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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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진 작가와의 두번째 만남이다. 역사소설로서 <도모유키>를 만났었는데, 느낌은 평범했었다. 문체도 올곧이 본인의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조급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똑같이 사랑과 순애보, 사람의 도리 등을 이야기하지만 이번 작품이 훨씬 농익은 듯한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고 애틋하고, 그리고 마음을 울리는 느낌도 더 컸다.

전쟁이란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개죽음 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요, 전쟁을 방관해놓고 수습도 못하는 입만 살아있고 무능력한 임금에게도 그랬으며, 전쟁의 포화를 온 몸에 받아내며 살아남는 것만이 최후의 목표가 된 힘없는 민초에게도 그러했다.

철영은 대과를 준비하던 선비였다. 2차 진주성 싸움 때 그는 병든 아이보다도 나라와 사직과 임금의 안녕을 더 걱정했다.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위해 의원을 모시러 갔던 그는, 의원을 찾지 못하고 그 길로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성은 함락되었고 그는 포로가 되었다. 진주성에서 도망쳐 나온 양민 일가는 그 덕분에 가족을 잃었지만 오히려 원수를 은혜로 갚아준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 쯤 가볍게 버려야 한다고 외치던 철영이었지만 막상 왜군 손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는 제 앞가림 하느라 바빴다. 굶주린 뒤에 양반의 체모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러나 한학에 관심 많은 어느 사무라이 덕분에 철영은 일본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되고, 앞서 일본으로 잡혀왔을 것이라 짐작된 아내 찾기에 목숨을 걸었다.

한편, 앞서 일본으로 잡혀와 농노가 되어버린 아내 유이화는 모진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미 진주성에서부터 왜놈의 몸을 받아야 했던 그녀에게 미모따윈 오히려 저주에 가까웠다. 게으른 농꾼 덴카이의 집에서 사무라이 사에키에게 능욕을 당하기도 했지만, 이미 절망도 체념도 잊어버린 그녀에게선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도모유키- 일본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만난 그는 반듯한 이마를 가진 이화에게 반했고, 마음에 새겨두었다. 일 년여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이화를 만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이화를 사들였고, 자신의 초가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하루 벌어 하루 쓰고 인생의 의미 따위 몰랐던 그가, 이화를 만난 뒤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열정을 다해 삶을 꾸려나갔다. 이화 역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미 잃어버린 첫 아이가 눈에 밟혔지만 산 사람은 그렇게 살아진다.

작품의 중간중간에는 선조와 그의 신하들의 탁상공론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대화가 자못 재밌다.

-설령 죄가 없다고 해도 임금이 '네 죄를 아느냐?'라고 물으면 임금이 미처 생각하지도 않았던 죄를 줄줄줄 나열하는 것이 백성된 자, 신하된 자의 도리가 아닌가.

 

-합천의 깊은 산에서 새벽이슬과 여린 풀을 먹고 살았으니 그는 신선이나 다름없으며, 따라서 신선처럼 날아다니며 왜적을 쳐부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신선에게는 군함도 병졸도 군량도 필요하지 않음을 고했다. 배도 병졸도 군량도 없는 조선수군에게는 가장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군율을 어기는 자는 장졸을 막론하고 처단하여 군율이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알리라. 그대에게 함대와 병졸이 없음을 내 안다. 그대는 속히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라. 못대가리가 없음을 내 안다. 그대는 속히 대장간을 돌려 못대가리를 만들라. 쇠가 없음을 내 안다. 그대는 속히 솥과 괭이를 녹여 쇠를 만들라. 솥과 괭이가 없음을 내 안다. 그대는 속히 함대의 못을 빼고 녹여 솥과 괭이를 만들라. 전쟁으로 남도 산하에 큰 나무가 없음을 내 잘 안다. 그러나 그대는 이를 한탄하지 마라. 속히 작은 나무를 심어 부지런히 물을 주어라. 또한 나무가 자라기를 기다리지 말고 잡아당겨 바삐 자라게 하라.


이런 식이다. 그들의 말싸움과 그들의 행보에 대한 설명들은 거침없는 풍자로 읽히는데 너무 기막혀서 웃음이 나오고, 그래서 더 쓰라리다. 저렇게 형편없는 군주를 살리겠다고 개죽음 당한 조선 백성이 가엾고, 저런 나라를 떠받치느라 희생된 시간이 가여울 지경이었으니.

도모유키와 아시타(유이화의 새 이름. 내일이라는 뜻)의 행복한 삶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미모가 이번에도 문제된 것. 그러나 둘의 사랑은 지극했으니, 도모유키가 한 다리를 절룩이는 것으로 둘은 목숨을 부지한다. 철영은 병적인 집착을 보이면서 아내 찾기에 열을 올렸고, 결론을 얘기하자면 끝내 아내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의 행보는 독자들이 짐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결말을 짐작했다고 해서 시시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작가가 갈 수 있는 최선의 길로 곧장 걸어갔다고 보면 될 것이다.

책 속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사람의 도리와 염치, 체면 등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철영은 목숨 빚이 있었던 박동구가 몸을 버린 까닭에 삶을 버리려 한 제 아내에게 야단을 쳐달라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져버렸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도 조금은 철이 들어, 일본 땅에서 만난 신이라는 여자에게 지킬 수 없는 약속임에도 돌아갈 길을 알아봐 주겠노라 허튼 약속을 해준다. 비록 그 여인의 신산한 삶이 바뀌어지진 않았지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영은 또 한심한 작태를 보였으니, 사무라이 옷을 입고 사무라이 대접 받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으면서도 자신이 무도하다 욕한 사무라이의 행태를 어느덧 닮아가고 있었던 것.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제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제가 일한 대가에 대해 당당히 말할 줄 알았던 도모유키의 당당함이 오히려 더 선비다웠다.

아시타가 조선에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당당히 항변할 때, 죽은 아이 편윤이에 대한 얘기만 늘어놓았는데, 좀 더 따끔한 충고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봤기에 느껴지는 아쉬움일 것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 몹시 인상적이어서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보았다. 전쟁 씬이 크게 나오지 않으니 대규모 물량공세를 펼 필요는 없을 듯하고 다만 일본 의상이라던가 일본에서의 촬영은 필요할 테지. 혼자 너무 멀리 가버렸다. 순애보 사랑과 치욕스러웠던 역사의 장면들이 떠올라 괜히 감상에 젖었나보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안철영의 실제 역사적 인물로 모델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실존 인물 이진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들의 스승이었으며 그의 무덤이 해선사 입구에 있다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작품의 재미가 더 커진 느낌이다.  유이화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아시타라는 일본 발음도 참 예쁘다. 아시타 아시타...

작가 조두진은 유독 임진왜란 시기, 혹은 그 무렵의 조선사에 관심이 많은 듯한데, 그의 역사소설에 대한 관심이 반갑다. 보다 진일보한 글쓰기를 보여주었으니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참, 표지도 무지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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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1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따끈한 신간이군요. 유이화-아시타 호감이 가네요. 궁금하고...
힘없는 민초들이 철없는 임금을 살려내느라 고생이 많았죠. 우리의 광해군도...ㅠㅠ

마노아 2008-02-14 19:35   좋아요 0 | URL
위즈덤하우스 도서평가단 책이었는데 오늘 도착했어요. 지난 해에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이죠.
임진왜란은 조선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아요.
차라리 그때 조선이 망했더라면 오히려 나았을 것을....ㅜ.ㅜ

아키타이프 2009-04-2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작가의 상상으로 선조의 모습을 그린거겠지만 아마도 실제 모습도 저러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백성들의 아비라는 작자의 한심한 작태가 책 읽는 내내 한숨 짓게 하더군요.
전 이화 얘기 보다 이순신 장군님을 해하려고 모략한 그들에게 더 큰 울분이 느껴지더군요.
자신의 미래라는 의미로 이름을 지어주는 남자의 순정... 부럽기도 하고,
사랑의 숭고함이 다시 한번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네요.
사대부라는 철영이 생존과 유교적 괴리에 좌충우돌할때 이화를 구한 일본 남편과 철영으로 인해 다시 진주성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촌부의 모습이 몹시도 닮아있더군요.
머리에 지식을 가득 채운것 보다 가슴을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게 더 중요하겠죠.

마노아 2009-04-21 11:38   좋아요 0 | URL
도모유키 때보다 더 애틋하고 절절하게 사람들을 묘사한 것 같아요.
선조는, 어휴 늘 한숨 나오게 하는 인물이지요. 인종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것 같아요. ;;;;;
머리보다 가슴에 무엇을 채우고 사는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예요. ^^
 
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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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그것 밖에는 내가 아는 정보가 없었다.  표지만 보고는 현대소설일 거라고 당연히 짐작했는데, 열어보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 범주에 드는 작품이었다. 어랏, 특이하군...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지난 22일에 읽기 시작했는데, 24일부터 뚝 끊겨서 일주일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저 읽으려는 다짐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몹시 재밌었던 기억의 끄트머리도 놓기 싫었던 까닭이다.

작가는 이전에 단편 소설도, 시 한자락도 써 본적이 없는 그야말로 초짜라고 했다. 그런데, 내공이 놀라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흡사 김훈의 문장을 보는 것 같았고 신경숙의 리진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이 따라오기도 했다.  읽을 때마다 북다트를 사용해 주었어야 했는데, 처음 책의 2/3를 내리 읽을 때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읽은 까닭에 미처 표시하지 못한 페이지들이 아른거린다. 안 되겠다. 나중 기회에 다시 읽어야지...

시대적 배경은 영조 말기, 정조, 그리고 순조 초기였다. 직접적으로 임금님을 묘사하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 시대가 중요하지도 않다.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옮겨 놓아도 그대로 이야기가 될 만큼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3대에 걸친 여러 집안과 남녀들, 그들 부자 사이, 모녀 사이, 사촌 사이 기타 등등... 이들 가족들과 이웃들 간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의 타래.  그 안에서 집요하게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 중에는 근친상간까지도 있다. 그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제 사랑에 타들어 간다. 계집보다 더 고운 얼굴을 했던 묘연의 아버지는 천하의 색마였고 죽음조차도 복상사였다. 그 아버지가 부끄러워 침묵을 금처럼 달고 산 묘연.  묘연에게 이복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의 딸 난이를, 아들 희우가 사랑한다.  난이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타래. 그들은 서로가 말라가고 시들어 간다.

뿐이던가. 난이의 이복 언니 향이를 사랑한 여문은 향이가 목매달아 죽자 다리를 절던 향이처럼 되고 싶어 다리를 부러 절뚝이며 살고, 그녀의 집에서 남편 행세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는 원래 부인이 있었다.) 또 향이의 친 엄마인 후연은 마음은 아니면서 겉으로는 아내를 학대했던 최약국인데, 후연이 젊다 못해 어린 약사 후평과 도망을 치자 후처로 들어온 난이 엄마 하연을 박대하며 왜곡되어진 사랑을 표현한다.  이렇게 맞물리는 사랑 이야기들은 조금도 서두름 없이 느린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몹시 아파, 독자는 몇 차례씩 호흡을 멈춰야만 했다.

주인공의 시점이 계속 바뀌고 하나의 이야기도 각 당사자의 입으로 다시 말해지는 기법은 작품의 깊이를 더 진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조선시대 박물지를 연상케 하는 여러 소소한 소재들. 차라던가 벼슬, 학문, 풍습 등등이 독자에게 또 하나의 좋은 즐거움이 된다.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작품 전체를 아우루는 줄기의 힘이 약해서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다는 것.  그렇지만 집중해서 작품에 다가가다 보면 어느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제목은 왜 '달을 먹다'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원제는 '내심'이라고 했는데 '속마음'이라고 쓰려니 너무 직접적이어서 운치가 떨어진다. 차라리 이 제목이 더 낫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헤아려 보고자 언제고 다시 읽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미처 표시하지 못한 밑줄긋기가 아쉬워서 한 부분만 옮겨 본다.

나는 언제나 '누구'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는 마님의 딸이 되고 싶었고, 나이 들면서는 오라버니의 각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누구'가 불가했다.  그러면 '무엇'이라도 되어야 했다.  그 '무엇'조차 될 수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누구'이면서 '무엇'일 수도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문제였다.  열여덟에 목숨을 버려 중천에 갇힌 귀신이 된 향이 언니처럼, 이제 열여덟이 된 내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귀신조차도 '누구'였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도 나타난 귀신더러 너는 누구냐, 하지 너는 무엇이냐,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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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07-12-3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마노아 2008-01-01 01:13   좋아요 0 | URL
이 책 기대 이상으로 좋아요. 분위기 짱이에요^^

레프티 2008-01-01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을지 망설이고 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목에 대한 설명을 저자의 블로그에서 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알라딘에 올려졌던 김언수씨와의 인터뷰에서였던가...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wifeofneo 인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다고 했던 등장인물 관계도가 올려져 있어 참고하면서 읽으려구요.
지금이 딱 2008년 새해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마노아 2008-01-01 01:14   좋아요 0 | URL
레프티님~ 저도 책 뒤에 인터뷰에서 읽긴 했는데 그게 머리 속에 잘 정리가 안 되더라구요6^^
등장인물들 관계가 복잡해서 진짜 도표가 필요했어요^^ㅎㅎㅎ
알려주신 블로그 들어가서 볼게요. 감사해요~ 레프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머큐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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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에타를 읽으면서 아멜리 노통브를 졸업해야지 생각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씩 그녀의 작품들을 읽곤 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그녀의 책들을 멀리 했는데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는 다시금 애정이 살아나 냉큼 빌려왔다.

그런데, 첫장부터 좀 남달랐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이야기의 진행도 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원래의 작가 스타일은 도망가지 않았다.  다다다다 말싸움도 빠지지 않았고 작가와 책 이야기를 통한 공방도 어김 없었다.  물론, 그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스타일'에 조금 지쳤을 뿐.

작품 속에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77살의 노인과 그가 속여서 감금하다시피 하고 있는 미모의 23세 여인.  둘의 관계는 기묘하다.  1918년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하젤은, 노인의 간계에 의해 자신의 얼굴이 화상으로 망가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후 거의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섬에 고립되어 5년 동안이나 외부 접촉 없이 노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없을 수 없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서 뭍에서 간호사가 왔고, 그녀는 이 노인이 하젤에게 취한 폭력을 단번에 갈파한다.  그러나 수색을 당하기 때문에 필기루를 통해 진실을 말해줄 수 없고, 옆방에서 다 엿듣고 있기 때문에 입술을 통한 진실 전달도 불가능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거울'.  거울을 직접 보여주어야만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서 잃었다고 알고 있지만 강하게 붙잡고 있는 미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만나기까지의 긴 투쟁(?)이 작품 속에서 이어진다.

처음엔 이들의 쓸데 없는 말싸움과 공방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논쟁으로는 아무 즐거움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은을 통한 거울 만들기에 실패하면서 섬안에 같이 갇힌 간호사의 대탈출 활약이 나오면서 작품의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재밌게도, 작가는 두 가지의 결말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결말을 썼지만, 또 다른 결말도 갖고 싶었던 것.  168쪽에서 끝난 이야기는 다시 135쪽의 뒤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결말을 진행시킨다.  첫번째 결말이 좀 평이했던 것에 비해서 두번째 결말은 아멜리 노통브 다운 '튀는' 맛이 있었지만, 두 결말 모두 '특별한' 재미나 감동은 주지 못했다. 

매번 그녀의 작품에서는 비슷한 크기의 재미만을 느꼈을 뿐인데도 관성처럼 습관처럼 작품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것 역시 작가가 가진, 또 작품이 가진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노인이 보여준 폭력적 사랑에 동의할 수 없고,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순간에 얼토당토 않은 사랑학을 펼쳐놓은 하젤의 심리 상태도 공감하기는 힘이 든다.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노인을 심판하고자 한 간호사 푸랑수아즈 당황스러운 변신이었다.  도무지 건질 것이라곤 별로 없었는데 왜 별점이 넷이냐고 물으면, 역시 그게 또 작가의 '마력'이라고 하겠다.  일종의 늪같은... 시간이 더 흐르면, 그녀에게서 한단계 진화된 발전과 성장을 볼 수 있을까? 그녀의 서랍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말이다.  큰 기대는 별로 안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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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07-12-01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소설은 일종의 '자기표절' 이라고 봐요.
데뷔작 <살인자의 건강법>과 갈등구조가 똑같거든요. -0-

마노아 2007-12-01 08:29   좋아요 0 | URL
소설 읽으면서 전작의 무엇과 비슷한 스물스물 불쾌한 기억이 있었는데 그게 '살인자의 건강법'이었군요.(데뷔작이 이 작품보다는 나았지만..;;;) 그런데 '자기표절'이라니, 역시 노통브 다워요..;;;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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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본 김영하의 소설이었다.  유명세를 치루는 이름들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늘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 소설가'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이렇게 능숙하고, 이렇게 능란한 이야기의 진행이라니. 46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내려갔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얘기도 해줘가면서.

이 책은 사생아로 태어나서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를 잃고, 그 할머니가 남겨진 어마어마한 빚으로 집에서도 내쫓긴, 고시원에서도 다시 내쫓긴, 갈데 없는 막장 인생을 살 위기에 처한 한 젊은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80년생인 주인공과 그 또래의 청년들은 이태백의 대표 주자들로서 고학력 백수의 전형이었다.  후진국에서 태어나서 개발도상국에서 성장하고 선진국(아직 고지가 멀었지만..;;;;)에서 대학까지 나온 주인공(과 그 또래의 청년들)은 남들 하는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질문들은 하지 않고(혹은 모르고) 살아왔다.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심지어 살아있는지조차 모르고... 또 궁금해하지 않은 채 살았고, 자신에게 요구되는 교육비와 생활비, 제 용돈의 출처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돌아가신 할머니의 상상을 초월한 빚더미 앞에서도 시종일관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퀴즈쇼 채팅방에서 사모하던 연인을 현실에서 만났지만, 연애에 있어서도 한발자국 더 나가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습관적인 물러섬을 보여준다.  그것은 주인공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던 태생적 한계와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후유증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연과 오기와 그리고 운명같은 힘으로 나간 TV퀴즈쇼 덕분에 사랑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또 그때문에 이춘성을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회사'로 들어간다.  소위 회사로 불린 그곳은 지옥의 퀴즈쇼 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계약금으로 무려 천만원이나 쥐어주는 자금을 움직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우주로 지식을 이동/축적시키는 곳이기도 하고 현실속에선 파주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세계다.  작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앞부분은 '회사'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고시원에서 욕보고 지원을 만나게 된 것-과 회사에 적응하며 또 자신도 모르게 파괴되어가는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회사는 거꾸로 말하면 '사회'가 되는데, 주인공은 회사라는 사회를 통해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차례로 맛보고 다시 무일푼의 자신으로, 즉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나 서바이벌 세계의 살벌함을 맛본 그는 어느덧 한층 성숙해져 있다.  작품을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는 관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나, 어리고 철없고 그래서 미성숙했던 주인공은, 사회의 쓰라린 맛을 보고 난뒤 보다 자라고, 철들고, 좀 더 성숙해졌지만, 사회의 거대함과 무서움, 그리고 불친절함과 불신까지 모두 배워서 나온다.  눈앞에 있는 연인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불확실한 미래의 불투명한 빛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그렇게 세상은 하나를 배우고 하나를 잃어버리는 '자연스러움'을 가르쳐주었다.

한참 도약해야 할 나이의 젊은이가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살짝 마음이 아팠고(..;;;),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 '책'과 '퀴즈'의 세계가 즐거웠고, 4차원 세계라도 다녀온 듯한 혼란스러운 어지러움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설은 어찌나 어렵던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김영하와의 첫 만남은 신선했고 즐거웠으며, 다시 김영하를 찾을 때에는 그의 역사 소설 <검은꽃>을 만나고 싶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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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읽고파지네요

마노아 2007-11-24 11:36   좋아요 0 | URL
추천작이에요~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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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완결편 '눈뜬 자들의 도시'다. 앞의 책에서 작품의 배경이 어디인지 전혀 알려준 바가 없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고국인 포르투갈이 배경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적 배경은 도시 전체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멀어 버렸던 바로 그때로부터 4년 뒤의 일이다.  이번엔 도시가 온통 암흑으로 변해버리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니 백지투표 사건이 그것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 있었던 선거일.  그 투표장에서 우익 정권의 표가 손 꼽을 만큼 나오고 중도표는 그보다 적게, 좌익 표는 더 적게 나왔다. 그리고 무려 70%가 백지 투표였다.  당황한 정부는 날짜를 바꾸어 재토표를 선언해 보지만 앞서보다 더 처참한 결과가 나온다. 무려 83%의 백색투표가 나왔던 것.

정부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지만 딱히 답이 없다.  그들은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시민들을 남겨둔 채 몰래 도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버려진 수도를 향해 치안부재 상황에 대한 협박을 내지르나, 도시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일상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약이 오르는 것은 정부쪽.  살인, 방화 기타 등등의 범죄가 판을 칠 것이라 여겼는데, 도시와 그곳의 시민들은 스스로 나가버린 정부 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뭔가 극적인 반전의 순간을 마련하길 원했던 정부는 열차 폭파 사건을 일으켜 도시를 전복시키려는 음모 집단이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우기까지 한다.  이때까지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시장은 이 사건에 회의를 느끼며 사직을 청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놀라운 편지 세통이 도착한다.  각기 다른 수신자를 가진 같은 내용의 편지는 4년 전 이 나라가 모두 실명 상태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인을 소개한다.  이제 작가의 시선은 전작 '눈먼 자들의 도서'와 겹치기 시작한다.  그때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나와서 당시 상황을 간단히 언급할 기회도 가진다.  이제 그 뒤를 쫓는 자는 경찰의 경정.  정부의 음모에 따라 그는 이 백색투표의 배후에 눈멀지 않았던 그 여인이 놓여 있다고 몰아가지만, 앞서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보에 회의를 느낀다.  정부는 치명적인 희생양으로 여인을 점 찍었고, 신문과 방송은 마녀 사냥하듯 그녀를 규탄한다.  경정은 신문사에 기고를 하여 이 일의 부당함을 알리지만 그의 앞에 예정된 끝은 절망에 가까우니 자작극으로 폭파 사고도 일으킬 수 있는 정부가 못할 일이란 보이지 않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인간이 이룩해 낸 그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인간이 앞장세우는 윤리 도덕이라는 것도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이제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국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할 정부는 폭력으로서 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국민의 심판에 대한 불복 역시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공권력이란 결국 국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그들을 다시 끌어내릴 수 있는 것 역시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가능한 것인데, '백지투표'를 통해 그들이 가져야 할 반성이나 책임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불순분자를 만들어 내어 사회 전체를 공포로 휘감아 공황상태로 만드는 것이 대통령과 총리와 장관들의 태도였다.

그 광기 앞에서 모두가 눈 멀었을 때 홀로 세상을 보았던 한 여인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의 눈물을 핥아주었던 개 역시 눈을 감는다.   정부의 부재 속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던 그 도시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이성을 잃고 조작된 진실에 쓸리는 모습에, 황우석 사태나 디워 논란 때 보여진 파시즘적 행태가 겹친다. 

눈을 떠도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보아도 인정하지 않는 진정한 눈먼 자들의 세상은 아직도, 그리고 이곳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따옴표 하나 나오지 않고 인용문도 없이 그저 서술로만 작품은 진행된다.  대화의 맥을 놓쳐버리면 누구의 대사인지도 알아차리기 힘들어져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책도 무겁지만, 마음도 역시 무거워지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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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11-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책중의 하나입니다. 흑-

마노아 2007-11-18 10:2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 묵혔다가 요번에 읽었어요. 눈먼자들의 도시가 훨씬 재밌긴 해요^^

멜기세덱 2007-12-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살펴보니 4개씩이나 당첨되셨더군요....대박^^

마노아 2007-12-14 14:54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멜기세덱님을 이제 덜 부러워 하려구요. 푸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