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 차인표의 이름 앞에는 여러 수식어들이 붙어 있었다. 그가 보여주는 성실한 삶의 자세, 그가 보여주는 인도주의적 삶 등 언제나 그에게는 반듯하고 따스한, '난' 사람의 이름이 '배우'라는 타이틀보다 앞서 달려왔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또 다른 이름이 따라붙을 차례다. '소설가' 차인표. 더군다나 '따뜻한' 소설가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97년도에 존재가 알려진 훈 할머니였다. 조선인 위안부로 열여섯 나이에 끌려가 캄보디아에서 발견된 할머니. 이름도, 언어도 모두 잊은 채 고향만 기억했던 그 할머니의 기사를 보면서 작가는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연민을 함께 느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들꽃과 제비와 순이와 용이가 뛰놀던 곳.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별과 바람과 만남과 헤어짐이 살았던 곳.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엄마 잃은 아기 호랑이에게 젖 먹이던 산골 마을.
그 평화 어느덧 사라지고 슬픔만 남게 된
잘가요 언덕을 기억하나요. – 5쪽

백두산 깊은 골에 자리한 호랑이 마을. 그 호랑이 마을에 등장한 낯선 타지인 황포수와 아들 용이. 그들은 용이 엄마와 동생을 잡아간 백호를 잡기 위해서 지리산에서부터 호랑이를 추적해 백두산 마을까지 온 것이다. 반드시 백호를 잡기 위해서 산에 올라야 했던 황포수는 마을을 위협하던 육발이(발가락이 6개인 호랑이)를 잡아주겠다며, 다른 동물들은 전혀 해치지 않겠다고 촌장님께 약속을 한다. 백호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서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를 향해 마을 촌장 어르신이 해주는 당부는 의미심장하다. 

   
 

 호랑이들은 우리가 이곳에 마을을 만들고 정착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이 산에서 살고 있었네. 누가 주인이고, 누가 객인지 생각을 해 보게나. 사람에게 해가 된다고, 혹은 조금 불편하다고, 혹은 조금 이득이 생긴다고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이면 세상이 어찌 되겠는가? 설령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일세. 짐승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과도 더불어 살 수 없는 법일세. – 25쪽

 
   

결국, 황포수는 백호를 잡지 못하고 육발이만 잡은 채 산을 내려온다. 거칠고 무서운 호랑이 육발이도, 실은 새끼 호랑이의 어미였다는 것, 그 새끼 호랑이가 육발이처럼 자랄 테지만, 그 새끼를 차마 죽일 수 없었다던 용이의 고백이 먹먹하다. 엄마 없이 자라서 엄마 정이 그리운 용이에게, 역시 엄마 없이 자란 촌장님 손녀 딸 순이는 '엄마 별'을 가르쳐준다. 하늘 위에서 반짝이면서 자신을 내려봐주는, 언젠가 다시 만날 따스한 엄마 별을, 그러나 외롭고 지친, 고독한 아이 용이는 마음으로 품어내지 못한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어느 것이 엄마 별인지도 찾을 수 없다.  

책에서는 이들 두 아이 또래의 정겨운 캐릭터가 하나 더 등장한다. 마을의 유일한 고아 소년인 '훌쩍이'. 말 중에 훌쩍 거리는 소리가 절반을 차지하는 이 순박한 아이는 평화로운 호랑이 마을의 선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 그 시절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대표하는 하나의 인물이었다.  

또 작품의 한 축을 이어가는 것은 가즈오라고 하는 일본 군인인데,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일본이 내세우는 대동아공영의 이상을 숭배하며 스스로 자원 입대한 사람이었다. 그가 오사카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리고 조선 땅에 머물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는 한 사람의 꿈과 이상과 소망이 어떻게 좌절되고 또 여물어 가는지를 의미 있게 조명해 준다. 여기에는 김재홍 선생님의 그림 스케치가 큰 몫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 책에 비매품으로 함께 나온 OST처럼 책의 느낌과 의미를 더 잘 전달해주는 하나의 소통 도구이기도 하다.  

뜻밖의 사고로 황포수와 용이는 호랑이 마을에서 쫓겨나듯 떠나야 했고, 그 후 7년이란 세월이 흐른다. 그 시간 동안 조선 땅에서 일본이 치른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그것이 얼마나 흉악한 범죄인지를 깨달아버린 가즈오. 그 가즈오가 호랑이 마을에 도착해서 순이에게 반해버린다. 그리고 그 때, 위안부 동원 명령을 받는다. 호랑이 마을의 유일한 처녀 아가씨 순이가 그 징집 대상이었다.  

이쯤이 작품 중반부다. 새끼 제비 한 마리가 이 모든 풍경들을 지켜보면서 잔잔히 서술해 가던 이야기가 급박한 긴장감에 싸이면서 절정을 향해 치달린다. 그리고 소설의 최고 절정의 순간은, 주인공들의 아픔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일 거라는 것을, 독자는, 그리고 그 역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이미 짐작하게 된다.  

작가 차인표란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작품은 정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며 재미와 감동과 여운을 함께 선사한다. 버스에 오르려던 찰나, 기사님이 출발하시는 바람에 크게 다칠 뻔했던 나는, 그럼에도 그 버스에 올라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이 책을 펴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가즈오와 그의 병사들이 조선 마을에서 쓰러진 벼를 일으키며 함께 일하고 평화를 느끼는 대목은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였다. 저들도 일본 땅에서는 그저 순박한 농부였을진대, 그들도 원해서 이 전쟁을 치렀던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그들에게도 돌아가고픈 고향이, 지키고픈 가족이 있었을 텐데...... 참으로, 아프게 박히는 기막힌 역사적 진실들이다.  

   
 

 지금 논바닥에는 일본군도 호랑이 마을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새끼 제비는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해낼 것입니다. 합심해서 송장처럼 쓰러졌던 벼를 모두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생명이 끊어져가던 벼가 살아나겠지요. 다시 살아난 벼 이삭은 더 많은 쌀 알갱이를 품어 키워낼 것입니다. 그 쌀 알갱이들은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어 지치고 배고픈 누군가의 생명을 지탱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들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일지라도, 살아 있는 하나의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일회성이 아닌 연속성을 가진, '살아 있음' 그 자체라는 것을 새끼 제비는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 109쪽

 
   

결국 위안부로 차출된 순이를 구해내려고 어머니께 마지막 편지를 올리는 가즈오의 고백에는 한 인간이 가졌던 무수한 번뇌의 조각들이, 그가 군인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지키려고 했던 양심과 신념이 드러난다. 그런 고백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들릴 뿐, 국가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책임을 지고서 울리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서러울 뿐이다.  

   
 

 어머니, 다시 어머니를 못 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열한 일본군 장교로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느니, 용서를 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죽어서라도 어머니의 마음에 안기겠습니다.

불효자 가즈오 마쯔에다 올림 – 133쪽

 
   

작품에서 내내 흐르는 주제 의식은, 결국 '용서'일 것이다. 용이가 백호를 용서하고 마음으로부터 비워낼 때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위안부 할머니들도, 고통 받았던 그 시절 무수한 사람들도 그 마음에 참 자유를 찾으려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를 필요로 할 터인데, 용이의 고백처럼 용서를 구하지 않는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이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던가.  어쩌면, 그건 '신'의 영역일 수도 있겠다.  백호처럼 본능에 의해 움직인 짐승도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서 악마적 범죄를 저지른 그 대상들을, 그리고 여전히 뻔뻔하게 사과하지 않는 그들을, 자연적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할머니들더러 용서하라는 말을 어찌 할 수 있을까. 일방적인 용서로 과연 할머니들의 마음은 자유로워지실 수 있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그토록 악하고 독하고 무서운 것도 인간이지만, 또 그 반대로 그렇게 선하고, 따스하고, 아름다운 존재도 인간일 수 있음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용이와 순이를 통해 독자를 향해 조용히 말하고 있다. 독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에 기대어 그 마음에 잔잔한 동의를 표시해 본다. 용이가 마침내 엄마별을 찾아낸 것처럼, 그 별의 따스함을 알아차린 것처럼...... 그리고 작가 역시 엄마 별을 통해 참 용서에 다가간 것처럼.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어느 독자의 동화책으로 내보는 건 어떠냐는 질문에 차인표는 손사래를 쳤다. 십 년 이상 이 작품을 온통 품어안고 창작의 고통에 시달렸던 그로서는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나로서는, 동화보다는 영화 쪽이 좀 더 강렬하고 인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고 느끼고 있다. 작가는 자신이 제작할 능력이 되지 않고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한다. 그것은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이 작품이 주는 아름답고 건강한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할머니들이 계시는 '나눔의 집'에 이제 여덟 분이 살고 계시다고 한다. 그 분들이 험했던 이 땅에서의 삶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 진정한 화해와 반성, 용서와 자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그런 기적같은 일이 진정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실어본다. 무거울 법한 이야기를 이토록 편하게, 따스하게, 감동적으로 엮어준 작가 차인표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에게는 부담이겠지만, 독자는 다음 작품을 절실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꼭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덧글) 제목 '잘가요 언덕'은 호랑이 마을의 언덕 이름이다. 떠나는 사람을 향해 잘가라고 손 흔들어주는, 또 만나자고 인사하는 언덕 이름인데 쉼표가 들어가는 바람에 마치 '언덕'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표지 디자인의 실수다. 다음 쇄를 찍을 때 꼭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진정 옥의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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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응이 좋은 거 같아요~~ 워낙 소재가 심금을 울리는 소재긴 한데, 소설가의 역량이 따라주나 보군요.^^
잘가요 언덕이란 고유명사를 이렇게 망가뜨렸다니...헐!

마노아 2009-04-20 00:04   좋아요 0 | URL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직업 작가처럼 잘 썼더라구요. 감탄했어요.^^
제목은 정말 큰 실수지요. 헐~~

다락방 2009-04-19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책이 반응이 좋더군요. 서점에서도 몇번이나 들었다가 연예인이란 선입견이 자꾸 책 사기를 망설이게 했는데...흐음..

마노아 2009-04-20 00:05   좋아요 0 | URL
출판사도 영업을 잘하고 있지만, 일단 책이 좋으니까 가능한 반응같아요. ^^

2009-04-20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수상으로 떠들썩했던 이 작품을, 영화 개봉 전에 먼저 만나고 싶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첫 부분은 주인공 소년이 주인공 그녀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기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열다섯이었던 미하엘, 서른 여섯이었던 한나. 간염으로 몸이 아팠던 그를 그녀가 도와주면서 시작된 그들의 만남은 육체 관계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샤워를 하고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누워 있는 순서로 일종의 의식을 치렀다. 나이 차가 많았지만 그에게 그녀는 첫 사랑이었고 넘어설수도 정복할 수도 없는 어떤 미지의 경계 같은 분위기도 갖게 하였다.  

몇몇 에피소드에서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배경으로 글을 배우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꼬마라고 부르는 주인공 소년이 학교에 소홀히 하자 무섭게 화를 내던 그녀에게서 문맹으로 인해 그녀가 가졌을 수치심과 삶의 굴곡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녀의 인생을, 또 그의 인생을 온통 뒤흔드는 계기가 되고 만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한나. 그로부터 7년의 세월이 흘렀고, 미하엘은 법학도가 되어 있다. 세미나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법정에 출석해서 재판을 참관하게 된 그는 피고인으로 출두한 한나와 재회하게 된다. 그녀는 나치 시절 유대인 여자들을 감시하던 감시관이었다. 다른 감시관들과 함께 재판을 받던 그녀는 자신에게로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고 보고서도 그녀가 썼다는 허위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고 만다. 필적 감정이라도 받아서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혹했다. 다른 여자들이 금고형으로 끝났을 때 그녀는 종신형을 선고 받았으니까.  

급박했던 2부가 끝나고 감동과 긴장의 3부가 이어진다. 재판 이후 미하엘은 혼돈의 시간을 겪는다. 결혼을 하고 딸도 갖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나의 뒤를 쫓고 있었고, 온전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혼을 하고 불면의 시간을 겪던 그는, 그 옛날 그랬듯이 한나를 위한 책 읽어주는 남자로 돌아간다. 한나가 수감 생활을 시작한 지 8년 째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로부터 한나가 사면되는 때까지 꼬박 10년 간, 그는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오로지 문학 작품을 읽었을 뿐, 그녀에게 편지를 쓰지도 않았고, 안부를 묻지도 않았고, 찾아가지도 않았다. 그 사이 한나는 감옥에서 글을 익혔고, 미하엘에게 짧고 서툰 편지로 인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18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된 한나. 달라진 세상과의 조우를 위한 준비가 필요했고, 교도소장은 미하엘에게 그 일을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미하엘은 한나가 살 집과 그녀가 일할 직장을 알아보고, 이것저것 분주히 움직인다. 사실 공부도 많이 했다.  

나는 그동안 문맹자와 관련된 글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읽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즉 길이나 주소를 찾을 때 또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를 때 겪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미리 주어진 생활의 틀과 낯익은 행로를 더듬더듬 따라가면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글씨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소모하는 정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실제 삶에 있어서의 에너지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는 읽고 쓰기를 배우겠다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걸음을, 깨우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미하엘은 여전히, 한 발자국 뒤에서 한나를 관망만 할 뿐, 적극적인 개입과 지지, 손내미는 일에 주저했다. 그는 여전히 미성숙했고, 서툴렀으며, 용기가 부족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그녀가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먼저 배신한 것은 그 자신임을 알지만,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믿고 싶어서 또 그렇게 행동했다. 그것들이 그녀에게 어떤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명백히 따지고 들자면,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녀의 책임이 아니듯이. 마치, 원해서 전범 국가에서 태어난 게 아닌 것처럼, 원해서 전후 세대로 태어난 게 아닌 것처럼. 그러나 또 기억해야 할 것은, '죄'가 없어도 '책임'은 있다는 것. 글을 읽지 못해서 평범한 직장에서의 승진 대신 나치의 감시자 일을 시작한 한나였다. 동기 자체로서는 그저 운이 나빴다고 할 수도 있지만, 교회 안에 갇힌 수감자들이 불에 타 죽도록 방치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원했던 것이 아니고, 달리 무얼 어찌 해야 할지 몰랐었다 할지라도. 비록 그녀에게 모든 죄를 떠넘기고 도망친 다른 비겁한 사람들에 비해서 그녀가 감내한 형벌은 숭고해 보였지만, 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던 인생길을 그리 가버린 그녀가 안타깝고 분노도 느끼게 된다. 그 자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만 정직했지만, 너무도 많은 아픔을 주변에 남기고 말았으니.  

작품의 말미에선 여러 차례 울컥거리게 만든다. 갈팡질팡했던 그와 달리 올곧이 미하엘을 사랑했던 한나. 비록 그의 곁에 머물지 못했고 도망쳐버렸지만, 마음은 늘 그 자리에 두고 있었다. 반면 미하엘은 늘 머리 속에서 가슴 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나를 끝내 잡지 못하고 변두리만 기웃거리다가 결국엔 놓쳐버리고 만다. 어리석고 안타까운 사람.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우리의 아픈 역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모든 것들을 아울러 한 작품에 담아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였다. 빌리 엘리어트를 몹시 재밌게 보았는데, 이 작품의 영화 역시 무척 기대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케이트 윈슬렛이니! 책만 보면은 아카데미 작품상도 거뜬했을 것 같은데 밀려버렸으니, '슬럼 독 밀리어네어'도 궁금하고, 여전히 이 책의 영화도 궁금하다. 좋은 원작이 좋은 2차, 3차 작품도 생산해낼 것이다. 독자는, 관객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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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3-1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군요~ 궁금했었는데! 쌩유~~
영화 개봉하면 꼭꼭 봐야겠어요~ ^^

마노아 2009-03-15 13:37   좋아요 0 | URL
오늘 밥 먹는데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깐 나오더라구요. 아, 관록의 케이트예요! 개봉 날짜 확인해야겠어요.^^

zenama 2009-03-15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마음에 와닿네요.^^

마노아 2009-03-15 20:56   좋아요 0 | URL
헤헷, 그런가요? ^^

다락방 2009-03-1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마노아님.
저도 이 책을 읽었는데요 그녀가 문맹이란 사실은 스포일러에요, 정말. ㅜㅡ 그 비밀이 무엇일까, 그걸 알게되면 나는 얼마나 먹먹할까 싶어서 읽으려고 구매했다가 한 리뷰에서 그녀가 문맹이란 사실을 알았어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사실을 몰랐다면, 정말 몰랐다면, 했더랬어요. 그랬다면 이 책을 좀 더 잘 읽어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마노아 2009-03-15 21:00   좋아요 0 | URL
저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얼까 궁금했는데 문맹이란 단서가 너무 금방 나와서 좀 시시했어요. 그렇지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비밀보다는 그 후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서 리뷰에서 밝혔는데, 그래도 모르고 읽을 때가 더 참맛이겠지요? 흐, 리뷰를 수정할까 했더니 전반적으로 그 얘기가 계속 나와서 손을 못 대겠어요..;;;;

마노아 2009-03-16 12:05   좋아요 0 | URL
'책 읽어주는 여자'가 익숙해서인지, 저는 책 읽을 때 무심코 제목을 '여자'로 읽었었답니다.ㅎㅎㅎ

다락방 2009-03-16 17:52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이 책의 제목에서 전혀 문맹의 암시를 느끼지 못했는데요. 다른분들은 이미 다 짐작하는 부분이었던거군요!

아키타이프 2009-03-16 20:28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소견일뿐인지도 몰라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저희 할머니께서도 문맹이셨는데 가끔 저보고 책을 읽어달라고 그러셨거든요. 그러면 할머니께서 그러셨어요. 너무 듣기 좋은 소리라고...어쩌면 다른 분들은 예상 못하실 수도 있지 싶네요. 그래서인지 저는 책을 읽어준다고 하면 상대가 문맹이거나 눈에 이상이 있는건가 싶거든요. 그리고 아직 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에게 글을 읽어주는 엄마의 모습 같은거... 그런걸 유독 좋아하는지라...

아키타이프 2009-03-16 20:2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말씀따나 문맹이라는 비밀을 모르고 본다면 더욱 흥미로울수 있지만 책 제목에서 부터 그녀가 문맹임을 암시하고 있달까요. 그리고 책이든 영화든 보다보면 금새 한나가 문맹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꼬마(남주)만이 모르고 지나치지 관객이나 독자들은 눈치 깐답니다.

아키타이프 2009-03-16 20:46   좋아요 0 | URL
제가 멍청한 짓 해버려서 댓글 순서가 뒤죽박죽이 돼 버렸네요ㅠㅠ.

마노아 2009-03-17 00:21   좋아요 0 | URL
저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렸어요. 그 작품에서 엄마가 글을 못 읽었거든요. 평생 글 못 배운 게 한이 되셔서, 한나가 학교 공부에 소홀히 하자 불같이 화내는 장면에서 딱 오버랩 되더라구요.

아키타이프 2009-03-1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보다 영화 먼저 접했는데 (카드 시사회) 영화를 본후 진짜 가슴이 덜덜덜 거렸더랬죠. 그후 원작이 있는걸 알고 책을 사서 읽어 보니 영화 각색 작업을 참 뛰어나게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에게는 영화가 훨씬 좋았습니다. 영화 보기전 책을 봤더라면 어떨련지 모르겠지만 세 배우의 연기와(특히 케이트 윈슬레 킹왕짱) 연출이 정말 끝내줘요.알고보니 빌리엘리어트와 디아더스 감독이더군요. 제가 모두 너무 좋아하는 영화인데...이걸로 세번째 영화 마저 홀릭하게 됐네요. 제가 젤 인상 깊었던 구절은 [범죄자를 사랑하므로 나는 유죄이다] ... 영화도 꼭 보세요. 저는 워낭이나 벤자민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다만 책을 읽은후 곱씹으니 미하엘 집에서의 장면이 없어서 좀 아쉽네요. 슬럼독은 초반에는 좀 지루하더니 갈수록 유쾌해지더군요.

마노아 2009-03-16 12:03   좋아요 0 | URL
아후, 영화가 담주 목요일 개봉이에요. 좀 남았네요. 무척 궁금해하고 있어요. 원작보다 더 좋았다고 하니 기대치가 더 높아집니다. 디 아더스, 빌리 엘리어트. 모두 참 좋았어요. 오늘 아침에 빌리 엘리어트의 마지막 대목을 보았는데 다시금 감동 물씬~
슬럼독도 이미 보셨군요! 3월부터 이렇게 볼 게 많다니 좋아요, 좋아~ ^^

아키타이프 2009-03-16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책 읽어주는 여자 버전은 어떠신가요. 뉴질랜드 영화였나? 블라인드라고 있는데 여기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책을 읽어주죠. 캐백수에서 방영해준 외화인데 어른들을 위한 동화적 감성이 지천에다 영상미도 참 유려했어요. 그리고 보니 여기도 나이차 많이 나는 연상연하이네요. 보고 싶은데 구할길이 애매하다 싶으시면 메일 주소 주시면 제가 힘 닿는대로ㅋㅋ

마노아 2009-03-16 12:04   좋아요 0 | URL
'책 읽어주는 여자'로 검색하니 프랑스 영화가 나오는 거예요. 얼라, 이게 아닌가? 하고 다시 블라인드로 검색하니 엄한 갱 영화가 나오는 겁니다. 다시 해보니 네덜란드 영화가 나오네요. 아마 이건가봐요. 앞 못 보는 남자 아이에게 못 생긴 여자가 책 읽어준다는 설정. 호홋, 제가 찾아볼게요. 추천 감사해요.^^

프레이야 2009-03-18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기대하고 있어요. 어서어서~~ ^^

마노아 2009-03-18 11:58   좋아요 0 | URL
일주일 조금 더 남았네요. 아자아자!! 어서 개봉하라!!!

2009-04-09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9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끝없는 벌판
응웬옥뜨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베트남에 대한 자료를 찾을 때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다. 그 다음은 '베트남어'.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베트남 사람들의 '삶'이었다. 잠시 여행 가서 들여다보는 것 말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문학을 찾아보았고, 그때 이 책을 알게 되었다. 200쪽도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이 소설, 베트남을 '응웬옥뜨' 열풍으로 가득 채웠다는 찬사가 잔뜩 담겨 있다. 뚜껑은 열어보아야 알지,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소설. 흔히 얘기하는 뚜렷한 기승전결의 구도도 아닌, 시점조차도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왔다 갔다 하는, 소설인데 시 같고, 시인데 산문같기도 한 이 소설은, 갖고 있는 많은 장점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마음'을 울린다는 점에서 쏟아지던 찬사가 과장이 아님을 인정하게 했다. 이 소설, 참 아프다. 

메콩 강을 둥둥 떠가는 거룻배.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배에 아버지와, 이제 18세 된 누이와, 17세 된 남동생이 함께 타고 있다. 이들은 오리를 키우며 강가를 떠돌지만 쌀 한톨도 구하기 힘든 극심한 가난 속에서 오리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그 지독한 가난은 이들의 것만이 아닌, 그곳 메콩 강가에 사는 모든 이들의 체험이고 삶이고 운명이었다. 그 '가난'이 이 작품에 깔려 있는 배경이자 사건들의 이유, 그네들 슬픔의 원천이었다.  

어느 나라인들 가난하지 않은 국민이 있겠냐마는, 그곳 가난한 처녀들이 우리나라 시골 노총각들에게 시집 와 기구하게 사는 이야기들을 지금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우리는, 그네들의 처연한 삶이 남일 같지 않다. 더군다나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비극을 함께 겪었던 비슷한 역사를 가진 공통성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작품은 거의 대부분 누나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은 아홉살 때부터 눈물이 멎지 않는 병에 걸렸다. 아이가 눈물이 멎지 않게 된 건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었다. 옷감 장수가 마을에 들어왔고, 엄마는 유난히 화려하고 반짝거리던 옷을 맘에 들어했고, 그 옷 한 벌의 대가로 아버지가 없는 사이 옷장수와 몸을 섞었다. 아이들이 집을 비웠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은 집에 있었고, 현장을 목격한다. 그때부터, 남동생은 눈물이 멎지 않는 아이가 되었고, 그 사실을 엄마에게 밝히자 엄마는 그 길로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후로 아버지는 돌변한다. 마치 '여자'라는 종족에게 원한이 서린 것처럼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옆자리에 앉혔고, 아무렇지 않게 버렸고, 그들에게 상처와 모욕을 주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망가져가는 모습을 십 년 가까이 보고서 성장한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상처를 끌어안느라 온통 만신창이가 되었다.  

작품 속에서는 그렇게 집을 나간 엄마뿐 아니라 그 비슷한 많은 여자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누구에게도(심지어 이 무정한 아버지에게조차도) 윤리적인 비난을 던지지 않는다.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연민이 공존하지만 그것을 원한으로, 원망으로, 저주로 바꾸지 않는다. 슬픔을 분노로 바꾸는 방법 따위도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유혹해서 꼬드긴 그 여자들도 가정이 있었고, 자식이 있었다. 그 모든 걸 다 내던지고 따라오던 여자들을 버리고, 욕하고, 모욕주고, 상처를 주어서 내치는 아버지 역시 가슴 속에 깊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는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되물림이 된다. 아이들은 몸은 자라지만 내적인 성숙을 함께 갖추지 못했고,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그 무심한 아버지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아버지로 인해 또 다시 내쳐진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아들이 그 여자를 찾아 떠나면서부터였다.  딸과 단 둘뿐이라는 것. 그 딸도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이 아버지에게도 스며들었을 것이다.  

저 가난한 삶에, 남편과 자식을 버리는 어미, 아비만 나오겠는가. 저 가난하고 신산한 삶 속에서 배우지 못하고 일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은 얼마나 고약하게 망가질 것인가. 그런 환경에서 예쁘기만 하고 나약한 이 처녀가 자신을 지킬 방법이라는 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비참한 결과가 무수히 따라나오는 순간이다.  

겁탈의 끔찍한 순간이 지나가고, 자신 안에 들어선 물컹한 무언가가 아기로 변하게 될까 봐 처녀 아이는 눈물을 떨군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이 아이가 상상하는 앞날이란 독자를 당황시킨다.  

   
 

 세상에, 내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어. 비록 잔인한 일이긴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감수해야 한다(녀석에게는 고난을 감수하는 것 자체가 몸에 익은 습관이었다). 

그래, 아이 이름은 반드시 뜨엉이나 녀, 또는 지우, 혹은 쑤엔, 흐엉......으로 지어야지. 아빠 없는 아이지만 반드시 학교를 다니게 할 거야. 아이가 한평생 즐겁고 생기발랄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줘야지. 엄마의 가르침으로, 때때로 어른들의 잘못도 용서할 줄 아는, 속 깊은 아이로 키워볼 거야.

 
   


그 지독한 현실 앞에서 눈물 떨구며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다음 순간을 준비한다. '고난'이 몸에 익어서 습관이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그런 용기와 희망을 배웠는지 태어날(만약 태어난다면!) 아이에게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 어떤 지독한 가난도, 그 어떤 가혹한 운명도 파괴할 수 없을 듯한 모성을, 생명력을 이미 지닌 채로 말이다.  

이 정도의 각오가 그네들의 참혹한 현실을 버티게 해 줄 '희망'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애잔한 삶에 조용한 응원을 보내게 되는 미소를 짓게 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그 '끝없는 벌판'에도 어김 없이 다가올 인생의 어떤 따뜻한 순간을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이 작품은 베트남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정부 당국은 희망의 전형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미풍양속을 헤쳤다고, 작가의 도덕, 정신적 교육을 운운하기까지 했다. 이 책이 그곳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받으면서 그런 움직임들은 죽어버렸지만, 작품이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재를 받고 검열을 받는 그 현실이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를 언뜻 떠올리게 하는 구조, 그러나 그보다 더 담담하고 보다 가슴을 저미는 구석이 있다. 한 소녀의 성장기, 혹은 보편적으로 가난한 어느 민중의 처연한 삶의 이야기로 읽어도 무방하겠다. 내가 만난 첫번째 베트남 문학, 반갑고 아프다. 

덧글)번역이 정말 훌륭하다. 메콩 강가의 그 방언을 옮길 수 없기에 표준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분위기를 올곧이 옮겨왔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번역을 제2의 창작이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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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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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8세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웨이터로 일하고 있으며 교육이라곤 받아보지 못한, 그저 인도의 밑바닥 계층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평범할 것 같은 인생살이가, 또 그의 인생 역전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퀴즈쇼에 출연했고 12개의 문제를 모두 맞추어 무려 십억 루피의 상금을 받기로 된 그런 놀라운 인물이었다.  사건은, 여기서 출발한다.

방송사는 발칵 뒤집혀졌다.  적어도 프로그램 시작하고 8개월은 되어야 본전을 다 회수하는데, 첫 출연자가 무려 10억 루피의 상금을 따냈으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불법 체포, 감금, 고문까지 자행하며 이 청년의 퀴즈쇼 우승을 무마시키려고 애쓰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뜻밖의 변호사가 등장하여 그를 보호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여변호사는 주인공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쉬게 해준 뒤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어떻게 그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었는지...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이라고 알고 있고 FBI도 모르고 닐 암스트롱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12개의 문제를 모두 풀어낸 청년의 인생 여정이 그렇게 시작된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 이게 그의 이름이었다.  출생에서 성장까지도 기구했던 그의 운명은 이름에서부터 이미 드러난다.  그의 이름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크리스트교까지 세 개의 종교가 모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의 흔적은 그의 삶에서 마주친 무수한 사건과 인물들과 무관하지 않다.  어려서는 티모시 신부로부터 보살핌을 받았고, 그 덕분에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살림은 이슬람 교도이지만 그가 뿌리 내리고 사는 그곳 인도에선 힌두교도가 가장 많았다.

거의 2년 터울이었던 듯 하다.  티모시 신부의 죽음 이후 전전긍긍한 그가 정착했던 곳에서 머문 시간은.  인신매매범에게 속아 눈을 잃은 뒤 앵벌이에 팔려갈 뻔 했고(다행히 무사히 도망쳤고) 호주 출신 대사관의 집에서 집사 노릇도 했고, 왕년에 인기 있었던 여배우의 집에서 가정부 노릇도 했다.  힘껏 번 돈을 기차에서 강도에게 홀라당 털리고, 정당방위긴 했지만 그 강도를 죽여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도 했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타지마할에서 관광안내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에서 마주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놀랍게도 퀴즈쇼의 문제들과 맞아 떨어지면서 그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퀴즈쇼 진행자 측의 술수로 위기도 여러 번 겪었지만 그는 기찬 운으로 그 장벽들을 모두 피해간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로또보다도 더 기막힌 그 우연과 행운과 운명도 독자는 즐겁게 바라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찾게 되는 것은 주인공이 보여주는 삶의 기지와 재치, 그리고 정직한 노력의 자세에서였다.  그가 성장했고 또 무수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곳 빈민촌들은, '짐승처럼 살다가 벌레처럼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그가 사랑한 니타는 12살에 엄마 손에 사창가에 팔렸고, 그녀를 창녀로 만들고 놓아주지 않는 포주는 친 오라비였다.  오늘 굶어죽는 것보다 내일 에이즈에 걸리는 게 더 낫다고 당당히(!) 말을 하는,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분명 인생이 있었고 교훈이 있었다. 자폐아 아들을 버리고서 그 아들이 광견병 걸린 개에 물려 죽어갈 때도 나몰라라 하는 무정한 모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름답게 단장한 채 자살한 여배우가 죽은 뒤 한달 뒤에나 발견되어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모습,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던 자가 뜻밖의 농간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 당하는 모습 등등.

인도 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모든 인간 군상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삶의 모습들이 책 곳곳에 주인공의 삶과 맞물려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퀴즈쇼의 마지막 진행 부분에 가면 작가가 준비한 두 가지의 반전(?)과 맞닥뜨리게 된다.  아주 쇼킹한 반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독자의 흥미를 더 돋우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인도의 외교관이라고 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첫 소설이라고 했다.  이미 그 정보를 알고서 읽은 탓인지 조금은 거칠은 듯한 구성도 눈에 띄지만, 전반적으로 신선했으며 발상이 재밌었고 독특했다.  가독성은 좀 떨어지지만 제목의 Q&A 글자 디자인이 참 예쁘고 개성적이다.  가벼운 재생지도 내 맘에 드는 조건 중 하나.  인도 문학을 접한 것은 거의 처음이지 싶다.  미처 만나지 못했던 반가운 만남을 더 찾아야겠다.  마음이 분주하여 읽는 데 오래 걸리긴 했지만 몹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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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2-1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어보고 싶어져요. 보관함에 넣을게요, 마노아님.

마노아 2009-02-18 13:34   좋아요 0 | URL
영화도 곧 개봉한다던데, 거기에 맞춰서 개정판이 나온 것 같아요. 초판 제목은 그냥 'Q&A'였거든요. 진지하게 유쾌했어요. ^^
(참, 저는 오늘 서재 결혼시키기 주문했답니다. 다락방님 덕분이에요. ^^ )

stella.K 2009-02-1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인가 재작년에 읽은 책인데 겉표지가 많이 다르군요.
아무래도 영화화될 것을 의식한 것 같습니다.
영화로 나왔던데, 이책은 영화적인 색채가 짙어 오히려 영화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빨리 봐야할텐데...

마노아 2009-02-18 13:34   좋아요 0 | URL
띠지를 벗기면 표지도 같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영화 개봉했나요? 예고편은 보았는데, 개봉하면 볼까 해요. 제 생각에도 영화로 만들면 더 뽀대가 날 것 같았어요. ^^

stella.K 2009-02-18 14:46   좋아요 0 | URL
헉, 아직인가요? 긁적 긁적;;

마노아 2009-02-18 15:04   좋아요 0 | URL
영화는 작년에 찍었고, 3월 개봉이네요. 한 달 가량 남았어요. ^^

비로그인 2009-02-1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을 읽기전까지 실화인줄 알고 정말 놀랐어요.

마노아 2009-02-18 18:09   좋아요 0 | URL
저런 식의 조작과 납치 감금 고문은 있을 법하단 생각이 들어요...;;;

이매지 2009-02-19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누구한테 권해도 실패할 확률이 낮을 정도고 괜찮은 책이죠 :)
저도 영화는 아직 못 봤는데 조만간 보려구요 ㅎ

마노아 2009-02-19 21:28   좋아요 0 | URL
첫번째 작품으로 독자를 확 사로잡은 멋진 작가예요.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첫 작품이었느데 다음 작품을 마구마구 기다리고 있어요. 이 책은 영화가 3월 개봉인데,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작년에 찍어놓고 미국에서도 아직 개봉 전인 것 같아요ㅠ.ㅠ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천재 수학자이지만 그 재능을 연구에 모두 쏟을 수 없었던 불운의 사나이. 삶에 대한 집착과 정열, 보람, 의지가 사그라든 어느 날, 그는 목을 맬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혹시라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기꺼이 문을 열었던 사나이. 사내가 원했던 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유지시킬 갈망이었고, 그를 죽도록 괴롭힌 것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삶에 끼어든 한 여인. 바로 옆방에 이사왔다고 인사를 온 중년의 여인과 그녀의 딸. 천재 수학자에게 한줄기 세상의 빛이 스며들던 순간이었다. 자신의 보잘 것 없던 외모가 처음으로 원망스러워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마음을 보여주지도, 다가가지도 못하며 그저 그녀가 일하는 도시락 가게에 들러 날마다 '오늘의 도시락'을 사며 한 번씩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그에게, 어느 날 이변이 생겨버린다. 정확히는 그녀에게 생겨버린다.  

옆방에 이사온 야스코는 전직 호스티스였을 만큼 미모가 있었던 중년의 여성이다. 이혼한 전 남편은 한때 자신에게 잘해주기도 했고 자기의 딸이 아닌 야스코가 데려온 딸 미사토를 잘 돌보기도 했지만, 횡령비리가 발각되면서 직장에서 짤리고 그때부터 폐인의 길에 들어선다. 단골 손님 구도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기용해 겨우 이혼을 한 야스코는 전 남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쳤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다시 손아귀에 잡히고, 그 과정에서 딸과 함께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그녀의 방에서 있었던 이 사건을 천재 수학자이자 현직 수학 교사인 이시가미가 알아차린다. 그는 말했다. 자수할 생각이라면 자신은 모른 척 하겠다고. 만약 사건을 덮고 싶다면 자신이 돕겠다고. 여자 둘이서 시체를 처리하긴 힘들 거라고.  

야스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딸의 앞날이 걸려 있었다. 결국, 이 남자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만다. 그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고,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서 경찰의 수사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모든 보호장치를 제공했다. '천재'라는 말을 자꾸 썼던 것은 그에게 이런 일들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역시 소설답게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 천재가 또! 있었던 것이다.  

사건을 맡은 형사 구사나기의 친구인 대학 조교수 유가와. 사실 이시가미까지 세 사람은 모두 같은 대학 동기이다. 그리고 이시가미와 유가와는 오래 전에 친구였고, 지금은 너무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살인 사건이 두 천재를 20년 만에 재회하게 만든다.  

자신의 '논리적 사고'를 총동원하여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낸 이시가미에게 뜻밖의 복병이 되어버린 유가와.  결국 이시가미는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쓰려고까지 하는데, 여기까지가 독자가 계산해낼 수 있는 용의자 X의 '헌신'이었다. 이 책에 대한 구구절절한 칭찬을 너무도 많이 들었던 터라 잔뜩 기대하고 긴장하며 읽었던 나로서는 책의 2/3 지점까지는 여전히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는 짐작이 되는데......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결정적인 반전이 이뤄진다. 이 책의 제목에 왜 '헌신'이란 단어가 들어가는지. 이시가미가 내색하지 않았던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뒤늦게 깨달으며 독자는 하염없이 책 속에 빠져든다. 오, 맙소사! 이런 말을 중얼거리면서. 

이 책이 추리소설인 까닭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고, 다만 놀랐던 내 감정만 옮겨본다. 어릴 때 추리소설을 읽고 나면 여러 날 잠을 못 잘 만큼 겁이 많았던 나는, 성장해서는 가급적 추리소설을 읽지 않았다. 아마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십 여 년 동안엔 추리소설은 거의 안 읽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에 '화차'를 읽고는 크게 감탄했었다. 섬찟하다는 후유증이 있긴 했지만 작가와 작품의 마력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 이 책도, 그 비슷한 수순을 밟으리라 여겨진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워낙 다작을 하는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서 놀랐다. 사진으로는 엄청 젊어 보였는데 말이다.  

긴장감과 감동, 그리고 충격을 함께 전달하는 이 책은 영화로서도 몹시 매력적일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년 10월에 일본에선 개봉을 했다. 국내엔 나오지 않은 듯.  

게다가 이 작품에선 조연으로 등장한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탐정 갈릴레오'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제목을 익히 들은 기억이 난다. 원작에 대한 평가가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나의 다음 히가시노 게이고와의 만남으로는 적당치 않아 보이지만.(백야행이 평이 좋던데 무려 세권이다. 긴 책에 주춤하는 나는 잠시 고민을...;;;;) 

'사랑'을 생각해 본다. 무수히 많은 사람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이 작품 속 이시가미가 보여준 그런 헌신적인 사랑도 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 과정이 옳았다고 할 수 없고, 그 결과가 현명했다고도 할 수 없고,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는데, 대가 없이 순수하게 사랑 하나만 온 마음과 몸을 바쳐 해냈다는 것에는 경외감을 느낀다. 그런 사랑을 살면서 받아보는 사람이, 또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그 조건 없는 사랑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천재 물리학자로서 다분히 괴짜 기질을 가졌던 유가와가 오래 전에 감탄했던, 그래서 20년 만에 만나 무척 반가웠던 옛 친구를 향해 보여준 연민도 짠했다. 아마도, 그게 자신의 유일한 호적수라고 여긴 이시가미, 즉 천재 수학자가 아니었다면 반응은 달랐을 것이다. 그가 가진 재능과 능력에 더 큰 우정을 느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그건 이시가미의 것이었다. 본인은 절대로 원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유가와가 보여준 우정을, 먼 훗날에라도 이시가미가 고마워했으면 좋겠다. 그의 외로웠던 삶에 한줄기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사건의 시작이 되었던 야스코를 되돌아 본다. 때로, '무지'도 죄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시가미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하며 살았다지만, 그래도 그 마음 몰라준 야스코가 야속하다. 그녀보다 더 정직했던 딸 미사토가 보인 결단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또 다시 누군가의 절대적 희생 뒤에서 숨어 지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그가 원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그저 재밌을 거라고만 기대했었는데, 지독히 뜨거운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 추리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살인 사건으로 이 새벽에 오싹한 기운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만남이 반갑고 고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이것만은 강추다! 싶은 책들을 소개받아야겠다. 이 책을 사고서 6개월 만에 읽은 나이다 보니, 언제 다음 작품을 만날 지 장담할 수 없지만, 기꺼이 다음 만남을 기대하며 기다리겠다.  이 책, 아프고 스산하고, 그리고 짠하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고파진다. 더욱 절실히. 

 

ps. 이 책을 읽고 나서 역대 나오키상 수상 리스트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쉽게 찾아진다. 그 중에서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되었던 게 뜻밖의 수확이기도 했다. 138회나 되길래 한 세기를 넘긴 것인가 화들짝 놀랐는데, 일년에 두 차례씩 선정한단다. 아무튼 100회를 훌쩍 뛰어넘어버린 이 권위있는 상도 몹시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역시나 저력이 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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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1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코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책은 안 읽어서~
이상하게 일본 작가는 별로 호기심이 안 땡겨요~ 하이타니 겐지로와 오쿠다 히데오만 읽은 것 같아요.^^

마노아 2009-02-15 02:08   좋아요 0 | URL
일본 소설은 재밌지만 깊이는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무지한 생각을 자꾸 깨는 작품을 만나게 되네요. 기쁜 일이지요. ^^

노이에자이트 2009-02-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는 추리소설은 왠지 격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없으니 우리나라와 다르지요.우리나라는 추리소설이 몰락한 데다가 일본 추리소설이 재밌으니 승부 끝났지요.히가시노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잘 팔리죠?

마노아 2009-02-15 20:28   좋아요 0 | URL
결국 편견에 발목잡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은 셈이군요. 히가시노 고정 팬들이 무척 많은 것 같아요. 전 이번에 처음 읽었지만 이름은 워낙 많이 들어서 작품 제목도 낯설지 않더라구요.

다락방 2009-02-15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어요. 일본 추리소설은 오히려 깊이가 더 있는 것 같구요.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진실과 진심을 토로해내곤 하죠. 저도 마지막의 반전을 읽고 아, 이시가미!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노아 2009-02-15 22:59   좋아요 0 | URL
알라딘 편집팀장님은 백야행을 더 추천하더라구요. 지금 보관함에 담아놨어요. 원래는 장바구니였는데 조카 책 사주느라 적립금 바닥이 나서 좀 모으려고 기다리는 중이랍니다. 좋은 작품 만나서 기분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