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의 시대 범우사상신서 4
죤 K.갈브레이드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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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확실성

<불확실성의 시대> J.K.갤브레이스

책의 제목이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확실한 것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은근히 자극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제목이야 말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 교수의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그것임에 틀림없습니다.

" 전세기의 경제 사상 속에 깃든 확고한 확실성을 현대의 여러가지 문제가 직면하고 있는 씻을 수 없는 불확실성과 대비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전세기에서는 자본가는 자본주의의 번영에, 사회주의자나 제국주의자는 각기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성공에 확신을 가지고 또 지배계급은 스스로 지배자로서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확실성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인류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제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한다면 전세기의 확실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쪽이 오히려 우스울 정도이다. "

서문에는 그의 문제의식이 간명하게 담겨있습니다.

# 나도 케인즈쯤은 안다

갤브레이스 교수를 모르는 분들도, 저 유명한 J.M.케인즈는 한번씩 들어보셨을 터.
갤브레이스는 다름 아닌 케인즈로 부터 사사받은 케인즈학파 경제학자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은,
갤브레이스 교수가 대학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해이자,
J.M.케인즈가 <평화의 경제적 귀결> 이라는 책으로 승전국 협상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해이기도 했으니까요.

당시의 주류적인 경제학 - 기본적은 아담 스미스의 고전경제학, 당시는 마샬플랜(Marchal Plan)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알프레드 마셜이 이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 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도 바로 이때인데,
한참 혈기왕성했을 이 젊은 경제학도에게 케인즈의 '불완전고용균형'은 불황에 빠진 세계경제를 이해하는 소중한 열쇠와 같았을 것입니다.

갤브레이스 교수, 잘은 몰라도 그 후에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TV 프로그램 - 이 책을 낸 계기가 되었던 - 같은 방송활동 뿐만 아니라, 저술활동과 정계활동까지 옅볼수가 있습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마샬플랜(Marchal Plan)에 이르는 전시ㆍ전후기간에 정부 경제부처에서 일을 하기도 했구요.

왠만한 실력으론 어림없다는 <일반이론>의 케인즈.
그가 어렵다면, 갤브레이스 교수의 책을 참고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케인즈가 생산자라면, 갤브레이스 교수는 케인즈의 경제학을 유통시키는데 크게 한몫 한 사람이니까요.

갤브레이스 교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제에, 너무 케인즈의 그늘에 가두어두는건 아니지 모르겠습니다만,
케인즈를 빼놓고는, 갤브레이스 교수 뿐만 아니라 당시의 경제학을 이해하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불확실성의 시대>는 격변의 1차ㆍ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은 갤브레이스 교수의 입담이 그대로 묻어나와,
주류에서 비주류가,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가는 당대의 분위기를 정말 실감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386세대가 걸어온 그것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얘기나온 김에 386 얘기를 좀 더 하면,
유시민씨는 얼마 전에 그가 속한 정당의 당면 5대 과제를 제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제시한 5대 과제를 중심으로 야당의 정책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데, 두 야당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당면 5대 과제 중에 일부에만 치우쳐있다는 비판을 합니다.

5대 과제 중에 경제분야에 속하는 것 하나가, 시장경제의 확립이고,
모 야당은 이 과제에만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다른 과제들에 대해서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를테면, 시장경제의 확립은 두 정당의 교집합이 되는 것인데,
이는 케인즈 경제학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케인즈 경제학과 그 당시 주류이던 고전 경제학과의 교집합은 시장경제의 확립이었습니다.
두 집단은 각각 '불완전고용균형'과 '완전고용균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만 보더라도 그들의 공통점(교집합)과 차이점을 그대로 알 수 있습니다.

공통점은 고전경제학도 케인즈 경제학도, '고용균형'을 얘기하고 있다는겁니다. - '고용균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네요.
차이점은, 고전경제학은 이를 '완전'으로 수식하고, 케인즈 경제학은 '불완전'으로 수식한다는 것이구요.

두 집단 모두 완전고용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케인즈 경제학은 고전경제학과 달리,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일종의 옵션(option)을 붙인거죠.

올해 정부의 정책이 '경제활성화'로 천명되기 이전까지,
모 야당은 여당의 경제정책을 두고 한참동안 '정체성' 운운했던 것을 기억하실텐데요,
사실, 두 정당의 경제정책상의 차이는 고전경제학의 그것과 케인즈 경제학의 그것을 보는 것 같습니다.

큰 공통점과 작은 차이점이 있죠.
수식(adjective)의 차이입니다.

# 정체성 제대로 따지자

사람의 인격형성에 큰몫을 한다는 사춘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세워나간다고 하죠.
사실, 정체성 운운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 논란이 뭍 인상을 찌뿌리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정체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일겁니다.

케인즈가 등장할 때 당시에 주류 경제학자들이 보냈던 따가운 시선을 보냈으며,
오늘날의 경제정책 역시도 2년 가까이 당한 모진 수난을 받았습니다.
공통점 보다는 차이점이 부각되었고, 혹은 공통점이 무시되기도 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경제사여행>에 없는 경제사 후일담들이 많이 담겨있느니 만큼,
케인즈 얘기를 좀 더 하면,

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 전후협상이었던 베르사이유회의에 영국 협상단 일원으로 참가해서는,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승전국들이 패전국 독일에 물리우는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보고는 협상단을 뛰쳐나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발표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승전국의 과도한, 혹은 우매한 전쟁배상금이 세계경제를 불황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경고였는데,
이는 응당 승전국 협상단의 분노를 샀을 뿐만 아니라, 승전국 국민들의 패전국에 대한 분노와도 융합되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죠.

이를테면, 1919년 말에 영국 <Times>는 이렇게 보도했죠.
"케인즈씨는 재기 넘치는 경제학자인지도 모르며 재무성 직운으로서 유용한 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저서로 말미암아 그는 동맹국에 대해서 해를 끼쳤던 것이며 적은 틀림없이 이에 감사할 것이다."

훝날 세계를 지배한 경제학자가 되는 이 거물은 한때 따돌림을 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잘난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았고, 하버드 대학으로 들어가 <일반이론>을 집필하며 청장년층의 경제학자들을 매료시키기 시작합니다. - 아 물론, 온 사교계가 떠들석하게 발레리나 리디아 로포코바와 결혼식을 올린 것도 이 당시의 사건이었죠.

# 오해는 풀린다?

지난 몇해동안 우리가 목격한 정체성 논쟁도,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섰다는 점에서, 케인즈가 당한 그것과 비슷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상을 구깁니다.

다시 케인즈로 돌아가보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준 것이, <일반이론>이나 그가 매료시킨 하버드 경제학자들 보다는 10년간의 경제대공황 - 오랜 불황으로 겪은 고통은 고전경제학파의 완전고용균형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까요. - 이었던 것 처럼,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은 두 정당의 경제정책 역시도, 현실에서 그 공통점을 증명할 것입니다.

오해는 풀릴 것입니다.

# 손에 꼽을만한 경제사

후기가 다소 치우쳤습니다만,

갤브레이스 교수가 <불확실성의 시대>를 통해 조명하고자 했던 것은,
제가 언급한 바와 같이 고전경제학의 확실성을 케인즈 경제학이 대체해가는 과정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자리잡았던 경제학 일반의 성립과 위기, 몰락의 과정 - 후일담을 읽는 재미도 상당합니다. - 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고 있는 경제사이죠.

당연히 고전경제학 뿐만 아니라, V.I.레닌에 이어 스탈린이 소련에서 시행했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등장하게 되며,
자본주의 최성기의 풍속이나 화폐의 성쇠, 법인기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에 이어, 손에 꼽을만한 경제사로서 권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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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3-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읽어볼게요 탱스투
 
남미가 확 보인다
이미숙.김원호 지음 / 학민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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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부 기자가 둘러본 남미경제

남미의 역사를 공부해보겠다는 허황된 포부로 준비없이 집어들었던 책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이었습니다.
그 동네에 대해서 꽤나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있는 이성형 교수가 쓴 책이었죠.

그런데, 이 책은 워낙 인물 중심으로 쓰여진 책이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라틴학회의 학술대회에 제출된 논문을 묶어놓은 책이었죠.
준비없는 초보자에게는 여간 따분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심기일전하자고 고른 책. <남미가 확 보인다>였습니다.

00년에 문화일보사 기획기사를 묶어놓은 것인데,
언론기사의 특성이 그렇듯이, 전문적인 무엇으로 따지자면 부족한 감이 있다지만 문제의식 만큼은 굉장히 민첩합니다.

사람들이 97년 외환위기의 악몽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했던 00년.
여러차례 외환위기를 겪었을 뿐 아니라, 정치며 경제며 왠지 우리보다 못한 것으로 뵈이던 남미국가들을 반면교사로 삼고싶었던겁니다.

하지만, 이 책이 남미국가들의 경제에 대해서 심도있게 분석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편견 보태 얘기하자면, 이 책의 저자인 이미숙씨는 정치부 기자.
시류나 경향에는 민첩하니만큼, 덕분에 남미 구경 한번 하는 것을 낙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별로 편집된 이 책 - 아르헨티나, 페루, 칠레, 베네수엘라, 브라질, 멕시코 - 에는 국가별로 두세명의 관계인 인터뷰가 있다는 사실.

후기는 책의 편집과는 달리, 이슈별로 써보았습니다.
책을 소개하기에는 감질맛이 나려나요.

# 민정이양의 의미

라틴아메리카를 한국경제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하는 배경에 대해서 좀 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남미는 소위 굉장히 잘 나가는 나라들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이 국가들이 스페인으로부터의 오랜 식민지 시절을 벗어나 소위, '개발도상국'의 반열에 오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는 곧, 하나의 성장모델로 추앙받기 시작했구요.

그런데, 어느새,
'남미' 혹은 '남미병'이란, 정치, 경제, 사회의 만성적 위기증상으로 요약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외채와 구제금융, 마이너스 경제성장률,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
이제 성장모델은 부정되기 시작합니다.

믿었던 자유시장경제의 배신이었습니다.
말미에 소개된 통계자료 - ECLAC(UN의 중남미경제위원회)에서 발간한 중남미사회보고서 - 에 의하면,
경제가 성장할 수록 고용불안이 가속화되고, 빈부격차가 커져, 중남미 인구의 45%에 해당하는 2억 2천만 명이 빈곤선 이하의 극빈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하니까요.

여튼, 이제 이렇게 부정된 성장모델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남미보다 다소 낳은 평가를 받고있는 한국의 성장모델도 고려되구요.

한국의 성장모델을 평가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박정희'이겠죠.
우리가 '박정희'라는 인물과 함께 응당 떠올리게 되는건 군정(軍政). 그리고, 이는 남미의 역사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남미의 국가들도 대부분 군정을 겪었고, 1900년대 말경에 이르러서야 민정(民政)을 열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83년의, 브라질이 85년의 , 칠레는 89년, 페루는 85년. 한국은 87년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개발경제와 관련해서, 경제정책과 관련해서,
군정과 민정 사이의 경계선이 갖는 의미는, 시장경제의 본격적인 발달을 뜻합니다.
(칠레는 예외군요. 칠레는 73년부터 집권한 피노체트가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을 직수입 비슷하게 합니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경제개발의 대략적인 흐름이란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하니까요.
이 역시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한국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초기에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계획적인 발전을 추구하다가,
몇번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상당부분 국가에 책임을 묻게 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는 흐름.
군정과 민정의 경계선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인물과 인물

이런 관점에서 지켜봐야 하는 인물들이,
아르헨티나의 알폰신과 메넴, 브라질의 카르도수, 페루의 후지모리와, 멕시코의 폭스입니다.
칠레에서는 특이하게 군정인 피노체트를 꼽아야겠구요.

이제 위의 인물들은 이제, 민정이양과 동시에 시장의 힘을 키워갑니다.
시장을 기본으로 한 경제에서, 이를 개발하는데 있어 이슈가 되는 것은 국가와 시장의 비중.
이는 케인즈경제학과 신자유주의경제학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실제, 칠레의 피노체트의 경우,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태동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들이 제출한 개발안을 그대로 채택한 경우구요.
페루의 후지모리 역시, 한국의 박정희 모델과 칠레의 피노체트 모델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피노체트 모델 - 즉, 신자유주의 모델을 채택했다고 하구요.

# 국가와 시장의 저울질

군정에서 민정으로의 이양이 시장의 비중을 높였다는 사실 이후에,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민정과 함께 시장의 비중이 현격히 높아진 이후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상이한 관점이 그것인데요,
이는 한국에서 70년대 경제개발 모델을 되돌아보며 이루어지는 논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너무 도식화시키는 것 같긴 하지만,
상이한 관점이란, 시장 탓을 하느냐 국가 탓을 하느냐 라고 보여집니다.

이 대목에서,
국가에 무게를 두고있는 관점은 '포퓰리즘(populism, 인기영합주의)'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냅니다. 남미과 소개되면 항상 뒤따르는 단어이기도 하죠.
포퓰리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다시 두가지인데, 한가지는 페론이라는 인물이 대신 소개해 줄 것이요, 또 한가지는 한국과 굉장히 상이한 남미의 정치 풍토를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페론 얘기부터 해보죠.
남미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을 설명하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페론.
40년대에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으로서, 그의 아내 에바 페론은 안토니아 반데라스와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에비타 Evita> 로도 익히 알려져있습니다.

남미라는 대륙 자체가 자원이 굉장히 풍부한 나라이기 때문에,
남미국가들은 개발초기에 쉽게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 이 점에서 한국은 선택의 여지가 좁았죠.

그런데, 페론의 경우 이 과정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고스란히 임금향상이나 복지에 사용합니다. 별다른 경제전략이라는게 없었던겁니다.

한마디로, 이해집단으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당장의 이해관계에만 치중한 나머지,
산업경쟁력을 개발할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지목되는 원인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인물 중심의 정치풍토'입니다.
그 반대는 '정당정치'일텐데, 페론의 예에서 보여지듯이, 정책을 생산하고 집행하는 정당 없이 대통령 개인의 인기나 의사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뜻합니다.

저도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
남미는, - 국가별 차이를 무시하자면 - 정당은 굉장히 많지만 실제 뚜렷한 정책을 가진 정당이 별반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정당이라 해서, 선거정당이라고도 하구요.

# 시시했던 필자의 결론

필자인 이미숙 기자가 책의 말미에 요약 제시한 교훈을 보면,
신자유주의 흐름에의 적극적인 결합,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 집단이기주의 극복, 정당중심의 정치문화 확산, 인적자원의 개발까지,
제 표현을 빌리자면 - 모조리 '국가 탓'을 하고있는 셈입니다.

'시장 탓', 그러니까 시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관점이란,
필자의 기획의도에느 포함되어있지 않고, 오히려, 책의 본문. 즉, 페루의 신임대통령 톨레도나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만, 그나마도 굉장히 미약한 수준입니다.

실제, 그는 이미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밝히는데,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독일의 슈뢰더 총리를 직접 지목하며,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구요.
남미 내에서는 칠레의 라고스 대통령도 이와 흡사한 경제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시시했던 이유

경제위기의 반면교사로서,
즉 남미와 같은 사회경제 전반적 혼란을 견제하기 위한 교훈은 충분히 나왔는가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입니다.

적절한 예시가 될런지 모르겠지만,
대충 반에서 3등 정도 하는 친구가 요즘 공부가 영 안되는데, 4등에서 5등으로 밀려난 친구를 보며 교훈을 얻겠다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어차피, 필자가 주목하고있지 않은 베네수엘라나 쿠바를 제외하고는,
남미대륙 전체가 시장경제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 굳이 왜 남미를 반면교사로 택했는지.
뭐 저에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만, 쉽사리 이해가 안됩니다. 같은 기획이라면, 오히려 서유럽 모델이나 신흥 국가들의 모델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은 벌써부터 나와있었던 것 같아서요.

# 보탬 - '통화바스켓 제도'에 대한, 짧디 짧은 생각

사족 수준은 아닌데 본문과 적당치 않아 덧붙입니다.
아르헨티나의 1달러 1페소 정책이나 브라질의 '헤알플랜' - 지금은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을 보면서 중국의 위안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집권 페론당이 아예 페소를 폐기하고 달러를 사용할 것을 공식적인 정책으로 주장하고 있다는데요.
반대편에서는 - 제가 보기엔 - 시시콜콜하게 화폐의 대미 종속을 우려하고 있다고 하네요.

'1달러 1페소'정책이나 '헤알플랜'이란,
일종의 고정환율제입니다.

원래 환율은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자국화의 판매비율에 의해서 자유롭게 결정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의 경우는 화폐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엄청난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것을 우려한 저개발국들이 사용하는 것이,
자국화폐의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켜버리는 것입니다.

동남아에서도 태국이 통화바스켓이라는 유사한 제도를 사용했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며 폐기를 했고, 헤알플랜을 사용한 브라질의 카르도수 대통령도 결국 94년 외환위기를 통해서 이를 폐기하게 됩니다.

달러와 자유롭게 경쟁하자니 너무 저평가를 받아 인플레이션에 시달려야 하고,
달러에 고정시켜버리자니 너무 고평가되어 투자나 금융계가 불안해하고,
물가안정이 지상과제인 국가의 입장에서는 결국 버틸 때 까지 버텨보는 식입니다.

그나저나, 페소를 포기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원화를 포기하고 달러를 사용한다.

기분이야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이겠지만,
글쎄요. 사실, '화폐종속'이라는 것 자체는 굉장히 새삼스러운 반론이라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페소화를 쓰느냐, 아예 달러화를 쓰느냐.
이 두가지의 갈림길에서 화폐종속여부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세계화 된 경제에서, 화폐주권이란 그리 큰 차이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 환율을 그대로 쓰나, 미국 환율의 변화는 것 대로 자국의 환율을 조정하나.
차이란 미미한 것 아닐까요.

아 좀 더 공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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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여행 - 갤브레이스교수와 함께 떠나는
존케네스갤브레이스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
경제사인지 전쟁사인지 구분하기 힘든 경제사 한편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약력이라는게,
여섯살에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경제사에 극적인 반전이 있었던 192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했으며, 2차 세계대전엔 전시의 물가안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했고, 등등.
전쟁을 빼놓고는 도무지 써내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저자의 약력에 혀를 내두르며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 경제사에서 전쟁이 그리 중요한가요? "

#
우리에게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익히 알려져있는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그의『경제사 여행』은 전쟁 얘기 때문에 더욱 빛이 납니다.

어쩌면,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그만큼이나 구체적으로 서술한 학자가 드물기 때문일겁니다.
어디까지나 짐작이긴 하지만,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 그것이 전시경제이든, 전후경제이든 - 은 아마도 청년 갤브레이스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된 과제였을겁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가 경제학을 수료했다는 프리스턴 대학의 경제학 커리큘럼이 전후경제 - 특히, 물가안정 - 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라면, 미국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는 1930년대 초의 분위기 역시도 장년이 된 경제학자에게 전시경제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 없게 했을테니까요.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사건 위주로, 드라마적으로 나열하는데 익숙합니다.
2차 세계대전은 누가 누구를 총으로 쏴서 일어났더라- 거나, 혹은 이것이 너무 유치했던지 20세기 역사 전부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조작 결과인 양 - 하지만, 소위 '음모론'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생각하는 것 말이죠.

『경제사 여행』은 이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쓰여진 20세기 역사입니다.
1차 세계대전 - 전후호황 - 대공황 - 2차 세계대전 - 뉴딜 - 한국전쟁 - 스태그플레이션 -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은,
철저히 각 사건이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설명되고 전개되어집니다.

#
"현대 경제사의 대전환점,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전환점보다 더 확실히 현대의 경제시대를 예고해주었던 전환점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대전이었다."

갤브레이스 교수는 1차 세계대전을 '경제사의 대전환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책읽기가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가 '대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기준을 둔 것은 아마도 '경제주체'일 것입니다.

흔히, 자본주의의 시작점을 17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에 둡니다만,
어찌보면,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경제주체의 탄생을 의미할 뿐이니까요.

즉, 경제사를 한편의 영화에 빗대자면, 그는 신인배우보다는 주인공에 관심을 두고있는 것입니다.

영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가 이 대목,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후에 새롭게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들이 기존의 토지귀족과 갈등하는 19세기초의 유럽역사 - 에서 떠올려야 할 적절한 영화가 <타이타닉>일겝니다.

Jack과 구구절절한 연애담을 그려내는 Rose는 다름아닌 몰락하는 토지귀족의 자제입니다. 구태의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사연을 뒤로 하더라도, 그녀의 어머니가 집안의 경제사정을 들먹이며 울먹이는 장면은,
사실, 그 당시 많은 토지귀족들이 일반적으로 처했던 경제적 어려움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Jack에게 멋진 정장을 선물했던 벼락부자 아줌마.
이 벼락부자 아줌마 - 물론, 그녀는 금광을 발견한 남편 덕에 호사했습니다만 - 는 Rose 네를 비롯한 여러 토지귀족들의 못된 험담을 들은체 만체 하며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합니다.

재력만 있을 뿐, 출신성분이란 천하기 짝이없는 벼락부자 아줌마와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며 식사를 나누는 사람들이란,
19세기 초반의 경제주체간의 갈등을 묘사한 그럴싸한 그림이 되는 것입니다.

#
갤브레이스 감독의 스펙터클 블록버스터, 『경제사 여행』전편이 주인공과 신인배우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면,
전편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1차 세계대전입니다.

후편에서 이 신인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감독에게,
산업혁명이란 전편 시작 전에 나오는 '줄거리' 정도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막연함을 덜기 위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볼께요.
전편의 주인공 토지귀족과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는 각기 다른 배우, 즉 다른 '경제주체'입니다.
그것은 단지 '역사'라는 충무로에 데뷰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이 영화의 제목이 『경제사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사에서 경제주체를 구분하는 것은, 그들의 각기 다른 생산양식이죠.

토지귀족이 주인공이던, 즉 토지귀족이 경제주체이던 시절에는,
그 정치적 권위란 토지소유권 혹은 토지 소유 귀족의 전통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군사적 권력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통치자가 되거나, 의회에 진출하거나, 혹은 군대의 장교로 복무할 수 있도록 보장된 것은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반면, 이 시절 신인배우로 갖은 고생을 하던 신흥 부르주아들.
이들은 재화의 생산, 유통, 혹은 운송을 공급하면서 분위기를 끌어가지만, 토지귀족들에 의해 정치적 권위에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각기 다른 생산양식을 가진 주인공 토지귀족과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들이,
한 사회의 정치적 주도권을 두고 갈등하던 시기인 셈입니다.
(물론, 각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점은 유념하셔야 합니다. 독일이나 서유럽, 제정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주인공이 주인공이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상황은 조금 달랐죠.)

전편의 클라이막스 1차 세계대전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납니다.
전편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난 토지귀족들이니 만큼, 전쟁 역시 주인공 마음대로 '더 많은 영토의 획득'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와 독일이 사이에 두고 업치락뒤치락 하는 알자스-로렌이라는 땅덩어리나,
동부전선에서 쟁점이 되었던 폴란드 장악,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동까지 미쳤던 당시의 식민지 정책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
물론, 후편의 주인공이 되는 신인배우 신흥 부르주아들은 토지에 별로 욕심이 없습니다.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별로 없죠.
이유는, 이 새로운 경제주체가 기반하고 있는 생산양식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장년이 된 주인공은 아예 소리없는 전쟁(금융전쟁)까지 일으키는데,
하물며 토지라니. 그에게 토지란, 적어도 생산의 중심적 요소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후편의 주인공.
후편 중반즈음 등장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는, 급기야 식민지들을 죄다 놓아주게되죠.
이 새로운 경제주체에겐 그다지 의미 - 경제적 가치 - 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
갤브레이스 감독의 영화에 흥미가 생겼다면,
후속작 '전시경제'도 꽤 볼만 하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실, 이 감독의 영화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란, 굳이 한 문장으로 표현해서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과 정책상의 변화' 정도가 되니까요.

그런데, 그의 후속작을 보기 위해서는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뜸들이지 않고 얘기한다면, 그가 주목하는 것은 전시경제 그리고 전후경제의 혼란상인데, 그는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 이미 이 혼란의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한개의 소제목을 달아줍니다.

"인력과 물리적 설비 및 자원을 전시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다음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강제에 의한 방법, 둘째는 세금에 의해 모인 기금으로 필요한 전환에 지불하는 방법, 셋째는 찍어내거나 그 목적을 위해 새로 만든 돈으로 지불하는 방법, 일반적인 용어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방법이다."

그가 이후의 혼란한 경제상과 관련해서 주목하는 항목은 셋째입니다.

#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면? 빌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빌리긴 빌리는데 공적인 자리이니 만큼 증서도 한장 떡하니 써줍니다. 채권입니다.
국가가 빌리니 국가의 채권이라고 해서 국채 혹은 공채라고 합니다.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시사적인 제목을 붙여주면 더욱 그럴싸합니다. 'OO공채' 역사에 실재했던 이름으로는 '자유공채'가 있습니다.

그런데, 공채를 주고 받은 돈은 써야하니,
빌려준 사람들이 돌려달라고 할 경우를 대비해서 돈을 좀 찍어둡니다. 일반 사람들이 하면 '범죄'지만, 발권은행(한국은 한국은행, 미국은 연방준비은행)이 하면 '통화발행'입니다.

실물경제는 그대로 있는데, 화폐가 늘어났으니 응당 화폐 1장이 대변하는 실물가치는 떨어집니다. 인플레이션(Inflation)입니다.

이런 인플레이션엔?
가만히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수입이 고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게됩니다.
게다가, 전쟁규모라는게 한두푼이 아닌 이상, 이것은 전후 금융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한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뭐 어디까지나, '미리' 알아두어야 할 얘기였습니다.

#
본론에서 꽤나 유명한 배우를 우리는 마주치게 됩니다.
저 이름도 유명한 '존 메이너드 케인즈'.

그 역시도 전쟁의 포화가 한참일 때 장성했고,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지만, 그는 1929년 대공황 이전에 이미 유명세를 떨친 사람입니다.
1차 세계대전을 매듭짓는 1919년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일국의 - 영국 -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뿐 아니라, 회의 중간에 회의장을 뛰쳐나오는 '사건'까지 만들어냈으니까요.

이 대목에서 청소년의 역사상식을 키워주신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선생님께 감사드려야 겠으니,
1919년 베르사이유 강화회의에서 독일협상단이란 한껏 울상을 짓고 제 나라로 돌아갔더랩니다.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4,00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전후배상액 때문이었죠.

승전국이었던 영국이나 프랑스로서는,
전쟁이랍시고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돈을 빌려왔으니,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아야 했겠죠.

그런데, 이 장면에서,
승전국의 협상대표가 협상 중에 대표직을 그만둔 것도 모자라, 책 한권을 써낸겁니다.
이름도 노골적으로 『평화의 경제적 귀결』이라고 붙여서 말이죠.

내용인 즉은, 복선 그대로입니다만.
패전국 독일에 대한 전후배상이 장차 세계를 뒤흔들 경제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거였죠.

사실, 남의 얘기니까 이렇게 편히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이 케인즈라는 사람 보통 내기가 아닙니다.
가뜩이나 폐허가 된 집이며 땅을 두고 분노에 가득차있을 영국 국민 전체에게 따 당할 각오쯤은 하고 있어야 했을테니까요.

#
케인즈가 『평화의 경제적 귀결』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빚에 대한 관점'이란,
빚쟁이에 대한 동정적인 시선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분노에 가득찼던 채권자들이 2차 세계대전에 휩싸였던 점을 생각한다면, 그는 상당히 약삭빠른 채권자인 셈입니다.

그는 폼나게 이렇게 말하고 있죠.
" 이 조약에는 유럽의 경제적 재건을 위한 조항이 없다. "

당시, 독일에 불어닥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그린 기가 막힌 사례가 있었으니,
1923년에 미국의 한 국회의원이 무려 10억 5,000만 마르크를 주고 식사를 했으며, 4억 마르크의 팁을 주었다고 하네요.

여튼, 이 승전국들은 차후에 상당 액수의 배상금을 변제해주게 되나,
1923년에 독일에 새 화폐가 발행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1933년에 히틀러가 채무불이행 - 오늘날의 모라토리엄인가요? - 을 선언하고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터뜨리게 됩니다.

이쯤되면,
이 약삭빠른 채권자가 차후 IMF를 설립해서, 각 국가의 모라토리엄을 막기위해 동서분주하도록 한 것도 꽤나 그럴 듯 하니까요.

#
2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끝난 새로운 10년이기도 하고,
갤브레이스 교수가 대학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이 당시 주류적인 경제학은 신고전파 견해였다고 합니다.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로 대표되는 고전파 이론을 약간 수정한 것으로서,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시장의 자기조정능력일겁니다.

시장의 자기조정 능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경기순환이겠죠.
일시적인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면서 시장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경기순환.

그런데, 여기서 얼마전 읽었던 변형윤 교수님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제 후기를 읽으셨던 분이라면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구조중시의 시각'에서 변 교수님의 언급 말이죠.
변 교수님 역시 이렇게 말하고있죠.

"전쟁에 기인하는 경제현상의 대변혁으로 인해서 종래의 경기변동론 내지 경기순환론으로서는 파악되지 않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대목에서 갤브레이스 교수와 변형윤 교수님의 시각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겁니다.
케인즈주의. 시장의 균형을 마법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영속적 질풍>으로 인해서 기성의 노쇠한 것이 일소되고, 새롭고 위대한 업적이 도래할 길이 닦이게 되었다. 투기적 주연, 전쟁과 그 여파 등이 이 현상과 관련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결국 고전파의 완전고용 공약, 즉 그 체제가 기본적인 경제적 힘에 의해 회복되는 정상적 상태는 아직 남아있다.
이제 나는 이 체계에 대한 맹공격으로 내 주의를 돌리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학식보다는 그동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 의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후 맹공격을 받는 사람들이나 맹공격을 하는 갤브레이스 교수나,
사실, 시장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데에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차이는, 그것 - 시장의 균형 - 을 전적으로 시장에 내맡기느냐 아니면, 그에 대해서 정부정책이 관여할 여지를 허락하느냐에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기존의 고전파 경제학에서 주장해온 완전고용이나 경기순환론은,
이제 정부정책의 도움 없이는 스스로의 운동을 하지못하는겁니다.

갤브레이스 교수의 경우, 그 원인을 '전쟁에 기인하는 경제현상의 대변혁'에서 찾는다는데에 핵심이 있습니다.
전쟁이 경제의 무엇을 바꾸어놓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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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머리 따뜻한 마음 - 經濟騎士道를 생각하며
변형윤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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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보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는 일입니다. 잠을 깨는데는 제법 효과가 있죠. 그런데, 부대 일과에 충실히 따르다보면, 내무실 TV가 가장 오래도록 고정되어 있는건 음악채널이지만, 제일 마지막에 고정되는건 TV뉴스일 수 밖에 없는지라. TV 켜기도 힘든 아침잠에 채널을 뉴스에 고정시키는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건 그렇다치고, 평소엔 잘 안보는 TV뉴스지만 가끔씩은 아침잠이 확 달아나게 하는 뉴스들이 있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관심을 끌법한 사건 사고들도 그렇거니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주섬주섬 옷을 입다말고 시선 한번 끌게하는 기사는 따로 있죠.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국회의원들이 하는 포럼에 경제학의 두 원로가 참석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는 기사가 그랬습니다. 전 국무총리였던 남덕우님과 서울대 명예교수인 변형윤님 두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작자의 솜씨인지 모르겠지만, 이 두분의 논쟁에 붙인 제목이 가관입니다. 역시 정확한 제목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경제가 성장 위주로 가야하느냐 분배 위주로 가야하느냐에 대한 것이었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원로 경제학자의 출신 학교인 서강대와 서울대 경제학 교수진을 일컫는 서강학파와 학현학파 - ‘학현‘ 은 변교수님의 호입니다. - 라며 무협지 한편을 써내려갑니다.

“ 성장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소득분배를 개선하면서도 4~5%의 성장이 가능하다. ” 라는 주인공의 대사 따위 아랑곳 없이, 멋지게 편집된 두 학파의 계보까지 나온 이 대립구도는 대체 무엇인지.

# 후기에 앞서

뭐 그 아침의 불쾌함이 어떠했느냐를 떠나서, -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하루이틀 불쾌한 것으로는 모자르죠. - 저는 후에 변교수님의 책을 한권 구입하게 됩니다. 『경제와 휴머니즘』이라고, 지금 명예교수로 있는 변교수님께서 은퇴 전에 갈무리 형식으로 내신 책인데, 80년대 초에서 90년대 초반까지 주요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은 것입니다.
사실, 분배 위주 경제학이란 대체 무엇이냐는 심각한 고민보다는, 한국 경제사를 꼽으면서 우리나라 경제학자의 글도 한번 읽어보자는, 일종의 기분내기에 불과했습니다.

칼럼을 갈무리한 글이니 만큼, 미시와 거시, 국내경제와 국제경제를 넘나들 뿐 아니라, 듣도보도 못한 경제학자들의 언급이나 경구, 심지어 저 유명한 남미의 종속이론까지도 등장할 만큼 다양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어찌 읽느냐. 흐름을 꿰는데 초점을 두어 최대한 속독하면서, 용어나 맥락이 난해한 부분은 따로이 메모를 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기도 두차례에 나누어서 써야할 듯 합니다. 첫 번째 후기는, 변교수님과 ‘분배 위주의 경제학‘ 이라는 애매모호한 제목의 이론에 대해서. 두 번째 후기는, 주의집중을 요하다 못해 두 번세번의 정독이 필요했던 칼럼들에 대한 난잡한 메모가 되겠습니다.

# 시작 - 기형 경제

지난 경제사에 대한 변교수님의 분석은 「한국자본주의의 나아갈 길」과 「제3세계의 등장과 경제적 배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제목들은 거창한데 신문 칼럼이니 만큼, 중고등학생 정도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여튼, 후자의 경우 세계적인 시각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의 발전상을 돌아보고 있는 글입니다. 줄기적인 논쟁이 되어온 여타의 개발경제학 이론들과 종속이론들도 여기서 잠깐 맛을 보입니다.
그런데, 이 칼럼에서 서술하고 있듯이,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시작하게 된 시기 자체가 굉장히 신파적입니다. - 변교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신건 아닙니다. - 근대를 피식민지로서 보냈고, 2차 세계대전의 끝과 함께 정말 허허벌판에서 경제발전이란걸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돈도 없고 기술도 없고 배는 고프고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허허벌판이라는 공통의 조건 속에서, 이 나라들을 구별짓는 것은 땅을 팔거나 사람을 파는 것(노동력) 뿐이었을겁니다.

이들에게 “너희는 너무 대외의존적인 경제발전을 했어.” 라니.
땅을 파도 아무 것도 없는 한국이야 응당 사람을 팔 수 밖에. 그런데, 일 할 사람만 있다고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외의존적이고 자립적을 따질 때가 아니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계획이라는게 어디 있었겠습니까.

뭐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60년을 거쳐 70년대를 경과해 80년에 이르는 한국의 경제개발전략이란, 자본, 식량, 석유, 기타 자원 뿐만 아니라, 소재, 부품, 기술 등의 수입의존도가 높았던 그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변교수님의 첫 번째 문제의식이 있습니다. ‘헝그리 정신은 이제 그만. 그러다 애 죽겠다.’
이 대목에서 「경제경험을 살리자」도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 언급한 칼럼은 기형적 발전이 가져온 우여곡절에 대해서 쓴 것인데, 74년과 80년의 오일쇼크와 86년 3저호황의 상이했던 효과를 언급합니다. - 이제껏 기형적으로 성장해온 한국경제들을 균형있는 성장모델로 변화시키자는 것이죠.
이를테면, 자본에서는 외자와 내자의 비율, 식량에서는 농업, 공업에서는 소재 부품산업의 육성, 경제구조에서는 중소기업의 육성, 등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여타의 칼럼에 고르게 녹아들어있기도 합니다.

# 분배와 성장? - 문법상의 오류

우리나라에 분배 위주의 경제학, 그것도 모자라 ‘학현학파‘ 라는 학파에 자신의 호까지 빌려준 이 원로 경제학자는, 분배에 대한 자신의 강조가 성장에 반대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이는 「노사분규 푸는 길 있다」「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길」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칼럼들을 더 잘 이해하려면, 「조급과 편시안은 금물」, 「증권시장이 걱정이다」, 「마셜의 경제기사도」의 칼럼을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올곧게 이해하기 위해서, 스미스가 글래스고우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던 시절 집필한 초창기 원고인 『도덕감정론』을 읽으면 좋듯이.)

사족일 수 있겠지만, 이 원로 경제학자가 평생 경제학을 공부하며 늘 가슴 한켠에 담고 살았다던 마셜의 ‘경제기사도‘ 란, 일종의 경제윤리인데요.
역시 경제학자였던 알프레드 마셜이, - 2차 세계대전 후에 서독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경제원조를 하게되는 ‘마셜플랜’ 으로 익히 알려져있죠. - , 쓴 책 어디에 쓰여있는 경구일겁니다.

다시 말해, 늘 경제윤리를 잊지 않고자 했던 이 경제학자에게,
‘성장’ 이란 일종의 목적지였지 길은 아니었던겁니다. 목적지에 이르는 길은 다양해야 했고, 그에게 길을 선택하게 하는 기준은 ‘경제윤리‘ 였던 셈이죠.

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 이보게 젊은이, 약속시간도 정해지지 않은 길을 무에 그리 서두르나. 좀 늦더라도 저쪽 길로 가세. 저편이 경치도 더 좋다네. ”
아마 맞은 편에 있던 젊은이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 망할 할아범. 대체 가자는거야 말자는거야. ”

이 젊은이 아주 오만불손합니다.
어르신을 할아범이라 불러서가 아니라, 어르신이 한 말씀은 쏙 빼놓고 제 멋대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성장이냐 분배냐‘ 를 논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목적지면 목적지고 방법이면 방법이지, 길의 목적지와 방법을 두고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성장이라는 경제의 목적지는, 투자와 분배의 선순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이 젊은이, 제가 가는 길만 목적지에 도달하는 길인양 어르신을 무시하고 있네요.
한국엔 이런 오만불손한 젊은이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 최악의 결말 - 어르신도 젊은이를 따라가는 것

사실, ‘오만불손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만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돌을 맞을 법 하지만,
저는 ‘너그러운’ 어르신에게 마저도 불만이 있습니다. 아니, 저 역시 오만불손하게도, 제가 『경제와 휴머니즘』을 통해 만난 것은 ‘너그러운 어르신’ 쪽이니까요.

젊은이와 어르신에게는 각각의 수식어가 붙는데. Œ은이가 ‘오만불손한’ 젊은이이고, 어르신이 ‘너그러운’ 어르신인 데는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목적지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기 때문입니다. 성장 위주, 아니 정확하게 투자 위주의 경제발전론이나 분배 위주의 경제발전론이나 ‘경제성장‘ 이라는 같은 목적지를 향해가는겁니다.

빨리 도착하고 싶은 젊은이는 오만불손해졌고, 천천히 가고싶은 어르신은 너그러운졌을 뿐,
두 사람은 같은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여행의 목적에 따라 선택의 폭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여행이라면야, 젊은이가 어르신을 따라가던지 어르신이 젊은이를 따라가던지 하겠지만,
당장 내일 끝나는 오일장에 당도하려는 것이라면, 선택의 폭은 좁아지겠죠. 젊은이가 어르신을 떼어놓고 혼자 가던지, 아니면 어르신이 젊은이를 따라가던지.

제가 볼 때, 젊은이와 어르신의 여행은 그리 귀결될 것 같습니다.
얼마전 포럼에 참가해 발제를 한 두 원로 경제학자들에 대한 보도기사에 불만이 생긴 것도 그런 연유입니다.
결말이 대충 예상되는 드라마의 중간즈음을 보는 기분이랄까. 주위 사람들은 입에 침을 튀기며 드라마의 결말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데 말이죠.

# 시장과 정부 - 어르신의 너그러움이라도 배우라

마지막으로, 시장과 정부의 관계에 대한 변교수님의 언급을 참조하면서 매듭을 지을까 합니다.
성장과 분배를 대립시키는 많은 분들이 이 대목에서 오해를 하실 듯 한데, 분배 위주의 경제학 역시도 민간위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투자 위주의 경제학보다 훨씬 세련되고 매끄러운 방법론이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에 잘 나와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프랑스에서 시행한 경제정책를 빌어 ‘지시적 혹은 유도적 계획’ 이라 지칭하면서, 공공부문에 속하는 프로젝트를 제외하고서는 각 사기업에게 생산활동에 대한 틀과 가이드라인을 주는 유연한 방식의 경제계획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드러움의 정도를 수치화 할 수 없는 이상 ‘유연하다‘ 는 표현이 와닿기는 힘드니만큼, 끝까지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 지나친 정부의 개입은 독과점화, 정책금융의 과중, 금융대출 편중, 기업 재무구조 악화, 금융비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부작용을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기업활동의 자율화 금융의 자율화 등이 새삼스러이 강조되고 있고, 또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략)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그 동안의 지나친 정부의 개입으로 야기된 갖가지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안으로서 민간주도형경제 내지 유도계획화를 내세워 기업활동의 자율화, 금융의 자율화를 추진하다고 해서 과연 그 부작용이 해소된다고 할 수 있을까?
자율화를 추진하기에 앞서 혹은 병행해서 자율화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구조개선, 제도정비 등의 여건 내지 환경 조성, 기반조성을 서두르는 것이 한결 긴요한 일일 것이다. “

뭐 이랬든 저랬든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훨씬 매끄럽긴하죠.
오만불손한 젊은이여, 어르신의 너그러움이라도 좀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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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위기 세계 경제의 몰락
리처드 던컨 지음, 김석중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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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환율이 1,000원대로 떨어졌죠. 지금도 큰 변동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환율 떨어지면, 당장 괴로운건 수출기업들입니다. 수출을 해서 달러화를 벌어와도 환전하면서 손해를 볼테니까요.


얼마 전에 한은 총재와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원이 환율하락에 따라 다른 평가를 냈다고도 하는데, 다른 평가라기 보다는 환율하락의 일면만을 다룬 평가 같더라구요.

한은 총재는 수출의 입장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은 수입의 입장에서. 수출은 줄어들고 수입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상대적으로 원화가치가 오른 셈이니, 팔기는 어렵지만 사기는 쉬운 셈입니다.


여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구조는 수출의 비중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비중이 큰 수출이 환율 때문에 발목이 잡혔으니, 단지 몇몇 수출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달러의 위기 세계 경제의 몰락』이라는 험악한 제목으로 책을 발표한 리처드 던컨 (이하 던컨) 은 IMF,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에서 오래도록 일해온 경제 분석가라고 하는데요, 던컨은 이를 두고 ‘수출주도형 성장시대의 종결’ 이라는 제목을 붙였더군요.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남미 국가들까지, 대미 의존도가 낮은 유럽을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들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대미 의존도가 높은 세계경제라 함은, 쉽게 얘기해서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상품을 주로 미국 소비자들이 구매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계경제를 100으로 보면, 미국 소비자들이 약 30, 그 다음 15개국 정도가 50, 최하위 150개국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군요.)


그런데, 문제는 이제 미국 소비자들이 더 이상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겁니다. 화투판에서 주머니 사정도 고려하지 않고 마구 바둑알을 사용하며 돈을 잃어주던 친구 덕분에 오늘 저녁 뭘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주저주저하는겁니다.


눈치빠른 친구들이라면 이미 눈치를 챕니다. ‘ 저 녀석 주머니 사정이 별로 안좋구나. ’

그리고는 계속 생각합니다. ‘ 이러다가 저 녀석이 아예 판 깨는거 아니야? ’


이런 의심 속에서 이 친구 회심의 제안을 합니다. 제안인 즉은, 바둑알당 30원 하던 판을 바둑알당 10원으로 하자는거죠.

이미 여러판을 따서 바둑알이 이마만큼 쌓인 이 친구. 속이 쓰렸겠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을겁니다.

바둑알당 10원으로 대폭 낮추어 화투판은 계속됩니다.


이것이 환율하락의 배경입니다. 매년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세계경제를 부양했던 미국경제. 01년에 투자가 멈추고, 03년에 소비마저 멈추면서 엔진이 꺼지자,

막대한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던 국가들, 쓰린 속을 움켜쥐고 달러화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 밖에 없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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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부터 가진 돈 모두를 바둑알과 바꿨다면, 주머니사정 이상으로 화투판을 벌이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문제는 귀찮음과 우정이었습니다.

이 친구들 매번 돈과 바둑알을 교환하는게 귀찮았을뿐더러, 수도 없이 바둑알을 꺼내 빚을 지더라도 꼭 갚을거라는 믿음이 있었던거죠.


수도 없이 일어나는 크고작은 국제무역에서 신용이라는게 그렇습니다. 물물교환 시절부터 환거래에 이르는 화폐변천사는 다름아닌 무역의 규모가 커지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화폐가 등장했을 때부터, 이미 화폐를 실물과 교환한다는 신용거래를 시작한 것입니다.

국제무역으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 신용거래는 필수적이었죠.


이렇듯, 신용이란건 편리하기도 하고, 위험성을 잠재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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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문제는 이 신용이 가진 위험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겠죠.

신용을 무역에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는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실물경제를 엄청나게 압도해버린 금융경제는 이것이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주식시장에서는, 신용(화폐)으로 신용(화폐 변화의 차액)을 거래하기까지 하니까요.


리처드 던컨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신용‘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신용은 항상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그는 신용이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을 환율제의 변화, 즉 73년 브레튼우즈협약의 파기에서 찾고있습니다.

미국정부가 금과 달러의 교환을 중단하면서, 달러는 금이라는 고정된 가치로부터 멀어진 것입니다. 신용이 통제로부터 멀어지는 순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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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은 책의 서두에서 73년 이후의 변화들을 기술하고 있는데,

각국의 지급준비금 구성이, 금에서 달러로 변했을 뿐 아니라 각국 달러보유고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금이 보전하는 화폐가치란 미국정부에 의해 보증된 고정된 가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환율이 떨어지 후 금을 사모으는 분들이 있었지만, 이제 금의 가치는 엄연히 시장의 시세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


‘지급준비금’이란, 은행에서 예금자들의 돈을 대출해주는 것으로 수익을 올리면서도 일정정도는 금고에 보관하는 것과 같이, 화폐의 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각국 중앙은행의 경우 국제무역에서 필요한 달러를 일정정도 보유하죠.


그런데, 달러보유고가 2,000%까지 늘어났다는 것은, 그동안 금으로 가지고있던 가치를 변제하고도 훨씬 남는 액수입니다.

이 정도면 브레트우즈협정이 파기된 이후에 달러 자체가 엄청나게 많이 찍혀나왔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에 지급준비금으로 쌓인 달러의 출처는 미국의 중앙은행밖에 없을진데,

협정 파기 이후로 달러화의 생산, 즉 얼마나 신용이 부풀려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미국은 이 신용을 가지고,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를 부양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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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이 분석한 것과 같이,

73년 이후로 세계적으로 많은 달러들이 넘쳐났고, 통제를 벗어난 달러화에 의해 세계경제가 침체기에 빠져들었음은 기정사실로 보입니다.


그는 이것을 빗대어 ‘과음에 따른 숙취‘ 라고 하는데요.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음주, 즉 소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과도한 생산이 이루어졌다는겁니다.

술을 한참 마실 때는, 풍요로운 생산과 소비 속에서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지만, 술이 자신의 주량을 넘어가게 되면서 과도한 생산을 소비가 감당하지 못해 진통이 따르게되죠.


그런데, 저는 신용이 과도하게 남발된 원인을 협정의 파기에서 찾는 던컨에게 의구심을 갖게됩니다.


협정 파기 이후의 세계경제를 과음에 빗댈 수 있다면,

협정은 ‘오늘은 1병만 마시고 집에서 공부해야지.’ 라는 다짐에 불과할 터인데,


오늘날 경제위기의 원인이 협정을 파기한 데 있다고 한다면,

이는 전날 몹시도 과음한 친구에게, ‘너 1병만 마시기로 했잖아’ 라고 질책하는 것 밖에 더 될런지요.


화폐경제는 지속적인 확장의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경제규모는 상상도 못할 만큼 커졌고, 이런 경제규모를 감당해야 할 화폐의 양도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어렸을 적 삼양라면의 가격이란 십여년의 시간이 지난 오늘날 천원을 낸 거스름돈 정도니까요. 그에 따라 환율제 역시도 물물경제에서 단순화폐경제로, 금본위제로, 금달러본위제(브레튼우즈협정)로, 오늘날의 달러본위제까지 발달했구요.


날이면 날마다 다짐을 깨고 술독에 빠져사는 친구라면,

다짐이네 뭐네 잔소리를 늘어놓기 보다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뭐 병원에 데려간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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