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유인우주선을 발사

- 닉슨의 핑퐁외교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89년 천안문 사태 때. 미국이 중국의 정치개혁에 참여하는 것을 재고려하게 됨.
- 대륙간 탄도미사일: 중국은 25기. 러시아는 수백기.
- 리원허 사건: 중국인이 미국의 핵기술을 빼돌렸다는 혐의. 그러나, 밝혀지지는 않음.
- 블루팀: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주요기관 내 인물들
- 대만문제: 미-중 관계의 핵심. 미국의 대 대만 무기판매. 대만 천수이볜 총통은 분리주의자. 국호변경 운동 활발. 중국은 대만 독립선포시 무력사용 계획 있음. 미국 역시 중국-대만 전쟁시 미국은 개입의지 있음.
- 97년 미-일 신안보협력: 미-일 군사행동의 범위를 대만을 비롯한 주변으로 확장.
- 97년 덩샤오핑 사망 후, 장쩌민은 대 미국 관계 변화를 꾀함. (1) 핫라인 설치 (2) 전략 핵무기 조준 않는다 (3) 전략적 협력관계
- 98년 클린턴의 포용정책:  (1) 대만 독립 지지 않는다. (2) 대만의 UN 가입 지지 않는다.
- 99년 코소보 내전: 미국의 폭격으로 유고 내 중국대사관 파괴.
- 01년 남중국해의 정찰기 사건: 미국 정찰기에 중국 전투기가 따라붙어서, 전투기 한대 실종. 정찰기는 비상착륙해 억류됨.
- 911이후 부시의 이라크 결의안에 찬성. 이 대가로 미국은 서부의 독립운동에 대해 태도를 변경함. (인권탄압에서 테러대응으로)
- 01년 WTO 가입과 08년 올림픽 유치.

- 미국은 중국의 최대수출국이자 최대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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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섬유제품의 3/4는 중국산. 일본의 전자제품 역시 중국에서 생산.
- 휴일경제: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해 일부러 휴일 제정.
- 중산층만 2억 5천만명. (유럽 인구와 동일)
- 외국인 직접투자 세계 1위. GDP 성장률 세계 1위. 실질 구매력 GDP 세계 2위. 세계 1위 제품생산 세계 2위.
- 대만 한국의 산업공동화. 대만은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의 위혐. 대만의 제조업 산업단지가 하이테크 산업단지로 전환.
- 중국과 일본의 아시아 세력다툼. 중국활용론 (유니크로 - 중국 시장에서 생산해 일본에서 판매. 가격혁명)
- 하이얼: 중국을 대표하는 가전제품회사. 하이얼의 미국 현지화 전략 때문에 인식 좋아짐.
- 중국 사전 세계 점유율: DVD 54.1%, 에어콘 43.7%, VTR 32.5%
- 제4세대 지도부: 이공계 출신
- 2015년에 일본, 2039년에 미국 따라잡을 예정
- (1) 빈곤층 (2) 부실채권문제 (3) 공기업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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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 기념관 25,000명 방문. 거의 종교적 수준

- 당원수 6,700만명(인구 20명당 1명). 당원은 승진에서 좋은 기회 얻을 수 있다.
- 성, 현, 향진으로 조직 분포
- 당이 인재를 관리한다. 당원 된 후에는 당교에서 정기적으로 교육 이수.

- 최대의 외곽조직 공산주의청년단 6,900만명의 당원.
- 외곽조직: 공청단, 부녀연합, 공회, 농민협회, 자연과학 전문연합학회

- 공산당 지도 아래, 8개 민주당파. 지도하는 당과 지도받는 당, 즉 집권당과 참정당의 관계. 반대당이나 야당 아님. 헌법으로 명시.
- 당 중앙위원회(198명) - 정치국(25명) - 정치국 상무위원회(9명)
- 3중 전회: 사유재산 인정과 3개 대표론으로 헌법개정.

-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원칙: (1) 사회주의 견지 (2) 무산계급 독재 (3) 공산당 영도 견지 (4) 마르크스주의 견지

- 천안문 사태: 개혁개방 10년의 후유증으로 폭발. 반부패 반관료를 주로 요구. 근보적인 문제는 민주와 다당제가 있어야 한다.
- 79년 대자보 사건의 웨이징성. 10년간 수감. 
(* 장쩌민: 공안경찰 외에 무장경찰 창설. 안정을 중시. 3개 대표론. 노동자 농민의 무산계급 독재를 전복.)
- 부패로 인한 손실액이 GDP의 14.5% (200조)
- 투표 참가율 30%. 정치에 대한 무관심 큰편. 공산당 지도에 익숙.
- 중국의 대 홍콩 안전법 제정은, 홍콩의 대대적인 시위로 인해 실패. 홍콩은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선출할 것을 요구. 홍콩은 공산당 독재를 비판.

- 농민(9억)들은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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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최초 핵실험
-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 필요함.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도 동의.
-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동의함과 동시에 체제붕괴는 반대. 중국은 북한을 안보상의 완충지대로 판단. (1961년 군사원조협약)

- 중국: "미 정부가 북한의 체제보장을 한다면, 북한은 핵 개발하지 않을 것"
- 북한: "북한이 안전보장 원한다면, 핵 개발 하지 않고 검증받아야 한다."
- 북미 대립이 계속되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핵 개발 지지하지 않으므로, 북미간 전쟁에서 군사원조협약을 준수할 수 없다.

- 중국은 체포된 탈북자를 강제송환. 중국을 통해 제3국으로 가는 것도 원칙적으로 금지. "중국의 안정과 경제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반대한다." 탈북자를 경제적 이주자로 봄.
- 하지만, 동시에 북한체제의 붕괴도 우려함. 따라서, 중국은 북한을 재건하려 하지만, 북한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거부.
- UN 난민국은 르완다, 아프리카, 콜롬비아, 스리랑카를 난민으로 지정. 북한이 빠져있는 것은, 중국의 방해 때문. 난민과 경제적 이주민의 차이는, 귀국의 경우 본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지의 여부. 난민은 국제법상 수용해야 하고, 경제적 이주민은 송환할 수 있다.
- 미국은 입으로만 난민에 대해 떠들뿐, 난민의 미국행을 거절하고 있다.

- 샘 브라운백 미 상원의원: "인권문제로 북한 압박함을 통해서 핵문제 해결가능하다."
- 허드슨 연구소 폴 호로위츠 <S2 비자> 프로그램: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 제공할 경우, 미국 영주권 부여.
- 자유아시아 방송(RFA)

- 장쩌민은 외교 군사 주석직을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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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상대회(리콴유가 제안) 3,000명 참가. 주최국의 최고지도자가 참가.
- 화상들의 유동자산 총합은 세계 3위 수준.
- 동남아시아 경제 70% 차지. 중국 외의 5,800만명.

- 1850년 골드러쉬로 북미 이주.
- 중화공조회(SUCESS): 이민자들의 취업알선, 영어교육, 문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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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프랑스 사회당에서 활동
- 1922년 <르 파리아>를 발간하여 프랑스로부터의 해방을 조직
- 1924년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대회에 참가
- 1930년 베트남 공산당 창시 "레닌과 제3인터내셔널로 이끈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애국심이었다."
- 1941년 베트남으로 돌아옴. (50세) 독일이 프랑스 점령, 일본이 인도차이나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힘이 약해진 시기가 바로 독립의 시기라고 판단.
- 베트민(베트남독립동맹)을 중심으로 민족전선을 설립
- 일본이 프랑스로부터 인도차이나 약탈
- 1944년 대기근으로 200만명 사망. "열흘에 하루 단식하여 굶어죽는 인민을 돕자."
-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투하에 맞추어 총궐기 호소
- 10일 만에, 연합군이 들어오기 전에 베트민이 국권 접수,
- 1945년 9월 베트남 민주 공화국 수립. 호치민 주석으로 취임. 내각과 국회가 수립.
- 1945년 말 포츠담 회담에서 베트남을 남북으로 분할할 것을 결정. 중국이 북을, 영국(프랑스)이 남을 점령.
- 호치민은 프랑스와 연합 아래 베트남을 통일하려 함. 프랑스는 독립은 거부하고, 통일을 실시할 국민투표는 결정. 호치민은 매국노로 몰림.
- 1946년 프랑스와 전쟁 시작. 프랑스는 반공주의 정부 수립. 호랑이와 코끼리의 싸움으로 비유.
- 1954년 프랑스 패전. 강대국들은 제네바회담에서 남북 분단을 확실시. 중, 소는 북베트남 승인. 프, 미가 남베트남 승인.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
- 1964년 미군 개입으로 대규모 폭격. 남북의 병사 150만명이 사망.
- 1969년 호치민 사망: - 오두막 한채와 책 몇권을 남기고 사망. 전후 대책을 수립한 수첩 발견. 미국, 월남 조차도 그의 죽음을 애도.
- 1973년 휴전
- 1975년 사이공 함락
- 1977년 베트남 통일

- 인민이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 이불변 응만변: 내 안의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변하는 상황에 대처한다.
- 동상, 평전, 박물관 허용하지 않아. 한결같이 권력을 경시.
- 우선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야, 조직을 교화하고,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다.

- 북 하노이 / 남 사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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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문화대혁명
- 마오쩌둥 → 화거펑 → 덩샤오핑 정계 복귀(73세)
- 류사오치의 복귀
- 인민공사(소유와 경작, 분배를 공동으로 하는 방법. 수입의 1/3, 1/5만이 농민의 소유) 에서 생산도급제(경영권은 맞기고 생산량 일부는 정부에 판매, 나머지는 농민소유)로 전환
- 1978년 일본 방문
- 1979년 미국 방문
- 1980년 사인방 재판
- 1989년 베를린 붕괴
- 1989년 천안문 사건(정치, 정권의 개혁, 당내 민주화, 사회 민주화 요구)으로 후야오방(개혁개방의 양심), 자오쯔양(개혁개방의 두뇌) 숙청
-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 1997년 홍콩 반환

- 명분과 원칙으로부터 벗어난 실용주의
- 정책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 버리지 말라.
- 흑묘백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잘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
- 사회주의 시장경제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죄가 아니다." : 원로들과 평등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의 반발
-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너라. : 경제특구를 신설하여 14개 도시까지 확장
- 개혁개방 이후에는 두개 이상의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됨.
- 남순강화: 절대 뒤돌아보지 마라.
- 지식인들의 복권(수학천재 천징룬)
- 평화통일 방안
- 일국양제: 홍콩반환
- 천안문: 너무 멀리 갔다.
- 종신제 폐지.

"마오는 이념의 순수성을, 덩은 실용주의였다." (?)
"마오는 폐쇄된 중국을 원했다." (?)
"과거의 적도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 (?)
"흑묘백묘가 자본주의적 방법을 통해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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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의 명예가 여성인권보다 중요한 나라.
- 혼인한 여성의 간음은 가장 큰 죄악
- 순결을 잃을 것에 대한 극심한 공포가 여성들의 분신을 유도.
- 코란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 없지만, 사리앗에 따르면 여성들은 종교복장을 갖추고 외출하게 되어있음. (이슬람 교리가 특정 정파에 의해 이용당함.)

- 긴 수염은 탈레반 치하에서 의무.
- 부르카(여성의 얼굴을 전부 덮음), 집 밖에서 일할 수 없음, 질서 어기면 즉결처분.
- 종교음악을 제외하고는 결혼식 음악도 허용되지 않음.

- 대소 항쟁, 종족간 내전. 미국의 공습까지 20여년에 걸친 세차례의 전쟁
- 탈레반이 비켜난 자리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지방군벌들이 차지.
- 일부 여성들이 부르카 벗고 스카프를 했지만, 많은 여성들은 아직도 불안한 정세 속에서 부르카 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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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노동당 다우브스테인 - 주거>

- 전통적으로 작고 소박한 의회. 담장 없음.
- 사무실에는 원탁 하나, 책상 하나가 고작. 보좌관이나 비서 없음. (공영 사무실에서 지원)
- 의회 오픈 하우스를 통해 내부 공개 (국민들에게 군림하지 않는 의회)
- 복장이 문제되는 것은 없다.

- 선거자금 기부금 없다. 선거비용 200만원 정도 (기독교정당은 있다)

- 시청: 11개 민원창구. 편의시설. 모든 사람들이 쉽게 들림.

"정치에서 사장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외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고르게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비례대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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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민의대표 친민당(야당) 리칭안 - 교육>

- 10년전 대대적인 개혁으로 교과서 개방. 학원이 성행. → [리칭안법안] 학원보다 우수한 교사를 양성. 표준교과서 제작.
- 대만의 교육열은 한국과 다르지 않다. 현재, 학원 85% 과외 15%. 학원은 학교교육의 보조수단.
- 천연자원 없기 때문에 인재가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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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회민주당 헴멀레 - 교통, 환경>

- 의원사무실 없음. 복도가 집무실.
- 대부분의 의원이 본업을 가지고 있음. 보수나 특권이 없음. 경제적 기반을 따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패 없다. 정책을 발의하는 봉사직으로 생각.

- 선거비용 사민당이 4500만원 지출. 사민당에 700만원 기부.
- 비례대표제. 자전거 유세가 전부. 상근자 1명. 전부 소액 후원자.
- 직접 민주주의 전통 살아있고, 국민들이 직접 법안을 제안할 수 있다. (유럽연합 가입 부결)

- 알프스 보호법 통과시킴. 환경보호론자. 국립공원장.
- 생태학적 유기농업을 시작한 전문적인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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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동당 빈센티노 - 노동, 인권>

- 무토지농민운동이 공유지 점거운동
- 부유층 1% = 저소득층 50% / 토지 1% = 전체 토지의 45%

- 쌍파울로에서 30년 동안 철강노동자로 노동. 룰라 이후 금속노조 위원장.
- 비현실적 노동법을 개정하는 것.

-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야 법안상정 관련한 토론을 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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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녹색당 안나 뤼어만 - 유럽연합>

- 청년 녹색당 대변인 출신

- 1인 2표제. 소선거제 + 비례대표제
-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후보를 선출

- 결석시 벌금제도 운영
- 납세자 협회가 세금 운영 감시 (의원의 마일리지 사용에 대해서까지 철저)
- 승용차가 필요할 때는 공무용 차를 대여.

- 농업보조금 줄이고 교육, 개발정책에 투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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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제도혁명당 우스깡가 - 치안, 안보, 교육>

- 판사, 시장 출신 정치인

- 50~60년대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94년 네번째 외환위기. 이후 범죄 늘어나. 세계 최고의 범죄율.
- 정경유착 심각. 로비스트의 영향력 막강.
- 농민의 혁명을 유지하기 위한 정당으로 출발. 오래 집권한 제도혁명당 이후 71년 폭스 정부 집권. 선심성 공약 쏟아지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
-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지만 시설 열악.
- 개혁에 대한 열망이 큼.

- 상원 6년 하원 3년
- 보좌관 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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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무소속 하원의원 로셀리 - 노동, 인권>

-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01년 국가부도 이후 폐업 줄이어. 파산신청 후 협동조합으로 운영할 수 있다.
- 미주 자유무역지대 반대. 독재정권이 진 외채상환 반대.

- 보좌관 7명. 비서 1명과 보좌관의 월급은 지급. 전문가 보다 현장활동가 출신으로 고용. 무료 자문단 40~50명
- 정치자금 받아본 적 없어.

- 정당투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비례대표제)

------------------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짐 리치>

- 레이건 정부의 금융비리를 밝혀내. 소속 당 의원으로서 큰 용기를 발휘.
- 이라크 전쟁에 반대
- 공공건물 건립을 위한 기금위원회 조직
- "낙오되지 않는 어린이 만들기"

- 자신이 정한 엄격한 기준으로 후원금 수령. 아이오와주 주민들로부터만 받는다. 연방 정부가 정한 액수의 절반만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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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공화당 의원 람다스 아타울레>

- 1947년 독립.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
- 공화당은 하층민의 당. 아타올레가 당 총재. 당 사무실 운영은 당원들의 후원금과 자원봉사로 구성.
- 달리트 출신들의 의석 수는 전체의 15%. 공화당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지원된 선거지원금도 없음. (인도 헌법은 18세 이상에게 투표권 허용. 계급 할당제)

- 뭄바이시 외곽 슬럼지역. 전기 상하수도 교육의 기회 없음.
- 인도 정부는 슬럼 해체정책 추진.
- 작은 일이라도 의원의 서명이 없으면 일하기 힘들다.
- 처음 재건사업 시작할 때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아타올레가 정부의 지원을 얻어냄.

- 상류그룹 3.5% 만이 사설경호원의 보호 아래 거주. 경비를 비롯해서 4~5명의 하인.
- 전체인구 1/5 절대빈곤. 1/2 이상이 적은 수입만으로 생활.
- 농촌문제도 심각. 농민, 식수문제.

- 인도 내에서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이루어내는 것이 목표.
- 무슬림과 달리뜨 모임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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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소속 하원의원 버니 샌더스>

- "하원의 유일한 무소속 의원. 공화당 민주당 모두 서민들을 위해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양당구도와 기업체의 돈에 상관하지 않고 일하는 것이 낫다. 민주당과는 좀 더 가깝게 지낸다."
- 진보정당인 자유연합에서 활동했음.

- 버몬트주: 독자적으로 활동해온 노동자 도시.

- 노조 연대회의, 자동차 기부 프로그램, 소규모 낙농업자 가격 보호책, 처방약가 인하 운동,

------------------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국회의원은 크게 지역구의원과 전국구의원으로 나뉩니다.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총 299명으로 그중 지역구의원이 243명, 전국구의원이 56명입니다.

지역구의 원은 각 선거구에서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되는데, 한 선거구에서 몇명을 뽑는냐에 따라 3가지의 선거구제로 나뉘게 됩니다. 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1명 뽑는 경우를 '소선거구제'라고 하며, 2인-4인 뽑는 경우 중선거구제, 5인이상을 뽑는 경우 대선거구제라고 합니다.  현재 한국은 한 선거구에서 오직 1명만 뽑기때문에 소선거구제입니다.

선출방식에는 크게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단순다수대표제 또 하나는 절대다수대표제입니다. 단순다수대표제는 얼마의 득표를 했건 무조건 1등을 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합니다. 절대다수대표제는 첫번째 선거에서 50%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첫번째 선거에서 1위와 2위를 한 후보끼리 다시 선거를 해서 한사람이 50%가 넘을 때 비로소 당선된 것으로 인정합니다.(2명이서 경쟁하기 때문에 한사람이 50%이상 득표하게 되겠지요)

현재의 한국선거제는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입니다.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으며, 득표율에 관계없이 무조건 해당 선거구에서 1등을 하면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비례대표의원은(즉 전국구의원) 각 선거구에서 뽑지 않고, 각 정당이 획득한 득표율을 바탕으로 배분합니다. 현행 선거제도에 의하면, 유권자는 2장의 투표용지를 받는데, 한장은 해당 선거구에서 나온 후보 중 한사람을 투표하고, 또 한장은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하게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것이 지역구의원을 선출하는데 쓰이고, 두번째 것이 전국구의원을 선출하는데 쓰입니다.

정당에 대한 투표결과, 각 정당이 득표한 득표율이 나올겁니다. 예를 들어 그 결과가 A정당 70% , B정당 30%였다면, 전국구의석 총 56석 중 70%에 해당하는 39석을 A정당에서 받고, 30%에 해당하는 17석을 B정당이 받게 됩니다. 즉 정당이 득표한 득표율에 비례해서 전국구의석이 배분되기 때문에 비례대표제라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례대표후보는 선거전 미리 각정당마다 후보를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합니다. 후보들은 각자 일련번호를 받는데, 즉 1번부터 한사람씩 번호가 매겨집니다.(예컨대, 1번 홍길동, 2번 김철수, 3번 박명수 ....등등).  위의 사례에서 A당은 39석을 배분받았기 때문에 39번까지 국회의원이 되고, B정당에서는 17번까지 국회의원이 되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는 단서조항이 하나있는데, 비례대표를 배분받기 위해서는 총 유효득표의 3%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의원을 5명이상 당선시킨 정당이어야만 비례대표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깁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례대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전 선거의 경우 자민련이라는 정당이 지역구 의석 4석, 정당득표율 2%로 위의 단서조항을 충족시키지 못하여 비례대표를 배분받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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