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 개정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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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동진이 진행하는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코너는 '변방의 북소리'다. 다른 요일들에는 시그널이 나오고 오프닝 멘트가 나오지만, 변방의 북소리는 책의 구절을 읽으면서 시작한다. 파격적인 진행이다. '빨간책방'에서도 책 읽어주는 코너가 있고, '책, 임자를 만나다' 코너에서 소개한 책들에 흥미를 느껴 구매하고 읽는 경우가 많지만, '변방의 북소리'는 한 시간을 올곧이 책 읽는 데에 거의 쓰므로 책에 대한 강렬함이 더 컸다. 그렇게 소개된 책으로 이 책, '검은 꽃'이 있다. 


김영하의 문장력은 익히 소문난 그대로다. 깔끔하고 강렬하며 깊이 빨아들인다. 초반의 힘이 아주 센 작가다. 




1905년, 조선에서의 기구한 삶을 접고 새로운 인생을 열어보고자 천 여명의 사람들이 멕시코행 배에 올랐다. 망망대해를 건너 도착한 땅은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캐릭터 각각의 신상과 면면은 배를 타고 오는 동안의 일정으로 모두 소개했다. 황족의 딸인 연수 일가가 왜 그 배를 탔는지, 바오로 신부가 왜 소명을 접어버리고 머나먼 멕시코를 택했는지, 좀도둑 중의 좀도둑 최선길과 혈혈단신 이정까지... 


오도 가도 못하는 배 안에서 서로에게 끌린 이정과 연수의 로맨스. 그녀가 지나갈 때면 흠씬 풍기는 사향냄새가 독자까지도 매료시켰다. 그러나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기에는 그들의 신분 차보다 그들이 처한 현실의 벽이 더 높았다.


유카탄 반도엔 강이 없기로 유명하다. 반도의 대부분이 낮고 평평한 석회암지대라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질 않는다. 큰 나무도 많지 않고 키가 작은 잡목과 덤불 들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물은 지하 수십 미터 아래의 우물에서 길어올릴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마야의 고대 유적지 근처에선 아직도 직경이 수십미터에 달하는, 차라리 지하수 연못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우물들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석회암층 아래로 내려가 물을 길어 올라온다. (...) 보통 1km 족히 떨어진 곳에 세노테가 위치하고 있었다. 물은 땅에 떨어지는 즉시 증발하거나 스며들었다. 물이 흔하고 지반이 단단한 땅에서 이주한 조선인들을 가장 먼저 괴롭힌 것은 바로 물의 부족이었다. 하늘과 땅, 그 사이를 강산(江山)이라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강과 산이 없는 세상을 그들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카탄엔 그 두 가지가 모두 없었다. -114쪽


금수강산이란 말의 의미가 확 와닿던 순간이었다. 고개를 들면 어느 각도에서건 마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산. 그 산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계곡. 흔해서 쉽게 깨닫지 못하는 소중한 산하가 이 책 속에서 그 존재감을 크게 드러냈다. 그렇지만 이곳 멕시코에서는 적어도 얼어죽을 걱정은 없다는 자조 섞인 소리에 이 탐나는 자연환경의 치명적인 속살도 같이 드러났다. 어딘들 아니 그렇겠냐만은, 이땅은 백년 전에도 지금도 가진 자에게만 윤택한 곳이었으니......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배에 올라탄 이래로 그같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어려서는 굶기고 철드니 때리고 살 만하니 내치지 않았나.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밸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주리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여기에서 버텨보려네. 땅도 사고, 그는 침인지 눈물인지를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곤 말을 이었다. 물론 장가도 가야지. 새끼도 낳고. -96쪽


목숨을 부지할 한뼘의 땅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이 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땅이 없었기에 군인이 되었고, 땅이 없었기에 장가를 가지 못했고, 결국 이 메마른 땅으로 와야 했던 그들이었다. 오늘날의 청춘들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면 기다리는 것은 수천 만원에 달하는 학자금 빚과 비정규직 일자리뿐. 그들에게 연애와 결혼, 이어지는 출산과 육아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 부총리께서는 비정규직으로 못살겠다는 청춘들을 향해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고 뻘소리를 내뱉고 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돌아가냐는 말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열심히 공부시켜서 유학을 보내고, 거기서 터를 잡고 돌아오지 않는 인재가 많이 있다. 단순히 그들을 '애국심'에 호소해서 돌아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돌아가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오늘도 여당측 위원이 세월호 기초조사 예산에 0원을 책정했다는 뉴스타파 기사를 보면서 할 말을 잃었다. 


굶다시피 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이종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밥은 가장 먼저, 많이 먹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의 숭고한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그는 식사 때마다 흙바닥일지언정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가장 먼저 밥숟가락을 들었다. 아들에게는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아내와 딸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가부장 하나 때문에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일이 다반사인 왕조의 후손이었다. -130쪽


이역 만리까지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이종도의 결정 때문이었다. 천여 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을 대표한다는 착각 속에 그는 이곳 멕시코 땅을 밟았다.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이곳에서 '위대한 문자' 한자로 대화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 조선에서 농사로 뼈가 굵은 이들도 혀를 내두르는 에네켄 농장에서 손이 고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능력이 되어도 할 마음이 없는 인사였다. 그럼에도 밥은 가장 먼저, 많이 먹었다는 저 냉소 깊은 문장이 껍데기만 남은 양반의 위선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의지할 곳 없는 이곳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힘을 모으려는 마음이 왜 없겠는가. 당연히 그런 마음들이 보인다. 그러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하루 일이 끝나면 남자들은 술을 마셨다. 남자들과 똑같이 일했지만 여자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못했다. 불을 피우고 밥을 안쳤다. 옷을 깁고 집 안을 치우고 다음날 가지고 나갈 장비를 챙겼다. 차가운 개울물에서 빨래 한번 시원하게 해봤으면 더는 원이 없겠네. 어느 충청도 여자가 서쪽을 바라보며 말하자 다른 여자들이 눈물을 흘렸다. 빨래는 목욕만큼이나 사치였다. 우물은 멀었고 수량도 부족했다. 어서 우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다.

30도를 넘는 더운 날에도 여자들은 치마저고리를 벗지 못했다. 웃통을 벗어붙인 남자들은 술만 마시면 제 아내를 두들겨팼다. 벌써 노름을 시작한 이도 있었다. 노름과 술은 조선 남자들의 뿌리깊은 병폐였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악다구니와 울음소리, 비명과 고함이 밤마다 이어졌다. 유카탄은 남자들에게도 지옥이었지만 여자들에겐 언제나 그 이상이었다. -151쪽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는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달 반 쯤 전에 다녀온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서약서를 썼다. 새신랑은 집안일을 가급적 많이 '돕겠다'고 썼다. 맞벌이 부부인데 집안일은 부인의 일이고 자신은 도우면 된다는 생각을 그 사람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새신부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겠다-라고 썼다. 하아, 부창부수랄까... 


유카탄 반도에서의 삶은 고단하고 처절했다. 큰돈을 벌어 조선 땅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미국 땅으로 건너가 새출발을 하는 게 이들의 목표였지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실정이었다. 애초에 불공정하고 비도적인 계약 조건이었음을 그들이 은 알지 못했고, 속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계약의 노예가 된 뒤였다. 그러나 또 끈질기기로 치면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민족 특성답게 이들은 곧 마야인 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에네켄을 베어냈고, 빚을 털어내고 기어이 조선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입장. 


이들의 가혹한 상황을 알아봐 준 이들이 생겼다. 동포들의 눈물겨운 상황을 고국으로 알리고, 또 다른 교포들에게 알려서 이들을 구제하려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준 이들. 


문제는 경비였다. 이 부분에서 하와이와 본토의 한인들은 놀라운 희생정신을 발휘한다. 이들은 모든 경비를 자신들이 부담하기로 하였고 즉각 모금에 들어갔다. 하와이에서 5441달러, 본토에서 536달러가 걷혔다. 이 밖에 미리 약정한 후원금도 5000달러에 달했다. -278쪽


배 안에서의 시간은 꽤 천천히 흘러갔지만, 유카탄 반도에 도착해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들의 사연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이정과 연수의 로맨스가 결국은 실현될 것인가, 그들은 끝끝내 다시 만나질 것인가 독자는 뒷장을 재촉하며 읽어나갔다. 


처음 경험한 전투의 승리는 이정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는 미국도, 연수도 잊었다. 무수한 아시엔다에서의 멸시와 고난도 모두 잊었다. 전투의 승리에는 순정한 기쁨이 있었다. 그리고 혁명군 내부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요시다의 주방에서 맛본 것과 비슷했다. 남자들만의 세계. 세상의 모든 의무로부터 면제된 세계. 그들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웠지만 그 안에는 어떤 편안함이 있었다. -287쪽


아기를 가진 연수 쪽이 이정을 더 못 잊는 게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전투의 승리에 취한 이정은 테스토스테론에 중독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때의 그에게는 연수조차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작품 말미에는 등장했던 사람들의 인생 최후를 짧게짧게 기술해 주었는데, 가장 충격적으로 큰 폭으로 변한 인물이 연수였다. 그럴 수밖에 없던, 신산한 삶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몰입감이 좋은 소설이었다. 각각의 캐릭터들도 살아 있었고 조선과 멕시코를 비교하며 서술하는 대목에서도 그 확연한 차이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소재도 눈길을 끌었고, 문장력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었으니, 절정까지 천천히 쌓아오르던 이야기가 너무 가파르게 마무리 되었다. 밀림 한가운데에 세워졌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작은 나라가 조금 뜬금없었다. 거기에 대한 설명이, 설득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생각해 보면, 김영하의 작품들은 늘 즐겁게 읽다가 마무리에서 좀 김빠지면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속도 조절이 다소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또 다른 김영하의 작품들을 기꺼이 만날 생각이다. 아쉽기에 더 찾게 되는 미련이 그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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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1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노아님. 요즘 책 읽는데 삘받았나 봐요!! >.<

마노아 2015-02-12 17:06   좋아요 0 | URL
찾아보니 이거 11월에 읽었더라구요. 요새 밀린 리뷰 열심히 쓰고 있어요.ㅎㅎㅎ

다락방 2015-02-12 17:32   좋아요 0 | URL
책 읽는데 삘받은 게 아니라 리뷰 쓰는데 삘 받은 거였군요. ㅎㅎ

마노아 2015-02-13 01:51   좋아요 0 | URL
밀린 리뷰가 카드빚처럼 쌓이더라구요. 털어내고 싶었어요. ㅋㅋㅋ

2015-02-13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3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옆차기 2015-03-02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과 연수의 로맨스만으로도 숨막힐 지경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Dreamer form DFOLD

마노아 2015-03-02 23:09   좋아요 0 | URL
이정과 연수의 이야기는 정말 숨막힐 정도의 감정이 느껴졌지요.
영상으로도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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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성석제는 만담꾼이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의 재기발랄함에 반해버렸다. 진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게 아닌데도 그의 넘치는 유머가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는 그의 진지함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작품 때문에.


일제강점기 부잣집 삼대독자로 태어난 지식인 할아버지는 사상 문제로 고문을 받았고, 그런 할아버지를 구제하느라 그 대단한 집안 살림이 거덜났다. 그리고 야반도주를 해야 했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공부는 멀리하고 땀흘려 노동한 대가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로. 그러나 도망친 그곳은 농사 짓기 적당한 곳이 아니었다. 살림은 궁핍했고 가족들은 고단했다. 그렇게 3남3녀가 태어났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중 넷째 아이이자 둘째 아들인 만수다. 태어날 때부터 머리만 크고 팔다리는 비실거렸던, 워낙에 수재였던 큰형에 비해 모든 게 느리고 더뎠던 아이 만수는 약아빠진 셋째 아들 석수하고도 여러모로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뭐든 느리고 굼떴던 이 만수가 결국엔 집안의 대들보가 된다. 고엽제로 월남에서 큰형을 잃고, 가족들은 서울로 올라왔다. 가족 부양을 못한 할아버지를 대놓고 경멸했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도 모자라 폭력을 일삼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자식들이 결혼하지 않고 자신을 부양하기를 바랐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그 아버지를 똑닮은 석수도 마찬가지로 하게 된다. 


-천지지간 만물지중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염치를 알기 때문이다. 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 염치, 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 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리라. 천분을 넘어서는 것을 욕심내지 마라. 욕심이 과하면 탐심이 생긴다. 탐심은 남의 것을 훔치게 만든다. 도둑질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하면 안된다. 필요한 것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내가 가진 것과 바꾸어라. 돌려줄 것을 약속하고 빌려라. 먼저 말을 하고 구하면 얻으리라.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훔치는 건 안된다. 훔치지 마라. 훔치고 나면 너는 네 것을 모두 도둑맞게 된다. 네 삶을 도둑 맞는다. 그러면 너에게 무엇이 남겠느냐.-28쪽


염치를 강조했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만수의 머리와 가슴 속에만 새겨졌나 보다. 삶의 고비고비, 굽이굽이에서 만수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 모두들 그걸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알고 있고 고마워했지만, 누군가는 알았어도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누이와 남동생의 차이였다. 그러나 염치를 아는 듯 했던 막내 누이도 결국엔 변해버렸다.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든 데는 만수 오빠의 책임도 있다. 처음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어른이라면 그런 나쁜 놈을 알아보고 쫓아버렸어야 했다. -333쪽


학생운동하다가 만난 남편은, 소위 진보입네 했던 그 남편은, 한마디로 쓰레기였다. 그런 쓰레기가 한둘이 아니었음을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한때 자본주의와 국가의 이빨과 독재의 칼날 앞에 놓인 민중을 구하겠다는 뜻을 같이한 적이 있는 동지였다. 민중과 하나가 되어 평생을 살겠다는 각오를 나눈 사이였다. 그런 중에도 동지가 몸살로 정신없이 앓는 틈을 타서,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성폭력을 가하고 나서 ‘내가 도장을 찍었다’고 하던 인간이었다. -318쪽


작품은 만수라는 한 인물이 겪어온 인생의 여정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 세대에 이르고 자본주의 끝장을 보고 있는 오늘에 닿기까지, 즉 대한민국 현대사를 한 인물에 투영해서 보여주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 순박함과 순수함에, 그 애달은 가족애에 뭉클하기도 하고, 또 어떤 대목에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는 비극들에 가슴을 끓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노조가 정당한 노동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생긴 사업장의 피해는 변상할 의무가 없다고 법에도 나와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노동권을 행사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우리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 공장에서 먹고 자고 싸운 모든 게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불법은 법으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했다. 법은 어차피 가진 놈들, 힘 있는 놈들, 그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판검사, 정부, 정치가, 경찰, 강자의 편이었다. -298쪽


단 한번도 가족을 귀찮아 하지 않고,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았던 한 사나이. 빚조차도 살아갈 동력이라 여기며 살아있는 것을 늘 감사했던 한 사나이. 그러나 그의 희생과 헌신을 누군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염치'를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리던 그가 마침내 투명인간이 되었다. 소설은 투명인간이 된 만수를 알아본 또 다른 투명인간의 반응으로부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투명인간이라는 단어가 다시 나오는 데에는 150여 쪽을 할애해야 했다.  

-맞다. 인간은 염력으로 피라미드도 세우고 신대륙도 발견했다. 투명인간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거다. -152쪽


염력으로 피라미드를 세우고 신대륙을 발견한 것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된 투명인간은 '대단한' 누군가로 보인다. 그러나 만수 씨의 고단한 인생을 들여다 보고 마지막에 맞닥뜨린 투명인간은 세상이라는 파도에 깎이고 깎여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힘들었던 한 사나이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모습을 감춘 최후의 수단으로 보였다. 오죽하면, 오죽했으면......


'국제시장'은 천만 이상의 관객이 본,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천만 씩이나 볼법한 영화라고는 여기지 않지만, 천만이나 보고 싶어한 이유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영화였다. 고단했던 그 시절을 살아냈던, 땀흘려 일하고 가족을 지키고 그걸로 애국을 해냈던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게 보내는 일종의 찬사와도 같은 영화였다. 그 영화보다 훨씬 디테일하게 그 시대를 묘사하고, 그 시대의 빛과 어둠을 모두 보여주는 소시민 중의 소시민 만수 씨가 이 책에 있다. 이런 만수 씨를 보며 답답해 하고, 고마워하고, 그러면서 또 이용하고 원망까지도 하는, 우리들이 갖고 사는 온갖 감정의 찌꺼기도 모두 이 속에 있다. 우리의 현대사가, 우리네 인생들이 모두 녹아 있다. 좋은 작품이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아련해지는, 먹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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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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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앞부분을 읽다가 중단됐는데, 거기에 작가가 히말라야를 꿈꾸게 되는 이유를 이 작품을 빌어 설명했다. 승민이 그토록 원했던 안나푸르나를 꼭 가야만 했다고. 그곳에 가야만 슬럼프처럼 한줄도 쓰지 못하게 된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거라고 작가는 대책없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기어이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그 이전까지 내가 읽은 정유정의 책은 "28" 하나 였으므로 나는 당연히 '내 심장을 쏴라'의 승민을 몰랐다. 그가 꿈꾼 안나푸르나가 어떤 의미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막연히 궁금했을 뿐이다. 그런데 얼라!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주연 배우는 이민기와 여진구. 오, 출연진도 좋다. 막강 조연진도 합류했다. "28"을 워낙 인상 깊게 보았으므로 이 작품이 많이 궁금해졌다.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보고 싶었다. 


소설은 흥미로웠다. 28만큼 정제되지는 않았어도, 초기부터 힘있는 문장을 구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캐릭터들도 살아 움직였다. 직접 체험까지 하고 돌아온 정신병원의 세태도 세밀하게 그려냈다. 최근작과 비교한다면 문장에서 덜어냈으면 하는 군더더기가 다소 느껴졌지만, 만약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분량이었다. 마찬가지로 28을 먼저 읽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았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별점 넷을 준 이유다. 이 작품을 먼저 읽었다면 기꺼이 다섯을 주었겠지만, 어쩌다 보니 상대평가가 되어버렸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스물 다섯의 청년 승민과 수명.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친 자가 있다면 전자는 수명이요, 후자는 승민이 될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병원에 숨는 것을 택한 수명과, 출생의 비밀+재산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세상으로부터 강제로 격리된 승민의 만남이었다. 살아온 삶의 방식도 다르고 성격도 판이하게 다른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철저하게 수명이 승민에게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강제입원 100일에 닿을 때에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단 한 번 뿐인 기회도 스스로 놓을 만큼 서로를 걱정하고 위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음과 양처럼 무척이나 다른 성질의 두 사람이었지만 그 둘이 하나가 되어 이루는 조화가 멋드러졌다. 표면적으로는 워낙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승민이 수명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지만, 승민이 최후의 최후까지 승민으로 남을 수 있는 기회는 결국 수명이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역시 두 사람은 음과 양처럼 하나로 묶여도 좋을 법한 관계였다.


책을 다 보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다. 영화에 대한 평점은 무척 낮았다. 덕분에 기대치를 놓고 갈 수 있었다. 예고편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 갔다. 캐스팅 된 두 배우. 특히 이민기는 승민이 책을 뚫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싱크로율이 높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낮은 평점이 이해가 됐다. 그건 이를테면 웹툰으로는 높이 평가를 받은 강풀 작가의 작품이 영화로 옮겨지면 망하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었다. 매체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원작 소설이 훌륭하고, 거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훌륭하지만, 그걸 그대로 영화에 옮긴다고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 소설은 350쪽에 달하는 긴 지면에 캐릭터들을 다 소화시킬 에피소드들을 넣고 엮고 볶을 수 있지만 영화는 기껏해야 두시간이다. 그러니 그 두 시간 동안 관객을 홀릴 수 있게끔 다시 각색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게을리 했다. 혹은 능력이 없었거나.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냥 그랬다. 특히 주인공들이. 싱크로율은 높은데 연기가 어색하다. 연기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본이 별로였던 게 아닐까. 나야 원작을 읽었으니 저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사이사이의 이야기들을 알지만, 그런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은 뜬금없지 않을까? 그래서 더 웃겼어야 할 조연들이 덜 웃기고, 더 진지했어야 할 이야기들의 진정성이 떨어졌던 게 아닐까. 원작만큼이거나, 원작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원작에 못 미치는 영화는 왜 이리 많은 것일까. 아쉽다.


다만 영화에서 보트 타고 호수를 가르는 장면은 시각적 효과가 주는 시원함이 있었다. 그 부분은 같이 응원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정신과 전문의로 정유정 작가가 직접 출연했는데, 워낙에 샤프한 인상이어서 분위기에 잘 맞았다. 까메오 출연 반가웠어요!


치매 기운이 있어서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만식씨를 염소가 기억을 뜯어먹었다고 표현했다. 기수였던 그가 승민을 향해 '또별'이라고 부르며 매달렸던 게 기억에 남는다. 승민이 찢겨진 바지를 입고서 트위스트를 췄던 것, 수명 역시 문을 통과하면서 트위스트를 추었던 게 유난히 좋았다. 같이 노래하며 박수를 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수명의 선택. 그러니까 승민을 위해서 그가 선택했던, 그래서 그가 치러야 했던 희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불과 100일 동안 함께 했던 사람인데, 그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온통 뒤흔들었다. 이제껏 세상으로부터 도망만 치던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으로 한발자국 내딛게 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던 선택이고 도전이고 희생이었다. 서로에게 고마운 인연이다. 


재밌게 읽었는데 28 때와는 달리 딱히 북다트를 꼽지 않았다. 갖고 싶고 담고 싶을 만큼 홀릴 문장은 적었다는 의미다. 그런 까닭으로 내가 갖고 있는 7년의 밤으로 바로 시선이 옮겨 간다. 읽을 거리가 아직 남아 있어서 기쁘다. 예전 작품 중에 절판된 책이 많은데 다시 출간됐으면 좋겠다. 일단, 읽다가 중단된 히말라야 환상방황을 먼저 소화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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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네껜 아이들 푸른도서관 3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검은꽃을 인상 깊게 보았다. 분명 소설인데 너무 리얼한 구석이 있어서 좀 더 찾아보고 싶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이 책을 발견해서 무척 반가웠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 노동자로 처음 간 곳은 하와이였지만, 고생길은 멕시코에서 더 크게 열렸던 것 같다. 살아온 환경이 더 크게 차이나는 것도, 그래서 더 고된 노동이 기다리는 곳도 멕시코였으리라. 조선에서의 삶이 너무 가혹해서,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혹은 어떤 이유로 조선을 떠나야만 했던 이들 1,033명이 멕시코로 이민을 갔다. 열심히 일을 해서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그곳이 지상 낙원일 거라고 기대에 부풀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잔혹한 어저귀 농장이다. 밧줄의 원료가 될 이 거친 식물은 가시투성이여서 작업 시간이 길다. 몇 개의 어저귀를 베어 묶는 데만도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만다. 게다가 채찍으로 사람을 치는 그런 감독관 밑에서 치르는 고역이라니...


태평양을 건너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거센 폭풍우를 견뎌야 했고, 아직도 양반입네 하며 목에 깁스한 사람들도 견뎌야 했다. 그 과정에서 덕배는 옥당마님이라고 불리는 양반의 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 혼인을 앞두고 신랑이 급사하는 바람에 초야도 치르기 전에 과부로 살아야 할 팔자가 된 소녀를 위해 온 가족이 멕시코로 이민을 온 것이다. 죽어도 시댁 귀신이 되라고 떠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무 대책도 없고 별다른 각오도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난 이 세상물정 모르는 양반님네를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전직 백정인 덕배 아버지는 덕배만큼은 공부를 시켜서 사람답게 살게 하고 싶어했다. 조선에서의 백정에게 그런 기회가 있을 리 만무. 과감히 태평양을 건너온 것이다. 약초에 밝은 감초 아저씨 부부가 있고, 다리 밑에서 구걸하며 지내다가 일본인에게 속아서 배를 탄 봉삼이 등이 등장한다. 사연 많은 사람들의 또 다른 사연 덩어리가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대개 전개가 짐작이 되는 것들이어서 소재의 신선함에 비해서 많이 식상했다. 캐릭터들도 뻔한 구석이 있어서 뒤로 갈수록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을 검은꽃보다 늦게 읽긴 했지만, 소설 집필은 검은꽃이 훨씬 앞쪽이다. 작가분도 검은꽃의 영향을 받으셨으려나? 


보진 못했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영화 '애니깽'도 결국은 이 소재이지 싶다. 당시 개봉도 안 한 영화가 국내에서 시상식을 마구 휩쓸어서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돌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검색해 보니 내용들이 대개 비슷하다. 하하핫...;;;;


소설적 재미보다는 이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역사적 배경에 더 관심이 간다. 조선을 떠나 멕시코로 향했던 사람이 천 명이 넘으니,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손을 퍼뜨렸을 인원도 상당할 것이다. 그분들은 지금 조상들의 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한류 열풍이 부는 이 시점에서 어떤 느낌을 갖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좀 더 관련자료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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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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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참 잘 지었다. 수록된 소설들의 제목 하나를 표제작으로 삼았는데 전체 이야기들이 모두 '신중한 사람'으로 수렴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단점이 있다면, 신중하다 못해 복장 터질 수 있다는 점. 표제작인 신중한 사람의 자평을 들어보자.


신중한 자는 저지르거나 부수거나 걷어차지 못한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46쪽 

맞는 말 같다. 신중한 사람들의 저 설명은 누구에게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들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인공의 신중함이란 과연 마땅한가? 자신이 지어놓은 전원 주택을 해외 근무하는 3년 동안 이웃에게 관리비를 주고 관리를 맡겼는데, 그 이웃이 전세를 놓고는 잠적했다. 전세는 얼마 전에 자동갱신되었고, 집주인은 제 집에 들어와 마음대로 집의 경관을 바꿔놓으며 살고 있는 세입자에게 하루 만원씩, 그것도 한달치 선입금을 한 뒤 다락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집주인 혹은 자본가의 횡포 내지 유세에만 익숙해 있어서인지, 자기 집에서 이렇게 빌붙어(?) 겨우 살아가는 '신중한'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속에 천불이 일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흥분하는 건 곤란하다. 이렇게 혈압 오르게 만드는 인물들이, 혹은 상황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많.이.


그래서 이상의 '권태'가 떠올랐다. 정말, 읽는 내내 어찌나 지루하던지, 이보다 더 잘 지은 제목은 없을 것이라고, 제목이 책 내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고등학교 때 생각했다. 아마도 단편이었던 것 같은데, 짧은 글인데도 그랬다. 이제 그 지위를 이 책에게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혹은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 작가는 설명에 설명을 계속 보태고 있다. 의도적인 늘여쓰기, 의도적인 중복 설명들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말에 갇힐 것 같은 어지러움!


그는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일인가를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고 특이한 일도 아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거나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을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113쪽 <이미, 어디>

결국엔 첫문장 하나를 계속 반복하는 이야기이다. 경제적으로는 말의 낭비가 심하지만, 그걸 문학으로 받아들이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어찌 됐든 저 길고 긴 문장들을 다 읽고 나면 강조했던 첫 문장의 의미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의 손톱은 자랄 수가 없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물어뜯을 손톱이 있는 한 언제나 물어뜯기 때문이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손톱을 물어뜯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손톱을 물어뜯는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물어뜯을 손톱이 남아 있으면 불안하기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는데, 물어뜯을 손톱이 없으면 더 불안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물어뜯을 손톱을 찾는다. 그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물어뜯을 손톱이 없어져야 하고 또 있어야 한다. 그는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손톱을 물어뜯고 손톱을 물어뜯어 손톱을 제거함으로써 다시 불안을 만들어낸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 사람에게는 물어뜯을 손톱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하고 있으면 있어서 불안하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손톱을 물어뜯지만, 그가 손톱을 물어뜯는 모습을 보는 사람은 그가 손톱을 물어뜯기 때문에 불안해진다.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은 손톱을 물어뜯음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만들고, 의도와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불안도 만든다. -120쪽 <이미, 어디>


어떤가? 손톱을 물어뜨는 사람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이 얼마나 불안한지,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마저도 불안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맛볼 수 있지 않은가. 하아, 책에 무슨 영기가 서려 있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은 <어디에도 없는>이었다. 그가 걸어온 답답한 인생 행보에 대한 성토는 둘째 치고, 그를 덮어놓고 의심하는 여관주인을 납득시키지도, 이해시키지도 못했던 그의 막연한 기다림, 그리고 이어지는 불운들이 안 그래도 요새 심장 안 좋은 나의 가슴을 더 조이고 말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야 했다. 그곳에 가는 것이 이곳을 떠나는 방법이었다. 그는 그곳에 가기 위해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기 위해 그곳에 가려고 했다. 이곳을 떠나는 일 없이 그곳에 갈 수도 없지만, 그곳에 가는 일 없이 이곳을 떠날 수도 없었다. -241쪽 <어디에도 없는>

얼마나 간절하게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는지가 역시나 절절하게 다가온다. 계속되는 이런 반복된 문장들은 독자를 지치게도 하지만 심정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를 가장 열받게 한 것은 이 작품들이 아니었다. <하지 않은 일>이란 단편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오해를 받고, 해명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대체 어떤 하지 않은 일이 했다고 포장되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받은 그 억울한 감정이 폭풍이해가 되는 것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읽다가 열이 받은 채 잠이 들었는데, 당시와 관련된 꿈을 꾸고 말았다. 그야말로 악몽. 다시 떠올려도 열받네. 


졸지에 재산과 자식을 잃고 온몸에 종기가 생겨 재 속에서 뒹구는 욥을 위로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이 왜 욥을 만족시키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욥은 친구들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않았고(못했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 상황에 맞지 않는 신학 논쟁이 벌어진다. 논쟁이라니.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병문안 온 자리에서 병문안 온 사람과 병문안받는 사람 사이에 그렇게 심각하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는 건 위로가 불가능한 고통이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혹은 하는 자에게나 받는 자에게나 어차피 불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위로의 본질이라는 걸 시사한다고 당신은 생각했다. 욥은 친구들이 그를 위로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위로의 과제를 수행하러 왔을 뿐이라는 걸, 처음에는 몰랐을지라도, 결국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위로의 모양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속으로는 자기의 우연한 불행을 은근히 고소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의 우연한 불행에 필연을 첨가하기 위해 인과응보와 신의 징벌이라는 관념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리하여 친구들이 자기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고통을 보고 즐기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고통이 아니라 쾌락이 친구들을 움직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신은 욥에게 당신을 투사했다. 욥이 되어 그 친구들을 고발했다. -297쪽 <하지 않은 일>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된다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 욥의 친구들은 욥이 아주 잘 나갈 때, 그의 복을 함께 기뻐하지 않았던, 혹은 못했던 게 아닐까. 그랬기에 욥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런 그를 향해 사실은 네가 잘못 살아왔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심판을 받은 거야!라고 지적질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중학교 때 교회 전도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었다. 새로 오픈한 가게에 가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문구 액자가 많이 걸려 있는데, 이 문장은 욥의 친구들이 욥을 비웃으면서 했던 말이기 때문에 오픈 선물로 적당하지 않다고. 그게 진짜인지 내가 꼼꼼히 읽어보진 못했지만, 아무튼 친구들의 저런 지적질에 욥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뛰겠는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예전에 한명숙 전 총리가 돈을 받지 않은 걸 증명하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고 얘기한 것도 같이 떠올랐다.


요새 애청하는 드라마로 '피노키오'가 있다. 오늘 마지막 방송인데 본방 사수는 힘들 것 같다ㅜ.ㅜ

암튼, 드라마는 언론 보도로 희생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과, 언론을 장악해서 수사 방향을 돌리고, 애꿎은 사람을 희생자로 만드는 권력에 대한 고발을 하고 있는데, 주인공 이종석(최달포)은 아주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늘 빵점을 맞아와서 별명이 '올빵'인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이 어떤 목표가 있어서 고등학생 대상 퀴즈 프로에 참가 자격을 얻으려고 시험을 백점 맞았다.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믿고는 달포가 컨닝을 했을 거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네가 컨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 당연히 달포는 자신이 왜 그런 증거를 대야 하느냐고 따지지만 선생은 요지부동이다. 그러자 이 똑똑한 학생은 눈빛을 달리 하며 이렇게 엄포를 놓는다. 


제가 지금 이 교무실을 나가는 순간, 선생님과 옆의 여 선생님이 바람이 났다고 소문을 낼 겁니다. 두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십시오!


선생은 노발대발하며 "내가 왜 그런 걸 증명해야 해!"라고 소리지르며 자신이 저지른 모순을 깨닫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린데도 아주 똑똑했고 스스로를 제대로 방어해 냈지만 그게 가능하거나, 그게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감정 중 최고는 '슬픔'이 아니라 '억울함'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한다. 저 진도 바다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이,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라도 알 수 있었더라면 그 마음의 한은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짧은 소설 한편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똬리를 틀었다. 정말, 끝까지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각 이야기들의 연계성이다. A단편과 B단편이 사실은 같은 주인공 같고, A단편 속 인물 a와 b가 사실은 a와 a' 같은 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꼭 같지는 않지만 은희경 작가의 '다른 모든 눈동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가 떠올랐다. 그 작품집에서는 각각의 단편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사실은 시간 차를 두고 인물들이 겹친다. 이 작품도 그런 연결 고리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아주 드러내놓고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들을 주는 것이다. 


작품은 역시 이승우구나!라며 감탄하며 읽었지만 다소... 아니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했기 때문에 두번은 못 읽을 것 같다.

나는 신중한 사람이므로, 내 성질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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