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배영대]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지음, 김태성 옮김

휴머니스트, 392쪽, 2만원

지난 100여년 간 동아시아는 서양 배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양의 과학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배우는 과정에 자신들의 전통은 뒷전으로 밀렸다. 전통의 대명사는 공자의 유교(儒敎). 이 책의 저자 뚜웨이밍(杜維明) 미 하버드대 교수는 그 잊혀진 유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인 이름을 얻었다.

1966년 이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장을 맡아오면서 저자가 씨름해온 화두는 '문명간 대화'였다. 신간 '문명들의 대화'는 그런 문제의식이 반영된 글 모음집이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일본.미국과 한국의 독자를 상대로 했던 각종 강연.인터뷰 등을 모았다.

저자가 볼 때 생태환경 파괴, 테러, 핵전쟁 위협, 종교.지역 분쟁, 인간 관계의 단절과 소외 등은 현대인이 직면한 문명의 위기다. 근원에는 서양 근대의 계몽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잠자던 동아시아를 깨운 힘이었던 서양 계몽주의가 이제는 문명의 질곡으로 변질되고 있는 상황이다.

뚜웨이밍이 보는 유교는 군신 간의 상하 질서와 남녀차별을 전제로 한 유교가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의 지성과 함께 호흡해온 저자의 현대적 유교 언어를 감상할 수 있다.

현대 유교는 서양 근대의 긍정적 요소인 자유.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흡수한 '열린 유교'여야 한다. 거기에 더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는 것과 같은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야할 교훈이다.

이 책의 중국판 원서 제목은 '대화와 창신(對話與創新)'.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 종교와 종교 등 서로 다른 문명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해내자는 것이다. 저자의 기대처럼 유교가 과연 기독교.불교.이슬람 등 각종 문명 간 대화의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유교의 전통에 경전 해석권의 제한이 없다는 점을 저자는 장점으로 꼽았다. 문화 다원성이 허용될 수 있는 아량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1940년 중국 윈난성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라며 현대 신유학(新儒學)의 거장이었던 머우종산.탕쥔이.쉬푸관의 훈도를 두루 받은 후 미국으로 유학해 68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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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 편집자가 책과 인연을 맺는 첫 만남의 형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우연 같기도 하고 필연 같기도 하고 혹은 형식적일 때도 있지만, 모두가 재미있고 신비로운 경험이다. 이 책이 세상에 나가 기쁨을 주기도, 고통을 주기도 하지만 모두가 내 몫이라 사랑스럽다.

허름하고 낡은 한 권의 원서를 만난 건 지난 1월, 편역자인 전경일씨와 새 책에 대해 논의를 하던 중 100년도 넘은 189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원서 이야기를 스치듯 들었던 며칠 후였다. “한번 볼게요” 하면서 내심으로는 막연한 호기심 정도였다. 하지만 출간 결정을 하기까지는 10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즉흥적이고 빨랐다. 무조건 출간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10여년 책을 만들면서 가끔 우러나는 ‘직관’ 같은 것이 빠르게 작동했다고나 할까. 어떻게 이 주옥 같은 글들을 독자에게 전할지 고민하는 건 즐거운 고통이었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투명한 성찰이었다. 평범하게 전달하는 단문 단문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고요히 쉬고 있는 내면의 정적을 깨뜨리며 닫힌 마음을 마구 흔들어버리는 ‘내 삶에 대한 뜨거움’!

이 책은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잊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물이다. 무엇이 가치 있게 사는 삶이고, 그 삶을 위해 어떤 집착을 버려야 하고 어떤 자세와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마치 후배에게 들려주듯이 간결한 문장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전해 주고 있다. 책을 만드는 사람 역시 정화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짧은 글을 다듬는 작업은 긴 글을 다듬는 것에 비해 몇 곱절의 노력이 필요한 법. 아마도 100년 전의 저자 역시 수많은 시간을 투여해서 이 글들을 정리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활자들이 우리의 삶을 겨냥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100년의 시간을 관통한 채 가슴의 울림으로 우리를 격려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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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꿈을 부추기는 낭만적인 풍경을 기대한다면 책을 덮을 일이다. 이 책은 귀농을 삶의 막연한 대안으로 여기는 도시인들을 위한 어느 귀농 부부의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한 편의 생생한 실전 보고서다.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앙성닷컴(angsung.com)과 한겨레신문에 ‘앙성댁의 시골일기’ 칼럼을 연재하며 알려진 지은이는 나이 사십엔 농부가 되겠다는 남편을 따라 충주 앙성면으로 내려간 서울 토박이였다. 올해로 귀농 9년차인 앙성댁은 이른바 ‘학출(대학생 출신) 농민’인 셈이다. 앙성댁은 도시 생활만큼 치열한 농촌 생활 체험담을 마치 일기 쓰듯 편지 쓰듯 그려 나간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기 힘든 들일 9년 동안 느는 것은 가정용 의료기구뿐. 파스에 찜질팩, 저주파 안마기와 부항기가 이들 부부의 늘어난 재산목록이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 안 먹고는 일 못하는” 막걸리는 시골 생활 필수품 1호다. 월수입 70만원, 평균 연령 59세, 평균 경력 34년, 주당 평균노동시간 56시간. 최대 근로시간에 최소 수입의 직업인 게 대한민국 농부다. 그나마 초보 농부인 이들 부부의 1년 농사 수입 350만원은 도시 생활 한 달 수입과 엇비슷하다.



부족한 생활비는 짬짬이 쓰는 원고료와 CBS 라디오 ‘앙성댁의 시골일기’ 출연료 등으로 겨우겨우 채운다. 그럼 마음만이라도 편한 것으로 족하다고? 마음 내키면 아무 때라도 산행의 취미를 즐기겠다던 부부가 귀농 이후 산에 오른 것이 채 열 번도 못 된다. 시간과 돈에 쫓기기는 농사일도 마찬가지.

동네 사람에게 빌린 땅에서 애호박과 고구마를 다 키워놓고도 주인이 경운기 길을 내주지 않아 거두지 못했던 경험, 다 익은 복숭아들을 폭우에, 멧돼지 밥에 차례로 잃고 유통 과정 중 전전긍긍하던 순간의 애통함이 행간마다 절절 끓는다. 하지만 생전 처음 제 손으로 키운 벼를 베며 ‘아이고, 내 새끼!’ 벼를 가슴에 부둥켜안았던 순간, 자신이 심은 콩알이 제 몸무게의 몇백 배나 되는 흙을 뚫고 초록색 싹으로 올라왔던 날의 감동을 되새기는 지은이의 희망가가 쪽마다 반전 드라마를 연출한다.

◇복숭아나무꽃 앞에서 모처럼 포즈를 취한 앙성댁 강분석씨와 유근세씨 부부.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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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맞춘 ‘청소년 현대문학선’ 1차분 30권이 완간됐다.

소설 전문 출판사인 문이당이 펴낸 선집은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 출간된 문학작품 중에서 청소년의 정서와 내면을 잘 보여주는 성장소설과, 우리 사회와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 주는 장편소설, 그리고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됐거나 문학사에 남을 주옥 같은 단편들로 구성됐다.
 
 
 
특히 교과서에 실린 중·장편 소설은 전문을 실음으로써 수험생의 최대 고민거리인 통합형 논술에도 대비할 수 있게 했다. 원작의 문학성과 작품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소설의 분량과 이야기 구성을 청소년 독자층의 눈높이에 맞추어 작가가 직접 손질했다. 900∼1000장 내외의 장편소설 분량을 600∼700장 정도로 줄여서 청소년들이 어렵지 않고, 쉽게 원작의 문학성과 묘미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원작의 요약본 수준으로 재구성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적절한 표현과 스토리 구성에 중점을 두었다. 참여 필진은 김동리 김원일 김주영 서영은 신경림 이경자 이문열 이순원 이청준 전상국 한승원 황순원 등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들이 망라돼 있다. 문이당의 임성규 대표는 “감수성이 풍부한 시기임에도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과 그로 인해 유포된 경쟁주의적 가치관에 멍든 청소년들에게 폭넓은 인문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선집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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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얘들아 단오가자

이순원 글, 이보름 그림

생각의나무, 164쪽, 8500원

단오는 언제 오나. 음력 5월 5일? 이건 단답형이다. '얘들아 단오가자'에서 소설가 이순원씨는 서술형으로 대답한다. "눈꽃이 지고, 그 가지 끝에 감꽃이 아름답게, 또 슬프게 피면 단오가 오지. 얼음꽃이 지고, 얼음꽃 피었던 앵두나무 끝에 붉은 열매 가득하면 단오가 오지. 종달새 높이 날던 푸른 보리밭이 어느새 황금물결로 일렁일 때, 그 밭둑가에 지천으로 산딸기가 익고 뽕나무의 오디 열매가 검붉게 익을 때, 우리가 기다리던 단오가 오지…."

나흘 있으면 단오(음력 5월 5일)다. 청포물에 머리 감고 그네 뛰는 단오절 풍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씨처럼 "단오가자"라고 말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단오를 신나게, 몸과 마음으로 즐겼던 유년 시절의 기억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청유형의 문장이다.

"단오는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태어난 대관령 아래의 산골마을을 벗어나 사람 많고 자동차 많은 강릉 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 설빔과 추석빔은 얻어 입지 못하고 넘어가는 해가 있어도 단오빔은 한 해도 거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유네스코가 강릉 단오제를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한 것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에게 '단오의 힘'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 '얘들아 단오가자'는 이제 '박제된 풍습'이 되다시피한 단오의 풍속과 정취를 동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주인공은 단오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열한살 소년 은수. 책은 은수의 눈을 빌어 폭설로 거동이 불가능한 겨울부터 눈꽃 지고 감꽃 피는 봄을 지나 청보리가 익어가는 초여름까지 단오맞이의 과정을 차분하게 그려나간다.

단오를 앞두고 싹트는 기옥이 누나와 욱태 아저씨의 수줍은 사랑 이야기도 끼어든다. 은수의 어머니는 단오 한 달 전부터 신주(단오 때 제례 행사에 쓰는 술)를 빚기 위해 쌀 한 움큼을 칠사당에 바치고 온다. 또 깊은 산 속에서 수리취를 캐어 수리취떡을 만들고 잘 익은 앵두를 따 앵두편과 앵두화채를 만든다.

할머니는 창포 비녀를 꽂고 단오날 아침 굿당에 가서 가족들이 일년 내내 무탈하기를 빈다. 할아버지는 단오장에서 친구들에게 선물할 부채와 토시를 산다. 남자들은 씨름판에서 환호하고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듯 한 달 동안 벌어지는 단오제는 가슴 달뜨는 기다림으로 시작돼 다함께 어우러지는 흥겨움으로 막을 내린다. 즐거운 무엇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 '집단체험'이 온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단한 매듭이 됨은 물론이다.

우리 세시풍속에 대한 교육적 효과가 아니더라도 고운 글과 그림만으로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작가의 서정적 문체는 대단히 섬세하고 아름답다.

수묵담채의 그림은 이에 화답하는 듯 산뜻한 분위기를 더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절로 이런 말이 입에 맴돌 듯 하다. "얘들아, 단오가자."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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