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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에밀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불평하는 것은, <테레즈 라캥>을 읽으면서 얼굴을 붉히는,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은, 점잖은 저널리스트들 때문이 아니다. 만약 그들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얼굴이 더욱 붉어졌어야 하리라.... ...성실한 문필가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외치는 지도 모르는 채 타락에 항의한답시고 외쳐대는 것을 듣는 것만큼 화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서서 나의 판단자들에게 내 작품을 소개해야만 하겠다. 나는 몇 줄로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오해될지도 모를 미래를 피하기 위하여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은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학살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한을 촉구해햐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나는 그것을 시인한다. ....(중략).... 영광스럽게도 내가 속해 있는 자연주의자 문필가 그룹은 스스로에 대한 옹호를 담고 있는 강력한 작품들을 생산하기 위한 충분한 용기와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한 소설가가 서문을 쓰도록 강권하려면 모든 사람들이 몇몇 비평가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편들어야 한다. 명확함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나는 그러한 작품 한 편을 쓰는 실수를 저질렀다. 명확하게 보기 위하여 대낮에 램프를 밝힐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지식인들의 사과를 요구하는 바이다.
위 글은 이 소설의 초판이 발간된 이후 많은 비평가들의 잘못된 비평에 대한 자기 변호를 담고 있다. 얼마나 화가 치밀었으면, 2쇄때 이런 글을 앞에 서문으로 달았겠는가... 당시 프랑스사람들은 프랑스혁명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혁명전쟁의 패배와 프랑스 제2공화정, 제2제정, 그리고 제3공화정의 시기를 산 작가는 아픈 사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의 내면적인 본질적 심리표현으로...
박찬욱 감독은 '박쥐'에서 이 모티브를 가지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까발렸다. 당시 송강호의 나체연기, 김옥빈의 몸매... 등등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를 자극시킨 영화평론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테레즈라캥이란 소설에서 이 영화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외국인이 감독에게 질문하게 될때 까지 알고 있었는지???
내가 잘못 안 것이 분명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나라의 영화평론가들은 너무도 미천한 독서량으로 우리를 우롱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평론하겠는가? 고만고만한 도토리들 끼리 서로 재는 문화계가 아님을 바랄 뿐이다.
이 책의 내용은 너무도 감각적이면서도 너무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가 드레퓌시사건에서 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대통령에게 보내게 되었는지 알겠다.
가스사고로 애석한 죽음을 맞은 에밀 졸라의 명복을 빈다.
2012.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