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도 물가 상승 나름이다. 극심한 물가 상승은 해롭지만 (40%까지의) 적당한 물가 상승은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며, 심지어 급속한 성장 및 고용 창출과 양립할 수도 있다. 역동적인 경제에서는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가 변화하면 물가가 변하는 법이니,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새로운 경제 활동이 많은 경제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233쪽
낮은 물가 상승률은 노동자들이 이미 벌어 놓은 것을 더 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데 필요한 정책은 노동자들이 미래에 벌 수 있는 기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왜 그럴까? 물가 상승률은 낮은 수준, 그것도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엄격한 금융, 재정 정책은 경제 활동의 수준을 저하시킬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 수요의 감축, 실업 증대, 그리고 임금 감소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물가 통제는 노동자에게는 양날의 칼이다. ...... 물가 상승률의 하락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연금 수급자와 고정된 이율로 금융 자산에서 수입을 얻는 (금융 산업을 포함한) 경제 주체들에 한정된다. 이들은 노동 시장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물가 상승률을 낮추는 엄격한 거시경제 정책이 미래의 고용 기회나 임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반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은 오히려 더 잘 보호된다. -233쪽
개발도상국의 실업률은 실제 실업의 정도를 크게 낮아 보이게 만든다. 가난한 많은 사람들은 실업 상태로 남아 있을 여유가 없어 (거리에서 싸구려 물건을 팔거나, 문을 열어 주고 푼돈을 받는 일 따위의) 극히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를 통해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위장 실업'이라고 한다.-235쪽
지나치게 엄격한 통화 정책은 투자를 줄인다. 그리고 낮은 투자는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감소시킨다. 부자 나라들은 높은 생활수준, 관대한 복지 정책, 낮은 빈곤율을 달성한 상태이므로 이런 문제들이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절박할 정도로 더 높은 소득과 더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심각한 소득 불평등 문제를 대규모의 재분배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하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엄격한 통화 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일이다. -237쪽
부자 나라는 경제 후퇴기에 들어서면 대개 통화 정책을 완화하고 예산 적자를 늘린다. 개발도상국에 같은 일이 발생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실업이 세 배로 늘어나고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IMF를 통해 이자율을 불합리한 수준으로 올리고, 예산 균형을 유지하거나 아니면 거기서 더 나아가 예산 흑자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243쪽
아르헨티나 재무 장관 카발로가 개발도상국들은 '성장'이 필요한 '반항하는 10대'와 같다는 말은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른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그가 정말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10대는 교육을 받고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필요가 있다. 10대 청소년이 다 큰 어른인 것처럼 행동하며 저축을 늘리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이 이미 '다 큰' 국가들에게나 어울리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이 해야 할 일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이를 위해 개발도상국들은 부자 나라들이 사용하는 정책에 비해서 보다 투자 지향적이며 성장 지향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그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금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거시경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244쪽
자이레 : (지금은 콩고 민주공화국인) 자이레는 1961년에 연간 1인당 소득 67달러의 극빈국이었다. 모부투 세세 세코는 1965년에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1997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21년 동안 자이레를 주무르면서 50억 달러를 축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11억 달러였던) 1961년 국민소득의 4.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249쪽
인도네시아 : 인도네시아는 1961년에 연간 1인당 소득이 49달러에 불과한, 자이레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였다. 1966년에 모하메드 수하르토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여 1998년까지 통치했다. 그는 32년 동안 150억 달러를 축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일부에서는 그 금액이 3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자녀들은 인도네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사업가가 되었다. 150억 달러와 350억 달러의 평균치인 250억 달러는 48억 달러였던 1961년 국민소득의 5.2배에 해당한다. -249쪽
부패만을 기준으로 하면, 인도네시아는 자이레보다 경제 사정이 훨씬 더 나빴어야 했다. 그러나 모부투가 집권하는 동안 자이레의 생활수준은 세 배나 악화되었던 데 반해, 수하르토가 집권하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생활수준은 세 배 이상 향상되었다. ...... 이렇게 자이레와 인도네시아를 대비해 보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부정부패야말로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것은 아니라 해도) 상당히 큰 장애물'이라며 갈수록 즐겨 떠벌이는 주장의 한계를 알 수 있다. ......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부패는 큰 문제이다. 그러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이것을 약속했던 원조를 삭감하는 명분으로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들이 원조를 삭감할 경우 해당 국가의 부정직한 지도자가 입는 손실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입는 손실이 더 클 것이고, 극빈국들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250쪽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부정부패와 관련된 돈이 대부분 국내에 남아서 고용과 소득을 창출했다. 자이레의 경우는 부패한 돈이 대부분 국외로 빠져나갔다. 부패한 지도자가 있다면 최소한 더러운 돈을 국내에 남겨 두기를 바라야 한다. -255쪽
부정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해당 부패 행위가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느냐, 뇌물을 받은 사람이 뇌물을 어떻게 쓰느냐, 그리고 만일 부패가 없었다면 뇌물이 과연 어떻게 쓰일 수 있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256쪽
역사를 살펴보면, 경제 발전 초기 단계에는 부정부패를 억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극빈국들의 경우 하나같이 청렴도가 높지 않다는 사실은, 어떤 나라가 뇌물 수수 관행을 크게 줄일 수 있으려면 절대적인 빈곤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고 존엄성을 사기는 쉽다. 식량이 부족한 사람들이 밀가루 한 포 준다는 유혹을 받고도 표를 팔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수가 낮은 공무원들은 뇌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개인적인 존엄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257쪽
일부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통치자의 독단적인 재산 몰수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데, 이런 보호가 없다면 부를 축적할 동기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미국 정부의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는 "민주주의의 확대는 개인이 번영과 향상된 복지를 누릴 기회를 증진시킨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유 시장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경우라면 민주주의는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를 강력하게 지지하였던 것이 그 사례라 하겠다. -263쪽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위한 최선의 길이냐 하는 질문을 접어두고 생각한다면 (나는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이 책에서 시종일관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실제로 천생연분이며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65쪽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게 되면 부자들은 자신들의 욕구 가운데 가장 하찮은 요소들까지 실현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조차 없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해마다 말라리아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수백만 명이 시달리고 있지만, 세계는 말라리아 치료약 개발보다는 살 빼는 약 개발에 20배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또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절대로 매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법원의 판결, 공직, 학위와 (법률가, 의사, 교사) 특정 직업의 자격증 등이 그 예이다. 누구든 돈만 있으면 이런 것들을 살 수 있는 사회는 단순히 정당성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의사들이나 교사들의 자질이 적절한 수준 이하일 경우에는 노동력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법원이 불공정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계약법의 효력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267쪽
민주주의와 시장은 둘 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다. 그러나 양자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우리는 양자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과는 달리)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그리고 경제 발전 사이에 효과적인 순환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268쪽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실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경제의 탈정치화를 독촉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 정체 안에서의 정책 결정을 탈정치화한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해) 바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모든 중요한 결정들을 빼앗아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기구에 속하는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긴다면, 민주주의를 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가? 바꾸어 말해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 시장과 모순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신자유주의자들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것과 민주주의를 칭송하는 것이 모순된다고 보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이들이 원하는 민주주의는 몹시 무력한 민주주의이다. -270쪽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유리한 근거도, 불리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연구자들이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여러 나라들을 조사하면서 통계학적인 규칙성을 찾아내려고 했지만, 유리한 쪽으로나 불리한 쪽으로나 별다른 체계적인 근거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272쪽
물론 민주주의가 경제적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있어야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비록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 본질적인 가치 때문에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더욱 강력하게 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한다. -273쪽
노르웨이는 당시 유럽에서 몹시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민주 국가가 되었다. (노르웨이는 1907년에 최초로 보통 선거제를 도입한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인 1913년에 보통 선거제를 도입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스위스는 1인 1표라는 아주 형식적인 기준으로만 볼 때도, 이미 큰 부자가 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와서야 민주주의를 이룩했다. 캐나다는 1960년이 되어서야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62년이 되어서야 '백호주의' 정책을 폐기하고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다. 미국의 남부 주들은 1965년이 되어서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투표를 허용했는데, 이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의 인물들이 주도한 시민권 운동 덕분이었다.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들의 투표를 허용했다. -274쪽
(만일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두 개의 주 아펜첼아우서로덴과 아펜첼이너로덴이 각각 1989년, 1991년 이전까지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은 것까지 따진다면 이 시기는 훨씬 늦춰진다.) 인도는 최근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60년 동안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고, 한국과 대만은 상당히 부유해진 1980년대 말이 되어서야 민주 국가가 되었다.-275쪽
민주주의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자유 시장을 촉진하고, 자유 시장은 다시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견해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사이에는 강한 긴장이 있으며, 자유 시장이 경제 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일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을 촉진한다면, 이것은 대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주장처럼 자유 시장을 촉진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75쪽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입으로는 항상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조치들을 장려하는 것이다. 규제 완화가 그 한 예인데, 그것이 민주주의 약화를 주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규제 완화는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 민주주의의 영역을 축소시킨다. 그 밖에도 엄격한 국내법 혹은 국제 조약으로 정부를 구속하고, 중앙은행이나 여러 정부 기국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하는 따위의 고의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276쪽
1세기 전의 일본인들은 근면하지 않고 게을렀으며, 충실한 '일개미'가 아니라 독립심이 지나쳤고,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적이었으며, 심각하다기보다는 실없었고, (높은 저축율로 표현되는 지금과는 달리)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오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또 그 반세기 전의 독일인들은 능률적인 게 아니라 나태했고, 협조적이 아니라 개인적이었으며,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었고, 똑똑하기보다는 어리석었으며, 준법 정신이 투철하기보다는 부정직하고 도둑질을 잘했고, 자제심이 강하기보다는 태평했다.
우리가 일본인과 독일인에 대한 이런 성격 묘사를 읽으면서 어리둥절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은 이렇게 '나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둘째, 당시의 일본인 및 독일인들과 오늘날의 일본인 및 독일인들이 어째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어떻게 해서 이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적 습관'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을까?-285쪽
문화에 근거하여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견해는 1960년대까지 널리 퍼져 나갔다. 그러나 시민권 운동과 탈 식민 시대가 되자 사람들은 이런 설명에는 (인종주의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문화 지상주의적인 기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런 설명들은 비판을 받았다. -287쪽
유교(Confucianism)는 기원전 6세기 중국의 위대한 정치 철학자 공자의 라틴식 이름인 Confucius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유교에는 신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기 때문이다. 유교는 그보다는 정치 및 윤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고, 가정생활의 편제 및 사회적 예법과도 관련이 깊다. -289쪽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 이후로 유교 문화가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이 지역의 경제적 성공을 가져 온 원인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나갔다. 유교 문화는 근면, 교육, 검약, 협동,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을 강조함으로써) 인적 자본의 축적을 독려하고, (검약을 강조함으로써) 물리적 자본의 축적을 장려하며, 협동과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291쪽
그런데 동아시아의 경제 '기적'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지역의 발전 지체를 유교 탓으로 돌렸다. 옳은 이야기였다.
유교는 사람들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산업과 기술 따위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을 꺼려 하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유교식 사회 체제의 정상에는 학자-관리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통치 계급 상 하급에 해당하는 직업 군인들과 함께 농민, 장인, 상인(그 아래에는 노비들이 있다.)의 순으로 위계를 이루고 있는 평민 계급을 다스렸다. 그런데 평민 계급 중에서도 농민과 그 아래의 다른 계층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경계가 있었다. 농민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나마 공직 경쟁 시험인 과거에 합격하면 통치 계급에 편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인이나 상인은 이 시험에 응시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이 공직 시험은 유교 문헌에 대한 학문적 지식에 대해서만 시험을 본다는 것이다. 이런 요 인들 때문에 유교 사회의 통치 계급은 실용적인 지식을 업신여기게 되었다. -292쪽
유교는 또한 독창성과 기업가 정신을 막는다. 앞서 언급했듯 엄격한 사회적 위계질서를 고집함으로써 (장인이나 상인 같은) 특정 계층 사람들의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게 만ㄷ르었다. 또 사회적 위계질서는 윗사람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의 강조를 통해 유지될 수밖에 없는데, 상급자에 대한 충성과 권위에 대한 복종은 순응주의를 낳고 독창성을 억눌렀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뛰어난 독창성이 필요치 않는 기계적인 일에 능하다는 문화적인 고정관념은 유교의 이런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93쪽
유교는 법치주의를 무력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공자의 '만일 사람들을 법으로써 이끌고 처벌로써 화합시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처벌을 피하려 노력하면서도 아무런 부끄러움을 모를 것이다. 만일 사람들을 덕으로써 이끌고 예절로써 화합시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선량해질 것이다."라는 유명한 진술에서도 드러난다. 공자의 말은 옳다. 법적 제재를 엄격하게 하면 사람들은 처벌이 두려워 법을 준수할 것이다. 하지만 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사람들은 도덕적인 해위자로서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법의 준수를 넘어선 도덕적인 행동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법치주의를 업신여기기 때문에 그만큼 전횡적인 통치에 취약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만일 통치자가 덕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293쪽
그렇다면 유교란 정확히 어떤 문화인가? 헌팅턴이 한국과 관련하여 표현한 것처럼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그리고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인가? 아니면 실용적인 직업을 멸시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고 법치주의를 저해하는 문화인가? 둘 다 맞다. 앞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유리한 요소들만 뽑아 낸 것이고, 뒤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불리한 요소들만 뽑아 낸 것이긴 하지만. -294쪽
유교만이 이중인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회교의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회교 문화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업가 정신과 독창성을 가로막고, 내세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부의 축적과 생산성 향상 같은 세속적인 일에 무관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밖에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여성들에 대한 활동 제한은 재능을 허비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노동력의 질까지 떨어뜨린다. 어머니들이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하면 자식들에게 충분한 영양과 학업에 대한 도움을 제공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식들의 학업 성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회교의 (지하드 개념으로 구체화된) '군사주의' 경향은 돈벌이 대신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칭송한다. -294쪽
하지만 회교 문화에는 다른 대부분의 문화와는 달리 고정된 사회적 위계질서가 없다. (그래서 남아시아의 하층 카스트에 속하는 힌두교도들이 회교도로 개종했던 것이다.) 따라서 열심히, 그리고 독창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회교 문화는 유교의 위계질서에서와는 달리 공업이나 상업 활동을 경멸하지 않는다. 예언자 무하마드 자신이 상인이었다. 회교는 상인의 종교이다 보니 계약에 대해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결혼식에서도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절차가 있다. 이런 경향은 법치주의를 장려한다.(알라의 9개 이름 중 두 가지는 '정의로운 분') 실제 회교 국가들의 판사 양성 역사는 기독교 국가들보다 수백년이나 앞선다. 회교 국가에서는 또 합리적인 사고와 학습을 강조한다. 아랍 세계는 한때 수학, 과학, 의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했다. 또 코란에 대한 해석이 구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현대 이전의 회교 사회는 대부분 기독교 사회보다 훨씬 관대했다. 1492년 스페인 기독교도들의 국토 회복 운동 직후 이베리아 반도의 유대인들이 오토만 제국으로 망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이다-295쪽
자본주의 초기 시절 경제 발전에 성공한 국가들의 대부분이 신교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신교가 특히 경제 발전에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천주교 문화권인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남부 독일이 급속히 발전하자 신교뿐 아니라 기독교 전체가 '신통한' 문화로 취급되었다. 일본이 부자 나라가 되기 전에는 동아시아가 유교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일본이 번영을 이룩한 뒤에는 중국과 한국의 유교가 개인의 계발을 중시하는 데 반해, 일본의 유교는 협동을 강조하기 때문에 급속한 경제 발전이 가능했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이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자 유교에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잊혀졌다. 유교야말로 근면과 검약, 교육과 권위에 대한 복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경제 발전에 가장 적합한 문화가 되었다. 요즘에는 회교권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불교권인 태국, 그리고 힌두교권인 인도가 경제적으로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296쪽
많은 문화주의자들이 은연중 전제하는 것처럼 문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과거에 일본 문화나 독일 문화가 경제 발전에 불리한 것처럼 보였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더 부유한 나라 출신의 관찰자가 (특히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에 대해 가진 편견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자 나라의 상황과 가난한 나라의 상황은 다르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진정한 '오해'도 있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질로 자주 인용되는 게으름에 대해 살펴보자. 부자 나라 사람들은 으레 나라가 가난한 것은 국민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단히 가혹한 조건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게으르게 '보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산업 사회적인'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연장이나 간단한 기계만 가지고 일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켜야 할 필요가 없다. 반면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을 할 때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부자 나라 사람들을ㄴ 시간 개념에 대한 이런 차이를 게으름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297쪽
가난한 나라에 '게으르게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빈둥대는 것을 더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일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들이 게으르게 지내는 주된 원인은 가난한 나라의 경우 실업 혹은 준실업 상태(사람들이 직업은 있지만 할 일이 충분치 않은 경우)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가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으른' 문화를 가진 가난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부자 나라로 이주한 뒤에는 현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을 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때 크게 떠벌여지던 독일인들의 '부정직함'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비윤리적인, 심지어는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가난은 또 법의 집행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법적인 행동을 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위법 행동을 '문화적으로' 수용하기까지 한다.-298쪽
일본인들과 독일인들의 '감정 과잉'에 대해서는 어떤가? 합리적인 사고가 없는 상태가 '감정 과잉'이라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인 사고는 대개의 경우 경제 발전의 결과로 발전한다. 현대의 경제는 합리적으로 조직된 활동을 전제로 하고, 이것이 다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미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떠올리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혹은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인 조건이 빚어 내는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새 직업 같은) 새로운 기회나 (수입품의 갑작스런 유입 같은) 예기치 않은 충격을 예상할 때에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난한 경제는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신용, 보험, 계약 따위의) 장치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299쪽
닫시 말해 문화는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날의 일본과 독일 문화가 자신의 선조들의 문화와 크게 다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화는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이다. 어떤 나라가 '근면하고' '규율이 잘 선' (그리고 그 밖에 '긍정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특성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설명이다. -300쪽
그러나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나라들은 자만에 빠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 한국은 기술적으로 자본을 통제함으로써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한국은 신중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자본 시장을 대폭 개방했는데, 이는 미국의 압력도 있었지만 20년 동안 경제 '기적'을 계속한 뒤라 자만에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은 부자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1996년 OECD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부터는 부자 나라처럼 행동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소득을 대부분의 OECD ㅎ ㅚ원국들과 비교하면 3분의 1수준, 가장 부유한 회원국과 비교하면 4분의 1수준에 불과했다. 1997년의 금융 위기는 이런 행동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316쪽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이 원칙 때문에 미국인들은 19세기에 자유 무역을 실시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얼마 전까지도 핀란드 사람들은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 정부는 1960년대에 세계은행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철소를 건설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스위스 사람들은 19세기 말이 되기 전까지는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 사람들은 외국인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결국 바로 이것 때문에 나는 여섯 살 먹은 아들 진규를 공장에 보내 생계비를 벌어오게 하지 않고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321쪽
능력 개발을 위한 투자는 그 열매를 거두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의 영향력에 대해 논평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그걸 말하기에는 너무 때가 이르다."고 대답한 것으로 유명한, 마오쩌뚱 아래서 오랫동안 중국 수상을 지낸 저우언라이 정도로 시간을 길게 잡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앞에서 노키아의 전자 부문이 수익을 내기까지는 17년이 걸렸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그저 전주에 불과하다. 도요타는 30년 넘게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실시한 뒤에야 비록 하급차지만 국제 자동차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이 모직물 제조 부문에서 저지대국을 따라잡기까지는 헨리 7세 시대부터 시작해서 거의 100년이 걸렸다. 미국이 고나세를 폐지할 정도로 자신감을 가질 만큼 경제를 발전시키기까지는 130년이 걸렸다. 만일 이렇듯 시간을 길게 보는 시야를 갖지 못했더라면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견직물이, 영국에서는 모직물이, 미국에서는 면직물이 주력 수출 품목이었을 것이다.-321쪽
스위스는 비밀은행에 예치된 검은 돈에 의지해 먹고 사는 나라도 아니고, 소 목에 다는 종이나 뻐꾸기시계 따위의 시시한 기념품을 사들이는 관광객에 의지해 먹고 사는 나라도 아니다. 사실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이다. 2002년에 스위스의 1인당 제조업 생산고는 세계 최고였는데, 이는 세계 2위인 일본에 비해서는 24%나 높고, 미국에 비해서는 2.2배, 오늘날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는 중국에 비해서는 34배, 인도에 비해서는 156배나 높은 수치이다. 금융의 중심지이자 무역항으로 번창ㅇ하는 ㄴ도시 국가로 알려진 싱가포르 역시 마찬가지로 대단히 공업화된 나라인데, 1인당 제조업 생산고가 '공업 발전소'로 통하는 한국보다 35%, 미국보다 18%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325쪽
자유 무역 경제학자들이 농업에 집중하라고 권장하고, 탈공업화를 부르짖는 경제 예언가들이 서비스를 개발하라고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은 번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닐지 몰라도) 가장 중요한 길이다. 여기에는 훌륭한 이론적 근거가 있고, 이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례도 풍부하다. 우리는 스위스, 싱가포르 등 제조업을 기반으로 여전히 번창하고 있는 사례들을 보면서 서비스 경제의 성공 사례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326쪽
국제 경쟁은 수준이 비슷하지 않은 경기자들이 참여하는 게임이다. 우리 개발 경제 학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하자면, 스위스에서 스와질란드에 이르는 모든 나라들이 맞붙어 싸우게 되어 있다. 따라서 약한 나라에게 유리하도록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이 공정하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약한 나라들이 자국의 생산자들에 대한 보호와 보조금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실시하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 보다 엄격하게 규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국가가 선진적인 나라들로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차용'할 수 있도록 지적소유권 보호를 완화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한다. 또 부자 나라들은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가난한 나라들에게 기술을 이전해 줌으로써 이들을 도울 수도 있는데, 이는 가난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돕기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 방지라는 절박한 필요에 좀 더 부합된다는 추가적인 이득도 거둘 수 있다. -3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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