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안녕하려면 - 하이타니 겐지로 단편집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츠보야 레이코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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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작품은 세번째다.  가장 유명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작년에 인상 깊게 보았고,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방금 막 읽기를 마친 <우리와 안녕하려면>은 선물로 받은 책이다.  내게 선물로 준 이도 선물로 받았다고 했는데 내게 주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읽기를 마치고 다른 분께 선물로 안겨드렸다.  나보다 더 크게 이 책이 필요한 즐거운 이유가 그분께 생겼기 때문이다. ^^ 

이 책은 짤막한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통점이라면 학교나 선생님이 등장하거나 혹은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소외받는,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번째 단편 <물 이야기>에서는 재일 조선인이 등장하고, <손>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오키나와 전투로 한 손을 잃어버린 선생님이 나온다. <눈>에서는 인도네시아의 가난한 소년이 나오고, <소리> 편에서는 지체 장애아가 나오며, 마지막 단편 <친구>에서는 교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어리고 약한 학생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다섯 작품은 모두 작가의 경험과 추억, 인연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취하고 있다.  첫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경주를 여행할 때 만난 사람이 모티브가 되었는데, 그는 일본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30년 동안 일본 말로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이 작품 속에서 재일조선인 아버지가 수영을 그만두는 이야기로 나온다. 아이들은 수영부가 해체되는 것에 저항하는 의미로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딱 한명 이소선을 빼고. 이소선은 재일조선인 아버지를 둔 아이다. 그 아버지가 수영부에 찾아와 수영 대결을 벌이는데, 그분이 해준 이야기가 싸아하다.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3등 상을 받았을 때 올라간 국기는 태극기가 아니라 일본 국기였다는 것.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손기정 선수의 슬픔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경주에서 만났던 그 사람을 떠올려 본다.  우리 말을 강제로 빼앗겼던 수난의 시대를 아파하며, 자신 혼자서 할 수 있는 저항의 모습으로 일본말을 30년 씩이나 삼갔던 모습.  그의 저항은 작지만 크다.  그래서 더 아프고 눈물이 난다.  작품 속 아버지와 달리 이소순은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자신이 맛보았던 그 세계를 잃고 싶지 않아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의 그 작은 세계를 마찬가지로 지켜주고 싶었다.  이들이 수영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또 선생님들과 학교에 저항을 해도 수영부 폐지라는 결정을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고, 자기들이 살고 있는 그 세계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저항'의 의미도 다시 새겨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야기 <손>이 가장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땅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던 오키나와.  그때의 폭격으로 손을 잃어버린 선생님 이야기.  그 손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았던 당당한 선생님의 모습이 감동스럽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 손을 보고자 했지만 '구경거리'가 아니니 지금은 보여줄 수 없고, 나중에 자연스럽게 볼 거라는 선생님의 말이 짠하게 들린다.  그 선생님의 제자인 학생이 오키나와를 배로 여행하면서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작품은 전개되는데, '선생님'하고 부를 때마다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와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함께 들린다.  학생은 오키나와에서 갑작스런 비를 맞게 된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이 할머니는 전쟁으로 두 아들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원망과 분노의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천황폐하가 아직도 감사의 말씀을 해주시지 않는다고 섭섭한 마음을 비춘다.  할아버지는 말라리아로 사망했는데, 그 역시 전쟁의 희생자인 것은 동일했다.  

뭐랄까.  안타까운 한숨이 새어나온다.  나랏님이 말씀하시면 그저 읍하고 순종해 왔던 '백성'으로서의 할머니.  설령 못 배우고 가난할지라도 나라 일에 휘말려 큰일을 당했던 중요 구성원인데, 사회는 그 아픔을 헤아려 주지 않고 보상해 주질 않는다.  높은 곳에 계시는 천황 폐하, '고마웠다'고 혹은 '미안했다'고 한마디만 해주어도 달라질 그분들의 마음인데, 그 마음 보듬어 주지 않는 그이들의 오만함에 참으로 화가 난다.  전범 국가로서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 그들이니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우리처럼 식민지배를 받아서 원한이 사무친 사람뿐 아니라, 일본 내부에서도 얼마든지 희생자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슬픔의 공감대가 형성된다.  작품 속 선생님은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해줄 생각이 있다면 '오키나와에 대해 공부해다오'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우리의 고통을 위로받는 지극히 평화로운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워하고 증오하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반성하고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복수가 아닐까......

작가의 작은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의 왼딴 섬에서 전사하셨다고 한다.  작가는 작은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어 여행을 했는데, 그때의 감상과 느낌을 담아 세번째 단편 <눈>을 써냈다.  일본인 주인공이 인도네시아에서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여행객을 상대로 잠깐의 정차 시간 동안 부랴부랴 장사를 해내느라 바쁜 아이들과 마주치게 된다.  자신에게는 아주 작은 푼돈이었지만 소년에게는 큰돈이었을 100루피아. 70엔에 해당하는 그 돈으로 산 바나나.  가난하지만 맑고 투명한, 그리고 건강한 눈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이 주인공에게도, 그리고 독자에게도 깊이 각인 된다.  유적지에서 만난 한 아이는 made in Japan이라고 쓰인 플라스틱 장난감 카메라를 갖고 있었다. 주인공이 사진을 찍자 자신도 찰칵! 사진을 찍는다.  소년은 자신의 카메라에 필름을 넣어달라는 시늉을 하는데, 그 카메라는 필름을 넣을 수 없는 장난감이었다. 주인공은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배려하느라 자신의 카메라에서도 필름을 빼내어 찍히지 않는 사진을 찍는다.  비록 사진은 담아갈 수 없지만, 아이의 맑은 눈망울은 필름 대신 가슴에 깊이 새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주고, 아이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어 간 인물의 마음씀에 독자인 내가 고마움을 느낀다.

네번째 이야기는 학교와 선생님이 곧 배경이다.  임신을 했다는 여선생님은 특수학급을 맡을 수 없다고 울어버렸고, 덕분에 나서서 아이들을 맡게 된 선생님.  반 아이들은 모두 7명이다.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음에도, 선생님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부던히도 애썼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와서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들려주고 동물의 생김새와 움직임을 재현해 보인다. 따라와 주는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반응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체육 시간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운동장 사용권을 쟁취(?)해내고, 모래굴을 함께 파본다. 

한 번은 가슴 아픈 일이 있었는데 학생 하나가 절의 주지에게 맞고 넘어져서 오른발에 가벼운 상처를 입은 것이다.  주지는 국보로 지정된 불상이 안치된 본당에 아이가 기어들어갔다고 했는데, 어차피 말을 알아먹지 못할 터이니 주먹으로 강제력을 보인 것이다.  아이는 부처님과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을 부처님의 뜻을 전한다는 주지 스님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비단 그 절의 주지 스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들도 그렇게 나의 목소리와 귀만을 가지고 상대와의 소통에 힘쓰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던가. 

가을 소풍 때 다케시는 물에 떠내려간 친구의 샌들을 주워주다가 자신의 샌들을 잃어버린다. 집 나간 어머니께서 주셨던 그 샌들을 찾고자 댐 아래까지 내려가려는 아이를 선생님이 붙잡는다.  엄마라고 말하지도 못하고 '먀'라고 외치는 아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내게도 들린다.  장애 때문에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다 표현하지 못해도, 아이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뿐이던가. 친구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기특한 모습도 보여준다. 모두가 갖고 있는 '소리'를 갖지 못했음에도 제 안의 울림을 '소리'로 전하려고 한 아이의 아픈 마음이 글자를 통해 독자에게로 전달된다.  작품 <소리>였다.

마지막 단편도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역시 '소통'의 부재가 등장한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오기와 자존심만 살핀다.  상처입히는 말을 거침없이 하고 노골적으로 차별까지 한다.  그런 모습에 주인공은 부당함을 느끼지만 모범생으로 살아온 자아는 항변할 줄을 모른다.  사실, 선생과 학생의 관계는 표면적으로 상하관계로 나타나기 때문에 부당함에 대해서 학생들이 항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그 지각만으로도 다소 안심이 드는 기분이다.  아이들의 판단이 미숙하고 때로 옳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옳다고 믿은 생각을 밀고 나가려고 연대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작품 속 주인공의 아버지도 선생님인데, 그 아버지가 부득불 매로 다스렸지만 그 아버지가 깨우쳐주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주인공은 어렴풋하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자신을 때린 아버지가 몹시 미웠지만 동시에 그 이상으로 좋아한다. 

작품을 보면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사용해야 할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수업 시간에 나는 항상 존댓말을 쓰는데, 학생들도 존칭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말씨가 주는 '힘'도 믿기 때문이다.  말을 함부로 하게 될 때 상대도 함부로 보게 될 소지가 크다.  학교에서, 또 수업이 책임져야 할 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성적이고, 그것이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것이 또 전부는 아님을, 교사도 학생들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선 지켜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 원칙을 잊어버린다면 학교의 존재 이유도 같이 사라진다.  

아이들은 친구의 어려움을 돕고자 힘을 보탰지만, 그것이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의도된 것이 아니라 경험의 미숙에서 온 실수였다.  그것을 집어준 아버지의 어른스러움이 멋졌다. 아이를 때린 것은 동의할 수 없지만!

작품 다섯 개는 모두 친근하게 읽히며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도 함께 선사해준다.  정해진 결말을 표방하지 않으며 '어, 끝났어?'란 느낌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같은 열린 결말도 나쁘지 않다.  독자로 하여금 좀 더 생각할 여지를 주니 말이다.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는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서 무한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그분의 이력을 보지 않더라도 글속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그런 선생님이, 또 그런 작가가 계셨다는 사실에 고마움과 자부심을 느낀다.  그분의 책을 꾸준히 펴내는 양철북 출판사도 아름답다.  독자는 엄마여도, 학생이어도, 혹은 그 무엇이라도 어려서 학생이었고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들일 터이니, 누구라도 이 이야기들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큰 저항, 소통의 부재와 존재, 그리고 연민과 연대에 대해서 생각하며 독후감을 마친다.  서로가 웃는 모습으로 '안녕'을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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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게~ 쓰시느라 수고하셨어요. ^^
이 책을 받은 그날 밤 '물 이야기'만 읽었어요. 저는 단편집은 하나 하나 떼어서 읽어요. 주르륵 읽어버리면 막 헷갈리거든요. 잘 읽고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 흔적을 더듬으면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겠죠~ 고마워요 마노아님!

마노아 2008-06-23 14: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단편들을 주르륵 이어 읽으면 개별적인 느낌이 섞이거나 잘 생각이 안 나기 쉽더라구요.
문학기행 일정 나왔죠? 저도 막 두근대는데 직접 가시는 순오기님은 얼마나 벅찰까요. 다시 한번 축하해요^^

순오기 2008-06-23 23:32   좋아요 0 | URL
앗, 문학기행 일정 진즉 나왔는데 카페에만 올리고 알라딘엔 안 올렸네요.
어여 올려야지~~ 독후감, 독서신문 당첨자 명단도 나왔는데, 광주중학생 손준호는 내가 아는 사람 아들인거 같아요. 성주랑 같은 학년. 내가 어딜 가도 꼭 아는 사람을 만나는데...이번에도!ㅋㅋ

마노아 2008-06-24 00:30   좋아요 0 | URL
어딜 가나 주목 받을 팔자인가봐요. 역시 순오기님의 카리스마에 어울려요^^
 
소년, 아란타로 가다 나를 찾아가는 징검다리 소설 13
설 흔 지음 / 생각과느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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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선의 한 소년이 있다. 역관 출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가졌던 중인 계급의 아이는 부산의 거부 역관 이정의 딸을 연모한다.  이정의 딸 연희를 각시로 삼기 위해 출세하고팠던 소년은 인삼 밀매를 조건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에 따라가게 된다. 이 사건이, 소년의 인생 행로를 확 바꾸어 버린다.

통신사 행렬에는 이언진이라는 역관이 있었다. 천재 시인 소리를 듣던 이언진은 통신사 일정 중에 있었던 숱한 고비에서 소년을 구해주었고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던지며 우물 안 개구리였던 소년의 작은 틀을 깨어부순다.  작은 나라 조선 안에서, 또 신분이라는 굴레 안에 갇히어 오로지 부자가 되겠다는 나름의 포부만을 품고 살던 소년은 이언진을 만나면서 조금씩 성장한다.  이 책이 조선판 성장 소설로 읽힐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년 청유는 일본에 도착해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조선에서 일본은 늘 미개한 나라였다. 그들의 문화와 풍속은 오랑캐의 것이었고 손가락질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청유의 눈으로 목격한 일본은 별천지였다.  조선과 구별되는 지극히 다른 풍속과 문화야 어찌 평가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이 일궈낸 '문명'은 진일보된 것이었고 조선이 따라가지 못한 세계였다. 그 까닭을 이언진은 '개방'으로 설명했다.  나가사키 항에서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허락했던 일본, 때문에 서구의 과학문명과 기술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그들은 이미 조선을 저만치 따돌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기한 경험은 소년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조선 땅에서 괴퍅한 천재 박지원으로부터 망신을 당했던 이언진의 시는 일본 땅에서 없어서 구하지 못하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의 천재성을 일본 땅의 사람들은 알아주었지만 이언진이 인정받고 싶었던 것은 조선 땅이었다.  그리고 줄어들지 못한 그 간극이 이언진을 죽게 만든다.  실존인물인 이언진은 실제로 박지원으로부터 참혹한 평을 받은 것에 몹시 마음 아파했고 그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해 37의 나이로 요절한다. 박지원은 그의 천재성이 자만심으로 망가질까 하여 나름의 애정있는 충고를 했던 것이지만 그의 차가운 애정은 뜨거운 이언진이 소화시킬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언진은 소년 청유에게 문을 두드리지 말고 박차고 나가라고 하였다.  그가 제시한 명제는 뚜렷했고 해답처럼 보였으나 정작 그 자신은 스스로를 둘러싼 문을 두드리지도 박차고 나가지도 못한 채 그 안에 갇히어 애석한 죽음을 맞고 만다.  혈육은 아니었지만 혈육의 정만큼이나 가까웠던 이언진의 죽음은 소년을 더욱 매섭게 단련시키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정이 연루되어 있고, 연희는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이미 시집을 간 상태다.  소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문을 받차고 나가는 대신 다른 세계의 문을 열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바로 '아란타'(네덜란드)로 가는 것이다.

낯선 나라 일본보다도 더 낯설고 험할 게 분명한 아란타.  그곳에서 소년이 새로 일궈나갈 삶이 장밋빛이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조선 땅에 의지할 이 아무도 없는 청유에게는 '도전'이라도 가능한 그곳이 더 큰 가능성을 줄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기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문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지만, 스스로 쌓아 가둬버리는 자아의 문도 분명히 있다.  안타깝지만 이언진은 그 문을 뚫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소년 청유가 아란타로 떠나면서 작품이 끝났기 때문에 청유가 과연 새 문을 어찌 열었을지 알 수 없지만 독자는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새길이 활짝 열리기를 기대하고 또 응원할 뿐이다.

닫힌 사회 조선에서 가진 재능을 다 펼쳐보지 못한 이가 어디 이언진 뿐이었겠으며, 새로운 문을 열고자 발버둥친 이가 어찌 소년 청유뿐일까.  그것은 200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질문이 될 수도 있다.  오늘, 낮에 시내에 나갔다가 국제 엠네스티에서 활동 중인 시민 단체 사람들을 만났다. 홍보 활동에 잠시 귀를 기울였는데 자신들과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한다.  당장 내 앞가림도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당연하게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는데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맺힌다.  우리의 인권을 누가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고. 행동할 때에야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백번 옳았다. 옳았고 동의하기 때문에 더는 더욱 미안함을 느꼈다. 모두가 행동가로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에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 생계를 걱정하는 내 변명이 스스로 구차했다.

나를 둘러싼 문을 생각해 본다.  한 달 이상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지만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의사 샘께서는 아마도 스트레스가 원인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정답일 거라고 나 역시 생각했다.  내 안의 문이 너무 견고해서 좋은 약을 먹고 꼭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것들이 나에게 해방을 주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은 다른 데에 있다. 그 문을 깨부수는 것이 나의 몫이다.  이언진처럼, 좌절할 이유들이 내게 많다. 하지만, 그가 그랬듯 좌절하다가 속절없이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안 되는 이유를 자꾸 생각지 말고, 될 수 있는 이유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를 만들어 보자.  소년 청유처럼 새로운 문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용서'라는 단어다. 용서할 수 없는 이유를 자꾸 생각지 말고, 용서할 수 있는 이유를 찾는 것. 그래야 내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내일부터는 사흘 정도 자숙(?)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나를 가둔 문을 박차고, 부수고 나갈 힘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다.  결과를 알지 못한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소년 청유도 어린 나이에 도전했다.  나도 해보자.

갑작스레 흥분해버려서 개인적인 얘기를 너무 많이 쏟았다. 책의 포장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작가의 이름은 설흔이다. 본명인지 모르겠는데 무협작가 이름 분위기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을 지었다.  선물받은 책인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으로 인해 작가의 전작에도 더 관심이 쏟아진다.

책의 표지가 감각적이다. 소년이 고래를 붙잡고 유영하는 이미지인데 작품 속 꿈과 관련이 있다. 그림만으로 보면 꼭 치마 입은 댕기머리 소녀같지만, 댕기동자라고 생각하자..;;; 푸른 표지의 노란 띠지가 거의 보색을 이루는데 촌스럽지 않고 강조하는 포인트로 보인다.  청소년 소설을 표방했지만 어른들이 읽기에도 나쁘지 않다. 책의 맨 뒤에 조선통신사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보태어져 있는데 그림과 함께 즐겁게 참고할 수 있다.  다소 짧은 페이지가 아쉽게 느껴진다. 별 넷 반 정도 생각했는데 반점을 줄 수 없어 별 다섯이다.  오늘 나에게 '문'이라는 화두를 던져준 고마움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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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서평단 알림
로빙화 카르페디엠 2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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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제목은 익히 들어왔었고 영화로도 꽤 유명했던 터라 줄곧 궁금했었는데, 정작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서평도서로 신청을 하면서 오랜 궁금함 뒤에 비로소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이 쓰여진 배경은 1960년대 대만이다.  전쟁의 폐허에서 아직 다 일어서지 못한 가난한 시기였고, 꿈을 이루며 산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주인공 고아명은 초등 3학년 생으로 그림 그리기를 아주 좋아하는 소년이다.  누나 고차매는 그런 동생을 잘 보듬어주는 6학년 생으로 일찍 철이 들어서 집안 일에도 열심을 보여주는 배려깊은 소녀다.  아버지 고석송은 가난한 농부로서 뼈빠지게 일을 하지만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팔자로 생각하고, 자식들이나 부인에게 자상함이라고는 보여주지 못하는 억센 사나이다.

마을에 대학생으로서 아직 학기를 다 마치려면 2년은 있어야 하는 청년 곽운천이 임시 미술 선생으로 부임해 온다.  때마침 현에서 주관하는 미술 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을 뽑을 때가 되었고, 곽운천은 단번에 고아명의 천재성을 알아보며 아이가 창의력을 맘껏 뽐내며 제 세계를 그려갈 수 있게 격려해 주지만 마을 유지의 아들이면서 아명의 담임선생님 임설분의 동생인 임지홍에게 출전 자격을 빼앗기고 만다.  실력만으로는 고아명이 단연코 앞서고 있었지만, 틀에 박힌 그림만 그려 사진과의 차별성을 주지 못하는 임지홍의 그림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부하고 싶은 다른 선생님들의 추천에 의해 대표로 뽑히게 된 것이다.

곽운천은 우유부단하고 자기 주장도 없으며 이리저리 휩쓸리는 교장 선생님께 만류를 당하고, 또 임지홍과 임설분의 아버지에게 압박을 당하고, 그를 추종하는 선생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교직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또 동시에 임설분에게로 향하는 애정을 감추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자신에게 들이대는 옹수자 선생 때문에 곤욕스러워 하기도 한다.  열등감을 느끼는 임지홍에게 고아명보다 실력이 좋다고 기를 세워주었다가 금세 거짓말한 자신을 후회하기도 하는 이 초짜 선생의 만만치 않은 사회 생활은 거의 반세기 뒤의 지금까지도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교장은 곽운천의 주장과 논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마을 유지이자 의원이기도 한 임설분과 임지홍의 아버지에게 맞서지도 못하면서 난처해 하는데, 그러면서도 바탕은 착한 사람임을 여지 없이 드러낸다. 욕심 많고 드센 사람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도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제 정년 퇴임 나이가 되었으니 고향에서 편히 여생을 보내는 게 스스로를 위한 선물일게다.

미술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거라고 잔뜩 흥분해 있던 아명은 그런 꿈이 좌절되자 밤새 울고 밥도 건너 뛰고 선물로 받은 크레파스를 뚝뚝 분질러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말리는 누이를 마구 때리기도 했는데, 동생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느라 대신 울어내는 차매의 심성이 참으로 곱고 따뜻했다.  역시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할까나...

그러나 아이들이 좌절된 꿈으로 상처를 입었거나 말거나, 아버지 고석송은 차밭에 들끓고 있는 벌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림을 그려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 차농사를 망치면 집안의 생계가 위험해진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올곧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밟혀진 꿈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다행히 국제 대회에 우편으로 그림을 접수할 수 있게 되어 고아명은 더 큰 무대에서 더 크게 꿈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사회 생활엔 여러모로 미숙했던 곽운천 선생은 그래도 천재 소년의 재능을 꽃피우기 위한 자신의 쓰임새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임설분 역시 곽운천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부유한 집안에 시집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압박을 거스를 용기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우유부단한 곽운천에게 마음이 상해 괜히 토라지고 맘에 없는 소리로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버렸다. 결국 곽운천이 학교를 떠나고서야 제 마음을 알아차린 임설분은 곽운천이 보낸 편지를 받아들고 닫힌 가슴을 열어버린다. 뿐아니라 꽉 막혀 있던 자신의 인생 문을 활짝 열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리니, 그녀를 나약하고 용기 없는 인물로 보았던 곽운천 자신보다 백배 천배는 더 용기있는 결단과 반성을 보여준다.

반면, 임설분과 달리 대놓고 곽운천에게 프로포즈를 했던 옹수자의 사랑은 참으로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제 사랑의 성취를 위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곽운천과 임설분을 난처하게 만들었고, 그랬던 자신의 모습은 사랑 때문이었노라고 합리화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서대목 선생의 마구잡이 들이댐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곽운천이 갑자기 사라져서 그녀가 닭쫓던 개마냥 변해버렸을 때는 다소 고소하기도 했다. 뭐랄까... 제대로 삽질한 셈이었지...

곽운천은 비록 학교를 제 의사와 상관 없이 떠나게 되었지만, 대학교를 마치고 정식 교사가 되어서 다시 돌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까지 아명이의 천재성이 꺼지지 않게 임설분에게 뒤를 부탁해 놓았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계획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아명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키우던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어갈 때, 고양이를 구하기 위해서 빗속을 뛰었던 아명은 급성 폐렴에 걸린다. 가난한 아버지는 어머니가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마찬가지로 병에 걸린 한살짜리 아이를 포기하면서 병구완을 했지만, 아명을 위해서는 아무 조취도 취하지 못한다. 빌어먹을 팔자 타령을 하며 자신이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산 목숨들을 먼저 생각해야 했던 아버지의 비참함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살아있는 목숨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야속하다.

국제 대회에서 특선을 받은 아명은 마을에서 천재로 추앙받는 장례식을 가질 수 있었지만 누이 차매의 말처럼 죽어 인정 받는 천재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토록 어린 목숨인 것을.......

곽운천이 처음 고아명 남매를 만나던 언덕에 피어있던 로빙화는 이제 시들어 말라 버렸다. 그렇지만 로빙화는 다음 해에 다시 인간 세상에 황금빛 꽃을 피우기 위한 씨를 남겨 놓고 갔다.  게다가 그렇게 한번씩 피고 지면서 차밭을 기름지게 만드는 역할도 해준다.  비록 천재 고아명은 제 꽃을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스러져 갔지만 남겨진 자들에게 그저 회한만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곽운천과 임설분의 뒷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곽운천이 자신의 각오대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지, 또 임설분과의 사랑을 쟁취하여 얻었을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비록 아명은 안타깝게 죽어버렸지만, 곽운천이 교육자로서 품었던 꿈과 바른 뜻이 올곧게 펼쳐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그리고 그 대상이 아명같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골고루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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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14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으로서 곽운천은 괜찮은 사람이군요~~~ 로빙화가 어떤 생김일지 가늠이 안 되네요.^^

마노아 2008-05-14 09:43   좋아요 0 | URL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요. 어리버리 청년이기도 하지만 순박한 모습이 예뻤어요^^
사진 첨부했답니다. 저렇게 생겼나봐요.

순오기 2008-05-14 18:20   좋아요 0 | URL
아하~~ 로빙화가 저렇게 곱군요. 게다가 노란색이라니~~~
친절한 마노아님 쌩유~~ ^^

마노아 2008-05-14 23:31   좋아요 0 | URL
책의 표지 그림도 로빙화가 있는데 배경이라 굉장히 옅게 표현되었어요. 실제로 보면 색이 더 예쁠 것 같아요6^^

bookJourney 2008-05-14 0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책이 있었군요.
오래 전에 TV에서 영화(?)로 보았던 기억이 나요. 얼마나 펑펑 울었던지 ... ;;

마노아 2008-05-14 09:4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판 '소나기'같은 느낌인데 그보다 더 현실이 절절하게 묻어 있었어요. 영화로 보면 저도 울 것 같아요.
 
목만치 3 - 인물화상경
이익준 지음 / 예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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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만치가 왜로 건너가 소아만치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려주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걸림돌이 된 사랑하는 정인을 죽여주시고 목만치는 가슴에 한을 남기고 백제 땅을 떠난다.  워낙에 하는 일 없이 '연인'의 위치만 차지한 인물이었던지라 죽음에 안타까움은 느껴지지 않지만 너무도 전형적인 진행인지라 화는 좀 났다.

왜에 도착해서 토호 세력을 토벌하고 새로이 자리 매김하는 목만치. 권력이란 부자 사이에도 나눌 수가 없는 것.  여곤 역시 이제 목만치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사규를 앞세워 장인-사위 관계를 새로 맺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나누며 괜스리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사규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의미한 피흘림이랄까.

아무튼 목만치는 여곤의 식구가 되면서 더욱 더 가까워지지만 왜 안에서 그 둘을 불편하게 보는 세력들로 인해 위기에 처하고 만다.  오만 대 오백의 군사.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그가 누구인가. 본국검법의 계승자로 불세출의 용병술을 갖고 있는 천하의 목만치! 당당하게 이기고 열도를 평정한다.

2편에서 허망하게 사라졌던 국강이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살아 돌아오는데, 이 장면이 또 웃기다. 무탈의 경지에 올라선 목만치가 제 목을 내어놓겠다고 했는데, 앞서 스시노오를 살려주면서 활검을 생각하던 그이니 언뜻 자연스런 전개 같지만, 뒤이어 소아만치의 이름을 받을 때 '누구도 꿈꾸지 못한 권력을 떨쳐보리라!'라고 다짐한다.  이 무슨 일관성 없는 모순이란 말인가.

뿐인가. 진즉에 대륙을 평정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부분에서는 차라리 내가 왕이 되었을 것을...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충신상에 위배되는 게 문제될 일은 아니지만, 무욕의 경지를 보여줄 것 같다가 갑자기 야망의 화신이 되는 모습은 좀 불편했다.

대륙 백제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젊은 날에 스쳐지나갔던 인연인 송나라의 미령이 한 몫을 제대로 해준다.  평생 반려자의 가슴에 못을 박은 그녀의 모진 말들은 단심도 무엇도 아니라 그저 이기심이란 생각이 든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1편에서 기자가 천황 가문과 백제와의 연관성을 조사하다가 꿈을 꾸는 것으로 이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다시 꿈에서 깨는 장면으로 돌아온다.  우리 사서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목만치의 일대기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포장하여 영웅호걸로 그려낸 고된 작업에는 박수를 보낸다.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아서 큰 즐거움을 갖진 못했지만 목만치란 인물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기쁜 일이다. 뒤에는 대륙백제령을 포함한 지도가 자세히 실려 있는데, 기왕이면 당시 연표를 같이 실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송나라가 뒤에 나오는 송나라와 헷갈릴 독자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또 백제 왕실의 연표 부재도 조금 아쉽다.  근초고왕 비유왕 개로왕 문주왕 무령왕 등등... 여러 이름들이 등장했는데 한 줄에 꿰어볼 수 있는 시각적 자료가 못내 아쉽다. 왜 왕실 자료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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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11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으로 시작해 꿈깨는 결말인가요? 내가 환타지를 싫어하는 이유...
목만치가 누군지 잘 모르는 순오기는 님의 리뷰로만 눈동냥 했어요.ㅋㅋ

마노아 2008-05-11 17:42   좋아요 0 | URL
목만치란 인물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고, 대륙백제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서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어요. 의도는 좋았는데 글을 풀어나가는 게 제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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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이 신선하다.

한글창제와 반포를 둘러싼 임금과 신하들의 대결 구도.  그 와중에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고 곤 80대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고 실종된 장영실.  하지만 장영실은 세종과의 모종의 계획에 의해서 자처해서 죄를 입고는 명나라에 밀입국하여 세종의 밀명을 받들고 있었던 것. 

보다 강하고 정교한 금속활자를 제조하기 위한 장영실과 그의 제자 석주원의 위험천만한 실험들,  그리고 무대는 확장되어 사마르칸트로, 다시 독일로... 그리하여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의 아버지가 된 구텐베르크와의 운명적인 만남...

소재가 신선하고 동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솜씨가 일품이다.  그같은 생각을 해낸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대가 넓어지면서 사건의 크기도 커지고 이야기도 확대되며 등장인물도 많이 늘어난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스토리들이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충분히 끌어당긴다.

주인공 석주원이 장명실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림자를 뛰어넘지 못하다가 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자각하고, 또 나름의 승부욕도 불태우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때때로 그가 깨닫게 되는 의미들은 폐쇄적인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것들이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독자로서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설정에 비해 뚜렷한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아 조금씩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를테면 구텐베르크는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상인으로서의 자질 이외의 '대의'를 위한 열정은 찾기가 어려웠고, 발트포겔의 분노와 장인 정신도 조금은 약하게 느껴진다.  제일 경계가 흐린 인물이 '이레네'인데 미모의 똑똑한 여성으로 집안에 관련한 비밀이 있다라는 설정인데, 그녀의 지성을 보여주는 예가 드물고, 굳이 이 작품에서 꼭 그녀가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  석주원과의 로맨스를 위해서 부러 등장시킨 것이라면 조금 실망스러운 선택이라고 하겠다.

이역 먼 곳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된 석주원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그의 고뇌가 조금 부족하고 언어소통은 어찌했는지, 또 너무나 확연히 다른 이방인인 그가 신변의 위협 없이 이국 땅에서 그 정도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2%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으로 볼 때는 몹시 재미있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뒷부분까지 어여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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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3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상은 신선한데 스토리는 별로다~~~~ 이런 얘기군요.^^

마노아 2008-04-30 23:36   좋아요 0 | URL
발상 신선하고 뒷 내용도 많이 궁금한데 앞부분은 좀 전형적이었어요. 캐릭터의 장점이 아직 잘 드러나질 않았네요. 저는 출판 전에 읽었던 거라서 수정이 많이 됐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