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도 마저 골라놓는다. 이번주엔 작가들로만 골랐다. 먼저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 '조르주 페렉 선집'의 세번째 책으로 <잠자는 남자>(문학동네, 2013)가 출간됐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문학동네, 2012)와 <인생 사용법>(문학동네, 2012)에 뒤이은 책이다.

 

 

<잠자는 남자>는 <인생 사용법>에 비하면 '애교스런' 분량으로 1967년작. "작가의 젊은 시절을 가늠하게 하는 사회학적 자전소설로, 이십대 중반 주인공 '너'의 파편화된 의식이 좇는 (반)의식 상태의 기행을 이인칭으로 풀어낸 독특한 소설이다. 1974년 베르나르 케이잔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당해 최고의 신진 영화인에게 수여되는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국내에 소개된 페렉의 책은 6종이 됐다(2종은 중복돼 나왔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실험적 작가의 대표작들을 한국어로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이 생각하면 좀 놀랍기도 하다.

 

 

 

그만큼 놀라운 건 독일 작가 W. G. 제발트의 책들이 번역되고 있다는 점. 이번엔 <공중전과 문학>(문학동네, 2013)이 출간됐다. 국내에 소개된 네번째 책으로 소설이 아니라 문학론이다.

 

1997년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진행했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하여 묶은 '공중전과 문학', 강연 주제의 문학적 사례인 작가 논문 '알프레트 안더쉬'로 구성되어 있다. 두 텍스트를 관통하는 주제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입을 닫고 역사수정주의를 암묵적으로 지지했던 전후 독일문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미 전세가 기운 이차대전 말 영국군의 공습으로 희생된 수많은 독일인에 대해, 독일 국가와 문단 전체가 애도를 회피하고 과거를 수정하는 일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구도 꺼내지 못했던 민감한 주제를 담은 이 책은, 출간 당시 독일 사회의 격렬한 반응과 함께 이른바 '제발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작가가 영국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가르쳤던 독특한 처지에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독일 문단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발트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수전 손택이 평도 그렇다.

섬세하고 농밀할 뿐만 아니라 사물의 물성에 통달한 듯한 제발트의 언어는 한마디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 제발트처럼 국외에서 영원히 거주한 독일 작가만이, 그렇게 설득력 있는 고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아무튼 아직 본격적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관련 연구서까지 모으게 만들 만큼 제발트는 뭔가를 기대하고 꿈꾸게 하는 작가다(내년쯤에는 강의에서도 다루고 싶다).

 

 

그리고 중견작가 김원우. 그의 장편소설 <부부의 초상>(강, 2013)이 출간됐다. 내가 읽은 건 산문집 <산책자의 눈길>(강, 2008)이 마지막이었던 듯한데, 그 사이에 <돌풍전후>(강, 2011)도 있었다(제목과 달리 '돌풍'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번에 나온 소설은 얼핏 <모노가미의 새 얼굴>(솔출판사, 1996)을 떠올리게 한다.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일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책은 <스크린 앞에서>란 단편과 <부부의 초상>이란 장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작품은 연작이다. 작가의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책의 내용은 철두절미하게 우리의 세태, 제도, 인심, 풍속 등을 지은이 나름의 안목대로 그럴싸하게 조감해본 조작물"이다. 소개는 이렇다.

전작 <돌풍전후> 이후 2년 반 만에 내놓는 김원우의 장편소설. 작가 김원우의 소설 문장은 흔히 만연체로 이야기되곤 하지만, 그 풍성한 어휘와 맛깔 나는 말의 리듬감은 세상살이의 입체를 한껏 부각하면서 소설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진실의 조망을 실답게 성취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미가 우러나오는 특유의 문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원우 문학의 인장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번 장편 <부부의 초상>에서는 전작 <돌풍전후>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사투리를 소설의 문체에 끌어들이고 있는데, 작품의 무대인 대구와 경북 일원의 사투리가 인물들의 대사는 물론이고 그쪽 대구의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퇴직한 소설 화자의 지문에까지 버젓이 올라 있는 형편이다.

그 만연체 문장을 읽어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궁금한 독자라면 무더위 속에서 잘근잘근 읽어나가도 좋겠다...

 

13.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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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먼저 <감정 자본주의>(돌베개, 2010)로 화제를 모았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 그의 신작 <사랑은 왜 아픈가>(돌베개, 2013)가 출간됐다. <오프란 윈프리, 위대한 인생>(스마트비즈니스, 2006)까지 포함하면 세번째 책이다.

 

 

사랑을 다룬 책은 차고 넘치니 특별할 게 없지만, 흥미를 끄는 건 '사랑의 사회학'이라는 점(기든스나 루만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저자는 자신의 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이 품은 커다란 야심은 마르크스가 상품을 가지고 벌인 일을 감정에, 적어도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적용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만만찮은 야심작임을 알 수 있다. 아래는 국내에 번역된 세 권의 영어본이다.

 

 

<사랑은 왜 아픈가>는 독어본의 번역이지만, <자본론>에 값할 만한 <사랑론>이라면 영어본도 구해보고 싶다.

 

 

 

두번째 저자는 토마스 프랭크. 문제작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로 처음 소개된 저자다. 이번에 나온 건 <정치를 비즈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어마마마, 2013)인데, 부제는 '왜 보수가 남는 장사인가?'. 원저는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와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 사이에 나왔었다. 출간연도로 배열하면 <가난한 사람들>, <우파의 탄생>, <실패한 우파> 순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공공의 정치가 사적인 비즈니스로 변질되면 그 나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사적인 비즈니스가 어떤 방식으로 공공의 정치로 둔갑하여 국민을 속이는지 신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간파한 우파 비즈니스의 전략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감세, 규제 철폐, 민영화’라는 3대 슬로건, “갈 곳 없는 다리‘로 명명된, 국가 예산의 무용한 낭비를 초래하는 토목 프로젝트, ’뉴라이트’란 이름의 우파 조직, ‘좌파의 재원을 고갈시키자’라는 선동 구호, 그 조직에 반대해온 인사를 조직의 수장으로 앉히는 ‘부적격 인사’ 그리고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을 주 무기로 하여 진보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공화당학생회’란 단체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온 대한민국 우파의 전략과 놀랍게도 그대로 일치한다.

 

정치 저널리스트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끝으로 국내에는 <침묵의 세계>로 알려진 스위스의 의사이자 저술가 막스 피카르트(1888-1965). 그의 <인간과 말>(봄날의책, 2013)이 번역돼 나왔다. 절판된 <사람의 얼굴>(책세상, 1994)까지 포함하면 네번째 책인 듯하다. <침묵의 세계> 독자들에겐 반가운 선물. 고요하고 명징한 성찰과 만날 수 있다. 배수아 작가의 번역. 책소개는 이렇다.

막스 피카르트의 전작 <침묵의 세계>는 시인 고형렬, 김사인, 김선우, 김중일, 나희덕, 문인수, 박용하, 오선홍, 이재무, 장석주, 조용미, 조은, 최승자, 황인숙, 소설가 신경숙, 윤대녕, 정지아, 건축가 승효상 등이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한다. <인간과 말> 역시, 피카르트의 깊은 시선은 여일한데, 그보다 더 넓은 대상을 종횡으로 다루었다는 장점이 있다.

골라놓고 보니 저자들의 면면이 다양하다. 각자의 관심에 따라 일독의 즐거움을 누려보아도 좋겠다...

 

13. 0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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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간단히 골라놓는다. 이번주엔 흥미를 끄는 책이 많아서 이주의 저자도 후보들 가운데 추려야 했다. 먼저 인류학자 웨이드 데이비스의 <나는 좀비를 만났다>(메디치, 2013). 원제는 <뱀과 무지개>. 

 

 

소개에 따르면, "인류 최고의 미스터리 ‘좀비’를 파헤친 책으로 저자의 독특한 프로필처럼, 인류학과 과학, 역사학뿐 아니라 탁월한 비유가 섞인 인문학 탐사 다큐멘터리다. 11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고, 출간 이래 아마존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 왔다. 공포영화의 거장 웨스 크레이븐이 <악령의 관>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는 TED 강연에서 10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유명 민속식물학자다."  

 

 

'민속식물학자'란 직함이 특이한데, 실제로 저자의 전공분야가 그렇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그는 "원시문화를 아직 밝혀내지 못한 인류의 잠재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원시부족들은 여전히 동물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식물로 치료"하기 때문이다. 좀비 문제를 다루게 된 것도 그러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겠다.

 

아무튼 제목대로 '좀비'에 관한 흥미로운 인류학적 탐사 보고서로 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좀비가 아이티의 식민주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도 관심이 간다. 배경 설명은 이렇다.

1982년 초, 웨이드 데이비스는 죽었던 사람이 좀비로 되살아났다는 뉴스를 파헤치기 위해 좀비의 고향 ‘아이티’로 급파된다. 하버드에서 인류학을 공부하던 저자는 좀비 독약에 주목하고 위험천만한 과정을 겪으며 독약 제조법을 입수한다. 그러나 좀비와 관련된 진실은 간단치 않았다. 좀비는 법을 위반하지는 않지만, 이웃에 해를 끼치는 인물을 처단하는 수단이었다. 그것은 재판의 결과에 따른 형벌이었고, 재판의 집행자는 아이티 정부 조직과 별개로 공공연히 활동하는 비밀조직이었다. 비장고 등 비밀조직은 아프리카에서 강제 이주당한 아이티 흑인들이 저항했던 역사 속에서 파생된 것이다.

 

해서 '좀비' 계열의 책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아이티의 식민주의 역사와 해방운동을 배경으로 해서 읽을 수도 있을 듯싶다.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 <블랙 자코뱅>(필맥, 2007). <식민주의 흑서>(소나무, 2008) 등을 같이 떠올리게 되는 이유다.

 

 

 

한편 저자 웨이드 데이비스의 책으론 <세상 끝 천 개의 얼굴>(다빈치, 2011)과 <시간 밖의 문명>(무우수, 2006)이 더 소개됐었다(<시간 밖의 문명>은 절판된 듯하다. 원제는 <태양 아래 그림자들>). <세상 끝 천 개의 얼굴>은 책을 구하고도 무심히 넘어갔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다시 찾아봐야겠다. 소위 '인종권'을 다룬 책이다.

세계적인 인류학자이자 민속식물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의 책. 그가 40여 년의 세월 동안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세상의 오지들을 탐험하며 생태의 신비와 문화의 다양성을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다양한 저술의 결정을 심도 있는 에세이로 풀어낸 독보적인 기록이다. 아마존의 열대림과 안데스의 산악지대부터 아이티의 보둔교, 말레이시아의 원시림, 북아프리카의 사막과 눈 덮인 티베트, 그리고 북극지방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능숙한 필치와 시선을 압도하는 사진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는 일찍이 알지 못한 경이로움과 비극이 펼쳐지는 세상 끝에서 ‘인종권(ethnosphere)’을 만난다.

 

두번째 저자는 정유정이다. 이미 <28>(은행나무, 2013)이 독자와 만나고 있는데, '좀비'라는 말 때문에 떠올리게 됐다. 소위 '문단문학' 바깥의 가장 '핫'한 작가의 이번 소설은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에서 28일간 펼쳐지는, 인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존을 향한 갈망과 뜨거운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아직 보진 않았지만 대니 보일의 좀비 영화 <28일 후>를 떠올려준다. 왜 하필 28일일까? 혹은 전염병이란 소재에 한정하면 카뮈의 장편 <페스트>도 연상해볼 수 있다. 한국문학에서는 흔치 않은 소재인지라 이 뚝심 있는 작가가 어떻게 써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세번째 저자는 장편 <로베스피에르의 죽음>(문학과지성사, 2013)의 저자 서준환. 2001년에 등단해 <너는 달의 기억>, <고독 역시 착각일 것이다> 등의 소설집을 펴냈고 장편소설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이어서 두번째로 보인다. 제목이 특이한데, 더 특이한 건 '로베스피에르'가 그 프랑스혁명의 주역 로베스피에르라는 점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전기와 프랑스혁명사를 재료로 삼아 쓴 소설(나는 이런 소설이 '한국소설'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는다. '한국어 소설'과 '한국소설'이 다르다면 말이다). '한국소설'이 아닌 그냥 '소설'로 읽으면 될 터인데, 구성은 또 서막과 에필로그가 포함된 3막 드라마이다. 

 

 

 

여러 모로 독일의 천재 극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데, 발문을 쓴 장정일 작가도 자연스레 두 작품과 두 인물, 로베스피에르와 당통을 비교하고 있다(이번 가을에 예술의 전당에서 <당통의 죽음>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작가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제대로 음미하자면 이것저것 공부할 게 많은 소설이다. <당통의 죽음>을 읽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프랑스혁명사를 바탕으로 로베스피에르의 전기와 그의 사상까지도 학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에 관한 책은 드물지 않은데,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주명철 교수의 <오늘 만나는 프랑스혁명>(소나무, 2013)이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의 전기는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교양인, 2005), 그의 혁명관에 대해서는 지젝이 서문을 쓴 <로베스피에르: 덕치와 공포정치>(프레시안북, 2009)를 참고할 수 있다. <덕치와 공포정치>는 현재 절판된 상태인데, 지젝의 서문은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도 읽을 수 있다. 고른 건 세 명인데, 읽을 책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

 

13.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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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와 몽테스키외, 너무도 친숙한 이름이지만, 그래서 어지간한 책들은 소장하고 있지만 나로선 좀처럼 손에 들지 못하는 저자들이다. 데카르트의 <정념론>(문예출판사, 2013)과 몽테스키외의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사이, 2013)가 비슷한 시기에 번역돼 나왔기에 같이 묶었다.

 

 

데카르트의 더 중요한 저작은 물론 <방법서설>이나 <성찰>일 테지만, 마지막 작품 <정념론>까지 붙여야 왠지 '트로이카' 기분이 난다. 문예출판사판이 실제로 그렇게 구성돼 있다. 이현복 교수가 옮긴 <방법서설>과 <성찰>은 1997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 전이다. 이번에 나온 <정념론>도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데카르트를 전공한 김선영 박사가 옮겼다. 원제를 직역하면 <영혼의 정념들>인데, <정념론>이라고 굳어진 제목도 본 뜻에 어긋나지는 않는다고.

 

 

 

<정념론>은 물론 처음 번역된 건 아니다. 동서문화사판과 삼성출판사판에 <방법서설>, <성찰> 등과 같이 묶인 전례가 있다.

 

 

데카르트의 핵심 저작으론 <철학의 원리>(아카넷, 2002/2012)와 <성찰>(나남, 2012)가 더 있다. 나남판 <성찰>이 두 권 분량이나 되는 것은 "우리가 보통〈성찰〉이라고 부르는 본문만 출간된 것이 아니라 초판에는 카테루스, 메르센, 홉스, 아르노, 가상디 등의 학자들이 제기한 6개의 반론과 이에 대한 데카르트의 답변이, 재판에는 부르댕의 반론과 이에 대한 데카르트의 답변 그리고 디네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가 추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풀버전이라고 할까. 여하튼 문예출판사판 세 권과 아카넷판 <철학의 원리>, 나남판 <성찰>까지 마련하면 데카르트 컬렉션은 얼추 갖춰진다.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다른 번역본으론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범우사, 2007)이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현재는 절판). 몽테스키외의 핵심저작은 물론 삼권분립론을 주창한 <법의 정신>이지만, <페르시아인의 편지>(다른세상, 2002)까지는 국내에 소개돼 있다(예전에 사상전집에 포함됐었다). 이 역시 지금은 절판된 상태.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어떤 책인가.

<페르시아인의 편지>(1721년), <법의 정신>(1748년)과 함께 몽테스키외의 3대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은 1734년에 <로마의 흥망성쇠에 대한 원인 고찰론>이란 제목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출간되었으며, 이 책으로 그의 이름이 유럽 전체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의 멸망에 대해 일반적 통설과는 다른 이유를 제시한다. 즉 로마는 내부의 '분열과 혼란' 때문이 아니라, 정복사업으로 인한 '번영'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에드워드 기번과 테오도르 몸젠의 책 등 로마사 관련서들이 다수 소개되고 있는 즈음이라 같이 읽어볼 만하다.

 

 

문제는 법학도들의 필독서라고도 하는 <법의 정신>의 정본 번역본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동서문화사판과 홍신문화사판 정도가 번역본이고 책세상판 발췌역 정도가 나와 있다. <법의 정신>을 대중교양서로 읽고 '법의 정신'을 분명히 밝히는 걸 별로 달갑지 않아 하는 세력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직도 말로만 '고전'으로 회자되는 건 좀 유감스럽다.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대한다...

 

13.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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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먼저 프랑스의 역사가 미셸 페로. 특히 여성사의 권위자인데(조르주 뒤비와 함께 <여성의 역사>의 책임편집자였다), 이번에 나온 책은 2009년에 펴낸 신작 <방의 역사>(글항아리, 2013)다. 소개는 이렇다.

 

 

조르주 뒤비와 함께 <사생활의 역사>(1985~1987) 총서 작업을 주도한 프랑스 역사학자 미셸 페로의 기념비적 역작이자 2009년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한 <방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간의 거처로서 방(침실)이 변모해온 역사와 다채로운 이야기와 이미지를 아우른 최초의 역사서다. 

눈길을 끄는 표지와 함께(공공장소에서 손에 들기는 쉽지 않겠다) 독서욕을 자극하는데, 반 고흐의 방 그림을 쓴 원서의 표지는 점잖은 편이다(이 정도면 물론 길거리에서도 들고 다닐 수 있을 터이다).

 

 

아무려나 묵직하면서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역사서가 출간돼 반갑다. 같이 나온 책은 미셸 페로 외 세 명의 여성 학자가 같이 쓴 <인문학, 여성을 말하다>(이숲, 2013)이다. 정확하게는 니콜 바샤랑(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이 프랑수아즈 에리티에(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 실비안 아가생스키(철학자), 미셸 페로와 나눈 대담집이다. 아래가 원서의 표지.

 

 

미셸 페로 외에 눈길을 끄는 대담자는 실비안 아가생스키인데, 폴란드 이민 2세로 자크 데리다와 한때 연인관계였으며(둘 사이엔 아들이 있던가 그렇다) 나중에 정치인 리오넬 조스팽과 재혼한 철학자다.

 

 

여담 삼아 덧붙이자면, 최근에 프랑스 철학이나 문화 관련서가 한꺼번에 여럿 출간됐는데, 대표적으론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철학은 전쟁이다>(사람의무니, 2013), 올리비아 가잘레의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레디셋고, 2013), 그리고 일레인 사이올리노의 <프랑스 남자들은 뒷모습에 주목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13)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 책의 원제는 <유혹>이고, 아래가 그 표지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계 프랑스 작가로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오싱젠. 그의 창작론 <창작에 대하여>(돌베개, 2013)가 출간됐다. 부제는 '가오싱젠의 미학과 예술론'.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곤 하지만 대표작 <영혼의 산>(북폴리오, 2005; 현대문학북스, 2001)이 이미 절판됐을 정도로 국내에선 별로 존재감이 없는 작가인데, 이번에 나온 창작론은 과대평가된 작가라는 평판을 재고하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가오싱젠의 책으론 <피안>(연극과인간, 2008), <버스 정류장>(민음사, 2002) 등의 희곡집도 소개돼 있다.

 

 

끝으로 베스트셀러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지만, 이번주에도 한 권 더해졌다. <마음의 눈>(알마, 2013). 색스의 책은 다방면에 걸쳐 있고 중복출간된 것도 몇 권 되기 때문에, 누가 깔끔히 정리를 해줬으면 싶은 저자 가운데 하나다(핵심 저작이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읽을 수 있다든가 하는 안내 말이다). 아래는 <마음의 눈>의 원서 표지.

 

 

<마음의 눈>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말하는 능력, 읽는 능력, 시력, 얼굴과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 이것들이 없는 삶을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다. 올리버 색스는 이 필수적인 감각들을 잃고도 세계를 항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놀라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환자들의 특별한 사례와 함께 올리버 색스 자신의 경험 또한 소개한다." 색스의 독자들에겐 아무려나 반가울 법하다...

 

13.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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