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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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냄새 구수한 연작 소설집이다. 작가 자신은 경기도 수동면 광대울 산중에 살고 있지만 작품의 배경은 충청도 어느 마을로 설정해 두었다. 진한 사투리가 어찌나 눈길을 사로잡는지, 그 말투와 어감을 살려 읽다 보면 천천히 넘어가는 책장에 애가 닳기까지 했다. 충청도 사람들이 말은 느려도 성질은 급하다는 얘기가 이해가 되는 기분이랄까. 

11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각각의 주인공들은 서로 한 마을 사람들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지난 이야기의 조연이 이번 이야기의 주연이 되고, 이번 이야기의 엑스트라가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그런 구조. 그래서 하나도 허투루 넘길 이야기가 없다. 마을 사람들의 관계도를 머릿 속에 그려보면서 책을 읽는데 단순히 풍자 소설로 읽기에는 갑갑할 때가 많았다. 작품 속에서도 곧잘 등장하는 FTA의 내용상, 일단 농촌은 버린다는 얘기 아니던가. 널뛰기하는 배추값을 보며 느꼈듯이, 농촌의 내일은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인다. 도시에 사는 내 눈에도 답답한데, 거기서 흙냄새 맡고 사는 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조우' 편에서 그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 닥달해서 서울로 떠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막상 도시로 가서 그 살벌한 세계에서 어찌 살아남을지는 아들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어떡해서든 살아보겠다고 유기농, 비육우, 생태마을, 산촌마을에 정보화마을까지... 온갖 사업에 앞장 서서 발품도 팔아보았지만 결실은 없어 꼴만 우스워지기 일쑤였다.  

답답한 농촌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순진하기만 한 사람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지난 해에 같이 근무했던 어느 선생님은 서울 아이들에게 온갖 정 다 떨어져서 고향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갔는데, 시골 인심도 못지 않다고 한탄을 하셨다. 으레 기대하는 순진한 눈망울은 아니더라는 것. 왜 아니 그럴까 싶다. 작품 속 인물들도 앞의 말 다르고 뒷의 말 다르고, 남의 등 처먹는 일도 서슴지 않고 표리부동할 때가 많았다. 시골이나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이 세계'를 사는, 또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세상 속 풍경이지 싶다. 더불어 새마을 운동 시절의 진한 향수에 젖어 독재자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또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이건 풍자가 아니라 현실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이 작품이 또 심각하기만 하냐면, 그건 또 아니다.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과, 그 안에서 엉키어 있는 인간들의 욕심 사나운 모습 사이사이 해학적인 면모도 짙게 드러난다. 제 차가 진흙 구덩이에 빠졌는데 말쑥한 양복에 흙묻을까 멀찌감치 구경하는 교감 샘과, 그 양반 대신 논두렁에서 고생하던 인물이 넘어지면서 교감의 넥타이를 잡아채어 같이 흙물 뒤집어쓴 장면은 깨가 쏟아지기까지 했다. 환경운동가들이 두 팔 걷어붙이고 농촌 문제에 나섰던 것이 사실은 짜고 치는 게임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대목은 너무 씁쓸해서 한숨이 나온다. 모두 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런 운동가들이 선한 의도까지 똥물을 끼얹고 있으니... 

가장 최고의 엔딩은 마지막 편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였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엔딩의 소설들이 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와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그것이다. 마지막 한 줄이 소름 돋도록 만드는 명 엔딩 장면을 가졌는데, 이 책도 마지막 대사에서 띠용~ 소리가 나도록 만드는 대미를 갖추었다. 울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는, 해학과 풍자와 비판과 아이러니가 다 겹쳐진 완벽한 마무리! 

추천사에서도 강조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이시백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입담꾼에 대한 입소문은 왜 이리 더딘겨? 라고 고개도 갸우뚱해 본다. 마지막으로, 걸쭉한 충청도 사투리의 한 대목 옮겨본다. 씁쓸하면서도 즐거운 책읽기였다. 

"피차 양반이여. 거기두 잘헌 거 웂어. 해병대 아니라 특공대라두 으른은 으른인겨. 아무리 삼강이 무너지구, 오륜이 사까닥지를 치는 시상이라 혀두, 아즉까정 우리게는 위아래 장유유서가 번듯허구, 예의범절을 목숨츠럼 여기는 청풍명월의 예향인겨. 근디, 얼굴 모르는 타관 뜨내기두 아니구, 뻔히 집안 으른들끼리 장에서 만나믄 허리 꺾구 서루 절 나누는 처지에, 멕살잽이를 허는 건 또 어느 나라 군대 벱이여?" -53-54쪽 복(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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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7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짜고치는 고스톱에 광분하는 편이라서,망설였는데 말이죠~
그래도 별 다섯이라니...성석제나 이기호의 연장선상 정도로 보면 되려나요?

마노아 2010-10-27 23:12   좋아요 0 | URL
이기호 책은 보지 못했고요, 성석제의 재기 발랄함보다는 약하지만, 보다 진중했어요.
어느 분 추천을 무심코 발견해서 읽게 되었는데 무척 좋았땁니다.^^
 
창선감의록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0
이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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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에 이어 세번째로 읽는 문학동네 한국 고전 문학 전집이다. 제목의 ‘창선彰善’은 다른 사람의 착한 행실을 세상에 드러낸다는 뜻이니, 소설의 제목 ‘창선감의록’은 ‘사람의 착한 행실을 세상에 알리고 의로운 일에 감동받는 이야기’라는 의미라 한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의 주제가 거의 '권선징악'인 것을 생각하면 조금 더 강조한다 한들 유별나 보이진 않는다. 작품은 명나라 가정제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소설이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와 정확한 저자는 알수 없지만 대략 17세기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관계도다. 화씨 집안의 아들 화진과 윤씨 집안의 딸 옥화가 정혼을 하게 되고, 간신배 엄숭의 박해로 화를 입은 남씨 집안의 딸 남채봉이 윤씨 집안의 양녀로 들어가서 화진에게 동시에 시집을 간다. 옥화의 쌍동이 남동생 윤여옥은 진채경, 백씨, 엄월화까지 세 여인을 아내로 맞는다. 관계도에서도 보이듯이 일부다처제가 일반화되어 있다. 주인공 화진이 의붓어미와 형에게 박해를 받았던 것도 아비가 세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덕분이었다. 대놓고 '효'를 지극 강조하는 작품인지라 그런 어미도 어찌나 효성으로 돌보는지 현대를 사는 독자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화진의 아비 화욱이 살아있을 적에 큰 아들 화춘을 나무라는 장면을 보면 어느 아들이 비뚫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아우를 본받아 화씨 집안이 네 손에서 엎어지지 않도록 해라!"라니, 내가 화춘이어도 서럽고 분할 것 같다. 화춘과 그 어미 심씨 부인이 잘한 일은 없지만 화근은 아비가 이미 심고 갔다고 생각한다.  

 

위 사진은 작품이 진행되는 공간적 배경이다. 숫자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의 이동 경로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도망가는 이, 귀양을 가는 이, 혹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입신양명하는 공간들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의 이동 경로를 명나라 당대의 역로도와도 흡사하게 설정해서 사실성을 높였다. 때로는 지리지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말이다. 확실히 중국 땅이 넓기는 넓다. 과거 급제자도 336인이라고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전시까지 올라가는 숫자가 33인인 것을 생각하면 10배의 규모다. 땅과 인구의 규모로 따진다면 그 이상 뽑아도 할 말은 없을 것 같지만. 

수백 년 지난 작품인지라 이야기 자체가 옛스러울 수밖에 없다. '충'과 '효'를 강조하고 '권선징악'의 뚜렷한 구분 등은 지극히 평이한 구조지만 그래도 캐릭터들은 제법 개성을 갖고 있다. 주인공 화진은 그야말로 교과서적 사내여서 매력이 덜했지만, 윤여옥은 보다 장난스럽고 입체적인 느낌을 주었다. 화진에게 동시에 시집온 남채봉은 손 윗 동서(를 가장한 화춘의 첩)에게도 당당히 할 말은 하는 여자였다. 집안이 화를 입자 윤여옥에게 시집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진채경이 윤여옥에게 꼭 어울릴 법한 규수를 직접 정해서 혼사의 상대로 꾸미는 장면도 이색적이었다. 당사자라면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어쨌든 무척 주체적으로 등장한다.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것 중 하나가 '용모'에 관한 것이다.  

"한림의 옥 같은 용모를 보니 천하의 군자였소. 사내대장부가 되어 이런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을 수 있겠소?" -135쪽 

"선비님의 얼굴을 보니 전혀 그런 죄를 지을 분이 아닌데, 어이 그런 심한 말씀을 하십니까?"-167쪽 

이런 식의 기술은 작품 내내 등장한다. 주인공 화진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황제를 설득할 때, 혹은 제시된 내용을 믿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말하는 근거는 화진의 용모였다. 단지 '인상'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됨됨이였다. 고전 작품의 주인공 '영웅'에게 으레 갖추어진 풍모가 여기서도 비켜가질 않는다.  

그런데 또 재밌게도 의외성을 보여줄 때가 있다. 주인공이 사실은 신선계의 인물이었는데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기억을 도울 약을 내미는 어느 노인에게 화진이 마다할 때의 모습이다.  

"소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헛되이 천상의 일을 안다고 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마음만 어지럽힐 것입니다. 또한 설령 이 약을 먹고 신선이 된다고 해도 소생에게는 홀어머니와 형이 계십니다. 제가 어떻게 어머니와 형을 버리고 갈 수 있겠습니까?"-183쪽 

호기심에라도 천상의 일을 알고 싶겠건만 기꺼이 마다하는 마음이라니, 게다가 그 이유가 자신을 모질게 핍박한 의붓어미와 형 때문이라니, 이 사람 참말로 대인배인 것만은 확실하다. 잘났지만 잘난체하지 않는 모범 주인공이다. 또 나중에 개과천선한 계모 심부인이 아들의 양자로 들인 아이를 친손자가 생긴 뒤로도 집안의 장자로 삼은 것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뿐아니라 어려운 시절을 함께 이겨내며 끝까지 믿음을 지켜준 노비를 신분 해방시켜 시집을 보내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반면 한 남자를 두 명의 의자매가 함께 남편으로 맞고, 공주와 시녀가 또 한남자의 부인과 첩이 되는 것 등은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참 불편했다. 뭐 당사자들이 의좋게 살고 있으니 어쩌겠냐만은, 화진의 지나친 효성으로 범법자를 두둔하는 것 등은 눈을 찌푸리게 했다.  

작품에는 실존인물도 꽤 등장하다. 명대의 대표적인 간신배 엄숭도 실존인물이고, 그의 아들도 실존인물이다. 화지을 키워주느라 명장군 척계광을 부수적인 인물로 전락시킨 건 다소 기분이 나빴지만 애교로 넘어가주자. 원말 명초의 장수 유통해가 등장하는데, 그 아버지 유정옥의 이름을 보는 순간 김혜린 작가의 '비천무'가 떠올랐다. 주인공 유진하의 아버지 유장옥과 이름이 너무 흡사하고 시대고 겹치니, 혹시 작가님이 작품 구상할 때 이름을 빌려온 것은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서술 중간중간에 '가정 42년 정월에 말하노라'와 같이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서술이 작품에 어떤 현실감을 준다 하면, 등장 인물이 도술을 부리고 요술을 펼치는 장면 등은 명백한 허구성을 부여한다. 이런 모든 대목들이 당대의 독자들을 열광시키는 하나의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확인된 필사본만 해도 260여 종이라고 하니 얼마만큼의 베스트셀러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인쇄본도 아닌 필사본으로 그렇게 다양한 버전이 있었으니 긴밤을 지새워 작품을 읽고 베끼던 독자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제목도 다양한 버전으로 남아 있꼬, 이본에 따라 내용도 상당수 달라진다. 한글본과 한문본 모두 전하는데, 한문본에서의 화춘은 악하기보다 어리석고 소심한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한다. 맨 앞에서 인용한 구절처럼 엄한 아버지 밑에서 주눅이 들고, 잘난 동생 덕에 자존감도 낮았다면 그의 캐릭터가 더 쉽게 이해가 가게 된다. 더불어 그의 급작스런 개과천선도.  

작품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대 사람들의 가치관도 느껴지고 명나라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관점도 읽혀진다. 요즘처럼 자극적이고 재미나고 흥미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쉽게 눈길을 주지 않게 되는 고전 문학이지만,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매력도 만만치 않다. 깊어가는 가을 날에 고전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ps. 204쪽에 나오는 '함매'를 사전 검색해 보니 한자가 다르게 나온다.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다. 둘 다 '재갈'의 의미니 같이 쓰이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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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4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4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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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장 비극적인 세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사도세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 못지 않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소현세자에 대한 연민도 적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해 그 아비 영조에 대한 분노는 사람들에게 그리 크게 읽혀지지 않지만 소현세자의 아비 인조에 대한 분노는 꽤 읽혀진다는 것. 물론, 그 부자가 살아있을 적의 역사적 배경을 알았을 때의 일이지만.  

남한산성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많은 책들이 나왔다. 남한산성을 주제로 뮤지컬이 올려졌고, 소현세자를 주제로 역시 뮤지컬이 만들어졌었다. 워낙 비극적이었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아서 다른 매체로 만들어졌을 때 전달력이 좋았을 것이다.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그 배경으로도 자주 접했다. 이준기 주연의 일지매에서, 강렬한 음악과 함께 다가웠던 추노에서도 임금은 인조였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 왕이 된 그의 즉위 명분, 즉 광해의 폐위 명분은 명백했다. '재조지은'. 광해는 재조지은-나라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 즉 임진왜란 때 파병해준 것-을 배신했기에 마땅히 그 자리에서 떨어져 나가야 했고, 인조는 재조지은을 기억하고 받드는 왕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인조는 광해의 외교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나갔고, 그것은 곧 그를 왕으로 만들어준 자들의 공통된 명분이기도 했다. 시작이 그러했기에 그들은 치욕적인 패배와 항복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의 역사는 그렇게 반동적으로 흘러가야 했다. 거기에 세자의 비극이 있었다.  

조선의 대신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명과 청의 전투는 무의미했다. 소식이 멀어 전황이 늦어서가 아니라, 어차피 지고 이기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명이 이겨도, 져도 그들은 명을 받들 것이다. 숭정이 사라져도, 그들은 숭정을 이을 것이다. 성현의 뜻이 거기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입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었다. 광해를 쳤던 대의가 모두 거기에 있었다. 임금의 반정은 명의 재조지은을 잊은 광해를 내몬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임금의 자리가 거기에 있었으니, 임금이 수백 번 수천 번 적의 황제 앞에서 이마를 찧는다 하더라도, 임금이 명나라를 받들어 임금이 되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임금을 임금의 자리에 올린 자들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적에게 굴복한 것은 치욕이 될 것이나, 또한 원한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명을 등지면 남는 것이 없었다. 광해를 치면서 씨를 말리듯 내몰았던 광해의 정파가 다시 일어선다면, 그들에게 돌아올 것은 한때 광해의 정파가 그러했던 것처럼 멸문과 죽음뿐이었다.– 160쪽
세자는 임금의 아들이었다. 임금이 그들에 의해 임금이 되었으니, 세자도 그들에 의해 세자가 되었다.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 기원의 말처럼 세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러나 세자가 그들의 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세자는 적의 땅에서 결코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적의 땅에 머물며 낮과 밤마다 홀로 삭였던 고독이 조선의 땅에 돌아와서는 고독을 넘어 슬픔이 되었다.
그러한데, 임금은 나를 위해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정녕 울어주지 않으실 것인가...... – 161쪽  

어린 나이에 정묘호란을 겪었다. 그때 임금인 아비는 강화로 파천했고, 세자였던 그는 분조를 이끌고 남쪽을 뛰어야 했다. 그 역시 난리 통에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분조를 이끌며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광해가 그로 인해 아비 선조의 견제와 노여움을 샀다는 것도 바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패배 뒤에 인조가 청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던 자리에 소현도 있었다. 그도 무릎을 꿇었고, 적국에 볼모로 가야 했다. 마땅히 임금이었던 아비의 책임이 가장 크고, 그래서 가장 미안해할 사람도 그이지만, 그는 임금이었다. 임금인 그는 미안해하기 보다 부끄러워 했고, 부끄럽기 때문에 분노했고, 그리고 미워했다.  

임금인 아비보다 뛰어난 아들은 아비의 정적이 되기 일쑤였고, 임금의 마음을 아는 자들은 그 마음을 파고들기 바빴다. 소현이 병자호란의 난리로 볼모로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그의 온화한 성품을 볼 때 그는 무던히 다음 임금의 자리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보다 호전적인 성격의 봉림보다 소현의 성품이 사대부들에게도 더 임금 자리에 적합했을 것이다.  

물과 불같이 다른 성격을 가진 두 형제는 먼 이국 땅에서, 그것도 치욕을 안겨준 적국의 땅에서 설움과 눈물을 삼키며 힘겹게 살아남았다. 청에서 내리는 무리한 요구들을 적당히 받아쳐야 했고, 그곳에서 험한 세월을 사는 백성들도 지켜야 했다. 청에서 나오는 소리와, 명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파악해야 했고, 조선 땅에서 임금의 밭은 기침 소리에도 촉각을 기울여야 했다. 어느 곳이든 편한 곳이 없었다. 임금은 임금대로 피곤했고, 세자는 세자대로 다급했고, 백성은 백성대로 비참했다.  

이 책은 세자가 죽기 전 마지막 2년을 다루고 있다.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서 7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세자는 4년 차와 7년 차에 고국을 잠시 방문할 수 있었다. 어린 원손이 대신 볼모로 도착하고 난 뒤의 일이었다. 돌아간 고국은 낯설었다. 아비는 차가웠고, 대신들은 하나마나한 답답한 얘기들만 반복했다. 세자가 침을 맞은 뒤 곤히 잠든 아버지의 곁을 지키면서 어릴 적 따스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는 장면이 눈물겨웠다.  

임금이 몸을 돌려 누웠다.여윈 몸의 등뼈가 세자를 향해 드러났다.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세자에게 울라 하고 돌아누운 아비의 등이 흔들렸다. 상께서 울고 계셨다.   – 176쪽  

정말 두 사람이 같은 꿈을 꾸며 같은 시절을 추억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건 소설적 장치이겠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리 애틋하게 꿈을 꾸고 눈물을 흘렸어도 아비에게 아들은 정적이었다. 그렇게 권력은 부자 사이에도 나누지 못할 무서운 것이었다.  

작품이 참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청나라의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들. 그들 유목민족의 특성을 잘 보여주었고, 그들 간의 전투와 그들이 치르고 있는 전쟁의 살벌함도 모두 보여주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세자와 봉림의 두려움까지 낱낱이.  

세자가 심양에 들었을 때 날씨는 이미 초여름의 더위로 익어 있었다. 은근히 계절이 다가오고, 또 은근히 계절이 지나가는 조선과는 달라 북방은 모든 것이 급하고 뜨거웠다. 유목하며 살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머문 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계절을 쫓아 달리고, 계절을 피해 달렸다. 가다가 먼저 있는 자들이 있으면 치고, 그 자치를 차지했다. 그것이 그들의 피의 뜨거움이었다. 봄에 이르러 파종하고, 가을에 이르러 수확을 기다리는 조선 사람들의 일처럼 그들에겐 전쟁이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늘이 그들을 그런 땅에 보내었던 것이다. – 204쪽
“누구나 영원히 적입니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 조선은 그걸 몰랐습니다. 조선의 적이 청뿐만 아니라 명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셨어야 했습니다.– 312쪽  

누르하치의 아들이며 중원을 끝내 정복한 섭정왕 도르곤이 세자에게 건넨 말이다. 동갑내기 두 사람 중 하나는 중원을 차지하며 천하의 주인을 선포했고, 다른 하나는 그 나라에 볼모로 붙잡혀 있는 가련한 처지였다. 도르곤의 입을 통해서 나온 국제관계의 저 명약한 진리가 오늘날에는 다를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그때 조선이 떠받들던 명나라만큼 어떤 나라를 섬기고 있는 것인지...  

조선이 청을 향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며, 명이 무너진 뒤에도 오래오래 '북벌'을 소리 높여 외치며 말뿐인 싸움을 계속할 때에도 청은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실체를 경험한 세자가 그들의 힘에, 역량에 압도되지 않았다면 그거야말로 그가 세자로서의 자격을 잃는 순간이 아닐까. 자신들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인정하였을 때, 비로소 배워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이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 개방 당하기 232년 전이었다. 조선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였다. 이미 놓쳐버린 기회니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돌아온 세자가 어찌 죽었고, 세자의 처가가, 그리고 가여운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가를 떠올린다면 비극은 점점 커다랗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렇게 아들과 그 일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린 임금의 이름은 인조였다. 어질 인(仁)을 쓰는 인조.  

9년 간의 볼모살이를 끝내고 영구 귀국한 세자는 두달 만에 급사한다. 그의 사인이 독살이었던 것은 사관조차도 부정하지 못했던 일. 그의 죽음의 진짜 배후가 누구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가 그렇게 죽고 봉림이 임금이 된다. 효종이다. 효종의 10년 치세도 평안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그렇게 조선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작품이 몹시 흡인력 있었고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사로잡는 힘을 느꼈는데, 그럴수록 마음이 답답했다. 그저 소설로 읽혀지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작가의 고백도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김인숙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한 것 같은데 점점 더 기대가 되는 작가분이다. 특히 문장이 마음에 들었는데 조용히 강한 느낌이었다. 다만 '만상' 캐릭터의 말투는 조금 아쉬웠다. 그를 자주 천 것이라 강조했는데 그의 말투는 양반님네들 말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밖에 소현과 봉림, 석경과 흔, 막금이와 도르곤 등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훌륭했다. 만상은 캐릭터가 입체적이었지만 말투만 옥의 티였을 뿐.  

요새는 사극들의 소재가 워낙 다양해지다 보니 언젠가는 소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국 말을 넘어 청나라 말을 구현하긴 힘들겠지만 소재로서의 매력은 충분히 느끼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김훈의 남한산성이 다시 읽고 싶어졌다. 늘 봐야할 책이 미어터지는 나로서는 밑줄긋기나 한 번 다시 스윽 쳐다보고 말았지만. 그래도 더불어 떠오르는 다른 책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 책은 나중에 다시 찬찬히 만나볼 생각이다. 어쩌면 오늘 작성해 놓은 밑줄긋기가 그때에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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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활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from 그대가, 그대를 2011-08-12 21:52 
    누구라도 영화 제목을 보면弓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자막을 보니 活로 뜬다. 이중적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하면 되겠다.영화의 시작은 인조반정에서 출발한다. 한 때는 촉망받던 무인 집안이었지만 광해군을 따랐다는 이유로 이제는 역적의 집안이 되어 남이와 자인은 쫓기는 몸이 된다. 아버지는 절친이 있는 개성으로 두 아이를 보내고 칼을 받는다. 신궁이었던 아버지의 활은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맡겨진다. 아버지의 최후를 기억하는 남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다락방 2010-09-17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워낙 역사에 무지하고 해서 읽을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마침 오전에 마노아님의 밑줄긋기 보고 재미있나요? 라고 물으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리뷰가 올라와 있네요. 별 다섯개로.

아 또 제 학창시절이 원망스러워요. 마노아님같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던 그 학창시절이요!
아니, 전 마노아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어도 여전히 역사를 잘하지 못했을 것 같긴 해요. -_-

마노아 2010-09-17 15:25   좋아요 0 | URL
이 책 무척 재밌게 읽었어요. 특히 감성이 마음에 들었어요. 최근에 병자호란 수업을 해서인지 좀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
선생님도 중요한데 결국 본인의 호오가 가장 영향력 있는 것 같아요. 저 학교 때 정말 이상한(상당히 미화시킨 표현) 역사 선생님도 여럿 있었거든요.ㅎㅎㅎ 선생님을 좋아했어도 끝내 못했던 수학도 생각나고요. 더더욱 못했던 영어도 생각나요. 털썩!
불행한 세자들 뒤에는 꼭 나아쁜 임금들이 있더라구요. 읽으면서 막 울컥했어요.(>_<)

마녀고양이 2010-09-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현 세자 이야기 너무 가슴아파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독살도 당하고.
봉림대군 역시 마찬가지였죠?

참.... 암울하고 답답한 시대예요. 역사란 거의 그렇지만 말이죠.

마노아 2010-09-17 15:26   좋아요 0 | URL
효종의 죽음도 상당히 의혹이 많아서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요.
아비의 업보를 자식이 엄하게 받은 경우 같아요.
역사의 비극이에요.

무스탕 2010-09-17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마노아님의 리뷰만큼 재미있을까 싶어요.
아.. 소름 쫙쫙 끼치고 피부에 찰싹찰싹 와 닿는 리뷰에요.
글고, 빨리 읽어보도록 하지요. 이 책 :)

마노아 2010-09-17 22:3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이 책은 표지부터 카리스마가 팍팍 풍기는데 세자의 고독과 슬픔이 표지에서부터 뒷장 표지까지 전율이 일도록 느껴져요. 문장의 무게가 역사의 무게처럼 다가와요. 저는 강추입니다.^^

순오기 2010-09-17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가 소현을 잘 살려낸거 같아요. 남한산성의 문체와 닮은 점도 있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지 기대되는 작가에요.

마노아 2010-09-17 22:34   좋아요 0 | URL
김훈의 흡입력은 너무 강렬해서 언제나 잔영처럼 남아 있어요.
이 책은 그 정도로 미학적인 문장은 아니더라도 정서적으로 감동이 많았어요.
저도 정말 기대가 되어요.^^

양철나무꾼 2010-09-18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국사선생님이신가 봅니다~
전 참 어려워하는 부분인데 말이죠.

개인적으로 자음과 모음 책은 잘 안 읽는데,읽어보고 싶은 걸요~^^

마노아 2010-09-18 16:14   좋아요 0 | URL
자음과 모음 책이 어떤 특성을 가졌나 싶어 출판사 이름으로 검색해 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막 궁금해져요.^^ㅎㅎㅎ

2010-09-19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9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것은 열여섯 살 때였다. 여름 방학 때 정독 도서관에 놀러갔다가 그 책을 읽었다. 3시간 동안 1/4을 읽었고, 그렇게 매주 금요일에 도서관을 방문해서 3시간씩, 모두 12시간에 걸쳐서 읽었던 소설. 무척 감동적이었고 무척 슬펐었다. 주인공 꼬마 여자아이처럼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명백히 무죄이고, 명명백백 유죄였던 인물들에 대해 왜 배심원들은 엇갈린 판결을 내리는지... 왜 사람들은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지... 오래된 소설이었고, 내가 읽은 뒤로도 또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게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앵무새 죽이기에 대놓고 헌사를 바치는 이 책의 인물들에게도. 

작품의 배경은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60년대 말 '코리건'이라는 이름을 가진 탄광 마을이 무대다. 책을 많이 읽고 작가도 되고 싶은 생각 많은 소년의 창문에 '재스퍼 존스'가 등장한다. 원주민과의 혼혈로 태어나서 마을의 문제아로 일찌감치 낙인 찍혔던 그 아이가 주인공 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꼭 도와줘야 할 일이 있다며...  

그렇게 우연히, 재스퍼에게 이끌려 그만의 아지트인 숲 속 공터에 도착한 찰리는 주지사의 딸 로라가 목이 매인 채 죽어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살면서 그보다 끔찍한 순간에 노출된 적은 결단코 없었을 것이다. 재스퍼의 설명은 이렇다. 자신과 연인 관계에 있던 로라가 얼굴이 멍이 든 채 저렇게 매달려 있다고. 분명 누군가 로라를 죽이고 매달았을 거라고. 로라가 발견된다면 자기는 당장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갈 것이라고. 그러니, 진짜 범인을 찾을 때까지 로라의 시체를 숨겨야 한다며 도움을 구한다. 갑작스럽게 이리 무섭고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려 버린 찰리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시체 은닉의 동조자가 되어버린다. 게다가 로라는 찰리가 좋아하는 일라이저의 언니다.  

자, 이러니 안 그래도 생각 많고 속이 복잡한 이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뒤죽박죽이 되었겠는가. 게다가 혼자서 서재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고 있다고 의심이 되는 아빠와, 부유하게 자란 탓에 작은 탄광촌의 주부로 세월을 맞아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성질 사나운 엄마와 살고 있으니 더 그렇다. 이웃 집에는 베트남에서 이민 온 일가족이 살고 있는데 크리켓을 잘 하는 제프리 루는 찰리의 단짝 친구다.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또 베트남에 파병을 한 나라로서 희생자 군인을 가족으로 둔 이들의 집단 왕따를 당하고 있다. 분명히 부당한 짓임에도 누구도 그들을 위해서 변명해 주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는 모습에 찰리가 의문을 품는 건 당연하다. 뭐든 척척 설명해주던 아빠조차도 그 순간만큼은 시원한 답을 주시지 않는다.  찰리는 답답하다. 하지만 어린 찰리조차도 이것이 자신의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만큼의 관심을 쏟고 있음을 깨닫는다. 

최근 들어 내게 일어난 끔찍스러운 일련의 사건들 중에 폭탄 투하 사건이 그나마 가장 덜 폭력적인 사건으로 느껴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실상 가장 끔찍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건에 용의자 사진이나 피 묻은 장갑 따위는 없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확실히 규정짓기 어렵다. 거리감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일수록 무신경해지고 무책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뉴스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는데 말이다. -208쪽 

부모를 죽이고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 후 크리켓 공 날리듯 내던지고는 얄팍한 거짓말이나 해 대는 세상. 남들보다 가난하고, 피부색이 어둡고, 또 부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멀쩡한 사람이 평생 스스로를 쓰레기로 여기도록 만드는 세상. 삼십억이나 되는 사람을 초청해 놓고 전부 외롭게 만드는 세상. 사분의 삼이 물로 이루어졌다면서 아무도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없는 세상. -209쪽 

심각한 사건을 시작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버겁도록 무겁고 힘든 소설인 것은 아니다. 특히나 찰리와 제프리가 말싸움이 붙으면 이들의 재치가 사랑스러워 다음 반박을 기대하게 된다. 아이들의 영웅론도 흥미진진 그 자체! 

"그러고 보니 스파이더맨은 뉴욕을 벗어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단 말이지."
"왜?"
"어, 그러니까, 예르르르르를 들자면 말이지, 스파이더맨이 코리건에 와서 범죄를 소탕한다 치자. 그럼 영락없이 힘을 못 쓸 거야. 날아다닐 건물이 없잖아. 스파이더맨에게 필요한 건......"
"도시적인 환경이라고?"
"바로 그거요, 선생. 그러니까 내 말은, 스파이더맨이 고비 사막이나 남극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는 거야. 주어진 환경이 땅바닥밖에 없다면 말이야."  88-89쪽 

생각해보지 못했던 건데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스파이더맨에게 도시적 환경은 영웅의 조건이었다. 슈퍼맨과 배트맨을 둘러싼 이들의 공방도 지켜보자.  

"그러니까 그건 용기가 아니란 거지. 슈퍼맨은 강철 인간이잖아, 이이 멍청아. 천하무적이라고. 그러니 용감해질 필요가 없는 거야. 다치지 않는 걸 알고 총알에 맞서는 게 용감한 거냐? (...) 내 말의 핵심은 이거야. 잃을 것이 많을수록 용기가 더 많이 필요한 법이거든.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이 슈퍼맨보다 우월하고 내가 너보다 무한정 똑똑하단 말씀."  -94쪽 

이렇게 똑부러진 말로 재간둥이 제프리를 (가끔) 눌러버리기도 하는 찰리지만 좋아하는 여자 아이 일라이저 앞에서는 실력 발휘를 하기 어렵다. 어디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있으니 말이다. 이럴 때면 마음 속으로 '내 재치꾸러미는 어디로 간 거지? 위트가 나를 배신하다니. 항상 꼭 필요한 순간에 내게 등을 돌린다.'라고 말을 하는 사랑스러운 찰리.  

괴퍅하고 변덕스러운, 불만 많고 난폭하기까지 한 엄마와 살면서도 찰리가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배려하는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공으로 보인다. 비록 그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은 못 되었을지 몰라도, 좋은 아버지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자.  

"잘 들어라, 찰리. 엄마는 존중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네가 다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잖아. 엄마는 네가 잘되기를 바라. 여전히 불만이 있겠지만 좀 더 현명한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좀 더 영리하게 굴거라. 알겠니? 좀 더 외교적으로 행동하고. 내 아들은 분명 엄마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기보다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리라 믿는다. 알겠니?" -178쪽 

 이쯤 되면 앵무새 죽이기의 멋진 변호사 아빠 애티커스 핀치 못지 않아 보인다. 찰리는 은근히 아빠를 닮았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차분한 성품도 그렇다. 게다가 글쓰는 아빠에게서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치열해 보인다.  

패터슨의 저주. 제목 밑에 아빠 이름이 쓰여 있다. 나는 못된 아이처럼 입술을 실룩거린다. 벅틴의 질투. 견딜 수 없다. 당장 갈기갈기 찢어서 방에 흩뿌리고 싶다. 아빠의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에 도로 던져 주고 싶다. 아빠의 비밀을 공유하면 멋질 거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닥치고 보니 그저 배신감만 들 뿐이다. 내 가슴속에서 뭔가 대단히 소중한 것을 빼앗긴 기분이다. 마음씨가 비뚤어지고 속 좁은 놈이 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작품이 훌륭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내가 먼저 아빠의 서재로 찾아가 그간 힘들게 쓴 원고뭉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원고에 내 도장을 찍어서 말이다. 제목 밑에 쓰인 내 이름을 보며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373쪽 

찰리라는 캐릭터가 비교적 평면적이라고 한다면 제프리는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이었고 재스퍼는 그보다 훨씬 야성적인 느낌이었다. 각자가 처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제프리는 유쾌하고 재능도 많고 활발한 소년이지만 이민자로서, 또 유색인종으로서의 소수자의 자각을 사실은 갖고 있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무심히 넘어가는 모습으로 상처를 감추었던 제프리도, 아버지가 거의 테러 수준으로 린치를 당했을 때는 폭발하고 만다. 고국이지만 바다 너머 먼 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파장이 그렇게 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또 다시 이웃들이 침묵하고 방관만 했더라면 독자는 분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의로운 이웃들도 있었다. 아이에게 마땅히 필요한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이들이 그들 곁에 있었다. 낮 시간 동안에는 크리켓 경기를 역전 시켜 챔피언 취급을 받았던 제프리였다. 무려 43점의 득점이었다. 그 제프리에게 이웃집 로이 아저씨가 얘기해준다. 

"그럼, 스스로가 정말 대견스럽겠구나! 당당하게 고개를 들거라, 알았지? 아저씨 말 알겠지? 오늘 넌 정말 위대한 일을 한 거야. 그것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거다. 알겠니?" -347쪽 

그리고 제프리의 아버지가 습격받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아빠를 불렀던 찰리에게, 제일 먼저 달려가서 루 아저씨를 도와주었던 그 아빠의 사과도 먹먹하다.  

"찰리, 네가 그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아빠가 미안하구나. 괜찮니?"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눈길을 피한다.
"그래, 아빠도 그렇다고 말하면 네 기분이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참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다."  -348쪽 

자신의 책임이 아니지만 어른들의 부조리한 세상을 노출시켜서, 그리하여 실망시켜서, 해답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해하는 아버지. 그리고 자신도 마찬가지 기분이라며 허세 따위는 부리지 않는 아버지. 진정 신뢰가 간다.

제목에 당당히 이름이 박힌 재스퍼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이야기 했듯이 재스퍼는 원주민 엄마와의 혼혈로 태어난 아이다. 술주정뱅이 아빠는 술과 도박에 쩔어 있고, 재스퍼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본인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가며 거칠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야성미 넘치는 기질을 가졌을 뿐 무례한 범죄자가 되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나서도 억울한 누명을 쓸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그의 입장은 처절하고 서럽다. 그가 로라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한 '잭 라이어넬'은 숲에 자리한 폐가 같은 집에서 사는 이 마을의 이방인이었다. 그를 따라다니는 무섭고 더러운 소문들은 재스퍼의 소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종류다. 재스퍼는 그가 로라를 살해한 진범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앵무새 죽이기'를 떠올리는 독자는 그가 '부' 아저씨 역할을 해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그를 찾아가서 범행을 자백받고 담판을 지으려고 하는 재스퍼. 찰리는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만 싶다. 재스퍼의 각오는 단호하고 단단하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일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 세상이 정해진 규칙대로만 돌아간다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거야. 하지만 확실한 진리는 말이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거야. 해야만 한다고."  -383쪽 

전체 분량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4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 가파르게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아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향해 더 깊이 다가가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아야 할 것과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모두 경험한다. 그들이 맞닥뜨린 세상은 장정일 씨의 표현대로 지나친 '배타주의'로 인해 오히려 '근친상간'에 다가간 왜곡된 구조물이다. 이때의 근친상간은 문자 그대로의 뜻 이상을 포함한다. 아이들은 고통스러워 하고, 절망하고, 그리고 성장한다. 그들은 비밀을 공유했고, 상처를 나눴고, 그리고 위로를 건넸다. 충분히 분노해야 할 대상을 향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 분노가 뻗어나가야 할 방향이 어긋났을 때는 제지할 줄도 알게 되었다.  

"재스퍼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잖아. 그리고 넌 내가 아는 만큼도 재스퍼를 모르잖아. 로라가 아는 것만큼 말이야. (...) 넌 재스퍼에게 벌을 주고, 짐을 지우고, 또 로라가 바랐듯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똑같은 벌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고. 하지만 너나 재스퍼의 잘못이 아니란 것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458쪽 

이런 올바른 충고를 내어줄 수 있는 싹을 찰리의 아버지가, 그리고 제프리의 이웃 아저씨가 심어주셨다. 그런 어른들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바른 방향으로 자랄 양분을 얻었다. 제목에서는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라고 당당히 얘기했지만, 어느 것도 재스퍼 존스의 탓은 없었다. 그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건 단지 지나칠 정도로, 그리고 잔인할 만큼 운이 없었을 뿐이다. 단지 운이 없는 것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이 책에는 대단히 독특한 장치가 하나 있는데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문장이 있다. "사건의전말은이랬다."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처음엔 편집 실수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만 무려 10번이나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 문장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건 작가의 의도라고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떠올리게 했다. 단지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 '반복'이라는 효과와 함께 무섭게 강조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작은 시도로 큰 효과를 보았으니 작가의 대단한 수확! 

'살인 사건'과 진짜 범인을 밝히는 게 주요 임무이기도 한 소설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피해가며 작품에 대해 말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작품은 성장 소설이면서 사회소설로 읽히고 또 어느 정도 추리소설의 미덕도 갖추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적당히 분배하며 감동까지 끌어낸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고 만다. 게다가 그가 몹시 젊은 작가이며,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쓴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지나치게 인용을 많이 해서 조금 난감하지만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을 옮겨 본다. 이 작품은 많은 부분에서 울컥거리게 했는데 이 부분이 단연코 가장 압권이었다. 마음 한 켠이 싸아해지며 묵직한 위로가 차오르는 느낌. 실은 누군가로부터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한껏 기대해 본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내 고통은 물론 상대방의 고통도 같이 느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함에 있다. 그렇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 상대방처럼 짓밟히고 물에 흠뻑 젖도록 해 주는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다시 채워진 빈 구멍과도 같다. 빌린 돈을 갚는 것과 같다. 미안하다는 말은 잘못한 행동의 결과물이다. 이는 심하게 상처 입은 결과가 수면 위로 보낸 잔물결일 수도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슬픔이다. 아는 것이 슬픔인 것처럼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때로 자기연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받아들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 자신을 연다는 뜻이다. 껴안건 조롱하건 복수하건 간에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용서를 구하는 말이다. 착한 사람의 메트로놈은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진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게는 할 수 있다. 틈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한다. 미안하다는 말은 성찬식과 같다. 제물이며 선물이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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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9-1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노아님.
대단한 리뷰에요. 그리고 저는 이 책을 읽었지만 '사건의전말은이랬다'를 눈치 채지 못했거든요. 마노아님은 엄청 꼼꼼하고 날카롭게 읽었네요. 그리고 '미안해'에 관련된 부분이 마노아님께도 인상적이었다니, 좀 울컥해요. 세상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무척 많죠. 나도, 마노아님도, 그리고 이 책을 쓴 작가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미안해란 부분에 그토록 마음을 쓰고 있는건가봐요.

잘 읽었어요, 마노아님. 책 만큼 아주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리뷰였어요. 참지 못하고 추천을 눌렀어요. 사실 참을 필요도 없는 추천이었죠.

마노아 2010-09-12 00:23   좋아요 0 | URL
'미안해'와 '고마워'라는 두 마디 말만 제 때 쓸줄 안다면 모든 사람의 마음이 참 편안해질 거예요. 듣고 싶은 미안해와 고마워, 하고 싶은 미안해와 고마워를 잘 하는 우리가 되도록 해요~
다락방님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막 붕붕 떠요. 덕분에 좀 더 기쁜 주말을 보내고 있어요. 헤죽헤죽~ ^^

양철나무꾼 2010-09-1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서재에서도 이 리뷰를 보고 혹 했었는데,이곳에서 또 읽게 되니...정말 제대로 지름신 강림인걸요~
미안해와 고마워는 물론이고 또 하나 번지 수를 정확히 찾아야 할 말,'사랑해'요~^^

리뷰가 참 좋습니다~^^

마노아 2010-09-12 16:53   좋아요 0 | URL
번지수를 제대로 찾는 '사랑해'라는 말을 꼭 쓸줄 아는 사람이 되겠어요. 양철나무꾼님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0-09-1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 장바구니에 있는데...
저도 앵무새 죽이기를 워낙 감명깊게 봤었거든요.
마노아 님의 리뷰를 보니, 역시 사야겠어요.

마노아 2010-09-13 10:16   좋아요 0 | URL
양철북은 많은 책을 내는 출판사가 아니지만 꽤 엄선해서 좋은 책을 내는 것 같아요. 저는 무척 좋았답니다.^^
 
구텐베르크의 조선 3 - 르네상스의 조선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푸스트 형제와의 법정 공방에서 인쇄공방과 성서 출판권을 빼앗긴 이후로 구텐베르크는 실의에 빠졌다. 석주원은 위기에 처한 인쇄소를 다시 일으키고 구텐베르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애를 쓴다. 그가 위기 돌파의 출구로 여긴 곳은 피렌체.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고 있는 그 한복판이었다.  

역사적 사건과 그 무대를 배경으로 하는 까닭에 실존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코시모 데 메디치와 그의 아들 피에르 데 메디치, 조반니 데 메디치, 이 작품에선 주요 인물이 아니지만 훗날 중요 인물이 되어버리는 로렌초 데 메디치까지 메디치 일가가 나오며 그들의 반대 세력으로 루카 피티, 아뇰로 아치아욜리, 니콜로 소데리니, 디에티살비 네로니 등이 나온다. 메디치 일가의 독재를 견제하고 세력을 잡기 위한 공화파가 그들이다. 이 사람들은 이름만 어렵고 비중은 그리 크지 않지만, 누구라도 딱 보는 순간 그 사람! 하고 떠올릴 법한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책의 배경인 1462년에는 아직 십대의 소년으로 나온다. 어리지만 그때 이미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왜 아니겠는가.  

메디치 가에서 추진하고 있는 플라톤 아카데미 부설 인쇄소는 누구에게나 탐나는 사업이었지만 모두가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는 법. 결국 구텐베르크 인쇄소와 푸스트 인쇄소가 격돌한다. 푸스트 인쇄소는 여전히 사람을 매수하고 돈을 뿌리는 방법으로 도전하지만 석주원 측은 실력으로 정면돌파하는 쪽을 택한다. 여느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그쯤이야 모든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인데 다만 석주원이 위기를 넘어갈 때마다 우연이 개입하는 게 불만이다. 메디치 가의 사생아를 보호해 준다든지, 나중에 로마에 가서는 추기경의 사생아를 생모에게 찾아주는 등, 뜬금없이 누군가가 튀어나와서 석주원과 엮이며 그들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어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은 글쓰기 책의 표현으로 빌자면 '닫힌 표현'이 주로 쓰였고, '열린 표현'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달까. 석주원이 얼마나 강직하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인물인가를 보여주기보다, 그저 그는 그런 설정의 인물이라고 정해놓고 시작하는 느낌이다. 조선의 중인 출신 아이가 장영실과 함께 명나라로 몸을 피한 후 서양까지 건너가 인쇄 문명의 꽃을 피우는 이야기 자체는 무력 매력적이다. 그러니까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의 나래는 몹시 훌륭했는데, 그 좋은 소재를 하나의 마무리된 이야기로 끌어가는 힘은 좀 달리는 편이다. 좋은 식재료를 가지고 왜 이리 맛없는 음식을 만들었을까 안타깝다.  

그 시절에 등장하는 유명한 교황이 세 명 나오고 엔리케 왕자에 콜럼버스까지 등장하는 화려한 출연진이지만 까메오 많은 영화치고 별볼일 없는 것처럼 메인 밥상은 실망스럽다.  

책의 맨 뒤에는 관련 그림과 사진이 실렸는데 이걸 보는 재미는 제법 크다.  

 

양피지 위에 책을 베껴 쓰고 있는 필경사의 모습. 작품 속에선 메디치 가의 사생아가 필경사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설계한 자동인쇄기. 작품 속에서 석주원의 인쇄소 측이 경쟁에서 밀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일등 공신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소를 방문한 고객에게 인쇄된 종이를 보여주고 있다. 앉아 있는 저 남자, 저거 맨 다리인가?? 

 

15세기 피렌체의 전경.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중에서 르네상스를 주도한 '꽃의 도시'다.  

작품을 읽으면서는 배경 장소가 계속 이동하지만 그 현장감은 별로 살아있지 않다.  

 

요한 푸스트와 쇠퍼가 출판한 책에 넣었던 상표와 그들이 고딕체로 제작한 '시편' 

아래는 알도 마누치오가 창업한 알디네 출판사의 상표와 이곳에서 이탤릭체 활자로 만든 최초의 문고본인 베르길리우스 시집. 

확실히 아래쪽 글자가 눈에 더 편하다. 두 인물 모두 작품 속에서 등장한다. 

 

코시모 데 메디치가 머물던 피렌체의 피티 궁전.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은행가이자 정치 지배자로서 문화예술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독일 마인츠에 있는 구텐베르크 박물관. 이곳이 오히려 '꽃의 도시' 느낌이 강하다. 꽃나무 때문인가 보다. 

무려 3권이나 되는 책을 읽었는데 좀 허탈하다.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세 권짜리인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다. 그 책도 출발 지점의 상상력이 빼어나다고 알고 있는데 이야기의 힘이 약하면 화가 날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금속활자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목표였던 것 같은데 목표와 달리 그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서 얘기를 할 때도 마치 ppl을 보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시작할 때이 기대치가 있어서인지 마무리의 만족감이 너무 떨어진 게 아쉽다. 욕심이 앞섰던 듯하다. 작가도, 독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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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5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5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0-08-17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많은 그 작가에 그 독자^^;

마노아 2010-08-17 21:3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콤비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