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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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책 제목을 클릭했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미 주렁주렁 달려 있는 리뷰의 숫자가 이 책이 얼마나 베스트셀러였는지를 웅변해주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드라마화도 가능했을 테지. 뜬금 없이 살짝 질투가 나려고 한다. 작가분 한 미모도 하더니만...ㅜ.ㅜ

서른한 살의 직장인 오은수. 옛 남자친구의 결혼식날, 함께 노처녀 소리 듣던 친한 친구의 결혼 통보 소식을 듣는다.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쌓이던 그날을 장렬히 보내기 위해서 찾아간 술자리에서, 처음 본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게다가 그 남자, 일곱 살 연하였다.  회사의 상관으로부터는 소개팅을 가장한 맞선을 주선 받았고, 특색 없는 데이트로 겨우 구색을 맞춰둔다.

비뇨기과 의사 신랑과 결혼 준비를 하면서 삐걱거리는 친구 재인이,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100일을 채우지 못하고 번번히 남자를 갈아치우지만 또 남자 없이 지내는 날도 없는 친구 유희. 그리고 유희의 사촌이자 물려받은 유산으로 놀탱놀탱 지내지만 마음만은 은수랑 너무 잘 맞는 저스트 프랜드 유준. 서른을 막 넘긴 청춘 남녀들의 자잘한 군상들의 대표 이미지로 발탁된 등장 인물들이다.

회사에서는 적당히 유능하게, 적당히 비겁하게, 그렇게 자기 위치를 지키면서 버티고, 출근 시간만은 하늘이 두쪽 나도 지키려고 하는 평범한 직장인 오은수.  부모님은 분당의 40평 아파트에 살고 계시고 아버지는 퇴직 2년 차. 오빠는 분가해서 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  적당히 대한민국 중산층의 표본인 가정. (사실은 제법 잘 사는 표본?)

독립해서 원룸에서 살기 시작한 지 6개월 차. 은수는 7살 연하남 태오와 동거를 시작한다.  영화 감독의 꿈을 한껏 품고 있고 자상하고 따뜻하고 또 열렬히 사랑하지만 현재로서는 백수인 남자 친구.  달콤한 현재가 안정적인 미래를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에 둘 사이에서 반드시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불협화음. 

해는 바뀌어 은수는 서른 둘이 된다. 친구는 끝내 합의이혼을 했다. 회사에선 치욕을 겪어야 했고 기어이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했지만 안정적인 그 남자 김영수를 다시 만난다. 은수의 행보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동선을 따라가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냉소를 던질 수도 없는 그런 공감을 보태게 된다. 그녀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딱 그 나이 또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평범한 인식 속에서 사는 여자일 뿐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우물 파며 살아왔지만 막상 떨치고 나와 보니 자신의 브랜드 가치라는 게 그렇게 대수롭지가 못했다. 엄마에게는 자신의 '유준'과 같은 오랜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정황을 있는 그대로 이겨내지를 못하고, 오래도록 아버지로부터 막대해짐을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하신다. 그렇게 자신을 휘몰아치는 사건사건사건들 속에서 은수는 위태롭게 균형 추를 세워둔다.

 결혼을 못해서 안달난 은수도 아니었지만, 결혼을 못할 거라고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바로 지금 이때, 비교적 준수한 조건의 그 남자가 나타났을 때 해야한다는 그녀의 선택도 틀려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채워준 뜨거운 사랑이 갖춘 현실의 남루함을 극복하라는 말은 감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은수의 결혼 준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김영수의 과거, 그리고 반전.

작품은 초반 100페이지까지는 큰 감흥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미친 듯이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게 만들었다. 4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인데도 작품은 금세 읽힌다.  그만큼 재밌지만 제목처럼 결코 달콤하지는 않다. 마지막 씬에서 그녀가 맛본 빗방울의 맛처럼 무미건조한, 바로 그 서울의 맛을 아는 까닭일 것이다.

주인공 오은수에게 들이닥친 여러 시련들이 내 기준에서 그리 큰 시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나의 비극이지만, 비슷한 또래의 그녀가 안고 가는 고민들은 고스란히 내게도 공감을 일으킨다.  그렇게 온전히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의 확인까지.

두고두고 끌어안을 감동이라던가, 내 맘이 그 맘이야!하고 무릎을 탁 칠 정도의 이해는 아니더라도 잔잔한 감동과 안쓰러움이 찰랑거린다.  저 역설적인 제목과 소녀지심을 뒤흔들 예쁜 일러스트가 묘하게 어울린다.  작가 정이현을 처음 만난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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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었군요~ 드라마로도 제작됐어요? 도통 드라마를 안보고 사는지라 뭘 하는지도...

마노아 2008-08-17 21:19   좋아요 0 | URL
sbs에서 금요드라마로 방송했어요. 저도 방송은 한 번도 못 봤어요. 최강희가 잘 했을 테지만 원작이 있는 드라마를 먼저 보고 싶진 않았거든요. 책 보고 나니까 드라마는 전혀 안 궁금하네요^^;;;

Arch 2008-08-17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가 1.5배는 재미있어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독님이 연출한건데 마지막에 애매하긴 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쑥 튀어나와 얘기하는 것 같아 좋았답니다. 특히나 저랑 밥먹는게 닮은 최강희가 은수로 나왔다죠. 저 방금 댓글 다는데 으흑, 마노아님... 댓글 다신게 떴어요. 흐흐..

마노아 2008-08-17 23:11   좋아요 0 | URL
저도 책 보고 나서 드라마 정보 보니까 감독님이 재밌는 작품 많이 하신 분이더라구요. 오히려 드라마가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 소개도 좀 더 설득력 있었구요.
근데 밥 먹는 게 어떻게 닮았다는 걸까요??? ^^

노이에자이트 2008-08-17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에 님의 말을 처음엔 최강희랑 은수저로 같이 밥먹었다로 알아들었어요.

마노아 2008-08-17 23:11   좋아요 0 | URL
프하하하핫! 은수저로 밥 먹다! 히트에요^^

바람돌이 2008-08-18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내용인줄 알았으면 드라마 볼걸요. ㅎㅎ

마노아 2008-08-18 02:29   좋아요 0 | URL
전 홈페이지 가서 드라마 줄거리만 읽고 왔어요. 대체로 같지만 미묘하게 분위기는 조금 다르더라구요^^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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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따뜻한 제목 아래 숨겨져 있던 엄청난 폭력과 슬픔의 내용을 이미 겪었는데, '즐거운 인생'이라는 제목 뒤에도 그와 같은 반전이 있을 거라고,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도서관에 새 책이 도착했다고 하길래, 제일 먼저 달려가서 미등록 도서를 빌려와서는, 조금은 두근거리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장을 기쁘게 펼쳤는데, 내가 이렇게 많이 울면서 읽을 거라고는 정말 생각해보지 못했다.  작품이 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인 경험 혹은 어떤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맙소사, 타이밍이 정말 안 좋았다!

세번 이혼하고, 각기 다른 성을 가진 세 아이들과 함께 사는 베스트 셀러 작가의 이야기. 바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분명히 이 작품은 픽션이고, 상상력과 허구, 어느 정도의 미화와 포장이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녀와 아이들의 경험과 축적된 기억이 바탕이 되어 있을 것이고, 때로 그것들은 날것 그대로 노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이런 글들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고 또 누군가는 비아냥 섞인 말들을 내뱉겠지만,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게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게, 또 그 중에서 예쁜, 그리고 잘 나가는 인사들에게 박하게 구는 경향이 있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기에 그녀가 감수해야 하는 일정량의 형벌같은 관심이 늘 따라다니지만 때로 그것이 너무 지나쳐 보일 때가 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나로서는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와 그녀의 세 아들 딸에게도.

작품은 큰 딸 '위녕'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새엄마와 7년을 보내었던 위녕이, 어떤 계기를 통해 아빠를 버리고 엄마에게로 돌아가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낯선 도시에서 새 학교, 새 친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위녕이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들은 너무 조숙해서 오히려 위태로운 느낌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친엄마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의 어떤 부재에서 오는 빈 공간 때문일 것이다. 독자도 느끼는데 친엄마가 그것을 모를 리 없다. 너무 일찍, 너무 쉽게 엄마 아빠를, 그리고 새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는 당부가 참으로 아프게 박힌다.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위녕의 엄마와 아빠는, 불과 물 같아서 서로 어떻게 섞이어 살았을지 상상이 안 간다.  어쩌면 섞이지 못했기에 갈라져서 살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 자리를 잃어버린 것을 묘사하면서 위녕은 이렇게 얘기한다. 그건 아빠 식으로 표현하면 '퇴출'이고 엄마 식으로 표현하면 명왕성이 '자유'를 얻은 것이라고.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달랐을' 뿐이었다.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투쟁할 때는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공동의 목표가 이뤄지고/혹은 사라지고 나자 부부는 서로를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서로가 서로에게 구속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결별 이상의 다른 선택이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당연히 미안하고 또 미안한 일인데도, 이혼은 정해진 순서였다.

그렇게 상처를 안고도 또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내가 그 입장이 아닌데 어떻게 대변을 하겠느냐마는, 그게 왜 불가능한지도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그 사랑에 몰입하여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당연히 아이도 가졌다. 그런데 그 사랑이 오래 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사회적으로 얻은 명성과 부가 오히려 부부 사이에 장벽이 되어버렸다. 서로가 예술을 하던 사람이니까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맘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에게 매맞고 다음 날 페미니즘 강의를 나갔어야 했다고 말하는 베스트 셀러 작가. 그렇게 살았다는데, 그녀가 다시 이혼을 했다고 해서 어찌 돌을 던질까?

세번째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소설에서 쓰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작품 속에서는 굳이 나오지 않아도 전혀 이야기에 방해되지 않는 구조였다. 그녀는 영리하기만 할 뿐아니라 노련하기까지 했다. 당연하다. 중견 작가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세번이나 이혼을 했는데 상처가 없을 수 없고 자격지심이 없을 수 없었다. 딸 자식의 방문 앞을 교대로 지켰다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옛 기억에는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이 세번이나 이혼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싫지만 그래도 그 딸이 불행해지는 것은 더 싫다고 말하는 아버지라니, 암 수술을 받는 날짜에 딸이 해외 학회에 참석하게 되자 기꺼이 다녀오라고 말해주는 아버지, 자신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그래서 후회 따윈 없다고 말해주는 아버지라니...... 그런 아버지가 있으니, 어제 불행했던 것도 억울한데 오늘까지 불행하게 살 수는 없다고 주먹 쥐고 일어서는 강한 그녀가 태어날 수 있었나 보다. 새삼스레, 부모가 줄 수 있는 영향력과 기꺼이 되어주는 기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가족이란 그런 거라고. 그래야만 하는 거라고......

버려진 새끼 고양이 두마리를 키우게 된 일, 그 중 한마리와 이별하게 되고 또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사이에 접하게 된 동생의 친아버지의 죽음 등등. 생명과 죽음의 반복된 테두리 안에서 작품 속 주인공 위녕은 성장한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엄마도 함께 자라버린다. 덮어두었던 상처의 치유와 함께. 서로를 보듬어 가며 위로해 주는 장면들이 참으로 애틋하고, 때로 다른 누군가의 부족함으로 위안을 삼아버리는 미안한 마음들에도 크게 공감해 본다. 그래, 우리는 모두들 그렇게 작고 작은 사람들이지......

작가 자신이 자식들에게 공부 잘해야 행복해지는 것 아니라고, 무엇이 우선순위인지를 힘주어 말하는 대목들은 뜨거웠다. 그것이 오늘의 우리 교육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 알기에, 그리고 실제로도 그녀가 그런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참교육이 어떻고 지성인이 어떻고 말하는 그녀의 친구들의 자녀들이 모두 유학 가서 학위를 받는 '엄친딸, 엄친아'들이기에 그 대조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살짝 비틀어 조롱하는 솜씨에 어쩐지 고소하다는 느낌.

새엄마와 아빠에 대한 오랜 상처를 극복해내기 위해서, 그들에게 상처를 주어서라도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의 자물쇠를, 엄마는 극구 반대했었다. 그것이 딸 위녕에게 다시 상처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나 위녕은 완강했고 결국 엄마는 딸을 이겨내지 못했다. 대신 그녀가 택한 것은 딸의 잘못된 선택에 동참하여 그 죄의식을 같이 지고 가는 것.  나는 말렸으니 책임 없다, 가 아니라...... 말리지 못했으니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 그 엄마의 마음이 나는 오래오래 짠했다. 엄마가 아니라면 누가 그렇게 해줄까 싶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위녕은 자유를 얻었다. 비록 아빠에게 어느 정도의 상처를 주었지만, 위녕이 성장한 것처럼 아빠도 그 자신의 성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신만 피해자인 척 하는 것, 정말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 아닌가. 물론, 진짜 속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위녕이 고3 수능을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장면은 좀 비약이 있어 보였다.  앞 부분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어떤 선생님을 꿈꾸는지 말하는 대목에 있어선 코끝이 찡했다. 너무나 많아진 이혼율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하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기 때문에 더 그랬다. 비록 위녕은 엄마 아빠의 이혼으로 큰 상처를 안고 자라왔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엄마 밑에서 역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행복한 아이로 성장해냈기 때문에, 그런 위녕이 품어안고 가르칠 아이들은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작가 공지영은 똑똑하다. 작품을 보면 그런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쓰면 독자들이 감동하고 또 어느 대목에서 울어버릴 것인지 알고 있는 작가로 느껴진다. 어쩐지 깍쟁이 같고 어쩐지 약은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작가에게 감동하고 또 공감하는 내가 싫지 않다. 재미도 주고 감동도 주는 매력적인 작가인데 고마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녀가 만들어낸, 그리고 여전히 만들어 가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에 아련히 웃어 본다. 외형적인, 물질적인 즐거움도 무시할 수 없지만, 결국엔 그 안의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 그 구성원들의 몫이 제일 크다는 것도 새삼 다시 한 번 느낀다. 그래서, 사실 그래서 나는 지금 많이 슬프다. 내 가까운 누군가가 겪게 된 어떤 슬픔 때문에.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지만, 아이들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결코 하지 말라고, 나는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작품 속 위녕이 말했듯이,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행복할 수 없다고. 그게 진실이라고. 세상의 시선이 아무리 차갑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이라면 나는 반드시 지지하겠다고...... 즐거운 나의 집을, 꼭 만들어 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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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7-23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마노아님, 저도 막 이 책 리뷰를 쓰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마노아님 만큼 큰 감동을 못받았어요. 바로 마지막 구절에 쓰신 이유때문인 것 같아요. 어떻게 쓰면 독자들이 감동할지 알고 썼다는 것이 바로 그 독자의 눈에 너무 여실히 나타나서요.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즐거운 나의집' 만들기가 얼마나 녹녹치 않은 일인지, 저도 가끔 그런 것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제 서재에 그 노래를 올린 적도 있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마노아 2008-07-23 11:40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어떤 사정 때문에 이 책이 밟힌 것 같아요. 영리하고 약은 게 눈에 보여서 나아중에 다시 들춰보고 두고두고 곱씹을 작품으로 기억되긴 힘들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내게 폭발적인 눈물을 주었던 것은 분명하니까, 기꺼이 별 다섯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즐거운 나의 집 노래 올렸던 게 생각나요. 그 노래, 슬퍼요..ㅠㅠ

연두부 2008-07-23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읽고...공지영씨...참 영리한 작가네....하는 생각이...쩝

마노아 2008-07-23 11:41   좋아요 0 | URL
베스트 셀러 작가가 괜히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순오기 2008-07-23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독자의 상황과 감성이 어떠냐에 따라 감동의 폭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는 큰딸 대학입학식을 앞두고 인천 동생집에서 읽으며 그 부모님의 심정에 동감하며 많이 울었어요~
그때의 내 상황과 감성이 그랬어요.ㅜㅜ
공지영씨 똑똑하니까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도 들었고요. 작품 속 위녕은 교대에 갔지만,
실제는 작가를 지망한다고~ 시비돌이님이 알려주셨어요.^^

마노아 2008-07-23 11:44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댓글 본 기억이 나요. 얼마만큼이 실제 모습이고 얼마만큼이 허구인지 많이 궁금해지더라구요. 사생활의 영역이니까 궁금해도 어쩔 수 없지만요.
암튼, 사람들이 하듯이 무턱대고 돌만 던질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다 이유는 있으니까요. 이 책 다음에 나온 에세이집도 읽어보려고 해요^^

순오기 2008-07-24 03:44   좋아요 0 | URL
저한테 행운을 가져다 준~ 민주의 생일선물이었고 이주의 리뷰를 안겨주었죠.^^

마노아 2008-07-24 08: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랬었어요^^ 생일 선물로 책을 사주는 엄마라니, 너무 근사해요!
 
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 초록도깨비 낮은산 작은숲 15
김중미 지음, 유동훈 그림 / 도깨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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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중미의 전작 '괭이 부리말 아이들'에서도 인천을 배경으로 한 가난한 사람들의 따듯하고도 처절한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책도 비슷하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냥 짐작일 뿐이다.

진도가 고향인 아이들의 부모님은 빚때문에 인천으로 도망쳐 와 살고 계셨고, 아이들도 할머니와 함께 인천으로 따라온다. 첫째 상윤이, 둘째 상민이, 셋째, 상미, 그리고 막내 상희까지 네 남매.

오래오래 둥지를 튼 집을 고치면서 발견하게 된 일기장 상자. 네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첫째 상윤이는 오래된 짐들을 버리라고 했지만 셋째 상미는 그것들을 소중히 갈무리 한다. 이 책은 그 아이들의 서로 다른 시간대의 일기를 토대로 긴 흐름을 만들어 냈다.

상윤이의 일기에서는 처음 인천에 도착해서의 낯설음과 좁은 골목길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다. 우산조차 펼 수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그래도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놀이를 즐긴다.  이때가 1990년이었다. 아이는 첫째로서 지게 된 책임과 의무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엄마 대신 아빠 대신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할머니를 도와 집안 일을 한다.

둘째 상민이의 일기는 93년도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녀석이 아직은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학교 저학년일 무렵이었을 것이다. 남자들 사이의 우정에 껌벅 죽는, 그리하여 의리를 지키려고 무던히 애쓰는 그런 개구쟁이 사내아이로 자라 있었다.  아이들은 똥바다라 부르는 시커먼 바닷물에서 놀고 배를 만드는 순복이 할아버지를 구경하기도 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셋째 상미는 문학소녀의 감성을 지니고 있다. 남들이 아파트에 들어가 살고 빌라에 들어가 살 때도 그 삭막한 부유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때는 1997년도였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그 시기였다. 아버지는 실직하여 하루하루 노동의 대가로 생활을 이어가셨고, 연일 이어지는 부도로 삶이 막막해진 이웃들이 곳곳에 보인다. 함께 살게 되면 더 따스하게 대해줄 거라 믿었던 엄마는 점점 더 돈만 외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런 엄마를 견뎌내는 것이 식구들 모두에게 고역이 되어버렸다. 순복이 할아버지는 똥바다가 사라져 더 이상 배를 만들 수 없게 되어 폐휴지를 주워 생계를 여몄고, 아버지는 일자리에서 잘려 익숙치 않은 다른 일을 하다가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사업주는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하고 가족 모두의 고민은 깊어간다.

공부가 신통치 않았던 오빠는 학비 면제를 조건으로 졸업 후 반드시 배를 타야 하는 선원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상미야, 너는 공부 잘 하니까 꼭 대학 가. 오빠가 배 타서 돈 벌면 너 대학에 보내 줄게."

일기의 주인공 상미는 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썼는데, 읽던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못해도 너는 꼭 했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보태어주는 애틋함이 고맙고, 아직 어린데도 불구하고 이런 사회적 책임과 고통에 내몰린 아이들이 가여웠다.

큰언니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언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도 모두 갖췄지만 생산직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울고 싶은 마음을 이제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렇게 마음이 죽어간다.

동네는 점차 아파트로 채워져 간다. 서민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임대 아파트가 아니라 돈이 되는, 부자들만 와서 살 수 있는, 땅 투기의 대상이 되는, 그런 아파트들이 죽죽 들어선다.  모두가 고만고만 가난할 때는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도 들리고 서로의 부족한 살림을 이해해 가며 나누며 사는 삶이 가능했는데, 이제 경계는 확실히 그어지고 말았다. 비단 97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십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으로 아파트는 사람들의 삶과 삶 사이의 금을 더 강화하고 있다.

길음뉴타운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서민들은 강북구 쪽으로 더 내몰렸다. 정치인들이 약속하던, 투표를 부르던 그 듣기 좋은 말들이 사실이었다면 그들은 살았던 땅에서 더 편한 일상을 보내야 마땅했지만 변두리로 변두리로 더 내몰려야 했다. 강북구 쪽의 학교에서 일할 때 들었던 이야기들은, 지금 은평뉴타운으로 또 변두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아이들이 자라는 학교에서 다시 또 듣고 있다.

2001년, 넷째 상희의 일기에서 순복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하루 일가는 대신 그 집의 상 치르는 것을 도왔는데, 그 덕분에 아버지는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일용직으로 일하시는 아버지의 처지란 그렇게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데에도 생계의 위협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끝은 비교적 밝고 훈훈하게 마쳐진다. 아버지가 취직에 성공하셨고, 좀 더 모양새 그럴싸한 빌라에 전세로 들어가느니 우리집을 고쳐서 살자는 합의 하에 집안 정리가 시작된다. 첫 이야기에 나왔던 일기장을 찾는 과정이 여기서 발생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에서 이 이상 어떻게 밝고 명랑한 분위기로 마무리를 짓겠는가마는, 현실 속에서 이들 가족들의 이야기는 차라리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연, 이 책속의 셋째 상미처럼 가난해도 도란도란 이 마을에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소망할 아이들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그 아이들이 그 마음 변치 않고, 그 기대를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애써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지만 힘주어 밝은 척하기 힘든 세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그저 순진, 천진, 낭만을 품어안고도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하는 세상인데. 좋은 독서 끝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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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15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은 소설의 마무리와는 다르겠지요~ 김중미씨가 그리는 곳들을 나는 잘 알지요.
나도 그런 과정을 겪어냈던 인천살이였으니까요~ ㅜㅜ

마노아 2008-07-15 21:08   좋아요 0 | URL
지독한 현실의 비참함을 반영하지 않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 또 그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공선옥 작가가 문득 떠올랐어요.
 
[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눈물나무 카르페디엠 16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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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를 받아들고는 깜딱 놀랐다. 책 표지가 어찌나 지저분하던지 내가 받아본 어떤 중고도서보다도 끔찍했다. 헌데, 자세히 보니 지저분한 컨셉을 디자인으로 잡은 것이었다. 지금도 언뜻 보면 꼭 피가 묻은 듯한 느낌이어서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민자들의 눈물과 기구한 사연을 듣고 자라는 눈물나무. 그리하여 물이 없어도 자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나무. 그러니, 그 눈물 나무의 눈물이란 다름 아닌 '피눈물'에 해당될 것이다. 책의 황량한 디자인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일종의 액자식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루카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에필로그에서 다시 첫 부분의 이야기하는 루카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시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어리둥절해 있었다.

멕시코인인 루카의 가족들은 할머니와 삼촌을 빼고는 모두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누나와 작은 형은 무사히 엘에이에 도착해서 이모 가족과 살고 있고, 아버지와 큰 형의 생사는 알지 못한다. 멕시코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고,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었던 루카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그 와중에 목숨을 잃거나 전과자가 되는 사람이 숱하게 많고 되돌려지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 루카 역시 그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루카가 국경을 넘어 엘에이의 가족을 만나는 과정까지는 긴장감이 덜했다. 국경 안내인으로 일하는 큰형을 만났고, 그를 통해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극적인 사연도 알아냈지만 아이의 고민과 서러움은 독자에게 애달프게 울리지 않았다. 으레 신파가 나올 거라고 짐작했던 내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까.

불법체류자로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굶주림의 공포와는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장래를 꾸려나가기 위해선 학교도 마쳐야 했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인종차별과 싸워야 했고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있어야 했다. 학교에서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모의 아들 카를로스는 의대생인데 자신이 갖고 있는 시민권이 함께 살고 있는 이모 가족들로 인해서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이모와 이모부는 그가 단지 운이 좋아서 미국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가족의 안전을 함께 걱정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카를로스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새로운 이민법은 불법 체류자=범죄자로 분류했고, 미국 내에서, 또 엘에이 안에서 노동의 중추를 맡고 있는 라틴계 이주민들이 대거 단결하여 파업으로 투쟁한다. 실제로 그 법률이 통과되어 지금 시행중인지, 이들의 단체 행동에 주춤하여 폐기되었는지 나로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들은 얼마든지 있고도 남을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답답해진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도 해외 노동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성장했다. 우리도 아메리칸 드림을 짊어지고 여기까지 왔건만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또 얼마나 매서운 이중잣대를 보였던가. 또 굶주리고 있는 북한 땅을 떠나서 중국으로, 또 우리나라로 들어오려고 하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위험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고 날마다 켜드는 저 촛불들은......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배고파봐야 남 배고픈 것이 눈에 밟히고, 자신이 서러워봐야 남의 힘든 사정도 눈에 들어온다. 집이 세채나 있는 내 친구는 영화보고 돌아가는 길에 촛불집회로 노선이 차단된 버스가 오지 않아 짜증이 났다고 했고, 사람 많은 곳 싫으니 정치적 성향은 둘째치고 그런 자리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너의 자유고 또 너의 입장이지만, 그런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것은 좀 미안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걸 입밖에 내지는 못했다. 부유하고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 아이에게 연대의 필요성을 말하고 설득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할 일이었지만, 나는 무엇으로 우리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해야 할지 공집합을 찾기 어려웠다.

물론, 아닌 사람도 많다. 이 책 안에서도 부자촌에 살면서 든든한 아버지를 두고 있는 베로니카는 오히려 주눅들어 있는 루카보다 더 앞장서서 불법 이주자들의 권익을 위해 애를 쓴다. 자신이 안전한 노선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장된 삶을 사는 사람이 모두 그녀처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건 충분히 고마워해야 할 일이고 또 칭찬해 마땅한 일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해야 하는 겸손과,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전과 최소한 굶지 않고 살 수 있는 부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미덕이 모두에게 요구된다. 또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이 우리와 함께 공생하는 것이 우리가 던져주는 '동정'과 '관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라는 깨달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주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장애인, 그밖의 모든 억압받고 설움당하는 우리의 다른 이름들에게.

초반에 몰입이 조금 힘들었지만 뒷심이 강한 책이었다. 쉬엄쉬엄 천천히 읽을 생각이었는데 읽다보니 결국 다 읽고 말았다. 길지 않은 분량이기도 했고 안타까운 전개가 내용을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눈물과 애절한 이야기로 자라는 나무가 아닌, 사람들의 건강한 웃음과 행복한 사연들로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그 나무를 꿈꿔본다. 결국 그 나무를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연대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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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1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무가 그런 의미군요~ 양철북 책이라 반가웠어요.^^

마노아 2008-07-15 10:07   좋아요 0 | URL
양철북 책이라 벌써부터 신뢰가 갔더랬어요. 제목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달리 책 속에서 저 나무는 그닥 나오지 않아요.
그래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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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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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베스트셀러를 읽은 듯하다. 출간 전에 결말을 봉인한 예약주문을 받는 등 떠들썩한 신고식을 치렀었다.  퓰리처 상에,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고, 작가의 걸출한 명성까지 모든 박자를 다 갖춘 듯했다.  제목에선 비장미가 느껴지고 칙칙한 표지의 암울한 색에서 한차례 심호흡을 하게 만든다. 이 작품, 어떤 느낌으로 읽힐까.

어제 펼쳐들고 오늘 다 읽었다. 한 번 잡으면 계속 읽게 되는 소설이었다. 단락은 끊어져 있지만 장의 구별은 없고 문장 부호도 쉼표와 마침표 외에는 없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생각나는 스타일이다.)게다가 등장인물도 아버지와 아들 외에 거의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이들은 끝없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작가는 친절한 설명을 보태지 않는다. 좀 더 읽으면 나오려나? 좀 더 읽으면 구체적인 단서가 나오려나? 호기심을 갖고 계속 덤비지만, 읽으면서 차차 그런 단서들이 의미 없어짐을 독자도 깨닫게 된다. 그저, 황량하기 그지 없는 그 찬바람을 함께 느끼며 읽어나갈 뿐이다.

아마도 핵폭발이지 싶다. 건물들이 열에 녹아 내렸다는 표현이 있었다.  문명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강탈의 대상으로 여기며 식량 확보에 혈안이 되어 있다. 이 남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는 아들을 데리고 있다. 아들을 지키는 것. 그것 이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그것만큼 지키기 어려운 것도 없었다.  자신이 한 일중 가장 용감했던 일이 오늘 아침 눈을 뜬 것이라는 남자의 말. 차라리 다 끝내버리고 싶다고 재촉하는 죽음에의 충동 속에서 어린 아들을 지키려는 부정으로 남자는 모질게 하루를 버텨간다.  영화 우주 전쟁에서 탐 크루즈가 딸을 지키기 위해 모질어지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좋은 아버지는 되지 못했지만 적어도 딸은 지켜내려고 했던 그 아버지.  이 작품 속의 아버지는 좀 더 상냥했다.  아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고, 보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기를 소망했다. 설령 그것이 거짓이라 할지라도.

사람을 마주치기 어려웠지만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같이 그들처럼 헐벗고 굶주린 상대였다. 멀리서 놓쳐버린 어린아이가 눈에 밟혔다.  굶고 있던 노인을 두고 가지 못하는 소년의 요청에 남자는 마지 못해 식량을 나눈다. 그들의 식량과 담요를 모조리 훔쳐갖고 달아난 상대에게서 똑같이 약탈 행위를 하지만, 소년의 비난에 아버지는 그에게도 일말의 자비를 베푼다.  생존 앞에서 동정이란 사치스러웠는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설득되지 않을 때에는 아들의 말을 따라준다. 그것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이 다치고 닫히는 것이 싫었다.

그들은 남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남쪽으로 가면 좀 더 따뜻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바다를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불을 운반한다고 소명의식을 가졌다. 불. 그들은 갖고 있는 게 없었다. 몸을 덮을 담요와 통조림 몇 개. 불...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문명이라고 말을 하기엔 죽어버린 세계의 절망이 너무 깊었고, 희망이라고 감히 말하기엔 그들 앞의 시간이 가혹하게 길었다.  그럼에도 꺼뜨릴 수 없는 그들의 '불'.

푸른 바다를 기대한 아들은 까맣게 죽어 재가 덮인 바다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바다라도 추위를 무릅쓰고 들어가 몸을 적시고 싶어한 아들.  실망하고 놀랄 것을 알면서도 보내주는 아버지. 푸른 바다를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마음.  작가는 결코 흥분하는 목소리 없이 아주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그들이 마주치는 상황상황들, 또 갖게 되는 마음마음들이 애잔하여 독자의 마음은 촉촉해진다.

인류는 끝을 모른다는 듯이 군비를 올려왔고 무기를 생산했고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종말론은 인류가 시작된 이래로 계속 있어왔던 말일 테지만, 현대에 다가설수록 더 설득력 있게 사무쳤을 것이다.  핵폭발, 3차 대전 이후의 인류의 삶에 대한 상상력은 자주 발휘되어 왔다. 영화든 소설이든 만화든, 어디든 가능했던 이야기들.  이 작품을 통해서 평화의 소중함이라든가, 문명의 양면성, 애끓는 휴머니즘... 이런 것들을 강렬히 느끼기는 힘들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그 건조하고 살벌한, 지루하면서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꼭 그런 느낌을 이 책에서 함께 느낀다.  보여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딱 여기까지만 보여주고 말겠다는 작가의 저지선도 함께.

인류 멸망에 대한 눈물나는 비참함과 가혹함, 또 동시에 그럼에도 타오르는 뜨거운 인류애를 느끼고 싶다면 차라리 타무라 유미의 '세븐 시즈'를 권하고 싶다.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감동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 '로드'가 영화로 완성된다면 나는 그 작품 역시 빠뜨리지 않고 또 찾아볼 듯하다.  아마 대사보다도 영상으로, 소리보다도 적막함으로 관객을 압도할지도 모른다.
길은 외롭게 펼쳐져 있고, 끝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가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아니 갈 수도 없는 그 길. 함께 갈 수 있는 맞잡은 손이 있다면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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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8-07-0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지런하다는걸 느껴요..
촛불집회도 나가시고 틈틈히 책도 이렇게 보시고..리뷰도 잊지 않고 쓰시고..마노아님..저도 멀리서 응원합니다..
몸 잘 살피시고 챙기시며 ~!

마노아 2008-07-05 08:26   좋아요 0 | URL
책 읽고 리뷰 쓰는 건 참 오랜만이에요. 요샌 계속 가벼운 책만 읽곤 했어요.
배꽃님 흔적을 보니 참 좋아요. 주말 잘 지내셔요^^

순오기 2008-07-0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구드룬 파우제방의 '핵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 생각났어요~~
딱 여기까지만 보여주겠다는 작가의 저지선~ 이 책을 궁금하게 하네요.
미래를 가상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 점차 현실이 되어간다는 불안감... 어쩌죠?

마노아 2008-07-05 08:27   좋아요 0 | URL
리뷰 쓰고 나서 이 책에 실린 다른 분들의 리뷰를 보니 참 다양한 느낌들이 이색적이었어요.
평점도 천차만별이었구요. 메마른 느낌의 문체가 참 맘에 들었어요.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일견 김훈을 떠오르게 하는 맛이 있었거든요.
광우병에 관한 진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인류 멸망에 대한 공포를 직접적으로 느꼈어요. 어휴, 정말 큰일이에요...ㅜㅜ

다락방 2008-07-0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의 마지막 단락이 참 와닿네요. 리뷰에서 적막함과 고요함이 그대로 묻어나네요. 잘 읽었어요, 마노아님.

마노아 2008-07-05 23:48   좋아요 0 | URL
부러 감정을 압축한 듯한 소설을 만나고 나니 제 기분도 그렇게 가라앉더라구요. 나쁘지 않은 고요함이었어요. 다락방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 습도 100%인가봐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