랑스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그의 삶을 기리며 이렇게 회고했다.  

스테판 에셀은 이런 분이었습니다. 국경 없는 시민, 헌법 없는 유럽인, 당파 없는 투사, 한계 없는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에겐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비밀은 바로 ‘사랑을 사랑하기’입니다.

더불어, 그의 삶의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여러분, 스테판 에셀이 우리 곁을 떠나도 이러한 삶의 교훈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결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에는 합당한 이름이 있으니 바로 '공화국'이라는 이름입니다.

 

 

영국의 지식인이자 논쟁가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이어 세 권이 출간됐다. 지난주에 나온 책이 <논쟁>(알마, 2013). 다섯번째 선집이자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비평/칼럼집이다(내가 제일 먼저 읽은 건 나보코프의 <롤리타> 주석서에 관한 리뷰인데,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페이퍼로 정리해보겠다).  

 

 

한국어판은 두 권으로 나오는 듯한데, <논쟁>은 그 첫 권으로 원서의 여섯 개 부 가운데 네 개 부를 옮겼다(원서는 어제 주문했다). 조만간 나머지 두 개 부도 마저 번역돼 나오길 기대한다.  

 

 

<타블로이드 전쟁>(양철북, 2013)은 미국의 '문학  탐정' 폴 콜린스의 신작이다. <네모난 못>을 필두로 <밴버드의 어리석음>, <토머스 페인 유골분실 사건>, <식스펜스 하우스> 등 다섯 권의 책이 국내에 소개됐는데,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펴낸 것이다(이런 꾸준함이 마음에 든다). 이번에 나온 건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이 부제로 역시나 폴 콜린스 표 스타일을 보여준다. 어떤 이야기인가?

1897년 6월, 뉴욕의 한 부둣가에서 빈들거리던 아이들이 방수천에 싸인 채 바다에 떠있던 시체 토막 하나를 건진다. 비슷한 시기, 뉴욕 브롱크스 숲으로 버찌를 따러 간 가족들이 가시덤불 사이에서 심하게 썩은 한 남자의 몸통을 발견한다. 며칠 뒤, 지나가던 배에 부딪힌 시체 꾸러미를 사람들이 바다에서 건져낸다. 한편, 롱아일랜드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오리들 깃털에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궁금하다면 '타블로이드 전쟁'에 참전해보시길. 원제는 '세기의 살인자'다...

 

 

13.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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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의 전화에 잠이 깨고 세수도 하기 전에 택배를 받으며 하루가 시작됐다(9시도 되기 전에 다녀가다니!). 당일배송이 지켜진다면, 오후에도 두세 개의 택배가 더 와야 한다. 하긴 책은 매일 쏟아지고, 나도 거의 매일 주문을 하니까. 잔뜩 쌓인 책들과 장바구니에 들어 있는 책들 가운데 '이주의 책'을 고르려다가 초점이 잘 모아지지 않아서 '이주의 저자'를 먼저 고른다. 이건 별로 어렵지 않아서다.

 

 

먼저 영국의 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1921-1988). 주저 가운데 하나인 <시골과 도시>(나남, 2013)이 출간됐다. 소개를 옮기자면, "문화연구의 새 장을 연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대표작. 주로 영국의 잉글랜드에서 진행된 도시화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왜 하필 잉글랜드일까? 그것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발흥했을 뿐 아니라 이후 세계 전체로 확장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지역으로서, 도시화와 산업화를 이해하고 그것의 여러 문제들을 성찰하는 데 요긴한 사례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번역된 <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을 제외하면 현재 윌리엄스의 대표작이라고 번역된 책은 <키워드>(민음사, 2010)와 <기나긴 혁명>(문학동네, 2007)까지 세 권이다. 발간순으로 하면 <기나긴 혁명>(1961)-<시골과 도시>(1973)-<키워드>(1976) 순이다(<마르크스주의와 문학>은 1977년에 나왔다). 윌리엄스의 출세작은 <문화와 사회, 1780-1950>(1958)인데, 절판됐지만 이대출판부(1988)에서 번역본이 나온 바 있다(저자가 '레이몬드 윌리암즈'로 표기돼 있다). <키워드>는 <문화와 사회>의 속편 격 책이다.

 

 

 

오래 전 기억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20세기 영국 비평사에서 F. R. 리비스와 테리 이글턴 사이에 놓인다. <시골과 도시>의 책소개를 보니 그런 맥락이 다시 환기된다. "<시골과 도시>가 출판될 당시 영국에서는 자본주의가 초래한 재앙을 비판하면서 자본주의 도래 이전 시기를 신비화하고, 잉글랜드의 옛 시골 마을을 ‘유기적 공동체’로 이상화하는 풍조(F. R. 리비스로 대표되는)가 유행하였는데, 저자는 이러한 풍조를 통박한다." 모처럼 무게 있는 비평가의 묵직한 저작이 소개돼 반갑다(그러고 보니 역자인 이현석 교수는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지나가는 김에 검색해보니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길, 2012)까지 소개된 이글턴의 신작으론 <문학이라는 사건>,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연못을 넘어서: 한 영국인의 미국관> 등이 있다. 아무래도 저명한 문학비평가의 책이다 보니 이래저래 관심이 간다.

 

 

그리고 두번째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 국내 인문 독자들에겐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2012)을 통해 확실한 인지도를 갖게 됐지만 진작부터 소개된 사회학자다(심지어 '우리시대의 구루'라고 불리는). 이번에 나온 <리퀴드 러브>(새물결, 2013)는 바우만 사회학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리퀴드' 시리즈의 하나인데, 이 시리즈의 책으론 <액체 근대>(강, 2009),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가 출간된 바 있다.

 

 

올해도 시리즈의 책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거의 바우만과 생사를 같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리퀴드 러브'인가?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20세기형 인간을 특징지었다면 이제 21세기는 ‘유대 없는 인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바우만의 진단과 통찰에 귀 기울여보면 좋겠다(오전에 한 일 중의 하나가 <리퀴드 러브>의 원서를 찾는 거였는데, 다행히 찾았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서...

 

 

끝으로 국내 저자도 꼽도록 한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후기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휴머니스트, 2013)을 끝으로 5년만에 완간됐다.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2008),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2011)과 함께 삼부작이다. 계속 나오고 있는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와 함께 미술사 독자들에겐 유용한 길라잡이가 될 만하다(미학자 진중권의 다음 작업이 궁금해진다. 미학이론이 될까?) <서양미술사>를 마무리지으면서 저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에 대해 이렇게 적어놓았다.

이 책과는 다른 방식으로 미술사를 재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책은 독자들을 지붕에 올려놓는 사다리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지붕에 올라갔거든 이 사다리를 치워버려라. 이 책을 읽은 후에 독자가 또 다른 독서를 통해 자기 자신만의 미술사를 주체적으로 재구성한다면, 저자에게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서양미술사>를 애독해온 독자라면 한번 저자를 기쁘게 해보아도 좋겠다...

 

13.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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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철학책들이 연이어 나왔다. 물론 철학 쪽만은 아니다. 역사나 사회과학 분야로도 묵직한 책들이 연이어 선을 보이고 있는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염려스럽다.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란 염려다. 그래도 염려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이주의 저자'는 이 철학자들이다.

 

 

먼저 일본의 헤겔학자 하세가와 히로시의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도서출판b, 2013)이 출간됐다. '헤겔총서'의 셋째 권인데, 먼저 나온 <헤겔>과 <헤겔의 서문들>과 마찬가지로 이신철 박사의 번역이다. 현재까지는 1인 번역 총서인 셈이다. 하세가와 히로시는 언젠가 혁명적인 <정신현상학> 번역으로 국내에서까지 화제가 됐었는데('읽을 수 있는 헤겔'이 그 혁명의 목표이고 결과다), '옮긴이 후기'를 보니 그게 1998년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 그는 <철학사 강의(전3권)와 <역사철학강의>, <미학강의>를 차례로 옮겼고 <정신현상학> 번역으로 독일 정부로부터 레싱번역상까지 수상했다고(한국어 헤겔 번역 현황에 견주어 부러운 일이다).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은 새로 번역한 <정신현상학>을 토대로 쓴 것으로 1999년에 나온 책이다. <정신현상학>에 대한 해설서나 입문서는 몇 권 나와 있지만, '헤겔 번역 혁명'은 가져온 저자이기에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아예 하세가와판 <정신현상학>을 중역하는 건 어떨까란 생각도 든다).

 

   

두번째 저자는 폴 리쾨르로 <해석의 대하여>(인간사랑, 2013)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다. 부제는 '프로이트에 관한 시론'으로 1965년에 나온 책이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번역본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대작이 나왔다(언젠가 구해놓은 영어판 <프로이트와 철학>도 찾아봐야겠다). 이로써 리쾨르의 주요 저작 가운데는 <살아있는 은유> 정도가 아직 번역본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1960년대에 프랑스에서 프로이트에 관한 책을 쓴다면 당연히 자크 라캉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데, <해석에 대하여>에 대해 라캉은 별무반응이었다(고 읽은 것 같다). 이후엔 리쾨르도 라캉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다(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던가). 정신분석가와 철학자의 차이로 일반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해석에 대하여>가 떠올려준 책은 사회철학자 하버마스의 <인식과 관심>(고려원)이다. 그의 프로이트론을 담고 있는 책으로 오래전에 번역됐다가 '오역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고 지금은 절판된 지 오래다. 요는 이후에 아직도 새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나 <의사소통행위이론>만큼 중요한 저작이라고 말들은 하면서도 아직까지 손놓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부분의 주저가 번역된 상태에서도 이 책은 '공백'으로 남아 있다.  

 

 

세번째는 미국 철학자 알폰소 링기스다. 현상학자로 메를로퐁티, 레비나스의 영역자로 유명한데, 1980년대 중반부터 독자적인 자기 철학은 전개하고 있다. 국내에는 <낯선 육체>(새움, 2006)가 소개된 적이 있고, 이번에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바다출판사, 2013)가 번역돼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성과 무한>, <존재에서 존재자로> 같은 레비나스 저작의 영역본을 통해 링기스란 이름을 처음 접했는데, 역시나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 번역자인 서동욱 교수는 추천사에서 "링기스는 합리성의 배후에서 아무것도 명시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듯한 자들이 ‘죽음’과 같은 공동의 운명을 통해 꾸며가는 보다 심층적인 차원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밝혀낸다.(...) 링기스의 이 저작은 최근 낭시나 블랑쇼 등이 내놓은 공동체론과 더불어 반드시 음미되어야 할 공동체론이다."라고 적었다.

 

 

블량쇼와 낭시의 공동체론은 이미 번역돼 있다. 그렇게 셋을 한꺼번에 묶어놓을 수 있기에 알포소 링기스도 '이주의 저자'에 포함시켰다. 링기스의 근작은 <폭력과 영광>(2011)인데, 이 역시 관심이 가는 책이다. 흠, 이렇게 모아놓으니 다 읽으려면 한달도 부족하구나!..

 

13.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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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오전에 (실상과 다르더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세 권 이상의 책을 낸 저자나 역자가 대상인데, 이주에는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1943-2012)와 중국의 일본사상사 연구자 쑨거, 그리고 오랜만에 책을 낸 자칭 '전직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를 무대에 올려놓는다.

 

 

먼저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편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이 '인문서가의 꽂힌 작가들' 시리즈로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이 시리즈의 다른 작가로는 조르주 페렉이 있다).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을 꾸릴 기세인데, 8권 정도가 기획돼 있다. 이번에 나온 <꿈의 꿈>, <플라톤의 위염>, <수평선 자락>은 주로 1990년대 전후에 발표된 에세이들이다. 현대 이탈리아 작가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문학적 개성이 우리에겐 어떤 인상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가령 <꿈의 꿈> 같은 건 작가가 사랑한 스무 명의 창조적 개인들의 꿈을 기술하고 있는데, '작가이자 의사, 안토 체호프의 꿈'을 보니 체호프의 전기와 작품이 재료가 돼 실제로 꾸었을 법한(그리고 잊어먹을 수도 있는) 꿈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특한 발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타부키의 포르투갈 사랑이다.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구서까지 낸 경력이 있는데, 그 정도는 그 사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타부키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지만 평생 포르투갈을 사랑했고 포르투갈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며 포르투갈의 문화를 연구하고 소개했다. 피사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전공했고 리스본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일했으며 시에나 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가르쳤고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했다. 또 그의 작품들 상당수는 문학, 예술, 음식에 이르기까지 포르투갈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포르투갈은 그에게 영혼의 장소, 정념의 장소, 제2의 조국이었다.

작년 봄 그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세상을 떠났고 고국 이탈리아에 묻혔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 문화훈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타부키의 소설로는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문학동네, 2011)가 이미 나와 있다. 그리고 페소아의 책으론 <불안의 책>(까치, 2012)이 작년에 소개된 바 있는데, 이 방대한 분량의 책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생긴다(물론 책은 구입했지만 현재로선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잠 못 드는 봄밤에는 '타부키와 함께 페소아를' 읽어보아도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창비, 2003),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그린비, 2007)이란 책으로 소개됐던 중국의 연구자 쑨거. 1955년생이고 현재는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원으로 있다.

 

 

이번에 논문집 <사상이 살아가는 법>(돌베개, 2013)과 함께 번역자이자 같은 동아시아 연구자인 윤여일과의 대담 <사상을 잇다>(돌베개, 2013)가 나란히 출간됐다. 연배로 치면 '다케우치 요시미-쑨거-윤여일'이라는 고리도 가능하다. 어떤 물음, 어떤 사상이 이어지고 있는가. 소개에 따르면 '동아시아 문제'와 '사상의 번역' 등이 공통의 화두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문학과지성사, 2003)과 <일본과 아시아>(소명출판, 2004)에 이어서 재작년에 두 권의 선집 <고뇌하는 일본>과 <내재하는 아시아>가 출간됐는데, 이 두 권 모두 윤여일의 번역이다. 늘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거론된다는 다케우치는 마루야마와는 달리 학계의 변방에 있었고 '학문적 이방인'이었다. 그렇지만 특이하게도 중국학자 쑨거에게서 자신의 계보를 얻는다. 말하자면 '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라는 계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 사상계에서 아직 ‘전통’으로 자리 잡지 못한 특이한 사상가이다. 그를 자리매김하는 것, 계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학술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학자’가 아니었다. 평론가였고, 늘 문학을 자신의 영혼이 돌아갈 거처로 삼았다. 그럼에도 일본근대사상사의 중요한 모든 과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이 아닌 중국에서 사상의 동반자인 루쉰(1881-1936)을 만났고, 그의 사후에도 쑨거라는 이방의 계승자를 얻는다.

 

한국에서 이 계보는 거의 전적으로 윤여일의 번역 작업으로 소개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면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연구자의 <여행의 사고>에 뒤이은 <사상의 여정> 또한 기대해봄직하다.

 

 

표정훈의 <철학을 켜다>(을유문화사, 2013)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입문서이고 가이드북이다. 제임스 러브록, 맬컴 엑스, 마틴 루서 킹, 마르코스 부사령관 같은 인물들도 포함돼 있지만 대략적으로는 '철학에 관한 책'이거나 '철학 인물지'에 해당한다. 저자는 '타자의 문제'라는 화두로 고대 그리스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행적을 추적하고 요약한다. 하룻밤에 읽기엔 분량이 좀 되지만 이틀밤 정도라면 읽어봄 직하다. <하룻밤에 읽는 동양사상>(랜덤하우스코리아, 2010)이나 저자의 스승 강영안 교수와의 대담 <철학이란 무엇입니까>(효형출판, 2008)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어느 순간 생각이 'ON AIR' 상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13.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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