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명정당 건설의 시기적 구분


(1) [1880~1890] 마르크스주의 학습써클 : 나로드니키운동, 나로드니키운동의 분열, 노동해방단 결성


- 당시의 급진적 젋은이들은 나로디즘과 마르크스주의 사이의 분리선을 명확하게 긋지 못하고 있었다.


- 플레하노프의 저작이 없었다면 아무도 사회민주주의 입장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 나로드니키는 마르크스의 원시적 자본축적과 영국 산업혁명의 잔학성에 대한 설명, 잉여가치론,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과 소외에 대한 비판, 형식적인 부르주아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러시아에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본주의 발전을 막아야 함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 나로드니키 운동은 1860년대 테러주의의 양상을 띄다가, 1870년대에는 지식인들의 농촌투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농민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자, 혁명가의 대리주의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 1879년, 대중선동을 중시하는 체르니 페레텔(흑토 재분배당)과 제믈랴 이 볼랴(인민의 의지)로 분리되고, 체르니 페레텔은 노동해방단의 전신이 된다. 플레하노프, 악셀로드, 자술리치, 도이치, 등이 참여

- 이들은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지만, 농촌의 생활과 정서에 가장 직접 속박되어있는 노동자들과 접촉했다.


- 나아가 V.V의 주장과는 반대로, 국내 시장은 자본주의 발전에 선행하는 전제조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 때문에 창출된다는 점을 입증해 보였다. 부르주아지가 시장을 만들어냈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시장을 발견한게 아니다.


- 1880년대는 대체로 아주 작은 마르크스주의 선전 써클들이 노동자들 속에서 활동하던 시기였다. 일반으로 이 시기는 암흑의 시대로 기억된다.


- 당시 짜르는 나로드니키를 주된 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들을 격파하도록 부추기기 위해 1890년대 중반까지 합법 마르크스주의를 허용했다.


- 나로디즘과 결별한 것, 스트루베의 자유주의에 대한 독창적 태도, 그리고 그의 변증법적인 태도, 즉 나로디즘이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인 한 그것에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것, 이 모든 것은 장차 레닌이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취했던 근본 태도들이었다.


(2) [1890~] 선전주의에서 노동자 운동으로의 개입시기 : 플레하노프의 <선동론>,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결성, 수정주의 논쟁


-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절망적인 사회적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교양과 계몽에서 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습 써클이 제공해주는 기회를 열심히 이용하려 했다.


- 선전가가 많은 사상을 하나 또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반면, 선동가는 오직 하나 또는 몇가지 사상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 대다수 대중은 지적 사고가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 전개를 통해 투쟁으로 이끌린다.


- 노동자들이 어떠한 폐해에 가장 쉽게 흥분하는지를 이해하고, 선동을 시작하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를 고를 필요가 있으며 해당 시간과 장소에서 어떤 투쟁 박식이 가장 효과가 있는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것들을 알려면, 선동가는 노동 대중과 끊임없이 접촉해야하며, 각각의 공장에서 일어나는 사태 전개의 추이를 항상 관찰해야 한다. 각각의 공장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폐해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아주 사소한 세부 문제들에도 관심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요구를 정확히 언제 제출해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를 미리 아는 것, 바로 그것이 선동가의 임무다. 대주의 생활조건을 알고 대중의 정서를 알면, 선동가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3) [1900~] 혁명정당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시기 : 경제주의 논쟁, 직업적 혁명가 사상, 전투조직 결성과 무장봉기에 대한 태도, 전국신문의 발간과 소그룹의 연합, 노동조합주의에 맞선 투쟁, 멘셰비키와의 분열


-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전국 정당으로 결속시키면 운동의 분업을 발전시키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투쟁하는 다수의 무지는 소수적 전지전능함의 뒤집어진 반영이었다.


- 약 4~5년 동안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속에서 공장 차원의 투쟁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중 가운데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부문 속에서 정치 행동을 향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했다.


- 전도 유망한 노동자 선동가를 공장에서 하루에 11시간씩 일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당이 그의 생계를 책임지도록 조처해야 한다.

- 공장 생활을 통해 규율이 몸에 밴 노동자들과는 달리, 지식인들은 당을 통해 철의 규율을 익혀야 한다.


- 배포자망은 명백히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조직 골격을 형성할 것이다.

- 신문의 배포자망이 장차 제정에 맞선느 무장 봉기를 조직하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포자들로 이루어진 군사 조직이다.


- 운동에 대한 사상 실천 지도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투쟁과 관련햇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필요한 반면, 당 중앙이 운동의 상황을 아는 것과 관련해서, 그리고 당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광범한 분권화가 필요합니다.


- 의회 만능주의가 고개를 쳐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준의회라도 필요했다. 1903년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에서 개량주의의 깃발을 공공연히치켜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 [1905~] 1905년의 자생적 봉기와 반동기 : 1905년 자생적 봉기에 대응하지 못함, 봉기의 전망(노-농 독재)에 대한 태도, 소비에트에 대한 종파적 태도, 당의 개방과 당원의 팽창, 극심한 반동기, 두마선거에 대한 태도, 멘셰비키와의 半통합, 소환파 최후통첩주의와의 투쟁, 완전한 분열.


- 참말이지 거대한 파업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고, 어떤 미지의 어마어마한 물결이 일고 있었지만, 볼셰비키 위원회는 이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볼셰비키 위원회는 가퐁 운동에 대해 주바토프 운동일 뿐이라는 평가를 내렸기 때문이다.


- 자유주의자들은 대지주 재산 몰수에 반대했다. 자유주의자들의 정당인 입헌민주당(카데츠)은 왕실과 수도원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지지했지만, 지주 토지의 강제 몰수와 관련해서는 지주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지불하는 경우에만 지주 토지의 강제몰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 혁명이 수백만의 노동자와 농민을 정치 사회 투쟁으로 끌어들이면서 전진함에 따라 자유주의자들의 혁명 열정은 식어 갔다.

- 노동자들의 제정 반대 요구들과, 사용자들의 이익에 어긋나는 노동자들의 생활조건 개선 투쟁을 분리시킬 수 없음이 이내 명백해졌다.


- 페테르부르그 경찰조합의 명칭은 ‘러시아 공장 작업장 노동자회의’ 였다.


- 러시아 혁명의 경험은 깊은 정치위기의 객관적 조건들이 존재하는 경우에 혁명의 진정한 산실과 별로 관계가 없는 듯한 가장 작은 출돌이 대중의 감정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불꽃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하고 있다.

-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일련의 정치적 요구들이 포함됐다. : 8시간 노동, 노동자 집회의 자유, 농민에 대한 토지 분배, 언론의 자유, 교회와 국가의 분리, 러일전쟁 조식과 제헌의회 소집.

- 죽은 사람이 1000명을 넘었고, 부상한 사람이 무려 2000명이었다.


- 성장하는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자의 태도를 둘러싸고 레닌은 협소한 종파주의 관점을 갖고 있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싸워야 했다.

- 정치투쟁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소비에트와 당 둘 다 똑같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임시혁명정부의 맹아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 소비에트는 무장 봉기라는 급박한 행동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한 동질성이 없기 때문이다. 소비에트는 봉기에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 그는 중앙집권적 당 기구를 물신화하지도 않았고 목적 그 자체로 보지도 않았으며, 노동계급 전위 부문의 행동과 의식과 조직화를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보았다.

- 당과 노동계급 대중 사이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 저는 우리 위원회에 지식인 두 사람당 노동자 여덟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 조직은 정치에 종속된다. 그는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당 기구의 보수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대중의 힘에 호소했다.


- 우리는 기술 발전을 활용하고, 노동자 분견대에 폭탄을 대량으로 제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들과 우리의 전투부대가 폭탄, 신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고 도와주어야 한다.

- 사실, 모든 진정한 대중 운동에서 군대의 동요는 반드시 필요하다. 군대가 동요하면 혁명투쟁이 첨예해질 대마다 군대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봉기 시기에 군대를 획득하기 위한 물리적 투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면, 우리는 비참한 공론가라고 판명날 것이다.

- 혁명의 정치적 측면에서 혁명의 기술적 측면을 분리하는 것은 순전히 헛 짓거리다.


- 러시아 혁명의 전망에 관한 레닌의 입장에는, 혁명의 과제는 부르주아의 과제인 데 반해 혁명의 지도력은 프롤레타리아가 장악해야 한다는 모순이 있었다. 첫째 요소는 볼셰비즘과 멘셰비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둘째 요소는 근본으로 차이가 있는 것이다.


- 토지 국유화는 부르주아 혁명의 마지막 결론일 뿐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조치이기도 하다.


- 경기 회복만이 프롤레타리아의 대열을 정비하게 하고, 프롤레타리아의 혈관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고, 플롤레타리아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가 더욱 거센 투쟁을 할 수 있게 된다.


- 볼셰비키는 혁명을 떠들어 대기 좋아하는 자들, 그러니까 후퇴해야 한다는 것과 후퇴하는 법을 알아야 함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자들을 가차없이 폭로하고 당에서 쫓아냈기 때문에 일서정연하게 후퇴할 수 있었다.


- 우리가 두마를 보이코트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우리가 두마에서 우리 당의 그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보이코트 지지자들은 실수하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우리는 노력을 했는데도 두마가 소집됐기 때문에 우리는 두마를 활용한다는 임무를 회피할 수 없다.


- 저주받을 반혁명이 우리를 이런 지긋지긋한 돼지우리로 몰아넣었기 때문에, 우리는 푸념도 늘어놓지 말고 큰소리 탕탕 치지도 말고 혁명을 위해서 돼재우리에서 활동해야 할 것이다.


- 강령이 없으면 당은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든지 자신의 노선을 일관되게 추구할 수 있는 통합된 정치 유기체일 수 없다.


-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짜르와 그의 사냥개들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비밀 활동에 의존하는 한편, 사람들이 우리 당과 당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 그리고 당의 강령과 정책에 관해 남김없이 알게 하고, 당대회에 참여한 이런저런 대표가 대회에서 말한 것 조차 알게 하려고 애쓴다.


- 레닌은 멘셰비키 노동자들의 중도주의와 지도자들 다수의 치유할 수 없는 직업적 중도주의를 구별했다.


- 혁명가들이 노동계급 내에서 전혀 실질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고립돼 있을 때가 바로 과도좌익주의가 무르익을 조건이 된다.


- 자금징발 문제


(5) [1914~] 대중정당으로의 도약


# 레닌으로부터


- 출판자료들을 분석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 레닌은 대중과 긴밀히 접촉하는 것, 대중과 친해지는 것, 대중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 항상 그는 그때그때의 과제를 아주 명확하게 밝히고 난 뒤, 오로지 한가지 목적에만 몰두한 채 가장 명백하고도 가장 맹렬하게 집중타를 퍼부어 대면서 필요한 것을 거듭 강조했다. (만약 어떠한 전술 조직문제에 관해 레닌을 인용하고자 한다면, 당시 운동이 직면하고 있던 구체적인 문제를 극도로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 그는 조직이란 정치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 그는 <불꽃>의 편집국 회의에서 플레하노프의 관료적 태도에 부딪친 후 감정적인 면을 훈련하는 법을 배웠다.

- 레닌의 생활방식은 규율과 꼼꼼함과 묵묵한 자기 절제의 표본이었다.

- 하루 24시간 내내 혁명에 흥미를 느끼고, 혁명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잠잘 때조차 혁명에 관한 꿈만 꾸는 인간은 그 사람뿐이기 때문이지요.

- 일리치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원칙에 관한 논쟁과 개인적 싸움을 구별할 수 있고 대의의 이익을 모든 것보다 앞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었다. 반대파가 그를 공격할 때면, 일리치는 흥분해서 반격에 나섰고 자기 관점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과제들이 떠오르고 반대파와 협력할 수 있을 때는, 어제의 반대파에게 동지로서 다가갈 수 있었다.

- 혁명가는 객관적 사실들이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전까지는 혁명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 혁명가들은 전장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

- 그는 자신의 연구가 결국 정치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려고 언제나 애썼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그는 망설이지 않고 한 번에 몇 달식 실천 정치와 거리를 두고 대여악물관이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파묻혀 지냈다.

-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는 부차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쳐두고 가장 중요한 요소를 파악할 수 있었다.


#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


- 1905년 혁명이 일어나자 레닌은 서둘러서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군사 저술들을 연구했다.

- 전술 개념은 계급투쟁에서 하나의 과제나 하나의 부문에 해당하는 조치들에 적용된다.

- 복잡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살아 있는 현실이 어떤 이론적 개념이나 진단보다 더 풍부한 법이다.

-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려면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 필요하다.

- 하나의 전략 계획이나 전술의 올바름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실천을 통한 검증, 즉 현실의 계급투쟁 발전 경험에 비추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 전쟁에서는, 그리고 혁명 시기의 계급 전쟁에서는 적의 진영뿐 아니라 아군 진영에도 미지수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냉철한 분석을 대체로 직관, 즉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에 기초하는 대담한 임기응변과 결합시켜야 한다.

- 가장 중요한 시기에 혁명지도부의 기예 가운데 10분의 9는 대중의 감정을 포착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 혁명의 삶에서는 정확하게 때를 맞추는 문제가 중요하다.

- 가장 불리한 가정에 기초한 과감한 계획을 세우는 것은 레닌의 특징이었다.

- 머뭇거림은 혁명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이다.

- 전쟁에 대한 추상 개념과 현실의 구체적 전쟁 사이에는 근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우연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심리적 요인들은 사람들이 내리는 결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 요인들이다. 마찰을 고려함으로써만 실제 전쟁과 추상적 전쟁의 관계를, 경험과 이론의 관계를 알 수 있다.

- 전술은 전략에 종속돼야 한다. 그러나 성공을 거둔 일련의 전술 조치들은 전략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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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씨가 사회주의를 두고 마치 일련의 경제정책의 하나인 것 처럼 고집하는 이상, 논쟁이 수월하지 못할 것 같군요.

"도대체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어떻게 가느냐" "뭔지 골라내어 순수한 무엇을 만드는 것"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OO씨의 사회주의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선입견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꽤나 예의가 바른 사람입니다만, 달리 정중하게 표현드릴 방법이 없군요. 사회주의에 대해서 무지하면서, OO씨에게는 일말의 조심스러움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엥똘레랑스에는 엥똘레랑스인 법입니다.

사회주의는 당장 도입할 수 있는 경제정책의 성질도 아닐 뿐 더러, 당장 혁명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사회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혁명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하나이지만, 결코 마술봉이 아니니까요.
OO씨가 자신만만하게 "대안이 없다"며, 당당하게 차악으로 선택하는 자본주의 사회 조차도, 산업혁명/부르주아혁명 이후에 오늘과 같은 사회의 모양새를 유지하기 위해 족히 150여년은 넘게 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을성을 갖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사회주의가 일종의 경제정책이 아닌 이유에 대해서 다시 설명드리죠.

사회주의자는 물리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뛰어넘으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합니다. (1) 계급 (2) 정당 (3) 봉기 이 세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혁명은 일어날 수 있죠. (1) 대중들의 열망과 동의가 있어야 하고 (2) 대중들의 의사를 결집시킬 정당이 필요하고 (3) 정당과 대중의 직접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충족되지 않은 조건들입니다. 다만, 이 조건들이란 가만히 앉아있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한마음으로 연대하고, 정치적인 선전도 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뿅망치'를 찾고있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계획경제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기업단위, 국가단위, 세계단위에 이미 계획이 존재합니다. 다만, 자본주의는 계획이 무정부적인 경쟁에 종속되어있을 따름입니다.
OO씨 말씀대로, 계획의 규모와 통제력은 반드시 비례하죠.

여기서도, '모두가 알아서 잘 하리라' 기대하는건 제가 아니라, 주병씨일 뿐입니다.
큰 규모의 계획에 따르는 거대한 통제력을 소수 관료가 행할 것이라 비관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OO씨일 뿐입니다.

1871년 파리꼬뮨이나,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 1960년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자주관리운동, 1970년대 칠레의 꼬르돈, 1980년대 한국의 광주, 등 전혀 관료적이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OO씨는 실패만 기억할 뿐 일말의 교훈도 배울 의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읽지도 않은 독서후기에 성급하게 결론을 요구하고 논평을 즐기기 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보는건 어떻습니까.
정책을 논하거나 결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서로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곳입니다. '대안은 없다'라며 차악을 선택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이전에, 제가 읽고 소개하는 책에 작은 관심을 갖고 '아 이런 것도 있구나' 라고 가벼이 받아들이는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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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당 - 마르크스에서 그람시까지
존 몰리뉴 지음, 이진한 옮김 / 북막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정당' 이라 하면, '선거' 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정당의 목적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들을 ‘선거인’이 아닌 ‘정치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것이겠죠.

선거란,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그들이 정치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죠.

선거는 수단이라고 했으니, 분명 다른 수단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정치를 목적으로 하되, 선거에 연연하지 않는 정당도 논리적,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류의 정당은 많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노동자의 힘’ 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정당이 있구요. (이들은 스스로를 정의하기를 ‘비제도적 투쟁정당’ 이라 부릅니다.)

여튼, 중요한 것은, 정당에게 선거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선거에 출마하고 출마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정의하건데, 정당이란 정치조직이지 선거조직은 아닐테니까요.
정당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견을 실현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직한 정치적 단체”입니다.

존 몰리뉴의 <마르크스주의와 당>은, 마르크스-레닌-로자-트로츠키-그람시 에 이르기까지 당과 관련한 각 혁명가(사상가)들의 이론과 실천이 어떻게 성립 발전되어 왔는지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도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정당을 필요로 하였지만, 이들에게 수단은 선거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문제의 원인을 특정 정치인, 특정 정책이 아닌,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 자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이들은 선거를 통해 행정부 또는 입법부를 장악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몰리뉴씨가 기대한 독자층은, 자본주의 의회정치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다른 대안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설사 의회 밖 정치라 할지라도 말이죠.
몰리뉴씨의 독자층을 묘사하기 위해 아래의 한 단락을 할애합니다.

「이론적 사상적 대안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한 역사는 있지만,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없었던 역사는 없었습니다. 소련 중국의 변화와 상관없이, 온갖 포스트 사상들이 불러온 논쟁들과 상관없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에도 상관없이, 자본주의가 존재했고 억압받는 이들의 투쟁이 존재했죠.
그리고, 투쟁이 거세질 수록 사람들의 자신감도 커집니다. 급기야 이들은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까?” 라는 질문에 각각 다른 대답을 합니다.」

몰리뉴는 이 독자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대중투쟁과 심지어 대중혁명조차도 자생적으로 또는 비공식적 지역 네트워크들을 통해 분출할 수는 있지만, 그런 형태로는 자본주의를 정말로 패배시킬 수 없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이라는 지도부가 필수적이다.”

그의 얘기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비유할 수 있는데,
다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열망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기존 세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테니까요.
기존 체제와의 싸움, 새로운 세계의 전망을 수립하는 일은, 일치된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 - 그것은 불가피하게 전부를 포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 의 일치된 ‘전망’, 이것을 곧 정당이라 할 수 있겠죠.

몰리뉴가 소개하고 있는 거의 100년간의 정당이론은 이에 대한 것입니다. 1848년에 쓰여진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주의당 선언>으로 부터 1930년의 안토니오 그람시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사회주의 정당이론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물론, 옳다 그르다라는 대답을 누구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얘기는 이렇게 시작해야합니다. “어떻게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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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운사를 학습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하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추가로 더 답해보겠습니다.

- 추천도서
*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 이 책은 볼만합니다. 짤막짤막하게 잘 정리했습니다.
* 크리스 하먼의 <세계를 뒤흔든 1968>
* 서유럽에서의 계급투쟁, 동유럽에서의 계급투쟁
* 포스터(미국공산당 지도자), <세계 노운사>1,2, <세계사회주의운동사>1,2 동녘인가에서 예전에 나왔는데, 스탈린주의적 한계 때문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운동 부분에서는 한계가 아주 많지만 그 전까지는 그래도 잘 정리했습니다.

- 인터넷 헌책방을 돌아다니시면서 포스터 책이나 기타 세계운동사를 정리한 책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칠레혁명에 대한 자료는 예전에 문국진씨가 쓴 책(제목은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뒷부분에 부록으로 실린 게 있습니다.
- 이번에 사회주의정치연합에서 비매품으로 <당,노조,평의회>인가가 나왔습니다.
- <맑스 전기>나 <엥겔스 전기>를 보면 국제운동사에 관한 유용한 정보들을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울노신에 있는 <세계노운사>는 안승천 동지가 작성한 것입니다. 글을 대중적으로 쉽게, 그리고 선동적으로 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2인터 해체 시기 각국 노동당의 반계급적 입장에 대해: 레닌이 쓴 <2인터의 붕괴>, <사회주의와 전쟁> 등에 잘 나와 있습니다.
- 전진 출판사에서 [국제노동계급운동의 역사]인가 하는 책이 서너권 나왔습니다. 차티즘 운동을 비롯해 19세기 노동운동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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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 논쟁
크리스 하먼 지음 / 풀무질 / 1995년 9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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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그대로 논쟁을 모아둔 것입니다. 논쟁은, 소련이 해체된 90년대 초반, 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발간하던 이론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주제는 "소련의 몰락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는 것이었죠. 책에는 주로 두명의 집필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는데, 크리스 하먼과 에르네스트 만델은 각각 특정 정치그룹의 대표적인 이론가들입니다.

물론, 이 둘의 논쟁과 상관없이,
당시의 지배적인 분위기란 '사회주의의 몰락' 이었고, 잠정적으로라도 사회주의를 표방하던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이 이에 순응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소련이 사회주의인가 아닌가 라는 논쟁은 아니며, 이 두 집필자 모두 소련을 사회주의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먼의 경우는, 소련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91년 소련의 해체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 친 것 뿐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고,
만델의 경우는, 소련은 10월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에 속해있었는데, 스탈린과 같은 관료들에 의해 점점 자본주의로 퇴행하다가 결국 완전하게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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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은 유효기간이 지난게 아닐까요?
중국과 소련이 완전하게 자본주의국가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지금, 이론적 탐구라는 측면 외에는 꽤나 재미없는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북한 쿠바를 모종의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 시각의 근본에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 '일국 폐쇄경제', '중앙집권적인 국가관료', 등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런 왜곡된 관점이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 마저도 '대안 없음' 으로 귀결시키는 자석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여집니다.

이 논쟁의 유효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은 논쟁이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우며, 동시에 분석적이라는 짧은 평을 덧붙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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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대학시절 한 선배를 만났는데, 안부를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노동운동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말씀하시길, "요즘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별로 안좋던데.." 라며 걱정을 하시더라구요.

이 선배의 걱정은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죠.
노동조합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당하고, 취업비리를 저지르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대공장 노동조합의 이기주의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어렵다는 정부의 선전도 한몫 했을겁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란, 말 그대로 노동자운동이지 민주노총운동이 아니죠.
민주노총이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있지만, 사회적으로 양극화되는 노동자들의 처지나 정당한 요구가 잘못된 길을 가고있는 것은 아니죠. 노동계 내부에서도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이 빈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이라는 기구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정부의 선전은, 대공장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겁니다.

만델의 입장이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습니다.
만델은 소련이 스탈린 관료집단에 의해 타락의 길을 가고있지만, 10월혁명으로 이룩한 노동자국가임에는 틀림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타락한 노동자국가' 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소련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일으켜 스탈린과 같은 관료집단을 일소하기만 하면 다시 본연의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소련의 해체는, 노동자국가로 돌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잃어버린 '패배' 라는 것이죠.

반면에 하먼은, 소련이 스탈린 집권 이래로 이미 (국가)자본주의화 되었고, 소련의 해체는 비능률적인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질 친 것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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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먼과 만델의 입장이 처음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스탈린의 집권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물론, 만델도 하먼도 소련을 사회주의국가로 바라보지는 않았습니다.
소련은 10월혁명으로 자본주의를 벗어났지만, 벗어난 자본주의의 압력도, 다가가야 할 사회주의의 압력도 동시에 받고있는 불완전한 체제인 것입니다.

양쪽에서 힘을 받고있던 소련에서, 기점은 스탈린의 집권인데,
만델에게 그저 '타락'일 뿐인 스탈린의 집권은, 하먼에게는 자본주의로 돌아가는 '反혁명'인 것입니다.
반대로, 만델에게 자본주의로 돌아간 '反혁명'인 소련의 해체는, 하먼에게는 국가자본주의가 사적자본주의로 옆걸음을 딛은 것 뿐이구요.

91년 이후 소련에서 자본주의의 경제법칙(가치법칙)이 작용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겠지만,
하먼의 주장대로라면, 소련에는 이전부터 이미 가치법칙이 작용하고 있었던겁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 이전까지는 폐쇄경제를 유지했던 만큼, 제한적이었지만 말이죠.

하먼은 제한적 가치법칙의 작용을 군비경쟁에서 찾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자유시장경제의 다음 단계로 지칭되는 '제국주의 시대'에, 국가와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본은 밀접하게 유착하게 되어,
자본 사이의 경쟁인 자본주의 가치법칙이 곧 국가간의 무기 경쟁과 전쟁으로 왜곡된다는 것이고, 소련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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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입장의 하먼의 것에 가깝습니다.

대규모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인 소유의 철폐라는 것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형식일 뿐이지 내용 자체는 아닐테니까요.
집중화시킨 생산수단을 민주적인 계획을 통해서 잘 이용하느냐 아니냐가 더 근본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의 집권 이후에 생산계획 자체가 인민들의 동의 없이 소비재 보다는 중공업 위주로만 폭압적으로 이루어졌고,
스탈린 스스로도 일국에서도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일국사회주의' - 실제로는, 폐쇄적 자본주의 경제에 불과했지만 - 를 주창하면서 사회주의로 나아갈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했다는 점을 보면,

그것은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제 형식과 상관없이, 아니 그 형식 때문에 더욱 왜곡된 자본주의 국가로 회기한 것이죠.
소련 해체 이전부터 독일, 헝가리, 폴란드, 중국, 등에서 체제 저항적인 투쟁이 있었다는 점도 그것을 뒷받침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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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논쟁적인 성격의 글 보다는 좀 더 분석적이고 실증적으로 쓰여진 <소련 국가자본주의>를 비롯해서, 논쟁의 배경이 되는 시대적 정황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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