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 2 강풀 순정만화 5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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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풀 만화를 다음에서 이미 보았는데, 결국 책으로 나온 뒤 다시 구입하고 말았다.  그냥 기억속에서만 저장해두긴 너무 아까워서.

강풀은 참 특이한 사람이다. 남자 만화가임에도 순정만화를 썼고, 제목도 '순정만화'였다. 게다가 그 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란 그야말로 순정틱해서,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허를 찔린 느낌으로 그의 작품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뿐이던가. 그의 다른 작품들 중에는  'ㄸ ㅗ ㅇ'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들도 있었고, 공포 만화도 있고, 이제는 사회/역사적 고발성이 짙은,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주제도 다루고 있다.

여러 장르를 모두 도전하고 진지하게 접근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래도 첫단추가 중요하다고, 내게는 처음 그를 알게 한 이 '순정만화'가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띠동갑 두 연인은 나이 차이만큼이나 서로 다른 성격을 가졌고, 환경을 가졌고,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게 되니 서로 달랐던 그들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그 모든 관계에 변화가 발생한다.

거기에 용기가 발생하고 포용이 생기고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까지 동반한다.  그들이 나누고 있는 사랑은 너무 예쁘고 이상적이어서 제목처럼 순정만화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강풀 작가의 섬세함은 단순히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 개연성을 허락해주었다.

작품 속에서 띠동갑 연인, 연상연하 커플, 생활고로 이별을 맞이했으나 다시 새 사랑을 찾아가는 커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사랑에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강풀하면 빠질 수 없는 장점! 배꼽 빠지게 웃게하는 위트가 작품 전체에 배어 있어 시종일관 무겁지 않게 즐겁게 작품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현재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공연되고 있으며, 이벤트 당첨으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작품의 소소한 부분들의 섬세함은 못 좇아가지만,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활용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작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이제 그의 작품 아파트가 곧 영화로 개봉할 텐데, 그 작품은 어떻게 나올 지 기대가 된다. 공포 영화를 보지 못하는 까닭에 극장에서 보기는 어렵겠지만, 입소문 정도는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강풀, 이젠 그 이름만으로도 참 많은 기대감으로 다가서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따뜻한 작품 순정만화를 적극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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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 테마로 읽는 20세기 한국사
KBS다큐멘터리해방제작팀 지음 / 청년정신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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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45년, 오매불망 기다렸던 민족의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해방된 조국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었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소련이 들어서고 결국 우리는 분단을 맞이했고 서로를 바닥까지 떨어뜨리며 전쟁을 치렀다. 그후 온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무리한 개발을 했고,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후유증이 지금 속속들이 등장하고있는 중이다.

이 책은 그때 우리가 해방을 맞이했지만 결국 해방되지 못한 열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1. 땅으로부터 해방
2. 무지로부터 해방
3. 식민으로부터 해방
4. 독재로부터 해방
5. 전쟁으로부터 해방
6. 성으로부터 해방
7.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
8. 빈곤으로부터 해방
9. 시간으로부터 해방
10. 반도로부터 해방

어느 것 하나 우리와 무관한 것이 없고 피해갈 수도 없으며 자유로울 수도 없는 굴레들. 상처를 치료한 줄 알았는데, 우린 채 아물기도 전에 상처를 강제로 봉합해 버린 것 뿐이었고, 때문에 안으로 상처가 곪아 시간을 다시 돌리지도,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면서 당황해하고 있다.

이 책이 쓰여진 것은 2000년도인데, 때문에 책의 각 주제가 끝날 때마다 이런 말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해방으로부터 50년, 우리는 진정 해방이 되었는가. 우리는 자유로운가?

그 짧은 한문장을 읽으면서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었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우리, 여기까지 오는 데에 너무 힘이 들었는데, 이제 쉬어도 될 것 같은데, 여전히 갈 길이 먼....

마치 마라토너가 절반 거리를 달리고 절반 거리가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만두자니 달려온 길이 너무 아깝고, 계속 달리자니 뛰어온 만큼 다시 달려야 하는 그 막막함.

손 놓고 있을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일임에도,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지내온 시간과 겪고 감당해 온 시간이 너무 가혹하고 서러워서 부드럽게 잘 읽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것이 참 힘들었다.

자그마한 포켓용 사이즈이고 재생지를 사용한 질감도 친숙해서 나는 참 좋았다.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었던 내용을 보완해서 책으로 냈다고 하는데 영상물로 보았어도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구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정말 멋진 책인데, 아쉽게도 알라딘에서는 내내 품절이다. 다른 서점에서 구입하기는 했는데, 좋은 책인만큼 재출간이 되어서 여기서도 다시 구입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바랬던 그 해방으로 더 가까이 다가갈까. 멈추지 않는다면, 분명 더 나아갈 수 있을 테지. 오늘도 노력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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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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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멜리 노통과 처음 만나게 했던 책. 독특한 제목과 서평들의 반응으로 구입하게 된 이 책으로, 나는 그후로도 꽤 오랫동안 노통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일단, 책이 무척 쉽게 넘어간다. 그리고 뒷부분이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따다다다 쏘는 말투는 사람에 따라 몹시 짜증나게 들릴 수도 있는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재밌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작품에서 오후 네시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그 이웃집 양반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서 나 자신이 어느새 화자가 되어 상대방의 방문을 불편해하면서 동시에 기다리는 입장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 주변에 그런 이웃이 있다면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와는 워낙 다른 문화이기도 하지만, 새로 이사를 가도 이웃과 인사 한마디 없이 대면대면 지내는 요즘의 세태와 비교해볼 때, 어쩌면 더 불쌍해진 것은 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노통의 작품을 읽으면서 종종 느끼게 되는 건데, 작품 속에서 한번쯤은 몹시 현학적인 말투로 전문 지식을 한바탕 쏟아부을 때가 있다.  그 부분은 그녀의 장점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그저 잘난척하는 분위기로 보일 때도 많았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내용도 많지는 않으니, 눈 딱 감고 뒤로 넘어갈 수 있다.

아멜리 노통은 파격적인 결말을 짓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 극단으로 치닫고야 마는 성미는 그녀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일지, 혹은 정신 세계를 반영하는 것일지, 하여간 그녀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그녀가 외계인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ㅡ.ㅡ;;;;

평범하고 아무 문제 없는 사람도 서서히 미치게 만들 수 있는 그녀의 놀라운 능력에 경탄하며, 마약과도 같은 글솜씨에 또한 감탄하며, 매번 욕하면서도 결국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나를 한탄하며,...

선택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니, 후회도 찬사도 모두 그대의 몫임을 잊지 말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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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 - 홍성태의 서울 만보기
홍성태 지음 / 궁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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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조선왕조부터 시작하면 600년이 넘었고, 백제 한성부터 시작하면 천년도 우습게 뛰어넘는다.  오래도록 사람들이 살아온, 그리고 사랑받아 온, 또 함께 굵은 역사를 새기어 온 유서 깊은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서울의 맛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뜻 대답하기가 힘들어진다.

일단, 수도라는 것? 그렇다면 수도여서 어떻다는 거지? 라고 물었을 때, 일단 편리하다는 것? 그래, 수도니까 그 정도야 당연하지.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리고 어물거리게 된다.

몇몇의 고궁이 있긴 하지만 그게 서울의 맛 다는 아닐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살았지만, 그 서울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를 지경이다.

그것은, 서울이 제 색깔 그대로, 제 모습 그대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급격한 역사 변화의 흔적을 온 몸으로 받아낸 탓에, 서울에서 백제의 흔적을, 조선의 흔적을 맛보는 일은 절대 수월치 않다.

무분별한 개발과 통제로 서울은 병들어 있다. 아직도 노른자 땅을 차지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그렇고, 미관은커녕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는 전깃줄, 무계획적이고 비윤리적인 개발로 인해 피해를 본 달동네... 그 문제점과 안타까운 점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서울의 병든 모습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지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이라는 것이 정책으로 연결되려면 이 책이 백만부쯤 팔려야 조금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ㅡㅡ;;;)

보면서 고개 끄덕이고 마음 아픈 부분들이 참으로 많았다. 저자는 친절하고 사실적인 사진들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극과 극을 치닫는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의 대비는 아찔할 지경이기도 했다.

홍순민씨의 우리 궁궐 이야기를 읽을 때도 생각했지만, 서울에 있는 고궁의 의미와 흔적을 제대로 살리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을 설파했는데, 서울은 역사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서울은 너무 팽창해 있다. 이대로는 터질 지도 모른다. 잠시 숨 고르고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서울은 더 이상 집중하지 않아도 충분히 포화상태이고, 이대로 내버려두어도 현상태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지방은 다르다. 지방은 도움이 필요하고 집중이 필요하다. 서울에 분산이 필요한 것처럼.

얘기가 조금 새는데, 서울의 참모습을 찾아내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저자는 왜 서울에서 서울을 찾는다고 했는지, 과연 찾을 수 있는지, 독자들도 직접 책을 보면서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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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노아 벤샤 지음, 공경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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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 있다.

뭐뭐뭐 하는 몇 가지 방법!

하룻밤에 읽는, 한권으로 읽는 무엇무엇무엇....

이런 제목들의 책은 너무 상업적이고 내용도 실망일 때가 많아서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필요에 의해서 보기도 하고 구입도 하지만, 안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리고 장르로 따지면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안 좋아한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도 참 별로였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도 정말 별로였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 때도 시큰둥했다. 뻔하겠지.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이겠어? 라는 비아냥도 섞어가며...

그래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니까 궁금하기는 했다. 어떤 내용인지.

이번에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실망스럽다면 "그럼 그렇지!"하며 내던질 요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이 너무 괜찮았다.

내 선입관과 편견이 부끄러워질 만큼.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 빵장수 야곱은 그가 사는 마을의 현자다.

그가 어떤 마을에 살고 있는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책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에게 어느날 한 아이가 맡겨진다.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야곱의 곁에서 그를 닮아가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현자가 되어 그를 촌장으로 맞아들일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야곱과 작별한다.

작품은 긴 시간을 뛰어넘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요나의 모습과, 그리고 더불어 발전해 가는 야곱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다.

작품을 보면서, 왜 '야곱'이고 왜 '요나'일까를 생각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만큼 많이 나오진 않는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보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형님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사들일 만큼 영악했고, 형님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였다. 자신을 죽이려드는 형님의 눈을 피해 하룻밤에 멀리 도망갈 만큼 겁도 두려움도 많았던 그는, 자신보다 한술 더 위인 사기꾼 장인을 만나 엄청시레 고생을 하며 아내를 맞이한다.

그의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열두 아들 중에 특별히 사랑했던 요셉은 형제들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그는 긴 시간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을 통하여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 . "내 나그네의 생이 130년이니 내 조상의 시간에 미치지 못하나, 험한 시간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한다.(조금 틀릴 지 모르겠지만 대강 저런 의미였다..;;;;;)

한마디로 야곱은, 흠도 많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이었던 사람으로 읽혀진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이 더 많이 나왔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 책에서 야곱이란 이름의 주인공은 현자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을 아는 겸손한 현자다. (겸손함을 알기에 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나일까?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하라는 명을 전하러 갔지만, 패악한 그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왜 그들을 구원해야 하느냐며 하나님께 항의하다가 고래 뱃속에 삼키워져 사흘간 암흑 속에 있게 된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서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만 그는 다시금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하룻밤새에 자란 나무의 그늘 아래서 편안함을 맛보던 그는, 벌레 한마리가 나뭇잎을 갉아 먹고 동풍이 불어와 뜨거운 기운이 닥치자 자신에게 고통을 준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한다. 그때 하나님은 하룻밤새에 얻은 나무 그늘에도 네가 억울해 하거늘, 저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만 사람이 내게 어떻겠느냐고 그에게 깨달음을 주신다.(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역시 정확한 설명인지 자신 없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였다..;;;;;)

작품 속의 요나가 딱 그랬다. 아직 어렸고 철없던 시절의 요나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야곱에게 항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야곱을 닮아간 그는, 자연스레 또 하나의 야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선문답같은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떠올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또 깨달음을 준다.  결국 불평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나오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남탓을 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워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한 부분은,

인생의 연륜이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며 겸손함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겸손함을 알지 못한 나이는 그 자체로 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씨리즈가 더 있던데, 몇편을 더 찾아서 읽어야겠다.

서평을 보니 반응들이 극과 극이지만, 결국 최종 판단자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할 테니. 이번엔 입소문보다 내 자신의 마음의 창에 더 자세히 비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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