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 - 안견과 목효지 꿈속에서 노닐다
권정현 지음 / 예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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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조금 더 전에 일본으로부터 몽유도원도가 건너와 고작 일주일 여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 공개된다고 알려졌을 때 온통 시끄러웠다. 2시간에서 4시간, 심할 경우 6시간씩 줄서서 기다리고, 전시 마지막 날에는 자정까지 관람 시간을 연장해가며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없는 몽유도원도를 보고자 다리품과 시간을 바쳤다. 그렇게 우리를 열광하게 하고 안타깝게 만들었던 몽유도원도, 그 그림을 그린 안견이라는 사내, 그가 살았던 시대, 그가 그렸던 꿈, 그리고 꿈을 나누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펼쳐진다.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지하철에서 책을 펼쳤다가 오래지 않아 내리려고 하는데,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이 다급하게 붙잡는다. 책 제목을 알려달라고. 권정현 작가의 '몽유도원'이라고 일러주고 부랴부랴 내렸다.  그 여자분은 고맙다고 했다. 내가 읽는 동안 곁눈질로 읽어내려가면서 몹시 흥미를 느꼈나 보다. 나처럼 첫 소절부터 읽어내렸으니 더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몹시 흥미롭게 시작된다. 민응신의 '서화잡기' 사라진 그림에 붙여....라는 대목을 쓰면서 사라진 '몽유도원도'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하니 미스테리한 시작이다. 게다가 프롤로그에서는 안견으로 추정되는 노인이 자신의 '몽유도원도' 그림을 한 소년에게 전달하면서 눈을 감으며 시작한다. 한 세상을 풍미했던 대 화가가 저리 초라한 몰골로 세상을 하직하게 되는 그 속내가 궁금해 봄직하다. 

그렇게, 작품은 시간을 뒤로 돌려 아직 세종 치세일 때, 안견이 안평대군을 만나기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화서 화원으로 이름을 꽤 날렸지만, 정작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답답해 하는 40줄에 들어선 안견이 등장한다. 온갖 서화를 보물처럼 모아 놓은 안평대군의 서고가 탐이 나서 몰래 담까지 넘어버린 지친 예술가의 갈증이 제대로 그려졌다. 그 안견을 받아들이는 안평대군의 모습은 호탕하기 그지 없다. 역시 예술을 아는 인물인지라 사람도 알아본 것일까. 안평대군의 후원 속에서 안견은 여러 도움을 얻었고, 그 와중에 그가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선계의 모습을 한폭의 그림으로 담아내니, 그것이 '몽유도원도'다. 안평의 꿈 속에서는 사람이 등장했지만 안견의 그림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있지 않은 그 풍경. 신선은 살되 사람은 살지 못한 그 세계는 작품의 중요한 복선이 되기도 한다. 

1부의 주인공이 안견이라면, 2부의 주인공은 단연코 목효지다. 조부가 역모 사건에 휩쓸려 노비가 된 이 불운한 사내는, 죽어가면서까지 아들에게 글을 읽혀 이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풍수가로 거듭난 사내다. 비록 신분은 노비지만 훌륭한 스승 밑에서 땅의 기운을 제대로 읽어냈던 그는 왕릉을 잘못 쓴 것을 지적하며 신분의 회복과 급상승을 노렸지만, 오히려 양인으로 가까스로 올랐던 것이 도로 노비로 떨어지는 비운을 맞는다. 이후에도 세종 사후 문종 때, 또 김종서 집안의 가묘까지 명당과 그렇지 않은 땅을 힘주어 지적해 냈지만 번번이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미 후대를 살고 있는 독자는 그네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왕기가 서린 땅, 역모의 움직임 등이 모두 눈에 보이고 결과까지 다 알고 있으니, 그걸 풍수학적 이론에 맞추어 설명하는 것이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하게도 읽힌다. 정말 풍수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과에 맞추어 짜맞춘 것인지 혼동이 오기 때문이다. 

일제 때도 일본은 우리나라의 기를 막기 위해서 쇠말뚝도 많이 박았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저주를 건 사례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걸 생각한다면 미신 같으면서도 그 힘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작품에선 숭례문에 가로막힌 관악산의 화기가 비보로 세워놓은 숭례문은 태우지 않고 경복궁 동쪽 담을 건너뛰어 수양대군 사저로 흘러든다는 주장을 따르기 어렵다고 목효지가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미 숭례문이 불탄 사건을 전국민이 두눈으로 목격한 경험을 가졌기에 화재로 여러 번 경을 친 서울 사대문 안의 역사가 갑자기 무서워진다.  또 기화 스님의 입을 빌어 나온 대목에 대륙을 통일한 진나라가 망한 이유는 만리장성을 쌓으며 수많은 지맥을 잘랐기 때문이고, 수나라는 운하를 건설하면서 임의로 맥을 잘라 역시 단명왕조로 끝났다고 설명한다. 단지 그뿐만은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그 두 나라를 망하게 한 데에 큰 몫을 해냈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여전히 4대강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삽질에 매달리는 현정부를 생각할 때 아찔함이 밀려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풍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문제가 많은 사업이지만.

2부의 끝은 목숨을 건 상소로 운명을 걸었던 목효지가, 결국 곤장 100대를 맞고 황해도 관노로 유배조치되면서 마무리 된다.  그리고 대망의 3부는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의 대결 구도로 가는데, 이 3부의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계유정난'의 결과야 이미 알고 있는 노릇이지만, 그 안에서 안견과 목효지가 해내는 그릇의 크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안견이라는 인물이 정치를 가까이 하기 보다 그저 그림에만 심취하기를 원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존재로서의 자아가 앞쪽에서 두드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안평대군과의 우정이 더 깊게 그려져서 안견의 행보에 공감이 가질 않는다. 단지 목효지가 안견의 집터를 보면서 배신하되 살아남을 위인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대처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마찬가지로, 목효지가 땅보다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스승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걸 '대의'에 연결시키는 건 급작스러워 보인다. 작품 속 어디에서 목효지가 가난한 백성을 위한 땅 한 평을 위해서 싸웠던가? 그런 생각을 언제 품었던가? 그는 일신의 영욕을 위해서 큰 도박을 걸었던 불운한 사내였기는 하지만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투사나 영웅은 아니었다. 그러나 작품의 말미에선 목효지를 그런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자미원'이라는 최종 목적지가 있었다는 말은 역시 공감되지 않는다.

초요갱은 또 어떤가. 그녀가 실존인물이라는 걸 모른 채 책을 읽었기 때문에 목효지의 갈망과 설움을 증폭시켜줄 하나의 캐릭터로만 여겼다. 그런데 연표를 보니 이 여자가 행보가 보통을 넘지 않던가. 찾아보니 실록에도 무려 16차례나 이름이 올랐다 한다. 많은 남자들이 이 여자를 탐내서 부끄러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아 희대의 미녀였기는 한가 보다. 그런데 작품상의 초요갱만 보면 그 정도로 대단했을 법한 인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좀 미모롭고, 남들만큼의 욕심이 있는 평범한 여자로 느껴진다. 그래서 초요갱의 이름이 올랐던 여러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작품은 무척 애를 쓴 느낌이 나는데도 기대치를 다 만족시키지 못했다. 세조의 정변이 성공한 쿠데타가 되긴 했지만 그 이후 조선의 행보를 생각해 봤을 때 실패했어야 마땅했던 정변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세조가 문종보다 형으로 태어났다면 그가 조선의 훌륭한 임금이 되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차자였고, 조선의 법은 그를 조카의 신하로 묶어두어야 했다. 그의 원대한 포부가 무엇이든, 그는 부적절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서 왕이 되었고, 그 바람에 나쁜 역사의 선례를 남겼다. 안타까움은 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왜 자신은 성골이 아니냐고, 그 바람에 꿀 수 없는 꿈과 이상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거다.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 좋은 정치를 해낼 수도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됐든 인정해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던 인물이라는 것. 

더불어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카리스마가 약했다. 안평대군은 지나치게 유약했고, 김종서도 좀 우둔하다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에 비해 한명회는 얼마나 절묘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던가. 어차피 실패할 거라는 걸 알면서 읽으면서도, 작품 내에서의 긴장감이라는 게 팽팽하지 못하고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단 생각이 들었다. 천명이 그들에게 있지 않았고, 준비 과정에서의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다 극적일 수 있었을 부분들의 긴장감을 놓치면서 작품이 지루하게 읽힌 것이다.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하더라도 실패한 그들에게 더 큰 아쉬움을 느낄 수 있게, 그들이 추구한 '대의'에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국 작품은 제목처럼 선명하지 못하고 꿈속을 거닐듯 아련하고 답답한 느낌으로 마무리 되었다. 기실, 누구라고 인생을, 운명을 한 마디로 잘라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역사라 할지라도. 작품의 제목과 그 제목이 은유하는 인생사는 공감을 하지만 캐릭터를 통한 주제 의식의 설명은 부족했다고 여긴다.

특별 전시 기간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지만, 몽유도원도는 개방 시간 내에 볼수가 없어서 1미터 밖에서 어깨 너머로 감상해야 했다. 다시 일주일 뒤, 전시가 끝나고 모조품으로 대체된 그림으로 호기심과 불편함과 언짢음을 달래야 했다. 진품은 아니지만 진품과 꼭 같을 그림을 보며, 그 꿈 속을 거닐면서 인간이 아닌 선계에서 살 수 있었던 안평대군의 안타까움도 같이 느껴보았다. 아득하고 안쓰러웠다. 현실과 목표, 이상의 괴리... 몇 백 년 전의 꿈이 아니라, 오늘날의 꿈과도 닮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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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1-25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거란 기대감 속에 뭔가 아쉬움이 좀 남는군요.

마노아 2009-11-25 09:08   좋아요 0 | URL
제가 미출간 도서로 읽었는데,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무척 재밌게 읽었더라구요. 별로였다고 말한 사람은 사실 저밖에 없었어요. ^^;;;;

후애(厚愛) 2009-11-25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해서 볼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책이 답답한 느낌을 준다는 말씀에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에요.^^

마노아 2009-11-25 09:09   좋아요 0 | URL
'변혁'을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다고 생각해요. 너무 감상적이어도 곤란하지만, 마음에 동요를 주지 못하면 그것도 힘들다고 봐요. 이 책 리뷰도 몇 개 없던데, 제가 영업에 지장을 주네요.^^;;;

순오기 2009-11-2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수를 완전히 믿기도 무시하기도 어렵지요.
4대강~ 생각하면 식은땀나요.ㅜㅜ

마노아 2009-11-25 21:12   좋아요 0 | URL
과학적 근거까지는 몰라도 정말 무시 못할 학문이라고 생각해요.
강바닥, 땅바닥 어쩜 좋아요..ㅜ.ㅜ
 
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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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김훈이지만, 그의 문장은 밀어내면서 읽어야하기 때문에 힘에 부친다. 325쪽에 달하는 소설은 아주 짧지도 않지만 너무 길지도 않은 분량인데도 읽어내면서 숨이 찼다. 숨차게 읽었는데 누군가에게 줄거리를 전달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요약하기도 쉽지 않고, 때문에 전달하기 어려운, 지독히 정리하기 어려운 독서였다.  

작품 속에서는 두 개의 지명이 중심축을 이룬다. '창야'는 학생 운동권 출신인 장철수가 자라서 운동하다가 배신자란 낙인을 안고 도망친 곳이고, 장철수의 학교 후배이며 창야에서 미술 교사를 했던 노목희의 고향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모두 창야를 떠났다. 본의 아니었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떠난 그들은 어떤 방향으로든 또 다른 중심 지명 '해망'에서 마주친다. 아니, 두 사람이 직접 마주치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선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문정수라는 사회부 기자를 통해서. 

검색을 해보니 창야란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경남 창녕 쯤에 해당하는 지명이라는 추정은 보았다. '해망'이란 지명은 나온다. 군산쪽인데 바다를 바라보는 곳이라서 이름이 해망이란다. 소설 속 해망이 그 해망인지는 모르겠지만 서해 바다 간척지를 떠올린다면 같은 곳일 수도 있겠다. 

창야로부터 뛰쳐나간 장철수는 해망으로 흘러들었고 베트남에서 결혼 이민 온 후에와 바다 속에서 고철을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 해망에서 살던 주민들은 매립지 공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떠날 준비를 했다. 어업 보상은 쉬이 이뤄지지 않았고, 크게 값이 오를 거란 기대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런 와중에 농사꾼 방천석의 17세 딸 방미호가 크레인에 깔려 죽었고, 소녀의 죽음은 환경운동가들과 더 많은 보상을 원하는 주민들에게 이용당했고, 아비는 딸의 사고 보상금 1억 2천 만원으로 깔린 빚을 갚고 해망을 떠났다. 서울에서 소방위로 근무하던 박옥출은 백화점 화재 진압 중 귀금속을 훔쳐내어 해망으로 내려갔고, 키우던 개에 물려 죽은 어린 아들의 사고 소식을 해망 식당에서 일하다가 들은 어미 오금자는 결국 해망을 떠나지 못하고 눌러 앉는다. 그리고 이 모든 소식소식들을 찾아다니며 해망에 얽매이게 된 기자 문정수.  

그 모든 사건들과 사연들을 전달하는 김훈의 목소리는 문정수를 통해서 건조하게 기술된다. 작가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성실하게 기록하지만 거기에 감정을 싣지 않는다. 그 사이사이 사람들의 감정을 대신 느끼고 공감하고 답답해 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그래서 밀어내며 읽어가는 이 책은 힘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층짜리 백화점에서 불이났는데, 처음 화재 사실을 신고한 경비원은 죽었는데, 그 죽음은 신문 하단의 단신 기사만큼도 비중을 갖지 못하고, 백화점 주인은 헐어낸 자리에 1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는 걸 허가 받으면서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고, 화재 현장에서 보석을 훔쳐낸 소방수와, 그 사실을 알아차린 기자는 모두 함께 사건을 덮는다. 뿐인가. 장기밀매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도 두 사람은 같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다르다면, 잔뜩 주눅 들어 있던 전직 소방수 박옥출이 이제 문정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상' 하겠다며, 대놓고 침묵을 강요한다는 것. 

   
 

 야, 장기매매 같은 건 기사 쓰지 마. 내가 다 갚을게. 넌 쓴 기사보다 안 쓴 기사가 더 좋다. 그게 더 진실돼. 안 그래?    (314쪽)

 
   

쓰지 않은 기사가 더 좋고, 더 진실되다는 단언 앞에 문정수는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어쩌면 그 자신도 그렇게 동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여러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면서 온 몸으로 부대끼며 기사를 써내지만, 점점 더 스스로 무력해져 갔고, 그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아 갔다. 마치 백수광부가 물에 휩쓸려 사라져 가듯이.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며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 밝혔었다. 씁쓸하고 공허하고 외롭고, 무엇보다 슬프기까지 한 여옥의 노래는, 작품 속에서 명멸하는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허허로운 노래 끝에서 무슨 희망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다시는 오지 마. 여기는 올 데가 아냐. 여긴 다들 떠나는 데라구. (248쪽)

 
   

병어잡이 어선에 잘못 걸린 바다 사자를 다시 바다로 보내주면서 번영회장이 내뱉은 말이다. 그의 말은 바다 사자가 아닌 그곳 해망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전하는 경고처럼 들린다. 머물 곳이 못 되는, 있을 곳이 못 되는, 사람 살 곳이 아닌 이곳, 이곳들...  

작품 속에서 까메오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진 타이웨이 교수. 그는 대륙을 지나치며 역사와 문명, 시간과 공간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시간 너머로'라는 책을 썼다.  시간 너머로... 아득하고 추상적으로 울리는 제목이다. 강 건너도 보이지 않는데 시간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자니 역시나 숨이 차다.

김훈의 소설 속에서는 초인적이고 영웅적이고 장인스러운 인물들이 등장해 왔었다. 평범한 소시민을 그려낼 때도, 그 사유 속의 인간은 뭔가 우리와는 달라 보이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독히 우리와 똑닮은 사람들만 복사판으로 등장을 해버리니, 기운이 빠진다.  현실의 삶도 버거운데 소설 속에서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의 노래를 내가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내가 더 여물어질 때를 기다리기보다, 그가 좀 더 쉬운 노래, 좀 더 밝은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애끓는 노래가 아닌 절로 어깨춤이 나올 수 있는 장단도, 한 번 쯤은 기대해 봄직 하지 않은가.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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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11-1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인본을 노리고 있었는데 놓치고 말았어요.ㅜㅜ
이 책 좀 어려울 것 같네요.
그래도 읽고 싶어요~ ^^

마노아 2009-11-19 09:57   좋아요 0 | URL
제 책도 사인본이 아니네요.^^
김훈 작가의 책을 거의 읽었는데 두번째로 힘들었어요. 이제 좀 거리를 두었다가 읽어야 애정이 살아날 것 같아요.^^

메르헨 2009-11-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어내며 읽는다...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렇죠...좀 힘들여 봐얗는 글이죠.
딱히...읽다보면 어려운건 아닌데 말이에요.

마노아 2009-11-19 15:24   좋아요 0 | URL
평소 다른 글보다 과하게 무거운 게 아닌데도 읽어내는데 무척 힘들었어요. 다리가 축축 처지더라구요...

순오기 2009-11-19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읽은 책 리뷰를 못 쓰고 있어서 줄줄이 밀렸어요.
남한산성을 하도 힘들게 읽어서 이 책은 별로 힘들진 않았어요.^^

마노아 2009-11-19 23:15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남한산성을 힘들게 읽으셨군요.
전 이거 읽고서 북한산 등반한 기분이었어요...;;;;

하늘바람 2009-11-20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다른 사이트에서 나오기 전에 미리 공개되었잖아요? 그땐 못보고 지금도 못보고~

마노아 2009-11-20 11:21   좋아요 0 | URL
김훈 작가의 스타일과 호흡을 생각했을 때 온라인 연재는 너무 안 어울려 보이는데, 그럼에도 인기 폭발이었죠. 다들 어떻게 읽었을지 신기해요.^^;;;

꿈꾸는섬 2009-11-21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은의 공무도하가도 들을만 하지 않나요?

마노아 2009-11-21 07:01   좋아요 0 | URL
아, 그 노래는 정말 격하게 아름답죠. 이상은 넘흐 좋아요!!
 
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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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담임 교사는 그날이 자신의 교직 인생 마지막 날이라고 선언하면서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어떻게 해서 교직 생활을 하게 되었는지를 얘기했고, 왜 싱글맘으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랬다. 그녀는 싱글맘이었다. 한 달 전까지.  

그녀의 딸은 네 살. 일주일에 단 하루, 회의 때문에 늦게 끝나는 수요일에만 학교 양호실에 아이를 맡긴 채 일을 했는데, 그 날 사고로 아이가 죽어버린다. 수영장에 빠져서 익사했던 것.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고 그녀가 선포한다. 자신의 딸은 살해되었다고. 바로 이 곳, 이 학급의 학생들에 의해서. 

그렇게, 시작했다. 첫번째 고백을 한 사람은 사랑하는 딸을 잃은 가엾은 엄마이기도 한 희생자의 유가족부터였다. 그녀는 범인이 누군지도 알고 있고, 범행도 자백 받았지만 경찰이 발표한 그대로 딸의 죽음은 '사고'로 남겨두겠다고 단언한다. 그녀가 성직자와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잘못된 길로 들어선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앞길을 갱생의 차원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교직자의 마음으로 그리 했을까? 아니다. 모두 아니다. 그녀는 법의 심판이 아닌 私적인 심판을 원했던 것이다. 미성년자라는 이유 때문에 법적 제재조차 당하지 않는, 그것을 악용해서 더 사악해지는 어린 범죄자를 향해 그녀 나름의 통렬한 복수를 기획한 것이다.  

마치 짧은 단편처럼 그렇게 한 챕터가 끝이 난다. 이제 다음 화자로 넘어가 보자. 두번째는 학급의 반장이다. 2학년이 되어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만났지만, 초짜이면서 동시에 너무도 열혈 청년인 까닭에, 오히려 긁어부스럼 만들기 일쑤인 이 선생님으로 인해 겪게 된 갈등과, 선생님의 사임 이후 벌어진 학급 내의 일들이 이 소녀의 입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렇지만 이 친구 역시, 정상은 아니다. 상식 수준에서 이해되지 않는 아이들의 언행, 그리고 엄포. 입이 딱 벌어진다.  

세번째 화자는 두 명의 살해자 중 한 녀석의 누나다. 사건의 전개 과정을 얘기하는 건 누나지만, 사실은 그녀의 엄마다. 엄마의 일기장 기록을 통해서 그 사이 벌어졌던 일들의 진행 과정이 다시 적나라하게 설명된다. 자기 자식만을 위하는, 왜곡된 애정을 가진 어머니의 지독한 사랑이 불편하지만 익숙한 구도로 전개된다. 이런 어머니들을, 우리는 곧잘 보게 된다. 우리의 주변에서, 혹은 자신의 집에서도. 

네 번째는 살해자 중 한 녀석, 그리고 다섯 번째는 또 다른 살해자의 차례다. 이들의 관계는 좀 복잡하다. 실제로 살해 계획을 세운 녀석과, 살해 행위의 직접적인 가해자가 어긋났다. 두 사람의 조합이 아니었다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터인데, 최악의 만남으로 아이는 죽었고, 그 후 또 다른 사람들이 어긋난 인과 관계로 죽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겹치면서 증오와 복수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마지막 화자는 다시 첫번째 얘기를 꺼냈던 퇴직 선생님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준비했던 복수극이 어떻게 망가졌고, 그것을 다시 어떻게 일으켜 세우는 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전부 각 화자들의 '고백'을 통해서 진행된다. 성직자/순교자/자애자/구도자/신봉자/전도자... 라는 소제목을 달고서. 

작품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엄청난 힘을 지녔다. 점점 더 커지는 검은 구멍이 읽고 있는 동안 독자를 삼킬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서 순간순간 흠칫흠칫 놀라게 만들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딸 아이,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 어미된 자로서 느끼는 그 절망감과 분노를 어찌 삭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가했던 복수는 일견 통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뒷맛은 씁쓸하다. 누구든 사적인 복수를 자유롭게 할 수 없을 뿐더러, 그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희생을 불러오게 한다. 복수 뒤의 허망한 마음 역시 그렇다.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이야기는 굳이 국적을 중요한 바탕으로 삼지 않는다.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은 모두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들은 자신만 사랑했고, 자신 이외의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은 생각지 않고 야단 맞은 것에 대한 분노로 엄한 복수극을 준비했고, 자신을 떠난 엄마가 자신을 찾아오게 만들려고 흉악한 범죄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고, 자신이 세운 '성공'의 기준에서 너무도 멀어진 아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서로를 '실패자'로 묶어서 죽으려고 한 못난 어미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모두 자신의 상처만, 자신의 분노만 들춰내고 감당하려고 했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했다. 비정상적으로 뻗은 제 분노로 인해 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과 사죄가 없다. 진심이 담긴 사죄가 우선했다면, 반성이 먼저 따라왔더라면, 딸을 잃은 선생님이 그렇게 사적인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까.  

괴물같은 이기심들이었다. 처음엔 모두가 가질 법한 못나고 부족한 마음의 한 덩어리였을 뿐인데, 그것들이 공교롭게 뭉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았다. 그것을 멈춰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누구라고 완전한 사람이겠는가. 모두가 부족한 부분들을 안고 그것들을 다듬어가며 채워가며 살아가야 마땅한 것인데, 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표현된 이 사람들은 도통 갱생의 여지가 보이질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의 소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희생자이자 결과적으로 가해자가 된 그 선생님을 손가락질 하기 힘들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딜레마가 답답하다. 무엇보다도 복수의 장에 또 다른 학급 아이들을 참가시킨 것에 한숨을 쉬게 된다. 당신은 차분했고, 냉정했고, 또 똑똑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래도 그건 성숙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딸을 잃은 당신에게 '성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뉴스를 장식하는 범죄 소식들은 나날이 사악해지고, 범죄자의 연령대는 더 어려지고, 법의 효과는 더 미미해지는 것만 같다. 계속해서 쌓이는 불신의 고리. 범죄를 잉태하고 키워가는 음습한 이 사회. 충분히 재밌고 탁월한 소설을 읽었음에도 뒷맛이 씁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어떤 답도 줄 수 없고, 어떤 마무리도 개운할 수 없는 불편함이 계속 남는다. 우리는 참으로 편리하고 놀라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지극히 무섭고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자각이...... 2012년이면 인류가 거의 절멸할 것이다... 라는 예언보다도 더 끔찍하다.  

덧글) 이 작품은 작가의 첫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이토록 매끄럽고 유려한, 게다가 긴장감 넘치는 작품이라니... 그야말로 슈퍼 루키가 아닌가! 작가의 다음 작품도 빠르게 번역되어 나올 듯하다. 다시 또 불편해질 수 있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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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15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이 사실 피해자 가족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마노아 2009-11-16 00:09   좋아요 0 | URL
법이 위로해주기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공정하게 적용이라도 된다면 좋겠어요.
웃긴 사례까 너무 많잖아요..;;;;

antitheme 2009-11-1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읽고나니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법이란데서 인간미를 느끼는 걸 포기해야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방법이 존재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구요...

마노아 2009-11-17 16:24   좋아요 0 | URL
법을 만들고 적용하고 활용하고 악용하는 것 모두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인간인가... 회의가 들기도 하구요. 성선설까진 아니더라도 성악설은 맞지 않다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11-17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 범죄 증가율보다 노인들이 저지르는 강력범죄 증가율이 더 높다네요.저는 어린 소녀만을 강간해 죽이는 노인 연쇄살인범 이야기도 나올 거라고 봅니다.

마노아 2009-11-17 16:49   좋아요 0 | URL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대목들이지요. 분명 이미 나왔거나 앞으로 나올 거예요.ㅜ.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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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에 담긴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기 이전에 내 첫 인상은 그랬다. 일단 제목은 멋지다고... 

반딧물의 묘, 였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몇 년 도에 내가 죽었다...라는 참전 군인의 나래이션으로 시작되었던 애니메이션. 전쟁의 참상 속에서 굶어 죽은 여동생이 나오고, 그 자신도 죽어버렸던 나이 어린 군인의 이야기...  

그 애니가 떠올랐던 것은 이 책의 제목이 된 다음 글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죽은 친구의 일기장 첫 머리에 쓰여 있었다던 저 문장. 친구는 자살을 한 것일까?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내 상상력은 딱 그만큼이었다. 이 친구는 뭔가 커다란 고민이나 혹은 감당하지 못할 시련을 겪다가 그만 자살을 하고 만 걸거야!라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런 죽음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는 게 우리의 비극이기도 했고. 

좀 뜻밖의 전개였다. 처음엔 확실히 무겁게 시작했다. 두 달 전에 죽은 친구의 일기장을 도저히 읽지 못하겠다고, 친구의 엄마가 대신 읽어봐달라고 내민 일기를 읽으려 시도하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부모의 이혼과 부모의 재혼으로 방황과 갈등을 겪은 중3의 유미. 전학온 학교에서는 적응하지 못하고, '날나리' 과로 취급받으면서 더 어긋나기 시작하는 학교에서의 불협화음, 그 와중에 유일한 친구였던 이웃집 사는 재준이의 급작스러운 사망. 뭔가 커다란 비밀이 밝혀질 것 같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음이 아파... 이러면서 책을 덮을 것만 같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좀 다르다. 그런 예상은 거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죽은 아이가 가여워서 마음이 아프고, 남겨진 자들의 고통도 안쓰럽기 짝이 없지만, 이 책은 그렇게 뻔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게 가장 큰 미덕이기도 하고. 

유미와 재준이는 서로 다른 친구들을 좋아했다. 유미는 좀 논다 하는 버터남 위정하를, 재준이는 여자애들이 재수 없어하는 청순가련형 새침떼기 정소희를 좋아한다. 두 사람 모두 고백했다가 퇴짜 맞았고, 서로를 위로하느라 춘천 기차 여행을 다녀오면서 소주를 마시며 쓰라린 속을 더 쓰라리게 만들었던 추억도 있다. 워낙 자유분방한 유미가 비교적 위정하의 그림자를 빨리 떨쳐낸 것에 비해서 재준이는 그후로도 오래오래, 사실은 죽을 때까지 정소희를 사랑했다는 게 다르지만.  

학생을 이해해주지 않고 선입견만 내세워 닥달만 하는 전형적인 교사도 나오고, 서로의 뜻만 고집하느라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는 고압적인 아버지들도 등장한다. 오로지 공부공부공부만 외치느라 자식 숨이 막히는 것도 모르고 자식에 올인하는 어머니도 등장한다. 여기까지도 지극히 평범하다. 그게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은 역시 또 비극이지만... 

남다른 캐릭터는 유미의 새아빠다. 가난한 작사가인 새아빠는 늦잠 자기 일쑤인 엄마 대신 유미에게 밥을 차려주고, 유미가 반드시 '새'아빠라고 부르는 걸 존중해 주면서 오히려 즐기기까지 하는 유쾌한 사람이다. 새아빠가 담임에게 혼이 나서 돌아온 유미에게 해주는 멋진 말을 들어보자.  

   
  그래, 확실히 그 선생님은 어른스럽진 못하구나. 거기다 술집 여자, 이런 말을 하다니 선생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유미야, 나는 기본적으로 어른이 해서 나쁜 짓이 아니라면 아이가 해서도 나쁜 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인 거야. 그러니까 귀를 뚫어선 안 된다, 이런 규율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직 어릴 때는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질 능력이 없으니 학교에서는 어떻게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좀 과잉보호로 여겨지지만 염색이나 귀 뚫는 걸 불량학생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막는 거고. (76쪽)  
   

모든 경우의 수에 저 얘기가 맞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귀 뚫는 것 정도가 아니라 담배를 피웠다... 라고 한다면 좀 곤란해지지 않는가. 물론 나는 어른이 담배 피우는 것도 싫어하지만... 

어른과 아이를 동일 선상에 놓고서 대등하게 대우해 주고, 차분하게 설득을 먼저 해주는 아버지라니, 너무 멋지다. 어쩌면 '새' 아빠여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한술 더 뜬다. 재준이의 일기장에 적힌 문장을 옮겨와 보자. 

   
  지난번 놀러갔을 때 걔네 엄마가 그랬다. 현재의 학교 교육은 고양이고, 금붕어고, 뱀이고, 코끼리고 모두 모아다가 각자 잘 하는 걸 더 잘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동물들을 똑같이 만들게 하는 교육이라고. 고양이더러 물 속에서 헤엄도 치고, 똬리도 틀고, 코로 물도 뿜으라고 요구하는 교육이라고 말이다.  (140쪽)  
   

멋진 엄마다. 그 엄마의 표현이 옳아서, 그래서 더 속이 상하긴 하지만...... 

그렇다면, 이렇게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고, 선택의 기회를 주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에겐 100점 짜리인가... 설마, 그럴 리가...  이번엔 유미의 반응을 보자. 

   
 

 그래, 우리 엄마 역시 내게는 감옥이다. 모든 걸 자유롭게 풀어주는 것 같지만 그러기에 나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반항할 필요가 없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또 하나의 감옥이다. 결국 모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다 감옥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149쪽)

 
   

자유의 뒷면에는 언제나 '책임'이라는 다른 이름이 붙어 있다. 유미의 엄마는 그 양면의 얼굴을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유미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 무게를 일찌감치 알아버린 유미는, 그래서 또래보다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동시에 건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아이들보다 덜 성숙하기도 하는, 더 유치하기도 하는 이런 어른들의 모습도 우린 익숙하다.  

   
 

 자기가 사과도 할 줄 아는 어른이란 데 대해 아빠는 만족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한테 대해 미안한 마음보다 그런 자부심이 더 느껴져서 나는 조금도 감동하지 않았다. (170쪽)

 
   

전날 아들의 뺨을 때린 것에 대해 사과를 하는 아버지는,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더 폭력을 쓰는 아버지보다는 낫지만, 아이에게조차 눈치 채이는 저런 마음은 솔직히 부끄럽다. 그 사람뿐만의 일이 아닐테지만. 

재준이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한 채 일기장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는 다소 마음이 무거웠지만, 오히려 일기장의 끝을 향해 나아가면서 점차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짐작했던 그런 죽음이 아니었고, 비록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은 아이의 인생 어느 한자락을 들여다 보는 거지만 그 소소함의 소중함과 평범함의 특별함이 따뜻해서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은 청소년 추천 도서로 늘 포함되었고, 어느 학교에서는 이 책을 읽기 싫다고 거부했던 학생이 자살을 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 학생의 자살이 이 책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 학생도 이 책을 읽었더라면, 두려워하고 거부했던 그 '죽음'과는 달랐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비극은, 권장도서이기 때문에 모두가 똑같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우리 교육의 방식과 죽음으로 달려갈만큼 위태한 행보를 걷고 있는 학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잡아내지 못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있었다.  

교육만이 희망이던 시절이 대한민국에도 있었다. 한 사람의 희망뿐 아니라 온 가족의 희망이던 시절 말이다. 그렇게 희망을 끌어와서 희망이 환상으로 바뀌고 난 뒤, 환상은 사라지고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인해 빈곤한 마음을 가진 대한민국이 남았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고 난 뒤의 뒷감당에 대해서 이젠 진지하게 고민해볼 때이다.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과 청소년이 가득한 나라, 그 아이들이 주인공이 될 대한민국의 미래라니,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나아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재준이가 일기장에 쓴 것처럼, 상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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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14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하신 부분들이 아주아주 마음에 들어요, 마노아님. 특히 '아이가 해서 나쁜 짓이라면 그건 어른이 해도 나쁜 짓인 거야'는 정말 박수 쳐 주고 싶은 문장이에요. 저는 대체적으로 이 의견에 공감해요.

마노아 2009-11-15 00:32   좋아요 0 | URL
예, 그렇지요? 어른과 아이는 서로의 거울인데, 거울로 비추어 제 모습이 아닌 상대의 허물만 볼 때가 많지요....
 
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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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에세이 집을 읽었는데, 역시 나는 에세이랑은 좀 안 맞아...라고 중얼거렸다. 모든 글은 작가 개인의 글이니까 다분이 개인적일 수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건 역시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그 자신의 사적인 영역 안에 내가 들어서지 못하면서 느끼는 어떤 벽같은 게 장애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어떤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인가 어렴풋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는, '스토리' 중심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문장이 훌륭한 책도 좋지만, 문장만 훌륭하고 이야기가 없다면, 그 소설은 내게 좋은 소설이 아닌 것이다. 김연수의 글은, 내게 이야기를 하기 전에 문장부터 자랑하는 글이었다. 그의 문장은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기가 힘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저릿하게 읽히는 구석이 있었다. 문장만 예쁜 건 아니었다고, 끝까지 읽어보라고, 다 읽고 얘기하라고 계속해서 내게 주문을 걸고 있었다. 그리하여 책을 다 덮은 지금은, 뭐랄까...... 뭔가 뭉클한 게 잡히는 느낌이다. 김연수의 문장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것이다. 역시 이른 속단은 금물이었다. 이 책, 참 좋다. 

9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마지막에 실린 달로 간 코미디언만 중편 규모이고 나머지는 단편으로 보면 될 듯하다. 감각적인 문체를 자랑하듯 단편들의 제목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기억할 만한 지나침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모두에게 복된 새해-레이먼드 카버에게
-내겐 휴가가 필요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달로 간 코미디언 

처음에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를 읽을 때는 좀처럼 몰입이 되지 않아 읽은 문장을 읽고 또 읽고 헤매고 말았다. 전반적으로 작품이 몰입해서 읽어야 파악이 되는 피곤함을 주기는 하는데, 작중 화자가 누구인지를 신경 써서 읽어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내내 얘기하던 '소통'이 작가와 독자 사이에도 이렇게 걸려버린다. 작가는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어쩌다 보니 작품집에는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 시간대를 사는 사람들의 통하지 못한 이야기, 통하고자 하는 마음, 이해받고 싶은 욕구, 이해하고 싶은 열망 등이 공통적으로 깔려버렸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주로 외국에 많이 있을 때 썼던 작품이어서 정말 그런 특징들이 잡힌 것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공통점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거의 대부분,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케이케이가 죽었고, 김희선 할머니가 사랑했던 제자가 죽었고, 서른 살 생일 날 헤어진 연인을 만난 그녀의 이야기에선 용산 참사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직 형사가 자살을 했고, 사진 작가가 죽었고, 문화혁명 때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를 죽게 한 노인이 나오고, 권투 시합 도중에 죽은 선수와, 가족을 버리고 미국에 갔다가 죽어버린 아버지도 나온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무엇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사랑했던 그 사람의 추억의 장소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그가 보내고자 했던 편지의 수신자를 찾기도 하고,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그리 모질게 살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남은 사람뿐 아니라, 당사자들도 찾고 싶어한다. 전직 형사라 칭하던 고문기술자는, 자신이 죽게 했던 운동권 학생의 마지막 시선을 덜어내고 싶었고, 자신이 했던 행위의 당위성을 어떡해서든 찾고 싶었다. 혁명이라는 광풍 앞에서 사랑하는 이의 가족을 죽게 한 남자는 노인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얘기하고 쓰게 한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포장하며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어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또 작품은 실존 인물이나 실제 있었던 사건, 실제 장소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말하고자 애쓴다. 메타세콰이어 길이 나온 세계의 끝 여자 친구는, 심지어 작품 제목이 일본의 1인 밴드의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 1월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그 억울함이 날마다 켜켜이 쌓여가 커지는 용산참사의 불길이 유가족의 편지와 함께 등장했고, 물고문으로 사망해버린 학생 운동가도 나왔다. 시합 도중 죽은 권투 선수의 얘기처럼 굳이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작가님은 실제 사건을 소설 속에 녹여내는 일에 대해선 스스로도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 소설 속에 지나칠 만큼 똑같이 등장해야 할 의무 따위는 물론 없지만. 

어쩌면, 그 까닭은 역시 '소통'의 문제일까? 후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316쪽  
   

애초에 이해한다는 것에 회의를 갖고,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니 말이다. 혹, 작가는 열심히 독자와 소통을 하려고 했는데, 독자인 내가 작가의 의도를, 목소리를 잘 못 알아차리고 있는 것일까? 그럴 가능성도 사실 크다.  

대체적으로 작품들이 좋았고,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특히 더 좋았다. 그렇지만 잘 나가던 작품이 마무리 부분에 가서는 지나치게 모호하게 끝내는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쉬웠고, 어떤 작품들은 무척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의 여고생과, 느닷없이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작가가 그랬다.  그리고 문장이 아름답게 가꿔져 있고 다듬어져 있지만 때로 너무 몽롱하고 난해하기까지 하고, 영어문장을 번역한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게 작가의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역시 나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거겠지만. 

나로서는 첫만남이 별로였다면, 두번째 만남이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 법이기에 어느 정도 마음 속에서 기대치를 접고 들어간 작품이기는 했다. 그래도 역시 다시 만난 것은 다행이었고, 독자들이 왜 김연수를 사랑하는지 조금은 감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일종의 수확이었다. 그걸 설명하는 건 무척 힘이 들지만 말이다.  

매력적인 문장에 여러 차례 마음을 사로잡혔지만 줄거리를 옮겨 전달하기는 무척 힘들었던 독서. 먹먹한 감동도 느꼈지만, 오히려 읽고 나서 더 외로워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행히 감수하고 싶은 고통이었지만.  

소통하지 못하지만 소통하고 싶어하는 작가의 목소리에, 다시 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듯하다. 소통하지 못하는 세상에 나 역시 귀 기울이려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덧) 사소한 이야기 하나. 181쪽 중간에 -그가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했던 것들은 결국 그가 찍지 않은 것이 아닐까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문장이 어색하다. 아닐까 하는...이 되어야 하지 않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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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0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늙었는지 젊은 작가들 소설은 별로 본 게 없어요.
김연수 작품도 안 읽었어요.ㅜㅜ

마노아 2009-11-08 17:13   좋아요 0 | URL
김연수 작가 책은 이제 달랑 두 개 읽었어요. 최소 세 권은 읽고서 더 좋아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려고 해요.^^ㅎㅎㅎ

꿈꾸는섬 2009-11-09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세권 딱 읽고 팬이 되었어요. 마노아님도 아마 그리 되실 것 같은데요.ㅎㅎㅎ

마노아 2009-11-10 09:14   좋아요 1 | URL
세 번째 읽어보고 꿈섬님의 얘기를 기억하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