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8 - 전란은 끝이 없어라 김정산 삼한지 8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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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정벌의 실패에 속이 쓰라린 당태종 이세민. 살아 돌아간 것에 감사할 마음이 아니었다.  호시탐탐 다시금 고구려를 치고자 했으나 역부족.

전란이 잦으니 죽어나는 건 언제나 백성들이다.  백제와의 싸움으로 지쳐가는 신라 백성들.  이럴 때에 지배층이 부패하고 제 몸을 사린다면 백성들로부터 충성을 끌어낼 수가 없다.  그런 면에 있어서 신라는 이미 훌륭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화랑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비녕자와 거진, 함절이 대표적인 예였다.

법흥왕, 진흥왕 때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그 후 신라는 백여 년간 몸살을 앓았다.  백제와의 숱한 싸움이 그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쳤던 것은 단순히 영토를 늘리기 위한 욕심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보다는 살아남으려는 본능이지 않았을까.  당시 신라는 삼국 중 그 모양새가 가장 초라했었고, 가장 지쳐있었고, 또 떨고 있었다.  외세를 끌어들여 이후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를 잃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나, 책임을 묻자면 그 땅을 지키지 못한 고구려의 실책이 더 크다고 해야겠다.  김유신이 말하기를, 요동은 스스로 망하기 전엔 누구도 취할 수 없는 땅이라고 했는데, 그 땅이 적의 수중에 넘어갔을 때에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맞을 듯.

김유신과 그의 애마 백설총의 에피소드는 제법 코믹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묵직하고 우직한 내용들의 연속이었는데 모처럼 이렇게 피식 웃을 때도 있다니 의외였던지 더 재밌었었다.

김춘추는 실로 외교를 위해서 태어난 인물 같았다.  인물 모양새는 달려도 그의 세치혀가 나라에 갖다 준 힘은 어마어마했으니...

이세민의 요동행을 아우 나라 신라를 위한 대업이었노라고 추켜세워줄 때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표시하니, 이세민은 민망함을 감출 수 있었고 또 김춘추는 내미는 자신의 손을 부끄럽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실로 그의 언변이 국가에 막대함 힘을 실어준 케이스.

한마디로 신라가 당에게 내준 것은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었다. 당에게 필요했고 신라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한 것.

두두리 거사로도 통하는 비형은 적재적소에 달려나와 위기 때마다 김춘추에게 도움을 주었다.  다분히 소설적 요소이긴 하지만, 독자로서는 긴장을 풀어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해 해주고 있다.

잦은 전쟁으로 죽어 돌아오는 이도 부지기수요, 내리 훈련에 지친 병사들의 불만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유신은 그조차도 지혜롭게 넘길 줄 아는 장수였다.  그가 먼저 술을 가까이 하며 게으름을 피우자 오히려 불안함에 두리번거리는 병사들.  이러다가 전투에 돌입하면 그대로 죽겠구나 싶어 오히려 김유신을 닦달하여 훈련을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로마의 명장 카이사르.  자신을 따르던 충성 부대가 파업(?)을 하자, 제대를 허락하겠노라며 '시민들'이라고 불렀던 카이사르.  오히려 군에 남게 해달라고 사정했던 그의 병사들.  지금 유신의 병사들이 꼭 그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게다가 사로잡은 백제 8명의 장수들의 목숨과 이미 죽은지 오래인 대야성 성주 김품석과 고타소의 유골을 요구하는 장면은 꽤 인상깊었다.  그의 배포와 덕을 알릴 수 있고, 병사들의 사기까지 올려줄 수 있으며 동시에 백제군을 한심하게 깎아내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주었으니 그의 배팅은 실로 남는 장사였다고 하겠다.  용장이면서 지장임을 두루두루 보여주는 멋진 김유신!

반면 백제의 모양새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다.  굶주릴 때는 전쟁도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배부를 때의 전쟁이란 기피대상일 뿐.  군역을 빠져나가고자 뇌물이 오고가니 국가 기강이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  신라가 보름달을 향해 차오르고 있는 중이라면, 백제는 보름달에서 막 기우는 입장에 비유할 수 있겠다.  훗날 통일 신라가 보름달에서 기울듯이.

도살성 전투의 접전은 꽤 치열했다.  함께 살지 못하니 함께 죽는다고 할까.  백제군이 죽은 만큼 신라군이 죽고, 신라군이 죽은 만큼 백제군이 피를 흘렸다.  천존과 은상의 싸움은 비장미가 느껴지기까지 했는데, 20년 만에 적진에서 다시 만난 장수들.  서로의 재주를 아끼는 그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함께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비천무에서 오랜 친구 유진하와 남궁준광이 마지막 대결을 벌이던 그 장면처럼.(거기서도 한 명은 살고 한 명은 끝내 죽었다.)

백성들이란 국경 없이도 어디서든 살 수 있는데, 나라 싸움에 등떠밀려 목숨을 내맡겨야 하는 일이 고례로부터 비일비재했다.  그 사이에 충심이라는 게 있기도 하지만 또 없이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그네들의 운명.  오늘날의 전선도 다를 바 없으며, 이라크에 파병되어 있는 우리 군인들 생각도 나서 내심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신라의 병사들이 충성스럽게 묘사된 것에 비해 백제 병사들은 극도의 개인주의로 몸을 사리는 존재들로 묘사되었는데, 사실이라 할지라도 위험한 시선이라 느껴진다. 

진덕여왕마저 죽고 그 뒤를 김춘추가 계승하게 되었다.  알천이 극구 자리를 마다한 덕분인데, 이 책에서는 알천이 충심으로 거절했지만 책에 따라서는 마지못해 사양했다고 나오기도 하여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 그 시대를 살지 않은 나로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 책에서 묘사된 분위기만 같더라면 김춘추는 실로 복받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진지왕이 폐위되지 않았더라면 자연스레 임금이 되었을 인물이 김춘추인 것도 사실이지만.

도살성 전투 이후 더 의기소침해진 백제.  고구려가 먼저 손을 내밀어 동맹을 강화했다.  왜 고구려는 백제를 향해 손을 뻗었을까?  동맹이 필요하다면 백제와 사이 나쁜 신라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신라가 백제를 치고 한강 지역을 고구려가 차지한다면 그도 나쁘지 않았을 법도 한데 말이다.  두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신라와 당나라 사이가 워낙에 견고하니까 당을 견제하기 위해서 백제를 선택했다는 것과, 또 하나는 신라가 더 장수할(고구려에게 위험한) 나라라고 여겨서 먼저 꺾어버리려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동맹은 다시 강화되었고 전쟁의 막이 올랐다.  넋을 놓고 있던 백제를 먼저 치는 신라와 당.  어려서 해동증자라 불리며 총기가 남달랐던 의자왕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는 터라 전쟁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충성을 다하는 성충을 옥에서 죽게 만들고 흥수마저도 귀양살이를 시켰으니,  여기서 당태종 이세민과 의자왕의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겠다.  태종이라고 위징의 간언이 좋을 리 없었겠지만, 끝내 그의 말을 들으며 중용했었다.  그러나 의자왕은 옳은 말 하는 신하를 두고보지 못했으니 여기에서 이미 백제의 끝이 보인다.

3천 궁녀로 대변되는 의자왕의 진실.  작가는 십수명의 후궁에 300여 명의 궁녀들이 있을 정도라고 말해주면서 이 역시 김유신이 퍼트린 계책이라고 설명한다.  망국의 왕으로 기록된 것도 서글픈 일인데 삼천궁녀의 오명까지 써야한다면 불쌍하니, 그게 진짜는 아니라고 나 역시 꼭꼭 씹어 말해주고 싶다.

이제 9권에선 백제와 고구려가 무너질 차례다.  700년 사직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니 독자 입장에서도 허무하고 서글프다.

10권이나 되는 책을 언제 다 읽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뒷심이 붙어 읽기가 수월해졌고 재미도 더 붙었다.

즐겁게 9권을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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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7 - 도망가는 당태종 김정산 삼한지 7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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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의 부제를 붙이라고 한다면 "헤어날 수 없는 늪, 고구려"라고 하겠다.

양제의 수나라를 쫑내고 당나라를 실질적으로 세운 주역, 당 태종!  양제를 맘껏 비웃었던 그였지만, 양제의 잘못을 고대로 따라가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바로 요동정벌에 뜻을 둔 것이다.

빌미는 연개소문이 주군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았다는 것인데, 그 자신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다시피 해서 정권을 잡은 전철을 보건대, 감히 남의 집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할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가 누군가.  그 잘난 중원의 대 천자가 아니시던가.  자신이 거병을 하는 '대의'를 조서에 담았는데,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조서 자체는 명문장이었다.(쿨럭!)

그러나 알 사람은 다 안다.  그의 거병이 문장에 적힌 대로 '대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쓸데 없는 자존심이었다는 것을, 수양제가 수백만 대군을 일으키고도 실패한 원정을 자신이 30만 대군으로 능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만심.  그간 패배를 모르고 살아왔던 그의 전적이 그 허영심에 부채질을 하였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려줄 위징도 이미 없었으니, 당 태종은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발을 디밀고 만 것이다.  수 양제처럼.

한편, 요동에 전운이 감도니 백제와 신라도 자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제 의자왕이 즉위한 직후 40여 성을 빼앗긴 신라로서는 국운이 기울고 있는 이때 일종의 정치적 쇼가 필요했다.  이때 나서준 것이 김유신!  그는 백성들을 철저히 훈련시켜 자력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병사로 키워냈다.  제 나라를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의지들이 모여서 각각의 백성들을 훌륭한 병사들로 탈바꿈 시켜놨으니... 이것이 곧 신라의 힘이고 훗날 통일의 원동력이 된 것이리라.  로마가 용병을 쓸 때부터 거대 제국 로마가 무너지기 시작한 예를 들어서도 알 일이다.

태평성대로 무뎌지고 배에 기름이 차버린 백제를 보자니, 꼭 조선이 떠올랐다.  건국 후 200년 동안 외침이 없자 무기고의 창칼엔 녹이 슬고, 막상 임진왜란이란 왕대박 전쟁이 터지자 초반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 모습.  평화가 안이함을 불렀고, 게으름이 패망을 불러들였다.  앞서 얘기했던 로마의 끝마무리처럼...

정변으로 황제가 된 당태종 이세민.  역시 정변을 일으킨 연개소문을 곱게 보지 않았다.  자신의 정변은 '대의'고 그의 정변은 천인공노할 '쿠데타'로 몰아버리는 그의 인식이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었었다. 

항복하는 고구려 장군들, 하나같이 패전의 원인은 막리지 연개소문에게 있다고 둘러대니, 아마 승리했더라면 제 공이 가장 크다고 했을 위인들이다.

안시성에서 내세운 배수진은, 이세민의 치부를 까발려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든 것.  이세민을 형제 죽인 무도한 놈이라고 욕을 하고 나니, 그와 싸우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성주 양만춘이 정말 똑똑한 인물이다.  조선의 영조가 선왕이었던 경종 형님을 죽였다는 독살설에서 벗어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제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것처럼, 이세민으로서는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으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물론,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누가 고구려 건드리라고 시켰던가!)

그래도 이세민은 확실히 수양제와 달랐다.  그는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요동정벌의 실패를 인정하고 돌아가는 길, 비단 백필을 선물로 내민 것은 마지막 남은 허세 한자락이었으니, 그 정도는 애교라고 할 수 있겠다.

짐작했던 것보다 안시성 싸움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지 않았는데, 여하튼 그들이 요동을 지켜준 것은 값진 승리임을 부정할 수 없겠다.

신라 선덕 여왕은 여임금으로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슨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모두 여자 임금이 보위에 있는 탓이라고 입방아를 찧어대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했을까.  그러니 그 입들을 막아보고자 황룡사라는 거대 사찰을 지었던 것.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 미봉책일 뿐이었다.  신라의 골품제가 성골 임금만을 요구했으니, 뒤를 이은 것은 승만 공주 진덕여왕.  그녀 역시 50이 넘어서 임금이 되었는데, 당나라의 반응이 재밌었다.  선덕여왕 때와 달리 재빨리 그녀의 임금됨을 인정해주는 외교정책!  요동정벌 실패의 쓰라린 교훈이 당나라의 외교방침을 바꾼 것이리라.  곁에 있는 동맹국, 괜시리 성질 건드리지 말자!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이제 전체 분량의 2/3 정도 읽은 셈이다.  남은 이야기에서 삼한 통일의 이야기가 등장하지 싶다.  김춘추가 진짜 주인공으로 나설 차례고, 김유신이 그 뒤를 받쳐줄 때가 왔다.  계백의 이야기도 더 들어야 할 것이고, 고구려와 백제의 쓰라린 패망도 보아야 할 테지.   보채지 않고 따라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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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6 - 새로운 영웅들 김정산 삼한지 6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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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시대의 인물들이 하나둘 죽고 새 시대의 인물들이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진평왕의 뒤를 이어 선덕여왕이 즉위했고, 백제 무왕이 죽고 의자왕이 즉위했으며,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통해 영류왕을 죽이고 보장왕을 보위에 앉혔다.  중국에서는 당나라의 유명한 황제 태종이 치세를 펼치고 있었다.

연개소문의 정변은 사실 말 그대로 쿠데타이긴 하지만, 그의 쿠데타에 대해서 손가락질을 심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앞서 영류왕의 황당한 정치 노선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나 저자세 외교로 일관해서 당나라의 웃음을 샀고, 고구려의 기상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뿐이던가.  임금된 자로서 우리나라 잡수시오~도 아니고, 봉역도를 갖다 바치질 않나, 진대덕이라는 첩자가 들어와 나라 땅을 두루 살피며 지도를 만들고 있는데도 극진히 대접해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군사 훈련을 시켜 국경 수비에 만전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장성을 십수 년간 쌓게 만들어 백성들의 원성과 공분을 샀다.  뿐아니라 당나라에 잘 보이느라 태자를 직접 인질로 갖다 맡기기까지 했으니, 그가 과연 한나라의 임금이라고 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을 따름이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가 외교적 관행으로서 중국을 상국 대접해 주던 것은 알고 있지만, 수/당 교체기의 혼란기를 틈타 국익을 좀 더 내세울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잡지 못했고, 오히려 철저하게 굽신거리고 나왔으니, 전왕 때의 살수대첩 등이 황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그러니 연개소문 같은 성정의 사람들이 그런 그를 가만히 두고 보는 게 오히려 수상할 따름이다.  정변까지 일으킨 연개소문의 고구려가 장수하지 못하고 왕조가 멸망한 것은 애석한 일이나 영류왕을 향해서 애도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확실히 그의 정변이 성공할 수 있었고, 또 가능했던 명분은 민심의 이반이었다.  백성의 마음이 이미 떠난 군주에게 나라의 안녕이 있을 까닭이 없다.  수양제가 대운하를 만들고 고구려를 세차례나 침공한 끝에 멸망한 것이나, 조선 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끝내 자리에서 쫓겨났던 것도 같은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겠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었다는 것을.  또 속전속결로 쿠데타를 성공시킨 모습은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의 거사가 실패한 것과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일을 준비하면서 머뭇거림은 그대로 실패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아버지 무왕의 뒤를 이어 의자왕도 신라로부터 강역을 넓히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당항성이었지만 대야성을 먼저 친 것은 '성동격서'의 전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는 잘 썼는데, 문제는 지나침에 있었다.  당시 장군 윤충은 성주 김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의 목을 신라로 보냈는데, 고타소가 김춘추의 딸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는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던 신라와 백제 사이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과하면 모자람 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 이때 신라를 등지고 백제로 귀화하는 인물들도 있었으니, 그때마다 그들의 이반 명분이 되어주는 것은 '골품제의 폐해'였으니, 그놈의 뼈다귀 신분제가 나라를 잡는 꼴이라 할 수 있겠다.

김유신과 천관녀의 일화를 어떻게 진행시킬지 자못 궁금했었다.  천관녀의 출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알고 싶었는데, '제사장이'의 민며느리란 설정은 최근의 학계의 시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흔히 이야기 속에서 김유신의 이 에피소드에서 그의 나이 약관의 청년마냥 묘사되었지만, 당시 김유신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때였었다.  작품 속에선 그의 혼기를 놓친 나이와 김춘추의 딸 지소를 처로 맞이하는 부분을 꽤나 설득력 있게 진행시켰는데, 신라의 결혼 풍습 등등이 지금과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위화감 느끼지 않게, 오히려 유머러스하게 넘어가는 매끈함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음 이야기에서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간 김춘추의 활약상이 펼쳐질 듯 보인다.  토끼와 거북이 일화가 어떻게 나올지 역시 기대가 된다.

책의 맨 마지막 부록에서는 당태종의 뒤를 받쳐준 명신 열전이 이어지는데, 이토록 충성을 다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는 신하들이 있었으니 태종이 성군 소리를 듣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그러나 호부 아래 견자 없다고 했는데 당 고종은 왜 그 모양이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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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지 5 - 여왕시대 김정산 삼한지 5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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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서는 3편과 같은 굵직한 싸움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서인지 더 살갑고 가깝게 느껴졌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우정을 뛰어넘은 큰 포부가 보기 좋았고, 그들도 인간인지라 늘 영웅의 풍모가 지닌 것이 아니라 때로 인간적인 실수도 하고 스스로 자만을 떨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보희의 꿈 사건은 워낙 유명한데, 김춘추의 용모가 그렇게 박색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단순히 보희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문희의 선견지명이 따라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화랑세기를 살펴보지 않은 채 삼국사기만 참고했더라면, 김유신이 여동생을 화형시키는 생쇼(!)를 하는 대목에서 김춘추를 나무라는 이가 '선덕여왕'이었겠지만, 이 작품은 화랑세기를 참고한 결과 당시의 연배가 아직 '공주'시절일 때를 제대로 짚어내었다.

또 김춘추가 몰염치하게 문희를 나몰라라 한 것이 아니라, 김유신과 작당을 하고 덕만공주가 신라인과 가야인을 두루 포용할 인재인지를 떠보는 시험장으로 만든 것은 작가의 재치가 여간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전개라고나 할까.

김유신이 고구려군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면모는 가히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승리를 이뤄낸 사서의 기록에 의지해서 이만큼의 현장감을 보여준 것은 작가의 필력 덕분이리라.  적어도 용장 이상은 되고도 남음을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공감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화포'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화약이 발명된 것이 그로부터 몇 백 년 뒤의 일이므로 '화포'라는 표현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화포가 내가 아는 그 화포가 맞다면 말이다.

또 작품 속에서 백제 무왕이 사비가 너무 막힌 곳이라 다시 웅진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국사책에서 배우기를 '웅진'은 방어에 유리하나 외부 진출이 어려워 사비로 수도를 옮겼다고 했기에 어느 쪽 의견이 맞는 것인지 혼동이 왔다.  실제로 무왕이 웅진으로 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사비로 돌아온 것은 사실인데 두 지역의 형세에 대한 설명은 작품 속에서 미진했거나 혹은 혼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택기루'란 이름이 등장했는데 드라마 '서동요'에서 신라에서 백제로 넘어온 첩자의 이름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드라마 작가가 차용해서 쓴 것일 텐데, 실제 사택기루의 연배는 무왕의 할아버지뻘이니 조금 웃음도 나왔다.

김춘추와 연개소문, 그리고 성충은 모두 당나라에서 지기로 지낸 사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각자 고국에 돌아가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어야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무왕은 아들 의자와 풍에게 질문을 던져서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의자의 주장은 왕실의 권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 풍의 주장은 원칙을 지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풍의 주장이 옳게 느껴지지만 임금 장은 오히려 의자의 손을 들어준다.  정치의 비정함과 무정함이 눈에 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성충이 무왕을 만나서 간하는 부분이었다.  335페이지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대왕께서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남의 짐승들을 모두 죽이고 내 집 소와 양들로만 초원을 채우려 하십니까?  
   

원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소름이 돋는 부분이기도 했다.  모두가 국경을 앞세워 창칼로 경계를 하고 서로 땅을 차지하지 못해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서로 창칼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피차에 피흘릴 일이 없을 터인데, 인간의 욕심이 하 무섭고 허무하기만 하다.  이는 고대의 역사에만 접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라고 하겠다.

그러나 저런 혜안을 가진 성충도 훗날 의자왕 대에 이르러서 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군주와 함께 백제의 몰락을 목도하게 되니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삼한지를 읽으면서 그저 옛 이야기 듣듯이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통해서 오늘날에까지 통하는 깊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덧글)천관녀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말았는데, 김유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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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연애사
연해늘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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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을 읽어보는 것은 1%의 어떤 것 이후 처음이다.  나로서는 드문 독서였는데, 1%의 어떤 것보다 훨씬 재밌게 하하 웃으며 읽은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 다솔은 꽤나 상큼 발랄 소녀(?)라고 할 수 있다.  먹는 것 앞에선 꼬리 살랑~ 애교 만점에 무대뽀 정신, 눈싸움이라면 절대 안 지는 내공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연애사는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필연으로 이어진다.  친구와 술마시다가 필름 끊겨 외박한 것이 빌미가 되어, 언니 해솔 대신 맞선 자리에 나갔고, 하필 자리를 잘못 찾아가서 졸지에 '문구녕' 행세를 하며 엽기쇼를 선보였고, 그 바람에 두 남자-휘운, 신혁과 엮이게 된다.  22살 상콤한 나이 다솔에 비하면, 33, 31의 두 남자는 '아저씨' 호칭으로 통하지만 둘 다 능력있고 매너좋고 다솔이 흠뻑 사랑해주는 멋진 신랑감 후보가 된다.

그녀의 엽기적 실수마저 예쁘게 포장되고, 엮이는 사람들은 모두 훤칠 미남에 능력 좋은 사업가이기도 한 것은 트랜디 드라마의 설정과 비슷하지만, 그래도 인정할 것은, 정말 그들의 러브러브가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다.  현실적이진 않지만, 우리가 꿈꾸는 혹은 상상하는 '로맨스'의 조건들은 제대로 갖추고 있는 셈이다.

캐릭터가 제법 생생하게 살아 있고 그들의 역학 관계와 겹치는 우연들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어 책장은 매우 빨리 넘어간다.  다솔이 재벌가 여자와 '성형논쟁' 맞장 뜨기를 할 때는 내가 다 속이 후련해지기까지 했다는 묘한 이심 현상까지도...

작품은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데, 뒷부분은 19금 로맨스가 된다고 하겠다.(어찌나 므훗하던지..;;;)

표지의 디자인이 아찔한 느낌을 준다.  글자의 폰트도 개성있고 색깔도 강렬한 것이 내 마음에 쏙 든다. 
아찔한 그녀의 연애사, 그 비슷하게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 산 보기....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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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왜 먼산보기예요? ㅎㅎㅎ 당면과제겠죠!
내 나이에 걸맞게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같은 로맨스를 꿈꾸고 싶어라~^*^

마노아 2007-09-26 12:00   좋아요 0 | URL
히힛, 로맨스를 꿈꾸는 것은 모두의 '로망'이겠죠^^ㅎㅎㅎ

홍수맘 2007-09-2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싶다.
제가 로맨스 소설 광인거 혹시 아세요? ㅋㅋㅋ
추석 잘 지내셨어요? 인사가 너무 늦었죠?

마노아 2007-09-27 20:44   좋아요 0 | URL
홍수맘님이 로맨스 소설광이었군요^^
헤헷, 추석 잘 지냈어요. 옥돔도 식구들과 맛나게 먹었답니다. 조카가 특히 너무 잘 먹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