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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로 개장한 교보에 들렀다가 손에 든 책은 이재현의 <두더지 지식클럽>(씨네21북스, 2010), 크리스토퍼 베하의 <하버드 인문학 서재>(21세기북스, 2010), 그리고 새로 번역돼 나온 루소의 <사회계약론>(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등이다.  

 

<두더지 지식클럽>은 몇년 전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가상인터뷰 '대화'를 모은 것으로, 기억에 두어 편은 이 블로그에도 옮겨놓은 듯싶다. <하버드 인문학 서재>의 원제는 '5피트 책꽂이'. 40년간이나 하버드대 총장을 역임했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이 "5피트 책꽂이면 몇 년 과정의 일반교양 교육을 대체할 만한 책을 충분히 담을 수 있다"는 평소 신념에 따라 1909년에 펴낸 것이 50권짜리 <하버드 클래식>(별명이 '5피트 책꽂이'라고)이라고 한다. 외할머니가 갖고 있던 이 전집을 저자가 1년간 읽어나가면서 쓴 독서노트가 <하버드 인문학 서재>다. 블로그에 연재했으니 일종의 '블룩'이다. <사회계약론>이야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텐데, 조만간 서울대출판부본과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이번주 리뷰까지 참고했다면 두 권 정도는 구매 리스트에 더 포함됐을 텐데, 하나는 콜린 캠벨의 <낭만주의 윤리와 근대 소비주의 정신>(나남, 2010)이다. 물론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패러디한 제목이다.   

눈길을 끄는 제목이어서 오래전에 원서를 구해놓고 읽어보진 않았는데, 이번에 학술명저번역 총서의 하나로 나왔다. 그 정도로까지 명망이 높은 책인 줄은 몰랐다. 여하튼 원서는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번역본은 구해볼 참이다.  

그리고 또 한 권은 롤프 데겐의 <악의 종말>(현문서가, 2010). 저자는 독일의 심리학자로 <오르가슴>(한길사, 2007)의 저자이기도 하다. 생소한 저자인 줄 알았더니, <오르가슴>은 나도 소장하고 있는 책이다. 제목이 왜 '악의 종말'인가? 그건 저자가 "악에의 충동이란 없앨 수 있는 본능"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진화생물학적 발견에 주목한다. 먼저 공생 관계를 비롯, 비혈연간의 호혜적 이타주의 등 동물의 행태에서 발견되는 특성들이 인간의 진화 프로그램에 내장됐다고 그는 주장한다. 나아가 교환과 상호 행위에서 관계를 현성해나가는 인간의 경우, 정의와 공정성 등 특유의 가치평가적 요소들도 자연이 미리 각인해놓은 감정적 반응 기제에 따라 예민한 감각을 발전시켜 나온 결과라는 것이다. 동물적 감정이 없으면 인간적 도덕도 없다는 이 책의 명제가 그래서 나온다.(한국일보)

악이라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형이상학이 아니라 진화생물학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악의 종말'은 아무려나 희망적인 결론이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저자존 그레이가 끌어내는 결론과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책은 원서도 주문해놓았기에 독서를 조금 미뤄두고 있는데, 원서와 함께 주문한 책이 <자유주의>(성신여대출판부, 2007)이다. 같은 시기에 <자유주의>(이후, 2007)라고 번역본이 하나 더 출간됐었는데 지금은 절판된 걸로 보아 저작권 계약이 불명확했던 모양이다. 저자 존 그레이는 2008년까지 런던 정경대학의 유럽 사상 교수로 재직했던 정치철학자이고, 내가 <호모 라피엔스>에 주목한 건 <자유주의>의 저자이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에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種)이라는 점"이라는 데서 출발해, 서구 문명의 토대인 휴머니즘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여기서 휴머니즘이란 진보에 대한 믿음, 즉 인간이 발달하는 과학지식을 활용해 동물은 벗어나지 못하는 제약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킨다.(한국일보)

그런 면에서는 <악의 종말>과 통하는 점도 있을 듯싶다. 악과 자유의지의 문제라면 프란츠 부케티츠의 주제이기도 한데, <우리는 왜 악에 끌리는가>(21세기북스, 2010)와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열음사, 2009)가 같이 참고할 만한 책이다. 빨리 서가 정리가 돼서 이런 책들이 한데 모아져 있으면 좋겠다... 

10. 09. 04.  

P.S. 새로 개장한 교보는 약간의 볼거리를 제공해주긴 했지만,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게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검색이 불편했고, 몇 권 찾는 책도 모두 재고가 없었다. 구하려던 책의 하나는 리타 펠스키의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여이연, 2010)이었는데, 아직 입고되지 않았다고 했다. 펠스키는 <근대성의 젠더>(자음과모음, 2010; 거름, 1998)를 쓴 페미니즘 비평가다.   

그래도 수확이라고 할 만한 건 바디우의 <공산주의적 가설>(2010) 영역본을 구한 것. 알라딘에는 들어와 있지 않아서 따로 주문을 하려고 했던 책인데, 마침 교보 외서코너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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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09-04 18:02   좋아요 0 | URL
교보문고는 멜로디스라도 좀 어떻게 안 해주나요? ㅜㅜ

로쟈 2010-09-04 18:42   좋아요 0 | URL
교보의 상징물 아닌가요?..

자꾸때리다 2010-09-04 20:20   좋아요 0 | URL
맛두 없구 비싸염 oㅅo

blanca 2010-09-05 11:0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이번에 재개장할때 댓글에 멜로디스 얘기가 나와서 아,,,이젠 좀 달라지겠구나 했지만 여전히 건재하더라구요--;;

yamoo 2010-09-04 20:57   좋아요 0 | URL
저는 신간이 아니라 옛날에 출간된 책을 찾으러 돌아다니는지라..ㅎㅎ
사회계약론은 4개본이 있었는데, 오늘 박영문고본이 눈에 띠어 사왔습니다. 근데, 번역이 어렵게 돼 있더군요...급실망...그럼에도불구하고 좋았던 것은 포켓에 들어갈 정도로 작기 때문에..ㅎㅎ

이 박영문고가 열댓권 있는데요...절판이라서 구하기가 넘 어려운거 같습니다..간혹가다 번역 잘된 고전이 있던데...사회계약론은 아니네요~ 펭귄클래식본을 함 보고 번역 잘됐으면 냉큼 사야 게습니당~~ㅎㅎ

교보문고가 새단장 했다는데...시간되면 가봐야 겠어요~

알비스 2010-09-05 06:27   좋아요 0 | URL
방곤 역/신원문화사의 사회계약론은 가지고 계신가요?
저도 펭귄 것과 비교 중인데, 방곤 역이 괜찮으면 그냥 그것으로 구입할 까 합니다. 펭귄 것은 직역인지 중역인지 불분명해서.

로쟈 2010-09-05 08:11   좋아요 0 | URL
펭귄판도 불어 번역이고 역자는 <에밀> 번역자입니다.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던 책 가운데 마르트 로베르 여사의 책 두 권,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동문선, 2003)과 <정신분석 혁명>(문예출판사, 2000)을 어제 입수했다.    

 

<정신분석 혁명>은 나중에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문예출판사, 2007)이란 제목으로 재출간된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려다가 아무래도 자세히 읽어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영역본도 모두 구했다. '여사'라고 붙인 건 마르트 로베르가 1914년생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어에서 찾아보니 지난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언급하고 말았는데, 로베르는 프랑스의 문학이론가이자 독문학자로 특히 프로이트와 카프카 전문가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고 하며, 두 권의 카프카 평전을 쓰기까지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은 1969년작이며, 3년 뒤에 그녀는 걸출한 소설론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문학과지성사, 1999)을 출간한다(알라딘에는 영어본 대신에, 짐작으론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과 <정신분석 혁명>의 스페인어본만 뜬다). 기원을 찾자면,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이란 책의 존재는 김현의 김원일론('이야기의 뿌리, 뿌리의 이야기')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아마도 '마르트 로베르'란 이름도 같이(성별에 크게 주의하지 않아서 나는 저자가 막연히 남자인 걸로 알았었다).

   

두 주 전인가 갑자기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이 생각나서 좀 들춰보다가 그녀의 카프카론도 이 참에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좀더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 영역본들까지 수소문했다. 다행스럽게도 모두 구할 수 있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옛것과 새것>(1963)이란 문학론집을 구하지 못한 것.'돈키호테부터 카프카까지'가 부제이며 영역본은 1977년에 나왔다. 내년 가을쯤 강의를 위해 <돈키호테>를 읽어볼 계획인데, 그때까지는 구해봐야겠다(일부는 구글에서 읽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의 원제는 '프란츠 카프카처럼 고독한' 정도인데, 구스타프 야노우흐와의 대화(<카프카와의 대화>) 한 장면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런 장면이다. 

"그렇게까지 고독하신가요?"하고 내가 물었다.
카프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파르 하우저처럼 말입니까?"
카프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보다 더하지요. 난 프란츠 카프카처럼... 고독합니다." 

 

한때 카프카 관련서들을 상당량 모았었는데, 근년에는 좀 뜸했다. 카프카에 관한 글도 준비할 겸 다시 좀 챙겨야겠다. 갖고 있는 책들이나 제자리에 모아놓는 게 더 먼저여야겠지만... 

10. 0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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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3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3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4 0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7-23 09:10   좋아요 0 | URL
<정신분석 혁명>은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절판되어 구하지 못해서 섭섭한 상태였는데, 이 책이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과 같은 책이라니 반갑네요. 역시 로쟈님 서재에서 정보를 얻는군요.^^

로쟈 2010-07-24 00:35   좋아요 0 | URL
그냥 검색만 해봐도 바로 아실 수 있는 건데요.^^;
 

저녁에 당일배송으로 받은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 펭귄판 원서(2010)와 50% 할인 중인 어슐러 르귄의 <어둠의 왼손>(시공사, 2009), 그리고 영국의 여행기 작가 콜린 더브런의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까치, 2010)다.  

  

더브런의 책은 큰 기대 없이 '시베리아' 여행기라고 하기에, 그리고 마침 당일배송이 되기에 주문한 책인데, 의외의 수확이다. 몰랐지만 저자는 '금세기 최고의 여행기 작가'로도 불리는 인물이고 책은 그의 '최고작'이란 평판도 얻고 있다. 오늘자 한겨레의 '잠깐독서'에서는 이렇게 소개됐었다.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미국과 알래스카를 합한 땅보다 더 큰 시베리아의 역사와 문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담고 있다. 지은이는 우랄산맥의 동쪽 시베리아가 시작되는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출발해 동북쪽 항구도시 마가단에 이르기까지 동서남북 1만2천㎞를 누비며 시베리아를 넓고 깊게 담았다.
책은 잿빛이다. 유배, 수용소, 강제노동, 죽음 등의 단어로 상징되는 역사에다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민초들의 육성이 생생하게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여행 당시 러시아는 소련 해체 직후여서 극심한 혼란과 빈곤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었다. 몇달째 월급을 받지 못한 공무원,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잔뜩 화가 난 과학도시의 행정책임자, 일자리가 없어 절망하는 젊은이 등. 러시아정교회의 한 신부는 가난과 혼란을 공산당 통치기인 ‘잃어버린 70년’에서 찾았다. 텅 빈 도시 중심가를 오가는 실업자, 주정뱅이, 성매매를 권하는 여성, 그리고 러시아의 새로운 지배자로 부상하는 마피아 등은 옐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럼에도 책은 재미있다. 박학다식과 글솜씨는 비운의 역사를 흥미진진한 영화나 드라마로 바꿔놓는다. 독자들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비극적 종말을 보고, 중서부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도크에서는 미국을 넘어 세계 제일 강국을 꿈꾸던 소련의 야망을 만난다.

하지만 잠깐 읽고 말 책은 아니어서 책을 손에 드니 부듯하다. 내친 김에 작년에 소개된 <살아있는 길, 실크로드 240일>까치, 2009)도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저자의 '뒷조사'를 좀 했다. 그건 그의 전작 가운데 <러시아인들 사이에서(Among the Russians )>(1983)가 포함돼 있었기 때문.   

애초에 <다마스쿠스의 거울>(1967), <예루살렘>(1969) 등 중동지역 여행기로 작가의 대열에 선 더브런은 러시아와 중국, 중앙아시아 쪽으로 관심지역을 점점 넓혀갔다. 러시아 지역에 관해서는 소위 '스탄' 지역 여행기 <아시아의 잃어버린 심장>(1994)도 쓴 바 있다. <러시아인들 사이에서>와 <시베리아>(1999)까지 포함하여 그의 '러시아 3부작'이라고 해도 좋겠다.   

  

'컬렉터'의 욕심은 이럴 때 발동하는 것이어서 미국에 가 있는 후배에게 더브런의 책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알라딘에서 구할 수 없다). 중고서점에는 1-2달러에도 나와 있을지 모르기에. 그리고는 내심 올 여름 휴가지를 시베리아로 정했다.

  

제임스 포사이스의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솔출판사, 2009)와 김창진 교수의 <시베리아 예찬>(이룸, 2007), 그리고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예프의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도 아직 안 읽은 책이다(어디다 둔 것일까?). 이 정도만 돼도 시베리아 여행 기분은 충분히 낼 수 있겠다.   

그러고 보니 리처드 워릭의 <시베리아에서 온 엽서>란 책도 올 여름 근간 도서다(나는 번역 초고를 읽고 있다). 이렇게 다 읽고 나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시베리아가 그리 낯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안녕, 시베리아?..  

10. 07. 17. 

P.S. <순수와 구원의 대지 시베리아>의 역자는 '역자 후기'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이 나오는 때가 마침 한여름인지라, 독자들이 이열치열이 아니라 시베리아의 엄동설한으로 제대로 한더위를 이기는 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번역자는 자위한다." 

적어도 나에겐 역자의 바람이 헛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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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컬렉션'이란 카테고리를 얼마전에 만들어놓고 따로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 이게 '컬렉션'이니만큼 남들이 안 갖고 있을 법한 책을 구해놓고 '자랑질'을 해보겠다는 심사 혹은 계산으로 하나 더해놓은 것인데, 파리만 날리는 걸 보면 자랑할 일이 꽤나 드물다는 반증이다. 사실 없는 건 아니었다. 처음엔 보부아르의 자서전 얘기를 적어놓으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치면서 흐지부지됐을 뿐이다. 너무 적조하다 싶어서, 억지로 하나 끼워넣는다. 어제 구입한 빅토리아 알렉산더의 <예술사회학>(살림, 2010) 얘기다.   

저자의 머리말과 역자의 말('옮기고 나서')를 읽다 보니, 소프트카바의 책으론 비교적 '고가'인 이유가 '교재용'이어서 그런가 보단 생각이 들었다(독자가 한정돼 있을 경우 책값은 올라간다). 머리말의 첫머리가 이렇다. 

나는 지금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예술사회학에 대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학생들은 매번 내가 수업에서 다룰 내용을 개략적으로 한 권에 담은 교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요청에 부응하여 하나 써주신 것. 하버드대학 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리(Surrey) 대학교 부교수로 재직중이라는 저자는 아직은 이 분야의 소장학자로 보인다. 다만 이 분야의 연구성과나 최신 동향, 소위 '최전선'에 대해 알려주지 않을까라는 게 나의 기대다. 특이사항은 저자가 조직사회학자이기도 하다는 것. 학부 때 내가 들은 사회학 강의의 담당교수는 '범죄사회학'과 '종교사회학'을 번갈아가면서 강의하던 분이었는데(그래서 나는 '종교=범죄'라고 서로 통하는 게 있구나 싶었다. 아니면 범죄자들을 종교로 구원한다는 뜻이었을까?), 알렉산더의 경우는 '예술사회학'과 '조직사회학'을 동시에 혹은 교대로 강의하는 모양이다.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일까? 저자는 나름대로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나는 조직사회학도 강의해왔는데, 이때 배운 한 가지는 학생들이 추상적인 이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이끄는 사례 연구의 중요한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 효과적인 교수법이라는 점이다. 사례 연구는 일이나 직업, 그리고 조직 행위를 가르치는 데 필수적이지만 사회학의 다른 하위 분야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조직사회학 강의를 하면서 사례 연구의 유용성을 확신하여 이를 예술사회학 수업에도 적용했는데 역시 사례 연구는 효과적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에는 장마다 사례 연구가 덧붙여졌다는 얘기. 최근의 화제작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 2010)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례의 제시는 강의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면서 학생들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저술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기대해봄직하지 않은가. 국내에서도 인문서 저자들이 적극 고려해볼 문제다.   

한편, 옮긴이의 말에선 이런 대목을 읽을 수 있다. 공역자의 한 사람인 이대 사회학과의 최샛별 교수가 적은 것이다(문화론과 문화사회학 분야의 역서들이 몇 권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수업 '예술사회학'에서 사용했는데 주교재로도 손색이 없었다. 학부 교양과목으로 '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수업을 개발하고 담당하면서 내용의 일부를 다루었더니 다양한 전공을 지닌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이 이루어졌다는 얘기. 부제대로 '순수예술에서 대중예술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인데, 역자는 사회학자로서의 바람도 덧붙인다.  

그동안 예술은 미학에서 주로 작가와 작품에 주목하여 그 심미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다루어 왔다. 역자들은 사회학이 예수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유용한 시각을 제공하기를 소망한다.

사실 원론적인 바람이긴 하나 소개되는 책이 적으니 여러 몫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무튼 예술사회학 교재 하나는 확실히 마련된 걸로 쳐도 좋겠다... 

10. 07. 16.     

P.S. 사소한 교정사항 하나를 덤으로 적어둔다. 속표지 저자 소개에 빅토리아 D. 알렉산더 교수의 저작이 <미술관과 자본>(2005)과 공저 <예술과 국가>(1996)라고 소개되는데, 두 저작의 출판년도가 바뀌었다. <미술관과 자본>(1996), <예술과 국가>(2005)라고 해야 맞다. <예술사회학>(2003)의 후속작으로 메릴린 루시마이어와의 공저인 <예술과 국가>는 흥미를 끄는 책이다. 이걸 구했다면 제법 '자랑질'이 됐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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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7-16 01:30   좋아요 0 | URL
오늘 랑시에르의 <미학 안의 불편함>을 '잠깐' 열어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역자 소개로는, 랑시에르가 기존의 예술이 정치적 위계화-감성의 분할에 묶여 있음을 비판했다고 하던데요... 긴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얘기였는데요, 로쟈님 페이퍼를 읽으니 낮의 잠깐이 떠오릅니다. 저도 엄청 땡기는데요... <예술과 국가>도요...^^ 사례의 풍부함은 태도들의 풍부함, 유머 감각의 함양으로부터 가능한 거라서... 그야말로 '문화적 여유'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엄청 콤플렉스 느끼는 부분입니다. 아마 샌델의 '정의'가 호소력 있었던 것은 그런 여유로운 화법에 대한 갈증, 부러움 등등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로쟈 2010-07-16 09:04   좋아요 0 | URL
샌델의 책만 유독 그런 건 아니고 철학서들이 기발한 사고실험이나 사례들을 많이 동원하지요. 그쪽 '문화' 같기도 해요.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고리타분한 책이 많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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