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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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쓰고 결과를 기다릴 때, 내가 합격하기를 바랐던 학교의 커트라인은 내 성적보다 높았다.  그래도 최종에 최종까지 기다리면 추가 합격이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에 고대에 희망을 품고 있을 때에, 만약 합격만 시켜준다면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던, 또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행위는 만화책 읽기였다.  합격을 갈망하던 그 순간에는, 평생토록 만화책을 안 볼 수도 있다!라는 나름대로의 거창한,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결심도 해보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나는 재수 기간에도 만화책을 많이 보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읽는다.  아마 합격을 했더라면 결심 따위 잊고서 역시 만화책 열심히 보았을 거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날이기도 하다. ;;

왜 갑자기 십년 전 일이 떠올랐냐 하면, 이 책 때문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발자크도 바느질 소녀도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지라 작가 자신으로 바로 대입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듯하다.  주인공과 주인공보다 한 살 많은 절친한 친구 뤄는, 부르주아 부모님을 둔 덕분에 '재교육'을 명 받았고, 고작 중학교 를 졸업했을 뿐인데도 지식인으로 분류된 두 사람은 고된 노동을 강요당하며 산골 마을로 흘러들어간다.  양파를 한번 썰면 온 동네에서 다 알아차릴 만큼의 작은 이웃 마을 용징까지 가는데도 무려 이틀이나 걸리는 그런 산골 마을.  그곳에서 뤄와 주인공은 농사를 짓고 탄광 일을 하는데, 그들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문명의 흔적이라는 것은 바이올린과 자명종 뿐이었다.  불태워질 뻔한 바이올린을 구해내기 위해서 뤄가 보여준 기지가 눈이 부셨는데, 모차르트 소나타를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한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주석을 생각한다'라는 명제엔 웃지 못할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러면서도 해학을 보여주는 작가의 필력이 같이 깃들어 있다.

두 사람은 간혹 힘든 노동에서 해방될 때가 있는데, 이틀이나 걸려서 이웃 마을에 가서 영화를 보고, 다시 이틀 걸려 돌아온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영화의 얘기를 할 때가 그 순간이다.  영화 상영 시간보다 모자라서는 안 되는 이야기의 재포장.  뤄는 이야기의 천재인지라 두 사람은 매 달 4일 간의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상과 생각이 강요당하는, 이념적 성격이 강한 영화를 줄기차게 반복할지라도, 산골 마을에서 도심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그 자유가 있는 한, 나라도 고된 걸음걸이를 절대 뿌리치지 못했을 듯하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예쁜 재봉틀집 소녀에게 반하고, 뤄는 그녀와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언뜻 보면 이들의 성장소설로도 읽힐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은 제목에서도 등장한 '발자크'가 담당하고 있다.  역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던 안경잡이는 몰래 책을 숨겨두고 있었는데, 그 책의 존재를 안 순간 뤄와 주인공의 눈이 번뜩인다.  그것은 억눌린 자유와 자아의 분출 장치이기도 했고, 무료한 일상으로의 탈출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문명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는 달콤한 미끼였던 것이다.  책 한권을 얻어내기 위한 눈물겨운 사투(온 몸을 간지럽히는 이와의 싸움..;;;)도 불사했고, 심지어는 안경잡이가 마을을 떠날 때 숨막히는 절도 행위도 불사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발자크, 스탕달, 위고, 뒤마, 롤랑, 루소 등등의 작가들.   문자를 아는 것 조차도 신기했던 그 마을에서, 금서로 분류된 책들과의 조우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두 사람과 또 그들이 같이 사랑한 한 소녀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심지어 재봉틀 기술자인 소녀의 아버지 역시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무려 9일 밤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급되어진 책들의 우수성도 크게 한몫을 해내었지만, 그곳에선 어떤 책이라도 고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크게 흥분하는 법 없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오밀조밀 올망졸망 사근사근한 재미가 내내 유지된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 하에 희생되었던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즐기며, 거기다가 연애까지 한다.  그러나 25세가 되어야지만 결혼이 가능한 그곳에서 열여닯 아가씨가 임신을 했으니 이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여기에서 또 한 번 작품은 큰 긴장감을 휘두르는데, 낙태를 해줄 의사와의 만남에서 '발자크'가 다시 한 번 큰 일을 해낸다.  금지된 그 이름에서 의사와 주인공이 함께 느낀 동질감과 안도감 그리고 서러운 감정이 독자에게도 진하게 전달되고 만다.  아마도 그 순간 바이올린을 갖고 있었더라면 레퀴엠 한 곡조를 뽑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발자크는 뤄와 소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이별을 만들어내는 중추 역할을 해낸다.  책을 통해 만난 새로운 세상, 문명, 사랑까지...  매력을 넘어 마력을 지닌 그것들을 향한 동경은 그들의 풋풋한 사랑으로도 막지 못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정에 배신당하는 순간 책들은 분서대로 향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니, 그렇게 그들은 한 세대를 마감하고 이제 어른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의 총체적인 후퇴를 낳았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고,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은 주인공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불타버린 발자크와 뒤마는 여전히 그들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살아있을 것이다.  청춘과 성장이라는 낙인과 함께.

간혹, 그런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혹은 그에 준하는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을 때.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공포로부터 주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나는 '이야기'를 택할 것이다.  그것이 동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어떤 이야기든지 쉬지 않고 떠들며 우리의 시간을 견뎌내게 만들 것이다.  기왕이면 재미나고 희망을 주는, 큰 웃음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야 할 테지.  어떤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  머리 속에 스쳐가는 제목들이 있다.

김혜린의 비천무,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또 향수, 사신 치바, 눈먼 자들의 도시 등등...
그리고, 이 책도 같이 기억하고 말하련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해 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말할 것이다.  바느질하는 소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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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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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전작 <뿌리 깊은 나무>를 본 지 얼마 안 되어서 이 책을 만났다.  뿌리 깊은 나무가 기대보다 못 미친 감상을 안겨 주었다면, 이 책은 기대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저자가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 등에서 포착해 내는 '이야기'의 힘은 몹시 매력적이어서 설령 글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다 할지라도 발상의 전환과 소재 선택의 기묘함으로 단점들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조선 후기 풍속화의 대가 두 사람이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천재 화인 두 사람을 엮어서 그림 대결을 보여준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 안에 추리 소설의 형식을 빌려넣어 적당한 긴장감도 부여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추리 소설로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는 그림 이야기와 동떨어진 기분이 들어서 매끄러운 진행을 방해하기도 하고 사건의 해결도 뚝딱! 해치운 듯 느껴져서 한껏 부풀었던 긴장감이 갑자가 팍 해소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두 번의 큰 반전과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그림 보는 맛을 상기시켜주어서 읽는 내내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내내 간직할 수 있었다.

작품 속 김홍도는 도화서 안에서도 밀려난 처지로 생도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세상 돌아가는 인심이나 관행에 무심한 이 사내는 그 올곧은 성품으로 한직으로 내쫓기고 말았지만 꺾이지 않는 지조와 자존심을 지닌 천재 화가로 소개된다.  그리고 그런 홍도보다 더 아웃사이더인 생도가 들어오니, 그가 신윤복이다.  역사 속에서 그에 대해 알려진 단 두줄의 기록은 이렇다.

   
 

 신윤복.  자 입보.  호 혜원, 고령인.  부친은 첨사 신한평.  벼슬은 첨사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  부친 신한평은 화원이었다.

 
   


다른 기록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그의 그림들 뿐이다.  작가는, 지극히 뛰어났던 그 그림들 속에서 무수한 은유를 읽어내고, 무한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는 그렇게 작가의 손 끝에서 연을 맺는다.

격식과 전통에 얽매인 도화서.  그 안에서 형식을 파괴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반역 혹은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당당히 해내어 도화서를 온통 시끄럽게 만든 인물이 신윤복.  그리고 그 허물을 뒤집어 쓰고 단청쟁이로 내려 앉은 이는 형 영복이었다.  아버지의 무언의 압력과 본인의 자청으로 감당한 그 업은, 가문의 명예와 윤복의 천재성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단청쟁이로서 다시 태어나는 영복이의 삶이 2권에 가서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그후로도 신윤복의 기행에 가까운 그림들은 멈추어지지 않는다.  금지되어 있는 여성을 정가운데 배치시켜 그리고, 남녀간의 은밀한 정을 밝히면서 승려나 양반을 빗대어 풍자하기도 서슴지 않는다.  당대의 임금이 개혁군주 정조라는 사실은 그의 그림이 더 빛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 작용한다.

작품은 십년 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대화원 김수항과 그가 그리던 사라져버린 그림, 그 사실을 파헤치다가 역시 죽임 당한 천재 화가 서징의 사건을 큰 테두리로 둘러싼 채 정조의 명에 의해 그림 대결을 하는 홍도와 윤복의 이야기를 포개놓는다.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두 사람은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그린 그림을 몇 점 갖고 있었다.  작가는 그 객관적 사실을 소설적 장치로 매끄럽게 포장을 한다.



신윤복의 그림은 강렬한 색상을 입혀서 좀 더 눈에 띄고 입체감을 가진다.  반면 김홍도의 그림은 차분한 색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주지만 좀 더 서민적이고 일상사에 접근한 그림으로 읽혀진다.  작품 속에서는 김홍도가 끊임없이 신윤복에게 일종의 경쟁심과 질투, 부러움을 품고 있는데, 천재 이상의 천재로 신윤복을 너무 떠받들어, 김홍도를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약간 불편하기도 했다. (달과 6펜스를 읽을 때 고흐를 더 사랑하는 나로서는 고갱이 미워지는 경험도 있었다.)

분명히 작가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강명관의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참고하였다.  이미 내가 읽은 텍스트에서 그림에 대한 설명이 옮겨왔음을 느끼겠는데, 그 표현들이 원작만큼 자연스럽지 않은 일종의 부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이정명 작가에게서 지속적으로 읽히는 점인데 스토리의 자연스러운 진행이 스토리의 참신함보다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빨아들이듯이 책을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을 보여주는 것 또한 작가의 놀라운 재능이라고 하겠지만.



똑같이 우물가를 묘사했지만 김홍도의 그림은 더 단순하고 간결하며 남성적인 느낌이 난다.  반면 신윤복의 그림은 배경 묘사가 보다 정밀하며 인물의 선도 섬세한 편이고 여성스러움이 강조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는 그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의 차이도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는데, 작가가 장치한 그 중요한 반전은 작품의 재미 이상의 즐거움을 독자에게 안겨주니, 그것은 그림을 읽어나가는 중요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우리가 책속에서 단원과 혜원의 그림의 차이를 문자로 그저 익히던 것과 다른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화원이 동제각화로 한껏 실력을 펼쳐보이다가 임금의 어진을 그리게 되자, 이제 대결은 임금을 포함한 3인으로 늘어난다.  임금은 기존의 어진과 다른 자세와 표정을 취함으로써 두 화원을 자극하고, 두 사람은 거기에 정면대응하며 도전을 받아들인다.  정말로 그런 대결이 역사적으로 일어났더라면 우리가 그 그림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소설 속에서조차 그들의 화려한 그림 기록은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도전은 아름다웠고, 그들의 땀은 눈부셨지만, 시대는 조선이라는 것을 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두 화원의 그림 대결에 한참 흥미를 느끼고 있던 독자는, 다시금 정조가 내던진 십년 전 살인에 대한 수수께끼로 퐁당 빠지게 된다.  1권의 끄트머리에선 이 부분을 진행시키면서 약간의 오류가 있었는데,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 14년 이후 왕이 된 지금의 시점과 나이가 맞질 않다.  두 화원이 죽게 된 것은 임금이 열 여덟 살 때 그려달라고 한 한 점의 그림 때문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것이었으니 임금의 나이에 3년이란 공백이 생겨버린다.

2권에서 신윤복은 도화서에서 내침을 당하고 도성 최고 거상 김조년의 화인으로 적을 두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여인이 있으니 도성 최고의 기녀 정향이 그 인물이다.   윤복이 정향을 바라보는 알 수 없는 그 감정과, 정향을 차지하려 수만금을 쓴 김조년의 질투와, 또 그 얽히고 설킨 감정의 타래들을 모두 들여다 보며 제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는 홍도까지, 작품은 등장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선에도 꽤 많은 내공을 쏟아부었다.  개인적으로는 홍도의 윤복을 향한 질투와 동경과 탄식이 꽤 와닿았는데, 시대가 내린 천재를 알아본 예인으로서, 또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둔 스승으로서, 그리고 그저 사랑에 빠진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가 잘 느껴진 까닭이었다.  벼락처럼 내꽂힌 천재 화가 신윤복을 현세에서 만났더라면 우리 역시도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사 소설로서 혹은 추리 소설로서, 이 책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지만 또 동시에 훌륭한 그림들을 실컷 볼 수 있는 강점까지도 갖고 있다.  작품의 마지막 대결로서의 제목은 '대결'이었으나, 두 사람의 그림은 대결을 뛰어넘어 예술로 승화되었으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그림들이다.





미학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저 그림 속에 수학적으로도 오묘한 진리가 숨어 있다는 재밌는 사실.   또 장수나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그림 읽기라던가,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 속에서 고정관념 깨기 등 작품 속에선 소소하게 현학적 즐거움도 찾을 수 있었다.

작품의 중요한 반전 포인트라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살인이라는 커다란 사건과 감춰진 그림, 그것을 파헤쳐나가는 등장인물들의 고투,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두 천재 화가의 그림 대결까지, 너무도 극적인 순간들이 많아서 책을 읽는 내내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누가 주인공으로 좋을 것인가를 즐겁게 상상하기까지 했다.  김홍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잘 살릴 수 있는 명연기자가 나와야 하겠고, 신윤복의 곱고도 날카로운, 그러면서도 뚜렷한 선을 가진 연기자가 또 누가 있을 것인가 나는 한참이나 머리 속을 헤집었다.  기왕이면 잘 알려지지 않은 연기 잘하는 신인을 써서 신선함을 주면 좋겠다고 나 혼자 단정해버렸다.

작품의 마지막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옛 시절을 추억하는 홍도의 독백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는 책이 처음 시작될 때 옛 시절을 떠올리던 김홍도의 독백과 대구를 이룬다.  책을 덮기 전 1권의 맨 앞으로 돌아가서 시간을 돌이켜보는 그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 글 속에서 위로해주고 싶은 애틋함과 바람의 소리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거칠지만, 너무 소중한 이야기여서 꼭 소장하라고 말하고 싶다.  좋은 이야기꾼을 만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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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1-14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관심없던 책이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갑자기 궁금증이.... 꽤 재밌을 것 같군요. 조만간 봐야겠어요. ㅎㅎ

마노아 2007-11-14 21:13   좋아요 0 | URL
작가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힘이 많이 달려요. 그럼에도 소재가 흥미로워서 재밌게 읽히더라구요^^

비로그인 2007-11-1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을 보며 책을 읽을 수 있겠군요.
저도 이런 책 좋아해요.

마노아 2007-11-14 23:18   좋아요 0 | URL
그림이 있어서 참 좋았어요. 나중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책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상상해 보았습니다^^;;

가시장미 2007-11-15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익숙한 그림들입니다. ㅋㅋ 저도 책을 좀 읽어야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봐야할 책이 너무 많네요. 배우고 알고 싶은 것도 너무 많구요. 으흐
같은 사물을 다르게 그린 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그림 속에 숨겨진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 그것이 미학의 매력이 아닐까요..

마노아 2007-11-15 09:42   좋아요 0 | URL
그림 보기, 어렵고도 재밌고 의미있는 시간 같아요. 우리 그림에 대한 책을 보고 싶다면 이 소설보다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가장 적극 추천이에요. 혹시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요. 우리 그림에 푹 빠지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들거든요^^

비로그인 2007-11-1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본 사이, 마노님 서재가 상큼하게~ 변했군요.^^
잘 지내고 계시죠?

마노아 2007-11-15 13:04   좋아요 0 | URL
엘신님! 부비부빗! 반가워요~ 외유는 잘 마친 거죠?
다시 보니 너무 기뻐요. 전 평범히 지내고 있습니다. ^^

2007-12-14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12-14 14:46   좋아요 0 | URL
아앗, 저 4관왕 먹은 건가요? 우왓, 행운이 찾아왔네요. 아영엄마님 감사해요. ^^
 
10월의 책입니다-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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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이 노벨 문학상을 타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구매를 좀 더 미루거나 아예 모른 채 지나가지 않았을까.  그녀가 큰 상을 받았기에 호기심이 동했고,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이라는 '세트도서'로서의 자리가 구매를 유발시켰다.  주체적인 선택은 그닥 아니었지만, 즐거운 독서였고 신선한 만남이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낀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때는 60년대였지만, 그들은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접근을 원했던, 그리고 그것을 아낀다는 점에서 통했다.  그들은 런던까지 출근이 가능한 소도시에 위치한 빅토리아풍의 거대한 저택을 구입한다.  집은 우거진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을 끼고 있었고, 2층과 3층의 방을 다 합하면 8개에 이르며, 꼭대기엔 다락방까지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저택이었다.  물론, 그들의 월급만을 가지고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고, 데이비드는 오래 전에 이혼해서 새엄마와 살고 계시는 부자 친아버지의 도움으로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호텔처럼 거대한 이 집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었던 것이냐면, 그들은 '가족'으로 꽉꽉 채울 셈이었다.  그들은 여섯 명의 아이를 낳기를 희망했고, 아이들이 하나 둘 태어나는 동안 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척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기간은 몇 주를 넘어서 몇 달에 걸치기까지 했지만 그들은 즐거워했고 모인 사람들 역시 만족스런 시간을 보냈다.(그 어마어마한 경비는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수표로 충당하곤 했다.)

아이들이 늘어날수록 해리엇의 어머니 도로시의 헌신이 요구되었고, 친척들은 그들 부부가 더 이상 아기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이들 부부의 강력한(!) 의지는 꺾일 줄을 몰랐다.  그래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몸에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어서 네번째 아이를 낳고는 조심을 한다고 하였는데, 그만 다섯 째 아이가 덜컥 들어서고 만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책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가 뱃속에 있었던 여덟 달 동안 해리엇은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뱃 속에서 너무 요동을 쳤던 것이다.  해리엇은 조산했고,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아이는 너무 무거웠고 울지조차 않는 녀석의 공격적인 젖먹기는 거의 공포를 느낄 지경이었다.

다섯 째 아이의 이름은 벤이었다.  벤은 성장이 빨랐다.  두 달만에 모유수유를 멈춰야 했고(아니었다면 엄마의 가슴을 통째로 삼켰을 아이였다.) 그 호전적인 눈빛에 다른 아이들은 슬금슬금 벤을 피하기 시작했다.  벤은 기어다닌적도 없이 바로 걷기 시작했고, 돌쟁이 무렵엔 개를 목졸라 죽였고 이어 고양이도 같은 식으로 죽여버리는 끔찍한 일들을 저지른다.

평화로웠고 행복했던 일상의 순간들은 모조리 깨져버렸다.  이제 친척들은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그 자리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벤의 형과 누나들은 동생을 피하고 경계했으며, 벤의 폭력에 의해 팔목이 삐기까지 했던 넷째 폴의 분노와 공포는 극에 달했다.  누구도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고(심지어 부모조차도) 가족들은 모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이들은 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데에 합의를 보았다.  엄마 해리엇은 마지못해 수용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보일 수 있는 엄마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이가 창문에서 떨어지기 직전에,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곳으로 마구 달릴 때에, 가까스로 아이를 잡았을 때 해리엇이 느낀 감정은 지극히 솔직한 마음의 소리였다. "하필이면 내가 이때 들어오다니......"

옳지 않고, 당연히 엄마로서 할 소리가 아님에도, 아이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독자 역시 그녀의 그 참담한 마음에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전혀 다른 방향이긴 하지만 영화 '오멘'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달까......

벤이 수용소로 보내진 날, 네 명의 아이들은 서로 눈치 보기에 바쁘다. "우리들도 보내실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해리엇은 울고 싶었을 것이다.  큰 아이 루크는 "벤이 우리하고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야"라고 대신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이 자못 슬프다. '다르다'라는 것이 다른 쪽으로도 읽혀서 말이다.  어떤 가정에서 장애 아이가 태어난다던지, 혹은 사고로 장애아를 갖게 되었을 때 집안에 드리워지게 되는 검은 구름이 떠올랐다.  물론, 작품 속 해리엇의 집은 얘기가 좀 다르다.  벤은 정상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 특이한 아이였지만 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운증후군 조카보다도 더 사회생활이 힘든, 심지어 '공포'를 자아내게 하는 남다른 아이였다.

아이가 보호소에 갇혀 있는 동안에 집안에 다시 평화가 돌아오는 듯했다.  넷째 폴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졌다.  하지만 엄마 해리엇은 아들을 방치시킨 채 그 사실을 속에 담고 내내 버틸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어찌 지내는지 보고 오기 위해 떠났던 길에서, 결국 해리엇은 아들을 데리고 돌아오는 자신을 말리지 못했다.  끔찍한 보호소에서 약물로 통제되던 벤은 집에 돌아와서도 그 공포에 짐승같은 보호본능과 공격성을 쉽게 꺾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해리엇은 집안의 공적이 되고 만다.

아이들은 기숙학교로 자청해서 떠나버리고, 폴은 히스테릭하게 성장했고, 데이비드는 집에 들어오지 않은 채 일에만 파묻혔다.  그 커다란 저택에 온통 사람들로 꽉 차서 모두가 행복해했던 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리엇은 벤의 존재가 그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남다른 유전자, 지구상에서 잘 발견되지 않은 이상 생명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들이 행복해지고자 했던 그 마음이 욕심이었던 거라고 자조적인 말도 하게 된다.  네 명의 아이를 열심히 잘 키워낸 것에 대해선 누구도 칭찬하지 않는데, 벤이라는 아이를 낳았다는 것으로 모두에게 손가락질 받고 비난을 받는 자신을 견뎌내지 못하는 해리엇은 점점 지쳐가고 늙어갈 뿐이다.

당연하다고 여긴 그들의 행복한 가정, 그들이 추구한 가치 등이 모두가 허망한 것이라고, 너무도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굳이 이 작품을 정치적인 내용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혹은 그 아이를 끌어안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질타성 감상을 내놓고 싶지 않다.  벤이 가족들(혹은 사회 구성원 전체)과 남다른 특성으로 외로웠을 것처럼, 해리엇 역시 그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충분히 외로웠다.  누구라도 겁나고 두려웠을 그 상황에 다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작품 속에선 의사 선생님들조차 원론적인 얘기들만 고집할 뿐, 이들에게 서툰 '위로'조차도 건네주지 못한다.)

작품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권선징악적 구조도 아닌, 그저 이런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소설'로서의 이야기로 읽힌다.  여기에 교훈적 깨달음이나 반성을 꼭 갖다 붙일 필요도 없다.  작품 속에서 끊어지는 대목이 전혀 없어서 끊어 읽기가 아주 망하지만, 끊어 읽고 싶지 않게끔 충분히 매력적인 글쓰기를 작가는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굳이 노벨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리스 레싱의 문장은 맛있었다. (사실 노벨상 받은 작품인데 지루하지 않다고 여긴 예는 오랜만이었다..;;;) 책꽂이에서 다른 민음사 세계 문학 시리즈와 함께 빛날 '다섯째 아이'가 내심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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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1-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음사라는 이름때문에 구입한 책이 저도 몇 권 있어요.

마노아 2007-11-05 15:17   좋아요 0 | URL
나란히 꽂아 놓으면 참 폼나는 책 시리즈지요^^;;;

순오기 2007-11-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벨상 작품이라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었어요.
저도 노벨상 작품들 별로 재미있게 읽지 못했거든요~~ㅎㅎㅎ
님의 리뷰는 확실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요^^

마노아 2007-11-05 22:51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어요^^
읽으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문학과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어요. 우리나라 책들은 최근엔 많이 달라졌지만, 특히나 과거 시대 이야기를 할 때는 꼭 '한의 정서'가 따라붙는데, 이 작품에선 비극적인 이야기를 함에 있어도 그 끈적한 느낌들이 배제되어 있어요. 건조하면서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요. 히잇, 끌어당기는 힘이라니....부끄러와요^^

프레이야 2007-11-0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두었는데 책 읽고 나서 님의 리뷰 읽을래요. 추천은 미리 ^^

마노아 2007-11-06 07:05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전 혜경님의 리뷰를 기다릴래요^^

2007-11-06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06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11-1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리뷰 당선 축하해요~~~
미리 추천 눌러두길 잘 한거에요..^^

마노아 2007-11-16 17:55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뜻밖이어서(늘 뜻밖이지만..;;;) 더 기분 좋아요. 헤헷^^

물만두 2007-11-1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7-11-16 1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물만두님^^

아영엄마 2007-11-16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저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

마노아 2007-11-16 19:49   좋아요 0 | URL
아영엄마님, 감사해요. 부끄부끄(^^ )( ^^)

순오기 2007-11-17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합니다~~~
아직도 이 책 안사고 있는데, 이러면 막 사고 싶어지잖아요! ^^

마노아 2007-11-17 09:23   좋아요 0 | URL
막 부추기는 거죵. 재밌다구요^^;;; 축하 감사해요~

2008-06-2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6-29 07:09   좋아요 0 | URL
땡스투의 주인공이었군요! ^^
토론도서로 선정되면 미뤄둔 책도 읽을 수 있게 되는 장점이 따라오네요.
멋져요, 멋져^^

이매지 2007-11-1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사두긴했는데 아직 못 읽었어요 -_ㅜ
어여 읽어봐야겠군요 :)

마노아 2007-11-17 10: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매지님^^
책이 얇은 것에 비해서 글씨가 많구요. 그럼에도 생각보다 빨리 읽혀서 신기했어요.
아마 재밌어서 그랬나봐요^^

달콤한책 2007-11-1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7-11-18 10:27   좋아요 0 | URL
달콤한책님 고마워요^^

책향기 2007-11-18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드려요 마노아님~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 어려울거라 생각했는데 님의 리뷰 읽으니 흥미가 생기네요

마노아 2007-11-18 23:4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책향기님^^ 저도 좀 쫄았는데, 괜찮았어요. 이 작품. 사실 노벨상 받은 책은 '황금 노트북'인데 그건 길어서 도전을 못하...;;; (탕!)

뽀송이 2007-11-19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에 관심이 잔뜩!!
노벨문학상 탄 작품들은 은근히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는데... 이 책은 괜찮을듯 해요.^^;;
얼른~ 읽어 볼게요.^^

마노아 2007-11-19 08:47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감사해요^^
전 기대 없이 읽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도리스 레싱이란 작가를 알게 되어서 기뻐요^^

다락방 2007-11-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리뷰 축하해요~~
저도 읽어서 리뷰를 쓰려다 포기했는데 말입니다.리뷰는 어려워요 ㅜㅜ 흣.

마노아 2007-11-19 13:33   좋아요 0 | URL
헤엣, 감사합니다. 전 리뷰를 거의 의무적으로 기계적으로 쓰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더 중요한 것은 독서인데, 리뷰에 목숨을 걸어서요. 목숨 건 대가로 적립금 오만원 벌었어요^^ㅋㅋㅋ

로드무비 2007-11-20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축하!
오만 원 바통을 받으셨네요.ㅎㅎ
이 책은 오래 전 사두고 읽지는 않았어요.
수상 소식에 읽어야지 해놓고 또 까먹고 있었는디.

마노아 2007-11-20 22:18   좋아요 0 | URL
헤헷, 로드무비님의 행운이 제게도 이어졌나봐요.
적립금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어요. 히힛^^;;;;
 
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구입한 지 꽤 된 책을 오랜만에 펼쳐든다.  세종이 특히 아꼈던 집현전 학사들의 의문의 살인 사건.  거기에 얽히고 설킨 오랜 피흘림.  그리고 숨겨왔던 주상의 큰 뜻...

사건을 떠맡은 사람은 비천하다고 늘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던 어린 겸사복 채윤.  사민 정책으로 북쪽 땅에 둥지를 틀었던 부모님을 여진족 손에 잃고 오로지 복수의 신념으로 전쟁터에서 성장한 청년.  그 청년을 김종서 장군이 거두어 주상께로 보냈다.  더 크게 쓰일 만한 재목이라고.

겨우 문맹을 벗어난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는 채윤이지만, 그랬기에 선입견 없이 사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마방진, 또 의문의 금속 활자.  이런 표식만 가지고도 채윤은 살해된 사람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오행에서 비롯된 순서임을, 그리하여 다음 희생자 역시 예고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나 천한 겸사복 혼자서 어찌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의심이 가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를 취조할 수 있는 자격이 되지 않았고, 사건에 도움을 받고자 청하여도 거절당하고 욕먹는 것이 부지기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살인이 있을 것임을 아는데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품을 읽는 재미는 채윤이 찾아가는, 또 풀어가는 수수께끼 같은 흔적들에 있었다.  살해 장소와 살해 방법으로 유추해 낸 오행과 마방진의 숫자 해법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고, 향원지, 경회루 등등에서 드러나는 '천원지방'의 정신이 아찔한 흥미를 돋운다.  세자빈과 말 못하는 궁녀 소이가 나누는 대화법은 이두를 닮아 있으며 한글 창제에 일종의 실마리를 제공하니 그 역시 신선한 정보를 제공해 준 셈.

20년 전 조정을 피바다로 물들였던 금서 '고군통보'에서 비롯된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그 정점에 최고 권력자 주상이 있고, 이를 둘러싼 양 진영의 목숨을 건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가 익히 들어온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니, 최만리, 성삼문, 정인지, 이개, 정초, 박연, 장영실 등이 그 주역들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들의 업적들이 편한 방구들에서 절로 나온 것이 아닌, 시대와의 '투쟁'의 결과였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읽힌다.

그러나, 책은 흥미로운 소재와 설정을 100%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강단 있고 똑똑한 겸사복 채윤의 캐릭터는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을 것 같건만, 녀석이 목숨 걸고 달려드는 그 의지에 '설득력'이 제공되지 않는다.  그가 말 못하는 궁녀 소이를 마음에 두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다.  전혀 절실해 보이지 않았건만 어느 순간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순진 청년이라니, 좀 뜬금 없는 전개였다.  학사들의 죽음을 파헤치고, 그 속에 녹아 있는 음모들을 풀어나갈 때면, 그 기막힌 해법에 감탄을 자아내고 고개를 끄덕여야 하겠건만, 문장 속에서 추리 소설의 장점으로 작용할 긴장감은 그닥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작품이 시작할 때마다 핵심 주제와 내용이 짧은 문장으로 먼저 소개되는데, 진행되는 내용의 흥미와 관심을 더해주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오히려 떨어지는 긴장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  세자빈이 축축된 것이 정치적 음모에 의한 희생양이란 설정도 역사적 사실에 위배되는 것으로 느껴져 나로서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절대 그럴 리 없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당시 세종이 죄없이 쫓겨나는 세자빈을 보호하지도 못할 정도라고 생각하기는 더 싫다.

집현전의 중심 인물들은 이 무시무시한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어 보이고, 오히려 쉬쉬하며 덮으려는 느낌이 강했다.  성삼문의 거의 일방적인 채윤에 대한 호의도 그닥 와닿지 않았고, 죽음을 바로 눈 앞에서 겪어 놓고도 공포나 두려움 따위도 읽히지 않았다.  한 마디로, 작품은 '문장력'의 힘을 거의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말 못하는 소이를 통해서 음운 구조를 연구하고, 발성 기간의 모양을 본떠서 한글의 글자들을 창안해 내는 장면들은 우리 글의 과학성을 전달하는 데에 요긴하게 쓰였다.  경복궁의 각 전각과 건물, 연못, 호수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그 모양새와 이름에 깊은 뜻이 새겨져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깨우침이었다.  세종과 그의 집현전 학사들이 격물치지에 힘쓰며 새 시대를 열고자 얼마나 애썼는 지도 독자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몇몇 구절에서 보이는 비문과 오타가 약간씩 옥의 티로 자리한다. 적재적소에 포진되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부호와 그림 등은 고마운 도우미였는데, 간혹 오류도 있었다.  1편에서 왼팔뚝에 문신이 있다고 하면서 묘사된 그림은 오른팔이 들어가 있었고, 2편 23쪽엔 '24'절기를 '24개월'이라고 표시하였다.   61쪽의 눈에 띄었다는 '띠다'로 고쳐야겠고, 84쪽의 '말에 부딪친'의 문장에는 '채윤의'라는 행위 주체자가 빠져 있다.  159쪽, '<고군통서>의 행방을 알고 싶다면 아미산에서 기다리겠다'라는 문장은 '기다려라!'라고 해야 문맥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290쪽 '여인을 난전을 벗어나'는 '여인은'으로 고쳐야겠다.

몹시 오랜만에 읽은 추리 소설이었는데, 나의 취미 없음 탓인지 기대만큼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음 작품 '바람의 화원'은 내가 사랑하는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자못 기대가 된다. 그치만 기대 때문에 재미가 떨어지면 곤란하니 '적당히' 기대하고 다가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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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 인더폴의 이라부와 마유미짱이 다시 뭉쳤다....기보다는, 다시 이야기로 묶였다.

여전히 엽기적이고 철없는 소년 마냥 순진무구한 이라부는, 고민을 가득 안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문제점들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혹은 괴롭히기로) 해결해 준다.  섹시 간호사 마유미는 이번에도 육감적인 그녀의 몸매와 또 거침 없이 툭툭 내뱉는 시니컬한 대사로 의뢰인(환자)들의 눈길을 끌고 아픈 데를 콕콕 찌른다.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어져 있는데,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난 78세의 구단주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강박 증세를 보이게 된다.  이라부가 툭 내던진 해결법은 '생전 장례식'

기자들과 늘 말썽이 일고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스캔들 메이커였지만, 막상 그의 생전 장례식은 누구보다도 엄숙하게 또 정감 있게 진행된다.  젊은이들에게 아직도 어필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 새롭게 기운 차리는 그의 모습이 힘차 보였다.

안퐁맨은 테크날로지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히라가나를 까먹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증세로 이라부 신경정신과를 찾아온다.  이라부와 유치원 아이들과 신나게 카드 놀이를 하면서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갖는데, '혼자만 이기면 놀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어린아이들의 세계뿐 아니라, 자신의 사업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  워낙에 잘 나가는 그였지만 그제서야 '겸손'을 배우게 된다.  그에게 발톱을 가득 세우던 사람들도 젊은이의 예의바른 인사에 모두들 마음이 녹아지니, 이라부는 그저 놀아주기만 하고도 환자의 고민을 해결해 준 셈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44의 나이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배우였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외모와 몸매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게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불안해 하는 그녀.  그래서 튀김 한조각에도 벌벌 떨고, 지방을 섭취한 순간 바로 운동을 해서 태우지 않으면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는 강박증을 보인다.  이라부는 무심코 '살을 좀 쪄보는 게 어때?'라고 말을 하고 여배우는 자신처럼 초조함에 살벌한 일상을 사는 다른 여배우를 지켜보면서 심정의 변화를 겪게 된다.  화려해 보이는 연예계의 이면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에피소드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면장 선거'

도시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섬 주민들의 치열한 선거전.  금품 수수와 상대방 비방 등등 법을 뛰어넘는(혹은 상관치 않는) 육탄전이 전개된다.  여기에 '아빠'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두 달간 다녀가게 된 이라부.  아버지 병원과 권력(?)의 힘으로 명사가 되어버리는데... 여기서도 그가 무심코 귀찮아서 던진 한마디로 치열한 선거전은 페어플레이로 돌변하니, 이라부는 흥신소를 하나 차려도 될 정도다.

그는 다만 신나게 놀고, 내키는 대로 할 뿐이지만, 그처럼 솔직하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적은 세상인지라, 우리는 오히려 등장 밑이 어두운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이라부의 특별 처방법은 유쾌하고 신난다.

아마도 공중그네를 먼저 보지 않았더라면 이야기가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을 테지만, 아무래도 비슷한 사건들과 비슷한 해결법, 또 똑같은 캐릭터가 반복되다 보니,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조금 떨어진다.  그래서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를 접한 사람들에게선 별점이 조금 박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라부식의 인생관이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니, 지친 도시 생활에서 조그마한 활력소가 되기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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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10-22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터폴>과 <공중그네> 이후 이 책을 볼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살짝 넘겼어요.
활력소가 많이 필요한 지금 이 책으로 충전해 볼까봐요. ㅎㅎㅎ

마노아 2007-10-22 13:19   좋아요 0 | URL
공중그네를 워낙 재밌게 보았더니 인더폴이 약하더라구요.
면장선거는 좀 시간이 흐른 뒤 보아서 그나마 나았어요^^;;;;
그치만 이라부의 엉뚱 엽기 발랄은 꽤 즐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