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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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샀던 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 강렬한 노란색이 유혹적으로 보였는데 제목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어떤 간절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 말이다. 책을 사고 얼마 뒤 이 작품이 큰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홋, 굽이굽이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조건들을 계속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냉큼 읽어야지!


제목에서 내가 느낀 것은 장편 소설이었는데 단편 소설집이었다. 아핫, 역시 나의 감은 역시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군..;;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나 역시 구병모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당시 그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서 과도한, 혹은 의도적인 희망 만들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 끝난 드라마 '여왕의 꽃'을 화장품 바르면서 1분 정도 보았는데 악행을 지속했던 인물들이 인과응보 형식으로 벌을 받아서 비참한 형편이 된 게 묘사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이번에도 권선징악형 해피엔딩인가 보다. 사실, 현실처럼 좋은 놈은 계속 안 풀리고 나쁜 놈은 승승장구하는 내용으로 드라마가 끝난다면 방송국 홈페이지가 마비될 테지.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구성으로 그리하여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고 끝나는 것도 너무 후지지 않던가. 그런 연장 선상에서 구병모 작가의 책들이 좋았다. 새침하고 시크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들의 서릿발 말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고, 그 후유증으로 읽고 나면 우울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작가님의 문장 스타일은 길게길게길게 이어진다. 문장이 마침표를 찍지 않고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의도된 문장 스타일이지만 이런 글은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안 그래도 너저분한 현실의 고리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데, 문장마저도 숨이 턱 막히게 만드니 책을 읽으며 내가 소모되는 느낌이 드는 게 유일한 단점이다. 그런데 여러 권을 읽는 동안 계속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시는 걸 보니, 작가님의 소신이라고 봐야겠다. 독자가 나름의 완급을 조절해서 알아서 읽을 수밖에. 그런 의미로 이 책이 단편집인 건 다행이었다. 쉬어갈 호흡을 마련해 주었으므로.


8편의 단편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의 내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에서는 대학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는 을 중의 을이 되어버린 시간 강사가 나오고, 그밖의 작품에서도 근거 없는 폭력에 노출되어버리는 사회복지사와 비서가 등장하고, 사회의 말단에서 언제든지 소모품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경비원, 콜센터 직원 등이 출연한다. 이들은 단지 설정 상의 바닥 계급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인터뷰나 사전조가사 뒷받침 되었을 것 같은 디테일함을 갖추고서 각자의 위치에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데, 그 모든 현실들이 내일처럼 다가올 만큼 현실적이었다. 그것이, 몹시 슬펐다. 


그가 피 흘리며 구호도 외치는 사람이었을 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쇠지레로 쑤시거나 구둣발로 걷어질러 해산을 종용했던 용역들이 주위에 집결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섣불리 그를 철거할 염을 내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225쪽


살아서 인간으로서 대접받지 못한 그가 하루아침에 덩굴식물의 형태로 괴상하게 죽어버리자 그 죽음 앞에서 주춤거리는 자가 나타났다. 멀쩡한 사람의 얼굴로서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이런 현실 인식이 슬프다. 그러나 이런 죽음이 도처에서 나타나자 이것도 무뎌져서 한때 사람이었던 그 사체는 쓰레기처럼 취급된다.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시적으로 매출이 급감하여 한때 문을 닫을 뻔했던 패션몰은 각종 공격적인 이벤트와 모기업의 조직적 뒷받침으로 기사회생해서 오늘도 순조로운 영업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저가 패션몰 업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이는 툭하면 픽픽 쓰러지거나 부서지거나 덩굴식물이 되어버리는 나약한 사람들보다는 자본의 흐름이 훨씬 정직하고 믿을 만하며 삶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는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사례로 남게 되었다. -231쪽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OECD자살률 1위를 또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인구 10만 명당 29명 꼴이란다. 이는 우리가 1위를 가로채기 전까진 부동의 1위를 자랑하던 일본의 18명 보다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숫자다. 작품 속에서 덩굴 식물이 되어버린 사체를 치우는 미화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이 일을 설명한다.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만은 합니다." -238쪽


미화원의 심드렁한 목소리에서 생명 경시 사상이 느껴진다고 성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만연한 죽음이, 특히나 노동자의 죽음이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그 모든 걸 배경화면처럼 스윽 보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관심이 우리에게 깊숙이 자리한 것은 아닌지 섬뜩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단편에서 택시에 오른 콜센터 계약직 직원은 자신의 집안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주 못사는 건 아니고 두 분 다 평범한 서민층이에요, 옛날 정치경제 교과서에서는 중산층이라고 주입시켰던 그 서민층요. 딱 먹고살 정도는 되고 그 이상 행복해지려거나 사치를 부리려면 다른 것을 반드시 희생해야 하는 그런 계층이죠.  -257쪽


적나라한 묘사다. 몇 해 전인가, 회원 수가 아주 많은 유명 주부 사이트에서 중산층이란 어떤 계층인가라는 질문이 베스트 게시물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들이 댓글로 표현한 중산층의 재산 규모에 입이 쩍 벌어졌다. 내 기준으로는 '재벌급'인 사람들이었는데, 그 정도 규모의 돈은 있어야 '중산층'이란다. 아니 내집 하나 있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밥먹고 살 정도면 중산층이 아니었던가? 그럼 대한민국은 죄다 서민만 있고 아주 조금의 중산층과 극소수에 해당하는 자산가들이 사는 나라였던가? 내가 부러워했던 정도가 기껏해야 이 나라에서는 서민이라는 이 씁쓸한 현실 인식에 웃플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지막 단편의 인물은 혼자서 모든 대화를 주르륵 쏟아내는데, 서른을 코앞에 둔 이 젊은 여성의 한맺힌 듯한 수다에는 공감 가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몇 번이나 한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지나친 리얼리티는 독자를 통곡하게 만든다. 빌어먹을 현실이여!


이렇듯 절절한 사랑 얘기가 실려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가슴 저미며 책을 읽어야 했다. 그래서 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단연코 두번째 수록작인 '파르마코스'다. 앞을 못보는 소년을 붙잡고 온 마을이 다 잠기도록 긴긴 이야기를 끝내지 않았던 주인공의 마음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현실이라면 언감생신 결코 내릴 수 없는 결정, 누군가 그런 시늉이라도 한다면 결사반대했을 결정이지만, 그것이 문학이라면... 대리만족하는 마음으로 어쩐지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흡사 유시진 작가님의 '폐쇄자'처럼, 세상을 닫을 능력이 있다면, 이 세상이 마땅히 닫혀져야 할 만큼 더럽고 악하고 무의미하다면, 기꺼이 그 결정을 내리는 절대적 힘을 지닌 사람의 결정을 지지할 만큼, 마음이 슬퍼졌기 때문이다. 내가 내릴 수는 없는 결정, 내 손으로는 끊을 수 없는 세상의 고리. 그런데 그걸 해낼 누군가가 있다면 어쩐지 지지하고 싶어지는 그런 슬픈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또 아프다. 아마도 그런 마음이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작가님이 76쪽에 인용한 이 구절이 더 마음을 파고든다.


어느 곳이라도 좋다! 어느 곳이라도!

그것이 이 세상 밖이기만 하다면!


-


보들레르


덧글) 69쪽 첫번째 줄의 문장이 부자연스럽다. 

꿀벌은 수분을 시키기 위해 취하며


>> 시키기 위해가 맞는가?? 내가 읽기에는 좀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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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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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신 치바를 애정한다. 작품이 빼어나게 훌륭했다기보다는 그 캐릭터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른바 내가 '흑집사'에 매료된 것과 같은 이유다. 


주인공은 사신 치바다. 죽을 사람 곁에서 7일 동안 머물며 지켜보고는 별 문제가 없으면 죽음에 승인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는 것이다. 치바가 등장하면 항상 비가 내린다. 맑은 하늘은 본적이 없다. 인간이 아니고 당연히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치바가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다.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 최악인 게 정체야.” 얼결에 평소 늘 생각하던 걸 말해버렸다.

“최고는요?” 그렇게 물은 건 미키였다.

당연히 음악이지.” -45쪽


지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가 부른 '마음속의 천국'을 듣고 있는데 절대 공감이다!


이번에 치바가 관찰하고 있는 인물은 소시오 패스에게 아이를 잃은 어느 작가다. 아이를 잃은 이후로 '오늘'이란 단어는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그러나 상대는 너무 치밀하고 악랄해서 법의 심판을 가볍게 피해가고 오히려 유가족을 또 다른 범죄의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는 중이다. 전작 사신 치바는 여러 단편들이 옴니버스처럼 연결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통으로 하나의 이야기여서 진행이 다소 느린 감이 있었다. 게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나쁜 놈의 시키가 계속 승승장구 하니까 읽으면서 굉장히 피로해졌다. 제발 반격을 보여줘!!!


총 소지율이 높은 지역이 낮은 지역보다 자살률이 훨씬 높다. 총 매매를 금지한 곳에서는 자살은커녕 살인도 줄었다고 한다. 사람의 죽음이나 그 사인은 내 일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그쪽 정보는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총 소지가 금지되어 있는데도 연간 3만 명이나 자살하는데요.”

“총이 있으면 그보다 더 늘겠지. 요컨대 사람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안심?”

“총을 사용하는 것은 본인이고 그러므로 사용하는 타이밍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니 위험할 리 없다, 이렇게 생각해. 그보다는 의도치 않은 무서운 사건이 더 두렵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총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는 거야. 본인이 그 총으로 자살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하고. 왜냐하면 총을 만지는 건 본인이고, 본인은 본인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닌가요?”

“충동적으로 죽고 싶어졌을 때, 바로 곁에 있는 총으로 자신을 쏠 가능성도 훨씬 높아져.”

“그렇다고 그걸 총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죠. 총이 없어도 다른 방법으로 죽을 수도 있고.”

“하지만 총은 미수로 끝나기 힘들어.” -229쪽


미국이 자살율이 어떤 지는 정확한 통계를 모르지만 저 말은 굉장히 일리 있다고 여겨진다. 총기 소지가 합법이 아닌 우리나라. 영화 '암살'을 찍을 때 사용한 총은 정말 1930년대 총인데, 아직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찍을 때 총을 빌려서 저녁에 반납하고, 다음 날 다시 빌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해요.ㅜ.ㅜ


그래서 이어지는 이 대목도 아주 크게 수긍이 간다. 


“너무 믿는 거지.”

“너무 믿다니, 누굴 말이에요?”

“자신을 말이야.”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비교적 친근한 담배나 약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사용빈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과신한 나머지 결국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다는 핑계를 생각해내는 것과 목표를 변경하는 것이다. -231쪽


지금 두달 째 운동 중단 중..ㅜ.ㅜ 저녁 대용으로 샀던 닭가슴살은 지난 말복에 닭죽이 되어 이미 소화된 지 오래..;;;;


사신 집단은 정보부에서 정보를 얻어와서 죽음을 집행하는데, 데이터 집계의 실수로 '요절'이 너무 많이 잡힌 게 문제가 됐다고 한다. 그러니 의도적으로 '장수'를 조장해야 했다는 것. 그런데 그 대상이 저런 소시오패스에게 걸린다면 대략 낭패 중의 낭패! 권선징악 결말 원츄합니다!!


작품 곳곳에서 엉뚱한 치바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다. 그때마다 음악이 등장하는 것도 큰 재미. 물론 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복장 터질 수 있다!


작품 말미에 제대로 된 한방을 먹여주는 대목이 있는데, '모방범'에서 범인을 흔들어 자백을 유도하는 부분이 겹쳐보였다. 장르가 비슷해서 그런가?


오타가 있다. 489쪽에 “그렇긴 한지만”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렇긴 하지만-으로 수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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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8-1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가슴살죽? ㅋㅋ

술도 담배도 아...
진짜 첨에 이걸 왜 배웠나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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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5-08-18 09:29   좋아요 0 | URL
아아아, 첫단추가 중요한 건가요. 슬픕니다.
어제 고칼로리 먹었더니 아침에 또 중량 추가. 매우 슬퍼요.ㅜ.ㅜ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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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수년 전에 읽었던 '서울, 밤의 산책자들'이 떠올랐다. 거기 실린 단편들 중 '양산펴기'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백화점 가판대에서 양산을 파는 알바생이 양산을 펴면서 핏, 팟... 뭐 이런 소리들을 반복했던 게 퍼뜩 생각난 것이다. 어쩐지 황정은의 느낌이었다. 찾아보니 동작가의 글이 맞았다. 


그때도 느꼈지만 황정은 작가는 굉장히 감성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듯하다. 창비 팟캐스트 진행할 때의 목소리는 아주 허스키하고 건조한 편인데, 목소리와 글의 느낌은 많이 다르다. 둘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작품은 소라, 나나, 나기의 입장에서 가각 서술하고 마지막에 다시 나나가 서술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다. 어려서 아빠를 잃고 친지들의 배척 속에서 삶의 기력을 잃은 엄마와 함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때 옆집 살았던 게 나기다. 나기라는 캐릭터도 참 좋았지만 그 엄마가 더 근사했다.


나기네 어머니는 떡을 우물우물 먹으며 살풍경한 부엌을 둘러보고, 설탕을 입에 묻히고 있는 나나와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떡을 뱉지 않고 삼킨 뒤, 이 떡의 맛이 좋으니 자기네 밥이랑 바꿔 먹자며 나나와 나를 벽 건너편으로 데려갔다. -40쪽


이미 죽으려고 했었던 엄마 애자는 아이들을 잘 건사하지 못했다. 자매가 쉰 떡을 먹고 있는 걸 이웃집 나기 엄마가 발견했다. 그 떡을 뱉고서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도 되었을 것을, 이 맘 깊은 아줌마는 쉬어버린 떡을 삼키고서 아이들 마음이 다치지 않게 선의를 베풀었다. 이런 엄마 밑에서 나기가 반듯하게 자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 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 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초에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45쪽


자신의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어떻게 생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지를 아는 큰딸 소라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애자의 비극도 이해가 가고, 그런 엄마를 닮고 싶지 않은 소라의 절박함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나나가 임신을 했다. 이 아이에 대한 태도, 그리고 아이 아버지에 대한 태도에 나는 화가 났다. 나나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보겠다고 단단한 결심을 내리는 것 모두 이해가 가는데, 그래도 내 가치관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할리퀸 로맨스를 한권 읽었다.(계속해 보겠습니다-는 읽은지 3개월이 지났다.) 무인도에 불시착했던 남녀가 헤어지고 난 뒤, 여자는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아이를 낳기고 결심하고 남자를 찾아갔다. 결혼을 제시하고 결혼 뒤에 곧 이혼하자고 제안했다. 나름으로는 남자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는 생각이었겠지만, 남자는 이 여자가 간과하고 있는 가장 큰 실수를 바로 간파했다.


"혹시 생각해 본 적 있소? 당신은 지금 아이보다 당신 자신을 더 걱정하고 있다는 걸? 당신이 아이를 낳았을 때 결혼한 몸이었는지 아니었는지가 5년 뒤에도, 아니면 10년이나 20년 뒤에도 문제 될 거라고 정말 믿고 있는 거요? 아이가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에서 자라느냐 아니냐보다 엄마가 자신을 낳았을 때 결혼한 몸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더 신경 쓰리라고 생각하는 거요?" 


-버림받은 그녀 165쪽


아이 엄마가 아이를 임신한 탓으로 자신의 인생보다 아이를 항상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아니다. 그렇게 살수도 없고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아빠의 권리와 의무, 당연히 아이가 아빠에게 받아야 할 마땅한 관심과 사랑, 보살핌의 기회를 뺏어가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과연 나나가 내린 결정에는 자신히 했어야 할 모든 노력의 최선을 다한 것인가 싶었다. 난 그 결정 반댈세!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런 생각 역시 내가 자라온 환경과, 그래서 가져온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이뤄온 거니까. 


나기 이야기도 잠시 해 보자.


나는 이것을 아주 가끔 피운다. 아주 가끔으로 정해두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서 삼가는 것은 아니고 혀가 둔해져 조리에 영향이 있을 것을 걱정한다거나 담뱃진이 밴 손가락으로 식재료를 만지는 걸 꺼리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너의 냄새.

너의 냄새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 자주 피우면 내 냄새가 되어버리지.

피우는 의미가 사라져.

허공으로 길게 풀어져 사라질 때까지 담배 연기를 바라본다. 사과 냄새가 난다.

이것은 너의 냄새. -171쪽


셰프인 나기가 기피하는 담배를 굳이 아주 가끔 태우는 것은 그로 인해 떠올리고 싶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깨진 앞니를 다시 채우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유다.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 사랑, 사랑하는 엄마에게도 밝힐 수 없는 사랑, 그래서 더 처연하고 더 잊을 수 없는 사랑. 


황정은 작가의 글을 몇 개 읽어보지 못했으니 선뜻 단정하는 건 무리지만, 왠지 그녀의 작품은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리듬감이 있다. 작가님 말투처럼 약간 천천히, 호흡을 뱉으면서 나직이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표현 죄송하지만, 젊고 '맹랑한' 느낌이 가득하다. 작가님 특유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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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과 십자가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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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라고 표현하면 조금 과한 것 같고, 기대에는 다소 못 미쳤다는 걸 먼저 밝힌다. 


전직 군인에 무려 SAS 출신 형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과거의 기억 일부를 스스로 봉인한 채 살고 있고 소녀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의문의 사람이 매듭과 십자가, 그리고 짧은 단서가 담긴 봉투를 집으로 배달하고 있다. 독자도 당연히 의심하는 바로 이 매듭과 십자가를 주인공 존 리버스는 어떻게 단순 스토커로 치부해 버릴 수 있었을까? 혹시 많은 스릴러 작품에서 그랬듯이 정신분열을 일으켜서 본인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연쇄 살인범은 아닐까 독자도 일찌감치 의심을 했지만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 존 리버스인 이상 그건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사실, 그렇게 나오면 더 실망했겠지만...


암튼, 범인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그가 왜 그런 짓을 꾸몄는지에 대해서도 사실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당연히 화가 났겠지만 범인을 그 지경으로 몰아간 대상은 따로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다. 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말이다.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시점이 자꾸 바껴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야기를 하므로 나름의 끊어읽기가 필요하다. 


매그레 시리즈를 '수상한 라트비아인' 하나만 읽고 관뒀는데, 거의 1세기 가까운 시간 전에 쓰여진 이 책이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너무 옛스러웠다고 할까. 그런데 1985년 작인 이 작품도 내게는 고릿적 이야기로 읽혀졌다. 그냥, 궁합이 안 맞는 것일 테지. 제목과 소재, 표지는 마음에 들었다. 호기심을 잔뜩 갖게 했는데 캐릭터는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해리 홀레나 미키 할러가 내 타입이다. 다른 캐릭터에 대한 내 애정을 확인시켜준 게 이 작품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위스키가 들어가자 속이 한층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내 다시 나빠졌다. 그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곳 악취가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 그는 세면대 위로 몸을 숙이고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술과  담배를 끊어야 했다. 지금껏 자신을 살게 해준 것들이 이제는 그를 죽이려 들고 있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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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5-08-06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젊은 작가의 치기같은 게 느껴져서 귀엽기도 하고 에든버러의 분위기를 상상해가며 읽는 재미도 쏠쏠하구요. 술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더 공감했던 것도 같네요. ^^;;;

마노아 2015-08-08 01:04   좋아요 0 | URL
제가 기대가 컸나봐요. 좀 심심하더라구요. 그래도 별점 3.5정도라 생각했는데 반올림 했습니다. 으하하핫 ㅎㅎㅎㅎ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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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덮은 날이 5월 17일이었다. 5월 민주주의 시민축제 '그대에게'가 시청 광장에서 열렸고 슬픈 일이 참 많았던 오월을 눈물 대신 시민의 축제로 승화시키자는 취지에 공감하며 참석했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숙연함은 줄어들었고 가족 단위 소풍 나오듯이 즐기는 시민들도 많이 보이고 한층 밝아진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의 눈물을 아니 말할 수는 없었다. 1980년 이후 오월은, 광주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찬란한 봄이, 이 따스한 햇살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싱그러운 계절을 영원히 유폐당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작년에 이 책이 출간됐을 때 많은 찬사를 들은 것을 알고 있다. 빨간책방 게스트로 한강 작가가 나왔을 때, 글에서 느껴지는 그 차분함이 작가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 있어서 신기해했던 것도 기억난다. 아껴두었던 책을 오월에 읽고, 그 오월이 다 지나기 전에 기록해 두려 한다. 


5.18당시 이 책에서 '소년'에 해당하는 주인공 동호는 중3 학생이었다. 또래보다 작고 어려보여서 초등학생으로까지 여겨졌던 그 소년이, 계엄군을 피해 함께 도망치던 단짝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다. 죽음은 너무 순식간이었고 너무 끔찍했고 자지러지게 무서워서 소년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마음 깊이 새겨져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소년은 도청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도왔다. 매일매일 감당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시신들이 몰려들었다.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꼴로 죽어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역시나 알 수 없던 것은 유족들의 행동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17쪽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개죽음 당한 내 가족이 폭도가 아님을, 빨갱이가 아님을 이렇게라도 해서 증명받고 싶었던 건 또 아닐까. 이들은, 그들은 이미 낙인 찍혔다는 것도 모른 채...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31쪽


정혜신 박사가 광주의 트라우마로 지금까지도 힘들어하는 분의 상담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분은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죽어나가고 있는 그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정혜신 박사가 물었다. 그때 몇 살이었어요?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주 어렸었다. 다시 물었다. 그 나이의 어린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상담자도 동의했다. 또 다시 물었다. 지금이라면,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상담자는 망설였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맞다고 대답했다. 정혜신 박사가 말해주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소년의 탓이 아니었다. 손잡고 달렸지만 그 손을 놓친 것도, 혼자 도망친 것도, 차마 말하지 못한 것까지도 모두... 하지만 소년은 묵묵히 이 비극을 열다섯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5월 27일 가장 뜨겁고 비참했던 광주의 도청에서 산화했다. 그리고 이 소년의 이야기는 실화다. 친구 정대까지는 몰라도, 열다섯 소년의 이 죽음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작품은 제목의 주인공 '소년' 동호와 선주만 '너' 혹은 '당신'으로 지칭했고,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모두 1인칭으로 묘사했다. 이미 죽은 정대는 혼백이 된 채로 이야기를 진행시켰고, 나머지 인물들은 시간 차를 두고서 광주와, 광주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때 도청에 있었던 그 학생, 그 청년, 그 여공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들 중 누구도 광주의 그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늘 광주의 그 시간이었다. 마치 온몸에,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이미 온 정신과 마음이 모두 그때 그 시간에 붙박혀 있는 채였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97쪽


고3 학생이었던 은숙은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했다. 제발 분수대의 물을 꺼달라고. 아직도 초상집인데, 아직도 눈물 바람인데, 눈치도 없이 찬란하게 물방울 부서뜨리는 분수대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학생이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모든 출판물이 사전 검열을 당하고, 검은 먹칠이 죽죽 그어지던 시절, 그래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연극을 올렸다. 한줄한줄 이어질 때마다 모든 싯귀가 다 자신들의 이야기 같아서, 은숙은 이 모든 것들이 초혼곡으로 들린다. 그리고 소리 없이 곡을 하는 연극 단원들 속에서 동호를 본다.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소년을 본다. 온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몸으로 말이다.



김진수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히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외모가 여성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며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 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고 들었습니다. -109쪽


이것도 실제 증언으로 들었던 내용이다. 저런 고문을 받았던 분이 의사가 되어 광주로 돌아와서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 고문을 받을 때, 이대로 대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저것이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되었겠는가. 


삼십 센티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166쪽


옮겨 적는 것도 누가 될까 저어되는 그런 장면이었다. 제 몸을 증오하고, 스스로를 경멸하게 만드는 고통과 모욕이 지속되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모두 팔십 만발. 도시의 인구가 40만이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의 시민 모두를 죽일 수 있는 탄환을 지급한 것이다. 그럴 필요를 느꼈다면, 정말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그들 인간 백정들은....


성희 언니는 나와 달라.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

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151쪽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서 살해한 자를 용서하려고 했던 전도연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을 하는 유괴범의 고백에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앙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신을 향해 도전하듯이 폭주하고 만다. 영화 개봉 당시 읽었던 어느 칼럼에서 유대인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먼저 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에 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식의 가르침은 한국식 개신교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선주의 저 고백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겠다는 저 다짐! 고 김대중 대통령께 가장 원망스러운 것 한가지는 학살의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용서했다는 것. 희생자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월권이었어요. 


만약 만화처럼 내게 데쓰노트가 있다면, 제일 첫장에 광주의 학살에 책임있는 자를 제일 먼저 올리고 싶다. 모든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죽는다... 뭐 이런 식으로.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의미 없는 가정과 상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게다가 제2의 광주, 제3의 광주가 탄생하고 있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쪽


근래에 보고서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문구는 "광주 유가족이 세월호 유가족에게"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두번 세번 잃어야 했던 그들 말이다. 용산에서, 세월호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광주의 비극은 재현되고 재생되고 재발하고 말았다. 


사실 고민했습니다. 나는 할 말도 없는데 만나면 뭐하나. 그러다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니까.

그럼요, 어머니가 계셨다면 망설이지 않고 만났을 겁니다. 놔주지도 않고 끝없이 동호 이야기를 했겠죠. 삼십년 동안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211쪽


동호의 형이 작가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역시 정혜신 박사와 남편 분의 말을 빌자면,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다고 한다. 죽은 아이가 영희라고 한다면 영희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미안해서 다른 아이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피한다고 한다. 죽은 아이를 언급하는 게 미안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분들께는 더더욱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그들은 아이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한다고, 마치 20분 이야기한 것처럼 두시간도 세시간도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한강 작가가 얼마나 온몸으로 울며, 또 아파하며 이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꿈도 꾸고 온전히 매료되어서 매소드 연기하듯이 취할 수 있다고 얼마든지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강 작가는 이 이야기와 인연이 닿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소년'과 말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광주의 비극을 고발하고 진실을 증언했다.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미술가는 그림으로, 배우는 연기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귀를 열고 배워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고, 투표해봤자 그놈이 그놈이라고, 세상은 이따위라고 울부짖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포기하기를, 그렇게 좌절하기를...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용산의 불구덩이를 만든 자들이, 저 바다 밑에 소중한 생명을 수장한 자들이, 그래놓고 그 모든 것들을 덮고자 하는 자들이 바라고 있을 테니까.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도 않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도 어렵고, 그걸 지키는 것도 지난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하셨던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담벼락에 침이라도 뱉어야 한다. 그렇게 아주 힘겨운 한걸음을 우리는 걸어내야 한다. 같이 손잡고, 함께 힘을 내어서 한걸음을......

그러니까 우리 독자들은, 이런 책을 읽고 또 읽고 주변에도 권하자. 놀라운 문학작품이면서 빼어난 르포작품이라고,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처럼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라고, 기꺼이 추천하자. 이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걸음이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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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6-02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말도 덧불일 수 없는...... 아직도 되풀이되는 광주를 우리는 도처에서 만납니다!ㅠㅠ

마노아 2015-06-02 09:37   좋아요 0 | URL
곳곳에, 아직도 이렇게 광주가 많습니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