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나는 왜 '책선전'을 멈추지 않는가

알라딘의 서재를 블로그로 쓰게 되면서, 거기에 서재의 꼴이 좀 알려지게 되면서 이런저런 불편한 의견들도 직간접적으로 전해듣게 된다.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이 '책 선전'이거나 책읽기에 관한 '공치사'인지라 "돈을 얼마나 받길래 그렇게 열성이냐?"는 핀잔에서 "꽤나 잘난 체/아는 체한다"라는 비아냥까지가 그 의견들의 스펙트럼이다. 게다가 둘러보면 알라딘에서조차도 이런 일에 '극성'인 이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그런 와중에 최근에 몇 분이 또 활동을 그만 두셨고). 조만간 1000명에 이를 것 같은 즐찾에도 불구하고 자주 회의감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이번에 페이퍼의 달인 1위에 며칠 올라 있었는데 내가 갖게 되는 느낌은 부듯함이 아니라 배신감이다. 아무도 이런 일을 하지 않는구나!).

책읽는 걸 좋아하고 그게 또 밥벌이와도 무관하지 않아서 그와 관련한 수다들을 늘어놓는다. 거기에 이왕이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더 나아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대로의 '사명'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실효적인가는 늘 의문이며 결국엔 자기 알리바이에 불과한 게 아닐까라는 의혹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설상가상으로 이제 발을 빼기에는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린 게 아닌가도 싶고('보이지 않는 조직'의 압력도 느낀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도서관련 정보를 주로 싣고 있기에 종종 드나드는 '북데일리'에서 한 기자의 고백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해본 것들이다.

북데일리(07. 01. 26) 책 기사=책 광고? 황당한 공식 이제 그만!

http://www.book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27

P.S. 기자의 말을 다시 반복하자면 "살아가면서 내 인생을 밝혀준 책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 책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함께 읽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뜻 깊은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수다처럼, 지천에 널리고, 반갑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바램일까." 푸념과 결의는 그렇게 한 통속이 되어 나를 결박해놓는다. 잠시 딴생각을 했다. 마저 노를 저어야지. 헛!..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arine 2007-01-27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선전 좀 많이 해 줬으면 좋겠어요 워낙에 관심들이 없잖아요 대신 수준있는 선전으로 말이죠 내 인생의 책, 해 놓고서 마시멜로 이야기, 대한민국 재테크에 미쳐라, 나는 남자보다 적금 통장이 좋다, 이 따위 책들 얘기하는 거 말고요 로쟈님 수준이면 정말 허걱 할 정도로 너무 좋고 늘 감사드리죠

마노아 2007-01-2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같은 책꾼(!)이 많았음 좋겠어요. 더불어 우리도 같이 공부가 되잖아요^^
전반적으로 책 많이 읽는 문화가 조성이 되어야 하는데, 읽는 사람만 계속 읽어서 평준화가 잘 안 되네요...;;;
 
 전출처 : 라미닌 > 요 4:43-54 믿고 가더니

 

요 4:43-54 믿고 가더니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황제펭귄(몸집이 크고 목과 가슴에 황금색 털이 있습니다.)은 새끼를 유별나게 사랑합니다. 황제펭귄은 다른 펭귄과 달리 4~5월경에 해안에서 100㎞ 이상 떨어진 내륙에서 짝짓기를 해서 5~6월경에 남극에서 알을 낳습니다. 엄마 황제펭귄은 알을 낳으면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갑니다. 아빠는 알을 발등에 얹어서 뱃가죽으로 덮고 영하 40-50도의 혹한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2개월 정도를 견딥니다. 아빠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하얀 눈 속에 덮인 크레바스가 나타나 수백 미터의 빙하 속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시속 300킬로미터의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기도 하고, 바다표범이 물 속에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갈매기가 하늘에서 부리로 쪼아대기도 합니다. 아빠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2개월이 지나면 아빠의 체중은 40% 정도 줄어듭니다. 엄마가 영양을 보충하고 돌아와서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돌보면 아빠는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갑니다. 아빠는 영양을 보충하고 돌아와서 엄마와 교대합니다. 그러나 아빠는 너무나 탈진한 나머지 20% 정도밖에 생존하지 못합니다. 황제펭귄은 부성애가 강한 동물입니다. 아빠 황제펭귄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펭귄이 크레바스와 혹한으로부터 알을 지키려고 온갖 고생을 이겨내듯이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과로를 합니다. 펭귄이 바다표범과 갈매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듯이 아버지는 윗사람의 질책과 아랫사람의 추격으로부터 자리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황제펭귄처럼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왕의 신하였습니다.(46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의 유다와 중앙의 사마리아와 북쪽의 갈릴리로 나뉘었습니다. 아버지는 북쪽의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였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는 성공했으나 가정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아들이 병들어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더라도 가정에서 실패한다면 100에다 0을 곱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과는 0 입니다. 실패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봤으나 어떤 의사도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여봤으나 어떤 약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상태가 악화되어 죽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다에서 머물다가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의 유랑 설교자였습니다. 시골 출신의 부흥사였습니다. 병든 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이라면 아들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신분도 벗어버리고 시골 출신의 부흥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병든 아들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신분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에게 찾아갔듯이 우리도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체면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32킬로미터를 걸어가 예수님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꿈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들을 나무라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눈으로 봐야만 믿는 세태를 탄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애가 탔습니다. 아들은 시시각각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고쳐주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예수님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찾아갔으면 들어주실 때까지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응답해 달라고 조바심을 부리지만 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눈물로 간청하자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네 아들이 살아있다.” 예수님은 아들이 살아났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평민도 아닌 고위직 공무원입니다. 젊은이도 아닌 노인입니다. 가까이도 아닌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이 정도 되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해주는 성의는 보이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으로 찾아가지도 않았고, 안수기도도 해주지 않았고, 말씀만으로 병이 나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약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면 예수님도 너무 하십니다 고 원망할 겁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집까지 가서 안수기도 해 달라고 손목을 잡아 끌어당길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50절)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지면에 있는 양전하와 구름에 있는 음전하가 만나면 번개가 치듯이 사람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결합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 장 29 절을 통해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보고서 믿는 믿음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 아버지는 보지 않고도 믿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믿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7장 16절을 통해 결혼에 대한 질문에서 “(신앙 생활하는) 아내 된 자여 네가 (신앙 생활하지 않는)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반대로)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 생활하는 아내의 믿음으로 신앙 생활하지 않는 남편을 구원할 수 있고 반대로 남편의 믿음으로 아내를 구원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찾아가고 찾아갔다면 들어줄 때 까지 간청하고 간청했으면 들어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믿음을 통해 아들의 병이 나았듯이 아내의 믿음을 통해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고 남편의 믿음을 통해 아내가 구원받을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마중 나오는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은 너무 기뻐서 주인에게 도련님의 병이 나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종들에게 아들의 병이 나은 시각을 물어보니 예수님이 나았다고 선언하신 어제 7시(오후 1시)였습니다. 아버지의 믿음대로 아들이 병이 나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온 집안 식구들을 전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알리듯이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았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을 간증해야 합니다. 구원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하듯이 기적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간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기도 응답을 받기도 하듯이 우리의 간증을 통해서 구원을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지면의 양전하와 구름의 음전하가 만나 번개를 치듯이 우리 교인들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결합하여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록스메웨 유전지대 한 중심을
제왕처럼 독차지한 액슨모빌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도로에서 사진을 찍다가
긴급출동한 무장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철커덕, 기관총이 옆구리를 찌르고
굶주린 야수의 이글대는 저 눈빛
그대로 불을 토할 듯한 방아쇠의 손가락
나는 공포에 질려 아무 저항도 못하고
거대한 철문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백주대낮에 아무 죄도 없이
낯선 이국땅에 무릎 꿇린 나는
그 순간 인간이 아니었다
시인도 혁명가도 아니었다
나는 한 마리 아체의 개였다

이 검은 총구들 앞에서 풀려날 수만 있다면
계엄군의 아가리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개가 되어 짖기라도 하고 싶었다

한 순간의 공포, 불안, 체념, 비굴,
무력감이 하얗게 지나가자
싸늘한 자기혐오, 변명, 울분,
허탈감이 엄습해 왔다

이것이 아체인의 심정, 아체인의 운명,
나날이 반복되는 아체인의 삶이었다
나는 이마를 겨눈 차가운 총구 앞에서
오래된 아체인의 눈물을 흘렸다

한 나라의 정예 군인들이 충성스럽게
미국의 자본을 위해 외국인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날마다 방탄차로 거리를 누비며 총격을 하는 땅
제 몸의 골수를 뽑아가는 자들이 던져 주는
한 줌 빵 부스러기를 개처럼 다투어야 하는 땅
록스마웨 거리를 맨발로 구걸하러 다니는
수많은 아이들의 휑한 눈동자가 떠올라
나는 검은 총구를 바라보며
마지막 인간의 눈물을 흘렸다

이 압도적인 첨단의 총구들 앞에서
인간으로는 숨쉴 수 없는 땅
제 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땅
인간의 위엄을 지니고는 직립할 수 없는 땅
무거운 가난과 절망과 너무 긴 패배감으로
저마다 제 먹고 살 일에 코를 박고
TV를 켜고 차가운 유머나 던지는
삶에서 정치와 사회와 저항이라는
인간성의 등뼈를 빼내 버려야만
미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땅
이것이 총구 앞에 무릎 꿇린 채
한 마리 개가 되어 떨고 있는
나의 눈물, 나의 아체였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구할 수 있는 모든 돈을 모아
저 고독한 밀림의 전사들에게
빛나는 무기를 사 주고 싶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언어로
아체의 젊은이와 소년 소녀들에게
자살폭탄 공격이 너의 유일한 인간의 길이라고
악마처럼 속삭이고 싶었다

아 나는 코리아의 민주화 이후가 너무 힘들다고
사람들이 일상에 묶여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우리의 진정한 혁명을 너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좌절하고 조급해하던
나의 죄를 고해하며 빌고 싶었다

내 머리를 겨눈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한 순간 개가 되어 공포에 떨고 있던 나는
아체인의 공포, 아체인의 절망,
무릎 꿇린 아체인의 운명 앞에
오래도록 무릎 꿇어 빌고만 싶었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박노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누르마르 가이아에게 바침

어둠 속에 고요히 누워 있는 가이아
그녀는 아체의 고아로 자라났다네
배불리 한 번 먹어 보지 못하고
따뜻한 가족을 느껴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마음껏 울어 보지 못했다네

하늘도 착한 그녀에게 미안했던지
사람 좋은 남자를 보내 주었다네
처음으로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아
작은 뜰에는 꽃향기가 그윽하고
집안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괜스레
미안하고 눈물나고 죄송스러웠다네
한 번도 자신을 안아 준 적 없는 세상에게도
너무 일찍 그녀를 던져버린 하느님께도

우편배달부 남편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던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픈 소식만 전해야 하는
자신의 우편가방에 버려져 우는 아이들을
하나 둘 담아 오기 시작했다네

박봉을 털고 결혼반지를 팔고 작은 집을 내놓고
두 사람은 고아들과 한 밥상에 둘러 앉아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고 내 자식이건 고아들이건
같이 입히고 같이 젖 물리고 같이 공부시켰다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젖가슴이 아파 왔다네
너무 많은 고아들은 너무 작은 그녀 가슴에 안겨
너무 많은 젖을 빨아 먹었다네
가난으로 버려진 아체의 아이들,
총살당한 부모 품에서 살아나온 아이들,
쓰나미로 홀로 남아 울고 있는 아이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젖이 마르고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걸 알면서도
배고프고 사랑이 고픈 저 아이들을
차마 물리칠 수가 없었다네

그녀의 젖가슴에는 몹쓸 암이 생겨나
하루 하루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네
이제 아이들은 다시는 그녀 품에 안길 수 없게 되었지만
한참 크는 아이들은 어두운 골방에 누워 죽어가는
젊은 어머니를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네

그녀는 누워서도 미안하기만 하다네
병들어 짐이 되는 자신을 미안해하고
자신을 만나 빚만 지고 고생만 하는 남편에게 미안해하고
병원에 가자는 것도 미안해하면서 그녀는
오늘은 어느 아이가 아픈가
오늘은 어느 아이가 힘든가
오늘은 어느 아이가 슬픈가만 챙기며

반신불수로 비틀려 가는 입에서는 오직
라압......미안하다
알 함두릴라......감사하다
아꾸찐따 빠따무......사랑한다

세 마디만 띄엄 띄엄 되뇌인다네

이제 그녀는 아체의 어둑한 구석방에 누워
뼈아프게 파고드는 암조차 따뜻이 껴안으며
하루하루 고요히 기도하며 죽어가네
아체의 고난과 불행을 그 작은 몸에
다 품고 가겠다는 듯이
아체 아이들의 미래에 드리운 어둠을
다 끌어안고 묻히겠다는 듯이

세상은 그녀에게 미소 한 번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버려진 세상을 다 품고 가시네
그녀는 세상의 가정에 빚진 것 하나 없지만
이 지상의 가정들은 그녕네게 빚진 게 없을까

그녀는 자신을 너무 일찍 따서 버리고
자신의 작은 젖가슴을 너무 많이 빨아 가고
이렇게 다시 너무 일찍 내던져 버린
세상을 조금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라압......미안하다
알 함두릴라......감사하다
아꾸찐따 빠따무......사랑한다며
가난과 공포와 절망이 자욱한 아체의
어둡고 습기찬 구석방에 누워
버림받은 여신처럼 죽어 가시네
어둠 속의 별처럼 사라져 가시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박노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반다아체
울렐르 마을 사람들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물 속에
젓가락만한 바까오 나무를 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계엄정부는 쓰나미 넉 달이 지나도록
아무 지원도 복구도 방파제도 해주지 않아
살아남은 주민들끼리 오래된 지혜를 모아
마을 해변에 바까오 나무를 심기로 했단다

파도 치는 바닷물 속에 심는
가느다란 바까오 나무들
정말 자랄 수 있을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녕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지지대를 박고 있던 넨 샤팟은
인샬라!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이 여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해일을 붙잡아주고
연약한 우리를 지켜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자꾸 절망하려는 우리의 마음은
붙잡아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에도 몇 번씩 울부짖고 싶고
죽어간 가족들과 약혼녀가 생각나 미칠 것만 같고
폐허가 된 마을 재건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만 밀림으로 들어가 총을 들고 싶은 마음이에요
힘내자고 마음먹어도 자꾸만 무너져요

핏빛처럼 붉은 아체의 석양 노을이
넨 샤팟의 눈물 방울에 어리고 있었다

이 어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으로 갈라진 내 마음에
질긴 뿌리를 내려 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파도 소리를 듣고 자라났는데
아체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형들이 하나둘
밀림으로 들어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올 때마다
바닷가에 홀로 앉아 파도와 함께 울었는데
이 녀석도 파도 속에 울며 자랄 운명이네요

넨 샤팟은 바닷물 속에 무릎을 꿇고
어린 바까오 나무를 하나하나 심어가며
그 곁에 지지대를 박아 주는 것이었다
절망의 밑바닥에 뿌리 박지 않은 것은
진정한 희망이 아니라는 듯 단단히, 단단히
파도 속에 어린 바까오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박노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