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달리기 푸른숲 역사 동화 7
김해원 지음, 홍정선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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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이라고 늘 찬사받기 일쑤였던 '오월'이 핏빛으로 기억되는 것은 광주의 학살 흔적 때문이었다. 오월의 달리기라는, 운동회를 연상시킬 법도 한 이 책의 제목에서도 서늘함을 느꼈던 것도 바로 책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광주였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아버지를 둔 명수는 뜀박질을 잘해서 할머니의 자랑거리였고 아버지의 한풀이를 해주는 아들이었다. 전국소년체전 전남 대표 달리기 선수로 뽑힌 명수는 '다크호스'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그 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멋진 거라고, 명수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합숙소에서 운동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지쳐서 다른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호기심 많고 장난끼 많은 악동들이 몰려 있으니 사단이 아니 날 수가 없다. 몰래 만화책 빌려오기 내기를 하다가 코치님께 딱! 걸려서 단체를 벌을 서기도 했던 아이들. 명수는 자기보다 앞서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고, 이후로도 내내 자기를 앞지르는 황정태를 이기는 게 목표였다. 어린이다운 목표이자 나름의 꿈이었다. 라이벌을 이기고, 만화책을 마음껏 빌려 보고, 군것질도 좀 하는... 딱 그만큼의 목표를 이루고 싶던 아이들 앞에 1980년의 광주는 그야말로 지옥의 문이었다.



작품은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단지 그 학살의 순간의 끔찍함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들 각자가 갖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끄집어 내었는데, 명수가 시장에서 불편한 다리 때문에 망신을 당한 아버지를 외면했던 부분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머지 않아 아빠를 잃게 될 이 아이가 그때 아버지를 외면했던 자신의 죄책감을 어떻게 견디며 살지 암담했기 때문이다. 



합숙소 6호 방 친구들이 머리를 맞대어서 시내로 나갔던 날이 시작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군인들이 시민들을 구타했고 죄없는 학생들이 군홧발에 사정 없이 짓밟혔다. 한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고,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끔찍한 일들이 눈앞에서 재현되었을 때 아이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가 아까부텀 생각혔는디, 아무래도 저 군인들은 우리나라 군인이 아닌갑다. 북한 김일성이가 보낸 인민군이 분명허당께. 우리나라 군인이믄 한나라 사람을 복날 개 잡드끼 두들겨 패겄냐?"
진규가 몸서리를 쳤다. 명수는 뒤를 돌아봤다. 광주천 건너 멀리 한 무리의 군인들이 뛰어가는 게 보였다. 그라믄 우리나라 군인들은 워디 있는 겨? -96쪽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자국민 지키라고 가 있는 군대에서, 그 국민들 세금으로 만든 총 들고서 자국민을 해칠 수 있을까.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두렵고 무서웠다. 이런 와중에 작가님은 잠시 쉬어갈 틈을 주시니, 이런 문장은 웃으면서 웃게 만든다.


"니들은 내 비밀을 알믄 깜짝 놀랄 거신디?"
진규 말에 셋 모두 윗몸을 일으키며 그게 뭐냐고 물었다.
"긍께 그기...... 나는 로보트여.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제트 맹키로. 팔이 무쇠라 던지기 선수가 된 거랑께."
진규의 터무니없는 말에 셋은 어이없어 하면서 도로 자리에 누웠다. 진규는 다리까지 무쇠였으면 저기 밖에 있는 악당들을 다 물릴칠 텐데, 아쉽게도 박사님이 다리를 빼먹었다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랑께 군인들이 악당인 거여라?"
성일이 아주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제. 만화서 보믄 나쁜 로보트를 조종허는 진짜 악당은 뒤에 숨어 있잖여. 군인들은 악당헌티 조종당허는 로보트인거제."


미국에서 월남 전에 파병되었던 군인들이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많이 앓고 자살도 많이 했다는 글을 보았다. 우리나라 가스통 할배들 중에도 파월 군인이 많을 터인데, 그 후유증의 한 반동이 아닐까도 싶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그럴진대, 자국민을 상대로 그랬다면 그 폭풍은 더 심하지 않을까? 그 의문과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 더더욱 상대방은 빨갱이가 되어야 하고 종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 아닐까? 


명수는 나주 출신이었다. 이렇게 위험할 때에 아버지가 합숙소로 아이를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길이 막혀서 접근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버지는 기어이 광주 시내로 들어오셔쏙, 그 바람에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불편한 다리로 시계를 고치며 열심히 사셨던 아버지, 시장 바닥에서 넘어져서 빨간 사과와 함께 뒹굴었던 아버지, 무뚝뚝하시지만 대회 나갈 아들을 위해서 제일 좋은 운동화를 사주셨던 그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를, 어머니를, 또 아들을 딸을 잃은 사람이 그곳에 얼마나 많았던가. 아직도 그치지 않는 눈물을 가슴에 품은 채 살고 계신 많은 분들이......


여기까지는 이 책의 배경을 알면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거기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 그곳에서 사람 냄새 나게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하여 사죄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았던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액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서럽고 고통스러운 이야기 속에서 자그마한 희망 한줄기, 옅은 미소 한자락 지을 수 있게 만드는 마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님의 이름을 눈여겨 보게 된다. 이렇게 뭉클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님은 꼭 기억해 둬야지...


광주에서 이리 참혹한 짓을 저질러 놓고, 정부는 태연하게 전국 체전을 열었다. 3S정책이 실감난다. 그게 33년 전에만 그랬을까? 지금은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광주의 슬픈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어린이 친구들에게는 간략한 정리 목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26년'이나 '화려한 휴가'를 같이 보면 좋겠다. 잔혹한 내용이 있으니 어른과 같이 시청하거나 읽으면 좋겠다. 의외로 차분히 일러주면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고 또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으로 이해를 한다. 



민중 항쟁의 역사와 같은 시기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났던가도 정리해 주었다. 진지한 눈으로 들여다 본다면 더 깊은 이해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소중함도 함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지켜야 하는 지도... 그 소중하고 귀한 기회와 가치에 대해서 차분하게 이야기 해보자. 아이들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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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08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계절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열일곱 살의 털>과 <우리는 가족입니까>를 쓴 김해원 작가, 나도 주목하고 있어요.
오월에 출간되자마가 사서 읽었는데 리뷰는 못 썼어요.ㅠ

마노아 2013-12-08 23:35   좋아요 0 | URL
이 책을 보고 나니 말씀하신 책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요. 작가님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롱런하실 분 같아요.
이 책 저도 그쯤 산것 같은데 한참 뒤에 읽었네요. 오월에 읽었다면 더 뜨겁고 더 벅찼을 것 같아요.ㅜㅜ
 
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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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파리와 노트르담 성당, 고딕양식과 건축, 철학... 이런 분야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아주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 지루함에 거름을 준 것은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 번역 때문이었다. 사실 훨씬 재밌게 읽은 2권에서도 별을 다섯 개 줄까 말까 잠시 망설였던 것은 번역 때문이다. 지나치게 옛날 말, 지금은 쓰지 않는, 국어사전 찾아봐야 되는 말들이 등장하는 것은 둘째 치고, 문장도 무척 어색하게 들린다. 입말도 아니요, 문어체도 아니요, 이 어정쩡한 조합들에 민음사 책을 고른 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아무튼, 그 모든 난관을 물리치고(?) 2권은 무척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보다 인물 중심이고 사건 중심으로 전개되어서 그런가 보다. 


1권에서 군인 페뷔스와 사랑에 빠진 이집트 아가씨 에스메랄다는,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 프롤로 신부가 저지른 살인 미수의 누명을 쓰고 위기에 빠졌다. 잔혹한 고문에 바로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한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페뷔스는 약혼녀에게로 돌아간다. 약혼녀의 집에서, 식도 올리기 전에 그녀의 육체를 먼저 탐하려던 이 젊은 군인은 광장에서 벌어지려고 하는 에스메랄다의 처형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이 몹쓸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외도가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을 뿐이다. 죽을 뻔한 에스메랄다를 구한 것은 노트르담의 종지기, 꼽추 콰지모도였다. 그가 여자를 처형장에서 구출해 내는 장면은 좀 설득력이 없었지만, 아무튼 그는 에스메랄다에게는 구원의 존재였다. 그녀는 그 고마움을 그다지 알지 못한 것 같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프롤로였다. 이 똑똑한 신부는 이제까지 종교와 학문과 명예의 전당에서만 살았다. 그가 살아온 세상을 한순간에 버리게 한 것은 에스메랄다,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한순간의 욕망의 화신으로 돌변한 이 부주교는 그녀가 사랑한 남자를 죽이려 한 것도 모자라서 그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래놓고는 그녀에게 목숨을 구해줄 테니 자신의 여자가 되라고까지 한다. 이 놀랍도록 뻔뻔하고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심지어 그는 콰지모도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자신의 양아들을 질투한다. 외모상으로 흠없는 페뷔스에 비하면 귀머거리에 애꾸눈에 절름발이에 꼽추이기까지 한 콰지모도는 연적의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그였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또 그의 오만함과 교만함에 비추어 보아 그가 기분 나빠했음은 물론이다. 


콰지모도에게만 그랬던 건 아니다. 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아르에게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거지패들에 의해서 에스메랄다의 남편이 되어버린 그랭구아르에게는 그의 가난함을 들어서 찍어누르려고 했던 프롤로. 그러나 그랭구아르는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다고 했다. 그 당당함이 프롤로를 더 역정나게 했을 것이다. 


이 뻔뻔한 사내는 그랭구아루에게 여장을 한 채로 에스메랄다 대신 죽으라고 한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자 어쩌면 이렇게 배은망덕하냐고 욕을 하기까지 한다. 하하핫, 이 양반 정신분열증이 심하군!


"그 여자가 없었더라면 자네가 지금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 자네는 그 여자가 죽기를 바라나, 자네게 살아 있는 건 그 여자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여자가, 그 아름답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그 여자가, 이 세상의 광명에 필요한 그 여자가, 하느님보다도 더 거룩한 그 여자가 말이다! 그러는 반면 자네는, 반은 현명하고 반은 미치광이 같은 자네는, 어떤 것이 되다 만 자네는, 스스로 걷고 있는 줄 알고 생각하고 있는 줄 아는 초목 같은 존재인 자네는, 그 여자한테서 훔친, 대낮의 촛불같이 무용한 목숨을 가지고 계속 살고 말이다!" -298쪽


신부의 위치에서 하느님보다 더 거룩한 존재라고 떠받든 에스메랄다에게 프롤로는 어떻게 했는가. 내것이 될 수 없다면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이렇게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성직자였다. 임금은 또 어떻던가? 어리석은 군주는 신하의 혓바닥 위에서 놀아났고, 신하는 군중들의 의도와 정반대되는 사실을 전달함으로써 진실을 왜곡한다. 에스메랄다의 친모는 어떠했던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잃어버린 아이가 그녀인줄도 모르고, 그녀가 죽음에 이르도록 잡아두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 얄궂고도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라니!


에스메랄다는 아름다웠고, 착했지만 현명하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찾아온 단 한번의 구원의 기회를 망나니라는 이름도 아까운 페뷔스의 이름을 부르다가 날려버렸다. 안타까운 여심이여!


작품의 마무리가 여운이 있었다. 콰지모도가 죽음으로써 완성한 사랑이, 그 흔적이 애잔했다. 


얼마 전에 과천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뮤지컬 '노틀담의 꼽추' 광고를 보았다. 콰지모도가 프롤로의 명을 받고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한 원작의 내용을, 납치 당할 뻔한 에스메랄다를 콰지모도가 구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흠, 이건 아니잖아. 내용을 축약해도 이렇게 왜곡하는 것은 곤란하지! 


1권을 워낙 건성으로 읽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책으로 다시 읽지는 못하겠다. 혹여 시간이 더 흘러서 다시 이 작품을 찾는다면 그때는 다른 사람 번역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음반 예약 판매 소식을 들었는데 금세 품절로 바뀌었다. 다시 풀렸는지 확인하고 주문해야겠다. 문학과 음악이 만나면 이렇게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반갑다 노트르담, 반갑다 콰지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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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3-11-0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뮤지컬, 아니 그런 과감한 왜곡이라니! 웃음이 나는군요;;;

나는 이런 명작 참 못 읽는데, 마노아님 글 읽으니까 이거 좀 읽어야 하나 싶네요. 우앙. 빅토르 위고라니. 나한텐 너무 장엄하잖아.

마노아 2013-11-08 23:33   좋아요 0 | URL
그 아이들이 나중에 원전을 읽게 되면 배신감을 느낄 거예요.ㅎㅎㅎ
저도 빅토르 위고 완역판은 이게 처음 같아요. 어릴 때 읽은 주니어판 장발장 이후로요.
레미제라블은 사두고서 열어보질 못했네요. 너무 길어서 좀처럼 엄두가 안 나는 것 있죠.
이 책은 뮤지컬 보러 가기 전에 부랴부랴 읽느라 1권은 대충 읽고, 2권은 뮤지컬 보고 나서 보았어요.하하핫^^
 
무슈 린의 아기
필립 클로델 지음, 정혜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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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잔잔하게 시작한 소설이었다. 전쟁이 났고, 그래서 난민이 되어 이방인의 자격으로 수용소에서 생활하게 된 무슈 린. 어린 손녀딸을 품에 꼭 안고서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살아남은 것처럼 행동하는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그가 떠나온 나라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도착한 나라는 프랑스로 보인다. 그가 겨우 배운 한마디 인사가 불어였으니까. 


등장인물도 얼마 나오지 않는다. 그가 산책길에 매일 마주친 한 남자가 어느새 친구가 되었고, 두 사람은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벗이 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를 위해서 합숙소에서 얻은 담배를 모아두는 무슈 린. 그 담배를 전해 받고 가슴이 벅차올라 감동을 어쩌지 못한 바르크 씨. 그리고 무슈 린의 과보호 속에서 안전하게 지켜지는 손녀 상디유와, 사람들의 무관심과 조소 등이 간간이 양념처럼 뿌려졌다. 


합숙소에서 처소가 옮겨졌는데, 그곳은 수용소나 혹은 병원의 성격이 강했다. 말도 통하지 않아서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확인하지 못한 무슈 린은 친구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시설을 탈출하는 모험을 강행했고, 지금도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울 바르크 씨를 만나기 위해 사막을 걷듯 도심을 가로지른다.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이면서 도달하는 그 여정이 안타깝게 펼쳐졌다. 그리고 마침내 만나게 된 친구,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무슈 린의 진실. 


이 책의 제목이 왜 무슈 린의 '아기'인지 궁금했다. 작품의 말미에 가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소리가 나오면서 더 큰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쓸쓸하고, 이렇게 허무하고, 이렇게 아픈 진실이라니...... 


무슈 린의 머리는 피로와 고통에 절고 환멸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은 혼란과 너무 잦은 떠남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산다는 게 무언가? 자신이 살면서 받은 상처들을 목걸이처럼 엮어 차고 다니는 게 인생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점점 약해지고 상처받기만 하는데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도 이미 충분히 힘겹건만 어째서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들고 쓰라려야 한단 말인가? -118쪽


길지 않은 내용의 소설인데, 명확하지 않고 뜬구름 잡듯 몽환적이면서 희미한 느낌의 글인데도 여운이 깊었다. 인용한 글에서처럼 무슈 린이 느끼는 피곤함과 혼란이 잘 전해졌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남자의 우정은 아름다웠으며, 그렇게 빗나가면서도 서로를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소통이 근사했다. 작품의 느낌을 잘 살린 번역도 훌륭했다. 필립 클로델의 이름을 기억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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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김성민 글, 이태진.조동성 글 / IWELL(아이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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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1939년 10월 16일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에게 사죄한다. 


제목이 주는 섬뜩함이 있었다. 안중근이 죽인 이토히로부미가 안중근을 쏘았다? 호감이 갈 법하다. 

이 책은 굉장히 짧은 역사소설이다. 폰트도 아주 커서 15분이면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토는 죽었고, 안중근도 사형 당했다. 그는 나라 잃은 조국에 큰 획을 그으며 영웅의 이름으로 잠들었지만 남겨진 가족의 생은 분명 서러웠을 것이다. 안중근의 어머니는 아들 못지 않게 담대하시고 큰 배포를 가지셨지만, 안중근의 아내와 어린 자식들도 그럴 수 있었을까? 큰 아들은 일곱살 어린 나이에 독이 든 과자를 먹고 죽어버렸다. 낯선 사람이 준 과자였다. 배고팠던 아이가 허겁지겁 삼켰을 과자에 발라져 있던 독. 끔찍하다. 그러니 그 어미가, 남은 아들과 어떤 삶을 살았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둘째 아들 준생의 힘겨운 성장과정을 극화시켜서 독자에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임시정부가 습격을 당할 때 안중근의 유가족을 챙기지 못해서 김구 선생이 진노한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어쩌면 준생은 버림 받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민족의 영웅이고 조국의 영웅이지만, 그에게는 처자식을 버린 아버지일 수도 있다. 그러니 그가 모진 세월을 견디면서 아버지에게 원망의 마음을 품었을 수도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가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사죄하며 전국을 순회한 일을 용납할 수는 없다. 그의 행위는 아버지를 배신한 것뿐 아니라 조국과 민족을 배신한 행위였다. 한 사람이 견디기에는 가혹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장준하 선생님의 아들 장호권 씨의 인터뷰를 보면 민족의 큰 발자국을 남긴 거대한 아버지를 둔 아들의 비애가 잘 느껴졌다. 가족은 돌보지 못하고 조국과 민족만 생각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비명에 가시고 남겨진 가족도 테러를 당하며 험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로서 원망이 드는 것과 별개로 인간 장준하를 존경했다. 아버지가 남긴 족적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며 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안준생도 그래야 했다. 그게 쉬운 일도 아니고, 당장 입에 풀칠하며 살기도 어려울 때에 보통의 결심과 각오로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도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역시... 이건 아니었다. 호부 아래 견자가 나온 꼴이니... 아버지는 물론 그에게도, 또 나라 전체에도 비극적인 행보였다. 


이 책은 안준생의 입장을 많이 옹호하는 느낌으로 쓰여졌다. 역사 소설이라고 이미 밝혔지만, 안준생의 입장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한 것은 아닌지, 다소 위험하다는 느낌마저도 들었다. 이게 다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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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3-10-08 23:09   좋아요 0 | URL
안중근이 이토를 저격하고 30년 뒤의 일이었어요.
제가 어제 몰아서 급하게 쓰다 보니 너무 생략을 많이 했네요.
집에 가서 조금 더 보충해서 써야겠어요.
안준생은 안중근의 아들이에요. ㅜㅜ

2013-10-08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3-10-08 23:09   좋아요 0 | URL
앞에는 준생이라 쓰고 뒤에는 중생이라 썼네요. 오타예요. 수정했어요.^^;;;;

아무개 2013-10-0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중생이 실제로 사과한거 였어요? 헐...저는 소설속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네요.
이래서 어설픈 정보가 더 나쁘다는 ㅜ..ㅜ

잘지내시죠?
날씨가 쌀쌀해지니 여기저기 감기 바이러스들이 난리난리입니다.
감기조심~~ ^^

마노아 2013-10-07 13:21   좋아요 0 | URL
부끄러우니까 사실은 잘 언급이 안 되죠.
뭐, 윤봉길의 손녀도 지금 새누리당에 가 있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최필립 정수장학회 전 이사장의 아버지도 독립운동가였죠. 하하핫...ㅜㅜ

어제는 태풍이 오려는지 바람이 엄청 거셌는데 오늘은 바람이 별로 안 부네요.
추울 줄 알았는데 은근 덥구요. 이런 날씨가 감기 걸리기 정말 좋죠.
우리 건강 유의하고 완연한 가을날에 만나요. 낙엽 좀 밟아 봅시다.^^

transient-guest 2013-10-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운동 한 분들이 해방 후에 자식들은 독립운동 시키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죠. 기억도 희미한 아버지보다는 당장의 밥이 더 급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더구나 이런(?) 일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매우 교묘하게 당위성을 조작하니까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입니다. 친일청산은 커녕 정치, 사회, 경제, 언론, 등등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다양하고 많은 분야에서 상위자리를 차지한 것은 친일 매국노와 그 후손들이잖아요. 속상하네요.

마노아 2013-10-08 15:1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면은요, 다시 우리나라가 식민지배와 같은 국난을 당하면 두팔 걷어부치고 독립운동할 수 있을 것인가 묻게 되어요. 이 꼬라지를 보면 말이지요. 한숨 나와요... 정말 속상하네요.ㅜ.ㅜ

maestroX 2013-10-1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 아들이 독살당할 때 나이가 7세 였다면 안준생씨는 다 어렸겠죠. 당시 힘없는 사람이 뭘 할 수 있었을까요? 너무 호되게 나무라지 마시길... 당신이라도 별 수 없었을겁니다^^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도 안증근 의사를 욕되게 하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요~~

마노아 2013-10-12 22:37   좋아요 0 | URL
7세보다 더 어렸을 나이의 안중생 씨를 얘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었다-로 마무리 짓기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죽하면 안준생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가 호부견자일까요. 안중근이란 빛을 얘기하면서 안준생이라는 그림자도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쉬쉬하는 게 더 욕되게 하는 것 아닐까요.

maestroX 2013-10-1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성격이나 인격은 부모에게서부터 타고 나는 것도 있지만 자라난 환경도 그 이상 중요합니다. '호부견자'라는 용어를 써가면서 아버지와 아들을 대조하는 것은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결국 안준생씨를 만든 안중근 의사나 그를 돌보지 못한 우리 사회의 과거 모습을 탓하는 것이 됩니다. 당시 손가락질을 받는 반 고아를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마노아 2013-10-13 10:33   좋아요 0 | URL
저는 안준생 씨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끝까지 헌신해 놓고 해방된 조국에서 오히려 억압 받고 탄압받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의 가족들이 가난에 시달리며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살게 된 우리의 현실이 더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역사가 기막히다고 쓴 겁니다. 2년 쯤 전에 한국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가 사망을 했는데 암투병 중에 돌아가셔서 장례비 포함 1000만원의 부채가 있었다고 해요. 조의금으로 500을 갚고 500이 남아서 정부에 탄원서를 올렸다고 하네요. 이명박 대통령께서 친히 '10만원'을 조의금으로 냈다고 합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 거죠...ㅜㅜ
 
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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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내게 가족은,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줄곧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보낸 며칠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서로가 더 보이고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깨달음으 종착지가 괴로운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해피 패밀리. 언젠가 행복하기도 했던, 그러면서 불안했던, 그리고 어느 사건으로 굉장히 불행해 하던, 그리고 다시 그 불행을 봉합하고 행복을 찾으려 애를 쓰는 그런 가족의 이야기.


모두 열명의 화자가 나온다. 첫 시작은 이 가족의 장남 한민형이 열었다.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는 누이의 죽음 이후 더 끝없는 허무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밤새워 술을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24시간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질 만큼 술독에 빠져 지내는 그는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특징은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작품 속에서 민형이 보던 책으로 등장하는 번역 소설 '행복한 가족'에도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한민형의 후배 이대리와 민형의 여동생 영미와의 대화에도 언어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학력 인플레가 심했고,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런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싶을 정도의 현학적인 내용들도 많았다. 국어사전을 찾아봐야만 알아먹을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도 여럿 나왔다. 작품의 분위기만큼이나 허무하고 어딘지 허세도 느껴지는 설정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단숨에 읽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열명이나 되는 화자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들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교묘히 피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목차를 보는 순간 그 진실은 마지막 화자 한민희가 등장해야 풀리겠구나 싶어서 더더더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순서의 목차였지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지혜로운 차례였다. 사실 초반부터 누이의 죽음에 민형이 깊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암시를 주었기 때문에 한민희의 목소리가 등장했을 때에도 그리 놀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민희가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유서로 내용이 넘어가서 얼라?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한 문장으로 독자는 머리를 얻어맞았다. 준비를 했는데도 제법 충격이 컸다. 그럴싸한 한방이었다!


물론, 한민희의 분량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는다. 이 각별히 섬세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그래서 더 잔인한 캐릭터를 이해하게 만드는 단서들이 부족하다.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만큼만 이해하고 알아먹으라는 듯한 불친절함! 그런데도 그게 또 어울리는 묘한 여운이 재밌다.


캐릭터들의 면면은 우리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다분히 속물적이고 가식적이고, 또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인간 군상이었다. 그럼에도 특별한 게 있다면 몇몇 인물들은 그 속에서 아주 섬세한 신경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정신을 갉아먹는 강박증으로도 나오고 누군가에게는 밤을 지새우고도 계속 비워내게 되는 술잔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그렇기에 죄값을 치르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물은 반성할 줄도 모르고, 원인을 알지 못하니 해답도 없고 대책도 없다. 


다시 제목을 읽어 본다. 해피 패밀리.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작가는 이 제목이 역설적이지만은 않다고 했다. 글쎄,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대개들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을 꿈꾸며 살지만, 정말로 넘치도록 행복한 가족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냥 이해하고 서로 맞춰가며, 부족한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던가. 작가의 표현처럼 하나의 '관성'처럼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보다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게 가족이고, 누구보다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도 가족. 가시같이 아프지만 뽑으면 더 큰 출혈을 감당해야 하는 가족. 


행복이라는 게 아주 커다란 무엇이기 보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야말로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내 행복의 기준이 그렇게 높았던 것일까. 이 가시, 뽑아야 하는 걸까?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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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09: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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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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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0 1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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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0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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